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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를 읽다 말고 이 책이 도착해 슬쩍 들춰볼 생각이었는데 다 읽었다. 셜록홈즈가 시시할 정도 였으니 박완서작가의 글빨이 어느 정도였겠는가!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한 말씀만 하소서. 서울 사람들-세 편이 실려 있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는 앞에 싣기 잘 했다는 생각이다. 이걸 읽으면 아침 드라마 보는 기분이다. 이 작품에서 쬐끔씩 떼다 부풀리기만 하면 막장드라마에 막장 소설 몇 편은 거뜬히 나올게다. 소설이니까 통쾌하게 끝났다 싶지 현실이었다면 어땠을까싶다. 주인공 차문경이 전직 교사에 사업으로 시작한 반찬가게가 잘 풀려 다행이지만 현실에선 그게 가당키나 했겠는가 말이다. 차문경-한번 이혼. 자녀 없음. 혁주-상처. 딸1명. 임신한 차문경을 버리고 혁주는 미모와 경제력을 갖춘 애숙과 결혼한다. 애숙은 딸을 낳고 자궁내 악성종양으로 수술을 받아 아이를 낳지 못한다. 혁주의 어머니는 차문경이 혁주의 아들을 낳은 것을 생각해 내고 그녀를 찾아간다. 혁주는 자(子)인도 청구권 소송을 하고 차문경은 소송의 피신청인이 된다. 처(차문경과 결혼은 안했지만)자식 버리고 간 놈이 뒤 늦게 찾아와 물건 찾아가듯 법으로 해결하겠다며 제 자식 내 놓으라는 이야기다. 소설이란게 처음부터 사건이 주룩주룩 이어져 있다가 결론이 나고 해결을 보고 할 텐데 읽으면 읽을 수록 흠뻑 빠져 들게 만드는 글빨이 놀랍다. 사건없이 시작한 이야기가 호미로 감자 캐듯이 영근 알감자들이 희번덕하고 나와 하나의 맥이 여러가지를 품고 막판 뒤집기로 통쾌.유쾌.상쾌하게 빵하고 터진다.
한 말씀만 하소서.는 내겐 너무 어렵다. 자식을 잃은 에미의 마음을 내가 어찌 헤아리겠는가 말이다. 신을 향한 포악도 나에게 일어난 일은 되돌릴수 없는 과거일 뿐이다. 박완서작가님의 개인의 기록인 외아들을 잃은 슬픔이다. 왜 나일까가 아닌 나라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는 진리.
서울 사람들. 나는 왜 이런 이야기를 이제야 읽게 되었을까?하는 후회를 했다. 재미도 있었지만 -303p-불쌍해한다는 건 미워하는 것보다 훨씬 더 견디기 어려운 수모였다.-이런 글귀는 외워두고 싶다. -317p-이 세상에 억울한 것처럼 못견딜 불행감이 또 있을까.-이런 말은 그동안 맴돌기만 하던 내 속엣 말을 딱 꼬집어 줬기 때문이다. 억울할 일이 많았던것도 아닌데 와아우~~~와아~~하면서 밑줄을 박박 그었다. 촌티 남자-개그맨 양상국씨를 떠올리며 그의 말이 옳도다면서 나는 별천지 사람인가? 서울이 별천지인가?를 잠시 ... 사람 밥먹고 똥싸고 잠자는 것 다 똑같다는 결론.
혜진은 연애 결혼해 연탄때는 동네 살다 아파트로 이사했다. 일년 살다보니 아파트 값이 두배로 올랐다. 서울만 그랬겠어?지방도 마찬가지지...뭐! 이렇다 보니 돈 방석에 앉은 기분이고 전망 좋고 평수 넓은 아파트 투기에 눈을 돌려 부동산을 끼고 살다 괜찮은 아파트 당첨은 받았지만 돈이 없어 포기한다. 손해는 한 푼도 안봤는데 떼돈을 못벌어 속상하고 있던 돈을 잃어버린 기분이다. 5남매 맏이인 혜진은 친정엄마의 부름으로 막내 혜숙의 방을 비롯하여 친정집 실내장식을 맡게 된다. 하나 남은 막내는 연애 결혼이 아닌 중매로 상류사회와의 인연을 맺기 위한 요즘 말로 리모델링을 청부 받는다. 선시장에 나가 상품이 된 막내 대학3년 여자 혜숙. 혜숙을 결혼시키기 위한 중매쟁이와 혜진의 가족-친정 부모님-등 현실적인 이야기지만 나한텐 네이버 뉴스같았다. 신델렐라를 꿈꾸는 현대 여성.
읽다 보면 결혼이란 상류사회 놈........또는 개천에서 용난 놈...하고 해야 옳다는 생각에 까지 이른다. 농장같은 곳에서 파뤼를 즐기는 모습-베란다에선 베에~또벤인지 모짜렐란지 모를 선률이 흐느적 흐느적 흐르고 몇?미터의 얼음 조각에서 물방울이 또록 또록 떨어지고 끈드레스를 입고 와인잔을 살며시 기울며 은은한 미소를 짓고 옆사람과 인사를 나누는 ...이런 파뤼를 즐기게 해 줄 상류사회 놈이랑 꼭!꼭!꼭! 결혼해야 한다는 신념말이다.
나를 자책하며 미친년! 뭐가 좋다고 저런 놈이랑 결혼해 지랄맞게 지지리 궁상떨며 살고 있을까나~~한숨이 푹푹 나오면서도 사람 부비고 살기는 나처럼 살아야 제맛이 나는 법이지하며 자위한다.
혜숙은 상류사회와의 인연을 포기하고 눈을 낮춰 개천의 용으로 대상을 바꾼다. 보통으로 살고, 보통 정도의 의과대를 나온 인턴 과정에 있는 보통의 남자와 약혼까지 하고 결혼 날을 기다린다. 여.기.서. 예단 명세서는 1급, 2급, 3급으로 나누어지고 가족과 친척관계의 서열과 급수에 따라 예단의 종류가 달라지는데....-359p-시부모님은 한복과 양복을 다 갖추되 시아버님 한복엔 마고자와 조끼 단추를 금으로 하는 것이 상식이고, 시어머님한테도 패물과 밍크 목도리쯤은 생각해야 되고, 명주 솜이불과 보료 일습은 말 안해도 알고 있을 테고, 병풍은 수병풍보다는 암만해도 글씨 병풍이 품위가 있을 것 같고, 2급 예물은 옷 한 벌이면 족하겠지만 옷감만 보내는 것은 큰 실례이니 공전을 후하게 얹던가 티켓으로 보내도록 하고, 3급은 담요나 방석쯤이 어떻겠느냐는 명령조의 의논을 들으면서 어머니는 과히 놀라지 않았다.-이런 걸 읽고 내가 별똥별처럼 어디 은하계에 살고 있는 기분이 들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열쇠 3개가 안되면 둘이나 한개라도~에서 끝나는 이야기는 풍문으로만 듣던 걸 두눈으로 똑똑이 확인한것 같은 착각이다. 세편중 서울 사람들-이 내 마음을 가장 끌기도 했다. 여자라서 해보고 싶던 허영심을 책으로라도 채운 것일까?아니면 저런 사회가 있다는게 믿어지지 않으면서도 상류사회에 끼지 못하는 억울함과 구경이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 허영은 책에서 얘기했는데 어느새 내맘에도 허영이 들어왔다.
그녀의 글빨에 흠뻑 빠져 보시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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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치 않게 요즘 이 책을, 그 중에서도 '한 말씀만 하소서' 부분을 읽고 있었다.
나의 기억들을 떠올려보면, 1988년은 1995년과 더불어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기억으로 가득 차 있는데, 선생님께 1988년은 거의 악몽과도 같았겠다.
얼마전, 엄마랑 무슨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짜증을 확~ 낸 적이 있다. 엄마가 억울하다는 듯이 몇 초간 쳐다보시다가는 "너는 왜 그렇다고 짜증을 내니?" 하고 말씀하셨는데...그게 계속 마음에 걸린다.
살다보면, 부모자식간에 이런 저런 서운한 것도 많고, 잘못한 것도 많고..어떤 날에는 한 바탕 하고 난 다음에, 또 언제그랬냐는 듯이 훌훌 털어버리는 일도 많다. 그냥 저냥 누군가에게 뻔하다 못해 평범한 일상의 한 장면이였을텐데...이러한 자연스러운 일상을 더 이상 겪으 실 수 없었던 박완서 선생님께서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었을까.
한 편 한 편의 일기가, 그 문장속에서...그것 안에 들어있는 단어 속에서 참척의 고통을 겪는 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서, 읽는 종종 숨이 막히는 듯 하였다.
덧붙임. 이 책을 읽으면 마음이 아프기 때문에, 장왕록 교수나 장영희 교수의 책과 더불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그러보니, 세 분 모두 고인이 되셨는데... 나한텐 언제나 현존해계시는 분들 같아서 그런지... 슬프거나 하진 않았고... 새삼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 하고..조용히 말로 소리내어 읊어보았다. |
| 박완서는,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우리 문학의 보물이며 자랑이다. 그의 삶과 글은 우리 문학의 역사이며 우리 삶의 한 지표이다. 불혹의 나이에 첫 작품을 선보인 늦깍이 작가에서 우리 시대의 대표작가로 우뚝 서기까지 그의 문학적 행보는 고스란히 우리 문학의 귀중한 자산이 되어 주었다. 수많은 그의 작품 중에서 이 책이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엄마의 말뚝>, <저문 날의 삽화>와 같은 대표적 작품이나, 가장 인상깊은 단편인 <나의 가장 나종 지닌 것>에 비한다면 무게감이 떨어지는 걸 부인할 수는 없겠다. 그리고 그의 여러 산문들도 상당한 깊이를 지닌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중에서도 이 책을 빼놓지 말았으면 하는 것은, 다른 작품보다 덜 세련되었다는 느낌 속에서도 그가 천착하고 있는 세계가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의 경우, 우리 시대에서 여성이 홀로 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며, 그것이 잔혹한 세상과 맞서 싸워야하는 폭력의 장이었음을 증언하는 작가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미혼모 문경의 아들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고스란히 여성의 삶이 딛고 있는 척박한 우리 시대를 나타내기에 손색이 없다. 흔히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의미를 구현하는 데에서 나타나기 쉬운 뜻없는 투정이나 깊이 없는 한탄을 떨치고,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가는 과정이 나타나는 것이다. 작가 박완서가 한국여성소설의 앞자리에 설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또 다른 작품 <한 말씀만 하소서>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여성을 투영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더욱 가슴 절절하게 읽었는 이 작품은, 소설이라기 보다는 일기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88년 올림픽의 열기 속에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의 절박하고도 애타는 마음을 조물주와의 정신적 화해를 통해 그려내고 있는 이 작품은, 우리의 어머니들이 그 사랑의 뿌리를 어디에 두고 있으며 그것이 얼마나 거대한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후 박완서의 여러 작품에서 다시 승화될 이 야기는 그의 작품을 읽어내는 데 각별한 이정표가 될 수도 있다. 90년대 소설이 끝없는 내면탐색과 이미지찾기의 과정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 오히려 우리 삶 자체에 진지하게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점을 발견할 수 있다면, 젊은 작가들이 다가서지 못하는 삶의 사소하고도 위대한 진리를 박완서가 지탱하고 있다고 본다면 결코 지나친 해석은 아닐 것이다. 그의 글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면 쉽없이 몰입하게 하는 문체의 탁월함에 큰숨을 몰아쉬게 되고, 동시에 그가 직시하고 있는 우리 삶의 궁색하고도 아름다운, 사소하고도 섬득한 진실들에 생경한 통증을 맛보게 된다. 소설이 할 수 있는 것이 삶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라면, 작가 박완서를 뛰어넘을 우리 시대의 작가는, 아마도 쉽게 찾아지지 않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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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것이 '호주제 폐지' 이다.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에 질세라 반대하고 일어나는 사람들. 그 어느 쪽이든 분명하고 타당한 이유가 있다. 난 타당성에 어느 한 쪽에 서기엔 어려운 상태이지만 이 책을 덮고 난 순간에는 그런 불합리함에 어느 정도 화가 났던 것은 사실이었다. 100개 가진 사람이 1개 가진 사람의 물건을 탐낸다는 책 속 변호사의 말 처럼 한가지의 삶의 존재이유조차 탐을 내는 이기적인 마음. 이혼녀 이기에 문경이 당하였던 몇가지의 수모, 그러고도 그 아픔을 끝까지 자신의 꼬리를 물고 따라왔다. 자신의 핏줄을 다시 찾으려 하는 부성의 마음은 이해할 수는 있겠지만 그 마음이 진정한 자신의 부성이라는 것을 마음놓고 외칠수 있는지..그 이기적인 마음에 너무나 화가 났고 이런 불합리함을 고하는 박완서님의 외침이 적어도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문경의 편에 설수 있게 하였고 여자이기에 때론 꿈조차 꾸어서도 안된다는 것, 그런 사회적 풍토가 하루라도 빨리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인상깊은구절] 그러나 문혁이가 무슨 말 끝에 <큰 엄마>는 참 예쁘고 엄마보다 멋쟁이라는 소리를 했을 때는 그 여자도 충격을 받았다. 예쁜 멋쟁이 보다 <큰 엄마>가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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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님의 3가지 소설이 함께 묶여져 있는 책이다.
"한 말씀만 하소서"는 작가님께서 외아들을 잃고 나서 감정을 극복하고 추스렸던 과정을 일기처럼 썼던 것이니.. 소설이라기 보다는 일기라고 볼 수도 있지만 말이다. 부모를 잃으면 산소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맞나보다. 아들을 잃고 난 뒤, 작가는 그 슬픔을 추스리지 못하고 음식도 거부하고 그 현실을 부정한다. 일기를 쓰듯.. 가슴에 있는 것들을 글로 토해내는 작가의 글을 읽고 있자니.. 그 마음이 조금은 전달되는 듯 싶었다. 하지만 산 사람을 산다는 게 작가에게도 적용되나보다. 그게 또 변하지 않는 순리이기도 하고..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는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제대로 보여주는 책이다. 이혼녀인 문경은 대학교 동창인 홀애비 혁주를 만나 연애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의 연애는 삐거덕 거리고 시작하고 끝이 난다. 하지만 문경은 임신을 하게 된 것을 알고 혁주를 찾아가지만.. 혁주와 그의 어머님은 그 아이가 혁주의 아이라는 증거가 있냐면 그녀를 다그친다. 그리고 학교에서도 강제적으로 쫓겨나는 일까지.. 이혼한 여자가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힘든 것 마찬가지인가 보다.
하지만.. 더 웃긴 건.. 혁주도 결혼을 했지만 아들을 낳을 수 없으니깐 문경이가 낳은 아기 문혁이를 찾아온다. 그리고 되려 자신들이 아기를 키우겠다며 문경에게서 아이를 데려갈 생각만 한다. 어이가 없어도 어쩜 이리 없을 수가..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소설에서만 등장하는 소재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게 참 씁쓸했다.
"서울 사람들"은 소위 머리에 똥이 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한창 아파트로 부동산 경기가 솟구칠 때 빚을 지고서라도 아파트를 청약하려는 혜진이.. 막내딸 혜숙이를 좋은 집으로 시집 보내고자 중매쟁이를 나선 친정엄마.. 중매쟁이에게 비싼 돈을 줘가면서 소개를 받지만 혜숙이는 자신에 대한 열등감만 느끼게 된다. 여러 번 선을 본 결과 혜숙은 예비 의사와 약혼을 하게 되지만.. 그 집에서 요구하는 것은 어마어마하다. 결국 결혼하는 사람의 의사와 관계없이 결혼이 진행되는 우스운 상황이 발생하고 만 셈이다.
하지만.. 지금도 혜숙과 같은 결혼을 꿈꾸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신의 의사 또는 감정과는 관계없이 물질적인 것 혹은 사회적인 지위만 바라보고 결혼을 꿈꾸는 자.. 과연 그 결혼이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까? 예나 지금이나 정말 머리에 똥이 든 사람들은 늘 있나보다.
시대가 지나도 소설이 주는 메시지가 변하지 않는 것.. 아마도 작가의 놀라운 관찰력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이 아닌가 싶다.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 읽어도 지금처럼 감탄할 것만 같은 박완서 작가의 소설.. 또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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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찬 이혼녀 문경은 동창 혁주와 연애를 하지만 그가 말하는 저속하고 흠있는 여자라는 편견에 이별을 고한다. 이별 후에 생긴 아이를 출산하고 홀로 정성껏 키우지만 아들을 원하는 혁주의 집안에 아이를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통속적인 그 옛날 드라마 스토리같은 이야기지만 박완서의 문장은 결코 고루하지 않다. 당시의 보통 남성상을 대표하는 혁주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자신의 인생에 꿋꿋하게 나아가는 문경을 열렬히 응원한다. 책속에서 보여주는 표현 중에 여학생을 날고기에 비유하거나 여선생을 무시하는 학생, 부인의 직업을 하찮게 여기는 남편, 이혼녀를 낮춰보는 당시의 시선 등은 우리 사회가 여성을 대하는 생각이 어떠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 입문하는 조건을 100점 만점이라고 칠 때 남자로 태어나면 기본점 50점은 따고 들어가는 거라구. 그러니까 여자로 태어난다는 건 상대적으로 50점 감점인 셈이지.” 책에는 남자들끼리 여자를 평가할 때 사용하는 두 가지 이분법이 나온다. 섹시한가 아닌가, 그리고 재수가 있나 없나… 지금이라면 큰일 날 소리라고 하지만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이 책이 쓰여진 시기보다는 분명 더 나아진 여성의 상황이겠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잔존하는 선입견과 차별, 깨지지 않는 유리벽… 그런 시선과 상황에 맞서 문경은 꿋꿋히 앞으로 나아간다. “그 애에게 거는 저의 가장 찬란한 꿈이 뭔줄 아세요? 남자로 태어났으면 마땅히 여자를 이용하고 짓밟고 능멸해도 된다는 그 천부의 권리로부터 자유로운 신종 남자로 키우는 거죠. 그 꿈을 위해서도 그 애는 제가 키우고 싶어요.” 당당한 여성으로서, 어머니로서 홀로서기를 택하는 문경. 문경의 날카로운 선언에 결국 혁주는 친자에 대한 권리를 행하려는 소를 취하한다. 단지 남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을 낮춰보고 함부로 하려는 가부장적인 자세를 한껏 비꼰 통쾌한 박완서의 일침에 역시 박완서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녀의 수많은 다른 작품들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여성들과 함께 읽어보고 이야기나누고 싶다는 강렬한 소망을 느끼면서 조용히, 그러나 뜨겁게 책장을 덮어본다. |
| 나는 이 제목이 아직도 현실을 깨치지 못한 우리들에게 던지는 작가 박완서의 자조적인 물음이라 생각한다. 그가 설정한 상황은 너무나 현실적이기에 가끔 섬찟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땅에서 문경이 부여받은 여자라는 이름과 얄팍한 자존심으로 대체되는 교사라는 직위. 그 두 가지 설정은 시시각각 그녀의 목을 옭아매며 인간 차문경의 기로를 차단하기 일쑤다. 그것은 혁주도 마찬가지다. 그에게 주어진 장남이라는 권한은 스스로의 앞 길마저 혼자 개척해낼수 없는 운명을 내어줄 뿐이다. 비록 문경보다 훨씬 더 순탄한 삶을 살아갈수는 있었지만 끝내 일말의 양심마저 저버리고만 혁주에게 주어진 것은 처참한 현실그 뿐일것이다. 작가 박완서의 솜씨는 너무나 노련하다. 그는 결코 치우침이 없으며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지 않으면서도 교묘히 독자들을 이끌고 있다. 이 시대에 다시없을 글쟁이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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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에 푹 쉬면서 읽었던 책. 원체 소설을 잘 읽지 않는 탓도 있지만, 국내 작가 중에는 그나마 박완서의 소설을 가장 많이 읽어왔었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한 말씀만 하소서', '서울 사람' 이렇게 세 편에 들어있는 박완서 전집 중 14번째 책.
박완서의 글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글을 읽을 때 그녀의 나이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이건 나이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늘'에 대한 감각을 늘 놓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준다는 뜻이다.
'그건 꼭 아들이 있어야겠다는 것과는 다른 기분이었어. 이 세상에 인간으로 입문하는 조건을 100점 만점이라고 칠 때 남자로 태어나면 기본점 50점은 따고 들어가는 거라구. 그러니까 여자로 태어난다는 건 상대적으로 50점 감점인 셈이지. 대학입시에서 만일 제 자식이 까닭없이 1, 2점만 감점을 당해도 사생결단하고 덤비지 않을 엄마 없을 걸. 50점의 불이익이 분하고 억울해서 우는 건 당연해.'
한편 불행감이란, 존재하기는 존재하되 그녀의 위치에선 도저히 보이진 않는 그런 사회에 자기의 삶을 비춰보게 됨으로써 비롯됐다. 자신과 남편의 노력으로 열심히 이룩해놓은 게 얼마나 보잘것 없는 것인가 하는 열등감은 참으로 비참했다. 혜진이네가 아무리 정직하고 성실하게 노력해봤댔자 거북이 걸음에 불과했다. 상대방은 토끼였다. 현대판 토끼는 결코 낮잠 같은 거 자지 않고 정력적으로 달렸다. 거북이의 승산이 있는 세상이 아니었다. 만약 혜진이가 거북이와 토끼 걸음의 차이를, 타고난 운명이나 공정한 실력차로 받아들일 수만 있었다면 훨씬 마음 편하게 거북이 걸음에 자족할 수 있었으련만, 그녀 역시 토끼 걸음에는 반드시 속임수와 비리가 감춰져 있다는 사회적 통념을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지가 못했다. 분하고 억울했다. 이 세상에 억울한 것만큼 못견딜 불행감이 또 있을까.
현재의 모습을 과장하지도 현란하게 수식하지도 않으면서도 박완서는 '우리 세상'을 극적으로 그려내는데 성공한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인간에 대한 미련을 놓지 않는다.
그래서 제발 정직하라고 마음으로부터 그 못난 남자를 격려하고 있었다. 문경이의 강렬하던 시선이 슬프고 따뜻하게 풀렸다. 혁주가 내리깔고 있던 눈을 잠깐 치떴다. 두 사람의 눈길이 마주쳤다. 그 여자는 두 가닥의 한없이 가냘프고 초라한 떨림이 문득 서로 스친 것 처럼 느꼈다.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사실입니다'라고 말했다. 그후 몇 마디 더 묻고 대답했지만 그 여자는 건성으로 들어서 아무것도 못 알아들었다.
이런 작가의 시선은 '소설도 아니고 수필도 아니고 일기'인 '한 말씀만 하소서'를 읽으면 당연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글이 아니면 죽었을 사람. 글이 있어 다시금 일어날 수 있었던 사람. 글로 '사람'을 느끼게끔 하는 사람.
20대의 건장한 외동아들을 잃고, 끝없는 절망과 신에 대한 저주, 따라 죽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학이 넘쳐나는 이 일기. 통곡 대신 썼다는 이 일기는 읽는 이를 너무도 힘들게 하지만, 나는 글쓴이의 감정에 너무 몰입하여 차마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책을 덮어도 통곡소리가 들렸고, 책 속에는 그녀가 계속 엎드려 있을 것만 같았다. 책 속의 그녀에게 독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는 최대한 빨리 끝까지 읽어내리는 것이었다.
아쉬운 건 그뿐이 아니었다. 아들이 이 세상에 살아 있지 않다는 걸 인정하게 되면 그 다음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미친 듯이 몸을 솟구치면서 울부짖을 차례였다. 그 일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식인지 아무도 모른다. 목청껏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통곡하면 소리와 함께 고통이 발산되면서 곧 환장을 하거나 무당 같은 게 되어서 죽은 영혼과 교감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러나 한번도 실제로 그런 경지까지 도달한 적은 없다. 번번이 그 직전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곤 했다. 환자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나는 미치는 것조차 여의치 않는 내 강철 같은 신경이 싫고 창피스럽다. 그러나 미치기 위한 노력도 안하고 어떻게 맑은 정신으로 긴긴 하루를 보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여긴 평화롭고 화목한 딸네 집이었다.......통곡을 삼켜야 한다는 게 너무도 고통스러워 나는 가슴을 움켜쥐고 한동안 신음하다가 벌떡 일어나 거실로 해서 베란다로 나갔다. 둘이 마주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던 딸 내외가 어쩔 줄을 모르고 엉거주춤했다. 나는 그들의 눈치볼 겨를 없이 베란다 난간에 매달려 더운 눈물을 쏟았다. 그러나 소리를 내진 않았다.
몸이 음식을 받지 않는다는 건 죽을 징조가 아닌가. 나에게 지금 희망이 있다면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뿐이다.
내 아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땅속에 누워 있는 것일까? 내 아들이 어두운 땅속에 누워 있다는 걸 내가 믿어야 한다니. 발작적인 설움이 복받쳤다. 나는 내 정신이 미치기 직전까지 곧장 돌진해 들어갔다가 어떤 강인한 저지선에 부딪혀 몸부림치는 걸 여실하게 느낀다. 그 저지선을 느낄 수 없어야 미칠 수 있는 건데 그게 안된다. 인간의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초월적인 존재가 정말 있다면 내 아들의 생명도 내가 봉숭아를 뽑았듯이 실수도 못되는 순간적인 호기심으로 장난처럼 거두어간 게 아니었을까? 하느님 당신의 장난이 인간에겐 얼마나 무서운 운명의 손길이 된다는 걸 왜 모르십니까. 당신의 거룩한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을 이렇게 막 가지고 장난을 쳐도 되는 겁니까.......주여, 그렇게 하찮은 존재에다 왜 이렇게 진한 사랑을 불어넣으셨습니까.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미친년처럼 화끈한 열정으로 그 생각에 탐닉했다. 조금도 거짓 없이 나는 그 노파가 부러웠다. 아들의 약값을 위해서든 아들에게 뜯기기 위해서든 아들을 위한 일 외엔 눈에 보이는 게 없는 노파가 부러웠다.
그러나 내가 놀란 건, 그 애의 피곤보다도 그 크림통보다도 작은 필름통 속에 유명(幽明)이 함께 들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 유람선 사진 몇 장만 빼고는 다 그애가 죽은 후의 날짜로 돼 있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거리의 단위나 감각으로는 도저히 헤아릴 길 없이 멀고 먼 이승과 저승이 어쩌면 그 작은 필름통 안에 그리도 친근하게 밀착돼 있었더란 말인가. 나에겐 그 필름통이 마치 한치 앞도 못 내다보는 가련한 인간의 운명처럼 느껴졌다.
글을 읽고 함께 고통스러워하고 슬퍼하고 놀라기도 하면서, 그리고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왠지 나도 모르게 '정화'된 느낌이었다. 종교와는 거리가 있는 인간이긴 하지만 감히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수 있을 정도로 이 글이 가지는 파장은 크다.
억지로 위악스러워 보이려 한다거나, '해피라면', '조다쉬', '서태지' 따위로 구질구질한 동감을 얻어내려는 소설들 보다는 이 한 편의 짧은 일기가 훨씬 맘에 남아있다. 이게 바로 글의 힘이 아닐까 싶다. 작가에게도, 독자에게도. |
| 박완서. 이상하게 난 박완서.박경리가 좋다. 젊은 아줌마나 아가씨가 쓴 글보다는 약간은 할머니 같은 사람들이 쓴 글이 좋다. 이것도 편견일까? 솔직히 이건 궁금해서 읽어봤다.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던데 도대체 어떤 내용. 성녀와 마녀는 별로 궁금하지 않구. 작가는 뭘 말하려고 제목을 이렇게 지었을까? 읽고보니 드라마로 만들만한 내용이더군. 뻔한 이야기. 결혼하기전에 임신을 하고 남자의 배신,나중에 혼자서 아들을 잘 키워 놨더니 아들을 뺏으려고 배신했던 인간이 그 아들 뺏어가려는 내용. 결국 여자가 승리? 한다는 내용인데. 그 결론이 정말 여자의 승리인가? 승리라고 할수있는건가. 세상은 권력중심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맞는것 같다. 이 소설은 뻔한 이야기이지만 뻔하고 뻔해서 아주 진부하지만 해결책이라곤 그것밖에 제시할수 없는 현실에 대해서 아주 적나라하게 써간다. 이런.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첫째딸을 낳고 눈물을 보인 엄마의 이야기다. 세상이 불공평하기 때문에 여자로 태어나서 50점 잃고 세상에 태어난 자기딸이 불쌍해 보였기 때문에 눈물이 흘렀다는 그 엄마.아들이었음 세상에 태어날때 100점을 먼저 먹고 태어난다는. 참 세상이 왜 이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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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호주제 폐지 운동이 거세게 일고 있다. 아직 미혼인지라 솔직히 호주제 페지에 대해서는 별반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앞으로 내 삶에 특별히 호주제 페지를 운운하지 않아도 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도 가지고 있다. 무관심했던 나에게 호주제 폐지에 대한 경각심을 일구어 준것은 어느 텔레비젼 드라마를 보고 나서이고,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이다. 이미 오래전에 출판되었고 최근에 새로이 드라마로 만들어지면서 다시 재출판되었던 책, 초기에 이 책을 읽어본 기억은 있지만 다소 어렴풋한 기억이라 이 책을 다시 읽어보았다. 이 책 속의 문경, 분명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책임을 다 하려 하는 어쩌면 불쌍한 여자이다. 그녀의 선택에 완전한 찬성표를 던지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려고 하는 그녀의 모습에 안스러움이 일었고, 같은 여자이면서도 오직 자신만을 위하는 혁주의 어미니에 대해선 극한 반감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호주제 페지로 인해 또 다른 불상사도 있는 것이기에.. 호주제의 페지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아마 작가 박완서님도 반드시 호주제 폐지를 염두해 두고 이 책을 쓰신 것은 아닐 것이다. 강한 어머니이기에 앞서 불이익을 받는 여자의 현실을 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 싶은 것 같다. 가진 자의 횡포, 그들의 욕심을 구탄하고 한번만 반대편의 입장이 되어 봄을... 이제는 문경의 욕심이 결코 꿈이 아니여야 함을...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킬수 있는 것은 욕심이 아닌 당연시 되어야 한다는 것을 욕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은 그것을 알아야만 한다. [인상깊은구절] 그 입에서 부정한 소리를 듣느니 차라리 죽는게 낫다고까지 생각했다. 그가 그 사실을 부정한다고 해도 다시 증명할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또 그 사실을 감쪽같이 부정한다고 해도 그가 승소할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