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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무생각이라는 출판사에서 발행되었습니다.
혹시 나무에 관련된 책만 출간하나? 라는 우스운 생각을 잠깐 해보았는데요^^*
괜히 나무생각이라고 출판사 이름을 짓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책 역시 나무와 관련된 책입니다.
'나무' 이미지는 참 다양하지요.
따뜻 풍성 넉넉 평온 충만 자비 사랑 희생 ..........
그런 수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수 십만 그루를 심고 다닌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이 사람은 하루에 백개씩 가장 예쁜 도토리를 골라
황량한 들판에 심습니다.
10만개 정도를 심어 놓으면
동물들이 다 파먹고 2 만개정도 싹이 열립니다.
하지만 싹도 먹어치우는 놈들이 많아서
그중에 절반만 무사히 자랍니다.
이런 자연이 주는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히 나무를 심는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이 사람을 알아가는 동안
밀려오는 감동을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주는 철학적인 의미는 또한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지은이 장 지오노는 1895년에 태어났습니다.
집이 가난해서 어린 나이부터 일을 해야 했지만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잃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여
20세기 프랑스의 가장 뛰어난 작가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배경처럼
1차 세계대전을 참전하여 전쟁의 참상을 보게 됩니다.
그는 "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에 대해
오랜 세월동안 고뇌했을 것입니다.
고민의 흔적은
그의 문학작품에 드러났습니다.
여기 ' 나무심은 사람 ' 을 읽어보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책은 얇지만
책이 주는 울림이 분명 있습니다.
저도,
'나무를 심은 사람' 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네요..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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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만들어 온 사람의 힘 세상에는 불가능을 현실로 바꾼 사람들의 이야기가 제법 많다. 모두가 살지 못하고 떠난 땅에 남아 삶의 터전을 일군 사람들도 그중 주목받는 사람들이다. 우리 역사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일제 식민지 지배를 피해 시베리아로 떠났던 사람들이 소련의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중앙아시아 허허벌판에 내몰렸고 그곳을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으로 탈바꿈 시켰다. 하지만, 그들은 집단이었다. 사람이 살아가기에는 모진 환경이었지만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어 어쩜 의지되고 살았을 것이다. 이와는 달리 혼자의 힘으로 기적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있다.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에 등장하는 사람도 역시 이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프로방스 언덕에 살던 나이 든 양치기 엘제아르 부피에가 그 사람이다. 늙은 양치기 엘제아르 부피에는 양을 돌보면서 황량한 언덕과 폐허가 된 마을에 나무를 심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바깥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관심도 없이 오로지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에 몰두하여 황무지를 숲으로 가꾸어 사람들이 들어와 살 수 있는 숲으로 가꾸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 이미애의 마오우쑤 사막에 나무를 심은 여자 인위쩐 이야기를 담은 ‘사막에 숲이 있다’(서해문집, 2006)가 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인위쩐과 바이완샹은 사막 한가운데 달랑 두 사람만 남겨졌고 그곳에서 살아야했다. 그들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로 갈 수도 없었다. 떠날 수 없다면 자신이 살아가야 할 사막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첫발은 나무시장에 가서 일해주고 그 품삯만큼의 대가를 나무로 가져온 것이다. 그것도 두 사람이 등에 지고서 사막을 건넜다. 그렇게 시작된 나무심기는 현재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양치기 엘제아르 부피에의 도토리 100개나 인위쩐과 바이완샹 부부의 나무묘목 600그루에서 비롯된 기적의 출발은 미약해보이지만 결코 멈추지 않았던 행보에 기적을 일군 힘이 있었다. 황폐해진 환경을 도망가거나 피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했던 것이다. 사막이나 황폐한 언덕은 자연의 환경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기에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오고 미래를 희망으로 가꿔갈 단초를 만들어 간다. 닮이 있는 이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분명하다. 생명의 씨앗으로 대변되는 나무를 심었다는 점을 매개로 미약한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작은 일이 기적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나무를 심은 사람’의 역자 유영만이 주목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황폐한 언덕과 사막은 다연환경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점과 알 수 없는 내일이라는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직면하는 다양한 문제 역시 그 황폐한 언덕과 사막에 다름 아니다라는 시각이다. 결국 사람들은 그곳에서 감동하고 희망을 발견한다. 황무지에서 희망을 일군 기적과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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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낯설지 않은 책 제목. 그래서 이 책이 끌렸었고 어느새 내 손에 있었습니다.
『나무를 심은 사람』 한 그루의 나무가 일으킬 기적. 그리고 책을 읽고 난 뒤 나에게 일어날 기적은 어떨지 궁금하였습니다. 첫 장을 펼치면 이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사람에 대해 정말로 보기 드문 인격의 소유자라고 판단하기까지는 수년 동안 그가 하는 행동을 유심히 관찰할 행운을 가져야 한다. - page 7 그 한 사람이 보여준 행동. 특히나 인상깊었던 다음 문장은 이야기 속에 들어가기 전부터 가슴에 맴돌게 해 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보여주는 행동이 이기주의에서 온전히 벗어나 있고, 그 행동을 뒷받침하는 생각이 특정한 이해관계를 떠난 순수한 동기와 관용에서 나오며, 그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으면서 눈에 띄는 흔적을 세상에 남겼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모든 사람에게 기억될 만한 어떤 인격과 만났다고 할 수 있다. - page 7 아마 우리도 살아가면서 그들을 만났을 것입니다. 우리 주변의 이웃들. 그들이 보여준 작은 나비의 날개짓이 일으킨 기적. 책을 읽기 전에 많은 생각에 잠기게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거의 사막이나 다름없는 황무지같은 곳에서 양치기 남자의 행동을 기록한 것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그는 나무를 심고 그 나무로 인해 일어난 변화에 대한 이야기. 짧지만 강한 여운을 남기며 독자들의 가슴 속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은 그의 이야기. 그래서 자꾸만 이 책을 펼쳐보게끔 만들었습니다. 책 속에서 인상깊은 문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주변 상황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계속하여 나무를 심어온 것이다. - page 29 하나의 창조는 또 다른 창조로 이어지는 일종의 연쇄반응 같았다. - page 33 오로지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사막과 같은 황무지를 살기 좋은 가나안 땅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다. 나는 그 어떤 조건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가능성은 실로 위대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런 위대한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변함없는 마음과 고결한 영혼, 그리고 헌신적인 노력과 열정을 가진 한 사람이 있었다. 전지전능한 신이나 할 수 있을 법한 위대한 일을 혼자 힘으로 고독하게 성취해낸 늙고 배운 것 없는 농부에게 무한한 존경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 page 52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엇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돈. 명예. 과연 물질적인 것, 사회 지위적인 것을 바라는 황무지같은 각박한 현실 속에서 작은 한 그루의 나무와 같은 희망은 무엇일지 생각하게끔 해 주었습니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바라며 살아왔는지, 앞으론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연말인 요즘 나에게 던진 숙제와도 같은 이 책을 다시 되새기며 읽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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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은 사람
장지오노 지음
<책소개>
사막처럼
페허가 되어 샘과 우물이 말라버린 황무지 지역에서 도토리 열매를 정성스럽게 골라서 매일 100개를 심는
개 한 마리와 말이 없는 고독한 양치기 노인이 황무지를 상수리나무와 떡갈나무로 울창한 숲을 만들어낸 기적의 이야기를 화자’나’를 통해 담담하게 그려낸다.
감동적인 구절
만약 하느님께서 30년 후까지도 자신을 살게 하신다면 그
동안 더 많은 나무를 심을 것이기 때문에 이 1만 그루의 떡갈나무는 바다에 떨어지는 물 한 방울과 같으리라 26쪽
3년동안 양치기 노인은 10만개의 도토리를 심었고 그 중에 2만개의 도토리에서 싹이 났지만 1만개만 살아남았다. 1만개의 나무숲도 놀랍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 황폐한 황무지에서 1만
그루의 떡갈나무를 물 한방울로 생각한 엘제아르 부피에의 큰그림에 그저 놀랄 뿐이다.
감상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잃고 인적이 없는 고산지역에서 고독한 생활을 즐기다 나무가 부족하여 죽어가고 있음을 발견하고 그 때부터 도토리를 100개씩 신중하게 선별해서 정성을 드려 신께 공양하듯 심는다. 전쟁이
일어나도 신경쓰지 않고 주변상황에 흔들리지 않으며 묵묵히 나무를 정성스럽게 심는다.
고행하는
수도승처럼 지난한 작업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는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나라면 나무가 죽어가는 생명이
사라지는 황무지를 미련없이 떠났을 것이다.
다이제스트에
수록된 짧은 단편소설인 [나무를 심은 사람]은 고전이다. 너무도 유명해서 읽었다고 착각했지만 처음 읽었다. 30분이면 다
읽을 수 있는 매우 짧은 책! 책의 판형은 시집사이즈이며 두께도 얇은데 전체 책의 두께에서 [나무를 심은 사람]이 절반에 못 미치고 역자의 사상이 들어간 해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문장의 호흡이 짧고 담백하다. 그러나
긴 여운을 남긴다. 장지아노의 1차 세계대전 5년의 참전 경험이 녹아있어 화자인 나는 저자 바로 자신이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나무를 심는 사람]의 이야기는 너무 짧아 초등학교 5학년 아이에게 읽기를 권했고 다 읽은 아이는 실화냐고 물었다.
황무지를 밤나무와 떡갈나무로 뒤덮인 울창한 숲으로 일군 엘제아르 부피에가 실존인물이라고 물어보는 것이라면 허구의 인물임을 지은이가 밝혔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놀라운 기적을 묵묵히 실행한 내적으로 단단한 평범하지만 위대한 실존 인물들을 잘 안다. 수 백리 한라산에서 주워 온 동백씨 하나와 돌 하나를 묵묵히 심어 제주도 올레길 5코스의 동백나무 숲을 조성한 곰같고 우직한 현맹춘 할머니!
남편과 이혼하고 네 아이를 홀로 키우면서 그림을 그리며 생계를 꾸려가면서도 전기시설도 아무 곳도 없던 넓은 땅을 19세기 아름다운 정원으로 가꾼 마샤 튜터!
어디선가 이름 모를 평범하지만 위대한 사람들이 뒤에서 비웃고 조롱해도 꺾이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꿈을 향해 오늘 하루도 충실하게 살아갈
것이다. 그들의 내적 에너지에 감응하며 일관된 축적의 시간을 쌓아 올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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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은 사람 우공이산! 한 사람이 산을 옮길 수 있을까? 할 수 있다면 기적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나무를 심은 사람은 바로 기적을 만들어냈다. 황무지에서 홀로 살아간다는 건 쉬울까? 황량한 대지 위에서 아무도 없이 혼자서 지내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사람은 사람과 함께 살아갈 때 행복하다. 나무를 심은 사람은 왜 혼자서 황무지 위에서 살아갔을까? 그가 심은 건 도토리일까? 아니면 희망일까? 과장되지 않고 담담하게 살아가는 목가적인 이야기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다. 너무 많은 이야기들인데, 공통적으로 따뜻함을 동반하고 있다고 본다. 황무지는 그냥 황무지다. 나무나 씨앗을 심어야만 황무지를 바꿀 수 있다. 나무를 심은 사람이 바로 황무지에 변화를 준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반을 꾸준하게 실천하는 힘과 의지가 주인공에게는 있다. 얼핏 생각해서는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그리고 가까운 시간 내에 결과를 볼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렇지만 우직한 마음으로 묵묵히 행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아름다워질 수 있다. 황무지가 숲으로 변화하는 광경! 그리고 나무를 우직하게 심는 사람의 담담한 이야기는 아름답다. 일반인들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나무 심기다. 그렇지만 일반인들은 단발적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작심삼일! 년초에 세웠던 계획 가운데 이룬 게 있나 떠올려봤더니 너무나도 부끄럽다. 세계대전이 터져도 나무를 심은 사람은 해야 할 일은 한다. 개인적으로 사소한 일로도 흔들리는데, 우직한 마음을 보면서 많이 배운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나의 행복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풍요로운 숲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나무를 심은 사람처럼 우직함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직함 대신 이득을 쫓아 여기저기 허송세월하였다. 그러고 보니 손에 쥐고 있는 건 없다. 일단 생각하고 난 뒤에 실천하면 꾸준함이 필요하다. 나무를 심은 사람을 보면서 지난 삶을 되돌아보았다. 현실에 충실한 우직함과 성실함을 갖춰야겠다. 삶은 어느 한 순간 극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지 않다. 꾸준하게 노력해야지만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황무지를 숲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개인적으로 좋다. 그리고 그 삶이 가족에게도 풍요로움을 선사해줄 수 있다. 그리고 가정의 즐거움은 사회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나무를 심은 사람은 읽을 때마다 새로운 아름다운 희망을 줄 것 같다. 나무를 심은 사람은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노력을 해야지만 희망이 현실에서 성립된다는 걸 알려준다. 희망은 다른 사람에게 받기보다 스스로 노력해서 얻어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얻는 건 언제 얻을 수 알지 못 하지만 스스로 노력하는 건 바로 현실이다. 행복한 삶! 그걸 원한다. 그리고 그걸 실천하기 위해서는 나무를 심은 사람처럼 실천해야 한다. 음! 치열하게 생각하며 열심히 희망을 키워나가야겠다. 몸을 움직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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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석이조. 한 번에 두 권의 책을 읽는 느낌이다. 하나의 씨앗을 심었는데, 그 자리에서 두 그루의 나무가 올라오는 듯한 책이랄까. 책의 앞부분은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이 잔잔하면서도 온화한, 그러면서도 간결한 필체로 묘사되어 있다. 이어서 뒷부분에는 역자 유영만의 시선으로 바라본 ‘옮긴이의 말’이 책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흔히 볼 수 있는 책의 구성이 아님은 틀림이 없다. ‘옮긴이의 말’은 하나의 절차로서 예의상 덧붙여진 것이 아니었다. 마치 또 한 권의 수필을 대하는 느낌이었고, 역자 유영만의 삶이 담긴 사색임을 알 수 있었다. 긴 서평은 또 하나의 스포일러라는 생각에, 짧게 몇 가지만 그것도 살짝 언급하고 싶다. 20대의 청년의 눈으로 처음 바라본, 50대 중반의 알제아르 부피에의 삶-3년 동안 10만 개의 도토리를 심은-은 그리 깊은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 적어도 그가 땅 속 깊이 정성껏 심겨진 10만 개의 도토리가 약 1만 그루의 떡갈나무로 자라나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그리고 나 역시 나무 심는 알제아르 부피에의 삶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그의 삶은 조금은 지루하고 내 삶과는 거리가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적어도 사막이나 다름없던 황무지가 각양각색의 다양한 나무들로 뒤덮이고 그 숲의 끝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으며, 3명의 주민이 1만 여명으로 늘어나기 전까지는...... 비록 이 글이 장 지오노의 창작에 의한 소설이기는 하지만, 소설이 아니라 실제였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어느 새 씨앗에 싹이 뜨고 그 싹이 점점 자라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제발 소설이 아니라 실제였으면......’ 하는 바람이. <나무를 심은 사람>는 그만큼 소중하고 귀한 것들이 말줄임표처럼 녹아 있는 단편소설이다. 이런 말줄임표를 ‘불타는 행간’이라는 표현으로 역자 유영만은 ‘옮긴이의 말’에 차용하고 있다. ‘옮긴이의 말’이 책의 반을 차지하는 글을 본 적이 있는가? 역자 유영만에게 <나무를 심은 사람>은 ‘불타는 행간’을 넘어 그의 삶을 반추하는 오랜 작업과정이었음을 말해준다. 그는 장 지오노의 작가적 상상력 역시 경험을 통해 몸으로 느낀 체험적 깨달음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였다. 책의 끝부분에 그려 놓은 ‘나무를 심은 사람’의 비전 체계도는 장 지오노의 작가적 상상력에 유영만의 체험적 깨달음이 절묘하게 융합된 자연과 삶에 대한 사유인 듯하다. 자연과 삶에 대한 저자와 역자의 사유가 궁금한 이들에게, 그리고 흔적을 축적해서 ‘기적’을 낳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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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은 사람’은 초, 중등, 성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소장할 만한 도서다. 한 번 읽고 덮기보다는 언제라도 다시 펴게 되는 책, 그때마다 변함없는 감동을 전해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프레데릭 바크의 에니메이션 몇 장면으로 아름답게 완성된 다른 출판사의 그림 동화를 애지중지 읽어왔다. 그래서 새로운 번역으로 출간되는 작품이 더 궁금했다. 확실히 번역이 달라지니 새로운 느낌이 강했다. 워낙 ‘인상깊은 문장’들을 찾아 나누고 암송해왔기 때문에 첫 문장부터 두 권을 놓고 비교해보게 된다. 어떤 장면에 그림을 넣었을지 살피며 다양한 삽화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또한 인간의 작지만 위대한 노력과 그 영향력, 환경의 소중함 등을 묵직하게 일깨우는 작품을 지식 생태학자가 번역함으로 특별함을 더한다. 또 하나의 특징은 책 전체 분량의 거의 반을 차지하는 ‘옮긴이의 말’에 있다. 다양한 명문들을 인용하면서 독자가 깨닫기를 바라는 점이나 역자의 생각들을 잘 정리해준다. 읽으면서도 그 열정이 느껴지고 나의 삶에 적용할 질문과 힌트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읽고 싶은 새로운 도서 목록을 발견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연잎 현상, 나비 효과, 복잡성 보존의 법칙 등에 연결하고 해석하니 인상적이었다. 황무지를 가나안으로 변화시킨 엘제아르 부피에의 삶은 여전히 깊은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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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hestia0829.blog.me/221156247079 이 책을 미리 알았더라면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은 달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
자신의 땅도 아니고 누구의 땅인지도 관심이 없는 엘제아르 부피에라는 남자는 농장을 소유했었고 어느날 하나밖에 없었던 아들을 잃은 후 또 얼마지나지 않아 아내마저 잃는 절망에 빠져 척박한 산악지대로 들어와 홀로 삶을 영위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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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눈앞에 보이는 결과를 바라지 않고 몇 십년 동안 같은 일을 반복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그 일이 본인에게 금전적인 대가를 주는 것도 아니고,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는 일이라면? 이 책은 한 명의 양치기가 몇 십년간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매일 매일 도토리 100개씩을 심어 아무것도 없던 황무지 마을을 숲이 우거지고 개울이 졸졸 흐르는 아름다운 마을로 변모시킨다는 이야기다. 얼마 전 다른 책을 읽다가 우연히 <나무를 심은 사람>의 줄거리를 읽고, 단순한 이야기 임에도 그 울림이 너무 컸기에 꼭 전체 이야기를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사실 그 책에 소개된 줄거리 내용이 거의 다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너무나 단순하고 짧은 이야기다. 하지만 그 깊은 울림은 결코 예사롭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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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고전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
오래 전 이 책을 읽었는데 다시 만나게 되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아주 적은 분량의 책이지만 부피에라는 한 인간의 숭고한 정신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듯 하다.
이 책은 1954년 미국의 보그지에 '희망을 심고 행복을 가꾼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장 지오노는 주인공의 고결한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이 책의 판권으로 단 1페니도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가는 이 점을 자랑스러워 했다. 자신이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몸소 실천함으로써 그 목적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아주 가끔, 단순한 줄거리위에 오직 진심만을 얹어 그 훌륭함을 배가시키는 책들을 만나곤 한다. 그럴때마다 감탄하곤 하는데 '나무를 심은 사람' 이 바로 그런책이 아닐까 싶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주인공은 고도가 높은 산간지역을 여행하게 된다. 야생으로 뒤덮여 있고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 폐허가 되어버린 마을, 그곳에 겨우 몇 가구만이 살고 있었다.
물도 구할 수 없을만큼 척박한 여행지에서 그는 우연히 한 양치기를 만나게 된다. 그의 이름은 엘제아르 부피에로 실제 나이보다 더 들어보이는 사람이었다. 고독한 사람이었지만 자신감이 느껴졌고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의 집에서 묵게 된 날 주인공은 그가 도토리를 잘 골라 산에 심는 일을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누구의 땅인지도 모르는 곳에 그는 3년전부터 도토리를 심는 일을 해왔다고 했다. 아내와 아들이 죽고 그는 고독한 삶속에서 나무가 없는 땅을 개선해보려 결심한 것이다.
다음날 두 사람은 헤어졌다. 주인공은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5년동안 전쟁에 참가했다. 그와의 일은 주인공에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잊혀져버렸다. 전쟁이 끝나고 그가 조금이라도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픈 욕망에 옛날의 그 황무지를 찾아갔을때 그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멀리서 카페트 처럼 깔린 나무가 산등성이를 뒤덮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양치가가 벌써 죽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는 여전히 활기 넘치게 살아있었다. 두 사람은 엘제아르 부피에가 가꿔놓은 숲을 산책했다. 아무 장비도 없이 오직 한 인간의 노력으로 이뤄낸 숲에 그는 감탄한다. 그가 이룬 숲은 말라버린 시냇물을 다시 흐르게 하고 사람들이 살기좋은 마을을 이루었다.
그가 하는 일에 심각한 위협도 있었지만 그는 평생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나갔다.
그리고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한 인간이 보기 드문 인격을 가지고 있는지 발견하려면 오랫동안 그를 지켜볼 행운이 있어야 한다는도 바라지않고 주인공이 해낸 숭고한 작업은 오직 물질만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현대인들에게 무엇이 잘 사는 길인가, 가치있는 일인가를 생각해보라고 주문한다.
현재의 우리는 너무 많은것을 소비한다. 그것의 위험성을 얼마나 자각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다시 한번 읽게된 '나무를 심은 사람'을 통해 지금의 내모습을 뒤돌아보고 반성하게 된다. 후대에게 물려줄 자연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보고 하나라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계기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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