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지, 언제 써 보셨어요?
사실,, 어린 시절부터 편지쓰기를 즐겨하고, 친구들로부터 도착한 편지를 읽고 또 읽고,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펼쳐보며, 빙긋 웃음 짓던 날들이 참 많았음이다. 누군가에게 글로 내 마음을 전한다는 것이 참 기뻤던 듯싶다. 계절을 묘사하며 안부 인사를 묻고, 이 얘기 저 얘기,, 두서없는 얘기들을 글로 적다보면 왠지 모를 뭉클함들이 밀려왔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문명의 이기들이 우리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많이도 빼앗아간 것이 틀림없다.
서로 주고받은 서른 통의 편지 엮어 만든 에세이다. 막역한 두 시인의 정성 깃든 편지들을 한 편 한 편 읽고 있노라면,,, 내가 강원도에 있는 듯, 혹은 전라도에 있는 듯,,, 하루하루 시인의 일상을 함께 거닐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겨울의 지극한 지점 동지에 삶의 외로움을 토로하고, 봄을 예감하며 슬픔 뿐 아닌 웃음이 지닌 힘으로 화답하는가 하면, 갑작스레 교통사고로 동생을 잃고 문득문득 아늑한 일상의 낯설음과 함께 서늘함을 건네면, 이별의 아픔을 지혜롭게 넘기는 친구의 모습을 다독이며 마음을 전한다. 정성이 깃든 편지 속엔 설레는 마음이 담겨있고, 두 시인의 일상 속 진솔함들이 동봉돼 있다.
따뜻한 시선으로 인생과 세상을 바라보며, 고전의 한 구절이나 시 한 수, 인문학적 지식들을 나누는 글들은 우리에게 또 다른 지적 즐거움을 전해주고 있다. 그리고,, 책장을 덮은 후엔,,, 나도 모르게 편지지 위 누군가에게 건넬 온기 가득한 편지 한 통을 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
|
내가 대학을 다닐 때 연애를 했다. 몇 년간 서로 사랑하면서 결혼을 하기로 약속을 했다. 그러다가 나는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대구 50사단에서 훈련을 받고, 강원도 양구로 배치되었다. 지금은 교통편도 좋아서 어디든지 쉽게 갔다 올 수 있지만 그 때는 교통편이 좋지 안아 서울에 오려면 7시간이나 걸렸다. 소양강에서 배를 타고, 그리고 버스를 타고 거의 하루 종일 걸렸다. 그러다 보니 사랑하는 연인을 만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군생활을 하는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편지를 써서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생활을 했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
두 시인 모두 내가 좋아하는 시인이다. 다만 나희덕 시인의 시가 좀더 내가 공감을 많았던 것 같기도 하다. 이제 지천명을 바라볼 두 시인의 편지는 ‘편지’라는 단어가 주는 말처럼 호젓하다. ‘편지’라니. ‘메일’이라는 말이 익숙해져서 이 단어는 생경하기 때문이다. 인제와 광주, 원주 등지를 오가면서 겨울부터 여름까지 두 시인 사이에 오가는 편지는 말 그대로 편지의 정이 살아있는 글들이다. 거기에 시인 특유의 감수성이 살아있다. 사실 돌이켜보면 두 시인은 직간접으로 친구 같은 분들이다. 장석남 시인은 스치듯 봤지만 그가 주인공으로 출연했다가 결국 개봉하지 못한 영화 ‘성철’의 조감독으로 일했던 친구가 간접적으로 그를 말해줘서 알고, 나희덕 시인은 인터뷰와 우연한 인연들로 알고 있었다. 내 인연들도 마치 시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거리처럼 아른 거리는데, 이 편지의 글들도 그렇다. 아직 보지 못했는데 책을 읽고 영화 ‘시’가 궁금해졌다. 사람이 글처럼 살면 안타까운데 나시인은 글처럼 사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두사람이 연인은 아닌데 갑자기 유희경과 이매창이 오간 시를 생각나게 했다. 그대의 집은 부안에 있고 나의 집은 서울에 있어 그리움 사무쳐도 서로 못보고 오동나무에 비뿌릴 젠 애가 끊겨라. - 유희경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離別)한 님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나를 생각는지 천리(千里)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이매창(李梅窓)
|
|
이 책은 막역한 사이인 중견 시인 나희덕님과 장석남님이 2010년 2월부터 1년간 주고받은 서른 통의 편지들을 담아서 엮은 것이다. 이 편지들은 프로젝트 성격으로 인터넷을 통해서 좋은 생각이라는 홈페이지에서 공개적으로 주고받은 것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사유와 사연들을 접하다보면 손편지와 같은 따뜻함과 담백함이 고스란히 묻어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의 소통에는 서로를 이해하고 생각하는 친구의 정과 더불어 추억, 아름다움, 가족, 사랑, 감사 등 인생을 살면서 느끼는 것들에 대한 감정의 교류가 담겨 있다. 두 시인의 감성적인 눈은 자연의 섭리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으며 아름다움의 참의미를 깨닫게 하고 인간의 생활 속에서 담백함과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때때로 그들이 즐겨 읽었던 책에 대한 이야기와 사이사이 언급되는 고전의 한 구절들, 위인들에 대한 일화는 지적 호기심을 자극시키기도 했다.
|
|
< 더 레터 > - 두 시인의 편지 / 좋은생각
이 책은 나희덕과 장석남, 두 시인이 서로 오가던 편지를 묶은 것이랍니다.
내게도 손편지를 장황하게 썼던 적이 있습니다.
아주 예전에 그런 편지를 나눈 적이 또 있답니다.
요즘 다시 손편지를 써보고 싶은 마음이 차오릅니다.
얇은 책 하나에 수많은 기억들이 나타났다가 스러집니다. |
|
가끔은 진보와 발전이라는 것이 사람을 더 더디고 작게 만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에서 말하는 진보는 정치적 의미의 그것이 아닌, 과학의 발전을 일컫는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편지 쓰기이다. 이젠 편지를 쓰는 것도 앞에 ‘손’을 굳이 붙여야만, 직접 쓰는 것임을 알게 된다. 예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하는 짓이 늘 어설픈 내가, 아주 오랜만에 책들을 정리하고 묵은 먼지를 털고, “잉? 이 책을 내가 언제 구입했지?”하며 한심한 감탄사를 연발하던 중, 아주 오래전 받은 책을 하나 발견했다. 읽은 기억조차 희미한 책, 펼치다 그만 맨 앞장에서 어마어마한 글귀를 찾았다. “스무 번째 생일을 축하한다!” 스무 번째 생일이라, 음, 과연 내가 그때 무엇을 했던가. 내 생애 스무 번째 생일은 어떠하였는가, 온전히 기억 날 리 없다. 설마 알코올과 알코올 속에 맺어진 전우들과 광란의 밤을 보냈던가. 아니면 어느 거리 어느 누군가와 함께 마냥 밤길을 걸었던가. 내 청춘의 기억들이 황망히 희미해져간다. 직접 손으로 생일 축하 메시지를 적어준 그때의 벗은 지금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을까. 먼 기억 속에서나마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이미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을까. 아득하고, 아련하다. 더불어 생각해본다. 차디찬 컴퓨터가 아닌, 비록 악필이지만,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가며, 누군가에게 ‘손’ 편지를 써본 적이 언제였던가. 천방지축 고교시절, 나름 생뚱맞은 문예반에 들어가 시를 쓰고, 문학을 이야기하던, 어설펐지만 아름다웠던, 그때 나는 지금 어디로 갔을까. 20년이 다 되어가는 그 옛날 벗의 글귀를 보며, 잠시 딴 생각에 빠질 수 있었다. 당시의 어설펐든 청춘이 그리웠고, 무모함과 치열함이 보고 싶었다. 어마무시한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에서 20년 가까이 구르다보니 참 많이도 필기를 했던 것 같다. 판서라고 하지 아마. 선생님이 칠판 빼곡하게 써주시는 글들을 우리는 숨을 죽여 가며, 그대로, 말 그대로 똑같이 베꼈다. 과연 그게 학습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는, 자신할 수 없지만 그런 모습은 대학까지 이어졌다. 대학생이 열심히 베끼기나 하고 있었다니, 오호 통재라. 하지만 그 때는 필기 못지않게 이것저것 참 많이 쓰고 지웠다. 오직 나를 위한 일기도 열심히, 어줍지 않은 시와 소설도 열심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도 열심히 끼적거렸다. 누가 부러 읽지 않아도 상관이 없었다. 그렇게 나만의 숨을 쉴 공간을 마련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지금은 참 많이 변했다. 이젠 손으로 무엇인가를 적는다는 것이, 사무적이고, 기계적인 일들이 되어버렸다. 무언가 해야 하니까 적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런 목적이 없는 글쓰기는, 온전히 내밀하고 비밀이 가득한 글쓰기는 어느 새 종적을 감추었다. 결론적으로, 참 재미없게 살게 되었다. 앞서 말했듯, 누군가에게, 기계의 힘이 아닌 나의 손으로 편지를 쓰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우체통에 편지를 넣어본 적이 언제였는지, 가물거린다. 연말이나 명절을 앞두고 연하장에 손으로 인사를 눌러쓰는 것도 버겁다. 그나마 멈추지 않고 하고 있음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이 책은 눈이 해맑은 두 시인이 주고받은 편지글을 모았다. 눈이 맑으면 더 많은 것들이 다가오고, 또한 떠나간다. 그 만남과 이별을 덤덤히 적어 내려간 두 시인의 글은, 때문에 아득한 그리움을 전해준다.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려는, 우리들의 지극히 당연한 몸짓이 새삼 눈물겹다. 책을 읽고 책상과 책장과 주변을 더듬거렸다. 곧 조금은 색이 바래버린 편지지와, 원고지 뭉치가 발견된다. 다행이다. 순간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직은 나에게 이것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그리움을, 기계가 아닌 손으로, 애틋함을, 클릭이 아닌 우표 한 장으로 전달할 수 있는, 아직은 나에게 여지가 남아있다. 바쁜 척,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고 사는 척 하지만, 결국 나는 사소하다. 하지만 내 사소한 그리움과 애틋함을 누군가와 함께 나눌 수 있다면, 그 사소함은 또한 추억이 될 것이고, 함께 한다는 든든함과 그리움이 될 것이다. 이제 다시 편지를 써야겠다. 꼭 흐린 가을날이 아니어도 좋을 것이다.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부디 받아주시라. 내가 느낀 시간과 풍경과 눈물과 미소와 그리움을 함께 담아 우표 한 장의 여운으로 그대에게 보내리라. 그리고 아름다웠던 내 청춘에게도. 난 아직 추억을 만들어내야 한다. |
|
더 레터라는 제목보다 편지라는 두 글자가 더 잘 어울릴법한 책이다. 편지라는 두 글자는 언제 들어도 마음 설렘을 간직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은 예전에 연예편지랍시고 글자 하나하나를 정성껏 써내려 갔던 기억이 난다. 밤새 고민해서 쓴 편지를 아침에 읽고는 얼굴이 붉어져 보내지 못했던 편지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사춘기 시절에 설레며 편지를 썼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이 추억으로 남아있다는 것이 참으로 서글프다. 가끔은 두근거리는 감정을 글로써 옮겨 누군가에게 보내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요즘은 컴퓨터를 통해 빠르고 정확하게 e-mail을 보낼 수 있어서 예전처럼 편지를 쓰지는 않을 것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세상이 편해지는 건 좋은데 인간적인 맛은 예전만 못하는 것 같다.
두 작가가 한해 동안 주고받은 편지를 수록한 책인데, 이 편지를 쓴 이유야 알 수 없지만 글에서 풍기는 그윽함은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다. 아마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는 편지라서 더 그런 것 같다. 이 책의 제목만 읽고 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남녀간의 사랑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을 쉽게 떠올렸지만 이들이 쓴 글은 사랑을 구걸하는 연예편지는 아닌 것 같다. 그저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편지로 썼을 뿐인데, 글 속에서 풍기는 느낌이란 가슴 속 밑바닥에 숨어있던 사춘기 때의 감정을 모락모락 올라오게 만든다. 이 편지를 찬찬히 읽고 있노라면 그들의 삶이 내 눈앞에 훤히 비치는 것 같다. 작가의 편지라서 그런지 글에서 느껴지는 풍부한 표현력과 은유는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를 던지는 것과 같이 내 마음에 파장이 만들어지고 가슴속 한켠을 울렁거리게 만든다. 내가 쓴 편지는 아니지만 누군가가 정성껏 쓴 편지를 읽는다는 건 여전히 설렘이 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내내 부러웠다. 이들은 편지를 참 맛깔스럽게 잘 썼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글로서 옮기는 재주란 세상에 그 어떤 능력보다도 부러운 재주다. 세상에 부러운 사람들은 많지만 그 중에 글 잘 쓰는 사람이 제일 부러웠다. 이들의 편지를 읽으면서 이래서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걸 새삼 느끼게 된다. 아마 내가 사춘기 때 이들이 쓴 편지를 읽었다면 충분히 그때 그 사랑에 성공했으리라 생각한다. 뭐 후회는 없지만 나도 꾸준히 글쓰기를 노력한다면 이들의 발끝만큼을 쫓아갈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무작정 글을 써보려 한다. 잊고 지냈던 그 옛날의 감정을 기억해내며 나도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지인들에게 마음을 전하는 편지를 한번 써볼까 생각 중이다.
![]() |
|
더 레터
지금은 상상할 수 없겠지만 인터넷이 없던 어린 시절 많은 편지를 쓰고 주고 받곤했다. 먼 친구부터 가까운 이웃 친구까지 ...
나희덕 시인과 장석남 시인은 서로 '동무'라 칭할 정도로 막역한 사이. 이들은 1년간 서른 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지적인 교감을 나눴다. 그 사이 장석남 시인과 가장 가까웠던 시인 최하림 선생이 돌아가시고, 나희덕 시인의 여동생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나희덕 시인의 글귀에서
"마흔을 넘기면서부터는 슬픔뿐만 아니라 웃음이 지닌 힘에 대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시인은 기쁨보다는 슬픔과 가까운 존재라고 생각해 왔지만, 이제는 그런 강박관련마저 내려놓고 싶다고 할까요. 웃음이란 단순한 가벼움이 아니라 많은 것을 비워 낸 뒤에 싹트는 표정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장석남 시인의 글귀에서 "인간의 언어가 아닌 꽃의 언어로, 식물의 언어로 안부를 묻는 스님의 표정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무소유의 수행승이었지만 그 향기는 몇 마지기나 되는 듯 부자였습니다. 또 한 분의 어른을 잃은 마음이 허전합니다."
이들은 편지로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진다. 따뜻한 시선으로 인생과 세상을 바라보고, 자연의 미묘한 변화를 감지한다. 즐겨 읽는 책이나 고전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인문학적 지식의 향연을 선사한다. '더 레터'에는 두 시인의 담백하고 진솔한 인생 이야기가 동봉돼 있다. 사이사이 곁들여진 시인의 시들이 맛있다. ![]() |
|
손으로 소통을 나누는게 정말 먼 과거처럼 느껴진다. 초등학교때 친구와 아무것도 아닌일을 작은 쪽지에 적어 곱게 접어서 손에 쥐어주고 나면 펼쳐보면서 느껴지는 따뜻함이 내용과는상관없이 느껴지곤 했다.
책 표지가 편지와 같은 느낌이 들어서 열어보는데 잠시 두근두근했다. 하지만 이 두시인이 1년간 보낸 서른통의 편지는 이메일로 주고 받은것이라고 한다. 실망하는것도 잠시, 더레터 속에는 내가 보내던 편지에서 느껴졌던 감성보다 더 깊은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그러고보면 이메일과 손으로 쓴 편지가 전해준는것이 다르다고 생각하는것은 오만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더레터라는 제목은 조금 아쉽게 느껴진다.
두 시인은 이메일을 통해서 기러기를 보면서 외로움을 말하고 피어나는 떨어지는 모란에 대해서 말했다. 나에게 친근한 강원도가 등장해서 더더욱 즐거웠다. 인제는 할머니댁이 있었던 곳이라 그런지 시골에 느껴지는 정겨운 풍경이 그려졌다. 평소에는 책에 되도록 줄을 긋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나이지만 가슴에 세기고 싶은 문장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여기저기 줄을 긋게 되었다.
중간에 편지에서 보여주는 내용으로 상상되는 시들도 인상적이었다. 기르던 닭들의 죽음에서부터 법정스님, 동생, 스승의 죽음까지 두 시인의 편지는 삶과 죽음까지도 넘나들며 생각하게 만들었다. 친구와 나누는 평범한 일상의 한조각을 상상했던터라 생각보다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미래의 나도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가진것을 자랑하는 친구가 아닌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친구와 자주 만나지 못하더라도 이런 따뜻한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손으로 쓴 편지로 주고 받을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손으로 보내는 편지가 영영 사라져 버리진 않겠지?
*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