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0)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7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3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9.0
  • 40대 8.0
  • 50대 8.0

포토/동영상 (3)

리뷰 총점 종이책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내용보기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이 중요한 질문을 하면서 식탁의 음식을 먹는 이는 얼마나 될까. 아마 차리는 이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인도 출신의 물리학자이자 세계적 환경 사상가, 환경 운동가 반다나 시바는 세계화와 GMO에 반대하며 경제 정의, 식량 정의, 젠더 정의를 옹호해왔다. 반다나 시바는 이 책을 통해 계속해서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라고 질문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내용보기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이 중요한 질문을 하면서 식탁의 음식을 먹는 이는 얼마나 될까. 아마 차리는 이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인도 출신의 물리학자이자 세계적 환경 사상가, 환경 운동가 반다나 시바는 세계화와 GMO에 반대하며 경제 정의, 식량 정의, 젠더 정의를 옹호해왔다. 반다나 시바는 이 책을 통해 계속해서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라고 질문한다. 산업농이 이 세계를 부양하고 있다고 세계적으로 홍보하고 있지만, 생산되는 식량의 30%만이 산업형 농장에서 나온 것이고, 나머지 70%는 자그마한 땅에서 일하는 소작농들에게서 나오고 있다고 한다.(p. 14) 한편, 산업농은 현재 지구 자연에 가해지는 생태 파괴에 대해 75%의 책임이 있다.(p. 14) 물론 인간 역시 이 생태 파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역설적이게도, 자연 자본에 대한 이런 식의 생태 파괴가 ‘사람을 먹여 살린다’는 명분으로 합리화되던 시기에, 굶주리는 인구는 도리어 증가했다. 현재 10억 인구가 계속 굶주림을 겪고 있고, 20억 인구가 비만 같은 음식 관련 질환으로 고통 받고 있다.(p. 16~ 17) 그러므로 우리 역시 계속해서 질문해야 한다.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반다나 시바는 이 질문을 통해 인간과 자연을 살리는 푸드 민주주의의 비전을 제시한다. 이를테면 화학 비료가 아니라 살아 있는 토양, 독과 살충제가 아니라 벌과 나비, 독성 어린 단일경작이 아니라 생물 다양성, 대규모 산업형 농업이 아니라 소농이라고 주장한다. 으레 세계화라고 하면 좋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반다나 시바는 세계화가 아니라 지역화라고 말한다.

 

생태적 푸드 시스템은 로컬 푸드 시스템이어서, 지역 내에서 기를 수 있는 것은 기르고, 남는 것이 있으면 밖으로 내보내며, 지역에서 자라지 못하는 게 있다면 다른 지역으로부터 들여온다. 지속 가능성과 정의는 반환의 법칙이 작동하는 사이클로부터, 로컬 푸드 생산 활동으로부터 자연스레 흘러나온다. 생명의 존속에 긴요한 지구 자원, 이를테면 생명 다양성과 물 같은 자원은 일종의 ‘공유재’ 내지 공통체의 공유 지대로서 관리된다. 생태 패러다임은 지상의 어느 누구도 제 먹을거리를 뺏기지 않게 하며,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들에 대한 측은지심을 길러 낸다.     (p. 13)

 

지금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건 측은지심인지도 모르겠다. 측은지심은 주위를 살펴보게 하고, 개선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다나는 바로 지역화를 주장하지 않고, 세계화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세계화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역화를 위한 우리의 행동을 촉구한다. 기업이 아니라 여성이라고도 주장하는데, 반다나 시바가 옹호해온 경제 정의, 식량 정의, 젠더 정의는 결국 하나의 정의로 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자신이 곧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변화가 되도록 하자. 독에 물든 푸드 시스템에서 생명력 넘치는 푸드 시스템으로의 전환에 우리 각자가 모두 기여하자. 그 어떤 농민도 자살해서는 안 된다. 그 어떤 어린이도 굶주림으로 죽어서는 안 된다. 그 어떤 사람도 음식 때문에 아파서는 안 된다. 지구 자연 그리고 지구 자연의 공동 생산자인 인류는 훌륭하고 건강한 식량을, 전체를 먹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 이제 우리 자신의 집합적 창조 에너지를 지구를 돌보는 식량이라는 미래를 설계하는 데 쏟기로 하자. 세계화된 농업과 그것의 전쟁 도구들을 통해서 지구 자연에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 지구와 함께 일하며 우리의 토양과 씨앗과 생물 다양성을 보호하기로 하자.     (p. 264~ 265)

 

우리는 지금까지 이런 문제를 다른 사람, 혹은 정치적 문제로 인식했다. 그러나 훌륭하고 건강한 식량을 다 같이 먹는 것은 ‘우리’의 문제다. 물론 우리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질문해야 한다.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어떻게 해야 식탁을 훌륭하게 차릴 수 있는가.

e******i 2017.12.08. 신고 공감 5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반다나 시바,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반다나 시바,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내용보기
식량 민주주의를 향한 유일한 대안은 ‘공생’이다- 반다나 시바,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반다나 시바는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책세상, 2017)라는 도전적인 제목의 책에서 산업농 패러다임에 근거한 거대 (농)기업들의 행태를 비판하고 있다. 산업농 패러다임은 전쟁에 뿌리를 둔다. “이 패러다임은 모든 곤충과 풀은 독으로
"반다나 시바,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내용보기

식량 민주주의를 향한 유일한 대안은 공생이다

- 반다나 시바,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반다나 시바는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책세상, 2017)라는 도전적인 제목의 책에서 산업농 패러다임에 근거한 거대 ()기업들의 행태를 비판하고 있다. 산업농 패러다임은 전쟁에 뿌리를 둔다. 이 패러다임은 모든 곤충과 풀은 독으로 박멸되어야 하는 일종의 적이라는 인식을 기초로 하며, 더 새롭고 더 강력한 폭력의 도구를 끊임없이 찾고 있다.”(11) 산업농 패러다임에서 보면, 자연은 살아 있는 유기체가 아니다. 자연은 죽은 사물과 다르지 않다. 더 많은 생산을 위해 더 많은 화학 물질=비료를 땅에 퍼붓는 농업 방식은 이러한 자연관에서 비롯된다. 산업농 패러다임을 이끄는 거대 기업들은 원래 전쟁 생화학 무기를 만들던 곳이었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 개발된 화학 물질들이 이제는 비료로 위장하여 자연을 파괴하는데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지은이는 착취의 법칙이 지배하는 산업농 패러다임의 맞은편에 반환의 법칙에 근거한 농생태학 패러다임을 세우고 있다. 농업의 이러한 생태적 패러다임의 기초는 생명, 그리고 생명의 상호 연결성이다.”(12) 이 패러다임은 소농들, 특히 여성이 실천하는 삶의 방식에 초점을 맞춘다. 이들은 반환의 법칙을 중시한다. 반환의 법칙은 자연과 인간=생명의 순환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이를테면 지은이는 씨앗의 반환 법칙은 살아 있는 씨앗의 순환을 지속시킨다.”(48)고 이야기한다. 터미네이터 씨앗처럼, 농기업들이 제공하는 씨앗은 이윤에 눈이 멀어 이러한 씨앗의 순환을 거부한다.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땅에 퍼붓는 화학 물질 또한 땅이 지닌 회복 능력을 무시한다는 점에서 반환의 법칙에 어긋난다.

 

인도만 놓고 본다면, 20년간 진행된 녹색 혁명으로 농업은 펀자브 지방의 비옥한 토양을 성공적으로 파괴했다. 이 지방의 농토는 수백 년 동안 수세대에 걸친 농가의 힘으로 유지되었고, 세계적인 전문가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인도 내 기술이 농지를 대체할 수 있고 화학 물질이 비옥한 유기적 토양을 대신할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유지될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 매년 240억 톤의 비옥한 토양이 세계 농업 시스템에서 사라지고 있다. 인도는 매년 66억 톤, 중국은 55억 톤, 미국은 30억 톤의 토양을 소실하고 있다. 사실 전 세계 토양은 자연적으로 재상될 수 있는 속도보다 10~40배 빠른 속도로 소실되고 있다. 소실되는 토양의 양분은 매년 200억 달러(20조 원) 규모에 이른다. 화학적 단일경작은 또한 농토를 가뭄에 더 취약하게 만들어 식량 불안에 일조한다. 이러한 토질 악화가 가져오는 결과는, 활용 가능한 청정수의 감소, 해당 지역의 기후 변화, 식량 불안, 그리고 빈곤에 노출될 가능성의 증가다. 오늘날 전 세계의 15억 인구가 이미 토지 소실로 수입 감소, 식량 불안 등 직접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 토질 악화 현황에 따르면, 우리가 계속해서 지구의 살아 있는 토양을 파괴할 경우 다음 20~50년 간 지구의 식량은 현재보다 30% 감소하게 될 것이다. (58~9)

 

비료가 더 많은 식량을 가져다 줄 거라는 농기업들의 주장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거짓으로 밝혀졌다. 지은이는 20년간 진행된 인도의 녹색 혁명이 펀자브 지방의 토양을 완전히 파괴했다고 이야기한다. 오늘날 매년 240억 톤의 비옥한 토양이 세계 농업 시스템에서 사라진다는 지은이의 얘기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순환이 되지 않는 땅은 가뭄에 특히 약하다. 우리 땅이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봄과 여름만 되면 연례행사처럼 농민들은 말라가는 땅에 가슴을 끓이고 있다. ‘생산량 증대라는 환상이 땅을 파괴하고, 그 결과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가난으로 내몰린다. 농사를 짓는 이들이 도리어 먹을거리 걱정을 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생산량 증대라는 슬로건으로 시작된 녹색 혁명의 실패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땅에서 사는 무수한 유기체들은 자연의 건강을 나타내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지은이는 건강하고 비옥한 토양은 건강한 식물을 만들며, 건강한 식물은 건강한 인간을 만든다.”(60)고 강조한다. 인간의 건강은 비옥한 토양에 달려 있다. 땅 속에 사는 무수한 유기물들이 인간의 건강을 이끄는 중요한 생명체라는 사실은 여러 번 강조될 필요가 있다. 화학 비료가 무분별하게 사용되면서 땅에 있는 유기체들이 하나하나 사라지고 있다. 말 그대로 시간이 흐를수록 땅은 죽어가고 있다. 땅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인간도 죽는다. 아인슈타인은 꿀벌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인간도 멸종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남겼다. 화학 물질로 오염되는 토양 문제를 생명의 문제로 다뤄야 하는 이유는 여기서 분명해진다고 하겠다.

 

화학 물질=비료를 팔아야 이윤을 남기는 농기업들은 산업농 패러다임에 걸맞은 단일경작을 주장하고 있다. 인류는 지금까지 7,000종이 넘는 생물들을 먹으며 생활해 왔다. 하지만 단일경작이 보편화된 오늘날 인류는 단 30종의 작물에서 90%의 칼로리를 제공받고 있다. 겨우 3종의 작물(, , 옥수수)이 칼로리 섭취의 50%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103)는 지은이의 주장은 충격적이다. 실제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음식들을 생각해 보라. 우리는 지금 생물 다양성이 급속하게 붕괴된 먹을거리 상황에 직면해 있다. 농기업들은 단일경작이라는 명목으로 이윤이 남는 곳에 자본을 투자한다. 생물 다양성을 중시하는 소농들은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 정책적으로 시행되는 단일경작 방식은 농업을 농기업의 통제 아래 둔다. 농기업의 정책 방향에서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소농들은 이내 법적인 처벌을 받고 범죄자가 되어버린다.

 

생물 다양성을 침식해온 기업의 종자 독점은 획일성과 단일경작을 기본으로 하는 생산 패러다임의 결과물이다. 나는 이 패러다임을 정신의 획일화Monocultures of the Mind’라고 불러왔다. 세계를 이해하는 데는 복수의 다양한 지식 체계들이 필요함에도, 이 정신의 획일화는 세계에 대한 단 하나의 앎의 방식, 즉 환원주의적이고 기계론적인 암의 방식을 강요한다. 그 다양한 지식 체계에는 자연을 동반자 삼은 노동과 경험과 실천에서 나온 지식과 전문 기술이 포함된다. , 여성들과 노동자들의 지식, 농민들의 지식이 포함되는 것이다. 이러한 지식 체계는 본래 복수이고 또 다양하다. 그러나 상품화될 수 있고 특허권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식량과 작물을 키우는 단일경작이 생태적 생물 다양성을 대체하게 되면서, 그리고 정크 푸드의 획일 문화가 풍부한 다양성을 지닌 음식 문화를 대체하게 되면서, 인간의 정신 역시 축소되어 획일화되고 있다. 정신의 획일화는 환원주의적이고 기계론적인 패러다임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세계의 다양성에 대한 무지를 낳는다. 기계론적 사고에 기반을 둔 이러한 획일화는 세포, 유기체, 생태계, 마을 공동체의 진화 잠재력과 지성에 대해 무지하다. 또한 농생태계 내부의 다양한 생명 구성 인자들 간의 유대와 협동에서 발생하는 생태 기능들에 대해서도 무지하다. 그리고 획일성이라는 악순환 속에서, 정신의 획일화는 단일경작을 영속시킨다. (105~6)

 

생물 다양성이 파괴된 이면에는 거대 농기업들의 종자 독점이 도사리고 있다. 종자 독점은 단일경작을 기본으로 하는 생산 패러다임의 결과로 나타난다. 지은이는 이 패러다임이 인간을 정신의 획일화Monocultures of the Mind”에 빠뜨렸다고 주장한다. 자연을 죽은 대상으로 보는 근()대인들의 사고방식은 이러한 획일화된 정신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들에게 자연은 죽은 대상이므로 생물 다양성이 적용될 필요가 없다. 이윤만 난다면 자연이야 파괴되든 말든 상관없다. 인간의 문명이 풍요로워진 그만큼 자연은 끔찍하게 파괴되었다. 문명과 자연을 둘로 나누고 문명에 중심을 두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인간을 정신의 획일화에 빠진 불구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지은이는 생물 다양성이 회복되려면 우선 농기업들의 종자 독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종자는 씨앗이다. 씨앗은 먹을거리 공급 사슬의 첫 번째 연결 고리이자 미래를 향해 가는 생명의 진화가 저장돼 있는 곳이다.”(147) 지금까지 인류는 농사를 짓는 소농들을 통해 이 종자=씨앗을 보존해 왔다. 올해 심은 작물에서 좋은 씨앗을 골라내 다음 해에 사용하는 방식을 취해온 것이다. 이러한 씨앗의 순환구조는 씨앗을 이윤의 대상으로 판단한 농기업들이 씨앗을 독점하면서 사라져버린다. 농민들은 이제 유전공학 기술로 만들어진 씨앗을 해마다 돈을 주고 사야 한다. 농민들이 좋은 씨앗을 개발해도 그들은 그에 맞은 보상을 받지 못한다. 정부가 종자에 대한 농기업들의 특허권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농기업들의 종자를 사용하지 않는 자작농들이 특허권 문제로 농기업들에 고소당하는 상황을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다. 미국의 한 농부는 자기가 재배하는 작물이 대표적인 농기업인 몬산토의 라운드업 레디 캐놀라에 유전적으로 감염되는 피해를 입었는데도 보상은커녕 도리어 기업에 고소를 당했다. ‘소유권을 훔쳤다는 게 이유였다. 법원은 몬산토의 손을 들어주었다. 농기업과 정책 당국의 방향성이 맞아 떨어진 결과이다. 지은이는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은 종자 독립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종자 독립은 농민들이 육종한 토종 씨앗들을 보존하고 교환할 의무다. 이는 종자 주권이기도 하다.”(167~8) 이를 위해 그녀는 부당한 종자법에 대한 종자 사티야그라하를 선언한다. ‘사티야그라하Satyagraha’는 간디의 비폭력 저항 운동에서 나온 방식으로 진실함을 고집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종자 독립이라는 진실을 위해 비폭력으로 종자 독점에 저항한다는 정신이 이 말에는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산업농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농생태학 패러다임은 자유무역에 토대를 두는 세계화에 반대한다. 자유무역은 선진국의 자본으로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의 농업구조를 철저하게 파괴하는 상황을 만든다. 자유무역은 기업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기업의 목표는 이윤이다. 세계화는 전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만든다. 시장은 물건=상품을 파는 곳이다. 자급자족이 이루어지면 시장의 기능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은이는 케냐와 멕시코를 예로 들어 자유무역을 한 대가로 이들 나라의 식량 자립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세계를 단일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의 식량 자립을 망가뜨리는 경제 정책이 자유무역을 통해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지은이는 세계화 20년은 우리에게 농업 위기, 식량 위기, 감염병, 음식 폐기물, 그리고 점점 더 심각해지는 생태 위기를 남겼다.”(214)고 말한다. 세계화 이념으로는 진정한 식량 민주주의에 이를 수 없다는 게 밝혀진 것이다. 지은이는 지역경제를 그 대안으로 내세운다. 지역경제는 기업이 아니라 여성이 이끈다. 여성은 씨앗, 생물 다양성, 영양에 관해 광대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218)는 말에 나타나는 대로, 지은이는 산업농 패러다임을 벗어나는 틀을 여성들이 일상에서 실천하는 농생태학 원칙에서 찾고 있다. 일상 속에서 이미 농생태학 원칙을 실천하는 여성을 자연스레 지역경제의 주체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가부장제의 남성성에 근거한 산업농 패러다임이 자연을 멋대로 파괴했다면, 여성의 일상을 대변하는 농생태학은 자연을 살아 있는 유기체로 인식한다. 지은이는 도시 텃밭, 농부 시장, 제로 킬로미터 운동, 지역공동체 지원 운동CSA’ 등을 우리가 일상에서 실천할 만한 지역화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지역경제를 살리는 길이 우리 일상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지은이는 무엇보다 강조한다. 여성의 삶=일상에서 식량 민주주의의 미래를 찾는 지은이의 생각은 이런 맥락에서 뻗어 나오고 있는 셈이다.

 

지은이는 책 제목을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형태로 지었다.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린 이는 농기업들이 아니라는 걸 그녀는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그들은 이 세계의 식탁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지은이는 식탁의 주인으로 여성을 불러낸다. 여성을 꼭이 생물학적 성으로 판단할 필요는 없다. 가부장제에 근거한 남성적 폭력의 세계를 벗어나는 대안으로 지은이는 여성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식량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 여성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인간과 자연을 살리는 푸드 민주주의의 비전(책 표지)을 제시하는 존재이다. 자연이 살아야 인간이 사는 원리를 여성은 일상에서 실천해 왔다.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바로 자연과 인간의 공생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라는 걸 지은이는 여성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o*****s 2017.12.05. 신고 공감 3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서평]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 인간과 자연을 살리는 푸드 민주주의의 비전
"[서평]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 인간과 자연을 살리는 푸드 민주주의의 비전" 내용보기
가난할지언정 배고픔은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범지구적으로 살펴볼 때 여전히 기아(굶주림, 영양실조 포함)에 허덕이는 인구가 10억에 달하는 반면, 너무나도 잘 먹어서 비만, 당뇨같은 질병에 걸린 인구가 20억이라니 아이러니하다. 현재 생산되는 식량 중 30%가 산업형 농장에서 나오고 나머지 70%는 소농에서 나온다고 하는데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생태계 파괴의 책임
"[서평]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 인간과 자연을 살리는 푸드 민주주의의 비전" 내용보기




가난할지언정 배고픔은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범지구적으로 살펴볼 때 여전히 기아(굶주림, 영양실조 포함)에 허덕이는 인구가 10억에 달하는 반면, 너무나도 잘 먹어서 비만, 당뇨같은 질병에 걸린 인구가 20억이라니 아이러니하다. 현재 생산되는 식량 중 30%가 산업형 농장에서 나오고 나머지 70%는 소농에서 나온다고 하는데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생태계 파괴의 책임을 75%가 산업농이 지고 있다. 즉, 산업농에 의해 전 세계를 부양하고 있다는 건 잘못된 허구일 뿐이다. 마트 진열창을 잠식하고 있는 가공품들은 대량 생산을 해내기 위해 그만큼의 천연 자원을 소비해야 얻을 수 있다. 영양 위기를 가져온 것은 필요한 영양소 공급을 제한하고 패스트푸드의 확산으로 그 상황은 비만과 당뇨와 같은 질병에 걸린 인구에서도 알 수 있듯 거대 푸드 시스템은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식탁에 올라오는 농산물만 해도 원산지가 국내산인 경우 보다는 중국산, 스페인산, 뉴질랜드산, 칠레산 경우가 많다. 그래서 건강한 밥상을 차리기 어렵다는 얘기도 나온 적이 있는데 이 책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직접 먹는 음식만큼은 자연 그대로의 건강한 식재료를 먹어야 한다는 걸 일깨워주고 있다. 그래서 소농으로 얻는 농작물이 인간과 자연을 살리는 길이라고 역설한다. 자유 무역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에 대해 궁금했는데 이 책을 읽고 있으면 글로벌 기업들이 생태계 교란과 농민들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을 가하고 있는 점은 크게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올해 처음 주말농장을 하면서 느낀 건 직접 기른 신선한 채소를 먹을 때 행복하다는 점이었다. 지금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농생태약이며 살아 숨 쉬는 토양과 꽃가루 매개자들, 그리고 자연의 다양성 속에서 소농으로 농사짓는 가정, 텃밭 일꾼을 들 수 있다. 특정 집단에게 독점적이지 않은 씨앗과 농사 짓기 좋은 지역성, 여성 등을 주제로 이와 같은 현실에서 푸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해주고 있다. 


의식주 중에 하나인 먹는 문제는 정말 중요한 문제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건강한 과정을 거쳐서 식탁에 올라오는 지, 정직하게 가공해서 포장된 식품인지 따지고 들면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마지막 장은 '푸드의 미래, 우리의 선택'에서는 현실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9단계의 전환 과정에서 그 대안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푸드 민주주의의 확립으로 대기업에게 의존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새로운 농법 패러다임과 푸드 시스템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농식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저자가 제시하는 문제의식에 깊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특정 기업이나 지역에서 독점한다는 건 모두가 더 나은 음식물을 먹을 기회가 줄어드는 셈이다. 이전에는 심각성을 제대로 알지는 못했는데 산업농의 만행과 그리고 인해 생태계 파괴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하루 속히 건강하게 키운 농식물만 식탁에 오르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이달의 사락 c******d 2017.12.07.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인간과 자연을 살리는 푸드 민주주의의 비전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인간과 자연을 살리는 푸드 민주주의의 비전" 내용보기
생각을 바꾸고 삶의 방향을 달리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 책이다. 그런 책을 갈망한다. 내가 지금껏 생각하던 것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힘, 그런 힘으로 나를 변화시키기를 바라며 책을 펼쳐들곤 한다. 이번에 읽은 책《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는 '푸드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주는 신선함 때문에 선택해서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인간과 자연을 살리는 푸드 민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인간과 자연을 살리는 푸드 민주주의의 비전" 내용보기

생각을 바꾸고 삶의 방향을 달리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 책이다. 그런 책을 갈망한다. 내가 지금껏 생각하던 것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힘, 그런 힘으로 나를 변화시키기를 바라며 책을 펼쳐들곤 한다. 이번에 읽은 책《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푸드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주는 신선함 때문에 선택해서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인간과 자연을 살리는 푸드 민주주의의 비전을 엿보는 시간을 가진다.

 

 

이 책의 저자는 반다나 시바. 인도 출신의 물리학자이자 세계적인 환경 사상가, 환경 운동가, 세계화와 GMO에 반대하며 경제 정의, 식량 정의, 젠더 정의를 옹호해왔다.

이 책《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는 지난 30년간의 연구와 활동의 증류물이자 전 지구적 전환에의 요청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패러다임 전환, 권련 전환이다. 기업의 탐욕이 만들어낸 산업농은 우리에게 지속 가능성과 건강을 보장하지 않으며, 보장할 수도 없다. 반면 우리는 농생태학으로 전환할 수는 있다. 종자를 보존하고 토양에 생명을 되돌려주고 생물 다양성을 더욱더 풍요롭게 만들고 소농과 여성들을 보호함으로써,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우리의 식탁을 풍성하게 차릴 수 있다. (31쪽)

 

이 책은 총 9장으로 구성된다. 1장 '폭력적인 지식 패러다임이 아니라 농생태학', 2장 '화학 비료가 아니라 살아 있는 토양', 3장 '독과 살충제가 아니라 벌과 나비', 4장 '독성 어린 단일경작이 아니라 생물 다양성', 5장 '대규모 산업형 농업이 아니라 소농', 6장 '종자 독재가 아니라 종자 독립', 7장 '세계화가 아니라 지역화', 8장 '기업이 아니라 여성', 9장 '푸드의 미래, 우리의 선택'으로 이어진다. 옮긴이 해제 '온전한 자연과 식과 인간, 셋이 아닌 하나'로 마무리 된다. 각 장의 제목을 보면 지금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푸드 생태계의 비전을 제시한다.

 

지금 우리는 점점 더 심화되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원인은 식량을 생산하고 가공하고 유통하는 현재의 방식이다. 탐욕과 이윤을 동력으로 하는 세계화된 산업형 농업이 지구의 안녕과 사람들의 건강과 사회의 안정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비효율적이고 낭비적이며 지속 가능하지 않은 모델의 식량 생산이 지구 자연과 지구 자연 내 생태계들, 그리고 다양한 생물 종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9쪽_들어가는 글 中)

들어가는 글의 첫 문장을 보며 덜컥 겁이 났다. 건강한 식량이 아님을 알면서도 편리함이나 입맛을 자극하니까 익숙함에 그냥 먹어왔던 수많은 음식들이 떠올랐다. 나처럼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그저 시대에 편승하고 바쁘다는 핑계에 좀더 신경쓰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아마 모두들 함께 공감하며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질문으로 시작해보기를 권한다. '지금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함께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하며 계속 읽어나간다.

 

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이 책은 음식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을 달리 하게 만든다. 음식에 대해서 근시안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던 것을 이 책을 계기로 좀더 넓은 시각으로 살펴본다. 음식뿐만 아니라 음식 생산에 관한 문제까지 포괄적으로 생각해본다.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미가 크다. 특히 관련 분야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 인간과 생태 환경, 먹거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이 책에서 지금껏 보지 못한 세상을 보는 시선을 제공해줄 것이다.

s*****a 2017.12.05. 신고 공감 1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내용보기
건강하게 먹고 살기 위하여GMO사료를 먹고 인도에서 소가 삼천 마리가 죽었다는 충격적인 기사를 접하고 GMO의 위험성을 알게 되었다.GMO의 수입을 허용한 이후로 먹을거리를 사 먹을 때 원산지가 어딘지 따지며 구매하게 되었다.농약의 위험성은 DDT이후로 꾸준하게 경고된다. 이번 살충제 계란 논란에서도 토양오염이 생태적으로 키운 닭을 오염시키는 결과를 보면서 건강하게 음식을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내용보기
건강하게 먹고 살기 위하여

GMO사료를 먹고 인도에서 소가 삼천 마리가 죽었다는 충격적인 기사를 접하고 GMO의 위험성을 알게 되었다.
GMO의 수입을 허용한 이후로 먹을거리를 사 먹을 때 원산지가 어딘지 따지며 구매하게 되었다.
농약의 위험성은 DDT이후로 꾸준하게 경고된다. 이번 살충제 계란 논란에서도 토양오염이 생태적으로 키운 닭을 오염시키는 결과를 보면서 건강하게 음식을 먹는 다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은 건강한 먹거리를 위해 지구오염을 막기 위해 농생태학 방식이 좋다고 이야기 한다. 인도를 배경으로 써졌지만 기계농 식량 문제에서 우리나라 역시 피해 갈 수 없기 때문에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된다.
대량생산으로 먹거리는 풍요로워졌지만 정말 그것이 우리에게 이득일까? 이 책을 대량생산이 아니라 소농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과거에 재배된 사과만큼의 영양분을 획득하려면 수십 개의 사과를 먹어야 동등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대량생산으로 먹거리는 넘칠지언정 그 가치는 같지 않다. 재배의 기초는 토양이고 토양이 키우는 식량은 한계가 있다. 그것은 화학비료를 이용해 억지로 키우고 있다. 그것이 과연 건강한 먹거리일까?
농토를 걷다보면 단일 경작이 일반적으로 보여서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단일경작이 생산량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연 속에서 다양한 식물이 함께 살아가듯 종 다양성을 추구해 식량을 키우는 것이 서로에게 건강한 방식이라는 점을 알고 놀라웠다.
미래에는 식량자원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보았는가 그래서 우리나라 역시 식량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된다는 것도 많이 보았다. 인간의 소유물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생명체도 누군가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 종자 독립은 한번 생각해봐야할 문제이다. 왜 식량 민주주의라고 표현했는지 알겠다.
도시에서 자랐기 때문에 여성적 농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기업의 방식이 변해야 한다는 것은 공감이 갔다.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식량 생산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이다. 반다나 사나의 연구의 결과물인 이 책은 건강한 식량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바꿔할 점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하는 책이다.

(이 리뷰는 제작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v********3 2017.12.08.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식탁의 주권을 찾는 방법
"식탁의 주권을 찾는 방법" 내용보기
한 끼 식사가 최근 화두가 되고 있다. 수많은 프로그램에서 맛있는 것 혹은 몸에 좋은 것을 표방하면서 전국으로 해외로 나가서 음식을 먹고 만드는 것을 찍고 있다. 한 끼 식사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누군가와 한 끼 식사를 한다는 것은 그 순간만큼은 건강하기 위한 시간을 공유한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식탁에는 어떤 것이 올라올까. 대한민국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씨앗에 대
"식탁의 주권을 찾는 방법" 내용보기

한 끼 식사가 최근 화두가 되고 있다. 수많은 프로그램에서 맛있는 것 혹은 몸에 좋은 것을 표방하면서 전국으로 해외로 나가서 음식을 먹고 만드는 것을 찍고 있다. 한 끼 식사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누군가와 한 끼 식사를 한다는 것은 그 순간만큼은 건강하기 위한 시간을 공유한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식탁에는 어떤 것이 올라올까. 대한민국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씨앗에 대해 무지했었다. 90년대에 들어서야 조금씩 종자에 관심을 가지고 지속 가능한 한국음식의 재료에 예산을 투입하고 관리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식탁을 차지하는 음식 중 쌀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해외에서 건너온 것들이다. 특히 미국에서 건너온 수많은 음식의 재료들은 대규모 산업농 기반 아래 재배된 것들이다. 대량생산이 좋다는 말에 속아 마치 대량생산을 거치면 음식값이 싸지고 품질은 표준화되며 우리의 식탁은 안정적으로 공급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과연 그럴까. 세계화 속에서 우리의 식량 주권은 생각보다 빠르게 잃어가고 있다. 불과 수십 년 사이에 종자의 70% 이상의 다양성이 사라져 버렸다.


이 책은 인도의 물리학자이며 환경운동가인 반다나 시바가 주장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객관적으로 기술한 부분이 적지 않고 지금의 기업화 논리가 미래지향적이지 않다는 부분에 충분히 동의할만하다. 1차 세계대전 때 많은 사람들은 한꺼번에 죽일 수 있는 독가스를 개발한 독일의 과학자 하버가 질소를 개발한 것은 식량을 많이 생산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날 무렵 칠레를 경제적으로 부강하게 만들어준 질소의 원료인 칠레 초석은 머지않아 바닥을 보일 터였다.

 

우리가 땅에서 재배하는 작물은 수확을 하게 되면 토양의 질소를 가져가 다시 돌려보내지 않는다. 즉 토양의 질소가 부족해지는 사태가 벌어진다. 그래서 비료를 사용하여 재배 중인 작물에 질소를 공급하였는데 이것도 한계가 있었다. 공기 중에 있는 질소를 고정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질소 분자(N2) 자체는 질소 원자 두 개가 삼중 결합을 하고 있어서 식물이 이용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게 결합이 되어 있는데 이를 암모늄 이온의 형태로 만들기 위해서는 높은 압력과 열을 가해야 하지만 하버가 개발한 촉매를 이용한 방식은 더 낮은 온도에서 암모니아를 합성할 수 있었다.

 

하버가 만들어낸 합성법으로 인해 농업에서의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높아졌지만 그 결과 토양은 자생력을 잃어갔다. 쉽게 표현하자면 살아 있는 인간의 좀비 화가 된 것과 유사하다.  질소의 결합을 끊을 수 있는 효소를 가진 토양 미생물인 질소 고정 세균이나 지렁이, 토양 속 작은 동물들은 농약 사용으로 죽어갔고 더 많은 생산을 끌어내기 위해 대규모화되고 기름은 더 많이 사용하며 자본의 투자는 더 거대해졌다. 산업농 패러다임의 근본은 착취와 지배에 있다. 그러면서 아프리카와 식량 빈국에서의 삶은 더 피폐해져 갔다.

 

마트나 이런 곳을 가보면 생산자 이력 추적제도 있지만 수많은 가공식품이 어떤 원료로 생산되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식량은 생명이지만 기업은 생명이 아닌 소비자 그 자체로만 본다. 우리의 식량을 어디서 길러내고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그 속에는 무엇이 담겨 있는지 알지 못한다. 과학의 신화 아래 만들어진 유전자 조작 씨앗인 GMO가 도입될 때 이 세계를 먹여 살린다는 명분으로 들어왔다. 연구 결과 GMO는 해충을 죽이지도, 생산량을 증대하지도 못하며 되레 생산량을 감소시키며 새로운 슈퍼 해충, 슈퍼 잡초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그런데도 왜? 투자 대비 생산량이 많은 것처럼 보이는지 궁금한 사람들은 미국이 기업농에 지원하는 엄청난 세금에 초점을 맞추면 된다. 

 

앞서 발견한 하버의 합성법으로 인해 살상 무기 기업에서 산업농으로 변신한 기업들은 질소 고정 설비를 갖춘 공장들은 합성 비료를 사용할 시장을 창출해냈다. 겉으로는 평화로운 전환을 한 것 같지만 오랜 시간 그 합성비료는 지구의 토양을 성공적으로 파괴해 갔다.

 

미소 식물이 득시글대는, 건강한 생명력을 갖춘 토양은 건강한 식물들을 길러내기 마련이며, 이러한 식물들은 동물과 인간의 입으로 들어가 동물과 인간에게 건강을 선사하다. 하지만 비옥하지 않는 토양, 즉 미생물류와 균류 및 또 다른 생명체들이 충분치 않은 토양은 식물에 모종의 결핍을 고스란히 전하고, 그러한 식물은 모종의 결핍을 동물과 인간에게 전하게 될 것이다. - 하워드

 

한국에서도 착취와 지배는 유통기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농가들은 안정적인 공급처를 찾아 이들에게 불공평한 계약을 참아내야 했다. 화학 농법과 유전공학을 사용하여 단일 경작을 주장하는 농기업들은 효율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상 그렇지가 않다.

 

단일 경작이 이용 가능한 값싼 식량이 더 많이 생산된다는 주장의 허구성

 

첫째, 단일 경작은 완전무결한 생태계와 여러 작물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총 생태계 수확량이 아니라, 단일 작물이라는 부분에만 초점을 맞춘다.
둘째, 산업형 경작은 사람들이 실제로 먹는 다양한 작물이 아니라 한두 개의 글로벌 상품에만 수확에만 집중한다. 여기서 초점이 높이는 부분은 단위 면적당 영양분이 아니라 수확량인데, 사실 지금 우리는 산업농의 결과로써 단위면적당 영양분이 감소한 시대를 살고 있다.
셋째, 유전자 변형을 포함하는 산업형 경작은 자연자원들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고 또 허비한다. 만일 생산성이 자연 자원 사용에 근거해 산정된다면, 산업농의 생산성은 매우 낮은 셈이다.
넷째, 핵심적인 것으로 화학 물질 집약적인 단일 경작 농업과 유전공학은 생물 다양성 집약적인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생태학적 대안보다 더 적은 양의 식량을 생산한다.

 

 

 

인간뿐만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은 존귀한 것이다. 살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먹어야 하고 무언가를 먹는 것은 실로 의미 있는 일이다. 우린 먹는 것을 너무 경시해온 듯하다. 잘 먹어야 사는데도 불구하고 먹는 것에 대해 생각보다 무관심하다. 먹고 사는 것과 잘 사는 것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게 살아오지 않았나 다시 돌아보게 된다.

c****d 2017.12.03.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내용보기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이라는 책을 읽은 후 채식주의자로 전환한지 10여년이 되었다. 몸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근거는 없지만, 심리적으로 육식주의자보다는 더 건강하지 않을까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만은 확실하다.1977년 미국 상원 의원은 ‘가공육류와 닭고기가 미국인이 7초에 한 명씩 걸리는 암의 원인이다. ‘라고 했듯 지나친 육식은 우리 몸에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내용보기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이라는 책을 읽은 후 채식주의자로 전환한지 10여년이 되었다. 몸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근거는 없지만, 심리적으로 육식주의자보다는 더 건강하지 않을까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만은 확실하다.

1977년 미국 상원 의원은 가공육류와 닭고기가 미국인이 7초에 한 명씩 걸리는 암의 원인이다. ‘라고 했듯 지나친 육식은 우리 몸에 긍정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육체 노동이 필요 했기 때문에 근력이나 지구력이 필요 했지만, 현재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힘쓰는 일보다는 뇌를 쓰는 일이 많아져, 인간이 굳이 육체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이기에 힘이 좋은 것 보다는 혈관이나 위가 좋은 것이 더 좋은 것이라며 자위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저자는 채식주의자라 하더라도 어떤 음식을 먹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참고로 저자는 인도출신의 세계적인 생태 사상가이다.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은 모두 엇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상은 누가 재배했느냐, 어떤 씨앗으로 재배 했느냐? 어디에서 재배 했느냐? 유기농 제품여부 등에 따라 매우 다르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것들이 어떻게 다르고 현명한 소비자라면 어떻게 행동 해야 하는지 알아보자.

 

문명의 발달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지구촌이라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만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미국에 친구가 살고 있다 하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하루 만에 만날 수 있고, 미국 농부가 재배한 곡물을 중국 소비자가 손 쉽게 구입할 수도 있다.

이렇다 보니 인간의 탐욕에 의해 재화의 재분배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저자의 표현처럼 70억명이 살고 있는 지구촌에서 10억명이 넘은 인원은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사람답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반면, 20억명이 넘은 인원은 영양 과잉 공급으로 비만과 당뇨로 사람답지 않는 삶을 사는 아이러니를 보이고 있다. 더 어이없는 사실은 10억명의 굶주린 사람 중 절반이상이 식량을 생산하는 농부라는 사실이고, 더 기가 막힌 사실은, 세계 식량 생산량의 30%는 버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식량의 재 분배가 제대로 되었다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건데 안타깝다.

재화의 재 분배 문제는 과거부터 지속된 문제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감안 하더라도, 산업농의 출현이 재화의 재 분배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가져왔다.

 

수 만 년 동안 농업은 자연 시스템을 거슬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순환하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녹색혁명과 산업농들은 지금까지의 농업에 대한 패러다임을 한 순간에 바꾸고 있다. 과학으로 농업을 발달시켜 이 세상에 굶주림은 없애겠다는 미명아래 농업 생태계를 유린하고 있는 것이다. 유린 형태를 보면

첫째 해충을 없애기 위해 인간에게도 해가 있는 유독물질을 농약으로 사용하여 해충은 물론이고 인간까지 위협하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살충제는 전쟁 중 화학전에서 유래된 것이고, 대부분의 살충제 회사(뒤퐁, , 유니언 카바이드, 바젤, 아메리칸 시안 아미드, 론 풀렌 등)는 제약회사와 종자회사라고 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살포되는 농약은 1%만 표적에 작용하고, 나머지 99%는 생태계에 악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중국 모택동이 1958년 대 약진 운동 때, 벼를 쪼아 먹는 참새는 해로운 새라며 참새박멸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 2억 천만 마리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생각대로 라면 1959년에는 수확량이 현저하게 늘었어야 했다. 그러나 엄청난 흉년이 들어 4천만 명이 아사한 참사가 발생했다.

단순한 해충, 해로운 참새로 보이지만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생태계는 정교하게 되어 있고, 이 시스템이 파괴되면 지구에 엄청난 재앙이 되어 돌아 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둘째 토양에는 수 많은 균들이 존재하고, 나름대로의 시스템에 의해 유기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생산량 증대를 위해 화학비료를 과도하게 사용함으로 토질이 악화되어 토양손실과 청정수 감소, 기후 변화, 식량불안 등이 가속화 되고 있다.

미생물들이 유기적인 작용을 통해 질소를 생산하여 식물에게 조달해줘야 하는데, 화학비료는 인위적으로 공기 중에 있는 질소를 공급함으로 미생물의 시스템을 깨뜨리고 있는 것이다. 화학비료를 사용하면 미생물들이 모두 죽어버린다고 한다.

운동이나 식단 조절로 건강한 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수술이나 약으로 건강한 몸처럼 만드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식토가 풍부하여 흙 속에 미생물들이 많으면 전자이고, 그렇지 않으면 후자에 속한다.

건강한 흙이 건강한 식물을 생산한다.’는 하워드의 말이 진리라고 생각한다.

셋째 종자회사들이 GMO라는 유전자 변형 씨앗을 개발하면서 기존 씨앗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미국의 몬산토라는 회사는 세계 종자 시장의 23%, 옥수수는 80%, 콩은 93% 독점하고 있다. GMO는 제초제의 내성과 곤충 저항력을 갖도록 되어 있는데 오히려 더 억제하지 못 하고, 더 많은 농약을 필요로 한단다.

지구상에 7천여종의 작물이 존재 했는데, 현재는 30여 종만이 인류의 식단에 오르고 있다. 다종경작이 단일 경작보다 훨씬 생산량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효율성 때문에 산업농들은 단일경작을 장려한다. 저자는 단일경작=화학물질=자살 이라는 상관관계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가속화 되고 있는데 대안은 무엇인가?

첫째 - 식량 안보의 미래는 소규모 농업을 보호하고 진흥하고 육성하는데 있다.

산업농들이 지구촌 대부분의 먹거리를 공급하는 것 같았는데, 실상은 30% 밖에 공급하지 못하고 나머지 70%는 소농들의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놀랍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텃밭, 베란다 식물을 70억명이 조금씩만 재배 한다고 가정하면 생산량은 상상을 초월할 것 같기도 하다.

둘째 다양한 토착 씨앗을 지키는데 있다.

기업들이 이윤을 위해 HYV(고수확 품종-> 고반응 품종으로 화학물질과 화학 비료 의존도가 매우 높다), 하이브리드 종자(유전적으로 비슷하지 않는 종자를 교배시켜 새로운 종자를 만들었는데 이것들은 종자 증식이 불가 하다), GMO(유전자 조작을 통해 DNA를 재 조합하여 만들었으나 독을 방사한다.)가 판을 치고 있는데, 이것들은 수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는 종자 회사들이 종자를 장악하려는 사악한 음모라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저자는 식량 민주주의는 종자 독립에 달려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셋째 농산물의 지역화이다. 세계화로 인하여 소수 몇몇 기업이 독점을 통해 수 많은 소비자와 농민들을 농락하고 있으므로 세계화 고리를 끊고 각 지역에서 생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저자의 충고다. 세계화는 잘 사는 나라, 잘사는 사람에게만 혜택이 있을 뿐 가난한 사람, 가난한 나라는 착취 당할 뿐이다. 인간을 보면 말도 못하게 사악한 존재인 것 같다.

넷째 여성의 농민화이다. 식량, 영양, 음식물의 재배와 공급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여성이 기업농에게 밀려있지만,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힘들게 농사를 지으라는 말이 아니라, 오로지 이윤에만 눈이 먼 기업에 대항하여, 영양공급과 생물 다양성, 생명유지의 이유를 들어 식량을 미래를 밝혀야, 식량도 여성도 안전할 수 있다고 한다. 마힐라 안나 스와라지(여성의 식량주권)은 안전한 식량, 식량 안보, 식량주권을 갖는 일이다. 이런 말을 여기에 붙여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나라를 되찾는 것만큼 중요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저자는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하였다. 우리가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식량을 길러내는 법을 배우고, 어떤 공간이든 상관없이 유기농 식물을 재배하는 것이 생물 다양성을 찾고, 토양 유실을 막고, 물의 고갈도 막고, 공기의 오염도 막고, 자연 생태계도 살리는 길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건강하고 영양이 풍부하고 안전하고 접근 가능한, 문화적으로 적절히 재배되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생산된 식량을 구하고 섭취할 권리가 모든 인간에게 보장되는 것이 저자가 독자에게 먼진 메시지이다.

개인 한 사람이면 어찌할 방법이 없지만, 개인이 모이면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내가 아니라도 어떻게 되겠지 라는 생각보다는 식량주권을 찾는데 미약한 힘이라도 보태겠다는 생각을 가지면 지구와 인간 모두 상생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m******0 2017.12.0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소농이 우리를 먹여 살린다
"소농이 우리를 먹여 살린다" 내용보기
우리는 많은 편견 속에 살고 있다. 잘못된 지식으로 살아간다고 할 수도 있다. 편견 중 하나가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과학도 동원되고 영양학도 동원된다. 실제로 고기를 먹어야만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고기를 먹지 않고 살아가는 종교인과 채식인을 생각하면 고기는 우리가 살
"소농이 우리를 먹여 살린다" 내용보기

우리는 많은 편견 속에 살고 있다. 잘못된 지식으로 살아간다고 할 수도 있다. 편견 중 하나가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과학도 동원되고 영양학도 동원된다. 실제로 고기를 먹어야만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고기를 먹지 않고 살아가는 종교인과 채식인을 생각하면 고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나는 2002년부터 고기를 먹지 않고 있다. 지금은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단언하기 어렵지만 어쨌거나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같이 일상에서 많이 소비되는 고기는 먹지 않는다. 물고기도 거의 먹지 않는다. 처음 고기를 먹지 않을 때는 철저하게 지켰다. 그때 내 몸은 얼마나 가볍고 영혼도 맑아지던지. 고기를 먹어야만 한다는 주장은 편견이다. 대규모 산업농이 우리를 먹여 살린다는 생각도 편견이다.

 

생산되는 식량의 30%만이 산업형 농장에서 나온 것이고, 나머지 70%는 자그마한 땅에서 일하는 소농들에게서 나오고 있다. 한편, 산업농은 현재 지구 자연에 가해지는 생태 파괴에 대해 75%의 책임이 있다. 이런 수치들은 늘 무시되고 은폐되고 부인되며, 산업농이 이 세계를 부양하고 있다는 신화는 전 세계적으로 홍보되고 있다. (14쪽)

 

소농은 오늘날 위기에 처해 있다. 소농의 희생을 대가로 기업 이윤을 극대화하도록 설계된, 기업 주도의 세계화라는 게임의 규칙에 의해 괴멸되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은 종자와 화학물질이라는 형태의 값비싼 투입물들을 농민들에게 판매하고 있고, 싼값에 그들의 생산물을 구입하고 있다. 농민들은 부채에 감금되어 있고, 농업은 경제 운영의 방법으로는 불가능한 것이 되고 있다. 이러한 사태는 농촌 지역에서 도시로 대대적으로 인구 이동을 낳고, 농촌의 공동화를 부르고 있다. 실제로 소농의 역할이 강조되고 강화되어야 하는데 거꾸로 가는 것이다. 먹을거리에 관해서 잘못 알려진 지식, 편견은 이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그것을 바로잡으면 다음과 같다.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화학비료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토양이다.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독과 살충제가 아니라 꽃가루 매개자들이다.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독성 어린 단일 경작이 아니라 생물 다양성이다.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종자 독재가 아니라 종자 독립이다.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세계화가 아니라 지역화이다.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기업이 아니라 여성이다.

 

먹을거리에 대한 잘못된 지식과 편견이 얼마나 폭넓게 퍼져있는지 알면 알수록 한숨만 나온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지금의 상품으로는 사람을 먹여 살리지 못하고 오직 사람을 먹여 살리는 것은 먹을거리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먹을거리에 관한 일은 우리 시대의 가장 근본 질문에 맞대면하게 한다. 이를테면 다른 생물 종들을 멸종으로 몰고 갈 권리가, 다른 인류 구성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고 영양가 높은 음식을 섭취할 권리를 부정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지를 묻는, 지구 및 다른 생물 종과 인류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관한 윤리적 질문이다. 아울러 인류가 지구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농업의 생태적 토대를 파괴하며 스스로를 자멸의 길로 몰아갈 것인지를 묻는 생태적 질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의 식문화, 우리의 정체성, 그리고 우리의 장소 감각과 토박이성에 관한 문화적 질문이기도 하다.

YES마니아 : 골드 g*******g 2018.07.0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가 누구인가를 읽고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가 누구인가를 읽고" 내용보기
비소설에서 오래간만에 마음에 드는 책이다. 자기개발 등 제목에 이끌려 낭패를 보다가 좋은 책을 발견했다.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가 누구인가라는 제목처럼 먹는 것에 관한 책이다. 식품은 농생태학 입장에서 유기적인 관계에 있다는 것 이것을 산업화 상업화 시켜 경쟁관계에 놓인 개발해야 될 상품으로 만들었다는 관념이 인상적이었다.  토양은 살아있고 단일 품종 대량 경작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가 누구인가를 읽고" 내용보기

비소설에서 오래간만에 마음에 드는 책이다. 자기개발 등 제목에 이끌려 낭패를 보다가 좋은 책을 발견했다.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가 누구인가라는 제목처럼 먹는 것에 관한 책이다. 식품은 농생태학 입장에서 유기적인 관계에 있다는 것 이것을 산업화 상업화 시켜 경쟁관계에 놓인 개발해야 될 상품으로 만들었다는 관념이 인상적이었다.
 
토양은 살아있고 단일 품종 대량 경작의 위험성을 알리고 다품종 소량, 소농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GMO 유전자조작식품이나, 슈퍼 씨앗을 개발하거나 하이브리드 씨앗으로 생존성을 높인 씨앗은 사서 구매하지 않고는 경작할 수 없는 구조를 이어가려는 기업의 속셈이라는 것과 검증되지 않은 식품에 대해 모르쇠이고 나중에 알려지면 죄송하다는 정책으로 심지어 사람들마저 '어차피 죽는 거, 맛있는 것을 먹고...'라는 위험한 생각을 보편화 시켰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종자 독립, 육종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특히나 마지막 장의 페미니즘 소신 발언은 별로 와닿지 않았지만 그 외에는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식탁에 오르는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다. 그동안 생각해왔던 사고에 돌을 던져 깨뜨려주는 책들은 참으로 좋다. 그래서 이 책이 좋았다. 평소에도 키워서 만들고 우리가 싸다고 생각한 식품들이 사실은 선진국에서 지원금을 받아 빈민 구제라는 좋은 구호로 기아에 시달리는 나라를 구제해주는 것처럼 파고들어 사실은 그 종이 외의 식품을 생산하거나 다양하게 스스로 자생하던 소농들을 가격경쟁에서 참패하게 만들려는 것임을 알고 나니 소름 끼쳤다.
 
물론 이런 사실이 사실과 저자의 논리적인 추론 사이에 있지만 그럴 수도 있음을 깨닫고 지금 이 순간에 대한민국에서 내가 어떻게 살고 있나 특히 나를 구성하는 것들은 먹을 것이 대부분인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를 돌아보기에 적합한 책이었다. 생각이 나 사고나 풍부해지는 책은 좋은 식품처럼 건강하게 만들어줘서 고마웠다.

i*****u 2017.12.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