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책을 읽게 되었을 때에는 여러가지 동기가 있었을 것이다. 가령 서평을 보았다던지, 친구에게 들었다던지, 우연히 서점이나 인테넛 서점에서 보았다던지, 제목이 인상적이었다던지 등등 많은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이 책의 저자가 '프랜시스 후쿠야마' 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의 논점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기도 했지만, 더더욱 궁금했던 것은 이 사람의 논리구조는 과연 어떻게 생겨먹었을까가 더욱 궁금해서 읽게 되었다고나 할까.
내가 프랜시스 후쿠야마를 처음 대한 것은 대학원에서였다. 물론 그 당시가 한참 외환위기 당시였고 또 그로인한 세계 경제의 불안정이 강조되었던 시기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폴 크루그만, 프랜시스 후쿠야마, 사무엘 헌팅턴, 아마티야 센 등등의 약간은 과격하고 주류 아이디어에서 약간은 벗어난(?) 듯한 논지를 가지고 있는 학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빈번하게 오르내리던 때였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지만, 하여간 많은 수업에서 이름이 오르내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한번은 제대로 읽어봐야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 동기가 되었던 것 같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엄밀히 따지자면 정통 경제학자는 아니고, 또 정치학을 전공하기는 했지만 정통 정치학자라기 보다는 정치경제학자 쯤으로 보는 것이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뭐 이점에 대해서 이의가 있다면 어쩔 수 없다. 그건 내 지식이 짧은 탓이려니 생각하고 그냥 넘어가련다. 뭐 하여간 경제학에 대한 아이디어는 자신의 사상에 많이 오염되어있는 정통 경제학자에게 듣는 것보다는 약간은 비껴간 하지만 절대로 많이 비껴가지 않고 거의 경제학자와 다름없는 다른 분야의 전문가에게 듣는 것이 더 통찰력이 있는 경우가 많이 있기에 저자의 논점과 함께 논리회로를 엿보고 싶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원서의 표지에는 몇몇 사람들이 커다란 지구본을 펼쳐놓은 듯한 지도를 보며 회의를 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는데, 한글판에는 보다 직접적으로 커다란 못생긴 두 손이 악수를 하는 모습을 그려놓고 있는데, 그 두 손을 상당히 커칠게 표현해서 신뢰를 나타내기 보다는 검은 두 손이 손을 잡고 있는 어둠, 협작, 사기 등등의 부정적 이미지만 강화시키는 것 같다. 하여간 제목 자체가 신뢰이기 때문에 정통 경제학에서 빼놓기 쉬운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신뢰를 다루고 있는데, 대부분의 논의를 가족에 대한 각 국가별, 문화권별, 경제권별 의미 및 가족관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자본을 다루고 있는 것은 사실 처음에 이 책에서 기대했던 좀 더 거시적인 경제적 안목 보다는 약간 미시적인 통찰이 더 돋보이는 책이기에 약간은 당황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 책이 씌여질 당시에는 상당한 논리적 통찰이 보였겠지만,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를 보면 많은 부분에서 저자가 조금은 잘못 바라보거나 간과한 많은 현상들이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저자가 점장이가 아닐진데 그의 세계 경제를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정말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이 책도 역시 여타의 번역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매끄럽지 못한 직역체의 번역은 여러번 읽어야 간신히 key idea를 찾아낼 수 있거나, 종종 장황한 설명의 늪에 빠져버리게 하였다. 또한, 기본적인 번역의 문제인데, '무역연합'이라는 단어가 나오기에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Trade union' 즉 노동조합 이야기였던 것 같다. 아주 작은 문제인 것 같지만 이런 사소한 곳에서 '신뢰'가 깎일 수도 있다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