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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8년에 발간된 안데르센의 동화집에 수록된 작품으로 원제는 <야생의 백조들 De vilde svaner>라고 한다.
초등학생 시절 한 번씩은 읽어 봤음 직한 백조 왕자... 솔직히 난 그때도 지금도 왜 책 제목을 백조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분명 주인공은 공주인' 엘리사 '인데 말이다.
혹시나 내용을 모르시는 분이 있을까 하여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옛날 옛적에 어느 아름다운 나라에 11명의 왕자와 엘리사라는 공주가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다 왕이 새 왕비를 맞게 되었는데 ( 왜 항상 동화책 왕자님 공주님 이야기에는 항상 나쁜 새엄마.. 왕비가 등장할까?) 왕비의 계략으로 공주는 시골 농장으로 쫓겨나고, 11명의 왕자들은 저주에 걸려 백조가 되어 쫓겨나게 된다. 시간은 흘러 아름다운 공주로 성장한 엘리사가 왕자들을 찾아 헤매다가 백조가 된 왕자들을 만나게 되고, 그 왕자들의 저주를 풀기 위해 쐐기풀로 11벌의 옷을 만들다가 ( 스토리의 긴장감을 위해 등장하는 장치- 옷을 만드는 동안에는 말도 할 수가 없고, 쐐기풀도 반드시 교회의 무덤에서 자라는 것이어야만 한다는 것...) 한 왕궁의 왕에게 발견되고, 그 왕자가 엘리사를 사랑하여 결혼까지 했으나 대주교의 마녀 몰이에 결국 처형에 처할 위기에 놓이게 되고, 처형 당하는 순간까지도 오빠들을 위해 쐐기풀로 옷을 만들어 처형 직전에 오빠들이 다시 왕자로 변하여 (11번째 옷은 급하게 만드느라 소매가 덜 만들어져서 마지막 장면에 보면 사람이긴 하나 한쪽 팔은 깃털로 되어 있다. ) 그간의 있었던 오해들이 풀리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다.
분명 이 동화를 만든 안데르센은 아이들에게 어떤 어려 움속에서도 오빠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오빠들을 지켜 내고자 했던 엘리사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 나가고, 삶또한 순간 순간 어렵겠지만 참고 이기다 보면 헤쳐 나갈수 있다라는 메세지를 전하고 싶었던듯 하다.
하지만, 이미 세상을 겪은 나로선 엘리사가 너무 답답하고 무지해 보였다. 말을 할수 없다 뿐이지 글로 써서 자신의 상황을 알렸을수도 있었고, 왕자와 결혼까지 했으면 왕자에게라도 어떤 방법으든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 시키려고 노력했어야 했다. 만약 이 스토리가 해피 엔딩이 아닌 결국 옷을 완성은 했지만 사형을 당했더라면, 죽고 난뒤에 왕이 그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왕은 평생을 자신의 왕비를 스스로 죽여 버린 죄책감으로 살았을수도 있다. 또, 왕도 엘리사를 외모만 보고 사랑한건지..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제대로 상황을 알아 보려 하지 않고 대주교의 말만 믿고,사형에 처하도록 한건지..진정 사랑했다면 엘리사를 믿고 끝까지 기다려 줄순 없었는지? 또 11명의 왕자들도..동생이 쇄기풀로 자신의 옷을 만들고 있다는걸 알았다면 사람이 될수 있었던 낮 시간동안엔 동생을 위해서 뭐든 했어야 했지 않나 싶다. 그리고, 젤 아쉬운건....왜 나쁜 새엄마 왕비나 무심하기 그지 없던 왕을 벌하는 내용이 왜 없냐고....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음에도 어제 책을 읽는 내내 세삼 화가 나고 맘이 불편해지는건지 곰곰히 생각 해보니... 어쩌면 내 맘속엔 이미 순순함보다는 세상이 계산되어 지고, 참고 견디는게 다가 아닌 세상을 경험 해 버려서인지도 모르겠다.동화책이지만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나쁜 새엄마는 존재하고, 아동 폭력과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부모가 존재 한다는것....또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휘둘러 사람들 눈을 가리게 하고 판단력을 흐리게끔 조작 할수 있다는거..
언론 플레이가 그때도 존재 했다는거...세상은.....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http://blog.naver.com/rns2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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