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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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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정의는 있는가?' 국제 사회를 예로 든다면 대답은 '아니오.' 일 것이다. 우선 우리나라부터 외교관계를 돌아보면 정의보다는 실리를 선택한 경우가 많다. 대만과의 관계도 실리외교란 것 때문에 틀어졌어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사람이 un의 사무총장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정의보다는 실리를 택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팔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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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정의는 있는가?' 국제 사회를 예로 든다면 대답은 '아니오.' 일 것이다. 우선 우리나라부터 외교관계를 돌아보면 정의보다는 실리를 선택한 경우가 많다. 대만과의 관계도 실리외교란 것 때문에 틀어졌어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사람이 un의 사무총장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정의보다는 실리를 택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팔레스타인을 옥죄고 있으며 이에 국제 사회의 도움은 없다. 기껏있는 도움이라고는 시민단체의 생필품지원과 강대국들의 금전적인 지원일 뿐인데 이 금전적인 지원은 더 빨리 나라를 몰락하게 만든다. 지도부에 금전적인 지원을 하고 책임없이 빠져버리면 지도부는 자신의 배를 불리는 데 쓰게 되고 이것은 비리가 되며 이 지도부가 쓴 것은 결국 사치품들로서 다시 강대국으로 돌아간다. 결국 사회는 점점 더 가난해지고 분열이 더 가속화 될 것이다. 

 팔레스타인도 철저히 국제관계에 의해서 압박받고 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영토를 빼앗은 과정자체가 1,2차 대전을 통한 돈과 권력과 힘에 의한 것이었고 지금도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돈이 많은 민족이라고 하면 대표적인 민족으로 꼽히는 유대인의 돈과 권력에 쫒겨난 팔레스타인인들은 불행한 역사의 장본인 들이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우리나라 또한 이렇게 될 수도 있었다. 유대인들은 성서에 나온 민족이 자신들이라고 칭하며 다시 자신의 영토를 돌려받는 것이라는 명목으로 팔레스타인의 땅을 차지했다. 그 중에서 예루살렘을 유대교의 성지로 강조하며 더 중요시했다. 하지만 예루살렘은 이슬람에게도 중요한 성지였고 팔레스타인 인들은 포기할 수 없었다. 

 이 책에서는 쉽고 흥미있는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빼앗은 과정과 성서에 나온 유대인과 지금의 유대인은 다른다는 것들 현재 팔레스타인인의 생활과 정치성향과 미래까지 정말 많은 이야기들은 250페이지 밖에 안되는 양으로 풀어냈다. 이 것을 보고 안쓰러움을 느끼지만 과연 우리나라에서는 손해를 무릅쓰고 이 곳을 도와줄 수 있느냐는 물음에는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 같다. 팔레스타인의 독립은 사실 요원해 보인다. 본연의 힘만으로는 조금 힘들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60년을 끌어온 분쟁앞에 이 책은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좀 더 많이 알리기 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원하는 책이다.

팔레스타인이 독립을 찾게 되기를 바란다.  



d****7 2011.10.13. 신고 공감 5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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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이 활짝 웃는 날에 크게 외쳐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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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땅 없는 민족에게 민족 없는 땅을>이란 구호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땅 없는 민족'이란 두 말 할 것도 없이 '이스라엘인'을 가리키는 말이고, '민족 없는 땅'이란 '팔레스타인인이 살던 영토'를 일컫는 말일 게다. 로마제국 시절 '디아스포라'를 겪어야만 했던 유대인들은 로마 황제의 명으로 강제로 고향땅인 예루살렘을 떠나야만 했다. 그리고 그 땅에 팔레스타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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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턴가 <땅 없는 민족에게 민족 없는 땅을>이란 구호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땅 없는 민족'이란 두 말 할 것도 없이 '이스라엘인'을 가리키는 말이고, '민족 없는 땅'이란 '팔레스타인인이 살던 영토'를 일컫는 말일 게다. 로마제국 시절 '디아스포라'를 겪어야만 했던 유대인들은 로마 황제의 명으로 강제로 고향땅인 예루살렘을 떠나야만 했다. 그리고 그 땅에 팔레스타인인들이 모여들어 살게 되었다. 그로부터 2000년 뒤 그 땅을 떠났던 '유대인'들이 다시 돌아와 살아야만 하는 <약속의 땅>은 예루살렘이었고, 예루살렘에서 2000여 년 동안 살던 '팔레스타인인'들은 순순히 떠나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어느 누구의 편을 들고 말고 할 것 없이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셈이다.

  '야훼'가 특별히 선택한 이들의 후손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이스라엘인'들. 그들은 졸지에 고향땅에서 쫓겨나 '떠돌이 민족'이라는 설움을 받으며 힘겹게 살다가 두 차례의 전쟁에서 '승전국'의 편을 들어서, 그 대가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약속의 땅>을 갖게 되었다. 비록 4차례의 '중동전쟁'을 겪으며 힘든 일을 겪었지만 미국과 영국 등 여러 나라의 도움 속에서 다시 고향땅을 밟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한마디로 고생 끝내 낙이 온 경우라 하겠다.

  그러나 유대인이 떠난 땅에 흘러들어와 살게 되었지만, 어느덧 2000여 년이나 살던 '팔레스타인인'들에게도 예루살렘은 고향땅이나 마찬가지다. 그들도 미국과 영국 등 '승전국'의 편에 서서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었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제대로 된 나라를 건국하고, 또 국제적으로 인정도 받을 수 있는 희망에 들떴던 '팔레스타인인'들이다. 그 유명한 [벨푸어 선언]의 내용이다.

  그런데 상황은 묘하게 흘러 '팔레스타인인'은 대대로 살던 땅에서조차 내쫓기게 되었고, 듣도 보도 못한 '이스라엘인'들이 밀려들어와 그 땅에 <이스라엘>을 건국하고, 국제사회는 그걸 인정해버리고 말았다. 이런 억울한 상황에 처한 '팔레스타인'들을 돕기 위해(?) 같은 이슬람을 믿는 '아랍국가'들은 '이스라엘'을 향해 선전포고를 하였고, 이로써 <중동전쟁>의 막이 올랐던 것이다. 그러나 초반에 '아랍국가'들에게 유리했던 전쟁은 점점 불리하게 바뀌었고, 졸지에 이집트,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의 영토까지 빼앗기거나 위협받는 상황이 펼쳐지자 '아랍국가'들은 뿔뿔히 흩어지게 되었다. 그 와중에 '팔레스타인인'들이 살던 땅은 점점 '이스라엘인'들에게 빼앗겨 마치 <육지속 섬>처럼 고립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화해와 상생의 길은 없을까? 현재로써는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이다.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아주 복잡한 문제가 얽혔기 때문이다. 먼저 <종교문제>를 꼽을 수 있다. '이스라엘인'은 <유대교>를, '팔레스타인인'은 <이슬람교>를 대부분 믿는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단순한 종교갈등이 아니라 그들이 믿는 성지가 공교롭게도 '예루살렘' 하나이기 때문에 좀처럼 풀리지 않는 것이다. 구원자(메시아)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교>의 성지도 예루살렘이요. 유일신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유대교>의 성지도 예루살렘이며, 이슬람을 창시한 무함마드가 알라의 부름을 받아 대천사 가브리엘의 인도로 하늘로 승천한 곳이 예루살렘인지라, <이슬람교>에게도 아주 소중한 성지인 것이다. 그러니 이곳은 어느 한 나라의 <도시>로 적합한 곳이 아니라 세 종교 모두의 <성지>로 삼는 것이 제 3자가 보기에는 적합한 것 같은데, 이곳을 점령(?)한 이스라엘은 굳이 자기들네 서울(수도)로 삼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둘의 갈등은 다분히 <영토문제>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문제 또한 쉽게 해결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굳이 해결하려 들자면 '이스라엘'쪽이든, '팔레스타인'쪽이든 어느 한 쪽이 완전히 물러나는 방법밖에 없다. 다른 한 가지 방법이라면 그 동안 해묵은 감정은 모두 털어버리고 사이좋게 하나의 나라로 통일하여 서로의 종교와 문화를 인정하면서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아주 그럴 듯한 이런 방법은 애초부터 아주 글른 방법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지 않으려면 현재 영토를 경계로 더는 왈가왈부하지 않는 방법도 있으련만, 이마저도 힘든 상황이다. <시오니즘>이라고 하여 '이스라엘 근본주의자'들을 일컫는 말인데, 이들이 아주 용감하게도(?) 팔레스타인인들이 살고 있는 <점령촌(사실상 이스라엘이 군대를 보내 감시와 억압을 하는 마을이기에)> 근처에 주거하려고 이사(?)를 오기 때문이란다. 그러면 이들 '이스라엘인'을 보호한다면 명목으로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고, 또 이 군대가 머무를 '주둔지'를 건설하며, 또 이들 군인들이 살 수 있게끔 '상가와 위락시설'이 생기게 된다. 마치 <개척교회의 행태>를 보는 듯한 이런 '이스라엘인'들이 하는 행동은 명백한 <국제법상 위반>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팔레스타인'은 제대로 된 항의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이들 '불법 점거를 한 이스라엘인'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원래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주거를 불시에 수색까지 한다고 하니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하루하루가 불안과 두려움이 떠나지 않는 나날들일 게다.

  이런 식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는 영토는 점점 줄어들고,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는 지역은 '이스라엘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벽과 울타리로 둘러싸여 생계를 위한 이동(출퇴근, 등하교 등)까지 감시받는 처지에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더 큰 문제가 없었으면 좋으련만, <생계 문제>가 '팔레스타인인'들의 발목을 붙잡고 떨어질 줄을 모른다. 그만큼 '팔레스타인'의 경제상황이 열악하다는 것인데, 사실상 '팔레스타인'은 국제사회와 NGO단체들의 '국제원조'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 '팔레스타인인'들은 자신들을 억압하는 '이스라엘'로 가서 하루하루를 먹을 수 있는 돈을 벌어야만 한다. 심지어 '팔레스타인인'들을 가두는 벽과 울타리를 건설하는 현장의 인부로 일을 하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하니 그들이 얼마나 열악한 경제사정에 빠졌는지 알만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스라엘'의 강경정책은 여전하다. '팔레스타인인'이 돌맹이를 던지면, '이스라엘인'은 총알을 퍼붓고, 저항시위를 하며 '박격포'라도 쏠라치면, 전투기의 폭격과 탱크의 포탄세례를 받아 쑥대밭이 되고 만다. 실제로 전투에서 이스라엘인이 13명이 죽을 동안, 팔레스타인인은 수천 명이 사살되곤 한단다. 더구나 팔레스타인인에 의해 죽은 이스라엘 병사는 8명 뿐이었고, 5명은 이스라엘 공군의 오폭으로 죽은 결과란다.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차이다.

  그런데도 '서방언론'은 '팔레스타인 과격단체'가 저지른 소행입네, '이슬람 테러리스트'가 자살폭탄테러를 저질러 죄없는 이스라엘인들이 수없이 죽었네...하며 <이스라엘> 감싸기에 바쁘다. '팔레스타인인'은 하루가 다르게 사상자가 늘어나는데도 말이다. 한 '팔레스타인인'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 사람들은 우리가 모두 죽기를 바라는 모양이야"라며 한탄을 할 지경이다.

  물론 '팔레스타인인'들이 이런 수모를 당하고도 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두 차례의 <인티파다>를 통해 <이스라엘>의 일련의 협정을 무시한 부당한 행위를 멈추라고 시위를 벌였었다. 그러나 그 때마다 돌아온 것은 끔찍한 무력진압이었고,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온갖 방법으로 조여오는 '보복'이었다. 이를 테면, 일자리를 얻기 위해 <이스라엘>쪽으로 넘어오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일자리를 사라지게 만드는 것 말이다. 이런 '보복' 때문에라도 더는 '팔레스타인인'들도 저항할 힘을 잃어버렸다. 물론 모든 '팔레스타인인'들이 저항할 힘조차 없는 절박한 상황에 처한 것은 아닐지라도 '팔레스타인인'들을 하나로 모으는 구심점이 사라진 것만은 분명하다. <이스라엘>이 노린 것도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

  이 책을 보면 볼수록 우리 민족이 겪은 <일제강점기>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마음으로나마 '팔레스타인인'의 아픔을 그동안 몰라주었던 것에 미안했고, <이스라엘>을 비롯해서 서방쪽 언론의 말만을 듣고 그들의 편에 서는 걸 부끄러워하지 못했던 것에 정말 부끄러웠다. 더구나 반기문 사무총장이 지지한 <팔레스타인> 지지 성명에도 대~한민국은 두 차례나 '기권표'를 던졌단다. 머리로 이해는 가는 상황이지만, 이해를 할수록 <힘 없는 나라>가 숙명처럼 느껴야만 하는 설움과 아픔을 현재 대~한민국조차 벗어날 수 없구나..하는 생각에 이르자 심한 무력감을 느끼고 말았다.

  국제관계라는 것이 오직 <힘의 논리>로만 움직이는 사실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나마 이 책이 전하는 희망적인 메시지는 언제까지나 <이스라엘>의 뒤에 미국과 유럽이 든든히 버텨줄 수는 없을 거라는 전망이다. 비록 현재까지는 오히려 미국이 <이스라엘>의 눈치를 보며 아랍국가에 둘러싸인 <이스라엘>을 솔선하여 도와주는 형국이지만, 중동이 가진 에너지자원이 고갈되고 미국이 더는 '중동정책'을 통해 얻는 것이 없다는 판단이 설 때, 미국도 얼마든지 <이스라엘>의 뒤통수를 칠 수 있으니 말이다. 요즘 중동에 부는 '자스민 혁명'이 심상치 않다. 민주화에 성공한 중동국가들이 언제까지고 <친미>를 노래 부를 지 모를 일이다. '세옹지마'라고 했던가? 두고 볼 일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더는 <이스라엘>에 대해 동정적인 시선을 줄 수 없게 되었다. 오랜 세월 떠돌이 민족으로 설움을 겪는 것으로도 모자라 2차 세계대전에서는 나치와 히틀러의 광기에 의해 <유대인 학살>을 경험했기에 '이스라엘인'은 <영원한 피해자>로 입지를 굳혔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떠돌이 민족이면서도 그 나라의 문화에 동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떠벌렸기에 미움을 받았던 것이고, 히틀러가 유독 <유대인 학살>에 열을 올린 까닭이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패배하게 된 까닭이 독일에 사는 <유대인>들이 연합군 측에 적극 협력하고, 스파이 노릇을 톡톡히 해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에 받은 고통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그렇다고 히틀러가 잘 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게 저지르는 만행에도 반성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되려 '쎔통'이라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책의 제목처럼 '울지마! 팔레스타인'이라고 조용히 외쳐본다. 그리고 '고진감래'라고 읊조려본다. 언젠가 <팔레스타인>이 활짝 웃는 날에 크게 외칠 수 있게 말이다. 내가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었잖아~라면서 말이다. 난 그리 믿는다. 정의는 언제나 승리하니까!



YES마니아 : 로얄 z******8 2011.10.30. 신고 공감 4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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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묶인 땅, 누가 팔레스타인을 미워하는가
"희망이 묶인 땅, 누가 팔레스타인을 미워하는가" 내용보기
최근 국내외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뉴욕에서 개막되는 제66차 유엔총회에서 팔레스타인이 독립국 승인 결의안을 제출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 팔레스타인 독립국 승인 표결 문제에 대해 과연 어떤 결론이 날지를 두고 지금 세계는 그 이목에 집중하고 있는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에 팔레스타인이 유엔에서 승인을 얻어 그동안 국가가 아닌 조직이라는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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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외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뉴욕에서 개막되는 제66차 유엔총회에서 팔레스타인이 독립국 승인 결의안을 제출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 팔레스타인 독립국 승인 표결 문제에 대해 과연 어떤 결론이 날지를 두고 지금 세계는 그 이목에 집중하고 있는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에 팔레스타인이 유엔에서 승인을 얻어 그동안 국가가 아닌 조직이라는 형태에서, 국가 자격으로 유엔에 참여하게 된다면 그들의 지위와 권리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온다는 데 있기 때문이며, 그런 이유로 팔레스타인이 오랜 기간에 걸쳐 자신들의 터전을 강제로 빼앗고 수많은 자국의 국민을 핍박해왔던 이스라엘에 대해, 국제법 위반 행위로 국제 형사 재판소에 제소하게 되는 경우, 그 결과를 놓고 앞으로 국제 정세에 대한 작지 않은 파장이 예상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동안 이스라엘과 친밀한 외교관계에 놓여 있었던 유엔의 상임 이사국인 미국과 몇몇 서방국가들은, 이전에 그래 왔던 것처럼 팔레스타인이 현재 겪고 있는 현안의 문제를 외면하고 언제나 이스라엘의 손을 들어주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이스라엘의 손을 들어주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것은 아랍의 봄으로 요즘 이집트를 비롯한 민주화를 갈망하는 중동국가들의 움직임이 예전과 달리 심상치 않은데다가, 러시아와 중국을 포함한 전체 15개 이사국 가운데 9개국이 팔레스타인 독립국 인정을 지지하고 있는 마당에, 만약 이를 무시하고 이전처럼 대충 얼버무리거나 혹은 일방적인 방향으로 강행 처리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자국 내의 금융위기로 갈 길이 바쁜 미국의 처지에서 의도하지 않았던 곤란한 문제에 직면할 수도 있기에 그렇다. 그런데 지난 60여 년 동안 유엔의 결정과 양측 지도자들과의 수차례 협상에도, 아직 이 분쟁의 원활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이 책은 2차 대전 이후 강대국에 의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로부터 자신들의 땅을 강탈당한 역사적인 과정과 또한 그 과정에서 고통스럽고 힘든 삶을 살아야 했던 사실들을, 르포의 형식으로 담아 독자들에게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더 이상의 갈등과 폭력이 없는 평화로운 해결책이 무엇인지를 모색해보고자 했다. 더불어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한때 일본의 제국주의적인 침략에 의해 조국을 잃고 암울한 시간을 보내야 했던 우리의 과거 치욕적인 역사를 상기시켜 보면서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엄연한 사실에 근거한 그들의 슬픈 현실을 외면하기보다, 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다보는 하나의 계기로 삼고자 했다. 또한, 독자의 입장에서 오늘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문제가, 단순히 그들만의 문제는 아니며 또한, 우리가 직면해 있는 남북 분단이라는 현실 문제와 연관하여 깊이 생각해보았으면 싶은 생각이다.


유엔에서 논의되고 있는 팔레스타인 분쟁 원인의 시작은, 이스라엘이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무렵 영국과 협상을 시도하여 전쟁에 지원해 주는 조건으로, 종전 후 옛 유대 땅에 이스라엘 건국을 약속받아내었으며, 이후 영국이 전후에 중동지역을 위임통치하게 되면서 이스라엘에 유리한 상황으로 전개되었다가, 마침내 1947년 유엔총회에서 독립아랍국가와 유대인국가의 분할을 결정으로, 이스라엘이 국가 수립을 선포하고 세계각지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을 팔레스타인 땅에 강제 이주를 감행하게 되면서부터다. 그러나 범 아랍주의를 주창했던 아랍인들의 입장에서는 유엔의 이러한 일방적인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팔레스타인 지역을 둘러싼 아랍 측과 이스라엘 양측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4차례의 전쟁을 벌여왔다. 그리고 이후 여러 차례의 협정과 유엔에서의 최종결의안이 통과되었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슬람교, 기독교 유대교의 성지로 알려 있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성지 회복이라는 종교 신자들 간의 갈등과 반목은 계속되는 가운데, 이스라엘 의회가 구약 신화에 따른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공표함으로써, 이를 정치적인 문제로 끌어들였고, 마침내는 유엔이 정한 결의안을 무시한 채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팔레스타인 땅을 점령해갔다는 것이다. 더욱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스라엘은 자국의 국민 보호라는 명목 아래, 팔레스타인 전 지역에 분리 장벽을 세우고, 팔레스타인인들을 정치 경제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면서 압박의 정도를 더욱 강하게 죄어가고 있음에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엔과 국제 사회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잔혹한 테러집단으로 규정하고 이를 도외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의해 거의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채 통제된 지역에서 점차 자신들의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다. 또한, 그동안 수차례의 전쟁을 통해 난민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국외 원조 없이는 단 며칠간도 버티기 어려운 나날을 보내야 하는 암울한 현실에 살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이집트혁명에 영향을 받아, 오래전부터 분열되어 이전투구를 벌였던 팔레스타인 정부 내의 파타당과 하마스가 다시 하나로 뭉치면서, 그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이 서서히 힘을 얻고 있다는 사실이다. 팔레스타인 분쟁의 그 모든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문제의 핵심은 미국 등 강대국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한 희생물에 불과하지 않나 싶다. 저자는 이 책에서 결론으로 많은 국외 언론들과 전문가들이 그동안 팔레스타인의 분쟁을 이스라엘의 생존권의 문제에서만 보아왔을 뿐, 이들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취한 수십 년간에 걸친 야만적이고 폭압적인 행태에는 문제로 삼지 않는 편협한 시각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더불어 미국이 야심을 가지고 진행해왔던 허구적인 중동 구상은 이제 폐기되어야 할 때라는 것이다. 2011년 2월에 30년 동안 독재정권을 이루며 친미적이었던 이집트의 무바라크 정권이 마침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이를 기점으로 중동지역에 새로운 변화의 조짐을 예고하고 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은 러시아를 포함한 국제 사회에 자신들의 문제에 관심을 둘 것을 간곡하게 호소하고 있다. 따라서 과거와 달리 국제적 위상이 높아진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이제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는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본다.



p*******3 2011.10.28.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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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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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저자 홍미정의 말대로 한반도의 현재와 세계에서 한반도를 보는 시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정확하게 알고 있는가. 그 안에 있는 우리도 진실을 알기 힘든데 천안함, 연평도, 그리고 여러 정치비리와 시위와 탄압의 광경들은 얼마만큼 진실에 가깝게 세계에 전해지고 있을까. 정부의 성향에 따라 국제사회의 이슈 또한 미디어에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 내용보기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저자 홍미정의 말대로 한반도의 현재와 세계에서 한반도를 보는 시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정확하게 알고 있는가. 그 안에 있는 우리도 진실을 알기 힘든데 천안함, 연평도, 그리고 여러 정치비리와 시위와 탄압의 광경들은 얼마만큼 진실에 가깝게 세계에 전해지고 있을까. 정부의 성향에 따라 국제사회의 이슈 또한 미디어에서는 검열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우리는 이미 검열된, 삭제된 국제사회를 바늘구멍만큼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팔레스타인의 자살폭탄테러라는 뉴스에 진실은 묻혀 있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영화 늑대들의 계곡에 이어 테드 코노버의 책 로드’ , 애니메이션 바시르와 왈츠를’, 그리고 책 울지마 팔레스타인을 거치며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 대한 허구와 진실이 내 머릿속에서는 연속 교차중이다. 자살폭탄 테러라는 극단적인 저항이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는지, 이스라엘은 자치적인 국가인 것인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라는 국가를 이루고 있는 주체는 누구인지,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국제사회에서 자살폭탄 테러 위험은 팔레스타인을 타파하면 될 것처럼 하더니 이 책을 읽다보면 사실은 더한 폭력을 가하고 있었던 이스라엘이 있었고(이 책에서는 아주 구체적으로 살상과 감금의 수치적 차이를 볼 수 있다. 최근 이스라엘 군 인질 1명과 팔레스타인의 수감대원 1027명의 맞교환이 있었던 것은 이 수치들을 보면 오히려 부당했다는 생각마저 들것이다.) 이들의 싸움은 절대 종교분쟁이 아니며 순수한 영토 분쟁 그 이상이 아니고 그 이스라엘의 배후에는 처음에는 영국이 지금은 미국이 있다는 것이 명확해지는 순간이 온다. 모든 사실은 포장이 되고 왜곡된다. 우리는 어떻게 진실을 구분할 수 있으며 무지로 인한 오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될까. 세계를 잇는다는 IT 도 그 진실에 대한 접근성마저 어딘가에서 차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갑자기 의심스러워진다.

저자 홍미정은 사실 위주의 객관성에 가장 중점을 두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중동사에 대해 설명하고 서정환은 직접 몸으로 체험하고 그들의 입을 통해 팔레스타인 내부의 여러 의견을 전달한다. 저자 서정환의 글들은 겉으로는 꽤 감정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팔레스타인 내부에서도 여러 의견이 있으며 각각 자신의 생계와 안전을 둘러싼 입장들을 다양하게 언급하려 애쓰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감정이 애정과 우려 그 선을 넘지 않으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나는 오히려 그가 선동적으로 이 사실들을 더욱 적나라하게 비판하길 바랬다. 어느 정도의 자극만으로는 그 심각성에 대한 전달력이 약화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금 더 다양한 뉴스를 들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저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홀로코스트 이전에 어떤 국제분쟁이 그러한 비극에 일조했는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 점령 이후 그 못지 않은 인권탄압과 학살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진실이 무엇인지 조금은 판단력이 키워질 것이라 믿는다.

이스라엘의 영토침입은 표면적으로 일본의 한반도 침략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일본은 식민지가 아닌 일본의 영토로 한반도를 명명하고 이 땅의 민족들을 황국신민으로 만들었다.(참고:‘벌레와 제국’(황호덕)) 이스라엘은 원래 자기 땅이었다고 주장한 시오니스트들에 의해 건국된 것으로 보인다. 종교적 성지,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주장하지만 이 종교적 이유와는 아주 거리가 먼, 그리고 정작 원주민인 팔레스타인의 의견을 무시한 채 그 땅을 점령하게끔 만든 국제적 힘의 논리의 진실이 이 책의 전반부에 펼쳐진다. (이 책이 왜 책 로드에서처럼 이주자들의 거주지는 정착촌이라 부르지 않고 점령촌이라고 말하는 지에 대해 명백해지는 부분일 것이다. )


서방 강대국들의 침묵 혹은 공모라는 저자 서정환의 표현이 와 닿는다. 이 서방 강대국에 협조하는 국가들 역시 그 침묵 혹은 공모에 일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는 우리나라 또한 포함된다는 사실에 이것이 국민의 의견인지, 정부의 판단인지, 국민이 정부를 세웠으니 국민의 의견이라 해도 뭐라 할 말이 없다는 생각에 다리에 힘이 풀린다.
이스라엘은 핵무기를 보유하고도 이란의 핵보유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고 마치 냉전시대를 재현하듯 국제적 힘을 키운 러시아가 중동에 협력한다. 대립되는 여러 관계 안에서 어쩌면 균형이 어딘가로 기운다면 현재의 기득권자인 미국과 이스라엘이 어떤 대처를 한답시고 도발을 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이란-이라크 전쟁에서는 이라크에 협조했다가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때는 걸프전을 치룬 미국의 대처란 결코 이스라엘의 기득권이 다른 강대국에게 치우칠 경우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상하기 힘들다. 경우의 수는 여러 가지이다. 이 책은 이스라엘의 억압 하에 있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야기지만 중동과 강대국, 그리고 그 강대국의 선택을 마치 우리의 선택인 양 따르고 있는 국제정세의 도덕성에 의심을 품게 한다. 이러한 이해는 파타당의 부패를 비판하기도 하고 이스라엘 감독에서 옥살이도 했던 지식인, 사타르 카셈의 짧은 글로 마치 팔레스타인 내에서 국제관계를 바라보는 듯한 실감으로 나아간다.

 

최근 아랍권 국가들의 민주화 운동이 세계를 잇는 SNS가 진실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하더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경우에도 혹시 앞으로 있을 팔레스타인의 인티파다가 있은 후에야 국제적인 지지가 일어날까. 그러나 지금의 팔레스타인은 저자 서정환의 말대로 인티파다가 불가능 할만큼 제약 하에 놓여 있다. 수입과 소통, 그리고 이동은 제약 받는다. 고용의 불이익은 물론이고 검문소라는 이유만으로 모욕을 당해도 홀로코스트와 과거의 노예에 다름 없이 굴복하여야 한다. 폭력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을 무력하게 한다. 이스라엘의 탄압에 PLO와 같은 저항단체가 있긴 하지만 어느새 검문의 권력은 당연시된 듯 하다. 일자리를 위한 이동과 자격을 억압하고 자급자족마저 영토와 이동을 제한함으로써 위협한다. 자신의 집을 빼앗기고 불법 주거침입과 가택수색을 당하고 애써 농사지은 올리브밭은 잃은 팔레스타인들은 이스라엘과 그 배후의 국가들이 원하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있을까. 이들이 위협하는 것이 무엇이길래 그들은 이런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일까. 이스라엘은 무조건적인 착취를 정당화하기 위해 저항을 무력화시키려는 탄압을 가함으로써 자신들의 영토를 확장시키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것은 그 전선에 있는 이스라엘군의 이데올로기에 부합하는가 생각해볼 일이다.

 

테드 코노버의 책, ‘로드에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증오의 길(로드)이 등장한다. 그는 정착민 혹은 이스라엘 군인과 인격적인 폭력의 검문소를 지나야 하는 팔레스타인들의 삶을 오가며 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테드 코노버는 그 어느 쪽에도 낄 수는 없다. 팔레스타인 지구에서는 자신이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테러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불안해 해야 했다. 군인들과 함께 있을 때는 팔레스타인들에게서 작은 위협의 엔진오일 세례를 받기도 했다. 반대로 팔레스타인들과 함께 검문소를 통과할 때는 무심코 한 행동이 이스라엘 군인에게서 굴욕적이고 비합리적인 강압을 버텨야 했고 친구들이 두들겨 맞거나 끌려가지는 않는지 불안해 하며 지켜봐야 했다. 결국 테드 코노버는 온건주의자인 아우니와의 대화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꼈지만 이는 대체적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싸움은 서로 극단적 태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했다.

이는 울지마 팔레스타인에서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합의와 제안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이제 팔레스타인은 시위와 구호도 없이 이스라엘을 향해 돌을 던지고, 이스라엘은 아무런 증거 없이 다가오기만 해도 테러의 위협으로 간주하고 이들을 향해 선제 공격의 총알을 날리는 데 익숙해졌다. 이스라엘 군은 검문소와 불시 주거지역 수색과 검거와 정권의 교육으로 팔레스타인인의 인격을 잊고 말았다. 이제 테러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무감각한 사냥꾼이 되어간다.

나는 테드 코노버의 이야기 중, 이스라엘 군인 오메르가 말한 매일 벌어지는 진짜 싸움은 영혼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죠.라는 말을 되새겨본다. 자신이 적이라고 믿는 이들과 싸우고 있다는 것을 맹신하는 편이 자신의 영혼을 지키기에 적합한 이스라엘 군인의 정신은 아닐까. 누가 이들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영혼을 상처입지 않기 위해 싸우게 만드는가. 자책감에 스스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정당하지 않은 행동을 했다는 자괴감에 빠지지 않기 위해 어쩌면 이스라엘 군인들은 이미 스스로의 영혼을 포기해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울지마, 팔레스타인에서도 종종 보여지는 이스라엘 군의 잔혹성은 이미 영혼이 상처입다 못해 상실된 이들의 자기방어이다. 이것은 용서할 수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을 전선에 내세우는 정치와 경제의 이데올로기를 타파하는 방법 밖에는 시민의 영혼을 지킬 방법이 없다.

영화(애니메이션) ‘바시르와 왈츠를이 떠오른다. 이스라엘의 가해자로서의 트라우마는 오메르가 총을 휘두르다 지친 표정으로 영혼을 지키기 위한 자신만의 싸움과 같은 맥락이다. 또한 영화 늑대들의 계곡이 일방적으로 팔레스타인의 PLO와 폭력을 옹호하는 입장을 가진 영화라고 잠시 생각했었는데 울지마, 팔레스타인을 읽고 나니 그것이 꼭 일방적이진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현실이고 현실이 영화였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우리가 종교분쟁으로 여겼던
,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대립으로 알고 있던,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억압은 새롭게 알려지고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예루살렘의 하람알샤리프에서는 종교적 분쟁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겠지만 그곳에서의 이슬람교도에 대한 이스라엘 경찰의 탄압은 정치적 목적에서라는 것을 저자는 설명하기 위해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여야 한다는 후세이니의 의견을 전하며 저자들은 우리나라의 독자들이 적어도 이들에 대해 정확히 알고 국제사회의견을 전하는 시민이 되기를 촉구한다. 이스라엘 내부의 변화도 물론 존재하며 꼭 필요한 부분이다. 그들의 자각과 더불어 끊임없는 국제사회의 압박과 민간언론으로서의 소셜 네트워킹의 활성화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물론 이스라엘의 폭력적 탄압이 지금 도를 넘어섰기 때문에 무력해질 대로 무력해진 팔레스타인 내부의 움직임에 대한 기대조차 어려운 상황은 맞는 듯하다. 게다가 강대국과의 협력관계를 고려한 입막은 국가들까지 국제여론형성을 방해하고 있는 것도 맞다. 이슬람교의 종교적 교리를 탓하는 부류도 있을 것이다. 타종교에 유난히 배타적인 세계 종교의 관계들을 생각해볼 때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코란을 수정하고 교리를 어겨야 하는가. 유대교의 교리는 그대로 둔채 군사력과 화력수준이 낮은 이들이 그들의 종교마저 수정해야 하는가. 물론 중동의 거의 모든 대립이 강대국의 유전보유에 대한 자본주의적 국가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종교에 대한 질문은 무의미 하지만 말이다.

 

서로 무기를 겨누고 폭력으로 대화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없는 이스라엘 군과 팔레스타인의 대치는 아무런 목적이 없다. 전쟁이란 그런 것 인가보다. 북의 연평도 기습포격과 대응사격이 있었을 때를 생각해 보아도 폭력을, 공격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되면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직설중에 한홍구의 말이었던 전쟁이 이성을 마비시킨다라는 말이 절절하게 공감된다. 무엇을 의논해서 무엇이 나아질지에 대한 희망은 없어진다. 무엇이든 개선점에 대한 연구보다는 보복 혹은 선제공격에서 어떤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나의 신변을 보호하고 상대에게 보다 많은 피해를 입힐 수 있는가에 집중하게 된다. 더 이상 서로는 인간 대 인간이라기보다는 국가라는 추상적 개념 1, 2, 3 번들이 된다. 개념 1 번이 적 1번과 2번을 죽이거나 굴복시키면 된다. 싸움에서 이기면 된다. 미국의 말대로 다음에도 북한의 도발이 있다면 미국에서도 가만있지 않겠다고 한다. 만약 미국이 군사력을 이용해 우리나라에 합세해서 북한을 공격하고 있다면, 그래서 우리는 미국에게 감사할까? 어느 퇴역한 군인이 미디어에서 했던 말이 떠오른다.평화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라는 말은 내가 들은 그 미디어가 아니더라도 전쟁에 참여한 군인이 아니더라도 쉽게 하고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말이다. 평화를 위해 군복무를 하였다는 군인들의 사유는 어떤 이데올로기에서 오는가. 그 어느 전투가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일까. 누군가의 공격이 있을지 모르는 세계가 맞으니 보호를 받는 것이 감사하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폭력적인 전쟁이 되풀이 되는 한 영화 터미네이터에서나 보던 디스토피아적 미래상 외에는 상상되는 것이 없다. 서로의 공격에서 지키느라 무기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어딘가를 전쟁터로 만드는 것을 피할 수는 없을까. 그런 게 평화라면 평화의 사전적인 의미가 변화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전쟁은 살인을 누가 더 많이 해서 국가원수의 도덕심을 자극하는가에 따른 게임이다. 누가 먼저 항복하는가. 누구의 군인이 먼저 죽음의 공포에 익숙해지거나 굴복하는가 하는 게임이다.

영화 고지전한국전의 중심에 있던 국군과 인민군들의 일상을 상상한다. ‘아는 사람이 되어도 보복의 칼 끝에 죽고, 적들도 우리를 죽였으니 우리도 적을 많이 죽여야 한다. 우리는 살인에 대해 엄청난 도덕심을 교육받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려 하지만 전쟁이 존재하는 한은 이 도덕심은 끊임없이 분열을 일으킨다. 그 사이에 일상 속에서 살인과 범죄가 일어나기도 하고 영화와 게임의 폭력을 통해 분열을 해소시켜야만 한다. 어떤 살인은 옳고 어떤 살인은 그르다고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세계에서 이러한 분열은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그 분열에서 벗어나려는 일관된 관심과 의식수준을 가진 시민만이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이후 제2, 3의 팔레스타인을 보는 눈을 갖게 될 것이고 세계를 보는 데 있어 옳은 판단과 언행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고양된 의식이 진정한 평화를 위한 미래를 고민하지 않겠는가

f*****5 2011.10.31.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관용과 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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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리바넨시스 혹은 마운트 레바논이라 불리는 지중해 동부 해안은 천년이 넘도록 12개 이상의 종파와 인종과 신조의 온실 노릇을 해왔다. 마치 마법이 지해하는 듯한 완벽한 온상이엇다. 레반트의 도시들은 기본적으로 상업에 중심을 두고 잇었다. 거래는 명료한 계약서에 기초하여 이루어졋고 상업을 가능하게 해주는 평화를 숭상했다. 서로 다른 사회집단들 사이에도 긴밀한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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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리바넨시스 혹은 마운트 레바논이라 불리는 지중해 동부 해안은 천년이 넘도록 12개 이상의 종파와 인종과 신조의 온실 노릇을 해왔다. 마치 마법이 지해하는 듯한 완벽한 온상이엇다. 레반트의 도시들은 기본적으로 상업에 중심을 두고 잇었다. 거래는 명료한 계약서에 기초하여 이루어졋고 상업을 가능하게 해주는 평화를 숭상했다. 서로 다른 사회집단들 사이에도 긴밀한 소통이 유지되었다. 온갖 종파의 기독교도들, 모슬렘, 드루즈교도, 소수의 유대교도 등이 이 지방이 품고 잇는 종파들이다. 이곳에서는 서로 관용적 태도를 베푸는 것이 극히 당연하게 여겨졌다. 발칸 지방 사람들은 목욕하길 꺼리며 툭하면 싸움질이니 우리는 얼마나 개명한 사람들이냐고 나도 학창시절에 교실에서 배운 기억이 있다. 이 평평상태는 언제까지나 계속될 듯햇고 역사는 개선과 관용의 세계로 나아가는 듯이 여겨졌다.

 

이 지역은 세계 모든 곳을 향해 열려 있었고 극히 세련된 생활양식과 활발한 경제, 오늘날의 캘리포니아처럼 온화한 기후를 자랑했으며 지중해 저 멀리 높은 곳의 눈 쌓인 풍경도 볼만했다. 스파이, (금발) 창부, 작각, 시인, 마약상, 모험가, 도박 중독자, 테니스 선수, 아프레 스키 애호가, 상인 등등 온갖 인간들이 모여들어 이곳의 문화를 형성햇다. 이 지역은 낙원일 뿐 아니라 흔히 하는 말로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기적의 교차점이기도 햇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블랙 스완’)

 

유대인들이 몰려오기 전 이웃인 팔레스타인 사람들 역시 그런 문화에서 살았고 아직도 그들은 그런 문화를 지키며 산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이슬람이란 이성과 갈등하는 신화도 아니엇고 욕망과 갈등하는 도덕도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권해야 할 선도 아니고 스스로를 옭아매야 할 규범도 아니었다. 하루 다섯번 꼬박꼬박 기도하고 금식하는 이가 있었는가 하면 이런 것을 거부하고 자유롭게 사는 사람도 있다. 사마라 아버지가 전자의 경우라면 사마라는 후자다. 사마라는 무신론자다. 라마단 기간에도 집에서 요리를 해 먹는가 하면 술과 여자를 두루 좋아했다. 그러나 종교 문제로 아버지와 약간이라도 불편했던 적은 없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햇고 아들과 맞담배를 피우면서 밤 늦도록 아들의 결혼에 관해 얘기를 나누곤 했다. (레바논에서처럼) 팔레스타인에서는 이슬람교와 기독교도 공존한다. 종교가 문제시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관용의 문화는 레바논처럼 높은 교양수준을 만들었다. 모든 것이 파괴되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지금도 그런 전통은 높은 교육수준으로 나타난다. “팔레스타인의 교육수준은 주변 아랍국보다 훨씬 높다. 세계문맹률 순위에서 시리아, 이집트 등은 모두 100위권 밖으로 밀려나 있지만 팔레스타인은 문맹률 8.9% 79위를 차지한다. 팔레스타인에는 비르제이트, 알쿠즈, 알나자, 베들레헴, 헤브론 대학 등 여러 대학이 있는데 이중 비르제이트와 알쿠즈 대학은 각종 순위조사에서 중동지역 10대 대학에 들 정도로 학술적 성과가 높은 곳이다.”

 

0%에 가까운 문맹률을 자랑하는 한국사람들에겐 그리 대수롭지 않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경제를 생각하면 이는 위업이다.

 

헤브론 공업지대를 지나면서 그곳에서 가장 큰 공장이 어디인지 수소문한 끝에 노동자 47명을 고용하는 알샤르크 전기회사 공장을 찾아간 적이 있다. 전선과 철사, 용접봉 따위를 제조하는 이 소박한 공장의 관계자는 우리 공장이 2008년에 무려 800만 셰켈( 2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며 자랑했다. 이 정도면 팔레스타인에서는 대기업에 속한다.

 

2009년 현재 국내총생산이 128억 달러, 1인당 GDP 2,900달러 정도다. 공장도 없고 중동에서는 흔한 석유도 나지 않는 팔레스타인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살까. 가장 정확한 표현은 딱히 먹고살게 없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경제가 이 모양인 것은 이스라엘 때문이다. “1993년 오슬로 협정이 체결된 이후 서안과 가자지구의 경제적 통제권은 이스라엘이 쥐게 되었다. 즉 팔레스타인에서 공장 하나를 짖는다든지 원료와 완성품을 수입, 추술하는 데 일일이 이스라엘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국의 안보를 이유로 거의 허가를 해주지 않았고 이 때문에 팔레스타인 경제가 악화되었다. 오슬로 협정이 체결된 후 3년 동안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서 실업률이 2배 가까이 늘었고 1인당 소득도 20%나 줄었다. 지금 팔레스타인 경제는 더 나빠졌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농지를 강제로 수용하여 점령촌을 확장하는가 하면 수원지마저 독차지했다. 팔레스타인과 외국, 가자-서안, 서안-동예루살렘 간의 사람과 물자 이동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저자들은 말하지 않지만 이스라엘의 경제파괴는 오슬로 협정 이전으로 올라간다. 1948이스라엘의 건국은 공식적으로 팔레스타인들을 추방하고 그들의 땅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어떤 자원도 인프라도 없는 가자의 좁은 땅으로 쫓겨간 팔레스타인 난민들에게 미래는 밝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그들을 쫓아낸 것으로도 부족한지 그들이 쫓겨간 곳까지 쫓아가 그들의 어두운 미래를 어둡게 만들었다.

이스라엘은 성경구절처럼 팔레스타인인들을장작을 패고 물을 긷는 사람으로 만들어 값싼 노동력으로 활용했고 이스라엘 상품의 소비자로 만들었다. 이스라엘은 지역산업의 발전을 방해하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에 경제적으로 종속되게 만들었고 정치적 독립의 경제적 기반을 제거했다
.

가자는 제국주의의 식민지배가 사라진 세계에서 고전적인 식민착취가 부활한 예이다. 점령지에 정착한 유대인들은 착취의 도구이자 상징이었다. 2005 가자 인구 140 중에서 8천명에 불과한 유대인들은 토지의 25%, 경작지의 40% 차지했고 수자원의 대부분을 통제했다. (이상 The Economist 기사 요약)

 

그동안 이스라엘은 점령촌 보호 명분으로 팔레스타인 지역에 분리장벽을 세우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땅을 강제로 빼앗았다. ‘Settlement’ 정착촌으로 옮겨 싣는 언론도 있는데 그보다는 정령촌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듯하다.

 

점렴촌에 사는 유대인들은 쉽게 말해 극우주의자들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 0.1% 될까 말까 이들은 팔레스타인 전체를 자신들의 땅으로 믿습니다. 때문에 이들은 옛날부터 서안지구의 아무 곳에서나 막무가내로 컨테이너 같은 것을 가져다 놓고 먹고 자기 시작했어요. 이스라엘 정부에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신변을 보호해달라 요청하고요. 이스라엘 정부가 군대를 보내 경비를 줍니다. 점점 사람들이 모여들어 진짜 집과 기반시서을 건설하게 되죠. 기왕에 군대가 있으니 군사시실도 만들고요. 그러다보면 팔레스타인인들은 접근이 금지되는 겁니다. 혹시 그쪽을 취재하실거라면 점령촌 사람들을 아주 조심하셔야 합니다. 외국인들도 안중에 없는 사람들이니까요.”

가용자원이 그래도 적은 곳에서 생산수단을 뺏긴 팔레스타인인들은 절대적 빈곤과 상상할 없는 궁핍에서 살아야 했다. 80% 하루 2달러가 안되는 돈으로 살아가야 했다. 아직도 가자의 생활조건은 문명에 대한 모욕으로 남아 있다. 이스라엘의 지배가 끝나지 않는 팔레스타인의 미래는 없다.  

 

경제의 목을 이스라엘의 지배 덕분에 팔레스타인 역제는 원조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잇다. 팔레스타인 난민구호시구, 유엔개발계획 같은 유엔 산하원조기구와 세계은행, 적신월사 각종 경제, 인도주의기관에서 팔레스타인에 지원하는 돈은 매해 10억달러를 넘는다. 예르ㅜㄹ 들어 팔레스타인의 교사와 의사들은 난민구호사업기구가 아니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설립한 학교나 의료원에 출근한다.유엔기구와 유엔산하기관 외에도 라말라 시에만 1700개의 정치, 사회, 교육, 여성, 문화 분야 NGO들이 설립되어 있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데 크게 기여한다. 팔레스타인에서 NGO 한국의 시민사회단체와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대기업만큼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장이다.”

 

그러나 원조는 팔레스타인의 자립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원조는 기간산업 대신 식량, 의료, 교육 부분에만 직접적으로 편중되게 지원함으로써 자원의 배분을 놓고 팔레스타인 내부가 분열되게 조장했다. 또한 원조 이후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책임감있게 감시하지 않았고 과정에서 발생한 자치정부의 부패를 눈감아줌으로써 하마스 정권이 등장하는데 일조햇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경제를 인공호흡기를 떼어내면 바로 사망하는 원조경제체제로 묶어두었고 정치 군사 외교적으로 팔레스타인을 고립시켰다. 때문에 학생들은 이런 현실에서 교육은 받아서 무엇 하나하는 뿌리 깊은 회의와 무기력감에 젖어 있다. 팔레스타인 교육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팔레스타인 교사가 글을 발견하고는 먹먹했던 일이 떠오른다. ‘학생들에게 꿈을 이룰 잇다는 희망 말해야 교사로서 가장 힘들다.’”

 

이런 현실에서 저항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최소한의 몸부림이며 종교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생존권의 문제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부정하지 않는다. 단지최소한의 생존을 말할 뿐이다. 여전히 그들에겐 레반트의 전통인 관용은 살아있다.

 

나는 팔레스타인이 이슬람 근본주의가 성장할 잇는 폐쇄적인 곳이 아님을 확신하게 되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신을 존경하고 사랑하듯이 신이 창조한 모든 다른 사람, 다른 종교도 종중하고 열린 마음으로 대했다. 자신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유대인이라고 예외로 두지 않았다. 내가 만난 대다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쫓아낸 자신들만의 국가를 세우는데는 관심이 없었다. 이슬람교도든 기독교인이든 형제처럼 같이 있다 믿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팔레스타인 땅을 주었노라 계속 우기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공공연하게 이스라엘은 유대국가라고 선언하고 다닌다. 이처럼 오히려 자신들의 종교가 정통이고 우월하다는 , 다른 종교를 인정할 없다는 , 자신의 국민들이 타인을 핍박하는 마약과 같은 종교적 동기를 활용하는 국가 전체가 종교적 근본주의에 기운 쪽은 이스라엘이 아닐까.”

 

구약에서 말하는 신이 약속한 땅이란 주장 자체도 문헌비평학적으로 보면 의심스런 주장이다 (신의 역사 1 리뷰를 참조) 그러나 주장을 인정하더라도 시온주의는 성립하지 않는다. ‘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 때문이다.

 

시온주의는 그야말로 신화에 불과하다. 현재 유대인 대다수는 바빌론 시대나 로마제국 기대에 예루살렘에서 추방당했다고 전해지는 유대인과는 혈통적으로 관련이 없다. 현대 유대인들은 중세시대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 기원후 6세기에 아라비아 반도 남부에서 유대교로 개종한 힘야르 제국의 힘야르족과 8세기 중반 흑해와 카스피해 연안에서 유대교로 개종한 카자르제국의 카자르족의 후손이 대부분이다. 특히 카자르 후손인 유대인들은 현재 세계 유대인들의 80% 이상을 구성하는 아슈케나짐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더군다나 현대 이스라엘의 히브리어는 이디시어의 파생어이며 성서 히브리어의 어휘 일부만 사용한다. 이디시어는 독일어가 혼합되기는 했지만 문장과 음운체계에서 슬라브어족에 속한다. 나아가 기원후 1세기에 로마가 점령하던 팔레스타인에서 유럽으로 건너간 대규모 이민자가 없었다.”

 

시온주의 자체가 근거없는 신화에 불과할 뿐이다. 그것이 신화가 아니더라도 1000 이상 그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을 쫓아낼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시온주의는 독선일 뿐이다. 그것도 억지의 독선일 뿐이다. 그리고 독선의 실체는 미국의 전략이라 저자들은 말한다.

 

“’이스라엘 없는 중동 가정해보자. 2차대전 이후 세계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양분되었다.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곳에 자리한 나라들은 어떻게든 질서에 편입되었고 이집트, 이라크, 시리아, 요르단 근대적 국가로 거듭나던 중동 각국에서도 변화는 있었다. 영국의 지배를 받던 중동에서는 민족주의나 이슬람주의가 점점 힘을 얻었는데 이런 중동이 서장세계가 주도하는 자본주의 질서에 호의적으로 재편되리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중도 교두보가 것이 이스라엘이다.”

 

바로 이스라엘의 이런 성격이 팔레스타인의 운명을 결정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저자들은 말한다. “평화란 본질적으로 힘의 균형이다. 이스라엘은 건국 이후 폭력적인 방법으로 팔레스타인을 지배했다. 이유는 미국이 받쳐주는 미국에서 수입한 성능이 뛰어난 무기로 무장하는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잇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미국의 패권이 약해지고 있다. 중동을 더는 힘으로 제압할 수없다면 미국과 이스라엘은 군사적인 것보다는 정치적 해법을 찾지 않을 없다. 2011 이후 중동의 변화는 미국과 이스라엘을 정치, 외교적으로 불리하게 만들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어떤 형태를 띠게 될지 섣불리 판단할 없다. 그러나 상상력을 가능한 넓힌다면 미래에 과연 이스라엘은 생존할 있을까라는 짋문에 이전처럼 쉽게 예라고 대답할 수는 없다. 반면 팔레스타인인들은 마침내 평화롭게 수있을까라는 물음에는 이전보다 쉽게 예라고 대답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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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 팔레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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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난 것은 작가 발레리 제나티의 '가자에 띄운 편지'라는 작품을 통해서였다. 프랑스인 이었던 저자가 실제 이스라엘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경험을 토대로 쓰여진 이야기라 이번에 읽은 울지 마, 팔레스타인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였다. 그 책 속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의 원인은 종교적이며 서로 양보가 없는 이기적인 지도층과 어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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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난 것은 작가 발레리 제나티의 '가자에 띄운 편지'라는 작품을 통해서였다. 프랑스인 이었던 저자가 실제 이스라엘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경험을 토대로 쓰여진 이야기라 이번에 읽은 울지 마, 팔레스타인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였다. 그 책 속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의 원인은 종교적이며 서로 양보가 없는 이기적인 지도층과 어른들의 폭력사태로만 그려졌기에 제3자인 입장에서 볼 때 그저 답답하기만 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동안 알고있던 분쟁의 원인이 종교적인 부분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극단적인 이기주의에 의한 것이고 이를 도와준 유엔과 미국 및 유럽 강대국들이라는 사실에 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비윤리적이고 말도 되지 않는 상황이 지금 21세기에 벌어지고 있는것일까.
우리가 이 책을 통해 반드시 잊지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앞서 말했던 종교문제로 인한 갈등이 아니라는 것과 양쪽다 몰양심에서 발생하는 테러가 아니라는 것, 지난 홀로코스트로 인해 늘 상처받고 안타까운 민족 유대인에 대한 동정심을 더는 가질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흔히 듣는 말로 호된 시집살이를 한 시어머니일 수록 며느리 구박이 더 하다고 했는데 그와 다를게 없어보였다. 뿐인가. 자신들의 나라를 도와줬다는 이유로 유대인에게 팔레스타인의 영토를 허락한 것과 이주할 수 있는 권한을 허락한 유엔의 역할도 한심하게 보였다.
제 3국인 한국의 기자들 눈에 비춰진 팔레스타인의 모습은 그래서 한 없이 더 안타깝고 서글펐다. 이스라엘이 차지하고 있는 영토와 그들의 정치권력은 명백하게 공동의 소유로 종교적 성지로 지정한 예루살렘마저 무력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현상황에서 앞으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그 어떤 우호적인 세력과 유엔의 판결이 그다지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보였기 때문이다. 먼 타국에서 책을 통해 보기만 해도 답답해져 오는 이 한숨과 고통을 겪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서명에 적힌 것처럼 섣불리 위로조차 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와 비슷한 위기에 놓인 티벳이나 여전히 영토로 인해 문제가 되고 있는 대만 그리고 멀지 않은 한국의 분단 현실까지 생각하다 보면서 다시금 깨닫게 된다. 국민성, 국력이라는 것이 반드시 정의에 심판을 받는 것만은 아니란 사실이다. 신께 기도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신에 의지하고만 있기에는 현실적인 장애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끝없는 분쟁과 테러에 대해 역사적인 근거와 이유 그리고 현실적으로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YES마니아 : 로얄 i********g 2011.10.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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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리도 서글퍼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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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20세기까지만 하더라도 팔레스타인은 많은 국가들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고 중국이 자본주의 길을 가고 중동 지역에는 오랜 왕조들이 민중들의 자유화 요구로 자국내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동안 팔레스타인은 점점 국제적인 관심의 밖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팔레스타인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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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20세기까지만 하더라도 팔레스타인은 많은 국가들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고 중국이 자본주의 길을 가고 중동 지역에는 오랜 왕조들이 민중들의 자유화 요구로 자국내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동안 팔레스타인은 점점 국제적인 관심의 밖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팔레스타인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역사책을 통해서 읽은 내용이나 아니면 TV나 신문 등에서 보도된 기사를 통해서 앍고 있는 것이 전부다. 세계2차 대전 이후 영국과 미국 등 강대국에 의해 자신의 땅에서 쫒겨난 신세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그 땅을 찾기 위해 이스라엘과의 사이에서 영토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정도다.

 

지금 이 시점에서 팔레스타인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 팔레스타인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지금 세계는 무한경쟁의 시대로 접어 들었다. 이념분쟁은 지나간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다. 저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경주하고 있다. 국제공조는 힘, 경제력의 우위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최근 중국과 일본의 영토분쟁 과정에서 중국이 자국의 희토류를 일본에 수출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일본이 사실상 백기를 든 일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과연 팔레스타인 문제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지는 의문이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먼 나라의 일처럼 들린다. 같은 나라 안에 살면서도 국내의 경제 불안과 정치 불안으로 인해 완전히 다른 나라에 사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팔레스타인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책은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빨간 거짓말’에서는 먼저 분쟁의 내막에 대해서 밝히고 유엔에서 국제관리구역으로 정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이 독점한 과정과 함께 예루살렘을 공유해야 하는 이유와 정치적 계산에 의해서 탄생한 시온주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2부 ‘우는 심장의 풍경’에서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을 무력으로 강점하는 과정과 그 속에서 삶을 이어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힘겨운 생활을 보여준다. 지은이들이 직접 팔레스타인 현장에서 보고 듣고 체혐한 것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어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가슴 아린 이야기들도 많다.

 

3부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에서는 당장 먹고 살 길이 없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단한 일상을 보여주고, 그래도 그 속에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통해 팔레스타인의 희망을 보려고 한다. 4부 ‘누가 팔레스타인을 미워하는가’에서는 하마스에 관한 오해와 진실, 중동평화를 부르짖는 미국의 속내 등을 통해서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가로막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종국에는 국제 사회의 협력과 대화를 통해 평화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으로 결론이 귀결된다. 하지만 너무 추상적인 이야기다. 앞서 국제 사회의 현주소를 언급한 이유가 바로 이런 해결책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때문이었다. 국제사회는 힘이 지배하는 사회다. 이는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우리나라의 아픈 현실이 오버랩되는 이유는 뭘까?

 

팔레스타인에 평화가 오기를 기대하며 20세기 강대국의 논리에 따라 양분된 우리나라에도 평화가 오기를 기대한다.

 

d*******r 2011.11.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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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을 이해하는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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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 많은 사람들이 신문지상에서 한 번쯤은 들어는 봤고, 알고는 있지만 정작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해서 아는 것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두 사람의 저자가 팔레스타인에 대해 다양한 분야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반적으로 사진과 더불어 그들의 생활모습이 쉬운 말로 실감나게 설명되어있기 때문에 가볍게 읽기 좋다. 그러니까, 다른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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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 많은 사람들이 신문지상에서 한 번쯤은 들어는 봤고, 알고는 있지만 정작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해서 아는 것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두 사람의 저자가 팔레스타인에 대해 다양한 분야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반적으로 사진과 더불어 그들의 생활모습이 쉬운 말로 실감나게 설명되어있기 때문에 가볍게 읽기 좋다. 그러니까, 다른 나라의 분쟁 현실이라는 불편하고 딱딱한 상황에 대해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는데 딱 좋은 수준의 책이다. 더불어 아마, 이 책보다 어려운 수준의 글이었다면 굳이 다른나라의 분쟁 상황에 대해 이해하고자 책을 읽는 시간을 가졌을 것 같지도 않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저자들이 글을 써낸 것은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

이 책은 애초에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유대인들의 태도 자체가 매우 불합리한 것이었으며, 그들이 비난하는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같은 행위를 그들 역시 팔레스타인에 대해 행한 적이 있다는 것, 또한 그들이 주장하는 시온주의 자체가 허구적인 것이며 그들은 불법적으로 영토와 국민을 형성하고, 최종적으로 미국의 힘을 빌려 주권을 얻었다는 것을 설명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팔레스타인의 경제, 정치, 문화적 상황들이 이스라엘에 구속되어 있어, 현실적으로 그들의 삶이 경제 원조에 예속 될 수 밖에 없으며, 이러한 경제 원조 또한, 이스라엘의 주권을 인정하는 다양한 인권단체들에 의한 것이므로 이들이 이러한 악순환 하에 놓여있는 이상은 주체적인 국가의 국민으로서 살아갈 가망이 없다는 현실을 비판한다.

그리고 저자들이 이러한 현실을 몸으로 '실제 체험'하면서 자신들이 느낀 바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책의 내용은 매우 생생하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이 책은 단순히 팔레스타인이 얼마나 불합리한 상황에 처해 있으며, 그들이 국제적으로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있는지를 토로하고자 한 책이 아니며, 팔레스타인의 사람들에 대해 인간적인 맥락에서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자 하는 견지에서 쓰인 책인듯 해 마음에 든다.

국제 정세를 말하고자 하는 책들은 굳이 알아보고자 하면 기존의 연구서적들 만으로도 충분히 쌓여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중동과 미국, 서양세계의 힘의 관계를 이야기하고자 핏대를 세우지 않았으며, 이스라엘 정부를 비판하는데 주력하지도 않았다.

저자들은 실제로 팔레스타인인들의 결혼 의식등에 참여하고,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생활하면서 이들의 삶 속에 녹아든 위와같은 정치, 경제적 문제점들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며, 그렇기에 저자들의 글이 보다 더 감명깊게 다가오는 것 같다. 또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말이다. 특히 이 책이 묘사한 난민촌의 삶은 사진이 덧붙여져 있고, 저자들의 경험이 담긴 이야기가 덧붙여 실려있어 단순히 수치적으로 경제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 보다 현실감이 있었다. 

 만약 저자들의 글이 팔레스타인의 GDP를 이야기 하며, 교육 정책을 이야기하고, 또 이들을 구속하는 부적절한 법령 및 조약들을 이야기했다면, 실제로 이 책을 읽고 팔레스타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 책은 쉽게 쓰여졌음에도 다양한 논문들이 제시하는 쟁점들을 간단하게나마 다양하게 다루었고, 이들의 글은 미국, 러시아, 그 외 다양한 국가들과 국제세계에서의 팔레스타인, 중동에 대해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물론 짧은 글 중 어느 정도를 취사선택하고, 객관적인 견지에서 자기 견해를 취할지는 독자의 몫으로 남아있지만은 말이다.

+
뱀꼬리
짧은 책을 통해 다른 나라에 대해 그리고 그 나라 사람들에 대해 이해하고, 이와 얽힌 국제 정세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볍게 읽어볼만한 교양서적으로 괜찮은 것 같았다.

e*******n 2011.10.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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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어진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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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나라이기 때문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스라엘에서 벌어지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뉴스가 방송과 신문에 등장을 하는 경우를 거의 본기억이 없는것 같은데 등장을 하여도 자살테러등의 않좋은 뉴스들이 대다수를 차지를 하고 있었는데 그러한 감추어진 민족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현실과 그들이 생각을 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하여서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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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나라이기 때문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스라엘에서 벌어지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뉴스가 방송과 신문에 등장을 하는 경우를 거의 본기억이 없는것 같은데 등장을 하여도 자살테러등의 않좋은 뉴스들이 대다수를 차지를 하고 있었는데 그러한 감추어진 민족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현실과 그들이 생각을 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하여서 알려주고 있다.


1. 팔레스타인 사람들 이란 ?

현재의 이스라엘 영토에 고대로 부터 거주를 하고 있던 사람들로 현재는 자신들의 나라를 만들지 못하고 반난민으로 생활을 하고 있는데 그러한 일들은 영국이라는 강대국이 자신들의 전쟁에서 유태인들의 강력한 자본을 원하여서 나라를 만들어 준다는 약속을 하고 그러한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서 그곳에 살고있던 사람들에게 양보를 요구하고 유대인의 나라를 만들면서 문제가 발생을 하였다.

초기의 문제는 적은수의 유대인들로 인하여서 별문제가 없었지만 유럽을 점령을 하고 있던 독일의 히틀러가 유대인을 몰살을 하려고 하면서 위기가 닥친 유대인들을 받아주는 나라가 없자 자신들의 조국을 만들기 위하여서 노력을 하였고 그런 분위기에 휩쓸린 사람들이 현재의 이스라엘로 이주들을 시작을 하면서 그곳에 살고있는 사람들을 몰아내고 오로지 자신들만의 나라를 만들기 위한 방법을 세우고 압박을 하면서 문제가 발생을 하였다.


이스라엘의 주변에 위치한 아랍국에서도 그러한 상황을 파악을 하고 같은 민족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서 전쟁을 하였지만 무기의 수준의 차이로 인하여서 패전을 하고 난민촌을 만들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받아들였지만 그곳에 팽배를 하고있는 부족주의 때문에 나라가 없고 다른 나라에 들어와서 살고있는 사람들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난민촌을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2. 난민촌에서만 살아가는 이유는 ?

국가가 없기 때문에 자신들을 보호를 할수가 있는 곳이 없다는 사실도 있고 유일한 강대국인 미국이 이스라엘의 편을 들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부를 축척을 하면 나중에 유대인과 같은 행동을 할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주변국에 압력을 넣어서 취업을 막고 정착을 방해를 하는 거도 있을것 같다.

부족간의 갈등도 많은 요소로 작용을 하는데 이웃국인 요르단의 국민구성을 보면 많은 국민들이 팔레스타인 계열로 분류가 되는데 원래 그곳에 살고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의 눈에는 같은 사람으로 보이지만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다른모습으로 보이기 때문에 주변국에서도 억압을 받는 경우가 많다.


3. 자살폭탄 테러

책에서는 자살폭탄 테러에 대하여서는 언급이 없는데 일반적으로 뉴스를 보면 가장 많이 등장을 하는 팔레스타인 뉴스가 테러일것으로 보이는데 그러한 가장 잔혹한 행위를 하는 경우는 그들이 믿고있는 종교적인 범위는 일부가 있고 거의 대부분이 자신을 희생을 하여서 가족을 살리려는 대가족주의를 유지를 하고 있는 그곳의 분위기가 그런 일들을 만들고 있는것 같다.

자신의 목숨이 중요한 것은 누구나 같은 생각이지만 일을 할수도 없고 이스라엘군인들에게 모든것을 읽어버린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을 구하기 위하여서 생각을 할수가 있는 일중에 하나가 자살테러를 지원을 하는 곳에서 지급을 하는 돈이 생명줄로 작용을 할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러한 행위를 막기 위하여서는 이스라엘의 정치인들도 강경한 방법만이 아닌 저자가 말을 하는 것처럼 유화적인 모습을 만들어서 그곳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생활고를 만족을 시키는 일이 가장 중요할것 같다.


4. 교 육

주변국의 문맹율과는 다르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문맹율이 낮다고 하는데 그러한 이유가 지원을 하는 단체들에서 교육을 최우선으로 생각을 하는 방향이기 때문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많고 문맹율은 적지만 교육을 받은 내용들을 활용을 할수가 있는 사회적인 여건이 안되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발생을 한다고 볼수가 있다.


5. 환 경

이스라엘의 불법적인 행위로 인하여서 주민들이 살고있는 곳이 갈수록 좁아지고 그들의 행동반경이 줄어들면서 생활고가 심각해지고 일종의 섬으로 만들어서 자연스럽게 말살을 시키려고 하는 행동을 하고 있는데 그런 일에 대하여서 반응을 보이는 행동도 시간이 지나면서 약화가 되고 있다고 한다.

오랜 시간을 억압을 받고 살고있고 주변국들의 반응도 미지근한 상태이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켜도 돌아오는 것은 탄압과 죽음이라는 사실이 그곳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의욕을 상실하게 만들고 있다고 볼수가 있다.


6. 결 론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부분은 그곳에서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최소한의 자유이고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는데 그 최소한의 바램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고 갈수록 강화가 되는 주변의 정세가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고 있지만 주변국의 변화들로 인하여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감싸고 있는 환경도 변화가 될것을 기원을 하고 있는것 같다.

모르고 있었던 많은 부분들에 대하여서 새로운 정보를 알게되는 계기가 되었는데 일상적인 부분만이 아닌 다른 부분들도 책에 수록을 하였다면 더욱 좋았을것 같다.

1,2,3번 문항은 책이 아닌 글쓴이의 생각 입니다.


※ 이벤트 당첨도서입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3 2011.10.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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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 팔레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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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스라엘로 대표되는 근본주의 종교의 폐해, 그로 말미암아 세계 여러 곳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종교를 빙자한 정치/경제적 원인에 의한 전쟁, 인권의 탄압, 유린.. 뭐 새삼스러운 이야기도 아니고...   대표적인 이슬람 문명중의 하나인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이 천인공노할 행태에 이미 많은 사람들은 탄식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드러난 것처럼 대한민국의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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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스라엘로 대표되는 근본주의 종교의 폐해, 그로 말미암아 세계 여러 곳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종교를 빙자한 정치/경제적 원인에 의한 전쟁, 인권의 탄압, 유린.. 뭐 새삼스러운 이야기도 아니고...

 

대표적인 이슬람 문명중의 하나인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이 천인공노할 행태에 이미 많은 사람들은 탄식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드러난 것처럼 대한민국의 51%가 아직 깨닫지 못하듯이 아직도 미국이 주도하는 자신의 신과 돈만을 숭배하는 무자비한 헤게모니에 대해서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역할을 해주리라 생각한다. - 뭐, 널리 읽히진 않겠지만 만약 읽는다면.. 하지만, 이 책의 의미는 거기까지만으로 하자. 솔직히 깊이를 기대하기는 어렵고(그러기에 무척 짧고), 편집이나 구성에서도 낙제점을 겨우 면한 정도라고만 해두련다(한마디로 짜집기의 실패). 실재로 현지에서 발로 뛰며 느낀 저자의 노력과 책으로까지 펴낸 의지는 존경받아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이 부분에서는 감히 내가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이 책이 나에게 던져준 가장 큰 의미는 '부끄러운 대한민국'이다. 왜, 저 멀리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닥친 이 지옥 같은 현실에 이 머나먼 땅의 내가 부끄러워 고개가 숙여지는지? 내 조국에 대한 나 자신의 역할은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도 나의 조국은 떳떳하기를 바라는 것은 이기심일까? 책 말미에도 팔레스타인의 미래에 긍정적인 바람을 드러내지만, 그들이 이 세계의 구성원으로서 떳떳한 위치를 회복하게 되는 그 언젠가에 대한민국도 함께 떳떳하고 진심으로 그들을 축복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또 한가지,.. 박**정부가 구상중인 '미창과부(미래창조과학부)' 신설에 대해서 생각해본다.(웬 또 뜬금없는..) 물망에는 창조과학을 한다는 교수도 포함되어 있었다는데… 현 이 나라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지않은가?

YES마니아 : 플래티넘 d****b 2013.04.1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