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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호 신부는 참으로 외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적어도 처음엔 그랬다. 그러나 이제는 외롭지 않다. 아무도 일러주지 않았던 길을 걷다가 수많은 도반을 만났고 이젠 그 도반들과 같이 길을 걷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놀라운 것은 한 가톨릭사제가 현 문명의 심각한 질병을 깊게 통찰했다는 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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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의 솔직 담백한 마을일기를 보는 것 같습니다. 마음이 따뜻해졌 입가에 웃음이 슬며시 번지다 살짝 눈물이 났다가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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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있는 성찰로 신문에 칼럼을 쓰실때부터 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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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민동락 8년. 하지만 공동체.... 여전히 잘 모르겠다. 어쩌면 자꾸만 무슨 논리적인 해답을 찾으려고 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3년 전인가 읽었던 <산 위의 신부님>을 다시 꺼냈다.
공동체의 삶이란 그렇게 단조로운 색깔이 아니다. 공동체란 이상이라는 믿음과 현실이라는 관계속에서 뿌리를 내려가는 삶이다. 그래서 가뭄의 메마름도 있고 장마의 홍수도 있다
"하늘의 구름을 보면 다른 삶이 필요한 건 분명한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한 답을 낼 자신이 없다. 딱히 할 일은 보이지 않고 뭔가는 해야겠고, 그래서 공동체 운동이라도 하는 거다!"
걸음이 느리거나 빠르거나, 앞서거나 뒤서거나 모두 같은 길 위를 걸어간다. 앞서 간 걸음을 뒷 사람이 따라가야만 길이 된다. 뒷사람이 얼마나 중요한가. 사상도 삶도 그렇다. 나보다 앞선 삶이란 것이 있다.
너무 가까이 앞서가는 걸음은 가치가 적고, 너무 떨어져 가는 걸음은 현실성이 적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는 항상 세 걸음 앞서가는 사람을 두 걸음 앞선 자가 따르고 결국 모든 사람들이 그 길을 일반화시키며 진보해왔다. 인문학도 과학도 모두 그랬다.
소비문화는 우리의 삶을 가장 완전하게 지배한다. '원전건설반대'나 '방사능폐기장반대' 운동은 잘 할 수 있지만, 전기 문명 생활은 조금도 버리지 못한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믿음대로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p87)
사람이나 짐승이나 습관성 동물이다. '습'(習)이란 몸이 사물을 대할 때 일어나는 몸의 기억으로 자동 반응이다. '습관이 운명을 바꾼다'는 말도 있듯이 개인의 좋은 습관은 성품으로 평가받기도 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힘이 될 수도 있다. (p104)
생각해볼 것이 있다. 배고픈 시대의 노동자는 임금으로 착취당하고, 배부른 시대의 노동자는 문화로 착취당한다. 수입의 대부분을 문화, 교육비로 빼앗기고 있다는 말이다. 아니, 자발적으로 바친다. 땀 흘려 일하고 목숨 걸고 일자리를 지키고 임금을 확보한들 자신도 자녀도 임금 노예의 삶을 피해갈 수 없다. 의식주가 해결되고도 행복하지 못한 사람을 무엇으로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p114)
안락과 편리함이 주는 행복은 '쾌락'이라고 하지만, 노동의 보람이 주는 행복은 '만족'이라 한다. 건강이란 육신의 정상적 기능과 조화로운 정신 상태, 관계의 좋음을 말한다. 건강 상태가 행복한 사회의 척도다. (p167)
마을을 떠나기로 결정한 이유는 '관계문제', '농업노동의 어려움', 혹은 '자녀 문제' 등으로 딱 잘라서 말할 수 없지만 모두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공동체의 삶이란 그렇게 단조로운 색깔이 아니다. 공동체란 이상이라는 믿음과 현실이라는 관계속에서 뿌리를 내려가는 삶이다. 그래서 가뭄의 메마름도 있고 장마의 홍수도 있다. 마을을 떠나가는 이유도 그렇다. 그냥 '공동생활의 어려움' 때문이다.
홍씨를 볼 때마다 나는 사제로서 얼마나 믿음에 투철하게 일상 속에서 복음을 선포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반성한다. 또한 내가 진정으로 진보진영에 속하는지도 묻는다. 비평하는 사유만 날카롭고 행동하는 실천에서는 무기력한 '신념의 노화'가 진행중인 것은 아닌지 질문한다.
공동체는 나의 생각과 태도가 공동생활에 적합한지 끊임없이 살피며 살아가는 곳이다. 그래서 수행의 삶이 된다. 공동체로 유학 오는 순간부터 아이들이나 부모나 새 삶을 학습하기 시작한다. (p215)
작은 것은 아름답고 인격적이다. 가난한 삶은 창조적 가치와 지혜를 발굴하는 밭이다. 사람은 자신이 본래 살아야 할 동산에서 살아야 내가 누군지,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지, 참된 행복은 어디에 있는지를 배울 수 있다. (p218)
영성, 관계, 노동은 공동체의 세 기둥이다. 몸을 쓰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극복되고 함께 사는 관계가 향상되고 있다면, 삶을 대하는 태도가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다. 노동이 힘들면 몸 쓰는 일이 두렵고, 그것은 가족과의 관계문제에 투사되어 공동체에 대한 부정성으로 나타난다. 입촌해 살다가 퇴촌하는 가족들은 자체로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쓸만한 사람, 아닌 사람이 따로 없다. 어디에 내어놓아도, 어떤 시선으로 보아도 모두 좋은 사람들임은 분명하다. 공동체 삶을 수락할 정도라면 기본 이상의 수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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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의 분주한 삶을 살다보면 사실 팍팍하고 고단해질 때가 종종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