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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날개에 괴물이 숨어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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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는 참으로 독특하고 이상한 세계다. 내가 경험하기로도 그러했지만, 지켜보는 것도 쉽지않은 시기다. 성격이 온순하고 조용한 편에 속하는 나역시 중학교 시절 내내 많은 격동의 시간을 보냈다. 신체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 가족관계에서의 불편함, 친구들안에서 더 친한 친구를 찾기 위한 몸부림, 학교성적에 대한 갈등과 공부 잘하는 친구에 대한 시기가 뒤엉켜 표출할 창구를 찾기위해 부단히도 애를 쓰던 시기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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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요즘 아이들이 대학을 가서 전공과목 선택을 하라 하면 엄마한테 물어볼께요 라는 답을 한다고 한다.자신의 전공과목을 스무살이 되어서도 선택하지 못하는 성인이 되어버린 아이들.예전에 우리세대를 일컬어 캥커루 부모세대라 칭했던 기억이 난다..이 책을 보며 부모로서 가져야 할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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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가슴이 막막했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이런 책을 읽고 누가 재미있게 잘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 부모가 과연 몇명이나 있을까? 책속의 문제점이 단지 책속에서만의 문제점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에 아니 심하면 심했지 들하지 않은 문제을 다루고 있기에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막막하고 한숨이 계속 나오고 지금 이렇게 서평을 쓰면서도 가슴이 답답함을 느끼며 쓰고 있다.
이 책은 한 교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좀더 정확하게 이야기 하면 괴롭힘을 당하는 영섭이라는 아이의 시선에서 쓴 이야기와 그 아이를 보호해줘야 할 의무가 있는 그 학급의 반장인 태준의 시선에서 쓴 이야기 그리고 그 반의 담임이 쓴 이야기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야기의 핵심은 영섭이라는 아이가 1년동안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그리고 담임은 반장인 태준에게 영섭이가 괴롭힘을 당하면 도와 주어라 만약 그것이 힘들면 담임에게 이야기를 하라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쉽지가 않다. 자꾸만 일이 꼬여가 태섭이 또한 영섭이 집에까지 가서 사과를 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과연 영섭이는 따돌림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태준이는 태준이대로 문제가 있다. 이 문제를 과연 잘 해결할 수 있을까?
이야기의 결과는 조금은 아니 무서웠다. 정말로 아이들이 이렇게 되는건가 싶어서 겁이 났다. 정말로 아이들은 괴물을 하나씩 키우고 있는 건 아닌지 겁이 났다. 혹 내 아이가 자신 안에 있는 괴물을 잘못 길들이면 어떻게 하나 그런 두려움이 더 커졌다.
사춘기를 맞이한 아이들이 한순간 자신안에 있는 괴물과 만나게 된다면 부모인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책속의 부모처럼 매로 다스리는 부모? 내 아이는 아니라고 잡아 때는 부모? 내 아이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 부모? 혹 내가 아이를 괴물로 키우는 장본인은 아닌지 그런 생각도 들게 하는 책이다.
하루의 반 이상을 학교에서 보내는 아이들이기에 학교는 어쩌면 제2의 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아이들은 학교에서 행복을 느낄 의무가 있다. 교실은 정글이 아닌 아름다운 정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서로를 죽이고 죽이는 정글이 아니라 서로 다과를 즐기며 행복한 이야기들만 주고받는 반이 되어야 괴물이 아닌 천사가 한쪽눈을 뜨는 아이들이 생겨날 것이다. 나 또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이 책처럼 괴물이 한쪽눈을 뜨는 것이 아니라 귀여운 천사가 한쪽 눈을 뜨기를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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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지 않는 졸업장을 받은지 얼마지나지 않아 기대반 설렘반이 마음으로 중학교에 들어섰다. 초등학교때와는 달리 두배로 커진 운동장이 제일먼저 눈에 들어오고 온통 여학생들만 있는 교실을 들어선 그 낯설음은 왠지 어딘가 혼자 버려진 느낌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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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한쪽 눈을 뜨다 은이정 지음 문학동네
이 책은 학교 폭력에 대해 정말 하나하나 세밀하게 쓴 책이다. 학교 폭력에서부터 야동, 그리고 자신 안에 숨어있는 괴물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뭔가 부족해서 아이들이 만만하게 보는 영성, 그리고 반장이지만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고 자신의 일만 하는 태준, 두명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제 3자, 담임의 눈으로도 이야기를 풀어낸다. 세 명의 눈으로 2학년 교실의 상황을 바라보면서, 상황을 더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괴물이라는 소재를 사용해 평범한 아이에게도 괴물이 숨겨져 있을 수 있다고, 안에 폭력성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해주는 이 소설은 살짝 와삭하기까지 하다. 마지막 부분에 명섭과 태준이 자신 안에 숨어 있는 폭력성을 분출해내는 장면이 나오면서 평범한 사람도 이렇게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다고 말해 주고 있다. 학교 폭력, 집단 따돌림에 대한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표현해 낸 것 같아서 좋았다. 내 안에 숨겨진 폭력성을 '괴물이 한쪽 눈을 뜨다'라고 표현한 점이 더 좋았다. 하지만 자꾸 야동이라는 주제가 나와서 불쾌했다. 하지만 야동도 중요한 주제라는 건 회피할 수 없는 것 같다. 조금 어려운 책이지만 사회비판적인 소설이어서 그러지 작가가 글을 되게 잘 쓴 듯하다. 2011.11.4. 이지우(중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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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첫 장을 넘기기까지 많이 망설여야했다. 성장소설이라고 하면 꿈을 향해 나아가는 밝은 면만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 책은 확연하게 '괴물'이라는 단어가 집단 폭행, 왕따 문제를 떠올리게 했다. 괴물의 두 눈만이 나의 시선을 잡아채는 중에 살며시 책 옷을 벗겨 보았다. 의외로 그리 무섭지 않은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난 태준이처럼 내 안의 괴물과 마주한 적은 없다. 그러나 극한의 한계 상황에 내몰렸을 때 날개를 살며시 펼치고 온 몸에 가시를 세우며 일어서는 이 녀석이 내 안에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누구나 가슴 속에 이 괴물을 키우고 있지 않을까. 성인이 되지 못한 미성년의 아이들만이 이 괴물을 마주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은이정의 '괴물, 한쪽 눈을 뜨다'를 읽기 저어했던 또 다른 이유는 집단 폭행으로인해 피해 받은 아이가 나의 가슴에 들어 앉아 나가지 않을까 겁이 나서였다. 예전에 어떤 영화를 본적이 있는데 화장실에서 아이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하는 무력한 한 아이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속에서 떨쳐지지 않아 집단폭행, 왕따라는 말을 떠올리면 꼭 그 장면이 생각나 나를 괴롭힌다. 이 책도 그 영화와 더불어 나를 짓누르는 것은 아닐까 겁이 났다. 이러니 어른이라고 해도 집단 폭행을 당하는 아이를 눈 앞에서 본다면 외면해 버리고 말겠다. 휴~
영섭이가 바라보는 세상은 '사바나에 사는 동물들'이 살아가는 세상과 다르지 않다.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정 진은 하이에나로 하태석은 악어로 보일 정도로 이 세계는 약육강식으로 살아가는 냉혹한 세상이다. 영섭이는 자신을 이 아이들보다 더 강한 동물로 변신시키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초식동물들 속에 숨으려고 급급할 뿐이다. 정신이 이상한 것 아닌가? 설마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 이 아이가 바라본 세상이 처음부터 이렇진 않았을 것이다. 무엇이 영섭이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유일하게 이 아이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학교에서는 담임 뿐 그러나 이 담임마저도 불완전한 인간이다. 집 안에서조차 부모가 영섭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단지 다른 아이들보다 뒤떨어지지 않게 책을 많이 읽게 하고 공부를 하게끔 다그칠 뿐이다. 영섭이에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이름 있는 기관이 필요한 것 아닐까. 이는 영섭이를 우리들에게서 떨어뜨려 놓아 마음의 안정을 얻으려 하는 이기적인 마음이지만 한 편으로 영섭이가 학교를 '사바나에 사는 동물들'로 표현하여 책의 첫 장을 넘기는 것이 수월했다면 나는 정말 너무 이기적인 걸까.
'괴물, 한쪽 눈을 뜨다'는 하나의 사건을 영섭, 태준, 담임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이들의 심리 상태를 자세하게 표현한다. 이 반에서는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가 영섭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 안도감을 주기도 하는데 집단이 계속해서 영섭이만을 괴롭혔을 경우, 그 때 벌어질 수 있는 사건이 공포심을 느끼게 할 수도 있는데 집단 폭행을 주도하는 아이들의 힘이 다른 아이들에게도 분산되어 이 상황에서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상황만은 막아주기 때문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너무 많이 봐 왔기 때문에 영섭이가 불 장난을 하고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의 책상 주위에 오줌을 누는 모습은 이미 영섭의 미래를 봐 버린 기분이 들었다. 큰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조마조마 할 정도였다. 이 때는 담임조차 나와 같은 상황을 떠올렸을 것이다.
사춘기 때는 과도하게 '성'에 대해 집착하게 되나 보다. 반장 태준이가 하얀 종이 위에 커다란 성기의 모습을 그리는 모습은 피식 웃음이 나게 하지만 사실 이런 일조차 이 아이를 바르게 이끌며 조언을 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돌려 말하듯이 자연스럽게 생각하라며 툭툭 말을 던지는 담임 외에 '성'에 대한 호기심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일러주는 사람이 없다. '변태', '너에게 실망했다'고 말하는 엄마의 태도가 우리들이 생각해왔던 이 사회의 정답이었을 것이다. 그건 부끄러워 해야 하는 거야, 너희는 공부만 하면 돼. 이런 말도 모든 것을 차단해 왔을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참 슬픈 현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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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이정 작가의 특유의 문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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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의 기억은 선명하지는 않아도 큰 사건이나 일화들은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 같다. 나의 어린시절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고등학교때보다는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들었던 중학교 시절이 가장 크게 떠오른다. 공부하는 교실 안에서 공부 이외에 교우관계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도 해보고, 사춘기를 맞이했던 그 시절은 하루하루가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고, 또 학교 생활은 긴장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나름대로 미래의 자신에 대해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했던 그런 시기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한참 지나버린 기억이지만, 어쩌면 이 책처럼 나도 그 시절 내 안에 <괴물>을 지니고 살지나 않았나 살짝 뒤돌아보게 되었다.
이 책은 일단 그 장르가 청소년 문학이지만, 제목도 표지 디자인도 참 독특한 구성의 책이 아닐수 없는, 호기심을 안고 구입하게 된 책이다. 책 표지 겉을 두른 띠지는 그 안쪽의 괴물을 감추듯 넓게 자리잡아 책제목을 담고 있는 참 독특한 구성으로 아마도 나와 같이 그 호기심에 이 책을 구입한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책 속에서는 괴물을 발견하고자 읽어내려간 책이 참 독특한 전개와 시점이 재미있어서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책은 참 독특하게도 중학교 2학년 3반 교실의 학생들과 담임, 학부모들이 등장하며 입체적으로 전개되는 구성이다. 한 학급에서 일어난 집단 괴롭힘의 사건을 학기초에 원하지 않게 반장이 되어버린 태준과 키는 크지만 따돌림을 당하는 영섭, 그리고 문제의 아이들을 맡게 된 국어 선생님인 담임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집단 따돌림을 당하게 된 영섭의 눈으로 바라본 교실은 정글이 아니라 약육강식의 초원이 펼쳐진 사바나였다. 초식동물인 영섭에게는 도망갈곳이 없이 머리부터 발끌까지 모두 드러내 놓고 늘 경계를 하며 살아가야 하는 초원. 물어뜯기지 않게 늘 자신을 움츠리며 살아가야 하는 영섭은 자폐 기질을 가진 아이로 몇몇 문제아들에 의해 물어뜯기는 존재로 부각되어버린다. 교실에서는 때로는 기린이기도 했다가 얼룩말이기도 했다가 카멜레온처럼 숨어있고 싶어하며 힘겹게 살아간다. 한편, 전형적인 모범생 태준은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반장으로 지목되어버린다. 그런 그에게 담임은 반장으로써 담임의 조력자로 영섭이를 비롯해서 반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려주기를 부탁한다. 공부를 잘하며 반에서 일어나는 일은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결국 방관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그의 안에는 다른 친구를 때려 눕히고 싶어하는 욕망과 성적 호기심의 유혹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자신이 있다. 그리고 또 한명의 시점이 되는 담임 역시, 문제의 아이들을 맡아 어떻게든 이끌어가보려고 노력하지만 선생님의 권위로 아이들을 몰고 가는 등 자신의 모습에서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세 사람의 입체적은 관점에서 처음에 시작된 집단 따돌림 문제에서 자신들의 안에서 발견하게 되는 괴물을 발견하게 되는데..... 책 속에서는 자신의 안에 있는 서슬 퍼런 괴물을 공격적인 가시두더지로 맛대응하기도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펴는 괴물로 하기로 한 소년, 두 아이들이 그 괴물을 마주하고 서로 대조되어 펼쳐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장면이나 아이들의 내면에 있는 문제가 터져서 다시 새살이 돋아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또한, 따돌림을 받는다고 피해자이기만 한걸까, 공부를 잘한다고, 혹은 반장을 한다고 모범생인걸까, 성적 호기심에 허우적거린다고 문제아로 볼 것인가, 문제를 일으킨다고 문제 자체만으로 추궁하고 책임을 물어야 하는걸까 등등 좀 더 그 안에 있는 개개인의 아이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더 복잡하고 더 섬세하다는 것을 책을 통해 생각해본 시간이 된 것 같다. 물론 그것들이 어른들의 눈에는 가시같고 괴물같을지라도 청소년기를 맞이한 아이들이 그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고 당당하게 괴물과 마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해준다. 청소년기에 있어서 있을 법한 성장과정이나 문제를 보는 시각이, 이 책을 읽는 청소년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분명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자기 자신에게 긴 메아리로 오래도록 생각해볼 수 있는 여운을 안겨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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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괴이하다. 어떻게 보면 사자 같고, 또 어떻게 보면 코끼리같은, 눈 말똥 뜨고 있는 모습이 두더지 같기도 한 이상한 모양의 괴물에게 엄청 많은 눈이 있다. 그것도 눈자위가 빨간 눈.
하지만 눈동자는 해맑아서 나이 먹은 괴물이 아니라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은 괴물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괴물이 눈을 떴다니 그 많은 눈 중에서 하나를 떠서 무엇을 보았을까? 이 책의 저자는 중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는 분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힘든 직업을 하나 꼽으라면 서슴없이 "중학교 선생님"이라고 말하겠다. 아직 철이 덜든 초등학생, 대입을 앞둔 고등학생 사이에 끼인 중학생들은 그들의 좌표를 잘 잡지 못하고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조각배처럼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고 무작정 내달린다. 사춘기와 겹쳐 그들은 가장 다루기 힘든 학생들이 되어버렸다. 겁없고 계획없는 중학생들의 삶을 한 번 들여다 보자. 이 책의 화자는 3명이다. "사바나에 사는 동물들"이란 책만 읽으며 친구들은 물론 선생님들까지 사바나의 동물들에 대입해서 생각하고 자신 역시 때때로 동물로 변신시키는 영섭이, 반장이면서 야동에 중독된 태준이, 영섭이와 태준이의 담임 선생님, 이렇게 3명이 번갈아 가면서 상황을 설명해 준다. 화자가 여러 명인 소설이 요즘 드물지 않은데 일단은 단조롭지 않아서 독자들에게 환영받는다. 하지만 때로는 상황 이해를 돕지 못하고 헷갈리게 만드는 복잡함을 주는 소설이 있는데 이 소설은 같은 상황이라도 3명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여지를 제공해주기 때문에 인물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영섭이의 특이한 점때문에 반 친구들은 영섭이를 괴롭힌다. 그런 친구를 영섭이는 육식동물로 칭하고 속으로는 분노하지만 겉으로는 표현하지 못하고 오히려 숨기 위해 노력한다. 육식 동물 친구들은 그런 영섭이를 징글징글하게 놀린다.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반장이 되었지만 반장 역할에 익숙하지 못한 태욱이는 영섭이를 도와주지 못하고 그런 상황을 외면한다. 담임 선생님 입장에서는 답답할 따름이다. 사건이 터질때마다 담임 선생님은 피해자와 가해자 부모들을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하며 속이 썪어가지만, 아이들은 그런 담임 선생님의 입장은 전혀 고려치 않는다. 그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중학교 시절이라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괴물들이 조금씩 커간다. 자신을 부정하는 가운데 힘을 얻는 괴물들이 자란다. 만나지 말아야 할 내 마음속의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아이들. 그러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요즘 교실에는 영섭이 같은 친구가 꼭 있기 마련이다. 어떠한 이유에선지 각기 다르지만 친구들에게 어김없이 놀림감이 되는 경우 말이다. 예전에는 그런 친구들을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려 했다면 지금은 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증오의 대상이 되고, 따돌림의 대상이 된다. 아이들의 가슴속에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의 삶. 바짝 말라버린 라면 찌꺼기 같은 삶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너무나 아름다워야 할 나이가 아닌가? 그들에게 공부라는 틀을 강요하지 말고, 스스로 자신의 틀을 만들어가도록 여유를 선사해야 한다. 더 이상 마음속에 숨어 있는 괴물에게 영양분을 주지 않도록, 그리하여 괴물들이 눈뜨지 않도록 다독여야 할 역할은 우리 어른들의 몫이라 다시 한 번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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