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5)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9.0
  • 50대 10.0
리뷰 총점 종이책
저자 소개가 완전 잘못되었네요.
"저자 소개가 완전 잘못되었네요." 내용보기
이원규시인에 대한 소개가 완전 잘못되었군요 저자 소개 이원규 1962년 경북 문경군 하내리에서 태어났다. 한국작가회의 총무, 일간지 및 월간지 기자 등의 서울생활을 접고 지리산에 입산한 지 14년째다. 지리산 지킴이를 자처하며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와 지리산학교 등에서 시를 가르치고 있다. 시간 날 때마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전국을 누비며 사람과 길을 만나러 다닌다. 그동안
"저자 소개가 완전 잘못되었네요." 내용보기

이원규시인에 대한 소개가 완전 잘못되었군요

저자 소개 이원규

1962년 경북 문경군 하내리에서 태어났다. 한국작가회의 총무, 일간지 및 월간지 기자 등의 서울생활을 접고 지리산에 입산한 지 14년째다. 지리산 지킴이를 자처하며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와 지리산학교 등에서 시를 가르치고 있다. 시간 날 때마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전국을 누비며 사람과 길을 만나러 다닌다. 그동안 3만 리를 걸었으며 100만 킬로미터를 달렸다. 1984년 《월간문학》, 1987년 《실천문학》을 통해 시 창작 활동을 시작했고, 시집 《강물도 목이 마르다》《옛 애인의 집》《돌아보면 그가 있다》《지푸라기로 다가와 어느덧 섬이 된 그대에게》《빨치산 편지》 등과 산문집 《지리산 편지》《길을 지우며 길을 걷다》《벙어리달빛》 등을 펴냈다. 제16회 신동엽 창작상, 제2회 평화인권문학상을 수상했다

c*****q 2011.09.18. 신고 공감 4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꾸밈 없는 에세이_멀리 나는 새는 집이 따로 없다
"꾸밈 없는 에세이_멀리 나는 새는 집이 따로 없다" 내용보기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를 아주 재미나게 읽었었는데 거기에 나오는 낙장불입 시인의 산문집이 나왔다고 해서 냉큼 사서 읽었습니다.시인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니!! 놀랍기도 하고 좀 웃기기도 하고 그러네요.ㅎㅎ부디 안전장비 잘 착용하셔서 부상없이 잘 타고 다니시기를.'공지행'을 다 읽고나서 그분들은 어찌 잘 지내시나 궁금했었는데 그분들 이야기도 함께 들을 수 있어서
"꾸밈 없는 에세이_멀리 나는 새는 집이 따로 없다" 내용보기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를 아주 재미나게 읽었었는데 거기에 나오는
낙장불입 시인의 산문집이 나왔다고 해서 냉큼 사서 읽었습니다.
시인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니!! 놀랍기도 하고 좀 웃기기도 하고 그러네요.ㅎㅎ
부디 안전장비 잘 착용하셔서 부상없이 잘 타고 다니시기를.
'공지행'을 다 읽고나서 그분들은 어찌 잘 지내시나 궁금했었는데 그분들 이야기도 함께 들을 수 있어서 좋았구요.
가까이 있기만 하다면 저도 "지리산학교"에서 이것저것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무엇보다 오토바이를 타고 장터와 작은 마을들을 다니며 만난 소박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책을 읽는 내내 코끝을 찡하게 만들었어요. 날이 서 있던 제 마음에 잠시 평화가 찾아오는 느낌이랄까요.
마지막 장에서는 4대강 공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정말 많이 공감되더군요.
아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정말 걱정스럽습니다. 
한동안 산문집을 읽지 않다가 오랜만에 읽어보았네요. 후회없는 선택입니다.
제목처럼 저도 집이라는 올가미를 벗어던지고 멀리멀리 날아가고 싶어요!

a****u 2011.09.21.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자발적 가난의 삶이 궁금해
"자발적 가난의 삶이 궁금해" 내용보기
이 책은 오프라인 영풍에서 샀어, 그 주 주말 이원규 시인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거든, 저자에게 친필 사인을 받으리라 그곳까지 가는 교통편이며 시간등을 확인해 보고 있었는데 결국 가지 못했어. 언젠가 기회가 또 있겠지.   이원규 시인은 알려졌다시피 지리산 밑 하동에 사셔. 사인을 받으려 했던 날은 지리산학교 구례/곡성이 개교식을 갖던 날이었지, 개교식 뒷
"자발적 가난의 삶이 궁금해" 내용보기

이 책은 오프라인 영풍에서 샀어,

그 주 주말 이원규 시인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거든, 저자에게 친필 사인을

받으리라 그곳까지 가는 교통편이며 시간등을 확인해 보고 있었는데 결국 가지 못했어.

언젠가 기회가 또 있겠지.

 

이원규 시인은 알려졌다시피 지리산 밑 하동에 사셔.

사인을 받으려 했던 날은 지리산학교 구례/곡성이 개교식을 갖던 날이었지,

개교식 뒷풀이로 구례에서 선생님의 강의와 사인회가 있었다고 해.

언젠가 기다리면 기회가 또 있겠지.

 

'멀리 나는 새는 집이 따로 없다'는 지리산 시인 이원규 선생님이 경향신문에 기고한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길 人 생의 연재물을 묶어서 펴낸 책이야.

 

시인이 길을 떠나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지. 읽으면 마음이 조금 덥혀지는 이야기들.

그리고 지리산 행복학교 그 이후의 이야기들도 실려있어, 역시 연재된 글.

 

지리산 행복 학교에서 가졌던 막연한 느낌이 그 이후의 글을 읽으면 조금 더 실제적으로

다가온다고나 할까...

 

버들치 시인이 그랬던가, 산문집 더 못내겠다고 시인이 시는 안 쓰고 산문 쓴다고

뭐라 했대나 어쨌대나 또 어떤 시인이 그랬어, 이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시 대신 다른 글을 써서 책이 나오고 그걸로 또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상황에 후배볼 면목이

없어 연방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더라고..

 

시인이 자신의 언어인 '시'로만 밥벌이를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도 나는 이원규 시인에게 뭐라고 하고 싶지 않아.

시를 쓰기 위해 환경을 만드는 것 보다 생활하는 과정, 그 뒷발자취에 시가 나올 거라는

시인의 이야기처럼.

설령 이게 출판사의 의도이건 시인의 자발적 생각이건 간에

어쨌든 이원규 시인이 지리산에서 자발적 가난의 삶을 실천할 수 있고

그 결과로 다시금 시인만의 언어인 '시'로 우리를 찾아올 수 있게 된다면

얼마든지 괜찮다고.

 

그동안 남들과 같은 속도로 걷기 위해 팽팽히 조여왔던 운동화 끈이 풀어진 줄도 모르고

자꾸만 쳐지는 발걸음에 이상함을 느꼈어,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순간이 언제인 지는 모르지만 운동화 끈은 풀어졌고 속도는 따라가기

힘들만큼 차이가 나고 있음을 깨달았어.

그리고 나는 과감히 발을 죄고 있던 운동화 끈을 풀어버릴 수 있는 용기가 생겼어.

지금은 서서히 풀려가고 있는 운동화 끈을 그냥 바라보면서 천천히 걷고 있어.

신발이 발에서 겉돌고 불편해지면 끈을 풀어버리고 신발도 벗을꺼야 그리고 천천히

맨발로 걸을 꺼야...

 

자발적 가난을 선택한,

지리산 시인을 보며

용기가 생겼어.

그걸로 충분해.

d****4 2011.10.04.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단순한 게 좋고 소박한 게 좋다
"단순한 게 좋고 소박한 게 좋다" 내용보기
단순한 게 좋고 소박한 게 좋다 박용범 독서작가(2022년)     스님은 그동안 산중 외딴 집에 머물다 누군가 거처를 찾아낼 것 같으면 산문을 나가 남몰래 전국의 폐사지를 답사하고 아쉬람에서 수행했다며 낮은 목소리로 한마디 하셨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으니 살만하네. 돌이켜보면 적당히 가난한 집에서 잘 먹고 잘 살다가 출가해서 조계종단이라는 더 큰 부잣집에서 더 잘
"단순한 게 좋고 소박한 게 좋다" 내용보기

단순한 게 좋고 소박한 게 좋다

박용범 독서작가(2022)

 

 

스님은 그동안 산중 외딴 집에 머물다 누군가 거처를 찾아낼 것 같으면 산문을 나가 남몰래 전국의 폐사지를 답사하고 아쉬람에서 수행했다며 낮은 목소리로 한마디 하셨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으니 살만하네. 돌이켜보면 적당히 가난한 집에서 잘 먹고 잘 살다가 출가해서 조계종단이라는 더 큰 부잣집에서 더 잘 먹고 잘 살아지 뭐. 허허, 그러니 난 출가한 적도 없는 셈이야. 너도 지리산의 처음처럼 다 내려놔. 그 무거운 것들을 들고 있지 말고 이젠 다 내려놔. 돌아보지도 말고."

 

 

P41

그는 어린 나이에 겁도 없이 사업을 했고 또 돈도 꽤 많이 벌었다. 그러나 그마저 한순간의 꿈이었고 물거품이었다. 그리하여 죽으러 왔으나 차마 죽지는 못했다. 오지의 청학동에 처음 들어온 그는 상투머리에 수염을 기른 채 한복을 입고 마치 조선시대처럼 사는 유··선의 청학동 도인들을 보자 정말 '웃기게도' 죽을 맛이 싹 사려졌다고 한다. 오히려 저렇게도 사는데 나라고 왜 못 사나 하는 오기가 생겼단다.

가난과 외로움과 세상에서 버려졌다는 서러움을 누르며 그는 대나무 수공예품을 만들었다. 그렇게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다 우연히 우리의 전통 옻칠을 배우게 됐다. 죽음을 부르던 절망의 빛들이 어느 순간 옻칠의 화려한 오방색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마침내 입산 15년 만에 직접 지은 집에 갤러리를 만들어 전시회도 하고, 지리산학교에서 옻칠공예를 가르치기도 하지만, 여전히 그는 마흔여덟의 노총각이다.

 

 

P66

"아이고, 저는 아직 그림을 잘 몰라요. 다만 좋아서 그릴 뿐이에요. 늙은이가 장난 논 걸 잘 봐주니 고맙지요. 아직은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참 좋아요. 나도 남들처럼 베풀고 싶었지만 가진 게 없어 늘 마음뿐이었지요. 그런데 이렇게 그림을 그리다 보니 그것 참, 그림도 나눔이 될 수 있더라고요. 밤잠을 줄이고 작품에 매달리는 일이 나눔과 소통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니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대견할 뿐입니다. 가난한 단체들의 '후원의 밤'에 돈은 못 주더라도 나의 못난 그림 한 점을 갖다 주면 많이 좋아해 주니 그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한숙자 할머니는 지난해 전시회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폭탄선언을 했다.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74세의 나이에 화가의 길로 들어선 것도 만만치 않은데, 81세의 나이에 주거 생활의 독립을 선언해 '쟁취'했다. 그리하여 마음에 두었던 전주 한옥마을 근처에 원룸 하나를 얻어 독립적인 작품 활동에 들어간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스스로 끼니를 챙겨 먹으며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길, 외로운 화가의 길로 들어선 셈이다.

 

 

단순한 게 좋고, 소박한 게 좋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아 간다는 것은 잘 살아가는 것이기도 하고, 잘 죽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단순하다는 것과 반복한다는 것은 지겨운 일이나 퇴보가 아니라 들숨과 날숨의 호흡처럼, 먹고 싸고 자는 생명의 순환고리처럼, 그리고 마치 간절한 염불이나 108배처럼 몸과 마음의 근간이다.

되도록 아무 글도 쓰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내리 잠만 자다가 일어나 주먹밥을 싸 들고는 산짐승처럼 지리산 골짜기들을 헤매고 다녔다. 생의 한철 돈도 없이 참 잘 놀았다. 그동안 빈집을 찾아 일곱 번 이사를 했으니 지리산의 여기저기를 살아본 셈이다. 전남 구례의 피아골과 문수골과 섬진강 변, 전북 남원의 실상사, 경남 함양의 칠선계곡 입구, 경남 하동의 화개 장터 근처 마을 등, 최소 1년 이상을 살아야 그 마을의 지수화풍을 읽을 수 있고, 뭐라도 조금 쓸 수 있었으니 한 번 이사를 할 때마다 졸작이지만 시집이나 산문집 한 권 정도는 낸 셈이다. 굶어죽지 않고 잠시 머물다 떠나는 집 한 채. 한 번 이사에 책 한 권이면 돈은 안 되지만 밑천도 별로 들지 않는 참으로 멋진 장사가 아닌가. 지리산의 큰 골짜기만 해도 30개 정도가 되니 다 살아보려면 1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하더라도 족히 30년은 걸린다.

 

 

 

멀리 나는 새는 집이 따로 없다(이원규 저)에서 일부분 발췌하여 필사하면서 초서 독서법으로 공부한 내용에 개인적 의견을 덧붙인 서평입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y****a 2022.02.2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멀리 나는 새는 집이 따로 없다
"멀리 나는 새는 집이 따로 없다" 내용보기
《멀리 나는 새는 집이 따로 없다》에서 발췌하여 필사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환계를 선언하고 사라졌던 수경 스님을 1년 만에 남몰래 만났다. 스님은 수염과 머리를 기른 산중처사로 독거생활을 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순간 조금 낯설기는 했지만 눈빛이 사자처럼 형형했다. 삼보일배와 오체투지 등의 휴유증으로 무릎 관절이 많이 아픈 것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건강해보였다.
"멀리 나는 새는 집이 따로 없다" 내용보기

멀리 나는 새는 집이 따로 없다에서 발췌하여 필사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환계를 선언하고 사라졌던 수경 스님을 1년 만에 남몰래 만났다. 스님은 수염과 머리를 기른 산중처사로 독거생활을 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순간 조금 낯설기는 했지만 눈빛이 사자처럼 형형했다. 삼보일배와 오체투지 등의 휴유증으로 무릎 관절이 많이 아픈 것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건강해보였다. 그동안 산중 외딴집에 머물다 누군가 거처를 찾아낼 것 같으면 산문을 나가 남몰래 전국의 폐사지를 답사하고 아쉬람에서 수행했다며 낮은 목소리로 한마디하셨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으니 살만하네. 돌이켜보면 적당히 가난한 집에서 잘 먹고 잘 살다가 출가해서 조계종단이라는 더 큰 부잣집에서 더 잘 먹고 잘 살았지 뭐. 허허, 그러니 난 출가한 적도 없는 셈이여. 너도 지리산의 처음처럼 다 내려놔. 그 무거운 것들을 들고 있지 말고 이젠 다 내려놔. 뒤돌아보지도 말고."

 

한동안 말과 글을 줄이고 건강부터 챙기며 살아야겠다. 일단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의 말무덤에 찾아가 예를 갖추고 싶다. 다시 길동무도 없이 홀로 길을 나선다. 그리하여 이 세상의 모든 길이 곧 집이다.

 

 

여강 근처에 사는 홍일선 시인의 농장 이름은 '바보숲 명상농원'이다.

 

"전국의 닭 잘 키우는 고수들을 다 찾아다녔지. 결론은 자연농법이었어.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물과 사료를 주는 게 핵심이야. 깻묵과 쌀겨 등을 버무려 닭 모이를 직접 만들어주니 힘들기는 해도 닭님들이 건강해. 야산에 풀러놓으니 지렁이와 쑥이며 어성초 등을 먹고, 자연농법으로 키우니 닭장에 아무 냄새가 안나. 닭님들이 새들처럼 훨훨 날아다녀. 구제역, 조류독감 이런 것도 다 속도전과 대량 생산의 욕심 때문이야. 성장촉진제와 항생제가 버부려진 사료를 먹이고 전깃불만 누부신 지옥 같은 밀집사육이 문제야. 도대체 저항력이 생길 수가 없지. 악순환이야. 지금의 이 세상도 마찬가지 아닌가. 요즘은 시 한 편보다 닭님들이 낳아준 건강한 달걀 하나가 더 소중해."

 

 

추사 김정희나 다산 정약용처럼 이치와 도리에 따라 천하만민을 위한 애민사상으로 학문을 탐구하고 펼치는 '광기에 가까운 열정'이 그들을 진정한 지식인의 반열에 오르도록 했다. 진정으로 미쳐야 열정적인 광인이 되어 전문가의 반열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귀농·귀촌·귀향이 다 옳은 것만도 아니었다. 비교적 '죄를 덜 짓는' 아름다운 선택이지만 이마저 스스로 대오각성大悟覺腥의 일생을 걸고 하느냐, 억압적인 상황에서 마지못해 패배적으로 하느냐, 꽤 많은 사람들이 꿈꾸기에 멋질 것아서 따라서 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굳이 지적하자면, 귀농·귀촌을 꿈꾸거나 현실화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우선 멋진 집을 짓고픈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이다. 먼저 풍수지리를 공부하게 되고, 마을에서 적당히 떨어지고 자연 풍광이 뛰어난 곳에 땅을 사고 포클레인으로 터를 만든 뒤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싶어한다. 생태건축의 양식이든 아니든 그 가상한 꿈을 나무랄 수만은 없다.

 

하지만 이런 발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딜레마에 빠진다. 모든 집이 그렇듯이 막상 설계를 마치고 집을 짓게 되는 순간 애초의 계획보다 더 많은 비용(적어도 5할 이상)이 들게 되니, 어쩔 수 없이 도시에서 팔고 온 집값이나 전셋갑을 소진하게 된다. 말하자면 적응 기간의 예비비가 그만큼 줄어드니 차라리 도시에서의 순응적 불안감보다 더 심한 고통과 마주치게 된다. 도시 근교에서는 절대 이루지 못할 그야말로 꿈꾸던 집에 멋진 정원과 텃밭까지 갖추었지만 심리적으로는 쫓기게 되는 것이다.

 

몇 개월 지나고 보면 귀농생활의 수입이란 것이 실제로는 월 몇 만원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자신이 산 땅값마저 지역 주민 시세보다 훨씬 비싸게 샀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고, 행여 다시 되팔려 해도 엄청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려면 돈 많은 도시인 혹은 또 다른 귀농을 꿈꾸는 이들에게 되팔 수밖에 없으니 이 또한 암묵적인 사기의 카르텔 형성에 동조하게 됨으로써 남모를 죄의식에 휩싸이게 되고, 남은 예비비는 곶감 빼먹듯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압박감이 뒷골을 엄습해 온다.

 

 

문제는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다. 돌아갈 수도 없는 헛꿈을 꾼 것이다. 영화 속에서나 본 듯한 혹은 이미 정착에 성공한 몇몇 지인들의 모습을 보고 나름대로 생태적인 설계를 했으나 이 또한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자본주의적 질서 속에서 한 발도 빠져 나오지 못했다는 반증인 동시에 소위 녹색성장이라는 두 얼굴의 행태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를 바 없는 궁여지택이거나 속도전적인 패착이 아닐 수 없다.

 

지리산뿐만 아니라 전국의 거의 모든 바닷가와 산중과 강변에는 이렇게 수많은 집들이 들어서고 있다. 대개는 별장이지만 이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가 전원생활을 꿈꾸거나 생태적 마인드의 귀농을 이룬 사람들의 집이다. 겉만 보면 참으로 멋진 집이지만 사람의 마을과는 단절된 사유재산적 공간에 불과해 결과적으로 생태파괴에 동조한 셈이 되는 것이다.

 

막상 살다가 깨닫게 되는 문제는 비단 이뿐만이 나이다. 애초에 터를 잡을 때 풍수지리의 반만 보았던 것읻. 지수화풍을 다 읽은 게 아니라 대개는 바람을 모르고 물을 모르고 오로지 경치만 보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가뭄이 들거나 태풍·폭우·폭설 등 조금의 기상이변리아고 생기면 그때서야 왜 이 땅에 애초부터 마을이 형성되지 않았는지 뒤늦게 알게 된다. 목욕이나 수세식 화장실 이용은커녕 당장 식수가 끊기거나 외딴섬처럼 고립되는 정도를 넘어 거센 바람에 지붕이 날아가거나 산사태로 축대가 무너지는 등의 위험에 직면할 수도 있는 것이다.

 

 

머리로는 느림의 미학을 꿈꾸었느나 그 모든 게 너무 빨라서 자초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적응 과정을 뼈아프게 거치고 나면 비로소 천천히 자연의 한 몸으로 돌아오게 된다. 다만 때로는 빠른 것이 오히려 늦은 것이라는 사실을 절감하면서 말이다.

 

만약 꼭 같은 조건으로 귀농한다면 전혀 다른 방법도 있다.

 

우선 자신이 살고 싶은 마을의 빈집을 구하고 그 마을 주민으로서의 적응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다 옳은 것은 아니지만 전통적인 지혜와 공동체적인 마인드를 갖추며 최소한 사계절을 살아본 뒤에 집 지을 땅을 사더라도 절대 늦지 않다. 왜냐면 마침내 주민들의 시세에 맞게 살 수 있다는 경제적 비용 문제 뿐만이 아니라 집터에 대한 풍수지리적 이해가 두루 갖춰지기 때문이다. 되도록이면 이미 수백 년간의 검증이 끝난 빈집을 취향에 맞게 고쳐서 사는 게 훨씬 생태적인 일이지만, 굳이 새로이 집을 짓겠다면 말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y****a 2020.11.1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