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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이미지 - 이것을 나는 설명할 지식이 없다. 그것이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었다.
학교에서 배웠던 시어에서 나오는 색채 이미지, 공감각적 이미지 이런 말들을 교육받은 기억은 있다. 시험지에서 나오는 정답을 찍기 위해 배운 것들을 쓸 수가 없다.
우선 책 제목「고요한 입술」, 이 제목의 시를 읽는 것이 좋겠다. 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펼쳐 보니 첫 번째로 당당히 전면에 내세웠다. 시인도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말일까?
이런 저런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고요한 입술은 그렇게 긴 시는 아니다. 그렇다고 정형화된 시도 아닌 듯 보인다.
그렇다고 딱딱한 시도 아닌 것 같다. 시에 대해 잘 모르는 나로서는 정형화된 운율이나 뭐 그런 것이 없어서인지 산문시라고 정의하고 싶을 뿐이다.
낡은 액자 속에 폭설이 내리는 이미지를 시인은 보여주고 있다.
어떤 화랑에 누군가 알 수 없는 화가의 그림 속을 보는 것 같다.
어떤 마을에 폭설이 내리는 장면을 그린 화가의 그림의 이미지는 하얗다.
그 하얀 이미지 속으로 전화선을 타고 검은 바다가 쳐들어온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대조적인 색채이미지.
그리고 뒤이은 시의 말은 운명.
하얀 이미지는 천사, 검은 이미지는 악마, 그리고 갈등하는 남자를 운명은 관망하고 있는 것일까?
네가 어떤 것을 선택할지 보겠다는 그런 태도를 취하는 운명.
희망은 찢어진 비닐봉지에서 빠져나갔다.
여기서 나는 이런 것이 생각이 난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판도라의 상자가 나온다.
제우스가 판도라에게 준 상자. 절대로 열어보지 말라고 했지만 결국은 악마의 꼬임에 열어보고 마는 인간의 나약함, 호기심을 보여주는 그 이야기가 여기서는 희망이 찢어진 비닐봉지에서 빠져나가는 것으로 보여주고 있다.
결국에는 판도라의 상자 안에 남아 있던 희망도 이 시에서는 결국 빠져나가고 만다.
희망도 인간에게 떨어져 나갔다는 말은 과연 무엇을 나타내는 것일까?
현대인에게는 희망조차도 남아 있지 않다는 말일까?
이제 절망해야 하는 것일까? 이런 저련 생각에 빠져들게 만들게 하고 있다. 이 시가.
세상의 무덤들이 타박타박 폭설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무덤은 죽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죽음이 폭설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죽음은 조용함이고. 멈춤이다. 그것이 폭설 속으로 들어갔다.
폭설은 시끄럽고, 움직임이다.
인간의 운명의 마지막이라 생각했던 죽음에서 다시 한번 부활을 이야기하려는 것일까?
노아의 방주에 탄 인간처럼 한 번 더 인간에게 기회를 준다는 말일까?
시인은 이 시에서 희망조차 없지만 그래도 인간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의 시가 마음에 들어왔다.
「도스 나들이」
컴퓨터 전공한 나로서는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떠나 관심이 가지는 시였다.
도스 - 검정 바탕에 암호 같던 글자를 열심히 모니터에 때려 넣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시인은 장보러 나가신 어머니를 떠올렸다. 그리고 어머니 왈
“…… 애들아, 글쎄, 어찌된 영문인지 …… 집으로 오는 길을 못 찾겠고 ……”
- 도스 나들이 중에서…
이런 심상을 생각했다는 것이 특이했다. 그리고 감탄했다.
내 앞에 시인이 이 시를 낭독했다면 아마 나는 일어서서 박수를 쳤을 것이다.
이 시 외에도 많은 시들이 있다.
시어와 이미지, 잘 어우려져 보인다.
시를 읽다보면 내 앞에 그림이 한 장 한 장 그려지는 것 같다.
시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 읽는다고 하더라도 아마 내가 느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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