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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연구하는데 "사관"이 중요하다고 한다. "사관"에 따라 동일한 사건이 각기 다르게 해석되고 평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양 역사학의 관점으로 보면 18세기 계몽주의 역사학의 시대를 이어 19세기에 실증주의, 마르크스주의, 민족주의 사관이 지배해왔다. 여기에 새롭게 아날학파도 역사학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한국 역사학계도 위의 사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주류가 실증주의, 재야가 민족주의, 한 때 대세였다가 시대가 변해 같이 밀려난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사관이라기 보다는 다양한 연구로 역사학에 재미를 주는 아날학파. 이렇게 나 혼자 분류해 본다. 그렇다면 나의 사관은 어디에 가깝나? 좌충우돌사관이다. 실증주의쪽 책을 읽을 때는 증거와 논증을 중요시하고,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책을 읽을 때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발르르 떨며 공감한다. 아날학파 영향을 받은' ***으로 보는 역사',' ***시대의 사람들의 생활' 류의 책을 읽을 때는 정감어리고 실제로 보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이래 저래 좌충우돌 사관이다. 하지만 내가 역사를 보고 읽는 뿌리는 이 명제다. 인간은 그들 생활의 사회적 생산에서 그들의 물적 생산제력의 일정한 발전 수준에 조응하는 일정한, 필연적인, 그들의 의사와는 무관한 제 관계, 생산관계를 맺는다. 이 생산 제관계 전체가 사회의 경제적 구조, 현실적 토대를 이루며, 이 위에 법적이고 정치적인 상부구조가 세워지고 일정한 사회적 의식형태들이 그 토대에 조응한다. 물적 생활의 생산양식이 사회적, 정치적 정신적 생활과정 일체를 조건지운다.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다. 사회의 물적 생산제력은 어떤 발전 단계에 이르면 그들이 지금까지 그 안에서 움직였던 기존의 생산제관계, 또는 이것의 단지 법률적 표현일 뿐인 소유제관계와 모순에 빠진다. -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마르크스
내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지당한 명제다. 지금까지 읽고 공부한 모든 역사책이 나에게 말한다, "경제가, 생산력이 역사의 원동력이고 인간의 이기심이 역사 갈등의 원인이다."라고. 마르크스주의를 이용해서 전체주의 국가를 만든 사이비 사회주의국가들 때문에 마르크스 역사학이 불명예를 얻고 있다. 마르크스가 원한 국가는 과거의 소련,중국,동유럽, 그리고 변하지 않는 북한과 같은 국가는 아니었을 것이다. 사이비 마르크스국가들이 진정한 마르크스 공부를 방해한다. 생산력이 21세기 들어서면서 최고조로 발전하고 자본은 더 이상 노동에 연연해 하지않는 21세기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 21세기형 생산관계와 상부구조는 어떤 모습일까?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단순한 글이 사람들 마음을 후비는 2013년 12월 "한물간" 역사학 책을 들여다 본다.
* 솔직히 역사유물론에 대한 여러 학자, 정파들간의 해석 차이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비슷 비슷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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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마르크스를 좋아한다. 왜 좋아하냐면, 그의 유물론적 사고가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나름 대로 마르크스 관련한 책들을 많이 읽어 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