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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위에서 폴 오스터에 대한 평가는 두가지로 나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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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선동 만홧가게에 가서 가족들은 만화를 보는 사이, 내 취향상 만화는 그닥이라.. 그래픽 노블을 택하니. 만화라는 그래픽의 수단으로 그려내는 소설, <유리의 도시>가 일단 눈에 들어왔더랍니다. ![]() 그래픽 노블인터라 장면의 그림을 길게 길게 서술하지 않으니 책의 두께가 간추려졌다 싶기도 했습니다. 잘못 걸려온 전화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 이야기의 시작. 가족을 잃은 주인공이 탐정으로 바뀌고 그리하여 의뢰인의 남편을 위험으로부터 구하고자 하는 내용으로 초반은 기대를 품게 하여 흥미롭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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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애매'하다. 원작을 읽은 사람이라면 기대할만한, <그래픽 소설>만이 가지는 매력, 혹은 원작을 넘어선 파격적인 구성, 각색 등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내가 읽어내려간, 내가 해석해낸 텍스트들이 산만하게 흩어져 사라져버리고마는, 그 황망함만이 씁쓸히 책을 덮는 손끝에 전해질 뿐이었다. 폴 오스터는 집요하리만치 '존재'와 '타자' 그리고 그 '간극'에 집착한다. 투명인간에 가까운 희미한 '존재감' 그리고 그런 '존재'들에 밀착되어 있는 촘촘하고 예민한 텍스트들..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추면 그 텍스트들 사이에서 길을 잃고 만다. 그의 소설은 그런 신경질적인 텍스트들 사이에서 스트레스를 견뎌내며 성취한 지적희열, 그 자체이다. 그러니 어떤 확정된 이미지도 달갑지 않다. 불완전하고, 파괴적이며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는, 모든 것이 신비로운 안개 속에 싸인 '존재'들이 그 안개를 벗어나 당신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면, 당신은 과연 그 '존재'들을 여전히 매력적이라고 느낄 수 있을까? 느낄 수도 있다. 아,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다. 라고.. 다만 나는 나의 환상이 깨지는 것을 두려워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실제로 그 두려움이 한편의 <그래픽 소설>로 현실화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내가 이 책을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충분히 소장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내가 사랑한 텍스트들 만큼 사랑할 수 없을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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