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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 옆 어느 화랑에서 장욱진 전시회를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전시회에 꼭 가봐야지 하고서 차일피일 미루던 중에 친정을 찾을 일이 생겼다. 아무런 목적 없이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지하실 창고로 내려가 보았는데, 창고 구석 책더미 속에 문득 눈에 띄는 책 '장욱진 - 모더니스트 민화장'! (친정 아버지께서 다른 분으로부터 선물받은 책이었다.) 어떤 일에 관심을 갖고 있을 때, 그것과 관련된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하는 우연성을 serendipity라고 했던가. 평균 이하의 신통력을 가진 내게도 가끔 이런 기쁜 순간이 다가오곤 한다.
이 자그마한 책을 집으로 가져와 야금 야금 읽어가면서, 전시회에 가기 전에 이 책을 읽게된 건 정말 행운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작품들을 실물로 접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못견딜 정도로 자라났기 때문이다. 책 속에 실린 그림들 중 몇 작품이 내 머리에서 떠날 줄 몰랐고 (특히 <진진묘>, <팔상도>, <밤과 노인=""> 그리고, 모든 나무 그림), 마치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평생 그림에 전념했던 화가의 영혼을 직접 만나고 싶다는 바램이 간절해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화가나 미술평론가가 아니다. 그는 장욱진의 미술 세계에 매혹되어, 그의 문하로 들어간 사회과학도이다. 때문에, 그는 어려운 미술 용어로 장욱진의 작품을 분석하지 않는다. 이십년 가까이 화가의 화실을 출입했던 저자는 화가와 깊이 대화를 나누고 그의 삶을 직접 관찰하면서 알게된 '인간 장욱진'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각 시기마다 (덕소시절, 명륜동시절, 수안보 시절, 마북리 시절 등) 화가의 주변에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화가가 어떤 생각을 했으며, 어떤 작품 세계를 추구했는가 등 가까운 사람이 아니고는 알수 없는 내용들이 자세히 적혀있다. 42년 생인 저자는 요즘 표현을 빌리자면 '장욱진 매니아'였던 모양이다. 장욱진이라는 자유인에게 완전히 매혹된 저자의 열정이 책 곳곳에서 느껴진다.
책을 읽은 후, 곧 전시장을 찾았다. 책 속의 작은 사진으로 접했던 그림들을, 그의 붓결이 느껴지는 실물로 감상하는 경험은 정말 벅찬 감동이었다. 해와 달, 새, 나무, 사람, 개가 저마다 자기에게 딱 맞는 자리에 서 있는 세상. (그들은 서로 얽혀있지 않고, 서로에게서 조금씩 떨어져 자신만의 자유 공간을 확보하고 있었다. 마치 화가 자신처럼. 하지만, 모두 함께 결국은 하나의 조화로운 세상을 이루고 있었다.)
인상적인 것은 대부분의 작품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작은 화폭에 그려져 있다는 점이었다. 세상이 다 담겨있지만, 그 세상은 작기에 더 족하다는 느낌이었다. 그 정도 그림의 경지에 이르려면 화가 자신이 스스로에게 얼마나 철저했을 것이며, 작품에 대한 욕심 또한 얼마나 넘쳐났을 것인가. 그러나, 막상 도인의 낙서인 듯, 그의 작품 속에는 모든 욕심이 사라져 있었다.
책 속에는 중광이 적은 장욱진을 기리는 선시 하나가 인용되어 있다. 화가의 그림 속 느낌이 잘 표현된 시라는 생각이 들어 적어본다.
"천애에 흰구름 걸어놓고 까치 데불고 앉아 소주 한잔 주거니 받거니 달도 멍멍 개도 멍멍" [인상깊은구절] 먹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화가는 스스로 '붓장난'이라 이름했다. 신명이 나는 대로 그림을 그린다는 뜻이다. 미학이론이 말하는 그림의 유희설과 일맥상통한다. 누가 청한다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신명에 따라, 때로는 장난기 만만하게 그리는 거기에 스스로의 즐거움이 있다는 말이다.밤과>팔상도>진진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