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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준 감동이 훌륭하고 재미가 출중하여 나이를 먹으면 꼭 다시 읽어봐야겠다, 마음속에 저장을 해놓은 작가들이 여럿 있다. 물론 그 저장고의 문을 열어야 하는 때를 따로 정해놓은 것은 아니었으니, 그저 불쑥 어떤 계기가 생기기리를 기다렸을 뿐이다. 이탈로 칼비노도 바로 그러한 작가 중 한 명이었고, 이제 새롭게 문학의 문턱을 넘으려는 지인에게 책을 빌려준 것이 빌미가 되어 ‘우리의 선조들’ 3부작이라고 불리우는 책들 중 첫 번째 권인 《반쪼가리 자작》을 다시 읽게 되었다. (추천한 사람을 뿌듯하게 만드는 지인의 강한 리액션이 작용한 탓도 크다. 까탈스럽기 그지 없는 지인이 무척 재미있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심지어 얼른 읽고 책을 돌려달라고 보채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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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비노의 소설을 읽다보면 아이들도 이 책을 읽으면 재미있어 하겠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모양새나 칼비노의 상상력이 꼭 어른들에게 적합한 것만은 아닐 것 같다는 느낌에서겠죠. 조카가 삼촌인 메다도르 자작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식으로 시작하는 <반쪼가리 자작="">은 그의 책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투르크와의 전쟁에 참가한 메다르도 자작이 대포에 뛰어들어 말 그대로 몸이 두동강 납니다. 그 중 나쁜 마음만을 지닌 나쁜 반쪽은 먼저 고향으로 돌아오고 이어 착한 마음만 남은 착한 반쪽도 고향에 오게 되죠. 이들은 모두 파멜라라는 시골 소녀를 사랑하게 되는데, 여러 우여곡절 끝에 메다르도 남작은 보통 사람처럼 착한마음과 나쁜 마음을 동시에 지닌 한 사람을 합체(^^)되고 파멜라와 결혼하게 됩니다."
어때요? 재미있죠. ^^ 몸이 두동각이 났는데 어떻게 살 수 있나 라든가 로보트도 아닌데 하나로 어떻게 합체되는가 식의 생각을 가진다면 이미 칼비노의 소설을 읽기 전부터 흥미를 읽을 지 모릅니다. 칼비노는 환상적이고 상상력 넘치는 세계를 창조하는 작가로 그 속에서 소설적 재미와 교훈은 일반 소설에서 느껴지는 것과 또 다른 맛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반쪼가리가 된 메다르도를 통해 도덕적으로 분열되고 상처받고 소외된 현대인들을 표현하려고 했다."고 이야기 하지만 꼭 그런 교훈보다도 사람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력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동화를 읽는 기분으로 <반쪼가리 자작="">을 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인상깊은구절] 당신과 이야기를 하려고 뒤를 따라왔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올리브를 주워담을 수 있었어요. 여기 내가 모은 게 있어요. 난 불행한 어떤 사람을 도와주고 싶은데 내 뜻과는 반대로 내 존재가 그 사람을 더 불행에 빠뜨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얼마 전부터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테랄바를 떠날 겁니다. 내가 떠나게 되면 두 사람에게는 평화를 주게 될 거요. 바로 지금은 동굴 속에서 잠을 자고 있지만 귀족의 운명을 타고난 당신 딸 파멜라와 지금처럼 계속 혼자 살아서는 안 되는 불쌍한 내 오른쪽에게 말입니다. 파멜라와 자작은 결혼해야 합니다.반쪼가리>반쪼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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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고 나는 또 하나의 위대한 작가를 알게 되었다. 이탈로 칼비노. 그가 나열한 상상력의 소산들은 더 없이 짜릿하고도 대단하다. 인간의 몸 속엔 영락없이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다.하지만 누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을 반쪽으로 분지른다니.. 똑같은 모습에 상반되는 내면을 가진 반쪽 인간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각자의 내면에 충실한다니. 이런 발상만으로도 나는 이미 왜 많은 독자들이 칼비노를 좋아하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반쪽 인간은 자신에게 부여받은 선과 악의 내면에 충실하기 위해 선행과, 악행을 저지르며 돌아다닌다. 마을 사람들은 나쁜 반쪽의 악행에 두려움을 느끼다가도 어느새 착한 반쪽의 무조건적인 선행에 지루함을 느끼기도 한다. 세상엔 완전한 인간이란 없다. 아울러 '완전함'이란 단어조차 그 진위를 가려낼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반쪼가리 자작들은 결투 끝에 하나의 온전한 인간으로 거듭났다. 그 모습은 그저 사악함과 선함이 함께 혼합되어 있는 보통 인간의 모습일 뿐이었다. [인상깊은구절] 그렇게 해서 삼촌은 사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은, 사악함과 선함이 함께 혼합되어 있는 온전한 인간으로 되돌아왔다. 표면적으로는 반쪽이 되기 전과 달라진 점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두 반쪽이 재결합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주 현명해질 수 있었다. 그는 행복한 생활을 했고 많은 자녀를 두었으며 올바른 통치를 했다. 아마도 우리는 자작이 온전한 인간으로 돌아옴으로써 놀랄 만큼 행복한 시대가 열리리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세상이 아주 복잡해져서 온전한 자작 혼자서는 그것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었다. |
| 사전지식 하나 없이 칼비노의 작품을 읽었다. 단지 민음사의 선집이라는데 이끌려서... 지은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그 사람의 작품 경향이 어떤지 전혀 모르고 작품을 읽는 경우는 거의 없는 편인 나는 처음 책을 읽으며 약간 당황하였다. '반쪼가리 자작'? 제목에서 풍기는 뉘앙스로 나는 작품내용을 짐작했다. 반쪼가리 자작 나무? 서정적인 내용이거나, 아니면 서정적인 내용 속에서 사회나 시대를 비판하는 그런 작품이 아닐까? 라고. 근데, 읽기 시작하자마자 터진 전쟁이야기. 음...이건 전쟁을 체험한 위대한 영웅의 일대기를 통해 우리에게 무언가를 전하려하는 소설이구나... 으악! 근데, 이 전쟁터에 참여한 메다르도 자작은 전쟁 '전'자도 모르는 무지한 사람인데다 전쟁에 참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포에 몸 반쪽이 날아가버리는 처참한 부상을 당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는 온전히 남은 오른쪽을 꿰매고, 맞추고,혼합하여 살아난다. 여기까지 읽고서 나는 혼이 다 빠져버렸다. 끔찍하게 몸이 날아가는 것도 숨이 가빴는데, 거기다...반쪽자리 인간이라니! 세상에나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나는 이 작가의 작품을 너무 사실적으로 받아들이며 읽고 있었던 것이다. 3번째 단락부터는 작품을 달리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작가는 대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식으로 작품을 써 가는 형일까? 민음사 선집에 오를 정도면 세계적인 작가임에는 틀림없을텐데...나는 나의 무지에 대해 깊이 반성을 하며 사실적으로 이 작품을 읽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테랄바로 돌아온 메다르도 자작...악한 성향만 몽땅 가지고 돌아온 오른쪽 반쪼가리 자작은 마을 사람에게 횡포를 부려 공포감을 안겨준다.그리고, 또 갑자기 나타난 왼쪽 반쪼가리 자작!-으 이 대목에서도 굉장히 혼란스러웠다.그는 선한 마음만을 가지고 있다. 악과 선의 대결! 사람들은 절대적인 악도 두려워하지만, 절대적인 선 앞에서도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결국 선과 악의 반쪼가리들은 파멜라와의 결혼식에서 결투를 벌이고, 피투성이가 되어 다시 결합된다.그렇게 해서 다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정상적인 인간이 되는 메다르도 자작.. 이 책의 화자처럼 등장하는 메다르도 자작의 조카인 내가 마지막에 쓴 글귀가 인상적이었다.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은 자작이 마을을 다스렸음에도 불구하고 별 뾰족한 행복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결론. 읽고 나서 보니 이 작가는 동화적인 기법으로 여러가지 있을 수 없는 상황을 통해 현실을 이야기 한다는데... 별로 아름답지 않은 동화였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동화는 지극히 아름다왔다. 동화 속에는 현실 속에서 일어나지 않는 여러가지 신기한 행복이 쏟아졌다. 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 동화 읽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꿈을 꾸곤 했다.그러나, 내가 살아야 할 세상은 나를 늘 배신했다. 동화처럼 아름답고 신기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칼비노는 현실을 그렸다. 동화적인 기법을 빌려서. 선과 악이 공존하는 우리 세상은 절대적인 악도, 절대적인 선도 구원할 수 없고, 그 어떤 것으로 구원되는 일은 없다. 선과 악이 혼잡한 이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칼비노의 동화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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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비노의 상상력은 독특하다. 이 작품 또한, 동화적인 작품이지만 그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리 녹록치 않은 듯 하다. 소설을 한번이라도 써보고자 해본 이라면, 칼비노의 글쓰기가 얼핏 느끼는 것처럼 장난스럽거나 가벼운 것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언제나 '낯선' 소재와 '새로운' 말하기를 성취했을 때, 좋은 작품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러한 측면에 주목해서, 김현은 "'무엇을' 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가 문학의 주관심사"라고 했던 것일게다.
개인적으로는 주제, 즉 말하고자 하는 바는 기존의 것들에서 크게 벗어날 수가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주목해야 할 지점은 '어떻게 새롭게, 낯설게, 신선하게' 글을 쓰느냐가 되지 않을까. 이러한 생각들을 하게 되면서, 예전에 '무엇을' 말하느냐에 초점을 두고 읽었던 나의 책읽기를 되돌아보곤 한다. 그래서 요즘엔 내용뿐 아니라 형식의 측면에도 많이 관심을 두며 책을 읽게 되는데, 이러한 점에서 칼비노는 상당히 신선한 글쓰기를 선보였다. 하루키도 그랬지만, 칼비노의 경우엔 '동화적인 상상력으로 글쓰기'를 명백하게 보여주었다.
어떤 이는 칼비노가 단순히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쓰는 작가가 아님'을 강조했지만, 그 점에 굳이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분명히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가볍지 않은 것들 - 인간의 선과 악의 모습들, 그리고 그들이 다시 합쳐 온전한 인간으로써 정립하더라도 세상 모든 것은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에 세상 자체가 변하지 않더라는 깨달음 - 이지만, 그 정도의 통찰력은 그리 독특한 것까지는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지점은 하나의 예술로써의 문학, 그 말하는 방법 - 칼비노의 말하는 방식은 예상 외로 흡인력이 있다 - 일 것이다. 재미있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작가를 알게되어 기쁘다. 이 <반쪼가리 자작="">은, 문학이란 딱딱하고 현학적인 문구로 가득찬 것이라고 오인하는 이들에게 한번쯤 권해주고 싶은 작품이다. [인상깊은구절] 그렇게 해서 삼촌은 사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은, 사악함과 선함이 함께 혼합되어 있는 온전한 인간으로 되돌아왔다. 표면적으로는 반쪽이 되기 전과 달라진 점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두 반쪽이 재결합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주 현명해질 수 있었다. 그는 행복한 생활을 했고 많은 자녀를 두었으며 올바른 통치를 했다. 아마도 우리는 자작이 온전한 인간으로 돌아옴으로써 놀랄 만큼 행복한 시대가 열리리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세상이 아주 복잡해져서 온전한 자작 혼자서는 그것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었다.반쪼가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