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책에 리뷰가 하나도 없는 게 안타까워 리뷰를 적어봅니다. 이 책의 내용은 단순히 어떻게 자연 농법을 실천하는 가 뿐만아니라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삶의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그의 철학은 노자와 부처에 닿아있으며 인위를 행할때마다 인간은 점점 환경오염, 노동, 이념 갈등과 같은 문제를 생산하였으며 무위를 행함으로써 이런 문제로 부터 해방될 수 있음을 설하며 인간의 하는 일이 모두 무익한 일임을 재차 강조하고 있습니다. 농업혁명이라 불리는 혁명이 있기전까지 인간은 유목민으로써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며 이미 열려있는 열매나 곡식을 먹었고 그것으로 족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농사를 짓게 되고 울타리를 만들고 마을이 들어서고 나라가 만들어지면서 점점 인간은 끝없는 노동에 시달리게 되었고 인간은 스스로 자유롭지 않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이 글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루소의 말처럼 우리가 떠나왔던 근원으로 돌아가는 법을 설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
나이가 들어서 일까? 삶은 다른 눈으로 바라보아서 일까? 땅과 흙, 공기, 나무, 바다와 물. 이런 것들이 자주 눈에 밟힌다. 예전엔 단 1초도 관심갖지 않았던 아스팔트 위 작은 민들레 잎파리에도 눈이 간다.
이런 내가 자원봉사하는 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 바로 이 책, 짚 한오라기의 혁명이다. 누군가 이 책이 있냐고 물어 찾아두었는데, 빌리러 오지 않아서 내가 빌려 읽은 책.
땅과 흙, 식량과 요즘 먹거리 문제에서부터 작가의 無철학까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책이었다. 도데체 인간이 지금까지 한 일 중에 제대로 된 것이 없고, 발전이라고 하는 것도 들여다 보면 공해와 퇴보의 또다른 이름.
농사를 짓는다고 땅 갈고 거름주고 비료주고, 이런 것이 말짱 필요없는 짓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10년동안 스스로 몸소 체험하고 실현한 것들을 이 책에 고스란히 담았다.
참 좋은 책.
이 분의 無철학을 알고 싶어 책을 찾고 있으나, 참 찾기가 어렵다. |
|
한권의 책이 한사람의 인생을 바꿀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정치인들이나 유명한 명사들의 경우 자신을 있게한 한권의 책을 자랑스럽게 소개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나름 많은 책을 읽어오긴 했지만 워낙 책읽는 스팩트럼자체도 넓지 못하고 소화력도 좋지 못해서 사실 내인생의 책이라고 자부할만한 책을 아직은 만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좋다고 별점을 매기기는 하지만... 이책은 책의 내용도 매우 좋고 번역도 괞챦다. 그리고 녹색평론사에서 나온만큼 묵직한 메시지도 담고 있다. 그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것은 이책을 번역한 이의 인생이다. 28살에 이책을 만났고 이책이 자신의 경전이자 나침반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만나는 이들에게 이책을 소개하고 이책대로 살기로 하고 지금홍천에서 자급농으로 살고있다는 사실이다. 아직도 도시에서 마음은 시골로 또 먼 해외로 보내면서 밥벌이에서 손을 놓지 못하는 나는 자괴감이 든다. 책의 내용을 떠나서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것에 던질수 있다는 것이 더 부럽게 느껴진다. 현대의 노자로 불리는 저자의 메시지는 간결하다. 자연을 인간마음대로 바꾸려는 시도를 중지하라는 것이다. 노자의 도덕경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저자의 철학이 도덕경의 철학과 많이 통하고 있고 왜 그가 노자로 불리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인간 스스로 병을 만들어 놓고 병을 고치기 위해서 제2의 대책을 만들고 또 제3의 대책을 마련하는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 적게먹고 욕망을 줄이면 될텐데 과식하고 육식하여 비만을 생기게 하고 또 살을빼고 성인병을 고친다고 하고있으니 웃기는 일이긴 하다. 일본의 농업행정과 농업을 비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왠지 우리나라의 실정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경제전반적인 것부터 농업까지 일본을 답습하고 있으니 곧 그 우려가 우리나라에서 현실이 될것같아서 걱정이다. |
|
2002년부터 고기를 먹지 않는다. 사람들이 애용하는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을 먹지 않다 보니 육식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식당에 갈 때는 간록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우리나라 식당은 어디를 가나 김치나 고추장 같은 밑반찬이 있어 크게 불편하지 않다. 불편한 것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정도이다.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하지만 해산물 일부나 달걀도 먹으니 채식이라고 하기에는 낯간지러운 수준이다. 완전 채식이 아니더라도 고기를 먹지 않다 보니 바뀐 것이 많다. 고기집 앞에서 나는 냄새가 역겨워 그 앞을 피하는 반면 예전에 즐겨 먹지 않던 채소를 즐겨 먹는다. 채소에 대한 맛을 음미하다 보니 신선한 것을 찾게 되고 자연스레 유기농산물을 먹게 된다. 유기농산물을 생산하는 유기농부에 관심을 두게 되고 환경에 관심을 두며 나아가 생태적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먹을거리에 대한 실천이 삶을 조금씩 바꿔 나중에는 크게 바꾼 것이다. 무엇을 먹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만 풀면 대부분의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를테면 쌀과 보리와 채소만으로 충분하다는 사고방식이 공유되면 그것만 재배하면 된다. 그것만 재배해도 좋다는 삶의 방식이 공유되면, 그것은 더없이 즐거운, 소위 농부라는 이름이 붙지 않는 보통 사람이라도 할 수 있는, 놀이와 같은 농법으로도 식량문제는 해결된다. 만약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인구가 두 배나 세 배가 되더라도 자급체계를 유지할 수 있거니와 공무원이나 농업기술 지도자를 대폭 줄여 세금도 거의 필요 없다. 먹을거리 문제가 삶을 완전히 바뀌는 것이다. 자연 속에 있으면서도 자연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렇더라도 자연 속에 있다고 하는 것은 신에 가까이 갈 기회가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연 속에서의 나날, 그것이야말로 농부의 기쁨입니다.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이 가을 / 비가 올지 / 바람이 불지 / 알 수 없지만 / 오늘 내가 할 일은 김매기라네.” (131쪽) 수확량은 얼마나 될까, 벌이는 좀 될까, 올 가을은 좀 먹게 될까 등등을 걱정하지 않는 삶이다. 다만 오늘 하루 전념해서 씨를 뿌리고 자연 활동에 따라서 작물을 애호하면서 생활해가는 것이다. 그럴 때는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기쁨이다. 그리고 그러한 삶은 자연농법에 의해 가능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자연농법에 대해 무경운(無耕耘), 무비료(無肥料), 무농약(無農藥), 무제초(無除草)의 4대 원칙을 말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 인위, 곧 사람의 힘으로 만든 것에는 가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자연농법의 생각이다. 오로지 자연에 맡기는 삶이니만큼 살아가는 것이 축복이고 기쁨인 것이다. 자연식 또한 자연농법과 마찬가지이다. 참 자연, 즉 무분별지에 의해 파악된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 자연농법이었던 것처럼, 참 자연식이란 자연에서 얻어진 먹을거리나 자연농법에 의한 농작물, 자연 어업에 의한 물고기와 조개 등을 무작위로 취하는 식사법이다. 그리고 분별에서 출발한 상대적인 지혜에 의한 작위를 배제하고, 또한 철리에 의한 구속에서도 점차 벗어나서 최종적으로는 그것을 부정하고 초월해가는 것이다. 그러나 무작위․무수단이라 하더라도 무분별의 지혜로부터 얻어진 생활의 지혜는 허용될 수 있다. 초기의 인류가 체득한 불과 소금을 사용한 요리나 수천 년 동안 정착된 농작물 같은 것은 허용할 수 있는 것이다. |
|
자연농업으로 거듭나다 박용범 독서작가(2022)
일본에 자연농을 추구하는 철학자가 살았었다. 그가 살다 떠난 곳은 사망 후에 폐허가 되어 버렸다. 삶의 의미에 대한 생각이 간절해진다. 자연농을 하고 자연식을 추구하면서 자연인으로 살고자 했던 저자의 삶의 철학은 책으로 남아 전해지고 있다. 한평생 살아오면서 추구해온 가치가 책으로 전해진 것이다. 30여 년 전에 쓰이고 번역된 책을 오늘 다시 보면서 정리하고자 한다. 지난 30년간 실천하지 못한 자연농이라면 이제는 더 이상 내게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다. 농사는 책을 공부해서 짓는 것이 아니다. 농사는 그저 자연에 몸을 맡기고 시간의 순리대로 '기다림'을 실천하는 작업일 뿐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자연농법이란 자연의 의지에 따라 영원한 생명이 보증되는 에덴 동산의 부활을 꿈꾸는 농법이다. 그러나 나의 자연농법을 향한 45년의 길은 그대로 인간 부활을 위한 신에 대한 수도였다고 하기보다는 자연으로부터 이탈한 한 남자의 방황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농부도 즐길 수 있는 즐거운 농사를 목표로 삼아 왔다. 결국 밭을 갈 필요도 없었다. 퇴비를 줄 필요도, 화학비료나 농약을 줄 필요도 없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벼농사에 비료는 필요 없다. 땅을 갈 필요도 없다. 저절로 땅이 비옥해지는 방법만 써 준다면 농약이나 비료 등은 모두 필요가 없다. 일체의 것이 모두 불필요한 '무위(無爲)'의 농법' 이러한 농법을 저는 줄곧 추구해 왔다.
자연형을 만들게 되면 병충해 방제도, 농약도 필요 없게 된다. 가지치기라는 기술도 필요 없게 되었다. 자연을 이해하면 인간의 지혜는 아무런 쓸모가 없어지는 것이다. 나무를 예로 들어보자. 이제 막 나온 새싹을 가위로 1cm라도 잘라내면, 그 후 그 나무는 절대로 본래대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부자연스러운 것이 되어버린다. 자연은 인간이 그저 명색뿐인 지혜로 가위질이나 아주 사소한 기술 등을 조금 가하기만 해도 그 즉시 교란이 되어 버린다. 그 나무 전체가 교착 상태에 빠지게 된다. 회복하기 어렵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틀어진 그대로 방임해두면 최초의 자연 질서가 교란된 채로 균형을 잃고 성장하기 때문이다. 가지와 가지가 충돌한다. 가지의 교착과 혼란이 일어난다. 본래부터 가지나 잎은 차례에 따라 규칙적으로 생기고 그 모든 것이 평등하게 햇빛을 받으며 가지는 가지의 활동, 잎은 잎의 활동을 한다. 그런데 인간의 손이 조금이라도 닿으면, 혼란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교착이 일어난다든가, 상하가 겹쳐서 뒤엉켜버린다. 햇볕을 받지 못하는 부분이 시들어간다거나 병충해가 발생한다거나 한다. 정원수도 이와 같다. 정원사가 손을 댄 나무는 그 다음 해에 다시 가지치기를 하지 않으면 말라죽는 가지가 나온다.
P41 그런데 이러한 논 속의 농약을 뿌리면, '앗!'하는 사이에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립니다. 제가 한 번은 아궁이 재는 괜찮겠지 하는 생각으로 아궁이 재를 뿌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일순간에 전멸해 버리더군요. 거미줄이 끊어져 버렸다는 의미입니다. 이삼일 뒤에 가보니 거미가 더 이상 보이지 않더군요. 전혀 해가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아궁이 재조차도, 얼마 안 되는 양을 뿌렸을 뿐인데도 몇 만 마리 거미를 죽이는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거미집 또한 무참하게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아궁이 재조차도 이만큼의 파괴를 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점에서 말씀을 드리자면, 농약을 뿌리는 일은 단순히 벼의 해충인 벼 병충을 죽이고 천적인 거미를 죽일 뿐만 아니라 자연 속에서 행해지고 있는 드라마 일체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농작물이 가장 많이 흡수해 들이는 질소 비료의 7할은 자연의 흙이나 물에서 공급되고 있는 것이고 그 나머지 3할은 인간이 주고 있습니다. 쌀이나 보리, 과일나무 등의 열매만을 따내고 짚이나 작물의 줄기와 잎 전부를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 주면 필요량은 일할이 남는데, 그 일할은 녹비 등을 기르게 되므로 비료는 거의 필요 없습니다.
《짚 한 오라기의 혁명(후쿠오카 마사노부 저)》에서 일부분 발췌하여 필사하면서 초서 독서법으로 공부한 내용에 개인적 의견을 덧붙인 서평입니다.
|
|
숲노래 책읽기 2022.2.5. 읽었습니다 70
흙을 만지면서 생각한다면 ‘흙생각’인데, 우리나라 글바치는 ‘흙’도 ‘생각’도 하지 못하는 채 일본말 ‘농사상(農思想)’이나 ‘농철학(農哲學)’을 그대로 씁니다. ‘녹색평론’이란 이름도 우리말 아닌 일본말입니다. 프랑스말 ‘똘레랑스’를 한자말 ‘관용’으로 옮긴들 우리 삶으로 스미지 못합니다. 우리말 ‘넓음·너그러움·넉넉’으로 풀어낼 노릇입니다. 《짚 한오라기의 혁명》은 틀림없이 값진 줄거리를 담되, 우리말 아닌 일본말투성이입니다. 시골지기는 ‘혁명’을 안 하고 ‘갈거나 엎거나 갈아엎’습니다. 짚 한 오라기로 갈아엎기에 ‘흙살림’입니다. 이제는 책상맡에서 붓대만 쥐는 글잔치가 아닌, 맨손으로 호미·낫·삽을 쥐고서 천천히 찬찬히 차근차근 차곡차곡 참하고 착하게 흙빛을 담아내는 흙넋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혁명’하지 맙시다. 그저 ‘갈아엎’읍시다. ‘사상·철학’도 하지 맙시다. 아이들하고 숲에서 함께 노래하며 ‘생각’합시다.
《짚 한오라기의 혁명》(후쿠오카 마사노부/최성현 옮김, 녹색평론사, 2011.9.9./2014.12.8.여섯벌)
ㅅㄴㄹ #福岡正信 #わら一本の革命
|
|
짚 한오라기는 지극히 작아보인다. 이러한 짚 한오라기로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하면 언뜻 이해가 잘 안된다. 저자는 이 짚 한오라기의 혁명이라고 할까, 짚 한오라기의 무게라고나 할까, 일물일사가 무엇이냐를 깨닫게 된다. 그때부터 저자의 일생은 어떤 의미에서 완전히 바뀌어 버린다. 생각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완전히 변한다. 저자는 농부로 40년 이상 일해왔다. 전혀 땅을 갈지도, 화학비료도, 병충해 방제도 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