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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호랑이띠다. 열두 가지 띠 중 어떤 띠가 될지를 선택해서 나올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내가 호랑이띠라는 게 참 맘에 든다. 여성-호랑이띠 조합은 여성-말띠 조합만큼이나 한국에서는 부정적인 이미지이지만, 오히려 그 이미지 때문에 더 마음에 든다. 나는 한 겨울에 태어났는데, 호랑이들이 슬슬 활동을 시작하는, 어스름한 저녁 무렵에 태어났다고 한다. 그 이미지가 평생 각인되어 있다. 한 겨울 저녁, 슬슬 활동을 시작하는 호랑이. 호랑이들은 무리지어 다니지 않는데 그런 의연한 이미지도 좋았다. 어쩐지 '나'라는 인간을 형상화했을 때 거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동물은 호랑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나는 내가 호랑이 띠라는 게 맘에 든다. 딱히 세상에 순종적이지도 복종하거나 타협할 마음도 없이, '나'로서 살아가는 생물. 그게 내가 가진 정체성이자, 내가 호랑이라는 동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다. 김탁환의 『밀림무정』이 나왔을 때 주저없이 구입했던 것도 그게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에 대한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최민식이 주연한 『대호』도 김탁환 소설이 원작인 줄 알고 봤었는데, 어쨌든 그 영화 역시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는 왜 이다지도 큰 상징성을 가지는 걸까. 그것은 호랑이가 우리의 민족성 혹은 민족혼의 상징이고 그것을 말살하려는 시도들이 일재 강점기 하에 계속 자행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그 흔적이 사라진 호랑이들 찾아 떠나는 여정은 따라서 한민족의 DNA에 각인된 우리의 민족혼과 민족얼을 찾으려는 의지일 수도 있겠다. 물론 나같은 사람에겐 나의 정체성 내지는 나의 분신을 찾고자 하는 열망이기도 하다. 순전히 개인적으로.
EBS에서 「시베리아호랑이-3代의 죽음」이라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적이 있다는데, 영상화했던 그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만든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박수용 PD는 무려 20년 동안이나 시베리아 호랑이(라고 부르든 백두산 호랑이라고 부르든 그것은 인간이 사는 지역에 의거한 것이다. 사실 호랑이는 그것과 상관없이, 무관하게, 삶을 산다)를 추적했고, 그 결과물로 나온 것이 이 다큐멘터리라고 한다. '3代의 죽음'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암 호랑이 3대의 탄생과 죽음을 추적하였다. 이제 실물로는 볼 수 없는 호랑이의 모든 것, 모든 순간을 포착하여 탄생부터 죽음까지를 카메라에 담았다. 그러니깐 이것은 시베리아 호랑이 3대를 탐사한 다큐라고 정의내릴 수 있을텐데, 영상과는 달리 책을 읽다 보면, 호랑이 이면에 그 호랑이들을 담고 있는 사람의 의지와 집념이 느껴져서 거기에 대해서도 경이를 표하게 된다. 20년이란 시간을 오직 한 가지 일에 투자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으니깐. 그 수고의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만약 DVD로 나온다면(혹은 나왔다면), 책뿐 아니라 영상도 구입해서 소장하고 싶다. 한겨울이면 리추얼처럼 보게 될 것 같다. 아무쪼록 세계의 모든 호랑이들이 멸종되지 않고 자기의 영역과 터전에서 살아갈 수 있길. 부디 시베리아의 야생 호랑이들이 인간의 덫과 혹한, 극심한 식량난을 극복하고 끝내 살아 남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