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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같이 잘 살면 좋으려만, 현실은 다르다. 그래서 저자는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미가 있느냐를 반문하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고집쟁이 농사꾼의 세상 사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지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나타내고 있다.
저자는 농업을 창조적일이라고 생각한다. “인간과 동물은 소비만 하고, 식물만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나무와 풀에 대한 그의 철학이다. 나무와 풀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배우고 사람 사는 도리를 깨닫기 떄문이라고 한다. 나무와 풀이 그의 스승인 셈이다. 그래서 그는 나무를 심는 것이다. 들과 산에 나무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그는 나무를 심지만 나무를 통해 우리의 마음을 가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농사를 짓는 분들은 말한다. 땅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고.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따라 우리의 모습이 달라지니까? 잘 살아왔다고 말하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지금의 모습이 아니라 조금 지난 후의 모습이다. 그러니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먼저 생각하고 행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선택에 대한 책임도 본인이 지게 된다.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결과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한다는 것을.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나의 삶은 어떤한지를 반성을 하게 된다.
저자는 '흙도 매주도 집이 나도록 이기고 찧어야 엉겨 떨어지지 않는 힘이 생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p70)' 라고 말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집이 나도록 이겨야 힘이 생겨나는 것이다. 우리는 엉겨 떨어지지 않는 힘도 생기기도 전에 우리는 먼저 지쳐서 떨어져 버린다. 집이 나도록 하지도 못한다. 그런 고통을 이겨내는 힘이 없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그런 힘을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이다. 깜깜한 밤이 되어야 새벽이 오는데도 우리는 환한 낯만을 그리워한다. 낯만 있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밤이 오는 것을 거부한다. 그래도 밤은 오는데.
우리는 살고 있는 땅은 산성인 땅도 있고 알칼리성 땅도 있다. '산성 땅에서는 명아주 잎이 붉게 되고 알칼리성 땅에서는 그 잎이 푸른색을 띠는데, 산성 땅에 재를 듬뿍 주면 붉은 명아주 잎이 파랗게 변합니다. 이처럼 땅이란 아주 다양합니다. 거기에 자갈과 돌, 바위까지 안고 있으며, 기후와 어울려 식물을 키워 내고 있습니다.(p102)' 저자가 말하듯이 땅 마다 특성이 다르다. 땅은 우리처럼 각자의 개성과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 특성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 인위적으로 사용한다면 그 땅은 좋아지지 않을 수 있다.
'일에는 세상에 알릴 일이 있고, 몇몇만 알 일이 있고, 가장 소중한 일은 단 둘만이 아는 거 아닙니까.'(p166) 세상에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일도 있고 세상에 알려야 하는 일도 있다. 어떤 일이 그런가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 달라질뿐이다. 우리의 인생이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일을 말할지 않을지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모든 삶에는 각자의 의미가 존재하듯이 자연도 각자에 따라 의미가 존재할 것이다.
고집스러운 농사꾼의 편지로 인해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씩 각도를 움직이지 않았을까?
(이 리뷰는 현암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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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 전우익 / 현암사]
제목 :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삶이란 그 무엇인가에 정성을 쏟는 일
“삶이란 그 무엇인가에 정성을 쏟는 일”
선생이 정성을 쏟았던 일들은 무엇인가. 선생은 민주화와 자연주의, 사람의 인성(사람중심)과 탈물질주의를 추구했다.
그 독한 권력이란 것이 국민에 기반을 두지 않았을 때 그 결과는 뻔합니다. - 116p.
선생은 독재의 위험성을 말하고 풀뿌리 민중의 승리를 기대했다. 유신시대가 끝났지만 사회는 여전히 예전과는 다른 듯 비슷한 권력구조 아래 놓여있었고, 선생은 그것을 비판했다. 자연의 변화에 비유하며 권력의 무상함, 올바른 권력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자연의 비유는 사람의 관계에서도 적용되며, 사람이 갖추고 살아야 하는 재물에 대해서도 적용되었다. 자연과 함께하는 사람은 늘 풍요롭고 지혜롭다.
권력이나 돈을 가지면 사람이 형편없게 되는 도리를 알 듯도 해요. 물건과 인간. 물건 없이 인간은 살지 못하지만 물건이 인간을 더 인간답게 해야지, 물건이 인간을 망치는 쪽으로 흐르는 겁니다. 그러니 물건을 많이 가져야 인간 구실을 하게 되는 거죠. ~ 물건을 인간성 형성에 도움이 되도록 쓰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 157p.
인색해서는 안 되지만 절약은 해야죠. 물건을 아낀다는 건 대상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자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며 고마움의 표시라고 여겨요. 낭비는 대상을 함부로 다루는 성실하지 못한 마음가짐과 태도라고 생각됩니다. - 161p.
인간이 제 욕심에 이것저것 억지로 하다 보니 작은 일도 크게 부풀리고, 쉬운 일도 어렵게 만든다. 자연 앞에 그런 행동들은 다 부질 없는 짓이다.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것, 인간만이 그것에 역행하고 있다. 선생은 다른 일보다도 농업, 그 중에서도 싹을 틔우는 일이 숭고한 일이라고 평한다. 노력만큼, 순리에 따라 이루어지는 게 농사라는 얘기다.
아무리 어렵고 복잡한 일도 그 원리는 단순한 것 아닙니까? 괜히 사람들이 복잡하게 만들어 혼란과 법석을 떨어 줄꾼질 안 하려 들고, 장부채 잡으면 끝까지 놓지 않겠다고 소란을 피우는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 106p.
쉬운 말, 소탈하고 정직한 글이 더 큰 울림을 준다. 25년이 지난 지금도 선생은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과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무엇에 정성을 쏟으며 살 것인가. 사회가 복잡할수록, 주변에 물건이 넘쳐날수록 선생의 철학은 여전히 유효하다. 오히려 더 강조되어야 할 부분이다. 나는 그 무엇에 정성을 쏟고 있는가, 스스로 물어본다. 그것이 곧 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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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책은 읽을 할 적절한 시기라는 것이 있는 것 같다. 입센의 [인형의 집]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혹은 중고교시절 이 책을 읽었더라면, 노라의 입장을 잘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혼한 지금 나는 노라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것 같다. 두 번 세 번 읽을 때마다 서로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작품들도 많다. 아마도 각각 읽는 시기에 맞춰 내가 아는 것이 많아졌거나 혹은 느낌 같은 것이 달려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감정이 메말라졌을지도 모른다. 10대에 읽었던 책을 30대에 읽으면 전혀 새로운 책을 읽게 되는 느낌이 든다. 책이란 이토록 읽는 상황에 따라 달리 읽혀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라는 책은 1993년에 출판된 걸 알았다. 언제고 꼭 한 번 읽어보겠다고 읽을 책 목록에 새겨두었는데 어느새 세월이 지나가 그동안 재출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읽어보지 못했다. 그러다 이번에 드디어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농부가 썼다는 책이라고, 제목이 가벼워서, 농사짓는 농부가 농사지으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다룬 이야기인줄 알았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이 사는 이야기, 세태가 돌아가는 이야기를 쓴 책이었다. 내가 이 책을 1993년에 접했더라면 ‘아~ 그냥 정치얘기이구나, 이념에 대한 얘기구나’하고 지루해하며 넘어갔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25년이 흐른 지금 이 책에서 나는 25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하나도 변하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음을 깨달았다. 얇디얇은 책 두께를 보고는 금방 다 읽을 줄 알았는데 웬걸, 행간에 남겨진 의미를 곱씹어보고 되새기다보니 주어진 시간보다 훨씬 오래 읽고 있었다.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아 애먹었다. 읽는 동안 제일 많이 느낀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위정자들은 변함이 없고 변한 것이 있다면 보통의 사람들이 그때보다 더 살기가 팍팍해졌다는 점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것을 깊이 깨달은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1990년 8월 현기 스님께 보낸 글에서 찾았다. ‘두려움에도 한계점이 있다고 건축하는 분한테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중략) 까마득히 높은 사람들, 그 무슨 자리나 앉아 있는 사람들, 자기가 하는 일이 바른지 삐뚠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두려움마저 없으니,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P118’ 정말 하나도 변한 게 없다. 무서울 지경이다. 25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렇다. 그때의 민주주의를 부르짖던 사람들은 아무도 높은 사람이 되지 못한 걸까? 아아~ 정말 이대로 25년 후에도 이 책을 읽으면서 50년이 지났는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한탄할까봐 두렵다.
하지만 희망의 불씨는 남아있었다. 우리는 지난겨울,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끌어내렸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국정농단의 폐해를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희망을 보았다. 전우익 선생이 바라는 세상이 오기까지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 보이지만 그래도 혼자만 잘 살지 않기 위해 다 같이 잘 살아 재미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조금씩 노력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이 책을 지금 만나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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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랑물은 바다로 흘러야 한다 박용범 독서작가(2022)
일 중에 창조적인 것은 농업밖에 없다. 상업은 있는 물건 팔고 사는 거니까 말할 것도 없지만, 공업도 있는 것을 가지고 모양과 용도만 바꾸는 거지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농사는 아무것도 없는대서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덜 먹고, 덜 입고, 덜 갖고, 덜 놀고, 이러면 사는 게 훨씬 더 단순화될 거다. 풍요가 덮어놓고 좋은 것만 같지는 않다. 말 그대로 풍요 속의 빈곤인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부들을 고를 때 처음에는 많이 버렸어요. 그러나 이젠 거의 다 씁니다. 제일 나은 것은 앞에 대고 다음 것으로 뒤에 받치고 짧고 못생긴 건 속에 넣지요. 부족한 것을 감싸 안는 아량 같기도 한데, '짧다', '길다'하는 건 사람이 하는 말이고 길고 짧은 것이 알맞게 모여 식물은 이루어져 있지요. 집집마다 자리를 두고 매년 때는 앞쪽만 부들 대고 뒤와 속은 짚을 썼답니다. 뿌리는 근본인데 사람이 바뀌자면 역시 근본이 바꾸지 않고서는 새로운 사람이 탄생할 수 없고, 새로운 사람들이 집단적인 탄생 없이는 세상은 바뀌지 못할 것 같습니다. 우선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해 자신부터 근본적으로 바뀌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이지요. 제도나 이데올로기가 사람을 바꾸는 게 아니라 사람이 바뀐 토대 위에서 제도가 새로워지는 것이 진짜 발전이지요. 지금 우리 농촌은 완전히 피폐해져서 공동체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지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논과 밭으로, 곧 곡식이 자라고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방에 앉아서는 못 짓습니다. 가서 땅과 곡식과 비벼 대면서 그들의 생리를 알고 그 생리에 알맞게 거들어 줍니다. 억지로 끌고 가면 농사는 잡치게 되지요. 사람 또한 자연의 일부입니다. 도랑을 쳐서 물을 제대로 흐르게 하는 일이 마치 세상이 제대로 흐르고 인간사가 제대로 이루어지는 일과 비겨지는 데가 있는 듯합니다. 도랑물이 바다에 이르자면 많은 우여곡절이 있듯, 세상과 인간도 완성을 위해서는 숱한 고비를 넘어야겠지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끊임없이 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의 막힘과 함께 마음속의 막힘과 찌꺼기도 부단히 쳐내야 할 겁니다. 흐르지 못하고 고여 있는 물을 보면 답답합니다. 흐르는 물 막는 건 마치 역사의 흐름을 막는 일과 흡사한 것 같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이 곧 우리들의 심신의 일부분을 여기저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나누어 묻는 과정이란 생각이 듭니다. 무심한 한 마디 말에서부터 피땀어린 인생의 한 토막에 이르기까지 혹은 친구들의 마음속에서, 혹은 한 뙈기의 논밭 속에서, 혹은 타락한 도시의 골목에 혹은 역사의 너른 광장에...... 저마다 묻으며 살아가는 것이라 느껴집니다. 묻는다는 것이 파종임을 확신치 못하고, 나눈다는 것이 팽창임을 깨닫지 못하는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나의 소시민적 잔재가 치통보다 더 통렬한 아픔이 되어 나를 찌릅니다."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풀을 뽑는 일이기도 합니다. 곡식은 뿌려야 나지만 풀은 옛날부터 지난해까지 떨어진 풀씨가 수없이 돋아납니다. 부정적인 역사의 유물과 유습들이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듯 잡초는 수없이 돋아납니다. 그걸 뽑아 주지 않는다면 곡식이 오그라지고 시들어 녹아 버립니다. 사람들은 왜 잡초를 먹으려고 하지 않을까요? 조금은 거칠어도 충분히 먹을만한데 말이죠, 선입견에 사로잡힌 식습관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밀을 주식으로 하고 동양 사람들은 쌀을 주식으로 삼아 오천 년 이상의 세월을 잘 살아왔습니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전우익 저)》에서 일부분 발췌하여 필사하면서 초서 독서법으로 공부한 내용에 개인적 의견을 덧붙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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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자 없이 119를
타고 병원에 오면서
아. 정말 내가
신랑마저 없었다면 혼자서
어떻게 살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
잘난 맛에 투닥거리며
싸울 필요가 무엇인가
의지하고 살 수
있는건 부부 우리
둘 뿐인데.. 괜히
서러워 눈물이 터진다.
민주화 운동이 활발했던 시절을 살아보지 못해서 그 느낌을 생생하게 기억하지도 표현할 수도 없지만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를 읽으면서 가장 처음 와닿았던 이야기는
혼자만 잘 살믄 별 재미 없니더. 뭐든 여럿이 노나 갖고 모자란 곳을 두루 살피면서 채워 주는 것, 그게 재미난 삶 아니껴
그는 다섯 살 밖에 나지 않은 손녀딸 언년이한테서도 많은 것을 배운다고 거침없이 말한다. 어떤때는 그 어린 것이 세상을 더 바르게 알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있다.
"모두들
가르칠라꼬만
들지
배울라곤
안
해요.
나무한테도
그렇고
짐승들한테도
그렇고
아이들한테도
그렇고
배울
게
얼마나
많은데요,
전
자레를
맨
지
10년이
되는데,
참
많은
것을
배워요"
사람은 노동을 통해서 사람이 된다고 하는데, 고역은 사람을 삐뚤어지고 잔인하게 만들어 왔다고 생각해요. 노동의 고역에 오랫동안 시달려 온 사람들은 일 자체를 부정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식들에게 일을 시키지 않겠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자식들은 사무원, 공무원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일을 변화시켜 노동의 고역(비지땀 흘리며 하는 일)에서 벗어나게 하자는 게 아니고 나와 내 자식만은 일을 시키지 않겠다는 것은 극히 이기주의적인 발상입니다. 일을 변화시키는 일이 생활을 변화시키고 삶의 방식과 태도를 변화시켜 결국은 자신과 세상도 변화시키는 기초가 될 수 있지 않느냐 하고 생각해 봅니다. 세상을 그대로 두고 사무직 아니라 사십무직을 한들 그게 그리 신통하지 못할 것은 시골에서 서울로 간 사람들이 별로 큰 수 내지 못한 것에서 봅니다. 노동이 제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곧 사회적 실천이고 새 세상 만들기 운동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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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늘 감동인 책이다. 이책이 아마도 아주 오래전 MBC TV 프로그램인 '책책책을 읽읍시다'에 소개된 적이 있었을 거다. 이 책이 TV에 소개되었을 당시에 이걸 읽었던 건 아니었다. 십년도 더된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마도 홍대나 신림 중고서점에서 이책을 만나 처음 읽지 않았나 싶다. 당시 한참 '자연'에 빠져 있었을 때였다. 그때 이책을 읽고 '귀농' 진지하게 고민을 했더랬다. 20대 때라 가능했던 '꿈'이었던 듯.
이책을 워낙 좋아해서 지인을 만나면 내가 가진 이책을 선물해주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또 중고서점에서 이책을 사고. 또 친구를 만나면 이책을 주고. 그렇게 난 이책을 아마도 다섯권도 넘게 샀지 싶다. 그러다 얼마전 <혼자만 잘 사믄 무슨 재민겨> 출간 25주년 기념판이 나왔다기에 다시 한번 꺼내서 읽어볼까 하며 우리집 책장을 뒤졌더니 이전판이 안보이는 거다.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고 새로 사길 까먹은 것이리라. 그렇게 해서 우리집으로 오게된 출간 25주년 기념판!
몇번을 읽었는지도 모르지만, 읽을 때마다 늘 새로운 감동을 주는 책이다. 서문에 시인 신경림 선생님이 쓰신 '전우익' 선생에 관한 이야기만으로 '전우익' 선생의 철학을 느낄 수 있다. 예전엔 이책으로 자연과 사람에 대한 사색을 많이 했다면 이번에 읽었을 땐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많이 하게 됐네. 전우익 선생이야말로 한국식 미니멀리즘의 대부 쯤이 아닐까 싶다. 물론 '무소유'를 쓰신 법정 스님도 계시지만 말이다. 이책을 읽고 짐을 줄여야지, 물건을 줄여야지 라는 반성을 하게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역시나 좋은 책은 읽을 때마다 다른 깨달음을 주는가보다.
- 삶이란 그 무엇인가에, 그 누구엔가에 정성을 쏟는 일 p37
이 구절이 이토록 가슴 한켠 뭉클하게 할 줄도 몰랐네. 결혼 전엔 그 무엇인가, 그 누군가가... 내가 하는 일, 그리고 '나 자신'이었다면 이제는 그 대상도 달라지고, 그 행위도 달라졌다. 이제 내 삶에서 '딸'이 거의 전부를 차지한다해도 지나치지 않은듯. 한편으로는 어쨌거나 지금 내 '삶'을 잘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한편으로는 이게 진짜 내 '삶'인가 싶기도 하고... 머리속이 조금 복잡해지더라. 일단은 아직까진 이 삶이 꽤나 흥미진진함으로!!!!!!! 아이 어린이집에 보내면 내 '삶'에 대해 좀더 진지하게 고민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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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진리를 깨우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일찍이 진리를 깨닫고 그 길을 추구하며 참된 삶을 살아가지만 누군가는 죽을때까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헛되이, 어리석게 삶을 살다간다. 그 진리라는 것이 꼭 정답이 존재하는 어떤 무언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진리가 이 세상이 요구하는 진정한 진리라고 단언할 순 없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리고 추구하는 참된 진리란 "자연과 가까워지는 삶"을 사는 것이다.
지금 세상은 자연과 가까워지는 삶은 꿈도 꿀 수 없고 오히려 자연을 파괴하지 못해 안달이 나있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모두 이 아름답고 신비로운 지구에 잠깐 신세를 지다 떠나는 손님일뿐인데 인간들은 그 잠깐동안을 지구를 보호하고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파괴하고 죽이고 삼키는 일로 채우고 있다. 게다가 다른 생물들의 삶과 개성을 왜곡하고 무시하는 방식으로 가두고, 훼손하고, 학대하고, 죽이고 소비하며 인간과 마찬가지로 지각이 있는 생물들의 인생과 자유까지도 파괴하고 있다. 이런 인간들이 지배하고 있는 지금의 세상이 추구하는 진리와 덕목은 아마도 돈과 명예, 그리고 외모일것이다. 최근에 믿을 수 없는 아주 씁쓸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요즘 유치원생들은 외모가 잘생기고 예쁜 아이들과 못생긴 아이들로 그룹을 지어서 따로 어울린다고 한다. 게다가 마중 나온 부모의 옷차림이 화려하지 못하면 왕따를 당한다고도 한다. 그렇게 입고 올거면 아예 마중 나오지마라며 그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어린 자녀에게 꾸지람을 듣고는 크게 상처를 받는 부모들이 있다고 한다. 사실 나는 이것을 믿을 수 없고 믿고 싶지도 않다. 중고등학생들이 터무니없이 비싼 패딩을 입지 못하면 왕따를 당한다는 말은 익히 들어왔지만 유치원생들 사이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로 믿기 힘들다. 너무나도 씁쓸하다. 돈, 명예, 외모. 이것들은 사람을 살게도 하고 죽게도 만드는 정말 무시무시한 것들이다. 5년 전만해도 아니 당장 1년 전과 비교해봐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세상은 너무나도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다가올 미래의 세상은 도대체 어떻게 소름끼치게 달라져 있을지 벌써부터 두려워진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의 저자 전우익 선생님이 지금의 세상을 지켜보고 계시다면 어떤 말씀을 하실지 모르겠다. 선생님이 사셨던 그때의 세상도 참으로 삭막하고 각박하고 어리석기 그지 없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도 더 삭막하고 각박해졌으며 어리석은 민중들로 가득하다. 돈과 명예만이 추구되는 이 세상에서 역사와 정치는 당연히 소외당하고 있다. 한국사 공부할 시간에 수학 영어를 공부해라, 이 말은 대한민국의 부모는 물론 선생님들도 입에 버릇처럼 달고 있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는 심각할 정도다. 정치에 대한 관심은 말할 것도 없다. 촛불집회로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 낸 민주주의의 저력을 목격하기도 했지만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나온 사람들 사이에는 단순히 분위기에 휩쓸려 나온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민중들의 목소리와 적극적인 참여를 희망하셨던 선생님께서도 이번 대통령 탄핵 사건과 관련해서 굉장히 기쁘고 뿌듯하셨겠지만 한편으로는 아직도 뿌리 뽑히지 않은 부정과, 민중들의 역사와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에는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계실 듯하다.
처음엔 이 책이 한 사람의 농사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펴보니 모두 전우익 선생님의 편지글로 구성되어 있었다. 단순한 농사꾼의 편지라고 하기엔 글에서 범접할 수 없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따뜻하고 투박하게 농사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 나가다가도 냉정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세태를 비판하고 있다. 농사이야기가 '주'가 아니라 시대비판의 내용이 선생님의 주된 목적이 아니었을까 싶다. 단순한 농사이야기의 편지글이었다면 출판사에서 책으로 엮어볼 생각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농사이야기 속에 크고 강렬한 울림을 주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에 책으로 만들어 더 많은 사람들이 읽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출판 후 큰 사랑을 받아왔다고 한다.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 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 우리는 전우익 선생님과 같은 사람을 꿈꾸고 원하면서도 스스로 그 길에 들어서려고 하지는 않는다. 자연과 더불어 살고, 허례허식을 좇지 않고, 버릴줄 아는 그런 삶을 살기를 바라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우리는 1등을 해야하고, 이겨야하고, 성공을 해야하고, 사랑을 받아야하고, 존경을 받아야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며 참된 진리에는 무지한 채, 등을 돌린 채 살아간다. 사실 현 시대의 사람들에게 이 책이 강렬한 울림을 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세상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돈과 명예, 외모만을 추구하며 자아에 대한 탐구보다는 남의 시선을 신경쓰며 사는 삶일 것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이러한 책들은 더욱 많이 나와야하며, 더욱 많이 읽혀야 한다. 우리나라의 교육이 잘못된 길을 제시하고 있다면 책에서라도, 미디어에서라도 참된 진리와 길을 끊임없이 비추어 주어야 할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결혼식 축의금보다는 책을 선물하셨다고 한다. 본인께서 농사지은 농작물도 주변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주셨다고 한다. 이 세상이 꼭 필요로 하는 사람. 선생님과 같은 사람들이 많아져서 더이상 '필요하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상을 꿈꾸고 희망한다. 포기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가져본다.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하고 싶다면 먼저 이 책을 선물할 것이다. 읽는 사람들의 머리와 마음에 선생님의 생각이 심어지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이 책을 선물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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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동안 노란 산수유밭과 돌아가신 아버지가 유난히 그리웠다. 경상북도 봉화군 상운면 구천리. 작가가 살던 곳이다. 내 고향의 옆옆 동네쯤 되는 그곳에서 내 나이 초등학교 6학년 쯤이었을 시기에 이 책에 실린 편지와 글을 썼을 작가가 낯설지 않았다. 출판사 소개글에 나온 사진처럼 날씬하였을, 고집스러운 농사꾼이었을, 그 모습이 나의 아버지와도 참 많이 닮았다. 사회안전법에 연루되어 65세까지 부자유하게 살았다는데, 글은 참 자유롭다. 사람은 역시 그 마음이 자유로워야 참 자유한 것이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나무, 풀, 꽃, 열매, 작은 씨앗 하나, 흙, 농사일... 하나 하나에서 삶을 배운다.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생각한다. 1960년의 4.19혁명과 1987년 6월항쟁, 이한열 열사를 생각하는 글귀들도 여러군데다. 그 옛날엔 이해하지 못했던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손수 흙벽돌로 집을 짓고, 산에서 나무를 해다가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던 시절이었다. 종이 한 장, 물 한 방울 아끼기를 무섭게시리 얘기하셨던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그때는 그것이 원망거리였는데 이제사 와 보니 그것이 배울거리인 것을!! 소에 쟁기 매어 밭가시던 풍경, 아름드리 수유나무 아래서 마른 낙엽 무더기로 불 피워주시던 모습, 사랑방 윗목에 델롱데롱 매달려 있던 메주 뜨는 냄새, 추운 겨울 이가 닳도록 수유를 까던 밤이 이렇게 그리워지는 건 내가 나이 듦인가 보다. 할 수만 있다면 자연 더 가까이로 가고싶은데 정작 도시에서 풍요로움에 익숙했던 내 몸덩어리가 그것을 받아드려내줄지 문득 걱정스럽다. '우리의 나태와 소비 지향의 삶을 너무나 뜨끔하게 꼬집고 있어서 두껍지 않은 책 한 권을 읽는 동안 스스로 몇 번씩이나 반성문을 써야합니다.'라는 안도현 시인의 한줄평처럼 정말 그런 책이었다. "저는 요즘 이런 생각을 했어요. 삶이란 그 무엇(일)엔가 그 누구(사람)엔가에 정성을 쏟는 일이라고.(p.37)" "방안에는 메주 뜨는 특유의 냄새가 제법 납니다. 삶은 콩도 뭉쳐지니까 싹 죽지않고 그 무슨 조화와 음로를 꾸미나 봅니다.(p.53) 자연과 어울려 자연스럽게 살아가겠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연을 원수처럼 정복의 대상으로 여겨 자연의 리듬에 거슬리게 사는 게 잘사는 것인 양 우쭐대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연의 리듬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역사의 흐름도 막으려 들고 민심도 깔아뭉개려 들어요.(p.68)" "한열이가 살아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묻히지 못한다면 그게 진짜 죽은 것이 되는 게 아닐까요? 한열이가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죽었지만, 그를 진짜로 살리고 죽이는 것은 백성들이 그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달려 있는 게 아닐까요? 가슴에 안느냐 구경거리로 삼느냐, 거기에 달려 있어요. 죽음까지도 구경거리로 삼는 민족은 수많은 시체더미에 짓눌려 멸망해서, 시체를 구경거리로 삼기를 거부하는 민족들의 구경거리가 될 게 뻔합니다.(p.79)" #혼자만잘살믄무슨재민겨 #출판25주년기념판 #전우익 #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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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농사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저자 전우익(1925~2004)은 1925년 경북 봉화에서 태어나 광복 후 민청에서 청년 운동을 하다가 사회안전법에 연루되어 65세까지 부자유하게 살았다고 저자 소개에 첫 문장에 나온다 이 글은 1989년과 1990년에 편지 형식으로 쓴 글을 묶어놓았다 그는 자신의 부자유한 삶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생각과 사상을 글로써 마음껏 펼쳤다 이 편지가 정말로 각각 스님을 향한 글인지 아니면 세상을 향한 글인지의 진위 여부는 잘 모르겠지만 그의 탁월한 통찰력이 고스란히 묻어 나는 글이다 이 책이 1993년에 출판되어서 내년이면 25주년이 지났지만 지금 읽어도 전혀 불편함이 없는 이상한 기운이 든다 과연 수 많은 기술의 진보와 혁신이 있었지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농민, 노동자의 삶은 달라지지 않은 듯 하기만 하다 이 책은 160p정도의 짧은 글이고 편지 형식으로 읽기가 아주 수월하다 그가 자연과 함께 농사를 짓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군데 군데 숨어 있는 문장들이 날카롭기만 하다 이 책에서는 신용복과 루쉰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또한 저자의 생각이 거침없이 나온다 ‘국민은 다 빚쟁이고 노동자의 46% 빚쟁이’라는 문구를 통해서 저자가 바라보고 생각하고 있는 농민과 노동자에 대한 인식을 엿 볼 수 있다 또 외국산 농산물에 반대해서 농성을 하는 농민들을 탄압하는 정부와 군대, 경찰을 향해서 오히려 농사 지키겠다는 농민들을 잡아 가둔다고 표현을 한다 중간에 나오는 이한열 열사(1987년 6월 시위 참여 중 전경이 쏜 최루탄을 맞고 사망하여 6월 항쟁과 6•29 선언의 도화선이 된 인물)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면서 ‘나무에 농약을 뿌리는 농부가 있고, 사람들에게 최루탄을 쏘아대는 경찰이 있으니 도농병진(都農竝進)이 척척 맞아 떨어지는 셈입니다’라는 문구로 당시의 시대를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루쉰의 <광인일기><아Q정전>, 신용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저자의 생각과 이념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기에 몇 번이나 반복적으로 인용되고 언급된다 그리고 자신은 가진게 아무것도 없지만 ‘의료보험료’를 내라고 독촉하는 모습을 통해서 나라의 주권은 누구에게 있고 또한 자신이 나라의 주인인가 반문 해보기도 한다 그는 요즘에 자주 인용되고 사용되는 ‘개인주의’라는 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면서 그에 대한 생각을 적기도 한다 그의 오래된 책이 다시 출판되어서 너무나 기쁜 나머지 다시 읽어 보았다 어린 시절 읽었을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들이 세월이 흐르고 중년의 삶을 살게 되니 보이게 되는 부분이 있다 훗날 장년, 노년에 다시 읽으면 더 많은 부분을 깨달을 수 있을 것 같다 두고두고 읽기에 아주 좋은 책인 듯 하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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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속의 약초처럼 귀한' 그, 전우익은 얼굴 가득하게 깊이 주름진 시간의 발자취를 간직하고 있었다. 높은 가을 하늘을 유영하는 구름처럼 하얗게 센 머리는 그의 소박한 성품을 보여준다. 가닥가닥 세어버린 눈썹은 왜소해보이나 강직한 그의 모습을 잘 나타낸다. 이런 그의 모습은 책 중간에 틈틈이 등장하는데, 편지글과 어우러져 직접 독자에게 말을 건네는 듯한 느낌이 든다. 받는 이는 내가 아닌, '스님'인데 말이다. 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의 얼굴의 주름처럼 생각을 깊이, 그리고 많이 하는 사람임이 느껴진다. 철학가의 느낌마저 드는 것 같다. 역시나, 그는 참 많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다. 속세를 등지고 강호에서 삶을 이어가며 덜 먹고 덜 입는 그지만, 결국 속세에 대한 끝없는 상념은 어쩔 수 없나보다. 그가 한 말처럼.
그는 자연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속세의 깨달음으로 발현한다. 판에 모를 길러 던져 심는 '투묘'를 통해서 그는 노동이 놀이가 되었다고 했다. 심는 고역에서 해방되고, 수확량도 손이나 기계로 심는 것보다 낫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사회에서의 '노동'에 대해 논한다.
무려 1990년대 초에 쓰여진 것이다. 한국이 산업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노동'이 아닌, '고역'을 하게 되었고, 이에 대한 그들의 감정과 경험, 사회로부터의 대우는 2017년, 약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의 노동자가 육체의 노동으로 한정된 것과 달리, 현재의 노동자는 사무 노동자, 육체 노동자 등으로 분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니, 오히려 노동자의 분화는 '육체 노동'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더욱 짙어지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나와 내 자식만은 일을 시키지 않겠다"는 것은 "극히 이기주의적인 발상"이라고 했다. 생활의 변화와 일의 변화의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것이다. 일을 변화시키는 일이 생활을 변화시키고, 삶의 방식과 태도를 변화사켜야 결국 나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기초가 될 수 있다 하였다. 이러한 생각은 글 곳곳에서 불쑥불쑥 그 몸집을 드러낸다. 그의 흰 눈썹 몇 가닥처럼.
이 글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특히 '취업'에 대한 생각을. 기업은 인재를 찾는 과정에 있어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만을 고르려 한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천편일률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얼마나 다양하고 독특한 사고가 이루어질까? 기업은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본질적인 이유부터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취준생들은 어떠한가. 기업의 구미를 당기게 하기 위해 진정한 '나'는 어느새 저 뒷편으로 제쳐둔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그럼에도 나 역시 '맛있는' 나를 기업에게 들이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만, 나를 향한 그 애정을 온전히 그들 앞에 내보여서는 안된다. 얼마나 슬프고 모순적인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원하는 곳을 찾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낭중지추'라 하였다. 과거에는, 아니 학창시절까지는 이것이 '특출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순간 '낭중지추'는 '특이한', '별난' 것과 같은 '부정'적인 존재가 되어버린다. 집단 속에서 튀는 것은 그 집단의 누구도 곱게 보지 않는다. 시기와 질투가 끈끈하게 얽혀든다. 사회에서 원만히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장점을 죽여야 하는 이 사회는 어디서부터 비틀린 것일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