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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했네, 마침내, 드디어. 사람들이 감개무량이라는 말을 쓰는 게 이럴 때가 아닌가 싶다. 나도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그래서 이제 막 한 권을 다 읽었다고, 더 미루지 않았다고 막 자랑을 하고 싶다. 아니, 지금 이게 자랑이다.(그럼,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데.) 1805년 러시아 배경. 안나 카레니나가 떠올랐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소설을 읽었다는 기억과 무척 좋았다는 인상만 남아 있고 세부 내용은 다 잊어버려서 이 소설의 배경과 아무런 연결을 짓지는 못했다. 자료를 찾아 보고 비교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시간에 이 소설을 더 열심히 읽어 보는 게 나을 것 같아 그저 1805년에 머물러 있기로 했다. 러시아 배경인데, 나폴레옹이 등장한다. 헛, 나는 이 소설이 나폴레옹과의 전쟁에 관한 내용인지 책을 펼치지 전까지 모르고 있었다. 막연하게 러시아 내전? 그런 정도로만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러시아 내전이라고 해도 뭐가 뭔지 전혀 모르고 있는 상태이기는 하지만. 작가가 러시아 사람이니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사람들은 러시아 사람들이고, 오스트리아와 연합하여 프랑스의 나폴레옹과 싸우고 있는 내용이다. 소설 읽기는 더뎠다. 나는 자꾸만 책을 덮고 검색을 해야만 했다. 1805년에 유럽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나폴레옹은 무슨 일을 했던가. 러시아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오래 전 세계사 수업에서 익혔을 내용이고,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관련 책도 더러 읽었던 터라 기억날 만도 한데, 새롭기만 했다. 이렇게 낯설어서야 소설을 제대로 읽어내겠는가 싶었는데, 막상 읽고 있으면 수월하게 넘어갔다. 그건 또 작가의 솜씨 덕분이었을 것이다. 생생하다는 것, 인물들에게 생기는 일화도, 그들 간의 대화도, 각 인물의 마음속 생각까지도 어찌나 생생하게 잘 그려 내고 있는지. 귀족들의 사교 모임을 그리고 있는 장면에서는 내가 그들 곁에서 지켜 보면서 그들의 대화를 바로 옆에서 듣고 있는 것 같았고, 전쟁을 하는 장면에서는 대포 소리에 놀라고 포연 속에서 헤매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어쩌면 이렇게 진득하게 잘 묘사하고 있는 것인지, 한 문장도 무심하게 넘기고 싶지 않았다. 1권의 뒷 부분은 프랑스와 러시아·오스트리아 동맹군이 아우스터리츠(지금의 체코 동부 슬라브코프)에서 싸우는 내용이다. 이 전투는 삼제회전(프랑스, 오스트리아, 러시아의 3명의 황제가 모두 모인 전투)이라고 불리는데 이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승리했고 이 날이 바로 나폴레옹의 대관 1주년 기념일인 12월 2일이었다.(1권을 다 읽은 오늘이 12월 3일이라 살짝 놀랐는데, 내 블로그 개설일이 12월 2일로 떠 있어서 나는 또 괜히 놀랐네.) 나폴레옹은 이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파리에 개선문을 세웠다고 한다. 작가의 시선으로 소설을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러시아 쪽을 응원하게 되는 것도 신기하였다. 나는 늘 이런 식이지만. 당시 유럽 사회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러시아 귀족들이 프랑스 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프랑스 어를 사용하는 게 교양인의 척도였던 모양인데 프랑스 군을 적군으로 여기면서도 프랑스 어를 쓰는 그 미묘한 이중성이라니. 이 소설을 끝내고 나면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서도 좀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전쟁이라는 게 뭔지, 그 수많은 젊은 남자들을 이끌어 들이는 것일까. 충성심이라든가 명예라든가 자신의 목숨과도 기꺼이 바꿀 수 있게 만드는 무서운 명분, 세상에는 전쟁을 매력 있게 여기는 사람이 분명히 있는 것만 같아 나는 오싹하기만 했다. 게다가 전쟁을 이용해서 출세를 하겠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사람은 또 어떻고? 카이사르와 이 책을 번갈아 읽을 예정인데 다른 재미가 있다. 차이가 뭘까? <이 리뷰는 소설 전체를 다 읽고 쓰는 게 아니라 1권만 읽고 쓰는 내용-이 책을 읽게 하신 블로그 이웃 woojukaki님께 고마움의 뜻을 남기면서> |
| 안나 카레리나를 읽고 톨스토이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안나 카레리나보다 훨씬 길어요 ㅎㅎ 받아보니 엄청 무거워 놀랐어요. 워낙 장편을 좋아합니다. 안나 카레리나는 개인의 감정과 생각을 많이 따라가며 사회상을 살짝 엿볼수 있었는데 전쟁과 평화는 전쟁과 러시아 사회의 모습을 많이 알수 있다하여 어렵겠지만 기대됩니다. 톨스토이 특유의 표현들이 궁금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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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00페이지 읽으면 다 읽네요 이거 꼼꼼히 읽느라 하루에 거의 4~5시간씩 거의 20일 가까이 읽었어요 소설 자체는 정말 훌륭한데, 특정 부분들에서는 가독성이 떨어지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있네요 특히 전투와 전쟁 관련된 부분들이요 원래 러시아어 번역이 다른 언어보다 힘든 건가요? 뭐 이런 걸 차치하고라도 소설도 훌륭하고 번역도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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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분량이 대작이라서 평소 구매는 꿈도 못꾸고 있다가 큰맘먹고 구매했습니다. 여러 출판사들에서 나와서 고민 많이 했는데 번역 자님이랑 출판사 믿고 구매했는데 박스상태가 좋 지 않아서 조금 실망했네요. 언제한번 날 잡아서 읽어보려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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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판이 책 자체를 멋지게 잘 만들었다.특히 세트로 구성된 박스가 개인적으로 너무 마음에 들어서 다른 출판사보다 문학동네판으로 선택했다. 독서에 취미를 들이고 어느순간부터 문학장르에 빠져들게 됬고 점점 작품 이전에 작가 자체에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밀란 쿤데라부터 시작해서 쿤데라의 에세이 소설의기술을 통해 카프카,프루스트,조이스,무질,브로흐,세르반테스 등 위대한 작가들을 알아가며 그들이 궁금해졌고 그러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에 까지 이르렀다. 톨스토이의 가장 많은 작품이 담겨있는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에서 출간한 톨스토이의 모든 작품들을 다 구입해놨다. 앞으로의 독서가 기대되고 설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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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너무도 유명한 작품 『전쟁과 평화』를 이제야 비로소 완역으로 읽었다. 기라성같은 작가들이 이 특별한 역사소설이자 전쟁소설에 바쳤던 많은 분석과 찬사를 역자의 세심한 해설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곤차로프의 “살아 있는 거장이 쓴 러시아판 『일리아드』입니다.(4권581p)” 와 “위대한 작가의 위대한 작품인 동시에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러시아다.(4권583p)”라고 했던 투르게네프의 글은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 4권의 에필로그 제 2부는 작가의 집필기간동안 참고 자료들로 완전한 하나의 도서관을 이루었다(4권544p)고 술회한것에 걸맞게 본격적인 전쟁관, 역사관, 민족관 등을 집대성한다. 전쟁이라는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의 사고와 행동, 변화와 성장, 후회와 깨달음, 관계와 선택의 문제 등이 세밀하게 그려진다. 이야기의 끝을 향해 가며 시간이 흐른 것처럼 인생의 굴곡은 한 인간을 저마다의 결을 갖춘 채 형상화 한다.
“나이와 성격은 제각각이지만 모두 같은 사회에 살고 있는 페테르부르크 상류사회 사람들이 마차를 타고 모여들었다.(1권22p)” 안나 파블로브나의 화려한 객실에서 장대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안드레이 공작은 왜 전쟁에 나가려 하느냐는 질문에 지금 여기서 보내고 있는 나의 삶이, 내 삶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55p)이라고 답한다. 행동의 동기, 선택의 원인은 모두 다르고 각자의 마음 속 목적을 간직한 채 거대한 수레바퀴를 돌리는데 부지불식간에 참여한다. 선두에 서서 역사의 궤도를 조정하는 인물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그 사이를 촘촘하고 빼곡하게 메꾸고 있는 개인적이고 민감한 에피소드들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또 다른 공기를 호흡하게 함으로 길고 긴 시간이 마치 꿈처럼 흘러감을 느끼게 된다.
혹시라도 바보짓을 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자기를 지도해주는 사람들의 의지(1권158p)”에 맡기겠다 결심하고 안나 미하일로브나의 시선을 쫓던 피예르는 베주호프 백작이 된 후에도 반복해서 자신이 기댈 수 있는, 추구할 대상을 찾느라 신경을 곤두세운다. 첫 번째 결혼 또한 분위기와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도 모르지만 어떻게든 실현될 것이라는 강박적인 생각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대체 언제 시작되고, 언제 이렇게 됐단 말인가?(1권409p)” 이 결혼은 오래 그를 괴롭힌다. 정확한 마음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을 때, 들었을지라도 외면했을 때 아무리 스스로 합리화 할 지라도 그만큼 오래 댓가를 치르게 된다. 나를 돌아볼때도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때 이랬더라면······이런류의 자문은 얼마나 자주 되풀이되는지 계속 멈추게 하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삐예르가 훗날 포로 생활 중에 만난 플라톤 카라타예프는 추구하고 따를 최고의 선으로서 남게 되고 독자에게 상징하는 바 역시 크다.
전쟁 한복판은 때로 슬로모션 정밀묘사가 초단위로 모든 순간을 읽어낼 것 같아진다. 아군과 적군으로서의 집단적 대결 국면과 그 안에 개별적 인간들이라는 원소는 삶과 죽음을 따로 취하고 홀로 부조리 앞에 드러난 채 당혹감을 느낀다. 호두를 흩뿌리는 듯한 소리가 들리자마자 바로 곁 병사가 쓰러지고 들것에 실려나가는 찰라들, 전쟁이 현실인 한 니콜라이 로스토프의 눈에 들어온 도나우강과 하늘과 태양의 아름다움은 너무도 비현실적이다. “멀리 도나우 강 뒤쪽에 푸르게 보이는 산들, 수녀원, 신비로운 골짜기, 우듬지까지 안개가 낀 소나무 숲은 더한층 훌륭했다······저곳은 고요하고 행복에 가득차 있다······‘내가 저기에 있을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중략) 그런데 여기에는······(중략) 아아, 바로 저것이, 저것이, 지금 내 머리 위와 내 주위에 있는 저것이, 그렇다, 죽음이다······눈 깜짝하는 순간에 나는 저 태양도, 저 강물도, 저 골짜기도 볼 수 없게 될 것이다······(1권290p)” 처음 죽음에 근접할 때 감정은 반복해서 그려지고 독자 또한 위태로운 가운데에서 묻기 시작한다. 삶이란, 죽음이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꺼내들게 된다. 안드레이 공작은 마음을 정한다. “그러나 만약 죽음밖에 다른 길이 없다면? (중략) 글쎄,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뒤처지지 않는 죽음을 맞으리라.(1권321p)” 그 다운 각오다. 그는 처음 죽음에 직면한 전장에서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건 다 부질없다는 것과, 뜻을 알 수는 없지만 대단히 중요한 무언가가 확실히 위대하다는 것뿐이다.!(1권564p)“ 라는 결론을 얻고 이 깨달음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앞으로 겪을 일들을 통해 가장 완결에 가까운 볼콘스키 사고의 성숙으로까지 나아간다.
전 4권, 15부 361장, 에필로그 2부 28장의 장면과 559명의 인물이 등장한다니 상상을 넘어선다. 완전한 단편의 형식을 갖추는 각각의 장은 완벽히 연결되어 거대한 장편소설을 완성한다(4권583p)는 해설에 백배 공감한다. 책장을 넘기고 다음 권으로 들어간 후에도 계속 어떤 장면의 인상은 뚜렷하게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안드레이 공작과 투신의 장면, 꾸투조프의 뚝심, 군을 시계의 장치에 비유하거나(1권497p) 데니소프와 로스토프의 지갑 에피소드(1권249p), 인생을 지탱하는 너무도 중요하지만 헛돌기만 하는 한 개의 나사 앞 인간의 무력감을 절감하는 삐예르(2권112p), 로스토프가의 겨울 숲 속 꿈만 같았던 늑대사냥 장면(1권386p), 공작영애 마리야와 노공작의 죽음(3권217p), ‘공공의 복지’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라스톱친 백작의 잔혹함(3권517p), 꾸투조프가 한 말들(4권 289p) 등 끝이 없다.
전쟁은 계속 진행중이고 틈틈이 작가의 목소리 또한 이해하기 쉬운 어조로 드러난다. 전쟁이라는 상황에서도 개인은 자신의 실리를 분명히 하고, 피할 길을 내고, 모함하거나 모른척하거나 덮어씌운다. 이 모두를 꿰뚫어보지만 대응하지 않는다는 선택으로 일관하거나 기꺼이 일정량의 수모를 감당하는 인물도 있다. 일종의 식후 기분(3권 52p)에 너무 오래 빠지는 인물도 있다. 전쟁이 아니라 일상의 삶에 대입하더라도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모습은 닮아있고, 다양하게 맺는 관계들이나 관계 지속을 위한 조건 감수, 스치는 듯 짧은 관계 속에서 빚어지는 짙은 감동을 경험하기도 한다. “인간은 의식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위해 생활하지만, 역사적이고 전인류적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무의식적인 도구 역할을 한다. 일단 실행된 행위는 돌이키지 못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른 이의 무수한 행위와 합쳐지며 역사적 의미를 띠게 된다. 인간은 사회적 단계의 높은 곳에 설수록, 더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을수록 다른 사람에 대해 더 큰 권력을 갖게 되고, 또 개개 행동의 숙명과 필연성이 더 명백해진다.(3권17p)”
“물론 그들은 나타샤 속에서 빛나고 있는 보물을 털끝만큼도 이해 못하지만, 시적이고도 생명력 넘치는 아름다운 아가씨를 돋보이게 하는 실로 완벽한 배경이 되는 사람들이다!(2권333p)” “그러나 이런 흥과 몸놀림은 모방할 수도 배울 수도 없는 러시아적인 것이며, 아저씨도 그것을 그녀에게 기대하고 있었다.(2권424p)” 안드레이 공작에게 없는 특별한 세계, 희열이 넘치는 세계, 별세계(2권333p)를 간직하고 있는 나타샤는 쾌활함으로 반짝일 뿐 아니라 현명한 딸이기도 하기에 니콜라이와 백작부인의 소냐로 인한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것을 막기도, 백작부인의 생명 절반을 앗아갔다고 표현한 슬픔을 위로하기도 한다. 의도치 않게 약혼을 파기하고 자신과 안드레이 공작에게 상처를 주지만 운명의 수레바퀴에 감사해야 하나, 공작의 마지막을 지키며 온전한 마음을 전할 수 있었다. 그녀가 소냐와 공작영애 마리야와 안드레이 공작과 베주호프 백작 등과 맺는 관계는 사려깊기도 진심을 다하기도 해서 아름답다. 불편한 인물로는 소냐도 꼽을 수 있다. 희생을 강요당한 적도 없고 자신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면서도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는 나타샤가 부럽다고 고백하는 소냐(4권52p). 그녀는 어릴때부터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지만 이 또한 받아들인다. 오래전 기억으로는 니콜라이의 변심을 탓하기도 했었는데 이번에 소냐라는 인물의 정체성을 나타샤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4권404p) 있는 것마저 빼앗기는 없는 사람, 어쩌면 이기심이 없는 사람, 딸기와 같은 헛꽃, 마치 고양이처럼 사람이 아니라 집에 애착을 가지는 그녀의 특성들에 대해서.
수많은 죽음과 그를 감당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 선 아들과 딸, 마냥 사랑스런 어린 막내아들의 죽음을 맞는 어머니, 바실리 공작의 두 자녀는 악을 끼치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죽음을 맞기도 한다. 기억해야 할 죽음이라면 단연 볼콘스키 공작의 죽음일 것이다. 생각에 깊이 빠져들게 하는 신비로움까지 느껴지는 그러나 결코 감상적이지 만은 않은 바로 그 다운 죽음이다. “그는 빗장을 걸어 닫기 위해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간다. 문을 제때 닫느냐 못 닫느냐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4권102p)“ 그가 꿈 속에서 바깥쪽에서 밀어대는 문을 닫으려 애쓰나 결국 막지 못해 들어오고 만 ”죽음“. ”그날부터 안드레이 공작은 잠에서 깨어나는 동시에 삶에서도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살아온 시간에 비해 삶에 대한 각성의 시간이, 꿈꾼 시간에 비해 잠으로부터의 각성의 시간보다 느리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4권103p)“ 그에게 가장 가까운 추억인 육체를 남기고 떠난 그를 나타샤와 마리야는 애도한다. 죽음의 과정을, 애도의 방식을 언어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너무 잘 표현한 것 같다. ”그들은 안드레이 공작이 점점 더 깊이, 천천히, 조용히 그들을 떠나 어디론가 내려가는 것을 보았고, 그래야 하고, 그것이 좋다는 것을 알았다. (4권104p)“ 그래야 하고, 그것이 좋다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 서게 될 때 나 역시 인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
포로생활을 통해 삐예르는 소중한 것을 배운다. “전에 그의 모든 지적인 구축을 파괴했던 왜? 라는 무서운 의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은 왜 라는 의문에 대해 그의 마음속에는, 신이 있기 때문에, 그의 의지 없이는 머리카락 한 올도 사람의 머리에서 그냥 떨어지지 않는다는 신이 있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대답이 준비되어 있었다.(4권321p)” 나의 상황이 매끈하지도 질서정연하지도 않고 그저 복잡하고 불만족스러워서 어쩌다 내가, 아무것도 의도치 않았던, 아무 잘못 없는 내가 바로 이런 모양으로 굴러 떨어졌나 싶을지라도 원망하지 말고 당면한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감당하겠다는, 그럴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안드레이가 피예르가 나타샤가 기꺼이 감당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는 마치 목욕탕에서 나온 사람처럼 산뜻하고 반질반질하고 생생해지셨어. 마리도 느꼈어?-정신적인 목욕탕에서, 그렇지?(4권348p)” 『전쟁과 평화』는 독자에게 바로 이런 ‘정신적인 목욕탕’을 경험케 해준다. 익숙한 감정과 재회하고 그 안에서 지금껏 깨닫지 못했던 낯선 보석을 캐내고 인간 이해의 폭을 넓히며 내면의 평화를 향하는 설레이는 여정, 다시 걷고 싶은 길이 된다.
책 속에서 -이따금 피예르는 언젠가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는데, 싸움터에서 적의 포탄 아래 엄폐호에 있는 병사들은 아무 일이 없을 때 그 상황을 조금이라도 쉽게 견디기 위해 악착같이 일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피예르에게는 모든 사람이 다 이 병사들처럼 생활에서 도피하려는 것처럼, 누구는 허영으로, 누구는 카드놀이로, 누구는 법안 작성으로, 누구는 여자로, 누구는 술로, 누구는 국무로 도피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2권478p) -그들이 권력자이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그들을 위해 천재론이 위조된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전투의 승리에 기여하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대오 속에서 틀렸다! 혹은 우라! 하고 외치는 자들이고, 이러한 대오 속에서야말로 나는 도움이 되는 존재라는 확신을 가지고 근무할 수 있는 것이다!(3권 84p) -인간은 행동을 할 때 언제나 그 행동의 목적을 생각해내려고 한다. 천 베르스타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천 베르스타 앞에 뭔가 좋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움직이는 힘을 얻기 위해서는 약속의 땅이라는 관념이 필요하다. (4권 182p) -“그렇죠, 슬픔이 없는 가정이 있겠습니까?” 피예르는 나타샤를 향해 말했다. (4권 336p)
-난로 위에 누워 지내도 인간은 어차피 죽는 법입니다.(1권131p) -밤샘 뒤에 이렇게 훌륭한 러시아 차를 마시는 것처럼 기운을 회복시켜주는 것도 없습니다.(1권 167p) -의논은 아내와, 이야기는 장모와 하라지만, 친어머니처럼 좋은 건 없지요!(4권76p) -땀이 밴 손은 넉넉하고 건조한 손은 인색하다 (4권 152p) -몸이 어떠냐고요? 병에 걸렸다고 울고불고하면 하느님이 제대로 죽게 해주시지 않습니다. (4권 24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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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라 하면 예전부터 현재까지 그 가치가 입증되어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는 책들을 보통 고전이라 하는데, 이 책은 고전의 정의에 딱 들어맞는다. 톨스토이는 도스토예프스키와 함께 러시아의 최고의 문호로 손 꼽힌다. 전쟁과 평화는 러시아 귀족 사회의 모습과 전쟁을 묘사하는데 책을 읽다보면 왜 고전인지 느낌이 온다. 독서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내어서 죽기전에 꼭 한 번 읽어 보기를 추천드린다. 전쟁과 평화라는 상충되는 것이 붙어 있는 듯한 제목이 책의 말미 쯤에서는 이해가 되며 감동으로 다가 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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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저서 <세컨드 핸드 타임>에 이렇게 썼다. "1990년대 우리는 행복했다. 하지만 그때의 순진함을 되돌릴 수 있는 길은 없다. 우린 그때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고, 공산주의는 처참하게 패배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그 후 20년이 흘렸다. 그런데 막상 시작된 것은 체호프의 소설 같은 인생, 아무 역사가 없는 인생이었다." 소비에트적 인간, 즉 '호모 소비에티쿠스'를 자처하는 알렉시예비치는 어린 시절부터 열렬한 소비에트 지지자였다. 마찬가지로 열성적인 소비에트 지지자인 부모 슬하에서 자란 그는 '옥차브랴타(만7~9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당 교육, 인성 교육 등을 지도하던 단체)' 단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피오네르', '콤소몰' 등을 거치며 차세대 공산주의자가 되기 위한 수순을 착착 밟았다. 그랬던 알렉시예비치가 '진실'을 알게 된 건 페레스트로이카가 시행된 직후다. 개혁이 시작되고 개방의 물결이 밀려들면서 정부의 기록보관소가 열리고 주요 정부 인사들의 말과 글이 공개되었다. 그중에는 이런 것이 있었다. '소비에트 러시아에 거주하는 1억 명 중 9,000만 명은 데려가야 한다. 나머지 1,000만 명과는 대화할 필요가 없다. 모두 죽여야 한다.', '사로잡은 부농과 부자들 중 적어도 1,000여 명은 교살해야 한다. ... 주변 수백여 킬로미터 내에 거주하는 인민들이 꼭 그 장면을 목격하게 해서 두려움에 몸서리치도록 해야 한다.' 그때 이미 언론인이자 작가였던 알렉시예비치는 레닌, 트로츠키, 지노비예프 같은 사람들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왔으며, 이들의 실체를 모른 채 이들을 흠모하고 숭배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더 이상 호모 소비에티쿠스를 자처할 수 없게 된 것은 물론이다. 레프 톨스토이의 장편 소설 <전쟁과 평화>의 주축이 되는 두 청년 안드레이와 피예르도 비슷한 일을 겪는다. 볼콘스키 공작의 맏아들인 안드레이는 잘생긴 외모와 괜찮은 집안 배경을 갖춘 데다가 러시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한 운 좋은 사내다. 안드레이의 소원은 현재 유럽 전역을 호령하고 있는 나폴레옹처럼 군공을 쌓고 명성을 드높여 '러시아의 나폴레옹'이 되는 것이다. 마침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군과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의 연합군이 맞붙는 전쟁에 안드레이는 쿠투로프 장관의 부관 자격으로 참전하기로 되어 있어 안드레이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상황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기세 등등하게 나선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안드레이는 큰 부상을 입고 의식을 잃고 쓰러져 프랑스군의 포로로 잡힌다. 포로수용소의 환자 신세로 전락한 안드레이는 그토록 흠모했던 나폴레옹을 실제로 만나고 나폴레옹의 목소리까지 듣지만, 영롱함을 넘어 신성함까지 느껴질 줄 알았던 나폴레옹의 목소리는 예상과 달리 '파리가 윙윙거리는 소리'처럼 들릴 뿐이다. 이는 나폴레옹이 실제로 보잘것없는 사람이라서 라기보다는, 나폴레옹을 대하는 안드레이의 마음이 진작에 식어버린 탓이다. 얼마 전까지 전쟁을 열망하고 전쟁을 사랑했던 이 '호모 벨리쿠스(Homo Bellicus)'가 전쟁을 직접 체험하고 큰 충격을 받으면서 내면이 바뀌는 경험을 한 것이다. "그(안드레이)는 이 사람이 자기가 동경하던 영웅인 나폴레옹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 순간은 나폴레옹도 흘러가는 구름이 떠가는 높고 무한한 하늘과 자기 마음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비하면 작고 하찮기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옆에 누가 서 있건, 자기에게 무어라고 말하건 아무 상관없었다. 그저 사람들이 자기 옆에 멈춘 것이 기뻤고, 이 사람들이 자기에게 도움을 주어, 이제는 완전히 생각이 달라져 실로 훌륭하게 생각되는 삶으로 돌려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1권, 560쪽) 피예르는 안드레이의 친구이자, 안드레이와 마찬가지로 나폴레옹을 지지하고 전쟁을 열망하는 청년이다. 안나 파블로브나 세레르가 주최한 야회에 참석했을 때만 해도 피예르는 별 볼 일 없는 뜨내기에 불과했다.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사생아요, 변변한 직업조차 없는 그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얼마 후 피예르가 아버지 베주호프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사실이 사교계에 알려지면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피예르에게 자기 딸을 시집보내려고 줄을 선다. 이 중에 승자는 바실리 공작이다. 바실리 공작의 딸 옐렌을 아내로 맞은 피예르는 이때만 해도 자신의 삶이 완벽하고, 앞으로 더욱 승승장구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옐렌의 부정이 드러나고 결투 사건을 겪으면서 피예르는 자신의 인생에 큰 회의를 품게 되고 급기야 프리메이슨, 영지 농민 해방 사업 등에 빠진다. 강력한 부성(父性)이 결핍된 어린 시절을 보낸 탓인지, 그는 자신보다 더 큰 존재, 더 높은 존재, 더 거룩하고 원대한 목적이나 사명을 찾는 데 오랜 시간을 쏟는다. 황제가 떠난 모스크바에 적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퍼지자 모스크바에 머무르고 있던 피예르는 군대에 들어가 전장으로 갈지, 때를 기다릴지를 고민하다 전장으로 가기로 결정한다. 피예르는 전장에서 프랑스 군의 포로로 잡히는데, 비슷한 상황에서 안드레이가 전쟁에 대한 회의와 영웅에 대한 실망을 느꼈다면, 피예르는 프리메이슨과 자선 활동, 사교 활동과 연애로도 얻지 못했던 평안과 자기 조화를 얻는다. 그리고 그 무엇도 온전히 믿지 못하고 끊임없이 의심했던 이 '호모 두비우스(Homo Dubius)'는 마침내 나타샤를 평생의 반려자로 맞고 안식을 취한다. 예전에 괴로워하며 끊임없이 찾아던 인생의 목적은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그(피예르)가 추구했던 인생의 목적은 현재 일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은 없고 있을 수도 없다고 느껴졌다. 목적이 없다는 것은 자유에 대한 완전하고 기쁜 의식을 주었고, 이것이 지금 그의 행복이었다. (4권, 320쪽) <전쟁과 평화>는 나에게 지난한 전쟁의 기록을 담은 전쟁 소설 또는 역사의 한 부분을 문학으로 재구성한 역사 소설이라기보다는, 전쟁이라는 대사건을 통해 자신들을 둘러싼 '아프락사스'를 깨고 나온 두 청년의 일대기를 그린 성장 소설로 읽힌다. 전쟁을 겪지 않았다면 그저 시간이 흐르는 대로 나이를 먹고 가정을 이루고 사회적 지위를 얻고 부와 명예를 누리며 살았을 안드레이와 피예르는 전쟁을 통해 자신의 어리석음과 어리숙함을 깨닫고 젊은 날의 번민과 방황을 끝맺으며 새로운 차원의 삶으로 나아간다. 이는 마찬가지로 젊음에 취해 분수를 모르고 자신만만하게 굴다가 이리저리 치이고 깨지면서 스스로의 한계를 깨닫고 독서와 글쓰기, 명상과 운동에 천착하게 된 나의 모습을 반추하게 한다. 인간에게 자기 자신의 죽음보다 크고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치명적인 사건은 없다. 전쟁이 끝나도,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져도,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삶은 계속되고 인간은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전쟁과 평화>라는 거창한 제목이 붙은 이 대작의 가치는, 평화를 모르고 전쟁을 추구했던 두 청년이 겪는 고통과 성장을 통해 평화의 가치를 깨닫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해준다는 데 있지 않은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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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책을 다 읽으면 리뷰를 쓰긴하지만, 이번 책은 다 읽고 쓰질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 글자도 읽지 못하고 지금 리뷰를 쓴다.
톨스토이 책은 안나 카레니나, 부활 이렇게 읽었었는데 부활의 경우에는 사회를 변혁시키고자 움직이는 지식인과 러시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책이었고, 안나 카레니나의 경우는 귀족층들의 생활상과 경제, 농경사회의 변혁과 사회주의에 대한 움직임을 보여준 책이었다.
전쟁과 평화의 경우에는 죽음과 삶의 경계, 전쟁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알고 있다. 언젠가는 읽겠지만, 일단 박형규 교수님의 번역이니 믿고 구매했다. 민음사에서도 전쟁과 평화가 나오긴 한거 같던데 이번만큼은 문학동네판으로 읽어도 될것같다.
한정판이라고 해봐야 늘 판매하고 있어서 의미가 없으니 박스랑 에코백 준다는 매력으로 산다면 사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