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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꾼다 현대 사회에서 행복은 삶의 최고 목표이자 가치가 되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은 당연하 것이기에 정작 행복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가 하는 문제는 거의 고민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안전하고 편한 삶만을 갈망하고 또 그것이 행복이라고 믿는다 이 책은 그것이 왜행복이 아닌지 진정한 행복은 어떻게 추구해야 하는지 다룬다 특히 영국의 철학자이자 사회사상가인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참고삼아 우리의 진정한 행복론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조건을 얘기한다
행복이란 과연 무엇일까 행복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복된 좋은 운수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표준국어대사전)이라고 정의 된다 언뜻 행복이란 어떤 욕망의 충족과 만족 상태로 보인다 그러나 욕망의 무한 충족이 반드시 행복은 아니다 모든 욕망을채워나가는것이 행복이라면 그래서 우리가 모든 욕망을 채워버린다면 그것은 더 이상 행복이 되지 못한다 그 다음부터는 권태만 있게 될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의 행복은 사회나 국가 민족 같은 공동체에서 펼쳐지는 부조리한 삶 즉 누구나 행복을 꿈꾸지만 오히려 불행한 사람들이 더 많이 늘어나느 삶의 모순을 극복할 때만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진정한 행복한 요체는 무엇일가 저자는 밀의 자유론을 통해 차이와 개별성의 힘 즉 개인의 자유에 주목한다 최대 다수가 최대 행복을 누리려면 사회는 각 개인이 자신의 개별적인 능력을 발견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렇지 않고 항상 타인이 규정한 전통과 관습만을 따르도록 강요한다면 개인의 창조성과 삶의 가치는 물론 행복의 궁극적 조건 자체가 상실되고 말 것이다 개별성의 가치는 인간의 행복과 발전을 위해서 아주 중요하다 자유롭게 발현된 개별성은 사회의 관습과 잘못된 신념의 독재로부터 벗어나 각 개인이 독창성과 창조성을 구가할 수 있도록 돕는다 바로 이 개별성이 증대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실험적 삶이 시도되어야 하고 다양한 품성이 사회 안에서 자유롭게 수용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물질적 풍요와 욕망 충족을 강요함과 동시에 다수의 이름으로 포장된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획일화와 관습을 반복주입한다 그런 획일화와 관습이 횡행하는 곳에서는 인간과 사회 발전의 핵심 동력인 개별성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 이 책은 이런 현실에 대해 철학적 비판을 전개하고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행복론을 제시한다 정말 행복하려면 우리는 먼저 다수가 원하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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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행복은 언떤 행동 속에서 발견된다. 그것은 어떤 행동일까?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나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행동이거나 나의 본성의 실현이거나 나의 본질의 완성, 즉 나란 존재의 핵심을 규정하고 완성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따라서 행복하다는 것은 자신의 본성에 맞게 살아가거나 나란 존재의 점진적인 발전 과정을 통해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본성이란 무엇일까? 본질적으로 그것은 행동하거나 욕망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행동하고 욕망한다. 나의 본성은 나만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나만이 고유하게 갖고 있는 것은 나의 생각이다. 내가 가진 몸이나 다른 소유물은 다른 사람들이 그것과 구별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 자신의 사고는 단순히 나의 의식 차원이 아니라 세계를 표상하거나 이해하려는 시도와 같이 더 높은 차원으로 넘어간다. 생물학자들은 인간과 다른 영장류 원숭이들과 유전자 차이가 2~4퍼센트 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교한 언어 사용과 과학, 기술, 예술, 도덕, 기술의 발명 등 지적 능력에 기반을 둔 문화적 차이는 인간과 동물을 엄격하게 구분 짓는다. 바로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다. 생각하는 것이 나의 본질이지만 과연 나는 본질적으로 합리적인가? 나는 항상 합리적으로 행동하는가?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지만 인간은 단지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을뿐 그리 합리적이지 않다. 담배가 수많은 발암물질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담배 피우는 사람들을 보라! 우리는 모든 문제를 쉽게 분리해서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으로 치부해버린다. 나에게는 오히려 그런 비합리적인 것이 합리적인 것처럼 간주된다. 따라서 나는 잠재적으로 합리적일 뿐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인간은 본성에 대해 비판적인 교육을 받고 스스로 생각할 때만 실제적으로 합리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이처럼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마땅히 되어야 할’ 존재로 바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장차 그렇게 되어야 하는 존재다. 나는 성장하면서 나의 본성을 구현해야 하고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을 행위로 드러내야 한다. 산이나 고양이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것들의 본성은 이미 현실적인 상태에 있기 때문에 산이 더 산이 되기 위해, 고양이가 더 고양이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현재와 다른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 즉 좀 더 인간 다워야 한다는 사실에 항상 고민하게 된다. 이런 자신의 정체성을 생각할 때 신기하게 나는 나의 본성에 맞게 스스로를 계발하기 시작하고 인간 존재의 삶을 살아간다는 쾌락을 느낀다. 바로 나를 알아가는 지식이나 나의 근본적인 허기진 욕망을 채워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인간은 자연적으로 알기를 욕구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과 세계를 알아가길 욕망하고 그것들을 발견하면서 즐거워한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 소비 사회가 강요하는 교육에 따라 더 이상 우리는 자신을 탐구하지 않고 잘 길들여진 바보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요구받는다. 오늘날 학교 교육은 자신의 본질에 대한 성찰과는 전혀 무관한 것들을 실용적 지식이라고 가르친다. 자신과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제거해버린다. 인간은 자신의 본성을 찾아가는 사유가 필요하고 그런 진정한 사유 활동에 자유롭게 전념할 수 없다면 행복해질 수 없다. 행복은 나를 찾아갈 자유가 동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이런 자유를 누리지 못하도록 노동자들을 교묘하게 노예 상태에 있도록 만든다. 자유는 우선순위에 올라 있지 않다. 마르크스의 시각에 따르면 프랑스 대혁명의 인권이라는 개념도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경제적으로 착취하기 위한 미끼에 불과하다. 물론 모든 인간은 원칙적으로 자유롭다. 그러나 사적 재산을 갖고 있지 않은 인간은 생존을 위해 시장 경제의 논리와 상황 속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원하는 사람에게 팔어야 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그것을 거부하고 스스로 굶는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4년재 대학생 대부분이 공시족이거나 대기업 취업에 목매고 사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나 밀에게 있어서 진정으로 자유로운 인간, 즉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실험적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인간만이 진정으로 행복하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인간이 이성적이지 못하고 독립성을 결여하고 있으면 그가 아무리 신분상 자유민이더라도 정신적으로는 노예 상태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주인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생각하는 자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람은 어떤 삶을 선택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 그리스인들은 전통적으로 ‘쾌락을 추구하는 삶’, ‘정치적인 삶’, ‘관조적인 삶’을 행복의 구성 요소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쾌락 지향적인 삶과 정치적인 삶이 행복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순수하게 쾌락주의적인 삶은 인간보다는 개나 돼지에게 어울리는 것이고 정치적인 삶은 행복이 아닌 명예를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명예가 곧바로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또한 명예는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계속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뭘 하는지에 따라 일희일비하게 된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판단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이 좋은지 나쁜지에 관한 가치문제는 올림포스의 신들조차도 옥신각신하지 않았는가? 트로이 전쟁을 놓고서도 신들은 그리스 아가멤논을 지지하는 신들과 트로이의 헥토르를 지지하는 신들로 나뉘어서 서로 싸웠다. 남의 말은 100퍼센트 신뢰할 만한 것이 못 된다. 결국 마지막으로 관조적인 삶, 즉 자신과 세계에 대해 탐구하는 삶이 행복의 길이 될 것이다. 물론 단순히 탐구하는 것이 곧바로 행복한 삶은 아니다. 자신을 알아가는 것은 행복의 출발점이다. 가능하면 앞선 세 가지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룰 때 행복한 삶을 이룰 수 있다. 왜냐하면 사유하는 삶은 정치적 조건들, 즉 더불어 사는 삶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자신에 대한 지적 탐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평화로워야 하고 어느 정도 물질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개인은 공동체와 유리될 수 없다. 열심히 일하는데 금융 위기가 터지거나 북한의 전쟁 도발이 생기면 관조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다. 나의 삶은 공동체에 대한 정치적 앙가주망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행복한 삶이란 지상에서 고독한 나그네의 삶이나 독불장군의 삶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좋은 상황은 하늘에서 그냥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유로운 사람만이 이런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자유로운 생각을 갖지 않으면 이 사회가 정말 좋은 사회인지 분간할 수 없고 더 좋은 사회를 만들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자유로운 인간은 더욱더 정치에 몰입할 수밖에 없고 정치는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을 더 자유롭게 만들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만들려고 하는 좋은 사회가 정말 행복한 사회인지 항상 의심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와 자본주의 사회는 다수의 지배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이기 때문에 다수가 원하는 것이 꼭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는 점을 매일 확인해야 한다. 앞으로도 수많은 거짓 예언자들이 이것이 행복이라고 떠들고 다닐 것이다. 요즘에는 행복 심리학자들이 우울증 환자를 치료하는 기술을 바탕으로 정상인을 좀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여기에 생명공학 기술이 더해지면 우리의 뇌에서 불행을 느끼는 요소를 제거해서 항상 행복감만 느끼게 하거나 불행하다고 느낄 때마다 그런 감정을 제어해주는 약들이 곧 발명될 것이다. 거짓 예언자들은 ‘풍요로운 삶’ ‘걱정 근심이 없는 삶’, ‘다수가 원하는 삶’이 행복이라고 부르짓고 있다.《멋진 신세계》에서 야만인으로 간주되는 존은 그런 예언자들에게 이렇게 답한다. 하지만 난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그리고 선을 원합니다. 나는 죄악을 원합니다. 어찌보면 그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는 셈에다. 그런데 정말 행복하려면 우리는 먼저 다수가 원하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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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행복해지고 싶어하면서도 정작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조차 하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고 아이러니하게도 물질적인 욕망이나
소비와 같은 깊이 없는 행복을 진짜라고 믿고 싶어하는 것이 본능이라더군요.
자본주의와 물질 만능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소비가 행복이고
더 많이 가진 사람이 더 행복하다고 믿으면서 살았고
저도 그렇다고 생각하고 맥시멀리즘 추구를 목표로 삼았던 것 같아요.
문득 물건에 치일 정도로 파묻히고 나니까 그제서야 맥시멀리즘 실천으로 과연
행복해졌는가를 반문하게 되었고 오히려 물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되자 문득 진정한 인간의 행복을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맥시멀리즘 실현으로 뒤늦게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던 저에게 이 도서는 행복에 관한 또다른 시선으로의 담론을
담고 있는 도서로 철학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행복을 풀어내고 있어요.
물질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행복이 결코 영원하지 않으며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결코 마지막이 없다는 것을 철학자의
관점에서 인간의 본성을 분석하고 있는 도서랍니다.
물질적인 소비를 통한 만족이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 나의 개별성을 계발하고 요청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며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더군요.
개별성을 상실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무의식적인 입력처럼
행복을 위해 자신의 개별성을 모두 획일화시켜서 무작정 따라가는 것을
강요당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진정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온전히 나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행동으로 본성을 실현하여 완성하는
즉 나란 존재의 핵심을 규정하고 완성하는 행동을 의미하는데
행복하다는 것은 자신의 본성에 맞게 살아가며 나란 존재의
점진적인 발전 과정을 통해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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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 하지만 끝없는 욕심과 나보다 더 가진 이들과의 비교로 행복하기는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행복론을 다룬 책들은 넘쳐나고 있다. 그런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많은 책들에서 공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의 ‘자존감’을 찾고 그 자존감을 바탕으로 인생을 살아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전북대학교 철학과 김요한 교수가 생각하는 행복론이 담긴 <행복하려면 먼저 자유로워져라>에서 말하고 있는 인간의 개별성을 통한 행복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바탕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참고로 개인의 진정한 자유와 그 자유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자유에 이르게 되면 우리들이 찾아 헤매던 행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말하고 있는 듯하다. 저자는 우리가 만날 진정한 행복의 가장 큰 조건으로 인간의 완전한 개별성을 들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대부분의 내용은 인간이 완전한 개별성을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이야기들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진정한 행복 즉 우리들 각자의 개별성의 완성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하는 문제들의 다양하고 풍부한 답들이 담겨 있는 책이다. 그런데 그 답들이 조금은 현실에서 이루기 어려운 것들일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말하는 완전한 개별성 중에는 우리 주변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자식으로서, 부모로서, 가장으로서 받고 있는 주위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인데 그러려면 참 많은 용기가 필요할 듯하다. 우리 사회가 행복이라고 말하고 있는 다수가 원하는 삶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정말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이 쉽다면 그 또한 매력적이지 못할 것 같다. 아마도 어려운 과정이 따르기에 ‘행복’이 더 달콤한 것일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남들의 눈으로부터 자유로운 나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는 듯하다. 빠르게 지나가고 있는 쓸쓸한 가을에 행복이라는 여행을 함께 할 수 있는 따스한 책을 만나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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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세요? 그래야 우리도 먹고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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