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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이 입적하신지 이제 1년이 지났다. 최근 우리나라 종교계의 어르신의 떠남에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든다. 법정스님 입적 1년전에는 김수환추기경께서 우리에게서 떠나셨다. 두 어르신과의 헤어짐은 나에게 너무나 큰 슬픔을 던져 주었다. 김수환추기경님의 경우 종교가 다르기에 관심이 크게 없었으나 돌아가신후 그 분의 업적을 알기 시작하면서부터 깊은 존경을 하게 되었다.
살아계셨을때는 내가 왜 이렇게 위대한 분에게 관심이 없었을까 하는 후회도 해보았다. 이후 1년후 또 다른 어르신께서 돌아가셨다. 바로 법정스님이다. 사실 법정스님께서 살아계실때에는 스님께서 출간하신 책을 모두 읽어볼 정도로 스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무소유' '오두막 편지' '산에는 꽃이 피네'등등 스님의 책이라면 서점에 달려가 읽어보곤 했다. 복잡하고 얽혀있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법정스님의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단순하고 편안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어리석은 나를 발견하고 복잡한 나의 사회적 구성의 연결고리를 단순하게 만들곤 했다. 산문적 형식의 책을 주로 작성하셨기에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내가 꼭 스님과 차 한잔을 하면서 대화를 듣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하곤 한다. 그 만큼 스님께서 책을 쓰실때 독자들에 대한 배려 즉 편안하게 깨달음을 얻게 하겠다라는 부분이 물씬 풍기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제 입적하시고 더 이상 스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기에 안타까움이 많이 밀려온다. 이러한 안타까움이 밀려오는 1년이 될 즈음에 '그대 만의 꽃을 피워라'를 만나보게 되었다. 스님과 함께하신 시간이 많은 저자가 스님과의 시간에서 얻는 여러가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노라면 법정 스님께서 말씀하셨던 것들을 되새겨 보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먼저 책에는 스님과 연관되는 많은 사진들이 있다. 꼭 스님께서 옆에 계시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끔 된다. 스님이 쓰신 여러 유품들 그리고 스님이 직접 쓰신 글귀 스님이 자주 묵었던 법당, 암자등을 사진으로나마 만날 수 있는 것이 책을 통해서 기분 좋았던 첫번째 기쁨이었다. 왠지 스님이 곧 돌아오셔서 차 한잔 같이 드실것 같은 느낌의 사진들은 어느새 혼탁해진 공기와 환경속에 있는 나를 또 다른 세상에 가져다 놓는 타임머신과 같은 역할을 해주는 것 같다.
두번째는 스님의 말씀이다. '그대만의 꽃을 피워라'에는 우리가 익히 알지 못했던 실제적인 법정스님을 만날 수 있는 몇 안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스님께서 하셨던 편안한 삶의 말씀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그대만의 꽃을 피워라'가 대신 제공해준 것이다. 왠지 옆에서 해주시는 편안한 말씀들 어느새 책장을 넘겨가면서 듣는 말씀의 기회를 한편으로는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보고자 하는 페이지보다 보았던 페이지가 많아 지면서 스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페이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은 스님의 말씀을 듣는 기쁨과 함께 얽매여 나를 혼란에 빠뜨리기도 했다.
스님과 헤어짐을 하는 것이 진정한 헤어짐이 아니었다는 것을 책을 통해서 깨닫는다. 오히려 스님과의 헤어짐과 함께 나 자신 스스로 스님의 마음을 가지므로해서 영구적이고 지속적인 스님과의 만남이 이어져야되며 그것이 진정 스님께서 원했던 것이라는 것 그것이 진정한 '그대만의 꽃을 피워라'를 통해서 얻는 진실이었다. 다시금 스님께서 쓰신 책을 뒤쳑여본다. 그리고 스님의 향기를 맡아본다. 법정스님께서 찾아가셨던 '나'를 찾는 과정을 통하여 또 다른 세상에서 나를 찾아본다. 결국 '그대만의 꽃을 피워라'는 법정스님과 함께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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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입적 1주기가 지난 3월 11일( 음력 1월 26일)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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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집착하지 않으므로 진정으로 홀가분해지고 자기다운 삶" (p12) 이것이 스님의 삶이었을 것이다. ![]() '소설 무소유'가 스님의 전 생애를 망원경으로 보았다면 에세이 <그대만의 꽃을 피워라>는 현미경으로 보았다는 느낌이 든다. (p12) 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만큼 가까이에서 스님을 보아왔기에 이런 책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
불일암은 내게 맑은 거울이다. 불일암으로 가는 것은 나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나만 고집하는 '거짓 나'를 떠나 남을 배려하는 '본래의 나'를 돌아보게 한다. 나를 만나러 가는 길이기 때뭉에 암자가 텅 비어 있어도 좋다. 봄날 아래채 툇마루에 앉아서 목욕소 뒤편에서 꽃비를 뿌리는 산벚나무를 바라보는 것만도 행복하다. 겨울의 들머리에 선 지금은 감나무 가지에 매달린 붉은 감들이 단풍보다 더 곱다.
'집착과 욕심의 몸무게를 줄이러 가는 길' 그것은 바로 무소유의 법정 스님의 자취가 있기에 그럴 것이다. ![]()
미래사 주차장 왼쪽에서 편백나무 숲 사이로 난 산길을 50 미터쯤 걸어가니 멀리 한산도 앞바다가 보인다. 지금 가고 있는 오솔길이 효봉암 터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한다. 법정스님도 통영을 오갈 때는 이 산길을 이용했을 것 같다. (p137) 스님이 거처했던 곳 중에 세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곳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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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라는 작가는 법정스님 찬자처럼 글을 펼쳐가신다. 난 법정스님을 잘 알지 못한다. 그저 무소유의 실천주의자이자 스님일뿐이라는 거... 그것이 내가 아는 법정스님의 전부였으나 정찬주라는 작가의 글들을 통해 나는 법정스님과 소통했다. 소통했다가 맞는 표현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 홀로 스님의 말씀과 외사랑적 소통을 하고 있는 것일수도 있다.^^
정찬주작가는 마치 법정스님과 가족같다. 늘 붙어다니는 건 아니지만 속속들이 스님에 대해 참으로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거 같아서 말이다..^^ 그 동안 정찬주 작가의 글들을 여러권 읽다보니 그렇게 느낀 걸지도 모른다.
난 개인적으로 스님을 따르는 신도가 되는 것을 참으로 두려워한다. 부처님을 따른다기 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나의 삶의 모토와 같아서 불자가 되었다는 것이 더욱 내게 잘 맞는 것이기 때문이기도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님도 사람인지라 실망도 하게 되고 상처도 받게 되는 경우가 생길 터..그렇게 되면 종교적 신념까지도 흐트러지는 사람들을 곁에서 지켜보다보니 스스로 가르침에 귀의하는 것에 큰 뜻을 뒀다는 것이 맞을것이다. 그렇다고 심취까지는 나도 두렵다.^^
법정스님의 삶을 통해 우리 스스로가 갖추어야할 굳은 신념과 의지 종교적 가치관이나 자신의 의지등을 살피게 하는 책이지 싶다. 법정스님의 살아계실적 은신처를 비롯 스님의 일생을 거쳐간 곳들을 방문하며 그 분의 과거 삶의 흔적들을 되새기는 이야기 그 속에서 우린 법정스님이 피워온 꽃이 무엇인지 각자 선물받게 되는 것이다. 훗 날 내게도 나의 흔적을 찾아 다녀줄 훌륭한 내가 되기 위해 조금은 더 분발해야하지 않을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던데..난 죽어서 이름석자 세상에 남길 수 있을지.... 것도 욕심일지 모른다. 온듯 아니온듯 살다가는 것이 어쩌면 불법에 더 크게 적합한 일인지도 모른다.
법정스님의 삶의 귀퉁이 한자락씩 모아 다시 곱씹고 되새기는 작가의 생각과 이야기가 아울어져 스님이 말씀하시고자했던 우리에게 바라는 것들을 조금씩 파헤쳐야하는 숙제를 안겨준 책... 점점 정찬주작가의 글이 금방금방 넘어가진다. 처음 정작가의 글은 매력적이지만 속도가 안나는 부담을 안고 가는 읽고 싶은 책이었다. 이젠 것도 크게 어렵지 않으니 그의 이야기속에 자주 드나들 듯 싶다. 더구나 그가 가지고 있는 마치 부처님의 제자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옮기듯 법정스님의 자취를 옮겨내는 이 책들을 통해 난 스님이 말씀하신 무소유를 비롯한 향기로운 불법을 간접적으로 더 얻어가지 싶다.
나도 작가가 안내해주는 암자를 따라 성지순례를 다닐 날이 왔으면 싶다. 그것도 내 의지건만 그 의지도 인연이 아니면 쉽게 나설 수 없음을 잘 알기에... 굳이 법정스님의 발자취가 아니어도 좋다 그 길 따라 선인들의 자취가 녹아있고 그 속에서 내가 한가지라도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나의 모험도 성공한 삶의 일부가 되지 않을까 싶다. 조금은 서툰 나의 불심에 정찬주라는 작가가 전하는 법정스님의 메세지는 거친 돌을 다듬어 곱게 만들어주는 중간단계를 가지고 내게 선물처럼 다가온다. 내가 소통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 책속에 담긴 선인들의 올곧은 삶이듯... 내 삶도 그들처럼 닮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보게하는 책 중 하나지 싶다.
그대만의 꽃을 피워라...아마 지금 무언가 선택을 해야하는 내 삶의 이 순간에 이 책은 나를 위해 한발 더 디디라는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만같다.
삶에 정답은 없지만 선인들의 삶속에 나를 찾을 수 있는 순간이 온다면 그 순간에 나를 잘 관찰하고 결단내릴 수 있는 것 또한 내 몫이니 모든 것에 용기를 가지고 자신을 사랑하고 믿을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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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자신만의 향기를 지닌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 그것은 |
그대만의 꽃을 피워라정찬주 지음
열림원 2011.03.20
펑점
자기다운 영혼은 무엇인가? 가장 큰 화두를 던져주시곤 홀연히 떠나버리신 법정스님의 발자취를 다시한번 꺼내어본다 지금도 법정스님의 얼굴이 스쳐간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차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흙탕물에 더렵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그렇게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씀을 전하는것 같네요. 살아서는 철저히 무소유를 주장하시고 떠나실때에는 철저히 무소유를 실천하신분 법정스님의 이야기는 언제 읽고 읽어도 마음이 청량해짐을 느낍니다. 무소유를 만나고 나서 법정스님을 알게되어 그분의 가르침과 말씀을 열심히 배우고 실천할려고해도 좀처럼 쉬이 되지 않음을 알지만 그래도 또다시 깨우침을 배우고 또 배웁니다. 둘을 소유하게 되면 하나의 진정한 소중함을 잃어버린다는 소중한 말씀을 아직도 가슴속 깊이 간직하게 합니다. 가까이 뵌적은 없지만 언제나 곁에 있음으로 스님께서 추구하고자 했던 가르침은 늘 잊지않았답니다. 한가지라도 소홀히 생각하지 않으시고 몸소 아끼실려고 지독하게 실천하시려고 했던 마음은 언제나 귓전에 맴돕니다. 어디에도 집착하지않고 진정으로 홀가분해지고 자기다워지는 삶이 무소유임을 알게 합니다 몇평에서 살고 어떤차를 소유하는지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누구와 어떻게 사는것이 중요함을 다시한번 일깨워 줍니다 작지만 행복하게 아무런 욕심없이 자신이 소유한것에 스스로 만족하며 산다는것이 참 삶이라고 말입니다. 살아생전에는 무엇보다 실천을 중요하게 여기시고 무엇하나 당신의 소유는 하나도 없다라고 강하게 말씀하셨고 잘못된것에는 아주 지독하게 비판을 하신 진정한 수행자의 모습을 보여준 스님이 너무나 간절히 그립고 보고 싶어 집니다 곁에 계실때처럼 지금도 언제나 종파간의 갈등에는 위에서부터 아래에이르기까지 한치의 의심없이 호통을 내려치시던 그 모습이 보고 싶어집니다 "나도 없는데 하물며 내것이 어디 있겠는가?" 많은 것을 암시해주는 말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중생이라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노력하며 살아가고자 합니다
마음을 울리는 스승을 한평생 한번 만날수 있었던 것에 행복하게 합니다. 말을 하지않아도 영혼을 울릴수 있는 만남 그 한번의 만남으로 자신만의 꽃을 피울수 있다면 진정한 삶이 아닐까 감히 말씀드린다. 스님께서 다녀가셨던 수행처를 이렇게 간접적으로 만날수있음에 감사드린다. 수행처마다 법정스님의 모습과 영혼의 말씀들을 만났다. 지금도 살아 숨쉬면서 지켜보고 계시는듯하다 입적하시기전에 당신이 가장 좋아하시던 단팥죽 한그릇을 드시고 싶어했던 세상의 스승이지만 소박한 모습에서 세상가장큰 영혼을 만날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단팥죽을 좋아하시는것은 어쩌면 소승에 불가하지만 나자신과 닮은것 같아 기분이 좋다 작지만 연결고리가 하나 생긴 셈이니 말이다 지금까지 버리지 않는 습관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동지때 부산 남포동 먹자골목거리를 찾아 단팥죽을 한그릇을 찾는 일이다 가까이 있는 단팥죽도 많지만 찾아가서 먹는 단팥죽의 맛은 아무도 모른다 단팥죽 한그릇에 나에게는 추억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60년대에 태어나 살아가는 어려운 시대는 모두 공감할것이다 추석이나 설명절이 아니면 옷이나 신발을 사신지 못하던 시절이 말이다. 어머니손을 잡고 남포동에서 몇천원하던 신발을 가지게 될때에는 세상을 다 가진것처럼 느껴졋으니 말이다 그리고는 빠질수없는게 시장에 왔으니 집에서 보지못하던 음식들과의 만남이다 이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그추억이 있어서 아직도 잊지못하고 찾는 것이다. 언제나 추억은 그렇게 어려운 시대에 전유물인듯하다. 지금의 세대에는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때의 맛을 알리가 없다 알려고도 이해해달라고도 하지 않는다 그건 자신들의 몫이니 말이다 한번씩 찾아드는 법정스님의 추억도 단팥죽 한그릇과 같다 삶이 다하는 날까지 법정스님은 언제나 마음속에 존재하실테니 말이다 살아생전 단팥죽 한그릇을 나눌수 없었던것이 못내 아쉽다 그분의 그림자가 스치운다..... 언제 어디서나 말이다,,,,, 어려울수록 법정스님에 대한 그리움이 찾아든다. 나자신도 흐르는 세월에는 나약해지는건 아닌지 모를일이다 훌훌털어버리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그리 가고 싶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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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의 대표적 승려인 법정스님의 일대기인 <소설 무소유>가 수많은 독자들에게 맑고 향기로운 감동을 선사한바 있다. 법정스님의 죽음 이후에 대통령도 조문을 하며 무소유에 대해 극찬을 했으며, 서점에서 8000원인 무소유 서적이 온라인에서 5만원에 거래가 된적도 있었다. 무소유를 소유하려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그것은 참된 무소유의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무소유는 소유욕에 집착하며 사는 현대인들에게 이상적이고 환상적인 가치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가르친 무소유대로만 살면 어떻게 되겠는가? 불자이든 불자가 아니든 적삼 하나만 가지고 살 수는 없다. 100% 무소유의 삶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라는 저서에서 진정한 행복을 원한다면 소유적 모드 즉, 해빙 모드로 살 것이 아니라 존재모드 즉, 빙 모드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진정한 인간의 행복은 소극적인 무소유가 아니라 적극적인 섬김과 나눔의 영향력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무조건 무소유적 삶을 산다고만 해서 그가 윤리적이고 깨끗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소극적인 은둔과 공허한 메아리로 그칠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더 열심히 땀 흘려 일하여 소유한 것을 이웃을 위해서 섬길 때 그 사람은 진정한 무소유의 삶을 사는 것이다. 방 안에 앉아서 무소유를 외친다고 해서 진정한 무소유적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빌 게이츠는 다보스 포럼에서 창조적 자본주의를 주장하며 깨끗한 부, 따뜻한 부를 외친 것이 아닌가.
법정스님의 입적 1주기를 맞아 소설가 정찬주 작가가 법정스님이 머물렀던 사찰을 순례하며 쓴 수필집 <그대만의 꽃을 피워라>를 내놨다. 생전 법정스님과 특별한 인연을 맺어온 작가는 법정스님을 이끌었던 구도의 길을 따라가며, 스님이 몸소 체화했던 무소유 사상의 성립부터 완성까지의 전 과정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이 낱낱이 살펴보고 있다. 스님의 사상이 가장 치열했던 송광사 불일암 순례를 시작으로 고향인 해남 우수영, 시자 생활을 했던 통영 미래사와 쌍계사 탑전 등 스님이 머물며 수행했던 암자와 절을 돌아본다.
‘소설 무소유’를 통해 법정 스님의 전 생애를 망원경으로 드려다 보듯 전했던 작가는 이번에 ‘자기다운 영혼은 무엇인가’라는 화두로 법정 스님의 가르침이 살아 있는 순례기행을 이 책을 통해서 그려내고 있다.
법정스님이 1992년 거처를 옮겨간 강원도 오두막 수류산방, 길상화 보살에게 대원각을 시주받아 1997년 개원한 절인 길상사로 발길을 돌린 정씨는 그 곳에서 법정스님의 가르침을 새롭게 깨닫는다. 법정스님은 생전에 ‘석가모니 부처님도 한 분이면 족하다’고 했다. 상좌든 신도든 자신의 가르침에 갇히지 말고 자기다움을 지키라는 가르침이다.
현대인은 누구나 열심히 돈을 벌어 자녀들을 교육하고 결혼시키고 미래를 준비한다. 무소유로 살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가? 그러나 언제든지 우리의 소유를 바쳐 민족과 사회를 섬겨야 한다. 소극적 무소유를 넘어 실제적인 무소유적 삶을 통해 민족의 가슴에 희망의 등불을 밝혀야 한다. 법정스님은 꽃 피듯 물 흐르듯 사는 것이 무소유의 삶이라고 했다.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으므로 진정으로 홀가분해지고 자기다워지는 삶이 무소유의 삶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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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이 입적한지 1주기가 지났지만 아직도 스님을 그리워하고 뜻을 받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 법정스님이 출가하여 사미승부터 불교계의 거목이 될때까지 수많은 비탈길을 헤치고 정상에 우뚝 솓기까지의 고행이 많았음도 알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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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이 입적하신 지도 벌써 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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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P 법정스님의 태풍이야기... 온전한 혼자만의 시간... 이것이 꼭 필요하다는것을 모르는사람이 은근히 많은거 같다. 나이들어서 후회하기 싫으면 조금이라도 젊었을때 사색의 시간을 가질필요가 있을꺼 같다. 43P 이봐요 젊은이 부분... 실제로 나는 방송매체에서 법정스님이 여러 종교인들과 함께 웃고있는 모습을 본적이 왕왕 있었다. 나또한 진정한 종교는 사람을 갈라놓는 종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44~45P 빠삐용 의자부분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구절이었다. 나또한 그러한 매개체가 있다. 77P 전기부분... 법정스님은 저서에서 간혹 월든을 언급하곤 하셨다. 나또한 무소유를 비롯해서 여러 책을 통해서 스님의 말씀을 이해해서 실천해보려고 노력했으며 월든도 읽었다. 84P의 빈방이야기도 일맥상통하리라 생각한다. 124P 눈빛이야기... 그렇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하지 않던가.. 주옥같은 이야기다. 141P 시멘트 이야기... 인생은 그런것이다. 법정스님도 예외는 없다. 누구나 공평하다. 스스로 짊어질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161P 시자이야기... 어떤 스승을 만나느냐에 따라 바뀐다. 그런점에서 보면 법정스님또한 여러 좋은 스승을 만났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기록 되어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본인의 마음가짐이 중요하지 않을까..169P의 벗이야기와도 일맥상통한다. 181P 첫문단 마지막줄...깊히 통감한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버려야 하거늘 그게 쉽지 않다. 다이아몬드를 얻으려면 황금을 버리라고 했던가. 틀린말은 아닌거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