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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고쿠라일기] 전 - 마쓰모토 세이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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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모토 세이초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좋아하는 작가이다. 일본의 사회파 미스터리의 대부라 불리우며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남기기도 하였지만, 그의 글쓰기가 오롯이 그의 노력과 꼼꼼함에서 비롯되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은 픽션은 물론 [일본의 검은 안개]와 같은 작품처럼 논픽션에서 그 진가가 충분히 발휘되는데, 스스로 찾은 각종 자료들을 분석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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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쓰모토 세이초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좋아하는 작가이다. 일본의 사회파 미스터리의 대부라 불리우며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남기기도 하였지만, 그의 글쓰기가 오롯이 그의 노력과 꼼꼼함에서 비롯되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은 픽션은 물론 [일본의 검은 안개]와 같은 작품처럼 논픽션에서 그 진가가 충분히 발휘되는데, 스스로 찾은 각종 자료들을 분석하여 치밀한 구성의 이야기로 전달하는 그의 글은 분명 눈여겨 볼만한 부분이 있어 보인다. <어느 [고쿠라일기] 전>은 세이초의 12편의 중,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특히 제목으로 선정된 <어느 [고쿠라일기] 전>은 애초 나오키 상(일본 장르문학 분야의 권위있는 상) 후보였으나 수상하지 못하고, 거꾸로 아쿠타가와 상(일본 순문학의 신인상)을 수상하였으니 이는 그의 글이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을 의미하며 만 44세의 지각데뷔는 그가 독학으로 글쓰기에 매진하여 이루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작품들은 이전에 우리에게 주로 소개되었던 사회파 미스터리라는 장르문학보다는 오히려 순문학에 가까운 작품들이 대거 수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세이초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흥미롭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고쿠라일기] 전>
  일본의 모리 오가이는 유명 작가로서 1899년부터 3년간 고쿠라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그의 전집을 출간하였지만, 그가 고쿠라에서 쓴 일기가 발견되지 않아서 많은 아쉬움이 있던 상황에서 다가미 고사쿠라는 한 청년이 모리 오가이의 고쿠라에서의 행적을 조사하면서 사라진 오가이의 [고쿠라일기]를 재구성하기 시작한다. 고쿠라에서 모리 오가이가 쓴 글의 주인공들의 실존 모델들을 찾아가면서 그의 행적을 좇는 다가미 고사쿠라는 어렸을 적에 들었던 전편꾼(일종의 심부름꾼)의 방울 소리를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는데, 이를 소재로 모리 오가기가 쓴 작품을 읽고 그에 대한 존경심이 바로 그러한 활동의 동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40여년이 지난 시점에서 모리 오가이의 고쿠라에서의 행적을 찾는 것은 쉽지 않지만, 직접 몸으로 뛰며 각종 자료를 수집하면서 나름의 [고쿠라일기]를 완성해가는 다가미 고사쿠라. 그가 태어났을 적부터 불구의 몸이라는 사실과 그를 말없이 뒷바라지하는 어머니 후지의 모습은 그가 과연 [고쿠라일기]를 완성할 수 있을지 끝까지 몰입하여 읽을 수 밖에 없게 된다.

<빨간 제비>
  태평양 전쟁 막바지 시기에 정읍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를 자아낸다. 사실 세이초는 젊었을 무렵에 정읍에서 실제 군복무를 하였으니 그의 정읍에 대한 시선이 어느 정도 반영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기품있는 일본의 귀부인을 둘러싼 두 명의 군 장교의 탐욕이 어떻게 변모하고 있는지를 통하여 인간의 또 다른 이중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애초에 귀부인에 대한 두 장교의 존경심이 일본이 패망하고 미군이 정읍에 들어오면서 그들을 위한, 자기들이 똑같이 했던 것처럼 그들을 위하여 일본인 여성 중에서 위안부를 선정하기 위하여 제비를 뽑는데, 그 귀부인이 그 중 한명으로 당첨된다. 그러나, 미군들은 일본과는 달리 그러한 위안부의 접대를 전혀 바라지도 않았기에 다행스럽게도 귀부인은 몹쓸 짓을 당하지는 않지만, 이미 위안부로 당첨되었다는 사실로 인하여 귀부인을 바라보는 일본의 두 장교는 과거 존경이 아닌 탐욕의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게 된다.

 <국화 베개>
미모와 지성, 거기에 야심까지 갖춘 누이는 정작 그녀의 남편에 대해서 불만이다. 남편은 시골의 미술 교사였는데, 예술가로서의 꿈보다는 그저 미술교사로서의 삶에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 글쓰기에 소질이 있었던 누이는 하이쿠를 통하여 그동안 발휘하지 못했던 그녀의 재능을 사람들에게 발휘하기 시작한다. 점점 유명해지지만, 남편과 가정에 대한 홀대와 더불어 라이벌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은 점점 사람들이 그녀를 외면하게 되며, 결국 그녀는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다. 면회온 남편에게 건네주는 국화 베개를 보면서 남편은 아내가 정신병에 걸리고 나서 오히려 자신에 대한 사랑을 깨달았다는 사실에 통곡하게 된다. 당시 여성의 지위가 남편에 종속되던 가부장적인 모습과 더불어 그것을 문학적 재능으로 뛰어넘고 싶던 여성의 모습을 이 작품에서 들여다보게 된다.

<약점>
 건축 과장인 주인공이 내연녀와 불륜을 저지르다가 우연한 사건으로 인하여 한 남자에게 신세를 지게 된다. 그로서는 불륜을 아내는 물론 직장 동료에게도 들키지 않는 기발한 방법으로 벗어났다고 생각하였지만, 폭력단과 연결되어 있으면서 지역의원이라는 그 남자에게 점점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각종 이권 사업에 대하여 도움을 청하는 그 남자의 부탁을 어쩔 수 없이 들어주면서 자신이 그 남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느끼는 마지막 장면은 일본의 공직 사회의 부패와 그에 결탁한 이권 세력에 대한 세이초의 비판적인 시선을 확연히 느낄 수 있게 된다.

  간략히 몇몇 작품의 줄거리는 위와 같다. 세이초에 대하여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에 실린 작품이 세이초의 모든 것을 담아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가 화려하게 등단할 수 있었던 <어느 [고쿠라일기] 전>은 실제로 모리 오가이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었던 세이초가 주인공에 빙의하여 그의 실제 활동을 글로 담아낸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의 주인공이 실제 향토학자인 다가미 고사쿠가 모델이었지만, 모리 오가이에 대한 어렸을 때의 추억과 존경심은 세이초의 그것이었고, 이 작품을 쓰기 위하여 그 역시 작품의 주인공과 같이 사람들을 탐문하면서 각종 자료를 직접 수집하였으니 이 작품의 주인공은 세이초 본인의 모습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우리나라와 관련된 부분들을 가끔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그가 전북 정읍에서 실제 군생활을 하였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에 그가 근무했던 정읍에서의 느낌은 그리 부정적이지 않다. 오히려 <빨간 제비>에서는 현재까지도 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본의 정부와는 달리 오히려 일본이 위안부를 운영한 사실이라든지 동남아시아 전선에서 벌인 행위들을 곳곳에서 암시함으로써 양심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일본 스스로 미군을 위하여 일본 여성들을 대신하여 위안부를 모집하는 장면이 그러한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더불어 제비 뽑기에 당첨된 여성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시선과 심경 변화와 같이 치밀한 심리 묘사는 이 작품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이외에 다수의 작품들에서 세이초의 글쓰기에 대한 열정과 그의 힘겨운 상황을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는 점도 눈길이 간다. 사실 그가 40이 넘어서야 등단을 하였다는 점과 더불어 독자적인 글쓰기를 위하여 스스로 자료를 수집하고, 특유의 분위기를 형성하였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깨진 비석]의 기무라 다쿠지라든지 <돌뼈>의 구로쓰의 모습은 세이초의 악전고투를 떠올리기에 충분해 보인다. 둘다 향토 사학자였지만, 고학력자가 아니었기에 스스로 노력하여 나름의 역사적인 논문과 발견을 하는 인물들이다. 그렇지만, 기존의 학계에서는 그들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기에 기무라 다쿠지는 왕성한 전투력을 발휘하며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주장하면서 기존의 학계에 대해서 쓴소리와 비판을 쏟아낸다. 구로쓰는 소극적이지만, 그 역시 그러한 기존의 학계의 모습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면서 후일 그가 주장한 학설이 인저받기를 바라면서 차근차근 준비한다. 이러한 둘의 모습은 실존 인물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과 더불어 세이초가 문단에서 겪었던 상황을 떠올려본다면 이들 역시 세이초가 빙의된 또 다른 모습임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어느 [고쿠라일기] 전>은 그의 다양한 단편들이 그의 삶의 전반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실존 모델을 대상으로 하여 자신의 상황을 대입한 그의 작품은 확실히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묘한 매력을 선사한다. 더불어 그의 생애를 작품으로 확실히 느낄 수 있다는 점은 세이초에 관심이 있거나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한번쯤 읽어볼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개인적으로 평소 세이초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나에게는 더욱 의미있는 작품들로 각인될 수 있으리라.

g*******7 2018.05.30. 신고 공감 8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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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안 되지만 나름대로 산 사람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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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마쓰모토 세이초 소설이 많이 나왔지만 내가 만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여기 실린 단편은 거의 마쓰모토 세이초가 작가가 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쓴 거다. 그래서 지금까지 만난 소설과 조금 달라 보이는 건 아닐까 싶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사회파 미스터리’ 를 쓴 사람으로 잘 알려졌다. 그게 커서 그렇게 알려졌지만 마쓰모토 세이초는 작가가 되고 늘 공부하면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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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 마쓰모토 세이초 소설이 많이 나왔지만 내가 만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여기 실린 단편은 거의 마쓰모토 세이초가 작가가 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쓴 거다. 그래서 지금까지 만난 소설과 조금 달라 보이는 건 아닐까 싶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사회파 미스터리’ 를 쓴 사람으로 잘 알려졌다. 그게 커서 그렇게 알려졌지만 마쓰모토 세이초는 작가가 되고 늘 공부하면서 글을 썼다. 픽션, 논픽션, 평전, 고대사, 현대사로 자신의 세계를 넓혔다. 여러 나라 말과 여러 학문을 한 움베르토 에코도 있구나. 그런 사람 더 있을 텐데 내가 아는 사람이 얼마 없다. 보르헤스도 여러 나라 말을 알던가. 다치바나 다카시도 생각난다. 혼자 이것저것 다 하는 사람 대단하다. 난 하나 하기도 힘든데. 잘 하는 사람과 견주는 건 별로 좋지 않은 거겠지. 평범한 사람도 한가지를 오래 하면 괜찮을 거다. 여기에 실린 소설에는 그런 사람이 많다. 열심히 하지만 세상에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

 소설가는 처음에는 자기 이야기를 쓰기도 할 거다. 마쓰모토 세이초도 처음에는 자기 이야기를 쓴 게 아닐까. 아니 마쓰모토 세이초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였던 사람 이야기를 썼다. <어느 “고쿠라 일기” 전> <국화 베개> <깨진 비석> <돌 뼈>에 나오는 사람은 실제 있었던 사람이라고 한다. <깨진 비석>과 <돌 뼈>에 나오는 사람은 어쩐지 비슷해 보이기도 하는데. 중학교 교사를 하면서 고고학을 하는 걸 보면. <피리 단지>에 나오는 사람도 비슷하다. <피리 단지>에서 향토사 연구를 하는 사람은 모델이 없었을까. 여러 사람을 알게 되고 이런 사람이 있어도 괜찮겠다 여긴 걸지도. 세상이 덧없다고 느끼는 사람이다. 자신은 평생을 바쳐 무언가를 연구해야겠다 한다. 그것을 찾고 스무해쯤 걸려 해내지만 그 뒤에 다시 부질없음을 느낀다. 그건 자기 힘보다 다른 사람 힘으로 인정받아서는 아닐까.

 이야기 시대는 예전이지만 지금과 다르지 않은 것도 있는 것 같다. 학연 지연 이런 건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것을 생각하지는 않을 거다. <국화 베개>에서 하이쿠를 쓰는 누이는 자기 남편이 가난한 시골 학교 교사여서 하이쿠를 쓰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업신여긴다 생각한다. <깨진 비석>이나 <돌 뼈>에서는 학력이 낮아서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여겼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 사람들은 고집을 내세우고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런 건 좀 안 좋을지도 모르겠다. 남한테 인정받지 못해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걸 즐겁게 여길 수도 있을 텐데. 사람은 남한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어느 “고쿠라 일기” 전>에 나오는 사람은 몸이 좋지 않았다. 몸이 건강했다면 좀더 나았을 텐데. 건강했다면 모리 오가이가 고쿠라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알아보지 않았겠다. 어떤 때는 자기 몸이나 둘레 환경 때문에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찾아내기도 한다.

 첫번째 소설 <아버지를 닮은 손가락>에서는 아버지의 출생의 비밀이 나오지 않았는데 그건 뭘까, 내가 놓친 걸까. 아버지를 닮아 좋은 것이 있기도 하겠지만 여기에서는 그 반대다. 아들은 아버지와 자신 손이 닮은 걸 싫어했다. <불의 기억>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없었던 사람이 어머니가 만난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되는 이야기다. 아니 그 사람은 자세한 건 몰랐던가. <빨간 제비>는 한국이 일본 지배에서 벗어난 때가 배경이다. 그때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쓴 적도 있다니.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여자가 위안부가 될 빨간 제비를 뽑은 것만으로도 다르게 생각하다니.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약점>에서는 아내가 있는 사람이 애인과 함께 간 온천 여관에서 옷을 도둑맞고 자신이 도와준 적 있는 시의원한테 도움을 받고 약점을 잡히는 이야기다. 약점 잡힐 만한 일은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게 나을 텐데. 왜 결혼하고도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걸까. <상실>에도 그런 사람이 나온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일본 만화영화를 보고 나서야 일본은 사촌이 결혼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하코네 동반자살>은 따로따로 결혼한 사촌인 남자와 여자가 함께 하코네에 갔다 사고가 나고 선을 넘었다. 그 뒤에 두 사람은 함께 죽기로 했나보다. 그런 말을 하는 모습은 나오지 않고 그런 분위기가 감돈다. <청색 단층>에서는 세상에 잘 알려진 화가가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지 못하다, 그림 공부를 한 적 없는 사람이 자유롭게 그린 그림을 보고 영감을 얻는 이야기다. 화가는 다른 사람 그림을 보고 영감을 얻었지만,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은 그림을 그만둔다. 누군가한테 그림을 배우지 않아서 자유롭게 그림을 그렸는데, 그림을 배우고는 자유로움이 사라졌다. 그걸 화상 주인이 가르쳐줬다면 좋았을 텐데. 아니 그림은 만만하지 않은 일이다. 화상 주인은 그 사람 그림이 이름이 잘 알려진 화가한테는 어떤 자극을 줄지라도 그 이상은 아니다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이 고향에 가서 잘 살았기를 바란다.



희선



이달의 사락 n***8 2018.04.27. 신고 공감 4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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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고쿠라 일기」전 - 승화된 콤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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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요번에 작가의 고향이자 책의 제목에도 명시된 고쿠라를 여행가게 돼 이 책도 읽게 됐다. 사회파 추리소설의 창시자이자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야베 미유키 등 현대 추리소설가들의 귀감이자 정신적 스승이라고 볼 수 있는 이 거장의 이력을 살펴보면 한 사람의 추리소설 애독자로서 유독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추리소설가로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는 것. 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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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요번에 작가의 고향이자 책의 제목에도 명시된 고쿠라를 여행가게 돼 이 책도 읽게 됐다. 사회파 추리소설의 창시자이자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야베 미유키 등 현대 추리소설가들의 귀감이자 정신적 스승이라고 볼 수 있는 이 거장의 이력을 살펴보면 한 사람의 추리소설 애독자로서 유독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추리소설가로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는 것. 책의 표제작인 '어느 「고쿠라 일기」전'이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인데 원래 나오키상 후보작이던 걸 한 심사위원이 아쿠타가와상에 잘 맞는다고 생각해 낙선과 동시에 바로 그쪽 상의 후보에 올려 수상에 이르렀다고 한다. 우리나라만큼 폐쇠적이진 않지만 일본 문단에서도 순수문학의 위상과 권위가 결코 낮지 않은 만큼 어떻게 추리소설이 최고의 순수문학상을 받았을까 싶어 늘 궁금했었는데 드디어 읽게 됐다.

 고쿠라에 있는 마쓰모토 세이초 기념관까지 가니까 확실히 느낀 건데 이 작가를 단순히 추리소설가의 틀 안에서 바라보는 건 좀 지양해야 할 일일 듯했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기본적으로 사회나 인간의 어두운 측면에 관심이 많아 자연스럽게 범죄가 등장하는 추리소설도 썼을 뿐이지, 단순히 추리소설 그 자체를 쓰는 작가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는 기념관에서의 전시 내용과 - 기념관의 내용은 추후 여행기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 이 12편의 단편이 수록된 소설집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추리소설은 한 손에 꼽을 정도고 가장 궁금했던 표제작은 추리소설의 기법을 빌린 다른 형태의 소설이었다. 이 작가가 생전에 천 편이 넘는 소설을 발표한 걸 생각하면 의외로 알려진 것보다 집필한 추리소설의 수가 적을 수 있겠다고 생각됐다. 혹은 그런 특성 덕에 추리소설의 외연이 넓어진 것일 수도 있겠고.


 수록된 12편의 소설은 물론 저마다 양상이 다 다르지만 대체로 공통된 키워드를 읽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초기작이라 이런 키워드들이 유독 두드러진 것 같다. 바로 '가난', '콤플렉스'가 그렇다. 특히 인텔리나 고학력을 향한 경멸과 그로 인한 자격지심, 피해망상 같은 게 인상적이었는데 화려하지 않고 어떤 독자의 말마따나 구수하기도 하지만 진솔하고 알기 쉬워 단편집임에도 금방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어떤 경우엔 몇 권으로 이뤄진 장편보다 여러 소설이 수록된 단편집이 완독하기까지 오래 걸리기도 하는데 이 책은 각 작품들의 공통된 키워드 덕분인지 맥락이 비슷해서 비교적 연속으로 읽기에 피로감이 적은 감이 있었다. 그렇다고 오해하면 안 되는 게 속된 말로 작가가 소설들을 '공장에서 돌린 듯' 쓴 건 아니라 3편씩 읽고 멈추고 다시 읽기를 반복해야 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이 작가의 작품의 면면을 살펴보면 공장에서 돌렸다라는 말은 빈말로라도 나오지 않는다.

 원래 신문 기자를 꿈꿨던 만큼 이 작가는 취재가 천직인지 각 작품의 소재나 배경에 대한 설명의 깊이가 하나같이 감탄스러웠다. 대부분의 작품이 작가의 삶의 일부와 맞닿은 듯했는데 단순히 자신의 경험을 소설화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철저한 취재와 작가적 상상력과 해석을 매 소설 속에 녹여낸 건 소설가 지망생인 나를 상당히 자극시켰다. 이 정도로 공부해야 소설을 쓸 수 있는 건가... 하면서. 이러한 공부와 병행한 집필 활동은 평생 가난과 고졸 학력에 대한 콤플렉스가 발로된 결과라 볼 수 있겠는데 이 정도면 콤플렉스를 무척 모범적으로 승화시킨 것으로 여겨진다. 적어도 작가의 작품들 속 주인공에 비한다면 작가는 아주 건전하기 이를 데 없다.



 '아버지를 닮은 손가락'


 가난에 이골이 났을 작가의 가장 자전적인 작품. 사람이 가난하면 여유가 부족해지고 성격이 좁아진다는 전개를 자기 이야기를 하듯 세밀하게 묘파해냈다. 근데 사실, 가난이란 소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익히 다뤄진 소재라 더는 새로울 것도 없고 솔직히 말해 지긋지긋할 정돈데 마쓰모토 세이초가 쓰니까 무게가 확실히 달랐다. 작품의 시대며 배경이며 지금 내 처지와 제법 거리가 있음에도 주인공의 심리가 낯설지 않았던 게 인상적이다.


 '어느 「고쿠라 일기」전'


 표제작. 주인공이 모리 오가이의 '고쿠라 일기'에 둘러싼 비밀을 추적하는 동기는 그리 와 닿지 않았지만 그 속엔 예술적인 숭고함이 깃들어 있어 확실히 아쿠타가와상에 어울리는 작품이지 않았나 싶다. 날 때부터 병을 안고 태어난 청년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홀어머니와 살아가는 정경이 상당히 짠했고 끝내 그 뜻을 이루지도 못하고 죽는 결말도 서글프기 짝이 없다. 삶 자체가 아이러니하고 비극적이라고 감히 말하긴 힘들지만 확실히 주인공 고사쿠의 삶은 그런 측면에서 꽤나 비범하게 다가왔다.


 '국화 베개'


 여성 하이쿠 문인인 주인공이 당대에 이름을 떨치고 그 이름이 어떤 식으로 지게 됐는지 살펴보는 전기 형식을 띈 소설. 앞서 수록된 두 작품과 비슷하지만 문단에서의 고립을 자청했다고 볼 수 있는 주인공의 모습에 연민이 느껴졌던 게 달랐다. 이후 수록작에서도 이렇게 주인공이 어떻게 살다가 비극적으로 죽었다더라 라는 식의 이야기 구조를 보이지만 의외로 크게 비슷한 경우는 없는 건 또 신기하다.


 '빨간 제비'


 우리나라 사람으로선 그렇게 달갑지 않을 일제 강점기 시대의 한국에서의 일본군의 이야기인데 의외로 읽다보면 그렇게 거북하진 않다. 작가가 딱히 한국 독자를 배려해서 그랬다기 보단 그냥 작품의 배경이 한국이고 주요 인물이 일본군일 뿐 역사나 정치와는 무관해서 그런 듯하다. 아무튼 위안부가 될 뻔했다는 낙인이 찍힌 여인들이 얼마나 기구해지고 전락해지는가 라는 주요 스토리 라인에 주목한다면 요즘에도 눈여겨봐야 할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었다고 쳐도 그 사소한 낙인 하나가 - 특히 여성한테 찍히는 낙인이 그렇다. - 이렇게 뒤틀린 감정을 만든다는 건 참 경계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j*******g 2019.04.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