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가 걸어 나오는 걸 천천히 살펴본다. 텍스트로서의 삶. 문체로서의 몸짓. 운율과 절망. 또는 흐린 하늘의 유쾌함. 열정에 떨고 그가 손바닥을 내밀어 하얀 구름을 만들어 땅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러나 금새 구름은 대기 속에서 흩어진다. 이번에 혀를 내밀어 구름을 만든다. 가슴으로. 무릎으로. 그의 육체 구석구석에서 구름들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금새, 금새 대기 속으로 흩어진다. 그리고 몇 년 후 그는 죽는다. 그 자리에 흩어졌던 구름들이 모여들어 그를 만든다. 롤랑 바르트가 롤랑 바르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롤랑 바르트는 롤랑 바르트가 아니다. 동시에 롤랑 바르트이다. 롤랑 바르트는 단수이면서 복수이다. 텍스트이며 육체이며 언어이다. 그리고 한 권의 책이다. 그냥 읽어나가기만 하면 된다.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다. 어차피 그의 구름들로 만들어졌으니, 바람이 불면 날아가버릴 테니. 금새금새. 저기 롤랑 바르트가 사뿐사뿐 날아가는 모습을 보라. (하나의 인생 : 연구, 질병, 임명들. 그 나머지는? 출강, 우정, 사랑, 여행, 독서, 즐거움, 공포, 신념, 즐김, 행복, 분노, 비탄, 한마디로 반향들? 작품 속에서가 아니라, 텍스트 속에서.) 1980년 3월 26일 파리에서 사망하다. |
|
바르트는 자신의 허구적인 자아를 등장시키는 가상적인 자신에 대한 소설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에서 이 책이 자신의 작업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은연중에 니체에 준거하는 텍스트이면서 주요한 주제를 이루는 것은 육체와 우정으로, 이와 비슷한 것으로는 {텍스트의 즐거움}, {사랑의 단상}이 있다.(p. 207 참조)
구조주의적인 모험의 시기에서 벗어나면서 바르트가 몰두하는 대상은 주체와 대상으로부터 벗어나는 새로운 관계 설정이다. 나르시시즘적인 가상적 자아의 인격으로부터 벗어나는, 그리고 또한 기존 체계의 이데올로기로부터의 호명을 거부하는 기억없는 언어, 주체가 없는 것이 아니라 비주체적인 대중의 언어를 향해 달음질치는 언어가 바로 이러한 관계의 지표이다.
지식인의 임무에 대한 그의 간단한 언급에서부터 구조주의 비판, 그리고 이데올로기(정치)에 이르는 내용 모두에서 한결같이 이러한 주체상은 일관된 노선을 따르고 있다.
먼저 지식인의 임무에 대한 그의 주장을 보자면, 오늘날 지식인이 해야 하는 것은 부르주아 의식의 '해체'(d composition)를 지속시키고 강조하는 것이다. 유토피아적인 현실 바깥을 향하기보다―역사 바깥에는 아무 것도 없다―역사 속에서 어떻게 순환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말. 두 번째로는 자아의 복수성을 증식시킬 수 있는 우정의 장소에 대해 토론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을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것은 단순히 차이의 무한정한 증식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약간의 차이는 각양각색의 인종주의를 유발하지만, 많은 차이는 구속 없는 복수화와 의미의 다양성을 보증해주기 때문이다. 현행 담론의 모순과 폭력 속에 머물면서도 그로부터 새로운 제3의 의미가 출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의미의 양가성을 계속해서 물고 늘어져야 한다. 바르트는 이의 예로 근대적인 행위 주체를 들고 있다. 의미와 행위에 대한 근대적 견해는 주로 의미와 행위의 자유롭고 자율적인 생산자로서의 주체만을 강조했으나, 주체는 또한 구조와 의미의 체계에 종속적인 지위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는 것이다. 주체의 이러한 두 가지 양의적인 용법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얻게 되는가?
분명한 것은 이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과, 그의 한 범례로서 이 책이 놓여있다는 점이다. 자서전 형식을 취하면서도 가상적 자아를 등장시켜 그의 정체성을 분해하는 이러한 작업이 주체의 양의성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책 표지와 관련해서 한 마디 안할 수가 없다. 사진속 인물들의 모습이 어색하게 보이는 것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을 때 과도하게 자연스러운 동작을 취하려고 하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바르트의 모습은 마치 영화속의 한 장면 같다. 그의 사유만큼 그의 삶도 이 사진처럼 선명하지 않았을까? [인상깊은구절] "'텍스트'는 아무 것도 이야기할 수 없다. 그것은 나의 육체를 나라고 하는 상상적 인격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외딴 장소를 향하여, 일종의 기억없는 언어를 향하여 실어간다. 기억없는 언어는 이미 '민중'의 언어이고, 비주체적 대중(혹은 일반화된 주체)의 언어이다." |
|
'영원한 작가' 롤랑 바르트다운 자서전이다.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1975)는 알파벳 순서대로 나열된 단상들로 자신의 개인생활, 미학사상, 철학관점 등을 소개하고 있다. 바르트가 즐겨 사용하는 알파벳 순서에 따라 흘러가는 단상은 책이나 작품을 구성한다기 보다는 바르트 자신이 추억과 환상으로부터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을 모아놓은 앨범집에 가깝게 여겨진다. 바르트와 그의 삶을 설명하는 단상들은 능동적/반응적, 형용사, 안락, 유추의 악마, 흑판에서, 돈, 아르고 선(船), 오만, 점치는 승려의 제스처, 선택이 아니라 동감, 진리와 단정, 산책차, 술래잡기 놀이를 할 때, 왼손잡이 등이다. 잘 알다시피 바르트는 니체와 들뢰즈를 따라서 '방법'과 '교양'을 대립시킨다. 여기서 방법은 합리적인 설명체계로서 체계적이고 논리적이고 예측가능하지만, 교양은 무의식적인 '길들이기'로서 비체계적이고 몽상적이고 예측불가하다. 방법과 교양의 대립은 과학과 환상의 대립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이 자서전은 바르트가 중시하는 '교양'과 '환상'의 그림을 잘 연출하고 있다. 롤랑 바르트(1915-1980)는 자신의 글쓰기 역사를 크게 사회신화, 기호학, 텍스트성, 도덕성의 네 단계로 구분한다. 첫번째 사회신화의 시기(1950-1957)는 마르크스, 사르트르, 브레히트의 영향 아래 사회신화를 탐구하던 시기로, 대표작은《글쓰기의 영도》(1953)와 《현대의 신화》(1957)다. 두번째 기호학의 시기(1958-1967)는 소쉬르의 영향을 받아 기호학 글쓰기에 매진하던 때로, 대표작은《기호학의 기초》(1965)와 《모드의 체계》(1967)이다. 세번째 텍스트성의 시기(1968-1972)는 솔레르, 크리스테바, 데리다와 라캉의 영향 아래서 텍스트성을 탐구하던 때로, 대표작은 《S/Z》(1970),《기호의 제국》(1970)과《사드, 푸리에, 로욜라》(1971)이다. 마지막 도덕성의 시기(1972-1980)는 니체의 영향력 아래서 윤리와 정념을 탐구하던 때로, 대표작은 《텍스트의 즐거움》(1973)과《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1975), 《사랑의 단상》(1977)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