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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긍정, 혹은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부정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긍정, 혹은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부정" 내용보기
라틴 아메리카의 마술적 사실주의나 과 같은 판타지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판타지에 근접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는 것을 이탈리아 작가 이탈로 칼비노는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38페이지에서 카를로 대제가 내뱉는「오, 재미있는 일이야! 여기 있는 이 백성은 존재하지만 자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고 저기 있는 나의 용장은 자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지만 존재하지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긍정, 혹은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부정" 내용보기
라틴 아메리카의 마술적 사실주의나 <반지의 제왕="">과 같은 판타지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판타지에 근접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는 것을 이탈리아 작가 이탈로 칼비노는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38페이지에서 카를로 대제가 내뱉는「오, 재미있는 일이야! 여기 있는 이 백성은 존재하지만 자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고 저기 있는 나의 용장은 자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지만 존재하지 않는군. 좋은 짝이 되겠어, 내가 자네들에게 장담하지!」라는 이 말은 소설 <존재하지 않는="" 기사="">의 판타지가 어떤 형식으로 드러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명확하지 않은 중세에 이교도들과 전쟁을 벌이는 전장터에서 존재하지 않는 기사인 아질울포는 금속 갑옷과 오직 존재하겠다는 정신만으로 존재하는 기사이다. 아질울포는 전쟁에 참가해 쉬지않고 자신의 일들을 완벽하게 처리하며 전쟁터에서 존재(살고 있다, 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존재하지 않는 기사이기 때문에, 한낱 갑옷에 이르지 않기 때문이다.)하고 있다. 늙고 무력한 대제와 동료 기사들의 조롱, 브라다만테의 끝없는 구애, 람발도의 존경과 시기, 구르둘르의 어지러운 충성 등이 그를 존재하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아차, 하나가 빠졌다. 이 소설 속에서 전장과 아질울포의 여정을 기록하고 있는 조용한 수녀야 말로 궁극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아질울포를 존재하게 만드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사내들의 나약함과 변덕 그리고 우매함에 지친 브라다만테는 존재하지 않지만 강하고 올곧고 언제나 무엇인가에 몰두하고 있는 아질울포에게서 그녀의 완벽한 사내를 본다. 그래서 아질울포에게 구애하지만 아질울포는 브라다만테의 구애에 응할 만큼 뻔뻔하지 않다.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현대 여성의 허영심을 엿볼 수 있다. 비록 이 소설이 중세의 전장을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브라다만테의 구애는 현대 여성들이 꿈꾸는 백마 탄 왕자와도 무관하지 않다. 여성들은 테레비에서 보았던 왕자님 아니 재벌의 아들을 꿈꾸지만 그런 일들은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런 재벌가들은 자기네들끼리의 교류와 혼인 등으로 중세의 귀족이나 왕족들처럼 핏줄을 이어나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은 알고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러나 여성의 허영심은 자신의 범위 안에서는 결코 존재하지 않을 그들을 꿈꾸는 것까지는 허용한다. 어차피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고 존재하지 않을 것들이기 때문이다. 봐라, 브라다만테가 존재하지 않는 기사인 아질울포에게 무모한 구애를 해대는 것과 묘하게 닮아있지 않은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전장에 뛰어든 솜털이 보송보송한 청년, 람발도는 아질울포에게서 기이한 매력을 느낀다. 아무것도 모르고 전장에 들어왔지만 아버지의 복수가 결국 적의 병사 한두 명쯤 죽이는 것으로 계산이 끝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시간이 그리 걸리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나는 이탈로 칼비노의 정치활동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는 공산당을 위해 군대에 자원했다가 15년 뒤에는 공산당을 탈당하고 좌익 인사들의 모임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람발도처럼 확고한 신념으로 공산당을 위해 싸웠지만 결국 그것이 수만으로만 계산되는 덧없는 일인 것을 깨닫고 공산당을 탈당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자신이 불나방처럼 군대에 지원하던 시절을 람발도라는 인물에 투영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카를로 대제가 아질울포에게 내리는 하인 구르둘르는 자신이 존재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순간순간 눈에 보이는 것들로 자신을 착각하며 살아간다. 오리를 쫓아 연못에 들어 갔다가 오리가 되어 나와서는 다시 배나무가 되기도 하고 죽을 먹다가 죽통에 빠져서는 결국 자신이 죽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인간, 순수한 의미의 백치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소설을 통틀어 구르둘르만큼 상념이 없고 고민하지 않는 인물은 없다. 그래서 구르둘르는 행복하다. 눈에 보이는 것들과 자신을 동일시 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는 갓난 아기들처럼. 그래서 아기들은 잘 웃고 기분이 좋고 즉흥적이다. 구르둘르와 같은 상태인 것이다. 작가는 혹시, 우리 인간들이 사리사욕을 버리고 구르둘르와 같은 인간 태초의 상태로 되돌아가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는 인물들 중심으로만 이 작품을 이야기했지만 사실 이 작품의 절정은 아질울포라는 기사의 존재를 전면으로 부정하는 한 청년의 선언으로부터 시작된다. 청년 토리스몬도는 아질울포에게 기사라는 작위를 받게 해준 처녀가 사실 처녀가 아니었고 자신의 어머니였다고 고백한다.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 아질울포에게 내려진 기사 작위는 아무 쓰잘데기 없는 것으로 변해버리고 아질울포는 존재할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그래서 아질울포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그 ‘처녀’를 찾아 나서게 되고 토리스몬도는 자신의 진짜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토리스몬도가 찾아 나선 자신의 아버지는 ‘성배기사단’의 기사이다. 그러나 이들은 신성불가침에 의해 혼인을 할 수 없으며 당연히 자식을 가질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나 토리스몬도는 자신의 진짜 ‘뿌리’를 확인하기 위해 성배기사단을 찾아내고 그들 가까이에서 생활하게 된다. 신의 부름과 말씀에 따라 행동한다는 성배기사단은 사실 아무 명분없이 마을을 습격해 짓밟고 강탈하는 도둑들에 불과하다. 마을이 쓸모없어지면 완전히 불태워버려서 자신들의 만행을 감추어버리는 악질 무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토리스몬도는 약자편에 서서 결국 성배기사단에 대항하고 그들에게서 승리를 이뤄낸다. 그러나 토리스몬도는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어머니와의 좋은 시절을 앗아갔다고 생각해서 아질울포의 존재를 부정하며 자신의 뿌리까지 뒤흔들며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성배기사단을 찾았지만 그들이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것이 부끄럽다. 차라리 모든 것을 밝히지 말 것을 그랬다. 우리가 덧없고 후회와 실수로 점철된 인생을 뒤돌아 볼 때 처럼. 끝자락에 가서 토리스몬도는 한 ‘처녀’와 사랑을 나누게 되는데 이 처녀는 바로 자신의 어머니인 소프로니아였다. 이것을 알게 된 아질울포는 존재할 이유와 가치를 잃음으로 해서 자신을 공기중에 산화시키고 람발도에게 자신이 ‘존재’했던 유일한 증거인 깨끗하고 하얀 갑옷을 람발도에게 남긴다. 하지만 토리스몬도는 신화 속의 오이디푸스처럼 자신의 눈을 장님으로 만들지 않고 자신의 계보를 잘 정리해 소프로니아와 자신이 혈연에 얽혀있지 않다는 것을 밝히고 행복한 결혼에 이른다. 아질울포가 자신 때문에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은 아무 상관없다. 그는 어차피 ‘존재하지 않는’ 기사였으므로. 자신에게 꼭 맞는 갑옷을 얻게 된 람발도는 브라다만테를 찾아 떠나는데 여기서 놀라운 반전을 맞이하게 된다. 존재하지 않는 기사 아질울포를 존재했던 기사로 만들고 있는 이 이야기를 쓰고 있는 수녀가 바로 브라다만테라는 것이다. 브라다만테는 이제,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았던 하얀 갑옷의 기사는 안중에 없다. 손에 잡을 수 있는 것이 행복한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브라다만테가 람발도를 맞이하러 뛰어나가면서 이 소설은 끝이 난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정상을 회복하지만 정작 존재하지 않는 기사를 기억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렇지만 이 결말이 씁쓸하지 만은 않다. 어쨌든 해피엔딩이 아닌가. 보르헤스, 마르케스와 더불어 현대 문학의 3대 거장이라는 이탈로 칼비노의 이 소설은 동화를 닮았다. 아니 동화이다. 어린 시절 읽었던 <로빈후드>나 <사자왕 리처드="">같은 중세의 갑옷 입은 기사들이 나오는 동화이다. 그렇지만 현실을 느끼게 하는 설정들이나 어디에서건 볼 수 있는 인간 유형, 그리고 재치있는 유머와 풍자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탈로 칼비노의 이 작품은 재미있다. 약간 낯선 문체에 적응만 하면 책장 넘기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재미있다. 사랑해요, 이탈로 칼비노!!

[인상깊은구절]
「오, 재미있는 일이야! 여기 있는 이 백성은 존재하지만 자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고 저기 있는 나의 용장은 자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지만 존재하지 않는군. 좋은 짝이 되겠어, 내가 자네들에게 장담하지!」
s******m 2004.12.2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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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질 울포는 무엇일까.
"아질 울포는 무엇일까." 내용보기
하얀 갑옷뿐인 존재하지 않는 기사라니. 엊그제 읽은 미셸 푸코와 같이 '권력'은 사고 파는 것, 이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 사이의 우정이라든가 금전 관계라든가, 선후배, 인척 관계 같은 또는 누군가에 필요에 의하여 사용되고, 되어지는 그런 관계망 같은 것일까. 소설 속에 내재된 스타일 같은 것. 내가 언제나 땀흘려 팽팽히 하는 빨랫줄 같은 것. … 인간 전체에 흐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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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갑옷뿐인 존재하지 않는 기사라니. 엊그제 읽은 미셸 푸코와 같이 '권력'은 사고 파는 것, 이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 사이의 우정이라든가 금전 관계라든가, 선후배, 인척 관계 같은 또는 누군가에 필요에 의하여 사용되고, 되어지는 그런 관계망 같은 것일까. 소설 속에 내재된 스타일 같은 것. 내가 언제나 땀흘려 팽팽히 하는 빨랫줄 같은 것. … 인간 전체에 흐르는 인간성, 규율, 법칙, 의리, 정의, 원칙, 법도, 칼 한 번 내려 칠 때의 가장 효과적인 강도와 각도와 예리함과 칼날의 속도와 칼끝에서 어깨까지의 긴장감들의 최고의 가치 같은 것들의 총화, 창을 휘두를 때의 그런 것들, 한 발짝 내디딜 때의 경제적이고 인간적이고…, 그런 엄격함으로 행동할 수 있는 인간, 인간이 기대할 모든 가치들을 몽땅 망라한 최고의 가치일까. 그런 것은 있을 수 없으므로 존재하지 않는 기사일 것이다. 대비되는 '구르둘루', 존재하지만 이럴 수도 저럴 수도, 되는 대로, 규칙과 이성이 존재하지 않는 인간. 그리고 그 사이에 '람발도'가 인간으로 존재한다. 처음 갑옷뿐인 하얀 기사에 자못 긴장한다. 예사롭지 않은 소설 한 권 들었다는 안도감과 기대감에 읽지만 아질 울프가 처녀성을 지켜준 '소프로리아'가 '토리스 몬도'의 어머니라는 폭로에 기사의 반열에서 몰락할 위기에 처하지만, 사실은 그녀가 왕이 농부의 아내와 동침해 만든 사생아이며, '토리스 몬도' 또한 그녀의 아들이 아니고, 왕비가 성배기사들과 바람 피워 만들어 졌으므로, 기사 '아질 울프'의 정당성에 흠이 없으며 '토리스 몬도'의 기사로서의 자격도 부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기사 '아질 울프'는 공중으로 산화되어 사라지고, '람발도'는 '브라다 만테'와 '소프로리아'는 '토리스 몬도'와 결합하는 고전적 해피엔딩의 스토리다. 소설의 화자는 '테오도라' 수녀가 수녀원에서 수녀원장의 명에 의하여 소설 쓰는 것을 임무로 맡아 글을 쓰고 있다. 4장 1/3부분에서 슬며시 나타나, 각 장 첫 부분에서 한참 노닥거리다 소설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독자를 흡인한다. 마지막 12장에서 그녀는 수녀원까지 '브라다 만테'를 찾아 온 '람발도'의 목소리에 돌연 '브라다 만테'가 되어, 수녀 복을 벗어버리고, 갑옷과 투구 방패를 서둘러 입고, 쓰고, 걸치고, 달려나간다. 신선한 충격이다. 수녀가 여전사가 되어 종횡무진 전장에서 적극적 생의 피비린내 나는 활극을 춤추다, 조용한 수녀가 되어 전쟁터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기록하는, 그리고 전지적 위치 - 소설작가로서 소설 속 주인공으로 탈바꿈하는 기발한 아이디어. 그러나 나는 이런 수법에 박수를 치지 않는다. 그러나 1959년에 발표된 소설이다. 내가 너무 늦게 읽었나. 나는 이 나이 되도록 이런 가능성에 대하여 단 한 번도 생각 못해 봤으니, 얼마나 한심스러운가.
x*****k 2003.09.1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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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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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이 마음에 들어 이 책을 집게 되었다. 사실 책 표지나 모양도 그다지 이쁘지도, 눈에 띄지도 않아서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예상외의 좋은 작품을 발견하게 되는 행운을 얻었다. '아질울포 에모 베르트란디노 데이 구일디베르니 에 델리 알트리 디 코르벤트라츠 에 수라'라는 긴 이름을 가진, 이 언제나 갑옷을 하얗고 깨끗하게 유지하는 이 기사는 존재하지 않는 기
"흥미로운 이야기.." 내용보기
이 책의 제목이 마음에 들어 이 책을 집게 되었다. 사실 책 표지나 모양도 그다지 이쁘지도, 눈에 띄지도 않아서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예상외의 좋은 작품을 발견하게 되는 행운을 얻었다. '아질울포 에모 베르트란디노 데이 구일디베르니 에 델리 알트리 디 코르벤트라츠 에 수라'라는 긴 이름을 가진, 이 언제나 갑옷을 하얗고 깨끗하게 유지하는 이 기사는 존재하지 않는 기사이다. 그저 투구로서 외관모습이 보여질 뿐이다. 이 존재하지 않는 기사는 자신의 존재를 생각하지 않고 잊게되면 사라지기 때문에 항상 자신의 존재를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전쟁터에서 오직 이 기사만이 장병들의 일에 하나하나 꼼꼼히 신경쓰며 관리한다. 어느 날 한 기사의 오해를 받아 자신의 기사 위치가 위태로워 지자 사실을 밝히기 위해 길을 떠나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서술자가 누구인지 나타나게 되는데 생각지 못했던 인물이었다. 반전과 독특한 인물들.. 정말 좋은 책이었던 것 같다.
s***o 2003.07.1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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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소설가의 글을 읽는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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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비노의 소설을 읽지 않고 살았다는게 후회가 될 정도로 놀라운 소설. 7시간 연속으로 영어책들과 씨름 한 후에 빼들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그 무겁던 머리를 가뿐히 씻겨주었다. 무대는 칼 대제가 사라센 제국과의 전쟁이 한창인 중세다. 백색의 갑옷(전혀 먼지를 뒤집어 쓰지 않은)과 검은 망토를 걸친 '존재하지 않는 기사'도 그 일원으로 그 부대의 온갖 잡일(예를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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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비노의 소설을 읽지 않고 살았다는게 후회가 될 정도로 놀라운 소설. 7시간 연속으로 영어책들과 씨름 한 후에 빼들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그 무겁던 머리를 가뿐히 씻겨주었다. 무대는 칼 대제가 사라센 제국과의 전쟁이 한창인 중세다. 백색의 갑옷(전혀 먼지를 뒤집어 쓰지 않은)과 검은 망토를 걸친 '존재하지 않는 기사'도 그 일원으로 그 부대의 온갖 잡일(예를 들면 부랑자들의 배급문제나 부식문제와 같은)을 신경 쓰고 있다. 이 사람은 몸이 없다. 사람들이 갑옷을 들쳐보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속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사람은 너무나 완벽히 부대의 행정적인 일을 처리하고 모든 걸 파악하고 있다. 이 '존재하지 않는 기사'를 사랑하는 것은 그 기사들 중 홍일점인 여자 기사다. 그녀는 여러 남자를 경험한 후 모든 걸 다 알아버려 더 이상 '존재하는 남자'들에게 매력을 느낄 수 없어서 그를 사랑하는 것이다. 또 그 여자기사를 사랑하는 신참내기 기사도 있다.(이 신참내기 기사가 죽을 뻔할 때 그 여자기사가 구해준다.) 신참내기 기사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왔으나 '복수담당부서'라는 곳이 그 부대에 있어 할당된 복수를 지정받는다. 어느 위치에 가서 몇 명을 죽이면 그만한 복수를 한다고 하는 이상한 부서. '존재하지 않는 기사'는 귀족의 처녀성을 지켜주면 작위를 받는 다는 그 당시의 법률에 의해 기사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아들이라고 자처하는 이로부터 그 당시 기사가 구해준 이는 처녀가 아니었다는 말을 듣고 자기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그 처녀를 찾아 여행을 나선다. 그의 하인이 있는데, 이 하인의 특징은 객관과 주관을 혼동한다는 것이다. 하인이 말을 타고 간다고 생각해보자. 그는 타고 있는 자신과 사람을 태운 말의 처지에서 동시에 생각을 하고 말을 하는 것이다. 물고기를 잡다가 그물 속에 갇힌 물고기를 보고 자기가 물고기라 생각하고는 물 속으로 들어가 그물에 갇히는 식으로. 마지막에 가서야 나보코프의 소설 로리타처럼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수녀가 위에서 말한 여자 기사라는 것을 독자들은 알 수있게 된다. 이 소설은 작자가 부정하고는 있지만 곳곳에서 이 사회의 단면에 대해 풍자를 하고 있다. 그 여자기사의 사랑에서 프로이트의 타나토스의 이론을 엿볼 수 있기도 하고, 부대의 조직에서 자본주의라는 제도를, 성배기사단의 행동에서 요즈음 유행하는 단이나 선에 관련된 종교인들 '구루' 같은 이들의 행태를 간간히 떠올릴 수 있다.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은 후 거의 10년만에 느끼는 기쁨. 마르게스, 보르헤스와 더불어 20세기 3대 소설가라는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니다.
m*****m 2000.03.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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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 않으면서 존재하려 하는 자와 스스로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자
"존재하지 않으면서 존재하려 하는 자와 스스로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자" 내용보기
한꺼번에 이탈로 칼비노의 연작 기사 시리즈를 다 읽었다. 셋 중에서 가장 오래오래 되새김 하게 되고, 곱씹을수록 새로운 맛의 국물이 우러날 것 같은 것은 . 아질울포는 얼룩한점 없는 새하얀 갑옷의 십자군 기사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갑옷 속엔 아무 것도 없는 존재하지 않는 기사다. 그는 무공과 명예의 기록에 의해 존재를 증명한다. 그래서 그 명예의 뿌리부터 흔들리는
"존재하지 않으면서 존재하려 하는 자와 스스로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자" 내용보기
한꺼번에 이탈로 칼비노의 연작 기사 시리즈를 다 읽었다. 셋 중에서 가장 오래오래 되새김 하게 되고, 곱씹을수록 새로운 맛의 국물이 우러날 것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기사="">. 아질울포는 얼룩한점 없는 새하얀 갑옷의 십자군 기사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갑옷 속엔 아무 것도 없는 존재하지 않는 기사다. 그는 무공과 명예의 기록에 의해 존재를 증명한다. 그래서 그 명예의 뿌리부터 흔들리는 사건에 이르러서는 빈갑옷만 남기고 사라져버리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런가 하면 아질울포의 하인인 구르둘루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객관성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다. 존재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기사와 존재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종자는 좋은 짝이다. 이 책에서는 칼비노의 짐짓 모르는 체 순진한 척하며 빈정대는 글투(?)가 특히 날카롭다. 토리스몬도가 경외해마지 않던 성배 기사단 형제들의 이야기가 그렇고 - 이 성배 기사단들은 말이 기사지 도둑 떼강도인 것으로 보인다 -, 아질울포를 유혹하던 과부와의 하룻밤 이야기가 그렇다 - 과부는 그를 유혹하려하나 갑옷으로만 존재하는 그와 뭔가 될 리가 없다, 게다가 아침햇살에 그녀가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태양이 움직임에 따라 계속 침대와 침대기둥을 옮겨야 하는 기사에 대한 묘사라니!
q****y 2000.03.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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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을 벗고 났더니 존재와 부재의 경지를 뛰어넘는 존재가 되어... 존재하지 않는 기사
"갑옷을 벗고 났더니 존재와 부재의 경지를 뛰어넘는 존재가 되어... 존재하지 않는 기사" 내용보기
이탈로 칼비노의 <우리의 선조들>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다. 이번에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바로 ‘존재하지 않는 기사’ 아질울포이다. 이교도들과 한창 싸움이 벌어지고 전쟁터를 배경으로 하여 갑옷으로만 존재할 뿐 알맹이는 가지고 있지 않은 신비로운 기사 아질울포를 중심에 세우고, 복수를 위하여 기사 지망생이 된 람발도, 그리고 아질울포의 하인이 되는 미치광이 구르
"갑옷을 벗고 났더니 존재와 부재의 경지를 뛰어넘는 존재가 되어... 존재하지 않는 기사" 내용보기

이탈로 칼비노의 <우리의 선조들>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다. 이번에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바로 ‘존재하지 않는 기사’ 아질울포이다. 이교도들과 한창 싸움이 벌어지고 전쟁터를 배경으로 하여 갑옷으로만 존재할 뿐 알맹이는 가지고 있지 않은 신비로운 기사 아질울포를 중심에 세우고, 복수를 위하여 기사 지망생이 된 람발도, 그리고 아질울포의 하인이 되는 미치광이 구르둘루 등의 인물들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 그러니까 세상은 모든 것을 분해시켜 버리고 다른 모든 것들을 뒤덮어버리는, 형태도 없는 거대한 죽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죽이 되고 싶지 않아요, 도와주세요!> 람발도가 막 이렇게 소리를 치려고 하다가 이런 속물스러운 광경과는 멀리 떨어져 있고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 무감각하게 팔짱을 끼고 자기 옆에 서 있는 아질울포를 보았다. 람발도는 아질울포가 자신의 불안을 결코 이해해 줄 수 없으리라고 느꼈다. 하얀 갑옷의 기사를 볼 때 전해져 오던 고뇌는 구르둘루를 보면서 느끼는 정반대되는 새로운 고뇌와 균형을 이루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람발도는 자신의 균형을 유지하고 평온을 되찾을 수 있었다.” (p.69)


소설은 이렇게 까다롭고 규정에 얽매이는 존재인 아질울포와 반쯤 미치광이로 그려지고 있는 구르둘루를 주인과 하인이라는 근거리에 배치시키고 있다. 갑옷이라는 딱딱한 겉모습으로만 존재하며 엄격하고 이성적인 존재인 아질울포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기는 하지만, 그처럼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는 이성의 내부가 텅빈 공간으로 그려내고 있는 점이 이색적으로 보인다. 어쩌면 이는 이성적이지만 결국 종교적인 계율이라는 전통을 가진 서구의 사고방식을, 이교도와의 전쟁과 거기에 참여한 ‘존재하지 않는 기사’를 통해 거칠게 힐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반대편에 위치해 있는 무수히 많은 이름을 가진 광기의 하인 구르둘루의 손을 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이성과 광기라는 극과 극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작가는 어느 한 쪽에 치우치는 것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고 봐야 하겠다.


“... 네가 사랑한 이 갑옷은 지금 인간의 육체의 무게가 어떤 것인지, 나처럼 젊고 가벼운 육체라 하더라도 그 무게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넌 이 갑옷이 어떻게 자신의 비인간적인 순백성을 잃어버리고, 전투에 사용되는 단순한 의복, 모든 공격을 막아내는, 변함 없고 유용한 도구로 변했는지 모를거다.” (p.166)


그리고 이렇게 소설이 이성과 광기 사이의 균형감을 지향한다는 점이 소설의 앞 부분에서 균형을 유지하려고 애를 쓰는 람발도에 의해 그려지고 있다면,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사라진 기사를 대신하여 남겨진 갑옷을 입고 있는 람발도에 의해 껍데기로만 남은 이성과 규율 등이 오히려 다른 이들의 이성적인 사고를 가로막는 장애물임이 드러난다. 인간 이성의 산물이라고 여겨지는 많은 것들이 그렇게 인간을 상실했을 때, 오히려 이성이라는 껍데기를 쓰고 있음에도 비이성을 이끌어내는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지금 내가 구불구불한 작은 줄로 그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은 바다, 아니 대양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 지금 나는 아질울포가 여행을 계속하기 위해 탄 배를, 그리고 거기서 조금 더 가서 어마어마하게 큰 고래, 장식 띠를 두르고 <대양>이라는 글씨가 적힌 고래 한 마리를 그린다...” (p.135)


비록 3부작 중 앞의 두 작품에 비해 좀더 철학적이고 추상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역시 우화적인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반쪼가리 자작》에서는 자작의 조카가, 《나무 위의 남작》에서는 남작의 동생이 화자였다면 이번 소설에서는 기사를 사랑했던 여인이라고 할 수 있는 수녀원의 수녀가 화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한 걸음 나아가 이러한 이야기의 서술자는 자신의 창작의 비의, 자신이 손으로 그려내는 것들이 곧바로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저절로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비의를 간혹 내비치기도 한다.


“<떠나게 내버려두어야 해, 젊으니까, 무슨 일인가 하게 해야 해.> ... 카를로 대제는, 행동이 항상 최고의 선이라고 생각하는 행동하는 인간들 특유의 습관대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새롭게 다가오는 것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과거의 것들을 잃어버린 데 대한 고통을 훨씬 더 많이 느끼는 노인들의 씁쓸함이 담겨져 있었다.” (p.106)
그렇게 화자에 의해 아질울포는 자신이 구하였던 여인 소프로니아를 찾아서, 하인 구르둘루는 아질울포를 따라서, 브라다만테는 자신이 사랑하는 아질울포를 쫓아서, 람발도는 자신이 사랑하는 브라다만테를 뒤따라서, 그리고 아질울포가 구한 여인을 자신의 어머니로 생각한 토리스몬도는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이 소설에 모험 가득한 옛날 이야기류의 활기를 제공한다.


“우리 주인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빈 갑옷 속에도 존재할 수 있었으니까 이 술병 안에서도 존재할 수 있겠지요.” (p.169)


여행을 하고 아질울포의 억울함은 벗겨지고, 오해는 풀리고, 사랑은 이루어지고, 또다른 사랑이 잉태되는 와중에 정작 이야기의 주인공인 아질울포는 갑옷만을 남긴 채 사라진다. 어쩌면 아질울포의 갑옷은 우리가 믿고 따르는 많은 형이상학적인 준거틀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러한 준거틀이 아니라 그러한 준거틀의 근거 이유가 되는 인간이고, 그렇게 아질울포는 자신의 갑옷을 벗어던짐으로써, 존재한다고 말한다 하여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 그저 그 자체로 존재와 부재를 뛰어넘는 경지로 날아오를 수 있게 된 것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13.03.0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칼비노식 신선함의 결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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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비노의 글쓰기가 신선하면서도 결코 녹록치 않은 것임은 지난번에 그의 작품 을 읽으면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이 는 한층 성숙한 작가의 호흡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내가 다양한 작품들을 접해보지 못해서인지, 그의 글쓰는 방식은 상당히 낯설었다. 소설 속 화자로 등장하는 테오도라 수녀가 브라다만테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마지막 부분에서의 반전. 칼비노가 이 작품에서
"칼비노식 신선함의 결정판." 내용보기
칼비노의 글쓰기가 신선하면서도 결코 녹록치 않은 것임은 지난번에 그의 작품 <반쪼가리 자작="">을 읽으면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이 <존재하지 않는="" 기사="">는 한층 성숙한 작가의 호흡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내가 다양한 작품들을 접해보지 못해서인지, 그의 글쓰는 방식은 상당히 낯설었다. 소설 속 화자로 등장하는 테오도라 수녀가 브라다만테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마지막 부분에서의 반전. 칼비노가 이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존재하지 않는 기사'의 존재, 즉 오로지 갑옷 속에서만 존재하는 - 따라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소프로니아의 처녀성이 잠깐의 실수로 거짓으로 드러나자 곧 분해되어버리고 마는 -,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할 수 있는 주인공이란 생각하기 쉬운 듯하면서도 쉽지 않은 소재임에 틀림없다. 이전의 '반쪼가리 자작' 또한 생경한 주인공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칼비노의 상상력은 언제나 그렇듯이 재미있고 신기하다. 이래서 그의 소설을 '동화적'이라 말하는 건지.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아질울포의 하인으로 등장하는 구르둘루의 존재이다. 구르둘루 또한 주관과 객관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존재하지만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는, 주인과는 정반대의 사나이다. 칼비노는 이 두사람을 기본 인물로 설정하고 있는 듯하다. 그가 얘기하고자 하는 바는 람발도와 토리스몬드라는 두 젊은이를 통해 드러나고 있지 않을까. 완벽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불완전성으로 인해 인간 세계의 진실에 더 접근하고 있는 람발도라는 청년- 이 청년이 결국 브라다만테와의 사랑에 성공한다는 것은 상당히 희망적으로 보인다. 반면에 토리스몬드는 소프로니아와의 사랑에 성공하지만, 황제의 명령에 집착하고 옛날의 관습에 얽매여 오히려 난처한 상황에 직면하고 마는 것이다. 아질울포의 빈틈없는 백색의 갑옷이 여기저기 긁히고 망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럼으로써 람발도가 자신의 것임을 확신하게 되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반쪼가리 자작="">에서 메르난도 자작이 결국 합치게 되지만, 이상적인 세계는 도래하지 않았다는 작가의 목소리와 이어지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지금에서의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작가의 메시지들도 많지만, 그의 문장들에서 풍자와 해학의 골계미를 느껴보는 재미도 쏠쏠한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작품, 맘에 드는 구절은 입으로, 마음으로 되새겨보며, 또 손으로 옮겨적으며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칼비노의 또다른 작품인 <나무 위의="" 남작="">을 마저 읽어보고픈 충동을 느끼게 해준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람발도는 무사히 승리를 거두고 전쟁터에서 나왔다. 하지만 흠집 하나 없이 순백색이던 아질울포의 갑옷은 이제 흙투성이에, 적들의 피가 여기저기 묻어 있고 우그러지고 긁히고 칼에 베인 곳도 있었다. 투구에 달린 장식 깃털은 반쯤 빠져 달아났고 투구는 찌그러졌으며 한가운데 신비한 문장이 그려진 방패는 칠이 다 벗겨져 버렸다. 이제 젊은이는 이 갑옷이 자신, 로실리오네 디 람발도의 갑옷같이 생각되었다. 처음 이 갑옷을 입었을 때 느꼈던 거북함은 멀리 사라져버렸다. 이제 갑옷이 그의 몸에 꼭 맞았다.
b********g 2001.09.1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