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 오래 전의 책들이 눈에 끌릴 때가 있다. 언제 내가 저 책을 읽었던가 싶은데 펼쳐 보면 군데군데 내 읽기의 흔적이 남아, 밑줄이거나 짧은 느낌말로 지나간 나의 한 때를 새로이 불러 일으켜 주는 만남. 지금은 여름이지만 이 시집은 겨울이다. 산과 바람과 눈과 무덤들이 온통 은빛을 띠며 시 속에서 빛나고 있다. 같은 제목으로 30편의 시를 쓸 수 있으려면 그 산과 바람과 눈과 무덤을 얼마나 사랑해야 할 수 있는 일일까. 시집을 펼치고 있는 지금 이 바깥 세상은 무지 찌는 여름이고, 내 등뒤에서는 끊임없이 선풍기가 바람을 뿜어내고 있는데, 내 정신은 맑고 차가운 산을 오른다. '노래할 수 있는 것은 아직 불행한 것은 아니(116쪽에서)'라고 한 작가의 한 1행시처럼 노래를 찾아 읽는 나 역시 아직은 행복한 모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