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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한 많은 생애, 시로 남다 - 김삿갓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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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 이라는 이름보다 김삿갓으로 더 잘 알려진 사람. 김삿갓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나 또한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20세 때 군 단위 백일장에서 장원을 했지만, 자신이 쓴 글에서 비판한 선천방어사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영영 출세의 길이 막혀버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평생을 삿갓 쓰고 떠돌다 57세의 나이로 죽은 방랑 시인. 재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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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 이라는 이름보다 김삿갓으로 더 잘 알려진 사람.

김삿갓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나 또한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20세 때 군 단위 백일장에서 장원을 했지만, 자신이 쓴 글에서 비판한 선천방어사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영영 출세의 길이 막혀버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평생을 삿갓 쓰고 떠돌다 57세의 나이로 죽은 방랑 시인.

재주는 있어도 그 재주를 써먹을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린 그의 울분과 절망은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노모는 물론 결혼해서 처자를 두고서도 평생을 떠돌기만 한 그의 행동에 대한 유감도 없지 않다.

그의 삶에 대한 약간의 유감과는 별개로, 그가 남긴 시편들에 대해서는 찬탄을 금할 수 없다.

김삿갓 시집에는 그가 남긴 288수의 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시집은 모두 8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김삿갓이 방랑 시인이 된 내력과 그가 백일장에서 썼던 글 등이 실려 있다. 그의 집안은 당시 세도가 하늘을 찌르던 안동김씨였지만, 그의 조부가 홍경래의 난 때 홍경래의 군대에 항복하였고 그 죄로 사형을 당하면서, 그의 집안은 폐족 선고를 받고 영영 관직에 오를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김삿갓의 방랑 시인으로서의 재능을 잘 보여주는 것은 2~4부에 실린 시들이다. 유랑 길에 만난 여인들과의 만남과 이별, 애정을 노래한 2부의 시들과, 방랑 도중 만난 사람들을 통해 세태와 세상인심을 노래한 3, 4부의 시들을 통해 김삿갓의 뛰어난 시적 재능을 볼 수 있다.

 

可憐行色可憐身(가련행색가련신) 가련한 행색으로 가련한 이 몸이

可憐門前訪可憐(가련문전방가련) 가련의 문전으로 가련을 찾아든다.

可憐此意傳可憐(가련차의전가련) 가련한 내 마음이 가련에게 전해지면

可憐能知可憐心(가련능지가련심) 가련은 가련한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

 

이 작품은 김삿갓이 가련이라는 여인(기생)에게 자신의 가련한 정을 호소한 작품이다. 이 시에서 가련은 고유명사로서 여인의 이름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김삿갓이 자신의 처지를 표현하기 위해 쓴 단어이기도 하다. 이 책을 엮은이는 이 시를 천의무봉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김삿갓은 가련과 정분을 맺고 한동안 동거하기도 했으며, 이 시 외에도 가련과 관련된 시가 많이 있다. ‘가련외에도 김삿갓이 잠깐잠깐 연을 맺은 여자들이 더 있고 시로도 남아 있다.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그의 이런 행동은 성적으로 부도덕하다는 비난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방랑길에 그에게 잘 대해준 사람들도 있지만, 야박한 인심을 마주할 때도 없지 않았다. 그런 경험을 노래한 시에는 대개 신랄한 풍자, 조롱, 비판이 엿보인다. 4부에 특히 이런 시가 많은데, 김삿갓이 못 견딘 것은 여유가 있으면서도 그에게 인정을 베풀지 않은 사람과 학식도 없으면서 잘난 체하는 양반들이었다. 길주 땅 허씨들의 집성촌에서 겪은 야박한 인심을 풍자한 길주명천과 유식한 척 허세를 부리는 산골 훈장을 조롱한 산골 훈장을 비웃음두 편을 보자(원문까지 봐야 시의 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지만, 엮은이의 번역만 옮긴다).

 

이름만 길주길주라고 했지 길한 고을은 못 되고

성씨는 허가가 많이 살지만 과객을 허락해 주는 곳은 없다.

명천명천 부르지만 사람들은 현명하지 않고

어물전어물전 자랑하지만 밥상에는 고기 한 마리 없구나. - 길주명천(吉州明川)

 

산골 훈장이 위엄을 지나치게 부리어

먼지가 부옇게 낀 갓을 높게 쓰고 가래침을 뱉는구나.

큰소리로 천황을 읽는 사람이 수제자라 생각하고

자신을 풍헌이라고 높여 불러주면 이 사람이 곧 좋은 벗이라네.

어려운 글자를 만날 때마다 눈이 어둡다 핑계대고

술잔이 돌 적이면 번번이 흰 수염을 빙자해서 먼저 받으려 하네.

밥 한 그릇을 글방에 내어주며 생색을 내어 하는 말이

금년 과객은 모두 양주(서울) 양반이었다고 뽐내네. - ‘산골 훈장을 비웃음

 

한편, 김삿갓은 당시 백성들의 실상을 시로 남기기도 했다. 살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 백성들의 삶에 대한 연민과 무능한 위정자를 비판하는 시를 쓰기도 했고, 글을 모르는 사람을 위해 대신 고소장을 써주기도 하는 등 백성들을 위한 선행도 많이 했다. 다음은 가난을 읊음이라는 시다.

 

밥상에 고기가 없으니 채소 반찬이 권세를 부리고

부엌에는 땔나무가 떨어져 재앙이 울타리에 미치도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밥을 먹을 때는 한 그릇에서 함께 먹고

부자(父子) 간에 나들이를 할 때면 옷을 바꾸어 입도다. - ‘가난을 읊음

 

5부에서 7(5부 영물(詠物), 6부 곤충, 동물, 7부 산천, 누각)는 특정 소재를 노래한 시편들로, 탁월한 관찰력과 표현력이 돋보이는 시들이다. 물론 모든 시가 다 좋아 보이지는 않았고, 당시 시의 경향이 그러하듯 기시감이 느껴지는(개성이 느껴지지 않는) 시들도 제법 있었다. 금강산을 예찬한 시들이 주로 그랬다.

 

8장의 파자(破子), 육담(肉談)에서는 신랄한 풍자와 조롱을 엿볼 수 있었다. 육담(肉談)을 노래한 몇몇 시들의 경우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노골적이기도 했다. 9(언문, 진서 혼용시)은 확실히 김삿갓의 시가 아니라면 만나기 쉽지 않은 시들을 보여준다.

 

김삿갓 시집은 시대를 잘못 만나, 출세의 길이 막혀 평생을 떠돌다 생을 마감한 김삿갓 시인의 삶과 시를 잘 보여준다. 다음은 김삿갓의 떠돌이 인생을 잘 보여주는 삿갓을 읊음이라는 시다.

 

둥둥 뜬 내 삿갓 빈 배와 같아

한 번 쓴 채 어느덧 사십년이 되었구려.

소 먹이는 목동들이 들로 갈 때 차림이고

갈매기를 벗 삼는 어옹들도 머리에 쓰네.

술에 취할 땐 벗어서 나무에 걸어놓고 꽃구경하고

흥이 나면 팔에 걸고 누각에 올라 달구경하네.

속인들의 외관이야 형식으로 꾸몄을 뿐

내 삿갓은 하늘 가득히 비바람 몰아쳐도 홀로 아무 걱정 없다네

 

김삿갓의 시는 길 위의 시다. 길 위에서 겪은 일이나 떠오른 생각을 즉흥적으로 쓴 시다. 그러므로 김삿갓의 시는 구체적 경험의 시다. 허황한 관념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러나 만일, 그가 출세길이 막히지 않았다면 이런 시를 남기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익히 보는 옛 시, 젊어서는 유교의 충의 사상을, 벼슬에서 물러나서는 자연 친화 사상을 읊은 시를 쓰지 않았을까.

한편, 출세 여부와 무관하게 김병연에게는 역마살이 끼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가 남긴 시를 통해 볼 때 그의 기질상 부패한 조정에서 고분고분 벼슬을 살았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김삿갓의 모든 시들이 다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시 원문까지 해서 보면) 감탄을 금할 수 없게 하는 좋은 시들이 많다. 야금야금 읽느라고 오래 걸리긴 했지만, 그 긴 시간 시를 읽는 즐거움이 컸다.

t*******1 2021.12.28. 신고 공감 3 댓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