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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부론 2 : 현 시대의 자본주의에 대한 시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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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날의 자본주의는?<국부론>과 그의 보완과정에서의 자본주의 발전과정을 살펴보면서, 가장 많은 생각을 했던 부분은 오늘 날의 경제성장의 문제였다. 특히 '소득주도성장'의 현 정부의 정책에도 유효수요가 발생되지 않는 측면과, 관련해서 '출산율'에 대한 국부론의 언급에 보다 많은 관심이 갔다. 또한 현재 전 세계의 시장규모라는 것이 정부의 부채로 인해 부양되고 있는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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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날의 자본주의는?

<국부론>과 그의 보완과정에서의 자본주의 발전과정을 살펴보면서, 가장 많은 생각을 했던 부분은 오늘 날의 경제성장의 문제였다. 특히 '소득주도성장'의 현 정부의 정책에도 유효수요가 발생되지 않는 측면과, 관련해서 '출산율'에 대한 국부론의 언급에 보다 많은 관심이 갔다. 또한 현재 전 세계의 시장규모라는 것이 정부의 부채로 인해 부양되고 있는 부분이 많은데, 이러한 현재의 상황이 단기간에 너무 많은 부를 누리고자 하는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소득주도성장. 가처분소득. 유효수요

최근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의 배경과 의도에 대해서만큼은 굳이 비난하고 싶지 않다. 기존 자산위주의 성장 정책은 경기침체로 인한 소비심리위축으로 '부의 효과'를 더 이상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고, 단지 경제의 규모 만을 키워왔을뿐 실질적인 유효수요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질적인 소득을 증대시켜 유효수요를 창출하고자 하는 정부의 노력 자체를 비판 아닌 비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문제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실시함에도 그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분배의 영역조차 더욱 악화되었다는 점이다. 근로장려세제(EITC)나 각종 보조금, 최저임금인상의 이면에는 세금의 역할이 크다. 분배에 대한 데이터가 악화된다는 뜻은, 정부가 세금을 활용하여 시장에 공급하고 있는 자금들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형평성있게 분배되지 않아 부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여전히 죽어가는 소비심리를 살리지 못해 실질적인 소비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부의 정책이 효과적으로 작용하지 않는 것에는 (무엇을 콕 집어 정답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우선 1)구축효과로 인해 현재 정부의 재정정책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구축효과는 정부가 시행하는 재정정책으로 인해 민간의 투자가 감소하는 것을 뜻한다. 정부는 뒤늦게나마 이것을 인정한 듯 보인다. 한국은행에서 최대한 금리인상의 시기를 늦추고 금리를 동결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구축효과를 막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문제는 현재 상황이 유동성 함정에 가까울 수도 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서 시장에 돈은 많은데 그것을 투자할 만한(혹은 소비를 유도할만한) 매력적인 아이템이 없다는 뜻이다. 주식이나 여러 직접적인 생산현장으로 자본이 흘러들어가는 것보다 주로 부동산으로 대표되는 자산시장으로 자본이 유입되고 있는 이유 역시, 과거 정부들의 자산주도성장과 저금리기조에 더해 새롭게 풀린 자금들이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며 방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현재의 상황이 이러한 유동성 함정에 놓여있다면, 정부의 통화정책은 당연히 효과를 거둘 수 없으며 재정정책으로 인한 구축효과는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게 이론적으로는 옳다. 유동성 함정과도 같은 상황에서조차 정부의 재정정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정부가 재정을 풀어 직접투자 하는 영역조차 경제를 성장시킬만큼 매력적인 아이템으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최근 소득주도성장을 두고, 김동연 전 기획재정부 장관(경제부총리)과 장하성 전 정책실장과의 대립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부에서는 이 상황을 대립이 아닌 의견교환의 과정이라며 애써 봉합하였지만, 그러한 대립이 일어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 만큼은 생각해봐야한다. 소득주도성장을 주도하는 것은 직책상 장하성 정책실장의 책임과 역할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김동연 경제부총리에게도 일정부분의 책임이 있다. 애초부터 그의 역할은 '혁신'을 통한 성장의 원동력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에 있었기 때문이다.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정부의 재정정책 투자액이 더욱 효과적으로 투입될 수 있도록 매력적인 아이템을 발굴해야만 하는 책임이 그에게 있었다는 말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새로운 신성장동력을 찾지 못했다. 호황을 누리고 있는 반도체 등의 일부 산업으로 겨우 경제의 근간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처럼 성장의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정부든 민간이든 아무리 투자를 해봤자 침체된 소비심리를 되살릴 수 없다. 스테그플레이션이 심히 우려되는 이유다.


성장동력의 부재 외에도 정부의 정책이 유효하지 못한 이유는 2)분배의 측면 때문이다. 소득주도성장의 핵심은 '가처분소득의 확보'이다. 그런데 분배지표가 더욱 악화된 것처럼, 가처분 소득이 증가하기 보다는 부가 편중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왜 시장의 돈이 가계에 고르게 분배되지 않는 것일까? 많은 이유들이 존재하겠지만, 생존을 위한 필수 지출액이 이미 너무 크기 때문이다. 과거의 경제 성장은 자산주도성장이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내수시장의 규모가 작은 경제에서는 부동산이 그 내수시장의 역할까지 도맡았다. 각 가계에서 부동산의 비중은 거의 가계자산의 70%에 육박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부동산자산의 가치가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부동산 가치에 연동되는 주거비 역시 급등하게 되었다. 주거비라는 것은 단순히 주거뿐만이 아니라 영세 사업자의 임대료를 포함한 지대의 개념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정해진 수준에서 창출된 부가가치는 노동임금과 지대, 그리고 자본소득으로 구성되며, 남은 부분이 이윤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국부론을 통해 배웠다. 그 중 지대가 급격히 늘어나버리니 처분할 수 있는 소득이 감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불행히도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하다. 아니 세수를 걷어들여 재정정책을 위한 재원을 마련한다는 측면에서는 상당히 효과적이긴 하다.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 싱크탱크이자 현 사회수석인 김수현씨는 과거 저서 <부동산은 끝났다>를 통해, "소유를 통해서만 주거 리스크를 해결하려는 생각을 바꿔야한다"고 했다. 그의 주장대로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매매가치와는 관계없이 실거주비용을 통제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있는듯 보인다. 정부는 절대적인 주택의 수를 공급하여 수급균형을 통한 매매가의 하락을 유도하기 보다는, 일부 공공임대물량과 더불어 각종 규제를 통해 주택임대사업자 제도를 유도한 후 통제된 민간임대물량(준공공임대물량)을 통해 임대시장을 컨트롤하려 한다. 공시지가를 올림과 동시에 보유세를 인상하는 측면, 그리고 임대소득에 대해서도 보다 타이트하게 과세를 하며, 심지어 의무적인 임대기간을 둔 이 제도를 통해 정부는 급격한 주거비의 인상을 막는 한편 효과적으로 조세수입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부동산 자산 가격이 무너지면 내수가 무너져 국내 경제전반이 주저앉는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으니, 자산의 가격은 천천히 인상시키면서 거주비는 단기적으로 유지시키고자하는 이러한 정부의 정책은, 어떤 의미에서는 상당한 실효를 거두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가진 자들은 단기적으로 그 이윤이 전보다 못할 뿐 계속해서 자산을 증식할 여력을 유지하는 반면, 없는 자들은 아예 자산소유를 통한 계층상승의 부의 사다리를 빼앗겨버렸다는 점이다. 증가된 지대를 부담하지 않기 위해 집(혹은 가게)을 직접 소유하여 지대비용을 헷지하려 하던 이들은 이제 급격히 올라버린 자산가격으로 인해 감히 매수를 고민할 수 없게 되었고, 늘어난 최저임금과 임대료의 생산비용으로 인해 폐업을 고려하는 수준에 몰려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가처분소득을 확보할 수 없으니 당연히 소비할 수있는 여력이 살지 않는다. 유효수요가 생길 여력이 없다는 뜻이다.


차라리 이번 정부가 집권하면서 약속한 도시재생의 영역을 뉴딜정책처럼 대규모로 시행하는 것은 어떤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현 도시재생의 기조는 철거 후 개발방식을 극도로 지양하는 것처럼 보인다. 개발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수도의 시장을 장관이 찍어눌러버리는 판국이니까. 물론 기존의 삶의 공간이 가지고 있는 유무형의 가치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가치라는 것은 과거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해야만 보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유현준 교수는 저서인 <어디서 살 것인가>를 통해, 오래된 공간의 가치란 사람이 이용하던 '길의 모양'에 있다는 주장을 편다. 시대를 거쳐오면서 인간이 이용하기에 적합한 형태로 길이 형성 유지된 것이므로, 최대란 길의 모양을 유지하면서 그 주변에 현대에 적합한 효율성을 갖춘 규모의 시설들을 짓는 방식의 도시재생을 제안하기도 한다. 물론 유 교수의 의견이 정답이 아닐 수는 있다. 다만 무조건적인 보존을 외치는 무늬만 재생인 사업보다는, 이런 식으로 진짜 보존해야할 가치와 개선해야할 부분을 구분해서 살피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싶다. 그래서 보다 현실적인 방안으로써의 도시재생 뉴딜정책이 실행된다면 일자리 창출을 통한 소득분배, 그리고 개발로 인한 경제 활성화, 덧붙여 주택공급을 통한 주택가격안정화까지 1석3조를 기대할 수 있는 훌륭란 위기 돌파구가 되어줄 수 있다.


한편으로는 확대 시행되고 있는 부의 소득세에 대한 영역에서도 단순히 금액적인 크기만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사용의 방향까지 효율적으로 조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부의 소득세는 밀턴 프리드먼이 주장한 내용으로, 최저생계비에 미달하는 수준의 소득에 대해서만큼 마이너스 세금(실질적으로 보조금)을 줘야한다는 이론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근로장려세제(EITC) 등에 적용되고 있다. 프리드먼은 이러한 제도의 정부 재원을 집값 상승으로 인한 집주인의 이윤에서 취해야한다고 주장했는데, 자본차익을 불로소득이자 추잡한 부당이윤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가 이토록 지가 상승분에 대해서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 이유는, 주택 소유자들이 벌어들인 지대 상승분을 재투자에 활용하지 않고 자기의 사치에만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프리드먼의 이러한 취지를 잘 고려해서,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를 통해 얻은 조세수입을 단순히 나눠주는 방법으로만 사용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주택공급이 일어날 수 있도록 주택건설에 투자를 하는 것이 더 생산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즉 민간이 해야할 투자를 정부가 대신한다는 재정정책을 더욱 효과적으로 시행해야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가처분소득은 곧 출산율로 대변된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내용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갔던 부분은 아메리카 대륙의 경제성장을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특히 엄청난 출산율과 그에 따른 부양비용의 부담에도 불구하고, 공급을 위한 노동공급의 부족으로 노동임금이 증가하면서 가계는 적정수준 이상의 소득을 획득할 수 있었으며, 늘어난 인구가 다시 노동공급과 시장의 유효수요를 창출해내면서 더욱 폭발적으로 경제가 성장하는 된다는 그의 이야기는, 마치 자본주의가 만들어갈 수 있는 유토피아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했다. (물론 크고 작은 자본주의의 위기를 겪긴 했지만) 실제로 그의 주장처럼 자본주의는 지속적으로 선순환하며 발전해왔으며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부를 만들어냈다. 그가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개인적으로 의도한 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가 주장한 공급의 선순환과 더불어 전후의 베이비붐 세대의 인구증가로 인한 유효수요의 창출이 결합하면서 세계경제는 수십년간의 골디락스 풍요를 누릴 수 있었다.

노동에 대한 보수가 충분하면 노동자가 자녀에게 더 나은 생황 여건을 제공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보다 더 많은 자녀를 양육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히 번식의 범위가 확대된다. 여기서 인식해야 할 사실은, 노동에 지불되는 보수가 충분하다면 노동을 필요로 하는 노동 수요가 증가해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노동에 대한 수요가 계속 증가한다면, 노동에 따른 대가 역시 증가할 것이고 이는 노동자의 결혼과 출산을 촉진할 것이다. (중략) 모든 나라에서 인구증가 상태를 정하고 조절하는 요소가 바로 ‘수요’다. P.59

문제는 경제의 주역이었던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기 시작하면서, 유효수요가 급감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화제가 되었던 해리 덴트의 <2018년 인구절벽이 온다>, <2019년 부의 대절벽>에서 지적된 바대로, 인구의 감소로 인한 수요의 감소는 이미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인구의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되기가 어렵기 때문에, 한번 꺾인 하방세로서의 전환이 장기간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면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인구가 곧 내수시장으로서의 국력이 될 수 있다는 면을 간과했던, 과거 정부들의 산아제한 정책들이 야속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반면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술의 발전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왔기에, 노동력 감소로 인한 노동시장의 불균형의 문제는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노동수요가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면서 취업난이 극심해졌다. 4차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AI 등의 신기술의 등장은, 앞으로의 노동시장에서도 노동력의 가치가 증가할 가능성을 희박하게 만든다.


이처럼 유효수요를 창출하지 못하고, 소득 역시 감소하는 오늘 날의 추세는 결국 '출산율'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조적 혁신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신규 공급과 수요를 창출해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는 이가 있는 반면, 또 누군가는 주거 및 교육 등과 관련된 생활에 필수적인 영역에 대해 정부에서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으로 가처분소득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느 쪽이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유효한 수요를 만들어서 경제를 유지하고 성장시켜야 한다는 면에서, 유효수요가 경제를 이끌어가는 자본주의 시즌2가 도래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할 것 같다. 그리고 그 사회가 그러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느냐를 판단하는 척도는 앞으로도 출산율로 대표될 것이라 확신한다. 대한민국의 방향이 많든 적든,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은 사회로 변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국가의 부채에 대하여

국가 단위로 시장을 바라볼 때 시장의 크기(자산)를 구성하는 돈은 결국 부채와 자본으로 구성되게 된다. 따라서 국가 경제의 측면에서 시장경제가 운용될 수 있도록 적절한 수준의 부채(재정정책)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견해와, 애덤 스미스처럼 부채비율을 최소화하고 발생되는 건전한 자본의 축적과 생산성의 향상으로 전체자산을 증대시키고 유지해야한다고 보는 견해가 대립하곤 했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상황으로는 전자의 주장이 더욱 강했다. 사실 두 주장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만큼 빠른 피드백을 얻느냐의 속도와 욕심의 문제에 가깝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쓰던 당시는 영국을 필두로 식민지 정복을 위해 유럽의 강대국들이 발벋고 나서던 시기이다. 그들은 식민지 정복을 위한 비용을 국채를 발행하여 조달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러한 국가의 행위(부채를 쌓는것)는 국가신용을 잃게 만들어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종국에는 국가를 파멸시키게 될 것이라고 애덤 스미스는 우려했다. 경제성장의 결과로서만 유통되는 화폐의 수량이 결정된다고 보았던 애덤 스미스였으니, 인위적으로 유통되는 화폐량을 증가시켜 경제의 크기를 억지로 키우는 당시 국가의 모습들이 아주 위험한 행동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현재 전 세계의 국가 중 가장 강대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의 부채 수준을 고려해보면 스미스의 주장이 허황된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원유에 대한 결제를 달러로만 가능하게 만든 미국의 국력으로 성립될 수 있었던 것일뿐, 기축통화가 되지 못한 수많은 화폐에 적용되는 일반적인 사례는 아닐 것이다. 특히 과거 IMF시기를 겪었던 우리나라의 사례나, 최근 유럽과 개발도상국들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국가부채로 인해 급격한 경제위기를 겪는 사례들을 보면서 애덤 스미스의 통찰에 크게 감탄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왜 국가들이 그렇게나 많은 부채를 부담하면서까지 경제를 부양해왔을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그건 성장에 미쳐있었던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더욱 잘 살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은 한 세기의 가장 주요한 이데올로기가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위정자들은 그러한 사람들의 욕망을 읽어내어, 그것을 공략했다. 성장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높은 성장율이 당연시된 경향 때문에 정치인들은 리스크를 알면서도 필요 이상으로 무리하게 경제의 외형을 키워왔늘 수도 있다. 그 성장을 위한 돈은 미래의 세대로부터 빌려온 것과 다름없다. '늘 계속해서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미래 세대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희망 하나로 미래세대로부터 백지수표를 빼앗아오는 것은, 그것을 부담할 미래세대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일일지도 모른다. 현재 우리의 욕심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너무 많은 것을 지금 누리고 싶다는 우리의 욕망과 허영이, 너무 많은 부작용의 초래를 묵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이제 피할 수 없는 유효수요의 감소를 목전에 두고, '계속해서 성장한다'는 절대 믿음이 깨어지게 되는 시점에 와 있다. 최악의 경우 가까운 미래세대가 과거와 현재 세대의 허영의 댓가를 부담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을 위시로 하여 유럽과 중국 각국이 자국경제를 최우선시하면서, 국수주의적 관점의 경제관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금리인상 경향은 그러한 속도를 더욱 가속화 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을 제외하고, 과연 유럽이나 중국이나 한국에 이르기까지 경제적 활기가 돌아서 자연스럽게 금리를 인상한다고 체감하는 국가는 거의 없을 것 같다. 상대적으로 경기의 호황이 체감되지 않기도 하거니와, 실제로 금리인상의 이유가 경기호황에 따른 결과가 아닌 경제붕괴를 막기 위한 방어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여러 이유로 이제 성장제일주의에 대한 패러다임을 조금 수정할 필요는 있어보인다. 앞으로 살아갈 우리와 우리의 후대를 위해서 말이다. 애덤 스미스가 꿈꾸던 이상적인 사회는 너무 조급하게 생각해서는 달성할 수 없다. 장기에는 모두가 죽지만, 그럼에도 인류는 살아갈 것이다. 그렇다면 한 발 한 발 착실하게 내실을 다지면서, 수요와 공급이 함께 증가할 수 있는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 아닐까? 정부와 기업, 그리고 가계의 모든 경제주체들이 경제의 외형보다 그 내실인 퀄리티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으로 보인다.


마무리하며

고전읽기 모임을 통해 <국부론>을 읽으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정리해볼 수 있었다. 특히 잘 알고 있는 분야라 생각했던 경제학 고전임에도 다시금 꼼꼼하게 읽어보니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이참에 기회가 된다면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에 있는 주요 경제학자들의 대표적인 서적들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은 바람을 가져본다. 특히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이나 프리드먼의 저서에 관심이 간다. 또 애덤 스미스의 다른 저서인 <도덕감정론>도 다시 읽어보고 싶다. 다만, 위의 책들을 읽고 리뷰를 남길 수 있을지는 확신이 서질 않는다. 그 정도의 내공이 될지 스스로도 확신을 할 수가 없기에...


함께 읽기

- <한 권으로 읽는 국부론> 1부 : 국부론 요약 및 발췌 정리 [바로가기]

- <한 권으로 읽는 국부론> 2부 : 국부론의 보완, 그리고 자본주의의 발전 [바로가기]

- <한 권으로 읽는 국부론> 3부 : 현재 자본주의에 대한 시사점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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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태도와 뛰어난 통찰, 그리고 명석한 두뇌를 지닌 한 사람을 봅니다.

세상을 보다 좋은방향으로 변화시키려는 의지를 가진 한 사람을 봅니다.

그리고 그 사람과 그의 생각이 변화시켜온 세상을 살아갑니다.

인간은 참으로 위대한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YES마니아 : 골드 v*******4 2019.03.3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