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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동안 아버지를 간병한 것은 십 년에 걸친 아버지와의 이별이기도 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는 알츠하이머병. 이별의 과정이 고되고 느리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롱 굿바이’라 불린다고 한다. 모든 병이 힘들고 안타깝지만, 본인이 누구인지도 기억 못하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간병인은 억장이 무너지는 듯하다. 특히 부모를 간병하는 자식의 경우, 심리적 혼란과 불안, 죄책감까지 느낄 수 있다. 할머니 두 분 다 치매를 앓다 가셨기 때문에 옆에서 지켜본 나로서는 작가의 이야기들에 백 배, 천 배 공감이 되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아버지가 어떤 죽음을 원했는지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상적인 죽음이라는 것은 간병을 시작한 뒤에 갑자기 속을 터놓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노인을 내버리는 산으로 데려가는 것이 결코 아니라고, 근대적인 설비를 갖춘 간병시설에 모시러 가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러나 고집스럽게 입소를 거부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역시 어쩔 수 없는 죄책감이 느껴졌다.” 장기간의 투병생활에서 보호자의 부담은 경제적인 면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면에서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과중해진다. 나아가 간병인의 삶을 압박할 수 있다. 가족이 힘들고 지쳐 결국 나쁜 추억만을 남기게 되는 것보다는 여러 제도와 지원 정책을 잘 이용해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계획을 마련하는 편이 현명하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당사자와 가족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하면 잘 헤쳐나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고령 사회를 살게 될 우리는 모리타 류지의 당부처럼 아프기 전에, 혹은 조금이라도 덜 아플 때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다. 그런 시간들을 미리 충뷴히 가진다면, ‘롱 굿바이’의 상황이 닥쳤을 때 틀림없이 모두의 고통을 덜어주고 서로 의미있는 ‘애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