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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에는 사랑하는 마음과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보다 더 큰 개념이라고 일각에서는 주장합니다만 역시 사람마다 생각이 다 갈릴 수 있는 부분이겠습니다^^ 헌데 이 소설은 어느 특정 종교의 가르침을 설파하는 내용도 아니면서 제목이 저리 "자비"라고 붙었습니다. 작가의 깊은 뜻은 이 작품을 직접 읽으면서 독자 개개인이 깊이 새겨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에 대한 제 생각은 이 서평 말미에 써 보기로 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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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 중국의 현대화 과정을 지켜보면 우리나라의 적나라한 모습을 그대로 지켜보는 듯 한다. 중소기업이나 대기업에서 직업병을 얻어 큰 문제라는 이야기를 언론에서 접하는 경우가 적지는 않다. 중국에서도 이런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페놀 공장은 대표적인 유독한 작업장이다. 자비는 세상을 살아가는 부조리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런 사실에 혹해서 책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읽으면서 삶과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낀다.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세상인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자비를 이야기한다. 왜? 중국은 사회주의국가다. 이런 기조가 책 전반에 걸쳐져 있다. 노동개조? 처음에는 무엇인가 했다. 노동자들에게는 극약처방이나 마찬가지인 처벌이다. 북한 정치범들이 수용소에서 지독한 시절을 보내야만 하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렇지만 사회주의국가가 항상 채찍만 사용하는 건 아니다. 거기에는 달콤한 당근도 함께 하고 있다. 보조금! 책에서는 보조금도 중요하게 등장을 한다. 배곯는 사람이나 안타까운 사연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사회적 보장체제인 셈이다. 체제는 참으로 좋다. 이상적인 셈인 것이다. 그런데 이 보조금이 원래의 기능을 항상 유지하지 않는다. 자비로운 체제는 인간의 사리사욕에 의해 바뀌고 있다. 페놀공장처럼 독한 냄새를 폴폴 풍기면서 말이다. 독으로 작용하는 건 무엇인가? 사회주의는 훌륭하고 공장은 내 집과 같습니다. 음! 진짜 그럴까? 주인정신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음! 이건 케이스 바이 케이스!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를 말할 수 없겠다. 개인들은 사회의 구성원들이다. 그리고 그 구성원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과부인 여인도 살아가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보조금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 보조금을 두고 수많은 사람들이 다툰다. 그 다툼에서 승리하기 위해 과부는 기꺼이 몸을 던진 것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자비를 챙긴다. 그 자비는 어디에 올까? 사상은 단속할 수 있어도 총은 단속할 수 없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살아가다 보면 파벌이 갈리게 된다. 사회주의 페놀 공장에서도 다툼이 벌어진다. 그리고 그건 사람들의 이해관계의 치열한 충돌이다. 노동자 계급끼리 치열하게 다툰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패배는 노동개조 혹은 감옥행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노동자 계급을 위한다는 사회주의 체제이지만 그 실상을 살펴보면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일개미인 셈이다. 모두에게 평범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자비를 갈구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건 자본주의도 마찬가지겠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비를 구하는 이유, 그건 삶이 험난하고 각박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중국 노동자 계급의 삶! 나라와 사상을 떠나 격변기에 처한 노동자들의 슬프고 안타까운 삶을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있다. 그리고 그 삶은 우리나라에서도 현재진행형의 이야기다. 삶의 이상적인 이야기와 함께 현실의 부조리한 면, 그런 것들이 인생에서 치열하게 다툰다. 나는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어디 쯤일까 나는 자비를 어디에서 갈구하고 있는가 책을 읽으면서 여러 모로 많은 걸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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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네이 저의 『자비』 를 읽고 우리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에 대해서 비록 그 이념 체제는 다르지만 왠지 매우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역사적으로 예전에 함께 해오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산주의 정권 체제라고 하지만 그래도 비교적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어느 정도 최근 빠르게 경제적으로 발전되어 가는 모습을 직간접적으로 보면서 그 많은 인구와 넓은 면적의 국가로서 앞으로 세계에서 막중한 역할을 할 날을 생각도 해본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런 중국에 대해서 우리나라 국가적으로는 물론이고 우리 국민 개개인적으로도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몇 차례 지역적으로 여행을 다녀오면서 직접 체험을 통해서 아니면 여행이나 직접 중국에서 생활하다 온 사람들로부터 이야기를 통해서 듣기도 하였고, 이 책과 같이 중국 관련 책이나 매스컴을 통해서 배우기도 한다. 어쨌든 큰 나라,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대단한 국가임에 틀림없다. 이런 중국이 오늘날 엄청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두각을 나타내거나, 선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무한한 자원과 풍부한 노동력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에 그 어떤 국가보다도 국가경제를 성장시키는데 가장 훌륭한 강점을 갖고 있다 할 수 있다. 이런 강점이 세계에서 예전 미국과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의 강국 체제에서 당당하게 어깨동무를 같이하는 수준으로 업시킨 것이다. 따라서 급속적인 사회변화와 빠른 경제성장으로 세계적인 기업이 등장하였고, 소득이 높아진 중국인들의 소비습관, 세계를 무대로 누비는 다양한 인재들이 활동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엄청난 노력을 했고, 그 전 세대가 이룬 희생과 노력을 바탕으로 자본주의의 가치, 돈이 주는 강력함을 느끼면서 성장했다. 하지만 보여 지는 것이 다가 아닌, 그들도 과정상에서 있었던 사실에 대한 돌아봄과 사람에 대한 가치평가, 중요성을 새롭게 재정립해야 할 것이다. 『자비』는 1960년대 말에 화학공장인 페놀 공장에 들어간 한 젊은이의 공장생활과 그의 주변 인물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신세대 리얼리즘 문학의 기수인 루네이 작가가 산업화시대 중국 공장지대와 노동자들의 삶을 바탕으로 그린 글이다. 당시는 철저히 통제된 당 중심의 사회가 절정에 이른 문화대혁명 무렵의 시기이기 때문에 지금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기 때문에 당시의 상황 등을 통해서 한 발전 과정의 중국 모습을 살펴보는 것도 꽤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본다. 특히 책에서 무대가 되고 있는 페놀 공장은 중국 사회 경제의 한 축소판이 되어 우리에게 있어서 ‘살아남기 위한 존재로서의 인간’혹은‘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려는 인간’들이 어떤 모습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서로 감시하고, 고발하고, 병이 들어 고생하고, 죽어가고, 쫓겨 가고, 보조금에 의해서 좌지우지 하는 모습 등 분노와 고통스러운 삶속에서 중국 노동자들의 자신의 심리를 보전하고, 인간적인 존엄을 지킬 수 있게 해주는 도구로서의 자비를 더욱 더 생각게 하는 시간이었다. 그런 중국의 40년 정도의 비교적 긴 세월의 시간을 대략적으로 살펴보면서 공부하면서 느끼고 볼 수 있는 매우 의미 깊은 독서시간이었다. 일독을 강력하게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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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날 중국은 엄청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거나, 선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경제나 사회를 바라볼 때, 불안한 시선으로 보는 것도 사실이며, 그들이 갖고 있는 양극화나 사회주의식 경제성장에 대한 한계, 패권지향적인 행동과 국가중심의 시장경제 장악, 이로 인해 드러나는 그들을 민낯 등은 풀어야 할 과제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책은 오늘 날의 중국과 한창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며, 개혁과 개방으로 이어졌던 일련의 과정들, 그 속에서 체험했던 중국인들의 비참한 모습, 희생해야 했던 가치, 인권이나 인간에 대한 존중보다는 결과를 위한 집단적 문화와 숨가쁘게 달려왔던 그들의 과정들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습니다. 무한한 자원과 풍부한 노동력, 이는 국가경제가 성장하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미 중국은 이러한 자신들의 강점을 바탕으로 단기간에 급속적인 사회변화와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고, 세계적인 기업의 등장, 소득이 높아진 중국인들의 소비습관, 세계를 무대로 누비는 다양한 인재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엄청난 노력을 했고, 그 전 세대가 이룬 희생과 노력을 바탕으로 자본주의의 가치, 돈이 주는 강력함을 느끼면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보여지는 것이 다가 아닌, 그들도 과정상에서 있었던 사실에 대한 돌아봄과 사람에 대한 가치평가, 중요성을 새롭게 재정립해야 할 것입니다. 각자가 입장차이는 있겠으나, 가족의 생계를 위한 결정, 모든 것을 책임지며 뛰어 들었던 산업현장, 하지만 사람에 대한 존중보다는 결과물 창출을 위한 획일화된 질서가 강조되었고, 과정의 비참함 속에서 오늘 날의 번영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60~70년대와 흡사하며, 경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바라볼 때, 이런 국가의 개입이나 통치, 획일화된 사회모습, 민족주의 성향을 표출하며 발전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회의적인 감정도 생깁니다. 단기간에 많은 것을 이루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드러나느 사회문제들, 양극화의 모순, 인간의 가치나 내면적인 요소가 무시당하며, 오직 보여지는 것들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현실, 이 책은 중국사회를 바탕으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등 우리가 합당하다고 여기는 가치에 대해서 돌아보게 합니다. 보여지는 것은 훌륭하나, 과연 개인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지, 이렇게 얻은 부가 소수에게 집중되는 것은 아닌지, 권력에 의해서 대중들이 기만당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여전히 많은 국가들이 획일화된 경제성장 모델,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면서 모방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절대 다수의 보통 사람들, 그들이 처한 열악한 근로환경이나 생활상, 물론 모든 것을 충족시킨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성장이 우선이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분배가 우선이냐의 문제, 결코 쉬운 접근이 아니며, 명확한 해결책은 내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래도 인간의 가치나 인권에 대한 관심, 노동문제로 촉발되는 환경에 대한 처우개선, 우리가 잊지말아야 하는 가치가 될 것입니다. 이념의 대립이나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 아닌,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범위, 자유가 인정되어야 하는 부분, 현실에서 선택하게 되는 대중들의 심리나 속성, 본심은 아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부정적인 감정표현이 모습, 어쩌면 하나의 국가나 사회가 선진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은 굉장한 노력과 시일이 필요한 작업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돈과 물질적인 가치가 인간의 심성이나 본성을 좌우할 수도 있고, 이용의 수단이 아닌, 존재 그 자체가 모든 것을 대변하는 오늘 날의 모습에서 완벽한 가치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저자가 그리는 중국사회와 중국인 모습, 이를 통한 사회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성과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관심이나 반응도 등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 어쩌면 우리 모두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다가옵니다. 현실을 바탕으로 소개되는 만큼. 많은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접해 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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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산업화라는 말은 인간미라는 말이 거세된 말처럼 느껴진다. 산업화라는 이미지는 내게 숨쉴틈 없는 바쁨과 휘황한 불빛의 이미지이지만 배면엔 지치고 힘들어하는 노동자의 얼굴이 붙어 있어 편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더 이상 인간적인 걸 기대해서는 안되는 시대라는 말과 동의어처럼 느껴진다. 씁쓸할 뿐이다. 산업화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고 신분의 이동이 있었으며 생활터전이 바뀌었다는 건 굳이 먼나라의 세계사를 들쳐보지 않고서도 충분히 알 수있다. 농자지천하대본, 농업을 국가 산업의 근간으로 삼던 나라에서 공업을 바탕으로 분골쇄신, 산업화를 이룩해 낸 대한민국의 역사만 봐도 산업화가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고 사람들의 정서를 바꾸어 왔는지 보면 된다. 산업화로 인해 겪어 내야했던 정신적 아노미 현상은 산업화를시도한 나라라면 어느 나라나 이런 현상에 대해 사회문제가 대두되고그런 문제를 다룬 문학이 있다. 자비는 대기아를 견뎌내고 산업화 시대를 몸으로 겪은 시골 소년 천쉬성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이다. 온 가족이 굶어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쉬성의 아버지 결단에 따라 마을을 떠나 도회지 삼촌의 집으로 향하지만 도중에 가족과 헤어져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된다. 삼촌에 기대어 겨우 공업학교를 졸업한 쉬성이 취직한 공장은 페놀을 생산하는 전진화학공장이었다. "페놀에는 독이 있지만 매일 페놀과 함께하면 몸이 적응해서 괜찮아. 그러다가 퇴직을 하면 페놀이 없어져 암이 생기는 거야." 쉬성의 사부 말이다. 암이 안 생기게 퇴직하지 말라는 쉬성의 말에 "나는 반평생을 일했어. 하루도 빠짐없이 밤낮으로 일했지. 퇴직을 안 하면 아마 지쳐 죽을 거야." 라고 답을 한다. 이 대목에서 좀 웃었다. 어이가 없어서 였지만 고단한 노동자의 얼굴과 열악한 작업환경이 떠오르면서 선문답같은 사부의 대답이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하고 있구나 싶었다. 노동자의 삶은 어디서나 팍팍하고 녹록치 않고 위태롭기까지 하다. 알면서도 견뎌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삶이 있고 그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인 쉬성은 격랑속에서 결혼을 하고 동료를 떠나보내고 우연한 행운도 잡게 되지만... 루이네는 사회주의 중국이 개방개혁으로 자본주의의 물결을 타면서 변하는 가치와 혼란을 담담한 문장으로 표현해 냈다. 감정의 고조가 없는 건 아니었으나 누구의 편도 아닌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일어났던 일이니 다만 전달할 뿐이다라는 마음으로 쓴 것 같았다. 후기에 보니 아버지가 설계를 하던 사람이었고 루이네도 공장이 삶의 터전이었던 사람으로 부자의 삶이 이 소설에 함께 녹아 있음 읽었다. 청춘 대부분을 공장에서 보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들 덕분에 '공장소설가' '성장소설가'의 닉네임으로 불리고 있는 린제이는 자본주의 경쟁시대에 들어선 중국의 성장과 아픔을 [자비]에 담았고역사와 삶에 자비로워야 우리는 비로소 자신에게 자비로워질 것이라고 말한다. 문득 신경숙의 [외딴방]이 생각났다. 결이나 문체ㅡ어느것도 닮지 않았지만 경쟁이 살아남는 유일한 수단인 산업자본주의 세상에서 가난한 노동자들이 선택 해야 했던 건 죽음 아니면 변함없는 노동자라는 사실에서 두 소설이 잠깐 오버랩 되었다. 산업화 속에서 어느새 산업형 노동자들로 변해버린 삶의 방식과 생각이 안타까웠다. 중국의 문화혁명을 다룬 소설은 더러 읽었지만 중국이 선택한 자본주의 산업화 속의 노동자 소설은 처음이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음에도 공명이 커지고 이렇다할 충격적인 사건이 없음에도 술술 잘 읽히는 소설이었다. [자비]는 글항아리의 중화권 현대소설 시리즈 중의 하나이다. 시리즈들 속에 낯익은 소설가는 없지만 이 책으로 인해 시리즈들이 모두 궁금해지고 읽어보고 싶은 책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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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에서 1970년대의 시기를 중국에서는 대기아 시대라고 부른다. 작가 루네이는 이때에 페놀 공장에서 설계사로 일했던 아버지의 경험담을 듣는다. 공장 동료들의 보조금을 타게 해주었고 그 덕분에 어려운 시기에도 자신이 있던 공장에서는 굶어죽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고 말이다. 작가로서 이 이야기에 끌린 루네이는 많은 조사를 통해 그시절의 이야기를 썼다. 성장소설을 썼다던 그가 소설가로 살아온지 10년만에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를 쓴 것이다. 그 시기엔 우리나라 역시 너무 힘든 시기이다. 나라가 다르고 문화나 사회체계도 다르지만 시대적 상황을 생각하면 아련한 마음이 생겨났다. 주인공 천쉬성의 일대기와도 같은 소설이다. 부모님과 동생이 있던 쉬성은 더이상 먹을것이 없자 이대로 있다가는 굶어 죽겠다는 아버지의 판단으로 온 가족이 집을 떠난다. 이동중에 가족이 반으로 갈라져 서로 다른 길로 들어섰고 아버지와 동생은 약속한 장소로 오지 못했다. 어머니는 쉬성을 맡겨두고 남편과 아들을 찾으러 간 뒤로 돌아오지 않았다. 고아가 된 쉬성은 삼촌의 양자가 되어 자랐고 페놀공장의 직공으로 일하게 됐다. 공장에서 나오는 독한 향으로 퇴직하고 3년이면 다들 암으로 죽는 그런 곳이지만 그렇게라도 일을 해야 가족이 겨우 먹고 살 수 있었다. 그 공장에서 일하며 아버지와도 같은 사부를 얻고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조카를 입양해 키우면서 살아가다 곁의 사람들을 하나씩 잃으며 다시 혼자가 된다. 어떻게 보면 그리 특별할것 없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참 힘든 시대에 태어났고 쉬성만 고아가 되어 자란게 아니다. 그가 공장에서 만난 사람들중엔 정말 비참한 처지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보면 쉬성은 너무도 살만한 형편의 사람으로 보인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면 가족이 늘다가 시간이 지나면 저마다 떠나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제목이 자비인것이 더욱 의미있다. 메마르게 굶어죽은 가족의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시대, 몇푼이라도 보조금을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하듯 가난과 불행을 소개해야하는 시대, 그런 때에도 있어온 어리석고 이기적인 사람들. 거기서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고 용서하며 사랑하는 마음이 가능할까. 하지만 또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정말 자비와 같은 마음은 자기 살기도 버거운 시대에 불필요한 것일까. 그런 마음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대답은 아니다 였다. 그 와중에도 사부와 제자관계를 맺어 서로 챙겨주고 떠나간 사람을 챙기기도 하며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에 자비심이 깃들어있지 않아고 말할 수는 없을것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감상은 [참으로 버석버석하다] 였다. 너무 버석버석해서 절로 김이 모락모락나는 따뜻한 차 한잔이라도 하고싶어졌다. 부드러운 이불속으로 도망가고 싶어졌다. 섬세하게 등장인물의 불행을 캐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시선을 돌려 덮어두지도 않는다. 다가온 비극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토를 달지 않는다. 한결같이 거리를 둔 시선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마치 내 일은 남의 일, 남의 일도 남의 일 같은 눈으로 가족의 부정확한 죽음이 펼쳐지고 사부가 아파 죽고 동료가 고발당해 끌려간다. 감정이 없는것은 아니어서 떠나간 사람을 생각하기는 하지만 눈물 한방울, 원망 한마디 흘러나오질 않는다. 이렇게도 버석거리는 이야기가 강한 인상을 남길줄은 몰랐다. 그래서 참 오래 기억될 이야기가 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