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로 만나는 작가님과 에세이로 만나는 작가님은 다르다. 작품 속 인물들을 통해서 볼 수 없었던 작가님의 목소리는 꼿꼿하고 생생하다. 소설은 인간을 다루는 '인간학'이라는 말처럼, 글을 쓴다는 직업을 지니고 평생 살고 있는 작가님은 늘 읽고 쓴다.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은 그런 면에서 여느 독서 에세이나 문장 모은 책들과 다른 결을 갖는다. 늘 경계에 서서 약한 목소리를 더 힘있게 만들어주고 싶은 작가님의 문장들이 깊어진 겨울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에 대한 힌트를 속삭인다.
![]()
앞으로 세상에 홀로 나서면 지금까지 학교에서 치렀던 시험 문제들과 전혀 다른 문제들에 맞닥뜨려야 할 것이다. 끝없이 오답을 적고 어쩌면 낙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정답 없는 시험으로부터 도망쳐 포기하지 않는 것이 스스로를 깨달아가는 첫 번째 단초다. 때로는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과 이용을 당하고, 초라한 자리에서 굴욕과 모멸감을 느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자존을 훼손당하지 않고, 추락할지라도 바닥을 짚고 다시 일어날 수만 있다면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가 훨씬 깊어질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성장이리라. 그리고 그 모든 일의 중심에는 스스로에 대한 이해와 사랑과 믿음이 있다. 실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데서 수많은 두려움이 비롯되기 마련이므로. (p.244~245)
종이에 인쇄된 작가님의 글을 따라 읽으며, 새 기운을 얻는 밤. 인간을 보다 이해하고, 그 속에서 나를 더 이해하고 한 걸음 나아갈 힘을 얻는다. |
|
빛나는 말 #79
《번지가 공자께 여쭈었다. “어짊이란 무엇입니까? ”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니라.” 번지가 다시 여쭈었다. "앎이란 무엇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사람을 아는 것이니라."
공자, 「논어」》
가만한 생각 #79
《 (...) 사람은 이해받고 사랑받을 때 가장 빛난다. 그리고 그 빛을 다른 누군가에게 나눠줄 줄 안다. 개인은 작고 그 힘은 미약하다. 하지만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는 촛불도 횃불만큼이나 크고 환한 빛이다.》
♡ ♡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은 작가가 책을 읽다가 밑줄을 그었을 법한 100개의 빛나는 문장에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솔직하면서도 깊이있게 현실에 맞게 재해석하거나 성찰한 가만한 생각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읽기에 혹은 이해하기에 어려운 책은 아니였지만, 이 책을 읽는데 일주일이나 걸렸다. 하나의 빛나는 말에 2-3페이지 분량의 작가의 가만한 생각이 어우러진 100개의 빛나는 말은 읽고 또 읽으며 그 의미를 곱씹을수록 삶의 향기가 풍성해졌던 것 같다. 때문에 한꺼번에 많은 페이지를 읽는게 의미가 없었던 것 같다. ♧ ♧ ♧ 빛나는 말 #69
《 나는 조금씩 조금씩 거기에 익숙해졌고 나는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내놓고 모욕을 받고도 전혀 개의치 않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그것은 모든 선의의 사람들이 받는 교육의 일부분을 이룬다. 오래전부터 나는 더는 조롱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나는 인간이란 결코 웃음거리가 될 수 없는 무엇임을 잘 알고 있다. 로맹가리, 「새벽의 약속」》
가만한 생각 #69
《조롱과 모욕에 익숙해지되개의치 않는 법을 교육하고 교육받을 필요가 점점 더 절실해진다.조롱과 모욕을 두려워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위협받던 바로 그 무기를 남들에게 돌리게 된다. 그처럼 비열한 사슬을 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조롱받고 모욕당하는데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려야 할 터, 이에 대한 로맹가리의 대답은 간명하다. "인간이란 결코 웃음거리가 될 수 없는 무엇"임을 깨닫는 것이다.》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은 한꺼번에 읽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느리게 읽는게 좋을 것 같다. 손에 들고 다니거나 가방에 넣고 다니기에 좋은 사이즈이므로 휴대하고 다니다가 무언가를 기다려야 하는 틈새 시간에 읽기에 적당한 길이다. 한 챕터가 2-3 페이지이니 5분 안에 읽을 수 있다. 읽다가 끊길 염려는 없다. 향기로운 글을 읽으며 마음을 정화한 후에 만나게 되는 것은 그게 무엇이던 이해와 온화함을 가득 품고 대할 수 있을 것이다.
빛나는 말 #60
《나는 작은 시냇물과 같다. 깊지 않기 때문에 맑다. 볼테르》
가만한 생각 #60
《사람들이 권위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것은 그가 가진 (혹은 가졌다고 믿어 지는) 무엇의 깊이와 무게 때문이다. 깊고 무거울수록 공정하고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볼테르의 비유대로라면 깊은 물은 그 속을 들여다보기 어렵기에 위험하다.어떤 폐기물이나 암초가 도사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다. 권위와 권위주의가 분리되는 지점도 이쯤이다. 스스로 권위를 주장하는 권위주의는 그 시커먼 속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권위가 가질 수 있는 것 이상을 누리려 한다.
스스로 작은 시냇물이라면 장강이기를 굳이 주장하지 않으면, 그 가볍고 얕음으로 도리어 자유롭다.(...) 무엇보다 말고 투명하여 그 바닥에 깔린 조약돌이며 금모래를 남김없이 볼 수 있으니 어린아이라도 무섬 없이 발 벗고 첨벙 들어설수 있을 테다.》
빛나는 말 #44
《가장 잘 산 사람은 가장 오래 산 사람이 아니라 인생을 가장 잘 느낀 사람이다. 장 자크 루소, 「에밀」》
가만한 생각 #44
《인생을 잘 느끼기 위해서는 감각이 잠들거나 퇴화되지 않도록 늘 갈고 닦아야 할 것이다. 그대 가장 필요한 두 가지는 호기심과 용기기 아닐까 싶다. 호기심은 지치고 졸려하는 감각을 흔들어 깨울테고, 용기는 더 이상 새로운 길로 접어들지 않으려 지칫대는 발걸음을 이끌 테니.》
동서양의 고전, 철학서, 종교서, 시 등 장르 구분없이 작가의 영혼을 흔들어 잠들지 않고 깨어 있도록 한 그녀의 일기장에 혹은 책장에 봉인되어 있던 보물같은 한문장 한문장이 봉인 해제되어 나의 지친 마음에 생기를 가져다 주었다. 봄이와도 더 이상 계획하지도 의욕을 불사르지도 않게 된 황폐한 마음의 대지 위에 봄비처럼 생기를 불러와 또 다시 싹을 틔울 용기를 준 책이다. 100가지 말 하나 하나가 모두 귀하고 또 귀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일주일 간 빌려 읽은 이 책,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을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뒤늦게 주문하게 된 것이다. 한 동안 가지고 다니며 읽고 또 읽고, 되새기며, 봉인 해제 된 삶의 비밀에 다가가 보고 싶었다.
|
|
"인생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기적은 없다고 믿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모든 게 기적이라고 믿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명언이다. 이미 접한 바 있었고, 이제는 조금 시시해진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작가님의 '가만한 생각'을 읽은 후 생각이 바뀌었다. 시시해진 건 어쩌면 말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김별아 작가님은 말한다. "'감사한다'의 반대말은 '감사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당연하게 여긴다'이다. 무언가를 누리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면 뻔뻔해진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더 많이 누리지 못함을 불평한다. 삶이 당연해지면 이윽고 지루해진다. 지루함을 이기기 위해 더 자극적인 오락을 찾아 헤맨다. 기적을 믿지 못하기에 기적을 모사한 '한탕'을 꿈꾼다." 뜨끔했다. 나는 이 말, 저 말, 모든 말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저 케케묵은 소리 취급한 것이다. 격언은 내게 훈계와 다르지 않았다. 훈계는 한 귀로 흘러들어와 다른 귀로 빠져나갔다. 지금에 와 생각해보니 감정이 조금 흔들린다. 얼마나 많은 말들이 그저 바람처럼 스쳐지나간 걸까. 생각보다 많은 걸 놓쳐버린 건 아닐까. 작가님의 글을 읽고 아인슈타인의 말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인생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기적은 없다고 믿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모든 게 기적이라고 믿는 것이다." 나는 기적과 같은 일에 항상 기뻐했다. 그러나 기적은 비일상, 흔한 것이 아니었다. 내게 일상은 발에 채는 흔한 것이어서 지루했고, 그래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었다. 기적은 그래야만 벌어진다고 생각했다. ...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비일상만이 기적이 되면 일상은 기적과 멀어진다. 나는 기적을 좇느라 더 많은 기적을 놓쳐버렸다. 가슴을 울린 대목이 또 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말이다. "집이 불타지 않게 해주세요. 폭격기가 뭔지 모르게 해주세요. 밤에는 잘 수 있게 해주세요. 삶이 형벌이 아니게 해주세요. 엄마들이 울지 않게 해주세요. 아무도 누군가를 죽이지 않게 해주세요. 누구나 뭔가를 완성시키게 해주세요. 그럼 누군가를 믿을 수 있겠죠. 젊은 사람들이 뭔가를 이루게 해주세요. 늙은 사람들도 그렇게 하게 해주세요." 이 대목은 말만으로도 충분했다. 정말 홀로서도 눈부시게 빛나는 말이었다. 소원, 소원은 빛나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작가님은 여기에도 가만한 생각을 덧댄다. 서정시를 쓸 수 없게 되어버린 현재, 우리가 쓸 수 있는 시는 기도뿐이라고, 침묵으로도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이다. 두 눈을 감고, 아이들의 기도를 다시 떠올렸다. 폭격기에서 폭탄이 투하됐고 집이 불탔다.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졌고, 엄마는 아이를 부둥켜 안았다. 아이를 데리러 나간 아버지는 며칠 밤낮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그곳에, 바로 그곳에 작은 소망이 있었다. "뭔가를 이루게 해주세요."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 곳에서만 품을 수 있는 소망이었다. 이 책 덕분에 수많은 말들을 다시 보았다. 눈이 트였고, '지긋이' 바라보는 법에 대해 알게 되었다. 책을 모두 읽고 난 후에는 다시 첫 장으로 돌아왔다. 맞다. 세상은 기적 투성이다. 무엇 하나 당연할 게 없는 이 세상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어서 기쁘다. 뭉클스... |
|
맹자, 정약용, 아리스토텔레스, 괴테에서부터 이성복, 황현산, 쉼보르스카까지 때로는 한 줄의 문장에서 때로는 명사의 말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통찰을 발견한다. 그렇게 인생의 걸음걸음 징검다리가 되어준 문장들 곁에는, 인간에 대해 끊임없이 사유하고 애정하고 탐구하는 작가의 단단하고 가만한 생각들이 조화롭게 놓여 있다. 삶의 태도와 지혜, 기적 같은 일상과 행복, 인간에 대한 끝없는 탐구와 호기심, 지독하게 읽고 쓰고 끝끝내 살아내는 작가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조금 덜 아프고 조금 덜 외롭게, 함께 울어주고 삶을 일으켜준 희망의 문장들. 그 문장들이 건넨 가만한 위로. 그 말들의 마음을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끝끝내 모를 삶의 비밀을 살짝 들여다보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