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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역꾸역이라도 글 몇 자 읽는 게 마음 편한데, 여행길 캐리어 무게를 운운하며 책을 끼고 가지 않은 게 나도 모르게 마음에 쓰였나 퇴근해서 집에 오자마자 가방을 내려놓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이런 사회생활 또래들을 만나면 누군가는 프랑스, 누군가는 호주, 누군가는 쿠바, 이런 식으로 각자 꿈꾸는 나라가 하나씩 있었다. 비록 내 지금은 진자처럼 회사와 집만을 무한 진동하지만 언젠가 이 궤도를 벗어나 먼먼 나라로 날아가리라, 하는 꿈. 모두 마음속 보석상자에 나라 하나를 숨겨놓고, 무릉도원처럼, 유토피아처럼, 극락처럼 상상하며 야근도 버텨내고 주말근무도 이겨내 왔던 것이다. (…….) 삼십 대라는 나이를 맞이하기 전에, 직급의 무게에 눌리기 전에, 결혼의 압박이 목을 죄기 전에 지금이 날아오를 때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퇴사를 결심했고, 긴 여행을 다짐했다. (_19)
버릇처럼 속삭인다. 딱 3년이라고, 28살에는 혹은 29살에는 어디든 가 있을 거라고. 그래서 지금은 지겨워도 참고 견뎌내야 하는 거라고. 남들보다 일찍 시작했으니 그 때는 주저 없이 벗어버릴 수 있을 거라고. 누군가는 내게 무모하다 하고, 누군가는 갈 수 없을 거라 하고, 누군가는 내게 아직도 동화 속에 사냐 한다. 그런데 그녀가 말한다. ‘누구나 먼먼 나라로 날아가리라, 하는 꿈. 모두 마음속 보석상자에 나라 하나를 숨겨놓’ 았다고. 나와 닮았다, 아니 내가 닮고 싶은 걸지도. 에세이를 읽다 보면 작가에 내가 투영돼서, 아니 몰입해서 작가가 그려주는 그림에 손을 댄다. 나라면? 이 상황을 내가 마주한다면? 여러모로 나는 에세이가 참 좋다. 나와 ‘아주 잘’ 맞는다.
늘 감성에 목마르고, 감성이 줄줄 흐르는 에세이를 글들을 보며 나를 그리기 바빴으니까. 결국 그녀는 감성에 충실한 것도 나쁘지 않다는 해피엔딩 결말을 내려줬지만, 습관적 감성 배제는 그녀의 글 마다 깊이 묻어있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나는 늘 내 감상을 경계했다. 이는 진실이 아닌 허상, 그저 자아도취일 뿐이라고 나 자신을 비판했다. 내가 그런 순간적 감상에 사로잡혀 얄팍한 감동에 빠지는 게 싫었다. 그간 내가 그토록 비웃어 온 말랑하고 촉촉한 여행기 속 주인공들과는 차별화 된 여행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_128)
그녀의 8개월 동안의 런던 생활기는 담백하고 솔직했다. 여느 여행 에세이와는 달랐다. 떠났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행복’, ‘낭만’들을 쥐고 있지 않다. 책 내내 뼈가 사무치도록 쓸쓸한 외로움과 그리움이 담겨 있고, 또 거기서 아주 슬쩍 즐기고 있다는 뉘앙스와 아롱아롱 보이는 배제된 감성들이 더 나를 설레게 했다. 꼭 나도 그럴 수 있을 것만 같아서! 그녀가 경계했던 부분에 나도 경계태세를 갖추고, 그녀가 아주 맛있게 먹던 맥주를 나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설렜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반응하며 나 또한 또 꿈을 꾼다, 보석 상자를 들춰본다.
불안한 마음에 남의 손 안을 엿보면 전혀 다르다. 남의 손에 있는 프리즘은 어찌나 찬란하게 무지갯빛을 뿜는지 부럽고 샘나고 질투가 솟는다. 내 손은 텅 빈 듯이 보이는데 남들은 모두 무지개를 쥐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각자 자신만의 프리즘을 갖고 있으면서도 제 것은 보지 못하고 남의 것만 부러워하는 것, 그게 행복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아닐까.(_282)
공감할 수 있는, 위로 받을 수 있는, 꿈을 꾸고 있는 친구에게 선물하고 싶은 ‘좋은 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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