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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역사와 관련된 책은 물론이거니와 다큐멘터리, 드라마등을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될 것이다. 최근 들어 역사와 관련된 드라마, 즉 사극이 TV에서 빼놓지 않고 등장함은 물론 퓨전사극까지 등장하여 인기를 끌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자칫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를 왜곡하거나 잘못된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다.
일례로 모 방송국에서 백제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시대의 위대한 왕에 대해 다룬 사극이 있었는데 거기에 나오는 왕과 귀족들은 늘 정쟁만 일삼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는 전성기의 위대한 왕의 시대에도 그러했는데 백제를 멸망으로 몰아간 왕에 대해선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의자왕... 그를 떠올릴 때면 늘 삼천궁녀를 죽게 만들고, 백제를 멸망하게 한 장본인, 무능한 왕으로만 인식된다. 이 이야기는 그런 잘못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는 그에 대한 이미지를 하나씩 벗겨낸다. 아울러 백제의 둘도없는 충신으로 추앙받는 계백장군에 대해서도 한 나라의 장군으로서 보다 현실적으로 다가간다.
먼저 우리의 의식 속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뿌리깊은 편견에 대해 이야기한다.
편견이란?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이름이다.
말그대로 소신껏 중심을 잘 잡아야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민주주의의 다수결의 원칙처럼 많은 사람이 옳다고 하는 걸 그대로 믿어버리는 것이다.
옛부터 전해내려오기를 의자왕이 삼천궁녀와 어울려 주색에 빠져 놀기만 일삼다가 쳐들어온 나당연합군에 쫓겨 삼천궁녀는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고 백제는 멸망하였다는 것과 용감무쌍한 계백이 국운이 기울었음을 알고 죽기를 각오하고 황산벌에 나가 적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였다는 것인데 실질적으로 궁녀를 삼천명이나 거느릴 수 없을 뿐더러 낙화암에서 뛰어내려 죽으려면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리는데 과연 가능할까?
그리고 계백은 백제의 여러 장수 중 한 사람으로 분명 뛰어나긴 했겠지만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거다. 황산벌의 전투로 백제군이 전멸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대부분의 군사가 이동하여 백강 방면 전투에 투입되었다 하니 이쯤되면 편견이 얼마나 심한 것인지 보여주고도 남음이 있다 하겠다.
뿌리깊은 편견으로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많긴 해도 의자왕이 백제를 멸망하게 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의 결정적인 실수는 수도 사비성을 버리고 태자와 함께 피신을 하였다는데 있다. 이야기인즉슨 사비성을 맡긴 둘째 아들, 태가 아버지인 왕과 장차 왕위를 물려받을 태자가 성을 버리고 도망을 감으로써 군사와 백성들의 혼란을 초래, 성을 지킬 의욕을 잃어버렸고 이에 둘째 아들, 태는 결사항전의 의지를 다지고자 혹은 다른 이유로든 반란을 도모해 스스로 왕이 되었다.
헌데 나당연합군이 공격해오자 백제 지배층은 성이 나당연합군에게 함락되어도 곤란, 그렇지 않고 사비성을 지켜도 둘째 아들, 태의 편에 서서 반란을 일으킨 것이나 다름없으므로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사비성을 탈출하는 자가 생기고 결국 성은 나당연합군에게 쉽게 함락되고 만다.
이 이야기에서 보듯 의자왕이 피신을 함으로써 둘째 아들이 어떠한 이유로든 왕이 되어버렸고 이는 스스로 위기를 자초한 결과를 낳는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사회 고위층 인사(=왕, 귀족)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이 말은 의자왕에게도 해당되는 말이 아닐까 싶다. 그는 마땅히 치뤄야할 책무를 방기한 채 일신상의 안위를 이유로 백성들에게서, 나라에게서 도망쳐버린 것이다.
그리고 계백... 황산벌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운 장수는 맞겠으나 그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과장되고 부풀려진 게 많다.
특히 신라의 화랑, 관창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결연한 의지로 백제의 진영에 침투해 싸우다가 사로잡히고 만다. 이에 측은지심으로 그를 살려준 계백이라고 하나, 여기에도 측은지심이라기 보단 신라의 숨겨진 전략을 고려한 아무나 죽이는 게 아니라 가려서 죽인다는 살생유택이 더 맞다고 한다. 하지만 살려보내도 다시 돌아와 백제의 군사를 죽이는 관창을 더이상 살려둘 수는 없었기에 결국 죽여 시체를 신라의 진영에 보내는데 이에 분기탱천한 신라의 군사들이 백제를 맹렬히 공격해 마침내 이긴다.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보단 현실적으로 계백이 어떠했다는 걸 잘 알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역사학에 있어서 유명한 격언이 있다.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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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 하면 역시 삼천 궁녀다. 부여 부소산성에 가면 아직도 낙화암에는 삼천궁녀의 전설이 관광상품이다. 이제는 많이 희석되어 역사 좀 아는 사람들은 삼천 궁녀설이 왜곡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난 삼천 궁녀가 사실이었어면 좋겠다. 약 1400년 백제가 삼천 궁녀를 유지 했다면 얼마나 그 능력이 뛰어난 제국이었단 말인가. 삼천 궁녀가 하렘속의 그 여인들이라면 더 대단한 것이고(그에 따른 부속인물들과 건물 등의 유지비용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을 것이다. 백제 경제력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냥 조선시대 궁녀의 개념이어도 엄청난 규모다. 천 년 후 명나라 만력제 시대에 자금성에 궁녀가 약 삼천명이었다고 한다. 궁녀와 함께 왕실을 관리 하는 환관은 이 만명 이었다. 체제가 다르기는 하지만 백제 삼천 궁녀설이 사실이라면 명나라와 비슷한 경제력과 국력을 갖췄다는 반증이다. 이런 철없는 환상을 이희진 선생은 사실과 사료로 깨버린다.
* 책은 이희진 선생이 의자왕의 명예를 회복한다. 패배자였기 때문에 매도된 의자왕과 백제의 이미지를 상황과 문맥속에서 되살린다. * 삼천궁녀가 어때서? 난 삼천궁녀설을 지지하겠다. 삼천 궁녀 대백제 제국 황제 의자왕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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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을 고백해? 왜 무엇을 고백하는거지? 라는 의문을 안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만약 우리가 지금 알고있는 의자왕에 대한 기록이 잘못 알려진 것들이라면? 매번 역사를 대할때면 되새기게 되는 말이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라는 것, 예전 어렸을때부터 익히 들어왔던 '의자왕은 나라를 망친 임금이요, 계백 장군은 처자를 죽이면서까지 나라를 지키고자 노력했던 위대한 인물' 이야기들, 습관적으로 익혀왔던 그 이야기들에 의문을 가진 적이 없었을까? 지금와서 의자왕과 백제에 대해 보여지는 새로운 시선이 오히려 고맙게 느껴진다. (해당 서평은 가람기획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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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을 고백하다 : 의자왕과 계백, 진실은 무엇인가?
* 저 : 이희진
어릴때 역사를 배울때 꼭 배우는 내용중에 백제 관련해서는 의자왕과 삼천궁녀..라고 해서 배웠습니다.
그럼 계백은?
잘못된 역사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모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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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합니다. 승자의 입장에서 역사를 기록되어 왔고, 그로 인해 적지 않은 인물들의 모습이 왜곡된 경우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승자의 관점에서만 역사를 보아서는 안 돼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역사는 결코 하나의 관점으로만 관통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 언급하려는 의자왕도 바로 승자의 역사 속에서 가려진 우리 역사의 대표적인 인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의자왕 하면 백제 시대의 마지막 임금, 백제를 멸망하게 만든 임금, 그리고 삼천궁녀로 대표되는 매우 문란한 인물로 역사는 현재까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반면 계백은 황산벌 전투로 대표되는 인물로 백제를 마지막까지 지킨 의로운 인물도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는 역사의 기록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와 같은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와 같은 역사적 관점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백제 후기의 의자왕과 계백을 대한 이야기를 재조명하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자의 말처럼 ‘기록이 역사를 지배한다.’ 라는 명제는 지금까지 대부분 타당한 논거로 역사를 전개해오는데 이바지 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백제사에 대한 풍부한 기록을 가지고 있지 않고 있으면, 삼국사기와 같은 몇 안 되는 정사와 여러 가지로 설화 등을 통해 백제의 역사를 규정해 왔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다양한 이론을 토대로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면서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백제후기의 역사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삼천궁녀에 대한 이야기를 있지도 않은 사실에 불과하며, 기타 의자왕에 대한 부정적인 설화들이 사실인양 둔갑하여 역사로 인식되어 왔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 우리가 알고 있는 백제의 역사와는 다른 내용입니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견해에 공감했던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저자의 주장에 동조하든 그렇지 않든 역사를 한쪽의 관점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진리를 이번 기회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알고 있었던 백제 후기의 역사를 새롭게 돌아보는 계기가 된거 같습니다. 의장왕과 백제의 평가도 다시 한번 돌이켜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역사와, 역사를 보는 관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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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계백'에 대해 영웅으로 인식되어진 역사자료들 속에서 우리는 현재에도 그 영웅의 모습들을 답습하고 있다. 영화에서도 TV에서도 그리고 책들 속에서도...
오래전에 역사를 배우면서 얼핏 들었던 말은 '계백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완벽한 영웅이 아니며, 또한 의자왕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무능한 왕이 아니었다'는 말에 왜 그런 말을 우리에게 어떤 근거로 하는것일까를 두고 오랜 세월 가끔씩 나의 머리속에서 난해하게 물음표로 어지럽히곤 했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읽었던 책읽기였다.
'계백'이라는 장군이 패자의 역사인데도 불구하고 신라에 의해, 승자에 의해 쓰여진 역사였는데도 불구하고 훌륭한 장수로 일색 칭찬하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많은 자료들을 통해서 알고 있으며, 그에 반해 백제의 마지막 왕이라고 할 '의자왕'은 세상에 그런 왕이 있을까 싶을정도로 타락한 왕으로 매도되고 있다. 왜 같은 시대, 같은 백제의 인물로 나타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처럼 상반된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것일까? 이는 단순한 의문 이상의 역사자료들 중에서도 이해되지 않는 면이 사실상 존재하리라 가늠하게 된다. 같은 패자의 역사인데도 불구하고, 한 사람은 전형적인 패자의 역사에 걸맞는 아니 더 심각하게 형편없는 사람이 되었으며, 또 한 사람은 같은 패자의 역사 속 삶인데도 불구하고 승자의 역사 속 삶보다도 더 칭송받아오게 되었던 그 진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과연 그 이해되지 않은 '의자왕과 계백'의 역사적 사실들이 진실일까? 라고 생각하게 될테지만, 지금까지는 특별하게 그러한 의문들에 대해 제기를 했던 것을 보지는 못했다.
'계백'이라는 드라마로 또 다시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에 대한 조명이 밝혀지고 있는 이 때에 우리 아이들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들대로 역사적인 진실로 받아들여도 좋을것인가에 대한 작은 물음표 하나는 담아둬야 할 때에 이 책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설화와 전설속 역사적인 인물들의 신뢰도와 함께, 의자왕 시대의 실상을 여러각도 여러 자료들을 통해서 재조명해보고, 왜 계백이 띄어졌을지? 실제 황산벌전투는 어떻게 진행되었을지? 지금까지 두드러지고 있는 역사적인 사실들과 더불어 지리적인 환경과 함께 역사적인 사실들이 진실일까? 아니면 그렇지 아니할까를 두고 더 생각해볼 수 있게 된다. 의자왕을 매도한 역사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이 실추시킨 백제의 이미지들을 보면서 그들이 의자왕과 백제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자 한 의도가 어디였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우리에게 내보이고 있는 그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 의문점이 당연히 의문점이 생겨야 하는 부분들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해봐야할 그런 역사들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역사란 무엇인가요?" 아이의 질문에 아이의 눈높이에서 대답을 한다. "역사는 과거에 있었던 일을 기록으로 남겨놓는것이란다."
이 책의 저자 이희진님은 힘 있는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 잘 보이기 위해, 편견 때문에 등등 어떤 동기에서이건 애초부터 기록을 왜곡시켜 놓은 기득권층의 의도에 맞도록 끌고 가주는 이런 사태에 대해 참 고약한 교훈이 있음을 알려준다.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 사실이 어쨌건 기록만 자기 좋을 대로 남기면 후세는 아무리 새빨간 거짓말이라도 믿을 수밖에 없게 된다는 '교훈' 이 교훈을 알게 되었으며, 사회에 강요되는 현실을 깨는데에 스스로의 생각과 편견들에 대해, 맹목적인 행동들에 대해 돌아볼 수 있을 시간이 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보람을 삼을만하다고 한다.
과거에 있었던 일을 기록으로 남겨 놓는 것이 역사라면, '그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는 말에는 엄청난 책임감을 생각해볼 수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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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백제의 마지막왕 의자왕을 우리는 패자 아니면 왕다운 왕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반면 황산벌 전투의 계백장군은 어려서부터 영웅으로 배었다. 의자왕과 삼천궁녀의 이야기는 알고 있으나 역사적으로 보면 왕들이 수많은 후궁 을 두는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근데 왜 유독 의장왕을 여색에 빠진 왕으로 기억할까. 분명 계백장군도 인간이 므로 잘못을 했을수도 있는데 영웅으로 생각할까. 그것을 저자는 올바로게 다시한번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이책을 소개하는것 같다. 과거로 올라가서 역사드라마를 보면 장희빈은 권력을 가지기 위해 갖은 수를 쓰는 인물로 나오 지만 다른모습으로 등장한 드라마도 있었다. 이렇게 역사는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인물들의 평가가 달라진 다. 역사의 진실을 바로 알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면서 앞으로 자라날 아이들에게 지금 알려진 역사의 모습 을 바로잡아줄 때가 아닌가 싶다.
병주고 약주는 전설이라는 부분에서는 의자왕을 동정적인 설화로 "산유화"가 있다. 이노래가 불러진 것도 백제의 멸망전과 후인지 모르는 사실이고 의자왕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이 아니라는 점이다. 참으로 아니러니한 사실이다. 현대에서는 분명히 폭군과 능력부족의 왕이지만 왜 이런 가사가 퍼졌을까. 그것은 분명히 역사만 아는 사실이고 그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만 알수 있는 대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의장왕의 정치적인 모습을 보면 초창기에는 의 구심을 사람들이 가지지 않았고 무리없이 통치했다고 한다. 하지만 말년으로 갈수록 그의 통치에는 문제점이 드러 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는 역사에서는 의구심을 품는다. 백제멸망의 원인은 대신들의 권력싸움과 부패라는 점이다. 이 부분은 다른책을 읽으면서 알게된 사실이다.
계백의 편에서는 그의 이야기를 누가 옮겼냐는 것이다. 백제는 멸망했으니 신라로 추정하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 다는 사실이고 전쟁터에 나가기전에 가족을 죽이고 간 사실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이 부분도 말이 되지 않는다. 모 름지기 남자들의 입은 무겁기 마련인데 스스로 떠벌리고 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듯 역사에서 이들의 삶은 극과 극을 달린다. 삼국사기에 나와있는 게백의 이야기를 알고 있지만 요즘들어 삼국사 기를 다른쪽으로 해석하는 부분도 생겨난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것은 역사바로 알기인데 도대체 어디부터 진실인지 아닌지 알수없는데 답답하다. 유독 의자왕의 욕을 먹는 왕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도 하고 역사의 이모저모 를 보면서 보이는게 다 진실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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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텔레비전에서 한창 방송중인 계백에 대한 이야기... 텔레비전은 물론 계백과 의자왕을 다룬 책들을 보면 거의 다 의자왕의 흥청망청한 모습으로 인하여 백제가 망한 것처럼 묘사되어 있고, 계백은 훌륭한 장군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기존에 알고 있는 우리 역사가 잘못된 부분이 있다니!!! 사실 역사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대부분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많이 얻는 곳이 최근에는 텔레비전이 아닌가 싶다. 물론 관심있는 분야의 책들은 찾아보게 되겠지만 시중에 나와 있는 책들 조차도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 놀랍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의자왕의 경우는 의자왕과 삼천궁녀를 따로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당연히 기정 사실처럼 생각해왔던 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니 놀랍기도 하고 진실이 더욱 궁금해졌다. 역사적으로 터무니없고 근거도 없다는 삼천궁녀 이야기만해도 그렇다.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역사를 해석하는 일이 물론 하루 아침의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건 좀 심하다 싶은 생각마저 들게 한다. 오히려 의자왕의 인품에 대하여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걸 보니 정말로 자신들에게 필요한 부분들만 왜곡되어 전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특히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오는 이야기는 진실을 가리기가 더욱 더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을 통해서 그동안 알고 있었던 의자왕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도 다시 돌아볼 수 있었고, 어떤 측면에서 왜 이렇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왔는지를 살펴볼 수 있었다. 계백에 대해서도 왜 그가 영웅으로 평가받아왔는지 마찬가지이다. 역사란 것은 한 쪽의 이야기만 일방적으로 들어볼 수 없는 법인데, 그동안은 쓰여진대로 전해오는대로 그냥 그대로 믿어왔던 것 같다. 이제부터는 조금 더 폭넓은 시각을 가지고 다방면에서 역사를 보는 눈을 키워야 할 것 같다. 의자왕과 계백에 대한 다른 시각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니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싶은 사람들은 읽어보면 흥미로울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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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때는 역사시간이 그리 즐겁지 않았다. 어찌보면 그자체도 입시라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무조건적으로 교과서와 교재를 달달 외우고 익혀야 했던 상황때문일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요즘 들어 든다. 너무나도 다양한 역사관련 책들이 많다. 그런 책들을 읽을때마다 아하! 이런 이유로 그런 사건이 일어났구나 하는 것을 깨우칠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의자왕. 솔직히 난 의자왕보다는 계백을 더 기억했다. 그렇기에 MBC 계백을 드라마화 했을때도, 의자왕이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사실이 잠깐 이상하다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역시 역사는 누가 해석하냐에 따라서 충분히 뒤집어질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의자왕은 백제를 멸망하게 한 중추적 역할을 했던 마지막 임금으로 알고 있는데, 그게 잘못된 편견에 입각한 사실일수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계백이 명장으로 불리고 추앙받을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역사적 근거가 약하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저자는 백제후기 역사를 대표하는 의자왕과 계백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그들의 관계를 조명하고자 했다. 내 귀가 얇아서인지 모든 내용들이 다 그럴수도 있구나 하는 공감대를 형성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난 저자의 생각처럼 의자왕이 타락한 왕이 아니라 백제의 멸망에 따른 패자에 대한 평을 좋게 할리 없었다는 주장을 받아들일수는 없었다. 역사를 좋아하고, 책을 좋아한다면 초등학생도 능히 알고 있는 의자왕과 삼천궁녀 이야기가 사실이 아닐수 있다는 이야기는 참 놀라웠다. 낙화암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근간이라 할만한 이야기를 통째로 흔드는 가설이니 말이다. 삼천궁녀가 떨어져 내릴수 있는 공간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아무리 왜곡된 역사일지라도 그렇게 근거가 없는 내용을 대대로 전해지게끔 했단 말인가. 만약 의자왕 시대에 있었던 일들이 현재 전해지는 역사적 사실과 큰 차이가 있다면 의자왕은 저승에서도 결코 편안하지 못하겠구나 싶으니 너무 안쓰러웠다. 한 나라의 왕은 그렇게까지 치욕스럽게 기록되었는데, 항상 세트처럼 따라다니는 계백은 그가 했던 업적 이상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으니 참 복많은 사람이구나 싶기도 하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역사관련 책들을 어떤 의무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궁금해서 읽다보니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렇지만 어느순간 이런 생각이 든다. 과연 어떤 것이 진실일까?하는. 내가 학창시절때 배우고 기억했던 사실들이 세월이 흐른 지금에는 또다른 진실이 있음을 알게 되고, 내가 기억했던 인물이 결코 애국자가 아니라 시대에 편승해 적당히 타협하고 안위를 도모했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의 그 괴리감이란. 그래서 수많은 역사학자들이 역사를 바로 알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중인가 보다. 백제의 마지막 전투였던 황산벌 전쟁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고, 의자왕도 단순히 패왕이자 타락한 왕으로 기억할 것이 아니라, 집권초기 보여줬던 선진적인 정치적 행보도 눈여겨 보고 집권내내 거의 신라에 대한 공세를 먼저 했고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점도 무시하면 안될것 같다. 마지막 전투였던 황산벌 전쟁에서의 나당연합군의 전략과 백제의 대응이 어떠했는지도 다시금 알아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나는 책을 읽는 독자일뿐이다. 그렇기에 많이 답답하기는 하다. 저자도 말했듯이 제아무리 각계각층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의자왕과 계백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 잘못되었다고 할지라도 너무나도 오랫동안 머릿속에 콕 박혀 있는 그들의 이미지가 쉽사리 바뀌지 않을거라는 사실이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