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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에 대해 독후감을 쓸 때가 좀 난감하다. 여기서 ‘이런’이란 내가 이 책의 내용을 잘 이해했는지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거기에 다른 이들보다는 조금 더 알아야 할 것 같은 상황이 보태지면 더욱 그렇다.
양자역학을
연구하는 짐 알킬릴리와 분자유전학자인 존조 맥패든이 함께 쓴 『생명, 경계에 서다』는 ‘양자생물학(quantum biology)’에 관한 최초의 교양과학서이다(적어도 내가 아는 한). ‘양자생물학’이란 양자역학을 통해서 생물학적 현상을 이해하려는 시도다(미국의 Glen Rein이 처음 양자생물학이라는 학문을 탄생시켰다고 한다). 좀
넓게 봐서는 생물물리학(biological physics)의 한 분과라고 할 수 있다. 생명 현상을 양자 수준에서 이해하는 것이니, 20세기 중반 이후
생물학의 대세였던 분자생물학(molecular biology)보다 한 단계, 혹은 몇 단계를 내려가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분자생물학이
고전역학의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인데 반해서, 양자생물학은 고전역학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인 양자역학에 근거를 두기 때문에 하위 분야라고 할 수 없고, 상당히 다른 접근 방식을 갖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저자들이 책의 제목을 쓴 ‘경계’(원저의 제목도 “Life On the Edge”다)는 바로 고전역학으로 이해할 수 있는 세계와 양자역학으로 봐야 이해가 되는 세계의 경계를 의미한다. 바로 이제 생명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양자역학도 알아야 한다는 의미인 셈이다.
그래서
양자생물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양자역학을 이해해야만 한다. 여기서 큰 장애물이 생긴다. 양자역학은 탄생한 지가 1세기가 다 되었지만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분야가 아닌 것이다. 저자들의 지적대로 현대 세계가 양자역학에 의존하고 있는 바가 엄청나지만(“선진국에서는 국내총생산의 3분의 1
이상을 양자세계의 역학에 대한 이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응용 기술에 의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이론을 일반인들이 이해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다. 그러니 이 이론에 바탕으로 둬서
다시 생물학을 이해하는 것은 더욱 쉬운 일이 아닌 셈이다(그런데 생각해보면, 내가 이 책에서만큼 양자역학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해간다고 여기게 하는 책이 드물다. 생물학을 기본으로 양자역학을 설명해서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나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중심으로 뭔가를 이해해야 쉬운 법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래도
양자생물학이라는 분야를 새로이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양자역학의 지식을 책에서 소개된 대로 키워드만 제시해보면,
‘파동-입자 이동성’과 ‘양자 터널링(quantum tunnelling)’, ‘중첩(superposition)’ 같은 것이다. 양자 얽힘, 결어긋남 같은 용어들도 있다. 이런 양자역학으로 무엇을 설명하고
있냐면, 바로 생명 현상에서 고전적 설명으로 잘 안되는 것들이다. 설명하고는
있지만 뭔가 미진한 부분이 있는 것들, 설명이 힘들다고 하는 것들. 그런
것들이다. 이를테면, 자기장을 이용한 새들의 이동, 세포 내에서 효소의 작용 방식, 미토콘드리아에서 일어나는 호흡에서
전자 전달이 일어나는 이유, 광합성이 일어날 때 에너지가 전달되는 방식, 후각과 시각이 전달되는 방식, 그리고 의식의 본질에 대해서까지. 그리고 저자들은 생명이 기원까지 다가가려고 애쓴다. 사실 양자생물학을
통해서 설명하는 것들이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은 제시하고 있는 것들의 순서와 거의 일치한다. 새나
나비의 이동, 효소의 작용, 호흡과 광합성을 양자역학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는 상당히 많은 진전이 있는 것 같지만(그래도 전부를 이해하고 있다고는 볼 수 없을
것 같다), 의식이라든가 생명의 기원 같은 것은 몇 가지 가설과 증거들을 내놓고는 있지만 거의 추측에
가깝다는 것을 저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양자생물학은
아직은 태동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저자들이 펼쳐 보이고 있는 양자생물학이 정립되었을 때의 신세계에
대해서는 아주 먼 얘기처럼 여겨진다. 이게 과연 생물학의 미래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지만 그래도
새로운 분야에 대한 탐구는 늘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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