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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 유창선 사우/2017.12.15.
같은 책을 읽어도 독자에 따라 바라보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다르기에 다양한 사람들이 읽는 책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는 저자가 읽은 책을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가면서 감상하게 해주는 책이다. 저자는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오랫동안 방송과 신문, SNS 등 다양한 매체에서 정치평론가로 활동했다. 이 책에는 이러한 이력으로 인한 생각들이 하나씩 정리되어 있다. 저서로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와 평론집 <정치의 재발견>, <핫이슈 2017>등이 있다.
<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에서 저자는 독자와 나누고 싶은 책을 소개한다. 단순한 책 이야기가 아니라 ‘삶’에 관한 이야기라며 저자가 살아온 이야기를 곁들인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12권의 책은 프리드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서>, 프린츠 카프카 <성>, 롤랑 바르트 <애도일기>, 루쉰 <고사리를 캔 이야기>,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 프란츠 카프카 <변신>, 빅토르 위고 <파리의 노트르담>, 호메로스 <일리아스>,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미셀 푸코 <주체의 해석학> 등이다.
“인간의 삶에는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이 있다. 디오니소스는 술의 신이고, 아폴론은 이성과 절제의 신이다.(p.21)” 감성과 도취, 격정과 망각은 디오니소스적인 것이고, 이성과 이론, 깨어 있음은 아폴론적인 것이다. 인간은 긴장되고 각성되어 있는 상태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때로는 술에 취하기도 하고 춤도 추며 이완된 모습으로 살아간다. 술에 취해 자신의 평소 모습을 망각한 채 황홀경에 빠져 춤추고 노래 부르는 것이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다. 그런데 부모들은 자신이 포기했던 나르시시즘을 부활시켜 자식을 통해 이루고자 한다. 그래서 아이들의 욕망은 불행하게도 자신이 아닌, 타자로서 부모의 욕망일 뿐이다. 진정 아이가 원하고, 아이를 위하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 이성적인 부모들이 할 일이 아닌가 한다.
“‘세상이란 원래 그런 거야’하며 나의 삶을 사는 것이 갈 길이었다. 그런데도 성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못하고 자꾸만 바라보는 것은 미련이다.(p.62)”라고 카프카의 <성>을 이야기 하며 말한다. 주인공이 미련을 갖는 것은 그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외로움에 대한 불안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 진정한 자유를 얻지 못한 채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지 모른다. 들어가고 싶지도 않지만 아주 떠나지도 못하는 주인공처럼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주인공이 공감을 받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거야’라는 이 말, 우리가 흔히 듣기도 하고 건네기도 하는 말이다. 그런데 바르트는 이 주문을 자신을 마비시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이렇게 요구한다. 애도의 슬픔을 애써 억누르려 하지 말라고.(p.73)” 애도의 과정은 사실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을 위한 것이다. 죽은 사람은 보고 듣고 생각할 수 없기에, 산 자들의 애도를 알 수 없다.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을 충분히 애도함으로써 슬픔을 치유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 치유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계속 죽음에 갇혀 있게 된다. 그래서 산 자가 애도하지 못하고, 죽은 자가 애도 받지 못한 죽음은 비극적이다. 세월호의 죽음이 그렇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처럼 지나치다보면 자기 인생이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이었다.
“<변신>은 벌레라는 존재를 통해 소통과 이해가 단절된 소외 상황을 암시한다.(p.128)” 그레고르가 생활비를 버는 동안 가족은 그에게 고마워했다. 그러나 그가 벌레가 되어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게 되자, 그는 집안의 골칫거리로 전락한다. 요즘 유산문제로 부모를 죽이거나 버리는 자식들과 하등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영웅에 관한 진실은 상상력을 통해서 만들어지고, 그 영웅을 중심으로 미화된 진실 세계를 구축한다. 하지만 영웅의 서사는 이성과의 충돌을 동반한다. 그것은 사실을 건너뛴 상상력에서 만들어진 믿음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현대인의 영웅이라 할 수 있는 연예인이나 유명 정치인 또한 같은 맥락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속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인간의 조건>이라는 제목에서 말하는 인간의 조건은 ‘인간은 조건 지어진 존재’라는 의미다. 아렌트는 삶, 세계성, 다원성이라는 세 가지 조건을 전제하고 그에 상응하는 인간 활동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탐구한다.(p.199)” 이 세 가지 조건에 상응하는 인간의 세 가지 활동은 노동, 직업, 행위다. <인간의 조건>이라는 제목을 ‘인간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오해하면서 책을 펼쳤던 기억이 있다.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정치적 삶을 말했던 아랜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무사유의 인간이 가져오는 참혹한 결과에 주목했고, 이후 인간다운 삶을 위한 사유의 세계를 말하게 된다. 아렌트의 마지막 저작 <정신의 삶>은 정치적 삶과 정신적 삶을 연결하고자 하는 시도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푸코는 먼저 ‘자기배려’ 개념을 출발점으로 제시한다. 푸코에 따르면 ‘자기 배려는 자기 자신에 대한 배려이고, 자기 자신을 돌보는 행위이며, 자기 자신에 몰두하는 행위’다.(p.213)” 그는 자기 배려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너 자신을 알라’는 고대 그리스의 격언에 대해 설명한다. 푸코에 따르면 배려에는 세 종류가 있다. 첫째, 자기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계에 대한 보편적 태도다. 둘째, 시선의 이동이다. 자기 자신을 배려한다는 것은 시선을 외부로부터 ‘내부’로 이동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자신을 향해 행하는 여러 가지 행위를 가리킨다. 이처럼 고대인들이 던졌던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가 아니라 “나는 무엇으로 만들어야 하는가?”였음을 푸코는 강조한다. 그들이 물었던 것은 단지 자기를 인식하는 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해야 할 행동의 문제였다. 고대인들의 그런 질문은 말과 사유가 아니라, 자신을 변형시키는 행동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푸코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모든 역사, 모든 삶에서 희망과 절망은 언제나 교차한다. 어느 것이 더 강한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절망을 줄이고 희망을 키우기 위한 노력은 부단히 계속되어야 함은 말할 수 있다. 그것이 우리를 지탱해주는 존재의 이유이기 때문이다.(p.228)”라는 저자의 말처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보고 싶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은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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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 유창선 사우/2017.12.15. sanbaram
같은 책을 읽어도 독자에 따라 바라보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다르기에 다양한 사람들이 읽는 책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는 저자가 읽은 책을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가면서 감상하게 해주는 책이다. 저자는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오랫동안 방송과 신문, SNS 등 다양한 매체에서 정치평론가로 활동했다. 이 책에는 이러한 이력으로 인한 생각들이 하나씩 정리되어 있다. 저서로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와 평론집 <정치의 재발견>, <핫이슈 2017>등이 있다.
<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에서 저자는 독자와 나누고 싶은 책을 소개한다. 단순한 책 이야기가 아니라 ‘삶’에 관한 이야기라며 저자가 살아온 이야기를 곁들인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12권의 책은 프리드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서>, 프린츠 카프카 <성>, 롤랑 바르트 <애도일기>, 루쉰 <고사리를 캔 이야기>,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 프란츠 카프카 <변신>, 빅토르 위고 <파리의 노트르담>, 호메로스 <일리아스>,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미셀 푸코 <주체의 해석학> 등이다.
“인간의 삶에는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이 있다. 디오니소스는 술의 신이고, 아폴론은 이성과 절제의 신이다.(p.21)” 감성과 도취, 격정과 망각은 디오니소스적인 것이고, 이성과 이론, 깨어 있음은 아폴론적인 것이다. 인간은 긴장되고 각성되어 있는 상태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때로는 술에 취하기도 하고 춤도 추며 이완된 모습으로 살아간다. 술에 취해 자신의 평소 모습을 망각한 채 황홀경에 빠져 춤추고 노래 부르는 것이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다. 그런데 부모들은 자신이 포기했던 나르시시즘을 부활시켜 자식을 통해 이루고자 한다. 그래서 아이들의 욕망은 불행하게도 자신이 아닌, 타자로서 부모의 욕망일 뿐이다. 진정 아이가 원하고, 아이를 위하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 이성적인 부모들이 할 일이 아닌가 한다.
“‘세상이란 원래 그런 거야’하며 나의 삶을 사는 것이 갈 길이었다. 그런데도 성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못하고 자꾸만 바라보는 것은 미련이다.(p.62)”라고 카프카의 <성>을 이야기 하며 말한다. 주인공이 미련을 갖는 것은 그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외로움에 대한 불안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 진정한 자유를 얻지 못한 채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지 모른다. 들어가고 싶지도 않지만 아주 떠나지도 못하는 주인공처럼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주인공이 공감을 받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거야’라는 이 말, 우리가 흔히 듣기도 하고 건네기도 하는 말이다. 그런데 바르트는 이 주문을 자신을 마비시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이렇게 요구한다. 애도의 슬픔을 애써 억누르려 하지 말라고.(p.73)” 애도의 과정은 사실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을 위한 것이다. 죽은 사람은 보고 듣고 생각할 수 없기에, 산 자들의 애도를 알 수 없다.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을 충분히 애도함으로써 슬픔을 치유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 치유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계속 죽음에 갇혀 있게 된다. 그래서 산 자가 애도하지 못하고, 죽은 자가 애도 받지 못한 죽음은 비극적이다. 세월호의 죽음이 그렇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처럼 지나치다보면 자기 인생이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이었다.
“<변신>은 벌레라는 존재를 통해 소통과 이해가 단절된 소외 상황을 암시한다.(p.128)” 그레고르가 생활비를 버는 동안 가족은 그에게 고마워했다. 그러나 그가 벌레가 되어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게 되자, 그는 집안의 골칫거리로 전락한다. 요즘 유산문제로 부모를 죽이거나 버리는 자식들과 하등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영웅에 관한 진실은 상상력을 통해서 만들어지고, 그 영웅을 중심으로 미화된 진실 세계를 구축한다. 하지만 영웅의 서사는 이성과의 충돌을 동반한다. 그것은 사실을 건너뛴 상상력에서 만들어진 믿음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현대인의 영웅이라 할 수 있는 연예인이나 유명 정치인 또한 같은 맥락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속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인간의 조건>이라는 제목에서 말하는 인간의 조건은 ‘인간은 조건 지어진 존재’라는 의미다. 아렌트는 삶, 세계성, 다원성이라는 세 가지 조건을 전제하고 그에 상응하는 인간 활동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탐구한다.(p.199)” 이 세 가지 조건에 상응하는 인간의 세 가지 활동은 노동, 직업, 행위다. <인간의 조건>이라는 제목을 ‘인간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오해하면서 책을 펼쳤던 기억이 있다.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정치적 삶을 말했던 아랜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무사유의 인간이 가져오는 참혹한 결과에 주목했고, 이후 인간다운 삶을 위한 사유의 세계를 말하게 된다. 아렌트의 마지막 저작 <정신의 삶>은 정치적 삶과 정신적 삶을 연결하고자 하는 시도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푸코는 먼저 ‘자기배려’ 개념을 출발점으로 제시한다. 푸코에 따르면 ‘자기 배려는 자기 자신에 대한 배려이고, 자기 자신을 돌보는 행위이며, 자기 자신에 몰두하는 행위’다.(p.213)” 그는 자기 배려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너 자신을 알라’는 고대 그리스의 격언에 대해 설명한다. 푸코에 따르면 배려에는 세 종류가 있다. 첫째, 자기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계에 대한 보편적 태도다. 둘째, 시선의 이동이다. 자기 자신을 배려한다는 것은 시선을 외부로부터 ‘내부’로 이동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자신을 향해 행하는 여러 가지 행위를 가리킨다. 이처럼 고대인들이 던졌던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가 아니라 “나는 무엇으로 만들어야 하는가?”였음을 푸코는 강조한다. 그들이 물었던 것은 단지 자기를 인식하는 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해야 할 행동의 문제였다. 고대인들의 그런 질문은 말과 사유가 아니라, 자신을 변형시키는 행동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푸코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모든 역사, 모든 삶에서 희망과 절망은 언제나 교차한다. 어느 것이 더 강한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절망을 줄이고 희망을 키우기 위한 노력은 부단히 계속되어야 함은 말할 수 있다. 그것이 우리를 지탱해주는 존재의 이유이기 때문이다.(p.228)”라는 저자의 말처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보고 싶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은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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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배려. 진실한 주체는 결국 자기점검과 수양을 통한다.그러한 진실한 주체가 비로소 진실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사유. 인간이 혼자 고독 속에서 하는 “사유”는 결국 활동적잉 삶으로 연결된다.오직 사유 하는 사람만이 기존의 질서에 무조건 순응하지 않고 새로운 규칙을 제시할 수 있다. 진리. 지난 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시간이 지나고 나면 진리 역시 이름만 남는 그 덧없음의 결과이다 사랑. 가장 오래가는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요,인본주의다.모든 것이 덧없는..언제나 인간이 먼저다.이 시대의 정치가가 되려 할 것이 아니라 영원한 ‘휴머니스트’가 되려는 꿈을 꾸어라,더 많은 것을 포용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다중성.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뇌하는 것은 인간이 짊어진 숙명이다.’선과 악이 종잡을 수 없이 얽혀’있다 변신. 나는 나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했다,어떤 불안도 감당할 수 있도록.. 삶의품격. 철학과 삶의 일치 성찰하는 삶. 나의 길을 가기 위한 고독과 고뇌는 내가 살아 있는 증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