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십대 때는 대문호의 작품이기에 읽었고 그 자체 만으로도 뿌듯했습니다. 그리고 이십 대 초반을 지나 중반에 읽으니까 그 느낌은 사뭇 다르더군요. 그 감동을 재현하기가 버겁고 내가 턱없이 부족하단 생각 뿐입니다.^^ 그 때문에 리뷰를 쓰고자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다지 읽는 동안의 느낌을 글로 모두 표현하는 것도 힘들고 되새기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있어서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문득 쓰고 싶단 충동이 들고 보니 그리하지 않을 수 없네요.^^ 처음부터 리뷰를 쓸 생각이었다면 밑줄이라도 쳐서 따로 적었을 텐데 그것이 조금 아쉽습니다만 어쨌든 기억을 되살려 보겠습니다. 아무래도 가장 인상 깊은 건. 새에 관한 부분입니다. 아무 의미없던 싱클레어 집 현관 장식된 새. 그 것을 데미안이 발견했다는 것이 의미를 가지고 소설 전반에서 은밀하게 움직입니다. 그리고 데미안은 그 새가 싱클레어에게도 언젠가 날아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그의 싹을 알아본 것이죠. 아무것도 모르던 싱클레어. 조금씩 자신의 가슴 속에도 무언가가 움트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이 데미안의 흔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둘은 그렇게 새를 통해 연결됩니다. 하지만 싱클레는 데미안에 대한 존외심이 아닌 스스로가 만든 자신 만의 새를 갖게 됩니다. 저는 그것의 정체를 느끼고 알아가는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전보다도 고뇌하는 싱클레어의 감정이 훨씬 와 닿았고 새에 대한 의미를 나름대로 생각해보니 참 재밌더라구요. 저는 그 새가 인간이 누구나 갖고 있는 공통됨일 수도 있고 개인만이 갖는 특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나란 사람도 새의 존재를 찾아 방황하는 또 하나의 싱클레어이고 또 하나의 데미안으로 멀리서도 싱클레어의 자손을 찾을 수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의 다른 책도 읽어볼 생각입니다...^^ 그의 관념적인 세계에 다시한 번 깊은 경이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가시적이고 현시적인 문제에 시달리고 영상물에 혼을 내주고 살다보니 그의 얘기가 더 새롭게 들려옵니다. 아쉽고 부러운 건 우리 문학계도 관념적인 소설들이 많이 소개되고 읽히는 그런 날이 오면 좋겠다는 겁니다. 꼭 읽어보세요. 거듭 읽어보세요. 시간을 두고. 감동이 밀려올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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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데미안이라는 소설은 원래 처음 출판되었을 당시 헤르만 헤세라는 대문호의 이름을 지우고 익명으로써 출판되었다. 그것은 제 1차세계대전이 지나고 세계가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고쳐야 하듯이, 자신또한 반성하는 마음을 가져야한다는 헤르만 헤세의 뜻이었다. 바로 이전의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명성에 기대는 일이 없이 본래의 자기자신으로써 '데미안'을 세상에 내 놓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이전의 자신을 반성하며 본래의 자기가 되려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 과감히 뛰어든 헤르만 헤세의 의지였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이 '데미안'을 헤세의 제2의 처녀작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그만큼 훌륭한 소설이다.
'데미안'은 자신의 내부에 선과 악이 대립하면서 공존하는것에 괴로워하는 싱클래어라는 소년의 성장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이다. 그리고 싱클래어는 자신의 세계를 찾았다. 그는 자신의 또하나의 투상인 데미안이라는 소년에게서 이 세상을 다르게 보는법과 다르게 생각하는법을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된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에 자기자신에게서 그의 우상인 데미안의 모습을 보게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고전이라면 조건반사적으로 피하고보는 나조차도 이 데미안이라는 출세출의 걸작은 상당한 감동을 선사해주었고, 마음의 양식이 되고 삶의 의지가 되었다. 정말 누구에게나 추천해주고픈 걸작이다. [인상깊은구절] 그로부터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가 고통이었다. 그러나 요행히도 열쇠를 찾아내 마음의 문을 열고 나자신 속으로 들어가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부 세계의 깊숙한 곳에 있는 마음의 거울에는 운명의 모습이 비쳐 있었따. 그리고 어두운 그 거울 위에 허리를 굽히기만 하면 나 자신의 모습도 볼수 있었다. 거울에 비친 그 모습은 내 친구이며 내 인도자인 그 사나이를 닮아 있었다. |
| 내가 데미안을 읽게 된 계기는 내 주변 사람의 권유였고 그래서 읽게 되었다. 처음에 읽게 되었을때는 좋은세계니 나쁜세계니 신에 대하느니 하는 이상하고 어렵고 내가 알기 힘든 단어가 나와서 정말로 읽기 싫었다. 그러나 이 책을 계속 읽게 될수록 싱클레어(주인공)가 겪고 있는 일이 내가 세상을 살아 오면서 꼭 한번씩은 겪었던거 같았다. 나쁜친구를 만나 고생하고,사랑을 생각하고, 잠시 방황을 하고 내가 걸어온 길을 보는것 같았다. 데미안 이란 책은 나에게 내가 살아온 얘기를 내가 경험한 일을적어 놓아서 친근감이 있었고 헤세의 문체또한 나를 감동하게 만들었다. 우리의 인생에서 꼭 한번 읽어봐야 할 책인거 같다. |
| 이미 늦었다고 말하기엔 내 생이 너무나 짧았다. 그 짧은 시간속에 늦음이란 의미없는 공허감일뿐......데미안이 바로 그랬다. 이 책을 읽기엔 나는 너무 많은 생을 살았다고 생각했다. 학창시절 고전이란 늘 따분하고 책장 한장 넘기기가 마치 큰일이라도 하는 듯했는데......책의 오묘한 맛과 의미를 나이를 먹으면서 알게된 지금 난 자꾸만 고전이라는 곳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다시 내 손에 들어온 책...[데미안] 그때와 뭐가 달라졌을까? 내가 생각하는 나는 여기 있고, 남이 바라보는 나 또한 그리 달라졌을 것 같지는 않는데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길래 [데미안]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일까? 지난 생의 세월의 무게만큼 데미안을 느낄 수 있어 다른 어느때보다도 행복한 순간이었다.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건 데미안 그를 위한 기다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소년의 성장기를 기록한 이 책이 이미 다 자라버린 나에게 내 영혼이 클 수 있는 발판이 되지는 않았다 싶다. [선와 악]인간에게 영원한 물음일 수 밖에 없는 문제를 싱클레어의 일상을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인간의 생이란 어쩌면 평생 자기 안의 나를 찾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싱클레어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고뇌와 방황, 갈등 번민. 이것이 우리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하나하나를 극복해가는 것이 또다른 우리의 모습일테고...... 우리들에게는 누구나 싱클레어의 모습이 있고 데미안의 모습이 있는 것 같다. 살아가는 우리들......어서 빨리 자신 속에 꼭꼭 숨어있는 데미안을 만나길...... 나는 어쩌면 오늘은 데미안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
| 내가 '삶'이라고 말하면 '삶'은 이미 나 밖에 있는 대상이 된다. 내가 그 속에 있는데도, 나 자체가 바로 삶인데도.. 나는 '삶'을 무슨 과일인마냥 반바지마냥 이리 평하고 저리 평해 보게 된다. 사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삶'을 제대로 볼 수나, 느낄수나 있을런지.. 헤르만 헤세는 '삶'을, '삶'에 임하는 자세를 딱 잘라 말해 '완벽한 진지함'이라고 말한다. 참 냉정한 말이다. '삶'을 '우주적 농담'이라고 했던게 라즈니쉬였던가? 결국 그럼 우리는 우주적 농담을 완벽한 진지함으로 대하며 살아야 한단 얘긴가? 농담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은 얼핏 생각해 봐도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인생이란 그런 것인것 같다. 그렇지만 농진이 서로 뒤엉켜 시시각각 변하니 그 여자 속마음 같은 변덕을 어떻게 따라 잡아야 하나.. 햄릿처럼 돈키호테처럼 이태백처럼 각기 다른 사람사람마다 그 풀이과정과 해법은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인가? 헤세는 진지해지라고 한다. 그래야 알을 깬다고 |
| 데미안은 독일의 작가인 헤르만 헤세의 소설이다. 데미안(Demian)이라는 말은 데몬과 같은 의미로서 '악마에 홀린 것'이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헤세가 가족들과 헤어져 스위스 남부의 몬타뇨라에 있을 때 쓴 것으로 40대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1919년에 발표되었는데, '에밀 싱클레어의 청년 시절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으며, 제1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하여 1 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씌어져 있다. 저자가 명시되지 않은 채로 초판이 나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에밀 싱클레어 작품으로 알려졌다. 헤세는 선교사였던 조부모와 부모의 영향으로 인도주의와 평화주의를 신봉하였기 때문에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증오보다는 사랑이, 전쟁보다는 평화가 아름답다."고 주장하다가 조국인 독일로부터 배신자로 낙인 찍혀 스위스로 국적을 옮기게 되었는데, 그 이후 그는 여러 작품을 통하여 전쟁의 비도덕성과 야수성을 비판하였다. 데미안도 그런 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하여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고 낡은 세계와 유럽의 문화를 통렬하게 비판하면서 한 인간이 이상적인 세계를 지향하다가 참된 자기의 세계와 완성의 길을 깨닫는 과정을 보여 주었다. 이 소설은 나오자마자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 패전의 후유증으로 인하여 혼란한 상태에 빠져 있던 독일의 젊은 세대들에게 충격적인 영향과 함께 깊은 감동을 주었을 뿐 아니라 문학계에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데미안은 헤세의 다른 작품과 비교해 볼 때 인간의 내면 세계를 무의식의 영역·꿈의 영역· 영감의 영역까지 깊이 있게 다루었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데미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인공인 싱클레어가 열 살 쯤 되었을 때 다니던 라틴어 학교에서 겪은 체험담으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때 싱클레어는 이 세상에 두 개의 세계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하나의 세계는 부모들의 세계로 선의 세계이고, 다른 하나의 세계는 외부의 세계로 온갖 괴담과 추문이 있는 악의 세계였다. 싱클레어는 학교에서 악의 세계에 속해 있는 프란츠 크로마와 만나게 되었는데, 한편으로 두렵기도 하였지만 호기심 어린 마음에서 그와 친하게 되었다. 어느 날 싱클레어는 영웅심에서 크로마에게 물레방앗간집 사과 밭에서 사과를 한 광주리 훔쳤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였다. 크로마는 이것을 미끼로 돈을 요구하며 위협을 가하였다. 싱클레어는 하는 수 없이 집에서 돈을 훔침으로써 처음으로 악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는 이 악의 세계에서 빠져 나오려고 애썼으나 이미 선의 세계는 자신과 상관없는 세계로 느껴졌으며, 악의 세계에 예속된 것으로 생각되었다. 괴로워하던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이라는 친구가 전학을 와서 몇 마디 말로써 그를 크로마의 손아귀에서 구해 주었다. 싱클레어는 부모와 같은 선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하여 부모에게 모든 것을 고백하고 참회하였다. 그러나 데미안은 그것이 자유로운 길이 아니며, 또 다른 예속의 세계이므로 자신만의 세계를 가도록 내면에서 일어나는 성스러운 명령을 따르라고 요구하였다. 그 후 데미안과 친하게 지내면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세계로 더욱 이끌리게 되었다. 상급 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데미안과는 헤어졌는데, 그 곳에서 그는 성의 세계에 눈뜨게 되었고 알폰스 벡이라는 불량한 친구와 사귀게 되면서 다시금 악의 세계로 들어서게 되었다. 선의 세계를 동경하면서도 악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그는 어느 날 이상형의 한 소녀를 만나 다시 선의 세계로 이끌렸다. 그는 지금까지의 생활을 반성하고 그녀의 초상화를 그리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막상 그리려고 하면 그 소녀의 상이 기억나지 않아서 고생하다가 노력 끝에 불확실하나마 하나의 모습을 그려내었는데, 그 얼굴은 다름 아닌 데미안이었다. 그는 다시 그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이었다. 이 일 후 싱클레어는 꿈에서 원초적인 어머니 상을 보게 되고 데미안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새는 알에서 나오려 한다. 알은 세계이며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아프락사스다."라는 내용이었다. 한 오르간 반주자는 아프락사스가 선과 악을 한 몸에 가지고 있는 신이며, 자기 영혼 속에서 일어나는 소원은 어떤 것이든지 금하지 않는다는 것을 싱클레어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 후 싱클레어는 대학에서 다시 데미안과 데미안의 어머니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바로 그가 꿈꾸었던 그 여성이었다. 그들은 유럽에 붕괴의 시기가 오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는데, 이 혼란 속에서 싱클레어는 그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예견하였던 대로 전쟁이 터지고 싱클레어와 데미안은 전쟁터로 끌려가게 되었다. 그는 어느 농가 앞에서 보초를 서다가 부상을 당하여 병원으로 후송되었는데, 거기서 다시금 데미안을 만나게 되었다. 데미안은 자기 마음 속의 소리 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하고 죽었다. 싱클레어는 이제 자기 마음의 깊은 곳으로 내려가기만 하면 그 곳에서 데미안 의 모습을 볼 것이며, 또한 거기서 데미안을 닮은 자신의 모습을 볼 것이다. 작가 헤세는 독일의 시인이자 소설가이다. 남독일의 슈바벤 지방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들어갔으나 엄격한 학교 규율을 견디지 못하여 학교를 그만둔 뒤 시계 수리공, 서점의 점원 등으로 있으면서 시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 시 <낭만적인 노래="">를 발표하고, 이어 장편 소설 [페터 카멘친트]를써서 이름이 알려졌다. 1911년에 인도를 여행하여 신비로운 인도 사상에 큰 영향을 받았고, 제1차 세계 대전을 반대하여 정부의 미움을 샀다. 그는 1946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낭만적인> |
| 초등학교 때 읽었었는데 무리 였던거 같다.. 그래서 다시 읽어 보았는데 데미안의 존재에 대하여 관심이 갔다. 그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생각 끝에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하나의 분신이라고 생각 한다. 싱클레어가 방황하고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할 때, 곁에서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그의 모습...여러가지로 신비로운 모습들이 많았는데.. 난 깨달았다. 마지막 전쟁이 일어나서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한 이야기... '이제 난 네가 부른다고 해서 나타날 수가 없어... 난 이제 너의 마음속에 있는거야...' 이 말의 의미..이때 난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흡수해버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니까 싱클레어의 자아는 곧 데미안(?).. 어쨌든 싱클레어는 자신의 내면을 찾아내었다. 내가 싱클레어의 자아가 데미안이라는 생각을 하는 이유는 그 중 하나지만 그가 베아트리체를 그리면서 자신도 모르게 데미안의 모습을 그려버린 것...또한 데미안의 생각인 카인에대해 쉬이 끌려 버렸다는 점....이런걸 볼 때 그렇게 생각 되지 않을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