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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다 마사히코는 남성다운 작가입니다. 1961년 도쿄에서 태어났습니다. 도쿄외국어대학 러시아어과 4학년에 재학했습니다. 재학중이던 1983년, <부드러운 좌익을 위한 희유곡>이 아쿠타가와상 후모로 올라 주목을 끌기 시작했습니다. 1984년 <몽유왕국을 위한 음악>으로 노마(野間) 문예 신인상 수상합니다. 1992년에 <피안선생의 사랑>으로 이즈미 교카(泉鏡花) 문학상을 수상합니다. 2008년 호세이 대학 국제문화학부 교수로 재직 했습니다. 7년전즈음에 상당히 좋아한 작가입니다. <천국이 내려오다>는 당시 재미있게 읽던 소설입니다. 지금은 절판되어서 구하기 쉽지 않습니다. 서재에서 다시 꺼내어 옵니다.
꽤 오래전의 디자인이라 그런지 표지는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예전에 읽을때 인상깊었던 문장이 있던 페이지는 포스트 잇을 붙여 두었습니다. 볼때마다 그 문장들이 인상깊은건 아닙니다. 인간은 강성적입니다.
<진짜 노름꾼은 패가망신을 해도 도망은 안치는 법이야. 목숨까지 건다고. 도망치고 싶은 놈들은 도망쳐. 난 잡히기 위해서 도망치고 싶지는 않으니까.> 무슨 말이든 버릇처럼 승부사의 말투다. 노름꾼들은 자기가 노름꾼이라고 착각하고 있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좋아하는 시인인 데라야마슈지의 에세이가 생각납니다. 도박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보통 가진돈의 10분의 1정도를 잃으면 그만두는 타잎입니다. 그래도 큰돈을 가지고 목숨을 거는 도박사들을 보면 짜릿합니다. 최근의 <도박묵시룩 카이지>는 좋았습니다.
-모험이란 목숨을 아끼지 않는 자가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사치스런 놀이다.-
우리엄마 4학년4반 아시와라 마리오
우리 엄마는 매춘을 하고 있습니다. 매춘이란 옛날부터 있는 장사입니다. 돈을 지불한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것이죠. 엄마는 13년 전에 아버지를 알게 되었고 매춘을 하였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월급을 전부 엄마에게 지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그 대신에 아버지를 기쁘게 하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 엄마가 좀더 많은 사람에게 매춘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엄마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엄마들이 모두 매춘을 하면 지구는 천국이 될 테죠. 나는 우리 엄마를 본 받아, 장래 매춘을 하고 싶습니다.
고민거리를 털어놓으면 속이 후련하다 하지 않은가. 후련하다는 것은 망각을 뜻한다. 고민 거리를 기억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어떤 일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도 고민거리는 쉽게 풀어버리는 편이 좋습니다. 고민거리를 혼자 가슴에 담아두면 곪습니다. 빨리 털어버리는 편이 이래저래 좋습니다. 날씨도 좋습니다.
어디서 찾아왔는지 가정교사는 곰팡내나는 공부벌레였다. 그는 강의중에 교수가 하는 농담까지 노트에 기록하여, 그것을 일일이 읽어가며 마리오에게 소개할 만큼 꼼꼼한 남자였다. <오늘은 집에 아무도 없으니까, 오락 센터나 가요>라고 내가 떼를 부려도, <일러줄 거야> 라고 말할 정도다. 장래에는 고급 공무원이 되어 동료가 상사의 단점을 꼬집으면, 아마도 <일러줄 거야>라고 할 것이다. 이런 놈은 핀볼 머신보다 열등하다.
동감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핀볼머신보다 열등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예언이란 아무 근거도 없는 말이지만, 한번 신의 말이라 인정되면 모든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나는 그래서 화가 치민다. 신이 아니라도 자신의 미래 정도는 예언할 수 있다.>
종교이야기는 쉽사리 하지 못합니다. 무지하고 무모한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한마디 종교에 대해 잘 못 이야기하면 자신들이 보지도 못한 신의 저주를 퍼부어 댑니다. 자신의 목숨을 신을 위해 기꺼이 던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신이라는 건 참 신기합니다. 신발과 신의 차이를 크게 모르겠습니다.
<너는 자신의 뇌세포가 자기 것이라고 믿니?> 여학생은 상식인다운 눈으로 그를 본다. <나는 사람들한테 머리가 이상하다는 소리를 자주 들어. 하지만 인간이 견딜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미치는 정도는 문제가 아니야. 생각해 봐, 무언가를 생각할 때, 자신의 뇌세포를 사용하고 있는 건지 확인할 길이 없잖아.>
냉정함이 좋습니다. 인간에 대해 증명된것은 극히 일부분입니다. 넘겨짚어가며 살아가지 않도록 합니다.
여성 독자에게는 2,500번의 키스를, 남성 독자에게는 애교 띤 웃음을 100시간, 보냅니다. 작가를 원망하시는 분은 권두의 사진을 다트로 삼아주세요. 그럼, 멍청한 독자 여러분, 안녕.
1985년 할아버지 제삿날 (9월16일) 시마다 마사히코
끝까지 뒤통수를 치는 작가입니다. 다시 읽으니 새로움이 가득합니다. 7년전에 알지 못했던 단어들과 내용들이 신선합니다. 좋은책은 오래갑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단물이 나옵니다. 알라딘 중고서점이 책들이 많습니다. 시마다 마사히코의 책들은 두배 이상의 가격으로 거래가 되고 있습니다. <꿈의 메신저>,<미확인 미행물체>, <떠오르는 여자 가라앉는 남자>, <피안선생의 사랑>을 구매합니다. 당분간은 집에서 안나가도 될 듯합니다. 오늘 날씨가 참 좋습니다. 하루에 한번 바람은 쐬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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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리오라는 인물이 있다. 그를 태어나게 한 아버지는 큰아버지일 수도 있다. 그는 뿌리가 분명치 않다. 그는 성장하면서 자신의 의미를 찾기 위해 언어와의 치열한 투쟁을 벌인다. 그리고 그것은 주위 사람들이 볼 때 방향 설정이 잘못된 것이었다. "그한테는 <엄마>라든지 <자연>이 아무런 존재감도 없는 콘크리트 파편 같은 것이었다. 그는 그런 가운데 300개의 테이프에 자신의 과거를 정리했는데, 그 작업이 끝나는 순간, 모든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황금두뇌를 가진 사나이처럼. 결국, "자신이 토한 말에 자신이 먹혀버렸다." 마리오의 방향 설정은 타자로부터 고립되는 것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그렇기 때문에 마리오에게는 옳은 방향이었다). 자기 자신은 타인에 의해, 정확히 타인의 언어에 의해 정의된다. 자신은 '나'를 볼 수 있지만 고독은 인간이 마주 볼 수 없는 두려움이기에 회피하려 든다. 하지만, 타인의 언어에 의해 정의되는 것은 자신이 만들어낸 또 다른 나일 뿐이다. 대부분은 그것은 부정적일 때가 많다. 마리오는 언어의 생명력을 박탈함으로써 자신이 타인에 의해 정의되기를 거부하였던 것이다. 마리오의 투쟁은 무의식의 저 깊숙한 곳에 있는 나까지도 끌어내려 한 행위였다. 그것은 곧 자신을 살리는 길이었다. 그 후에 필연적으로 죽음이 뒤따랐지만 그의 정신은 묘코에 의해 불완전하게나마 복원되었고 그것은 마리오의 부활을 의미한다. 그는 천국이 되어 돌아온 것인가... (2) 마리오에게는 <가족>이라는 언어도 형식적인 어떤 것이었다. 마리오는 자신의 여동생인 리리카를 사랑했다. 리리카는 마리오의 아이를 갖게 된다. 리리카는 마리오의 죽음을 전해 듣고 "내가 살해당했다"라고 말한다. 소설 속에서 작가는 말한다(작가는 자신의 이름과 동일한 소설가를 등장 인물 중의 한 사람으로 설정하였다. 전지적 시점에서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 "과연 인간성이란 하잘 것 없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도덕과 연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세상은 그냥 간과하지 않는다. 그 점이 걱정이었다." 허무주의의 극을 달리고 있는 이런 생각이 과연 어떤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그것을 드러내는 태도는 비겁하다). 어쨌거나 작가는 자신의 사상을 앞서 말했던 얘기처럼 근친상간이라는 설정에 녹아들게 하고 있다. 이러한 설정은 작가가 지향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내가 그것을 이해했든지 못했든지 간에 거부감만을 불러일으킨다(소재의 빈곤이 느껴질 뿐이다). (3) 구성에 있어서, 전반부 약 오십 페이지에 달하는 열성-유전자들(?)의 소개는 소설의 내용상 빠져도 될법한 지루한 얘기였다. 반면, 실제 있었던 일이었다는 가정 하에,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듦으로써 마리오를 살린 묘코와는 달리 소설을 씀으로써 마리오를 부활시키고자 하였다는 등장 인물로서의 작가의 후일담은 기발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4) 최악의 작품을 '멍청한 독자들'에게 선물하고자 하였다는 작가의 오만함에 미소지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걸로 봐서 작품이 그렇게 나쁘진 않았나 보다. 다만, 마리오의 뿌리 없음에 대한 혹은 타자에 대한 자기 찾기에 근친상간이라는 설정이 그렇게 비중 있게 들어가야만 했던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위험한 발상이라 여겨질 수도 있는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내기보다 그것을 좀 더 심도있게 작품 속에 융해시켰다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마지막으로 그는 작가 후기에서 하루키와 자신을 비교하고 있다. 두 권인가 읽어봤던 하루키보다 낫다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