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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변호사 전원책의 통렬한 좌파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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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전원책이 처음 내 눈에 띈 건 텔레비전 토론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군가산점제를 주제로 한 토론에서 상대 여성패널을 높은 식견과 탄탄한 논리로 꾸짖는 모습은 참으로 볼만했다. 당시 그는 대한민국 젊은 남성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이후 그는 정치·사회를 주제로 한 텔레비전 토론에 자주 등장하며 건강한 보수의 입장을 대변했다. 말빨있고 순발력 넘치는 진보논객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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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전원책이 처음 내 눈에 띈 건 텔레비전 토론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군가산점제를 주제로 한 토론에서 상대 여성패널을 높은 식견과 탄탄한 논리로 꾸짖는 모습은 참으로 볼만했다. 당시 그는 대한민국 젊은 남성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이후 그는 정치·사회를 주제로 한 텔레비전 토론에 자주 등장하며 건강한 보수의 입장을 대변했다. 말빨있고 순발력 넘치는 진보논객들이 활기를 띨 때 전원책의 존재는 보수의 입장에서는 오랜 갈증을 푸는 한 모금의 물과 같은 것이었다. 진중권과 유시민을 상대할 수 있는 보수논객이 있다는 것은 즐겁고 흥미로운 일이었다.

전원책의 프로필을 훑으면서 놀란 게 하나 있다. 그가 시인(詩人)이라는 사실이다. 자기 자신조차 '본업은 시인, 생업은 변호사'라 일컬을 정도로 시인에 대한 자존감이 확실한 사람이다. 실제로 그는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고 신춘문예로 재등단했다. 이미 두 권의 시집을 내기도 했다. 텔레비전에서 봐왔던 그의 이미지는 보수논객으로서의 냉철하면서도 비타협적인 신념주의자로 각인되어 왔다. 그런 그가 언어의 정점이자 언어를 넘어선 세계를 창조해내는 시인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놀랄 만했다. 그 외 집필한 몇몇 저서의 존재는, 그가 마냥 대중적 인기에 함몰된 '말만 하는 지식인'은 아니겠다, 하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전원책 변호사의 『자유의 적들』은 보수주의자로서 좌파를 비판한 책이다. 4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분량은 탄탄한 펙트와 흥미로운 소재를 풍성하게 담아냈다. 저자는 다양한 소재와 개성있는 논리로 좌파를 꾸짖는다. 일방적이고 비논리적인 비난에 함몰되지 않고 풍성하고 깊이있는 역사적·철학적 재료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다듬고 논리를 펼치는 저자의 내공은 인상적이다. 저자가 비판하는 대상은 꽤 폭넓다. 좌파의 원류인 마르크스를 위시하여 기독교와 20세기의 과학사(科學史)까지 건드릴 정도로 광범위하다.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강점은 저자의 폭넓은 인문학적 식견에 있다. 책 곳곳을 채우고 있는 다양한 철학자의 사상과 그에 대한 저자의 주관은 책 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또한 문학사를 풍성하게 수놓았던 대작가의 이름도 수시로 거론된다. 그야말로 지식의 잡동사니라 할 만하다. 즉 저자는 '좌파 비판'이라는 책의 본질을 증명하기 위해 정치와 사회를 넘어서는 다양한 좌파적 카테고리를 향해 밀도있고 입체적인 파상공세를 퍼붓고 있는 것이다.

비판의 칼날이 닿는 범위는 폭넓고 수위는 가차없다. 좌파를 비판한 책이기 때문에 좌파의 본령이자 원류인 마르크스는 저자에 의해 갈기갈기 찢어진다. 또한 실존주의의 거장 사르트르를 강도높게 비난한다. 인류가 낳은 가장 위대한 소설가 톨스토이도 혼쭐이 난다. 한미(韓美) 전직 대통령들도 예외는 아니다. 수많은 지식인, 철학자, 작가, 정치인, 언론인 등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공격대상은 다양하다. 공세수위 또한 상당히 높아서 '씹는 맛'의 희열만으로 책장은 쉽게 넘어간다. 저자는 특히 마르크스와 사르트르에 대해 한맺힌 분노를 뿜어내는데, 그들을 인류의 절대악으로 규정한다.

마르크스를 신랄하게 짓밟는 저자의 논거는 대부분 어렵지 않게 수용될 수 있는 것들이다.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중 하나는 '기존질서에 대한 폭력적 전복'이다. 마르크스의 의도와는 별개로 그의 사상을 추종하고 영향받은 독재자들에 의해 인류의 고통과 질곡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피할 길이 없다. 그 어떤 면죄부를 끌어다 놓더라도 '집단화의 폐착'으로 귀결된 '혁명을 위한 불가피한 폭력'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카를 마르크스에게 있다. 지식인에게 '해석'의 의무보다 '변혁'의 역할을 강조했던 마르크스의 전언은 결국 자신을 꾸짖고 굴절시키는 '자기부정'이 되고 있다. 저자가 마르크스와 사르트르에게 퍼붓는 강도높은 질타의 당위성은 보혁(保革)의 이념을 초월하는 보다 궁극적인 가치의 선상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간 한국의 지식사회에서 보수에 대한 진보의 비판은 양질(良質)의 콘덴츠가 나름 잘 생산되어 왔다. 하지만 그 반대의 입장은 빈약했던 게 사실이다. 양적으로 적었을 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싸구려가 많았다. 대형서점의 정치·사회 코너를 한바퀴 돌면 이를 확연히 체감할 수 있다. 우리사회에서 논리가 전제된 보수지식인의 폭과 영향력이 얼마나 초라해왔는지를 인식하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다. 이런 배경에서 이 책은 단연 눈에 띈다.

물론 이 책의 한계가 없는 건 아니다. 저자의 역사적·철학적 식견이 잘 버무러져 좌파를 해부해고 재단한 점은 충분한 설득력을 띤다. 일방적인 비난이 아니라 오랜 기간 연구하고 입장을 정리한 저자의 준비성 또한 돋보인다. 하지만 수없이 많은 소재를 건드리면서 책 전체를 응집하는 구심력은 다소 부족하다. 책의 구성뼈대가 되는 26개의 소재가 산만하게 흩어져 있어 초반에는 흥미있게 책장이 넘어가다가도 중반을 넘기면서는 주제성을 잃은 엉성한 곁가지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다소 난삽한 것이다. 구심력을 잃게 되면 자연스럽게 원심력이 작동하는 법이다. 충분히 흥미로우면서도 전체적인 힘은 떨어지는 완료성의 미흡이 이 책의 한계다.

저자는 많은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많은 얘기를 하기 위해 배치된 많은 소재와 그에 따른 불필요한 논거가 너무 많이 사용됐다. 그것이 저자의 주장이 응집력을 잃고 난삽하게 흩어지며 '좌파 비판'이라는 책의 본질을 흐려지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본질에 이탈한 여러 소재를 난잡한 병렬식 구도로 풀이하기보다 큰 틀의 몇몇 주제를 세우고 그 안에서 논지를 전개하며 유기성을 갖췄다면 보다 힘있는 책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대통령 선거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지지율 1%도 안되는 모후보의 사퇴로 본격적인 보수와 진보의 양자대결이 되었다. 그들이 진짜 보수인지 진짜 진보인지는 차후의 문제로 넘기자.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기 이전에 '정직'과 '정의'와 '상식'의 전제가 필요하다. 그 전제는 절대조건이다. 보수도 좋고 진보도 좋다. 궁극적으로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 자체의 문제인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전원책의 좌파 비판 『자유의 적들』은 한국사회의 굴곡된 이념주의의 자화상을 '동전의 앞뒷면적' 차원에서 응시하게 하는, 흥미롭지만 힘은 부족한 책이다.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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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gilsamo.blog.me 

YES마니아 : 골드 g*****o 2012.12.19.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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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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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라는 이념은 근대정신의 주요사상이다. 자유는 낭만철학자 헤겔의 자유론에서 절정을 이룬다. 왜 그들은 자유를 부르짖었나. 그 당시 자유가 없없기 때문이다. 장사할 자유가 없었고 정치적 자유가 없었고, 자유를 일부 소수가 독점했기에 자유가 절실했다. 그래서 자유를 외쳤고 자유는 민주주의의 대표 이념이 되었다. 그러나 헤겔의 착각은 자유가 극대화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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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라는 이념은 근대정신의 주요사상이다. 자유는 낭만철학자 헤겔의 자유론에서 절정을 이룬다.

왜 그들은 자유를 부르짖었나. 그 당시 자유가 없없기 때문이다. 장사할 자유가 없었고 정치적 자유가

없었고, 자유를 일부 소수가 독점했기에 자유가 절실했다.

그래서 자유를 외쳤고 자유는 민주주의의 대표 이념이 되었다. 그러나 헤겔의 착각은 자유가 극대화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정말 낭만적인 낙관론 진보론이 있었다는 것이다. 자유의 양이 많을수록

좋은 것이라는 착각이 자유주의의 치명적 약점으로 드러난다.

 

자유를 절대화하면 헤겔의 목적은 달성된다. 그러나 이런 목적은 천당에서나, 헤겔은 신학자다, 가능하지

지구상에서 실존 속에는 불가능하다. 어떻게 자유가 무한대로 가능하겠는가? 가능하지도 않고 또 자유가

많을수로 좋은 사회라는 생각도 잘못이다. 법으로 자유를 제한할 때만 자유는 보장된다는 역설을

받아들여야 한다. 내 자유라고 아무나 가서 상대를 폭행할 수 있는가? 무서워서 거리를 어떻게 다니겠는가?

 

자유는 법으로 그 자유의 한계를 철처하게 한정지을 때만이 자유다. 무한한 자유는 자유롭지 못한 상태를

야기한다. 그래서 헤겔도 법철학을 철저하게 했다. 한극의 기업가들은 규제를 풀기만하면, 자유가

확대되기만 하면 좋은 줄 안다. 규제는 무조건 나쁜 것인가? 신자유주의는 규제를 풀라고 한다.

 

규제를 풀어서 이득을 보는 자들은 자유가 좋다. 그러나 손해보는 자들에게 자유는 악이다.

자유는 어느 선에서 한계를 지어야 가장 이상적일까? 그 결정은 그 사회 구성원의 합의에 의해서

정할 문제다. 자유의 양을 늘리기만 하면 혹은 줄이기만 하면 좋다는 절대주의는 답이 아니다.

자유는 유한한 자유만이 자유다. 3차원 안에서는.

 

지금 20년 동안 흥행했던 신자유주의는 세계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각국이 모두 빈부격차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이 1위고 한국이 2위. 일본 같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득세한 나라가 모두

빈부격차가 심하다. 이는 사회공동체를 망가트리고 있다.

자유의 적 이라는 표현은 자유가 절대가치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자유를 부정 제한하는 것은

다 적이다. 이런 개소리를 신자유주의가 실패했다는 판단이 나오는 지금도 하고 있다니.....

참고로 썰전 같은 프로 보지 말기를. 뉴라이트를 조장하는 저자의 소리는 궤변으로 이루어졌으니...

 

b*******n 2017.06.1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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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책의 좌파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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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100분토론과 최근의 썰전으로 유명한 전원책변호사의 좌파비판으로 좌파의 근원부터 시작해서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 모택동까지 이어가며 낱낱이 해부하고 비판한다.사유재산을 폐지하고 빈익빈부익부가없는 유토피아를 만들자고 주장한 그들 대부분이 그이념에 반하는 재산에 대한 과한 욕심이 있었으며 평등을 주장한 그들이 실제 그들주변의 노동자에게 무지막지한 차별을 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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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100분토론과 최근의 썰전으로 유명한 전원책변호사의 좌파비판으로 좌파의 근원부터 시작해서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 모택동까지 이어가며 낱낱이 해부하고 비판한다.
사유재산을 폐지하고 빈익빈부익부가없는 유토피아를 만들자고 주장한 그들 대부분이 그이념에 반하는 재산에 대한 과한 욕심이 있었으며 평등을 주장한 그들이 실제 그들주변의 노동자에게 무지막지한 차별을 했다는 사실을 알린다. 그들의 거짓선동으로 이념만 믿고 달려든 순진한 군중들은 그들에게 이용당할 뿐이다
여기서 재밌는점은 공산주의의 평등을 불평등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여지없이 비판하는 저자가 민주주의에 대해 언급한것인데 민주주의의 부정부패는 권력자의 미성숙으로인해 생기고 이것이 민주주의의 단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성숙한 인간은 있긴 있는것일까 있다해도 이 성숙한 인간이 비도덕적인 정치판에서 살아남아 권력을 쟁취할수 있는것일까? 이런점들을 이념의 보완으로 고쳐나갈수 있을까? 공산주의는 실패한 이념으로 증명되었고 자유민주주의는 아직 진행형이다. 그래도 이런 희생으로 우리의 미래는 점점 더 희망적일것이다.
s****w 2016.10.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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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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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책 변호사가 쓴 '자유의 적들'에서 '적들'은 자신과 반대편에 선 자들일 것이다. 저자는 보수주의는자는 사회에서의 자유를 옹호하고, 진보주의자는 평등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보수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저자에게 자유의 적들이란 사회의 평등을 추구하는 자들과 그들의 집단인 것이다. 저자는 경제와 관련해 효율성(efficiency) 과 평등(equality) 의 대립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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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책 변호사가 '자유의 적들'에서 '적들' 자신과 반대편에 자들일 것이다. 저자는 보수주의는자는 사회에서의 자유를 옹호하고, 진보주의자는 평등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보수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저자에게 자유의 적들이란 사회의 평등을 추구하는 자들과 그들의 집단인 것이다.


저자는 경제와 관련해 효율성(efficiency) 과 평등(equality) 의 대립을 강조한다. 이런 이유로 보수주의자 혹은 자유주의자는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는 비효율적인 경제체제가 밖에 없다고 주장하며 자유주의 경제체제를 옹호한다. 하지만, 우리가 깊이 숙고해봐야 점은 보다 "넓은 평등을 추구하는 경제체제가 과연 보수주의자의 주장대로 효율적이지 못한가" 하는 것이다. 사회에서 우리는 개인에게 어느 정도의 자유까지 보장하며 얼마만큼의 평등을 추구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자유방임주의에 대해서 오해하는 점은 개인의 자유를 헌법과 분리시키고 정부의 역할을 시장의 방관자로 본다는 점에 있다. 자유방임주의 경제체제의 시초라고 있는 애덤 스미스는 오히려 사회의 법을 강조하고 정부를 시장의 심판으로 세움으로서 시장은 더욱 자유롭고 효율적으로 성장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우리가 꼭 집고 넘어가야 점은 한 사회에서 헌법의 테두리 안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점이다. 헌법을 준수함으로 평등과 자유를 동시에 얻을 있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사람 낳고 낳았지, 낳고 사람 낳았냐" 라고 주장 때가 있다. 언뜻 들으면 개인이 숭고하게 자유를 옹호하는 발언같지만, 모순일 밖에 없는 말이다. 태어날 때부터 사회에 속해 사회에서 타자와 함께 살아갈 밖에 없는 우리 인간은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하나인 (나는 헌법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예속할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과 법의 인과관계를 물어 개인의 주권을 주장한다는 듯한 발언은 무지이거나 마치 자기자신을 인권주의자로 포장하려는 가식일 밖에 없다.

j******4 2013.08.1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