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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생명이다>은 죽음과 생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어렴풋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 명확해지고 진지해졌다. 개인적으로 최근에 '죽음'을 경험한 것이 이 책 <죽음은 생명이다>를 읽는데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제한된 존재이기에 완전성과 영원성을 진리와 연결시키는 전통의 상속자이고 싶어 한다.' 이 문장에서 '인간이 불완전'하다는 말에 공감한다.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죽음이라는 순간이 있다. 인간이 완전하다면 죽음보다는 영원의 시간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불완전 존재가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가지게 한다. 그래서 '삶에 가장 위협적인 불안은 죽음이 공포이다'라고 저자 역시 말하고 있다. 인간에게 죽음은 끝이자 무이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이자 아무도 알지 못하는 세계이기에 더욱 그 공포는 커진다. 이런 인간의 불안함을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의식만큼은 결코 의심할 수 없다는 걸 역설한다. 그리고 칸트는 인간이 사물을 인식하는 체계를 알면 문제를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감성과 오성의 두 가지 능력을 통해 사물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칸트의 이성은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을 경험 가능한 세계로 한정시키고 그것을 신의 질서로 바라보고 있다. 제2부에서는 생명의 인간에 대해 알 수 있다. 생명은 자연환경으로부터 영양을 추출하고 번식하려는 화학 반응의 네트워크다. 생명은 파괴와 질서를 구축하는 역동성을 가진다. 파괴는 죽음이고 고통이며 그 고통을 딛고 남는 것은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생명을 확장시킨다. 고등한 생명체일수록 더 예민하기에 질서를 욕망하면 할 수록 더 많은 혼란을 누적시킨다. 제3부에서는 정신분석과 생명에 관해 이야기한다. 무의식 속에는 생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 즉 에로스적인 생명과 타나토스의 생명이 머문다고 한다. 에로스의 생명은 자기 보존을 위한 삶이며, 타나토스는 자기 파괴의 충동을 지닌 죽음의 삶이다. 죽음은 무의식 속에서 작용하는 상실의 기억을 통해 주체에게 생명이 욕망을 일깨운다. <죽음은 생명이다>에서는 생명과 죽음에 관해 정신분석학적인 성찰을 하지만 내용은 어렵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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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생명이다 그말은 곧 죽음이 있어야 또 다른 생명이 잉태가 되고 또 다른 새싹이 나고 성장하면서 생명이 탄생한다고 봅니다. 불교에서는 윤회설이 있어 세상에서 착한 일을 하면 그 다음단계에서 한단위 높게 태어나고 또한 재물과 명예가 더 주어지고 세상에서 악하고 남을 괴롭히면 다음생애에는 더 안좋게 된다고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식물이나 곤충들의 삶을 바라보면서 식물이 새싹이 나고 자라나서 인간의 밥상에 오르고 또 다시 죽고 곤충도 마찬가지로 알에서 태어나 성장하면서 자라다가 몸이 망가지면서 죽음에 이르는 삶의 윤회법칙을 통하여 이 지구상에는 지금도 끊임없이 먹이 활동을 하면서 생명을 부지하기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에서도 죽음은 생명을 성찰하다라는 말이 있듯이 정신분석학에서도 죽음을 통한 또 다른 생명의 잉태의 삶을 통하여 다시한번 사람의 모습 사람의 삶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수가 있었습니다. 왜 사람들은 탄생은 축하해주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데 죽음은 두려워하고 슬퍼하고 왜 그렇게 초라해 보일까하는 궁금증이 항상 있었습니다. 유한한 물체를 가진 인간의 모습을 보면서 요즘 우리 나라도 고령화를 통하여 주변에 너무나 많은 어르신들을 보게 됩니다. 욕심이 가득찬 얼굴 있으면서도 더 가지려는 모습,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마음등등... 남은 시간이 얼마있지 않으면 많은 것을 내려놓고 다음생애 다른 모습을 기대하면서 좋은 마음 착한 마음을 가져야 되는데 왜 인간은 그렇게 되려고 하지 않고 끊임없이 욕심을 붙잡고 인간의 삶 현실의 삶을 붙잡으려하는지 아직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나이가 먹어가면서 점점 초라해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더 나이가 먹기전에 천국으로 이사를 가야할텐데 남에게 민폐가 되지않아야하는데 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기도를 드립니다. 나이를 정하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가등등을 내 주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계획하고 기도하면서 할수만 있다면 욕심을 부리지 말고 어느 스님의 말씀처럼 무소유로 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마음같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믿음을 가진 한 사람으로 믿음의 생활을 실천하면서 다음생애를 약속하고 기대하면서 무병장수는 할 수 있을지언정 유병장수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죽음은 모두 끝나는 것이 아닌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다라고 봅니다. 즉 우주에 수 많은 별들이 돌아다니는 것처럼 다른 어떤 곳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또 다른 별로 이사를 하면서 또 다른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이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기대를 합니다. 개인적으로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인간은 죄성으로 욕심을 가지고 남이 나보다 더 가진것을 못보고 잘 되는 것을 못보는 죄성이 있지만 많은 것을 비우고 남을 사랑하고 섬기고 나누는 어르신들의 삶이 되었으면 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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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생명에서 자라고 생명은 죽음에서 자란다
우리 사회에는 이미 답이 정해져 있다. 누군가가 나서서 아니라고 새로운 답을 제시하려하면 모두 하나같이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 볼 뿐이다. 이래서야 바꾸려고 해도 바꿀 수 없다. 이미 정해진 답을 향해 질문들이 주어진다. 잠시라도 그 답에서 어긋나려 한다면 우리는 홀로 고립되고만다. 이런 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저자의 말대로 답이 있다고 가르치는 삶에서 진정한 지혜를 가질 수 있을까. ‘지혜는 정해진 결과가 답이 아님을 아는 것이다.’ 어느샌가 우리들은 자신조차 모르는 사이 익숙해져 버려 삶속에서 지혜를 찾아볼 수가 없다. 모두가 이끄는 방향으로 그속에 섞여 녹아들 뿐이다. 다수의 질문, 하나의 정답.
칸트는 자율적인 의지를 강조한다.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 진실한 삶을 살 수 있는 인격의 함양을 위해 자유로움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한다. 칸트는 선의 의지 속에 자유 의지를 느낀다고 한다. 도덕적인 의무를 존중하고 스스로 따르고자 하면 아무 조건도 없이 오직 그 자체만으로 선하게 된다고 믿었다. 선의지의 바탕으로 자유 의지가 갖추어졌을 때 인간의 생명은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고 죽음의 불안도 넘어설 수 있다. 인간은 욕구를 채울 수가 없어서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숙명적인 존재라고 한다. 생의 의지는 이성과 전혀 관계없고 주관적인 마음에 떠오르는 외적 대상의 이미지, 즉 표상에 지나지 않는다. 니체는 나약한 인간의 존재를 딛고 일어서고 싶다. 나약한 존재를 보듬어 주는 사랑과 연민의 감정을 하찮게 치부하고 그런 신을 부정한다. 나약함을 인정하는 신의 도덕은 노예에 불과한 도덕이라면서 ‘신은 죽었다’고 로고스의 한계를 찢는다. 인간의 욕구는 정말 끝없이 이어진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바뀌는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하지만 쉽게 움켜지지가 않는데 그런 나약한 내 자신을 딛고 일어서기가 가능할까. 우리는 매순간 시험대에 오르고 끊임없이 생겨나는 욕망을 쉬이 다그쳐도 보고 달래도 보지만 내 뜻대로 되어지는건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자신을 매번 다독이며 한층 더 굳건해질 수 있도록 나아간다. 니체는 삶이란 힘을 향한 의지라고 한다.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냉철한 이성의 해결이 아니라 힘을 향한 의지의 결과가 안정을 가져온다고 한다.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남 탓이나 외부의 문제로 보는 삶은 노예의 도덕으로 살아가는 삶이라고 본다. 그 삶을 분리할 수 있다면 인간은 힘을 향한 의지를 갖게 되므로 모든 것을 움직이는 생명의 주인으로 불안 없는 삶을 산다고 한다. 불안 없는 삶, 그런 삶이 우리에게 주어질 수 있을까.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본인은 잘못한 것이 전혀 없고 모두 남 탓이라고 하는 우리들에게 말이다. 계속해서 욕망은 커져만 가는데 그 욕망이 채워진다고 한들 스스로 만족하게 될까. 아니 채워질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가장 불안하고 우울한 생명체가 인간이다. 그 만큼 만족을 지향하고자 하는 욕망이 크다. 그 욕망은 아무리 채우려고 노력한들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결국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이, 내 삶이 죽고 싶을 만큼 힘들수도 즐거울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면 언젠가는 맞이하는 죽음 앞에서 누구나 자유로울수 없다. 내 안에 생명이 있고 또한 죽음도 있다. 생명이 곧 죽음이고, 죽음이 곧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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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 저의 『죽음은 생명이다』 를 읽고 내 자신 진정한 보통 사람이다. 우리 부모님으로부터 귀하게 한 생명을 부여받아 건강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명이 다할 때까지 나름대로 열심히 임한 이후에 부모님이 부르시면 다시 저 세상으로 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솔직히 예전에는 전혀 생각도 느낌도 갖지 안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가끔씩 현재 세상의 모습이 아닌 저 세상의 모습 즉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다. 물론 내 자신의 나이가 벌써 환갑이 2년이 지났고, 주변에서 보는 장례식장에서 죽음이나 나이 든 사람들을 볼 때면 그렇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내 자신은 각오를 다진다. 이제 인생 이모작의 시작으로 여기자고. 인생 백세 시대에서의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생으로의 출발점이라고. 그러니까 오히려 힘을 내자고. 활력을 갖추고서 더욱 더 의미 있는 생활을 통해서 시간을 관리하자는 마음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매일 뭔가 바쁘다. 물론 직장을 퇴직을 했기 때문에 얼마든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 나이도 있기 때문에 내 의지대로도 할 수 있다. 사람이 아프고 죽으면 끝나버린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다. 죽음은 상상적 질서에 근거한 것이라고 하지만 생명력이 없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확실하게 언급한다. ' 죽음은 생명이다.'라고. "인간의 생명은 없다. 생명의 인간이다."라고. 저자는 죽음을 생명적인 관점에서 풀어나간다. 죽음은 생명에서 자라고, 생명은 죽음에서 자란다고 한다. 결국 우리 인간의 태어남과 사라짐은 생명 현상이고, 생명체는 죽음의 작품이며, 생명은 불멸의 현상이라고 한다. 이 생명의 흐름을 단상으로 엮으면서 생명인 죽음을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성찰하게 만든다. 정신분석은 소외와 결여 속의 존재의 박탈인 죽음을 수용하고, 생명으로 태어나게 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생명철학이라고 분석한다. 이와 같이 저자는 죽음을 사랑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삶의 태도와 생명의 꿈을 간직할 수 있길 바란다고 전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 자신이 기본적으로 산다고 살아왔지만 저자가 언급하고 있는 이런 내용들을 바탕으로 생활해온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제부터라도 당당하게 이 책에서 성찰하고 있는 죽음을 생명으로 받아들이고 하나의 신으로 당당하게 우주와 하나가 되도록 하고 싶다. 비록 절망의 순간이 오더라도 죽음의 친구가 되고, 질병은 죽음을 수용하라는 저항으로 죽을 만큼 자신을 사랑하는 몸짓으로 받아들이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은 것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사는 것을 두려워하도록 하겠다. 왜냐하면 사는 것이 모여서 결국 죽음이 되기 때문이다. 나만의 죽음을 이 세상에서 가장 엄숙한 선포이고 극적인 순간으로 맞이하고 싶다. 내 자신 후반부 생명의 아포리즘을 한 번 재점검해보는 뜻깊은 너무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어 행복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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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아포리즘"이자 죽음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자기소통상담가 윤정이 제시한 책... 도서출판 북보자기에서 나온 윤정의 <죽음은 생명이다>를 진지하게 흡수 점검하듯 읽었다. 늘 그렇듯... 윤정의 책은 접할 때마다 작가의 경이로운 지적 세계에 감탄을 하게 된다. 학문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디깊었고... 학문의 넓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넓디넓었다. 시인, 심층심리분석가, 대학에서 법을 배우고, 성직자였다가 사임, 월간기독 편집장을 지냈다 한다. 그래서인지 몇 권의 저서를 접하면서 윤정의 글이 정신적으로 풍성하다는 것을 자주 느끼곤 했다. <자끄 라깡 왜! 예수 사랑을 욕망하는가>와 <호모사피엔스, 욕망의 바이러스인가?>를 읽었었는데... 신학, 철학, 심리학, 자연과학 등등... 한 번에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어 퍽 좋았다고 하겠다. 이번 <죽음은 생명이다>도 마찬가지의 느낌을 받았다. 사람에 따라 어쩌면 난해하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 마치 시험에 대비하여 열심히 공부했던 다양한 과목을 한 권의 핵심정리 노트로 만들어 묶은 듯하였다. 태어나서 처음 책을 접하면서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책을 통해 받아들였던 모든 정보들을 점검하듯이 읽었다. 제1부 인간의 생명, 제2부 생명의 인간, 제3부 정신분석의 생명의 순서로 엮어진 내용인데... 제1부는 불안의 세계, 제2부는 우울의 세계, 제3부는 성찰의 세계를 각각 주제를 삼고 쓰인 글이다. 나타나다, 바라보다, 보여주다, 사라지다, 그려지다로 단락을 나누고 마지막은 압축파일로 장식했다. 죽음을 생명적인 관점에서 풀어나간 저자는 역설적으로 죽음은 바로 생명이라고 말을 하고 있다. 우리의 유전자 속에 먼 과거에 존재했던 생명체들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고 한다. 한 개체가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유전자로 영원히 살아있기에 곧 죽음이 생명이 아닐까 싶다. 내 몸을 구성하는 것들은 우주가 생겨났을 때부터 존재했던 모든 것들이 이합집산한 흔적이라고 한다. 아무튼... 영성과 지성, 진리와 지식, 고찰과 지혜의 집합체인 윤정의 책은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님은 틀림없다. 각 블록마다에 인류가 축적했던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녹아있어 내면의 통찰과 깨우침의 울림이 크다. 윤정의 책은 사유하는 인간의 시대적 흐름을 엿보게 만들어주고 더불어 사유하는 힘을 기르게 한다. 쉽게 쉽게 접할 수 없는 내용이지만 쉽게 생각할 수 없는 내용이기도 해서 지성의 수위가 높아진달까? <죽음은 생명이다>를 통하여 얕으나 깊어지고자 했던 내 모든 경험과 지식을 점검해보는 시간이었다. 늘 그랬지만... 이번에도 역시 읽는 동안은 좋았지만 읽은 후 느낌을 적는 것은 힘들었던 윤정의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읽어주는 독자에게 감사하다지만... 나는 이런 책을 읽게 해준 저자에게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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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서 죽음은 항상 근접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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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 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죽음이 끝이 이 책은 정신분석 학자이며 심리 심층분석가인 윤정의 생명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저자는 인간의 생명으로서의 내재된 불안을 하나의 세계로 설정하고 인간 이전의 자기라는 의식은 인간에게만(혹시라도 인간이 자연의 언어를 이해하거나 혹은 |
![]() ![]() ![]()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 되어 있다 1부는 인간의 생명을 불안의 구조 속에서 바라 보는 것 2부는 생명의 인간을 우울 속에서 바라 보는 것 3부는 정신분석은 생명을 자기부정의 역동성으로 고백하는 것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우구스티누스, 데카르트, 케플러, 뉴턴, 칸트, 쇼펜아우어, 괴테, 니체, 베르그송, 존 로크, 카를 마르크스, 존 롤스, 로버트 노직, 안토니오 네그리, 메를로 퐁티> 이 수 많은 이름들을 1부에 나오는 이름들이다 너무나 유명한 이름들을 통하여서 저자는 각각 이들이 어떠한 삶을 살고 고민을 했는지 짧게 언급 하고 각각 무엇을 바라 보고 노력을 했고 무슨 노력을 했는지 보여주고 마지막에 그려지다 라는 부분에서는 저자가 총체적인 느낌을 적어서 설명하고 있다 <중력, 강력, 약력, 전자기력, 빅뱅, 질량, 에너지, 수소원자, 지구, 행성, 바람, 빛, 단백질, 의식, 자유>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이러한 단어들로써 저자는 우울의 세계를 설명한다 각각의 내용을 전부 다 이해 할 수는 없지만 마치 큰 물결을 따라서 출렁이면서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읽어 나갈 수 있다 3부는 무의식을 중심으로 생명과 죽음을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이 흔히 생각하고 나서 죽음은 끝이라는 개념이 아닌 무한히 있는 것으로써 모두 사라지고 돌아온다고 이야기 한다 있는 것도, 없는 것도 모두 있는 것이라고 한다 영원이고 그리고 생명이라고 한다 철학적이기도 하도 종교적이기도 한 내용이어서 쉽지는 않지만 단순하게 생각했던 죽음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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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려지다 하지만 그 본질은 바로 인문학이며, 사람을 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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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매일 죽음을 본다. 실제로 죽는 이들이 주변에 많다. 계절이 바뀌는 이 시기에 죽는 이들이 많다. 이 서평을 끝내고 나는 장례식장을 갈 것이다. 오랫동안 요양원에 계셨던 지인이 돌아가셨다. 다시 일어설 것이라는 작은 소망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꼭 일어나 다시 걸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천국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사람은 이렇게 죽음을 향해 달려가지만 작은 소망은 꼭 붙들고 살아간다. 작은 소망은 한평생 살아왔던 작은 불씨라고 해도 좋다. 소망이라는 것이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작은 불쏘시개이다.
이 책은 생명과 죽음 사이에 살아가는 이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누구는 살아간다. 누구는 죽어간다고 말한다. 긍정적 부정적 관점이 아니다. 같은 말이다. 살아간다. 죽어간다는 것은 차이가 없다. 모두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아가는 것은 죽어간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살아가는 삶의 자리는 늘 불안하다. 불안을 품고 사는 것은 모든 사람의 공통점이다. 그 불안의 종착역은 결국 죽음이다. 죽음에 대한 불안은 살아있는 동안에 갖는 감정이다. 죽음에 대한 불안은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으며 겪고 있는 심리적 상태이다. 우리는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지 죽고 싶지 않다는 것으로 불안해 하며 살아간다.
죽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죽음을 생각하면 우리는 우울해진다. 왜 내가 태어나야만 했는지에 대한 명쾌한 답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은 많지 않다. 태어나서 죽는 수순을 밟고 살아가지만 불안과 함께 찾아오는 것이 우울이아.
저자는 이런 일련의 모습들을 연구하면서 결국 죽음으로 인한 불안과 우울함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자신을 성찰하며 신적 영역에 맡길 수 밖에 없음을 말하고 있다.
조금 더 깊이 인생을 성찰할 수 있는 길은 삶과 죽음의 자리에 있는 현재의 나를 보는 것이다. 내가 생명과 죽음의 자리에서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를 깊게 생각할 때 성찰의 세계에 들어간다.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갖출 인간적 요구가 있다. 이는 우리를 설계하신 신에게 자신을 귀화시키는 것이다.
이 책은 짧은 내용이다. 그러나 깊은 내면의 울림과 생각의 전환을 갖게 하는 어떤 매력이 있다. 이 책을 통해 삶과 죽음의 내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