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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작가는 의도치 않았겠지만 시기가 딱 물려 떨어진 것이다. 조선의 일반 사람들이, 그것도 남자들로만 오백여명 되는 사람들이 배를 타고 통신사라는 이름으로 일본으로 다녀온 이야기. 그들이 다녀온 그 기간동안 썼던 기록물들을 유산으로 인정해 준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들어볼 시간이다. 여행기는 예나 지금이나 인기를 끈다. 자신이 직접 가지 못하는 대신 다른 사람들이 남긴 기록들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하는 셈이다. 그래서 에세이중에서도 여행 에세이는 분위기를 타지 않고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이 책 또한 일종의 여행기라고 할수 있겠다. 여러가지 명목으로 조선에서는 사람들을 모아서 일본으로 여러차례 통신사라는 명목으로 보냈었다. 총12차에 걸쳐서 보내진 조선통신사.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들이 무엇을 목적으로 그곳에 갔는지 알지도 못했고 관심조차 없었다. 이제 그들의 글을 빌어서 직접적으로 볼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이 글은 1763년 도쿠가와 이에하루의 쇼군통치를 축하하러 간 계미사행단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의 출발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일단 한양을 출발해서 전국 각지를 돌면서 사람들을 모아서 부산에서 배를 타고 출발했어야 하는데 통신사가 보내진다 해놓고 연기가 되고 그러니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이유를 들어 빠지고 그 빠진 인원을 보충하느라 시간이 걸리고 이래저래 조선땅을 벗어나기도 쉽지 않은 형국이다. 겨우 모여서 부산에서 배를 타게 된 사단란. 그들이 가는 길은 평탄할수 있을까. 사람들이 여행을 떠날때 가장 고려햐야 하는 것 중에 하나가 파트너이다. 어디를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사람과 함께 가느냐도 중요한 것이다. 여기 이 사절단에는 남자들로만 구성이 되었다. 저마다 직급은 다르지만 남자들만 오백여명이 몰려가는 이 인파더미 속에서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더군다나 자신들이 받을 여비를 다 미리 받아서 남겨진 가족들이 먹고 살수 있게 해 놓고 가야하니 저마다 자신들은 빈몸으로 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오늘날 같으면 고작 한두시간 비행을 하면 닿을 수 있는 거리를 그들은 산넘고 물넘고 바다 건너서 몇달씩이나 여정을 가야만 하니 별별 일이 다 있었을 것이다. 그런 에피소드들을 그들이 남긴 기록으로 들여다 보는 일은 사뭇 재미나다.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만 있다면 재미도 없고 지루한 법, 역시 재미있는 사람은 어디를 가도 환영받기 마련이다. 여기 이 무리 또한 예외는 아니다. 어물전에 꼴뚜기가 필요하듯이, 약방에 감초가 필요하듯이, 나그네 무리에는 맛 간 놈이 필요하다.(292p)
이때 당시도 이런 일이 있었구나. 한창 선교사들이 조선에 들어 왔을 무렵이라고 볼 수 있다. 이때도 하나의 하나님을 두고 부르는 이름이 달랐고 저마다 믿는 종교가 달랐구나. 작각의 상상에 의해서 쓰여진 부분인지, 기록상 있는 부분인지는 몰라도 이 때문에 전 세계 곳곳에서 알라의 이름으로 테러가 자행되는 것을 보면 이 때부터도 이런 일이 있었다는것을 짐작할수 있다. 사람이란 정말 변하지 않는 것인가.
일본 사람이 이끄는 유럽파견 사절단이 세계를 일주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람들이 믿지 않음을 두고 나온 말이다. 예전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돈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믿지 않았던 일, 지구가 둥글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미친 놈 취급을 했던 일들이 다 이에 속하지 않을까. 누구인지 이름은 기억하지 못해도 그들이 한 여정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면 그 옛날에도 소식통은 다들 있었음이 틀림없다. 우여곡절끝에 조선을 떠나 일본으로 향하는 그들. 일본에 도착해서 두패로 나뉘어져 오사카에 남는 사람들과 육로로 도쿄로 이동하는 사람들로 나뉘어졌다. 그들이 이동하는 동안은 또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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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학과 풍자, 이야기의 진경(眞景) - 김종광 『조선통신사 1』 김종광 장편소설 『조선통신사』(다산책방, 2017)에는 작가 말마따나 영웅이나 화려한 미모를 지닌 여인이 나오지 않는다. 영웅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나오고 여인들이 나오긴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익히 아는 그런 영웅이나 미인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혁명이니 참사상이니 권력투쟁의 비정함이니 인생무상이니 지고지순한 사랑이니”(10쪽) 하는 내용도 나오지 않는다. “그저 잡다한 오백 가량의 사내가 삼백여 일 동안 일만 리 먼 길 다녀오며 동고동락한 이야기”(10쪽)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중심인물이 없으니 중심 이야기도 없다. 이야기에 중심이 꼭 있어야 하는 거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어찌 보면 이야기는 그냥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야기를 하면(들으면) 되는 거지, 거기에서 무슨 의미니 중심이니 따지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제11차(1763~64년) 계미 사행단으로 일본을 다녀온 사람들이 쓴 ‘사행록’들을 단서로 하여 작가는 사실과 허구로 이루어진 이야기를 소설 형식으로 쓰고 있다. ‘장편소설’이라는 말이 붙어 있기 하지만, 이 소설을 근대적 의미의 (장편)소설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근대소설은 무엇보다 ‘문제적 개인’이 나타나야 하는데, 이 소설에는 그런 인물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오백 가량의 사내가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내지만 그 이야기 속에는 한 시대를 대변하는 문제적 인물, 곧 세계사적 개인이 나오지 않는다. 작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지는 수많은 이야기를 나열함으로써 장편소설이라는 형식을 유지한다. 김종광 소설 특유의 해학이 소설 곳곳에서 넘쳐나지만 그것만으로 장편소설에 내재된 특성을 드러내는 건 힘들어 보인다.
영웅(문제적 인물)과 아름다운 여인이 사라진 자리를 작가는 어떤 이야기로 채우고 있을까? 영웅과 아름다운 여인은 없을지 몰라도 일반 남자와 여자는 셀 수 없이 이 작품에 드러난다. 영조가 단호한 의지로 금주령을 내린 상황에서 사람들은 몰래 술을 마시고 여인을 만난다. 술이 있고 여인이 있으면 자연스레 걸쭉한 해학이 뒤따른다. 진사 김인겸이 유명한 색골인 군관 임흘을 놀려먹는 이야기를 예시로 들어 보자.
임흘은 제 아비와 비슷한 나이인 김인겸에게 예천의 일등미인(물론 기생이다)을 소개해 달라고 조른다. 김인겸 입장에서 보면 참 싸가지 없는 놈이다. 그는 예천 기생들 중에서 일부러 천하 박색을 고른다. 기생 홍심이다. 쉰 살은 됨직한, 실제로는 서른대여섯 먹은 이 기생은 그 나이가 되도록 수청 한 번 못 들고 허드렛일만 해왔다. 임흘에게 술을 잔뜩 먹인 김인겸은 흰 비단으로 얼굴을 가린 홍심이 있는 방에 대취한 임흘을 슬쩍 밀어 넣는다. 임흘은 여인의 얼굴을 보고 싶어 애간장이 탄다. 제 꼴을 아는 홍심이 얼굴을 보여줄 리 없다. “소녀는 얼굴이 옥문보다 소중하니 먼저 옥문을 취하소서.”(39쪽)라는 말로 홍심은 제 목적을 이룬다. 뒷이야기를 더 할 필요가 있겠는가
야담(野談)에나 어울릴 법한 이야기로 작가는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 사실 이 소설에는 양반가 서출로 태어나 신분적 한계에 절망하는 선비들이 나오고, 가족들 먹여 살리려는 일념으로 통신사 길을 자처하는 숱한 서민들도 나온다. 수적(水賊) 출신인 추상우(격군)는 민중 영웅의 풍모를 내보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작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다른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세계와 따로 두지 않는다. 추상우는 하나님이나 여아이주를 외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이들에게는 광인으로 비칠 뿐이다. 평범한 서민들의 삶에 무어 그리 특별한 일상이 있겠는가? 윗사람이 시키는 일을 하고 그저 밥이나 먹으면 만족하는 게 그들의 삶이 아니던가. 그러다가 흥이라도 날라치면 누구보다 열심히 노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다.
정사, 부사를 비롯한 벼슬아치 양반들이 윗사람으로서 체통을 중시한다면, 격군으로 대표되는 서민들은 누군가의 입에서 나오는 음담이나 패설을 들으며 마음껏 제 흥을 발산한다. 잔치가 벌어지면 격군들이 모인 곳으로만 사람들이 몰린다. 양반들이 뒷방에서 비밀스레 하는 이야기를 서민들은 광장에서 드러내 놓고 이야기판을 펼친다. 말없이 노 젓기만 하던 이가 「심청전」이나 「춘향전」을 읽어주는 전기수(傳奇叟)가 되어 사람들의 혼을 빼놓는가 하면, 누군가는 노래로 또 누군가는 재기로 자기들이 가진 끼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 언제 어디에 있든 서러운 삶을 사는 사람들의 흥을 돋운다.
작가는 이들이 펼쳐내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때로는 해학적으로 때로는 풍자적으로 각색하여 우리에게 들려준다. 서얼 양반과 중인(역관)이 미묘한 갈등 상황을 연출하고 격군들 사이에서도 사소한 갈등이 불거져 나오지만, 그런 갈등들은 ‘이야기’라는 틀 속에서 하나로 버무려진다. 작가는 사람들이 벌이는 갈등 자체보다 그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나오는 이야기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임취빈이 스승처럼 여기는 ‘광광 작가’, 이기선장 변탁에게 물었다. “수십 년 전에는 네 곱절의 이문을 남겼대요. 지금은 열 곱절 이문을 얻을 수 있다는 게 동래 장사꾼들이 모두 하는 얘기예요…… 금제조에 따르면 ‘인삼을 몰래 장사한 자’는 목을 베서 걸고, ‘무늬 놓은 비단을 몰래 장사한 자’ ‘여인을 몰래 간통하여 무례한 짓을 한 자’ ‘우리나라의 숨겨야 할 사정을 누설하는 자’ ‘저 사람들한테 본토에서 나지 않는 물건 및 보물을 몰래 장사한 자’ ‘갖가지 서책·병서 및 숨겨야 할 문자 따위 물건을 몰래 누설하여 사사로이 통한 자’ ‘군기(軍器)를 몰래 팔고 산 자’ ‘진주(眞珠)를 무역한 자’ 등도 중한 처벌을 받게 되어 있지요…… 실제로 그런 자가 한 명밖에 없었을까요?” “큰일날 소리를 하네.” “원역들이야말로 그런 일 하기가 쉽지 않나요? 왜인이랑 접촉하는 것도 거의 자유롭고…….” “이야기의 기본은 말이다, 두루뭉술함이야. 더러 있었으나 밝혀지지 않았는지, 밝혀졌으나 합심하여 덮었는지,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것이지. 뭐든지 상고하여 쓸 필요가 없어. 쓸데없이 자세하면, 주제의식이나 깊이 혹은 문학적 울림이 아쉽다는 소리나 듣지.” (243~4쪽)
‘광광 작가’ 변탁의 입을 빌려 작가는 이야기의 기본을 ‘두루뭉술함’으로 정리한다. 어떤 사건이든 자세하게 쓸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왜 그런가? 자세하게 쓰면 “주제의식이나 깊이 혹은 문학적 울림이 아쉽다”고 변탁은 이야기한다. 사실을 사실대로 적으면 그것은 문학이 아니다. 사실을 촘촘하게 그려낸다고 해도 문학이 아닌 건 마찬가지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따진다면 우리가 사는 일상만한 게 있는가? 1년 동안 벌어진 조선통신사의 일을 두 권의 책으로 기록하는 건 무리이다. 어떤 글이 됐든 사실을 사실 그대로 적는 건 불가능하다. 하물며 소설이 아닌가. 소설은 무엇보다 허구적인 이야기이다. 허구는 사실을 넘어선다. 일일이 설명을 하며 사건을 전개하는 방식은 소설 형식에서 한참을 벗어나 있다.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것이지.”라는 변탁의 말을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조선통신사’라는 역사적 사실을 알고 싶은 사람은 그것을 다룬 역사책을 보면 된다. 역사책은 어쨌든 소설보다 사실에 더 가까운 서술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조선통신사라는 역사 정보를 우리에게 알리기 위해 이 소설을 쓴 게 아니다. 그는 사실 속에 허구를 집어넣는다.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허구인지 여기서는 중요하지 않다. 사실이 허구가 되고 허구가 사실처럼 보인 어떤 장면을 만들기 위해 작가는 당대 민중들의 살아 있는 언어, 곧 구어(口語)를 사용한다. 독자의 상상은 무엇보다 이 기름진 구어의 터전에서 펼쳐진다. 필담으로 의사를 주고받는 지식인들의 맞은편에 구수한 구어로 제 입담을 뽐내는 민중들이 있다. 김종광은 이 민중들의 입담으로 수많은 이야기들이 뒤섞인 장편소설=이야기를 쓰고 있는 셈이다. (2권으로 이어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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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나서야 했고 누군가는 다녀와야 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그들 바로 조선통신사들이다. 역사시간에 들었겠지만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제목을 보고 '아 이런 것도 있었구나...'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역사를 두루뭉실하게 알고 있는 나에게 조선통신사에 대해 물었더라면 벙어리가 되었으리라... 다행인 것은 그나마 지금이라도 그들에 대해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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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은 어떤 일이 있어도 그곳에 꼭 갔다오라는 명을 내린다. 그리하여 일본으로 떠날 사내들을 모집한다. 빠르기와 힘쓰기 등 여러가지 시험을 거쳐 선발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500명의 사내들이 일본으로 떠날 채비를 마쳤다. 그리고 그들의 여정이 시작된다. 장장 1만리에 이르는 일본 여행의 시작이다.
조선통신사... 단어만 듣곤 그들이 어떤 일을 했을지 짐작이 잘 되진 않는다. 다만 그들을 통해 다른 나라와의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그래서 한번 찾아봤다. 통신사에 대해...
조선통신사란 조선시대 조선에서 일본의 막부(幕府)장군에게 파견되었던 공식적인 외교사절이다. 1404년(태종4) 조선과 일본 사이에 교린관계가 성립되자, 조선국왕과 막부장군은 각기 양국의 최고 통치권자로서 외교적인 현안을 해결하기 위하여 사절을 각각 파견하였다. 이때 조선국왕이 막부장군에게 파견한 사절을 통신사, 막부장군이 조선국와에게 파견하는 사절을 일본국왕사(日本國王使)라고 하였다. 파견절차는 일본에서 새로운 박부장군의 승습이 결정되면, 대마도주는 막부의 명령을 받아 통신사청래차왜(通信使請來差倭)를 조선에 파견하였다. 이에 따라 조선 조정에서는 중앙관리 3인 이하로 정사, 부사, 서장관을 임명하고 300~500명으로 구성되는 사절단을 편성하였다. 여정은 한양을 출발하여 부산까지는 율로로 간뒤, 부산에서부터는 대마도주의 안내를 받아 해로를 이용하여 대마도를 거쳐 시모노세키(下關)를 통과하여 일본 각번의 향응을 받으며 오사카(大阪)의 요도우라(淀浦)에 상륙하였다. [출처 : 두산백과 朝鮮通信使]
일본과의 사이에서 오고가던 사절단이다. 이번 소설 '조선통신사'는 조선후기 통신사행 중 가장 눈에 띄는 사절단이었던 계미통신사(1763년~1764년)가 조선을 떠나 일본에 다녀오는 과정을 전부 옮겨 담았다고 한다. 책은 날짜별와 지역을 함께 담고 있어 그들은 그때 어떤 일을 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 500명의 사내들이 300일 동안 10,000리에 걸쳐 함께 동거동락하며 일본을 보고 듣고 돌아왔다.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책 속에도 언급되어 있다. 남자 500명이 술도 없이(당시 국가차원에서 금주령을 내렸다고 한다.) 그 긴시간 긴거리를 함께 했다고 하니 대단한 것이 아닌가... 물론 술 없이도 잘 지낼 수 있는 남자들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남자들 대부분이 그렇게 오랜시간 그것도 남자들끼리 있는 상황에서 그것을 참는 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초인과도 같은 힘을 발휘했을 그들이 대견하게 느껴지는건 나뿐이 아닐테다.
역사소설을 가끔 읽는다. 하지만 이렇게 주인공이 많은 소설은 읽어본 적이 없다. 어쩌면 없을수도 있겠다 싶었다. 물론 역사소설에도 많은 인물이 등장하긴 한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재미있다 아니면 훌륭하다 혹은 그냥 좋다라고 반응하는 소설들은 중심인물이 꼭 등장한다.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그는 그곳에서 중책을 맡는다. 그런데 통신사 그러면 누군가 한사람을 말하는게 아니라 함께 떠난 그들 모두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주인공이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작가님이 어떤 마음으로 이 글을 쓰셨는지 모르고 읽으면서도 '대단하구나' 했었다. 그런데 작가님의 의도를 제대로 봤던 것 같다. 어느 한사람 중심인물 없이도 모든 이들이 주목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신 듯 하다. 조선통신사란 이름만을 기록에 남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하나하나 되살려 주목받을 수 있도록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작가님의 손끝을 통해 책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지금 나를 비롯한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을 통해 다시 한번 살아 움직이게 된다. 잘난 인물들도 아니고 그렇다고 못난 인물들도 아니다. 평범한 듯 하지만 하나로 뭉쳐 큰 힘을 냈고 그들의 발자국은 지금도 대단한 자욱을 남기고 있다. 한번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모아 움직일 수 있었던 저력을 난 믿는다. 우리도 그렇게 모였던 기억이 있으니... 그들이 가졌을 자긍심 우리도 후손으로 가져도 좋다. 그들이 무엇을 위해 모였든 그들은 우리나라를 위해 그 먼길을 떠났고 돌아왔다. 그러니 그들의 행보 쫓아가보고 박수쳐줘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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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어르신들, 제가 통신사 이야기를 써보고자 합니다. 이번에 저도 일본 갑니다. 소동으로요. 제가 낱낱이 적겠어요. 본 것, 들은 것, 겪은 것, 여러 어르신의 이야기, 다 사연을 들어볼 겁니다. 높으신 분들 사연도 듣고 역관 나리들 사연도 듣고 격군 아저씨 사연도 듣고. ……중국이든 왜국이든 사신 다녀오면 꼭 일기 같은 걸 남기는 분이 있잖아요. 사행록 말예요. 근데
그건 높으신 분이 한자로 쓰신 거라 아무리 잘 번역을 해도 언문으로는 재미있게 읽을 수가 없잖아요. 그
책들이 안 읽히는 건 한자로 쓰였기 때문이 아니라 재미없기 때문이란 거예요.”
‘조선통신사 기록물’이 2017년 10월 31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회에 걸쳐 조선에서 일본으로 파견되었던 외교사절단에 관한 자료가 ‘세계의
기억’으로 그 보존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한국의 기록자들, 일본인들이 남긴 기록들, 한자로,
언문으로, 심지어는 일본글자 가나로 이러저러하게 끼적거린 글들은 삼백 건이 넘는다. 그런데 이렇게 풍부한 기록물을 가진 조선통신사인데 바로 그 조선통신사의 전모를 실감나고 흥미롭게 담아낸 소설은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조선통신사에는 영웅화할 만한 인물도 없고, 여자가
없어 사랑타령이 어렵고, 당파싸움이나 권모술수도 전쟁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종광 작가는 바로 그 없음에 매료되어 이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진정으로
쓰고 싶었던 역사소설이 바로 왕후장상, 영웅호걸이 나오지 않는 소설이었고, 그런 소설이 가능한 소재가 바로 조선통신사였던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이 작품은 5백만 사내가 3백 일 동안, 1만 리의 여행을 다녀온 일본견문록이 된다. 이 작품의 이야기는
사행록의 한두 줄을 재구성한 것이 반, 순전한 허구가 반에다, 박람강기
저술도 1할쯤 된다. 역사적 기록의 빈틈을 상상력으로 채운
작가의 4년 동안의 집념이 어떻게 펼쳐졌는지 기대가 되었다. 조선통신사란 조선시대 조선에서 일본의 막부장군에게 파견되었던 공식적인 외교사절을 말한다. 중앙관리 3인 이하로 정사 ·부사 ·서장관을 임명하고 300~500명으로 구성되는 사절단을 편성하였다. 여정은 한양을 출발하여 부산까지는 육로로 간 뒤, 부산에서부터는 대마도주의 안내를 받아 해로를 이용하여 대마도를 거쳐 일본의 각 지역에 상륙하는 경로였다. 실제로 조선통신사였던 500명 가까운 멤버들 가운데, 자신의 생각을 한문이라는 외국어로 적을 수 있었던 것은 양반이나 서얼·중인 같은 지식인 계급의 사람들뿐이었다. 사절단의 절대 다수였던 평민과 노비들은 일본에서 보고 듣고 생각한 바를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작품 속에서는 사절단의 절대 다수였던 그들이 일기를 쓰고, 책을 읽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덕분에 우리는 조선의 거리에서 활약하던 이야기꾼들, 책벌레들을 만나볼 수 있고, 당시에 유행이었던 책들과 출판 분위기등을 느껴볼 수 있다. 삼국지연의, 수호전, 초한지, 서유기 등등 중국 이야기가 판친 지 이미 수백 년이었고, 그 책들을 모방하고 변형한 조선인이 쓴 중국이야기가 덩달아 판친 지가 백여 년. 게다가 조선의 이야기라는 것도 구전설화를 짜집기 한 게 거의 전부였던 시절, 지금의 시대를 사는 조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낸 뎐이 있었냐는 극중 어린 소년의 목소리야 말로 당시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임취빈이 우쭐대었다. "소설인데 뭐 어때요?"
"동래에서 너는 사실에 충실할 거라고 그랬어. 이런 황당한 얘기는 소설이 아니라고 했잖아?"
"깨달았어요. 변탁
광광 작가님 말이 맞았어요. 사람들은 사실적인 얘기는 좋아하지 않아요.
권모술수, 전쟁, 비밀, 추리, 살육, 삼각 사각
연애, 강간 등등으로 도배되어야 해요. 오랑캐 대왕 관백
보는 날 아무 일 없이 사배만 하고 나왔다, 이런 얘기를 누가 읽어요?"
"최소한의 개연성, 사실성은
있어야 한다. 이건 너무 없다."
"왜요?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도 없잖아요?"
조선후기 평범한 사람들의 떼거리 여행을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역사
속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그런 조선의 모습을 보여준다. 종놈 삽사리, 격군
김국창, 소동 임취빈 같은 낮은 신분의 사람들도 여행의 기록을 남기고 소설을 지어 돈을 버는 세상, 신분과 상관없이 누구라도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이야기를 만드는 그런 세상 말이다. 통신사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진
조선의 5백 사내들, 한 번도 주목받지 못했던 오소리잡놈들의
진짜 이야기는 그렇게 실제 역사보다 더욱 그럴듯한 조선의 모습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특히나 절로 웃음을
자아내게 만드는 대목들이 많았는데,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장면들에서 잔잔한 재미들이 넘쳐 흘렀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이다. 이복선 격군 왕초 노릇을 하는 오연걸이
대체 왜 우리 배에는 놀던 놈 하나가 없냐며, 재담꾼도 없고 가수도 없고, 심심한 놈만 모였다고, 아무거나 좀 해보라고 닦달을 해대자, 이광하가 난데없이 책을 찾는다. 책이 있으면 책을 읽어보겠다고. 그가 심청뎐을 꺼내 읽은 지 담배 한 대 참 만에 이복선 격군은 죄 글썽거리기 시작했고, 임경업뎐을 읽자 다들 임경업장군이 된 것처럼 격정에 휩싸였고, 전우치뎐을
읽자 다들 배꼽을 잡고 날아다니는 듯했으며, 콩쥐밭쥐뎐을 읽자 또 한바탕 울음바다가 된다. 그야말로 공감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 한 장면 덕분에 나도 작가처럼 이 작품 속 찌질한 오백 사내들이 좋아지고
말았다.
이 작품은 특정 사건이나 인물을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조선통신사가
한양을 출발할 때부터 일본 강호에 갔다가 귀국해 임금 앞에 복명할 때까지의 전 과정을 따라간다. 그들의
희로애락, 그들이 보고 겪었을 별의별 일들을 생생하게 그려낸 여정을 보고 있노라면, 조선후기의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현재의 우리와 크게 차이가 없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로 공감대 형성이 되는 부분들이
많았다. 주요 인물들이 중심이 되어 어떤 사건을 겪고, 위기를
벗어나는 식의 구조도 아니었고, 처음부터 여러 등장인물들이 한꺼번에 나와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형식이라 다소 산만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저마다의 사연과 욕망을 지닌 그 수많은
인물들이 머나먼 길을 함께하는 동안 풀어내는 이야기 보따리는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계속 솟아나고 있었고,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도 끝나지 않고 이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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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요즘 이런 나의 편독에 뭇매를 내린 책이 있었으니 바로 <칼과혀>였다. 근간에 읽은 소설 중 단연 압권이었기에 <조선통신사>도 이전과는 다르게 스스럼 없이 도전할 수 있었다. 2권짜리 책은 간만이라 제법 긴 장편이겠구나 싶었는데 왠 걸, 아주 단편 모음집이라 볼 수도 있을 만 큼 작은 이야기들을 엮어 마치 한 사람이 쓴 듯한 일기장을 보는 듯 했다.
우선 이 책은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회에 걸쳐 조선에서 일본으로 파견되었던 외교사절단인 조선통신사에 대한 팩트를 바탕으로 한다. 최초 통신사의 구성 과정부터 그들이 한양을 출발해 일본 강호(도쿄)에 들러 다시 조선으로 귀국하는 동안에 내부적으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사람사는 게 다 마찬가지다, 라는 말은 과거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인듯 <조선통신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과 사건들은 21세기를 사는 우리네 삶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통신사 구성원들을 선발하는 초기 장면인 사공 및 격군 취재보는 날에 대한 묘사는 해학이 흘러 넘친다. 잡다한 의문과 해석, 갖가지 기대와 설렘들이 리듬 체조선수들의 날렵한 움직임처럼 공중을 가르며 교차한다. 오만가지 행색의 사람들로 북적이는 취재장(테스트장)을 마치 눈 앞에서 마주하고 있는 듯 선연했다.
뜀박질, 볏섬 나르기, 노젓기..
이 부분을 읽는 동안 3년 전 이맘 때쯤 천만관객을 동원하며 큰 인기를 누렸던 영화 <국제시장>이 뇌리에서 줄곧 떠나질 않았다. 독일 광산 인부로 지원한 사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체력을 과시하고 마지막 동앗줄이라도 잡는 듯 온갖 꼼수를 부려본다.
한평생 자신의 피를 팔아 가족을 건사하는 남자의 가족 이야기를 다룬 <허삼관 매혈기> 도 뇌리를 스쳤다.
거참, 뒈질지도 모르는 왜 땅에 뭐 주워먹을 게 있다고 한사코 가겠다는 건지, 희한한 일입죠. 널리 붙이지 않아도 구름떼처럼 몰려올 겝니다. 왜국 가는 일이 무슨 용궁 가는 일로 아는 멍청이들이 동래 시장 바닥에만 1만은 깔렸습죠.
얼마나 생이 힘이 들기에 이러하단 말인가. 더이상 잃을 것이 없는, 가진 것이라고는 달랑 지 몸뚱이 하나와 육신을 겨우 가리고 있는 천 한조각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척박한 생에 허덕이는 천민들의 운명만이 구슬펐을까?
무슨소리.
소인도 일본에 가고 싶어졌습니다. 도훈도 자리 하나를 빼달라고 뇌물을 바칠 주제도 못 되고, 수청 들라고 나리 방에 억지로 처넣을 딸내미도 없고, 비공식적으로는 방법이 없으니 공식적인 방법에 응하게라도 해달라는 말씀입네다.
상민의 신분들에게는 그저 감지덕지할 사소한 딱지나마 달고 있는 벼슬아치도 별 수 없던 모양이다.
이러저러한 사연을 거쳐 결국 모여 통신사가 결성되었다. 오호, 본격적으로 흥미진진해 지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자마자 경탄하게 된 부분이 있었으니,
아하, 남들 고려장 치를 나이에 나는 자유를 얻은 것인가. 나는 지금 일생일대의 쾌사로 여기고 가는 중이라네. 이 세상 하직하기 전에 왜국도 한 번 봐야지 않겠나.
함께 길을 나선 한학상통사 오대령(62세)의 패기는 실로 놀라웠고 감동을 주었다. 지금에야 제 2의 인생을 맞이한다는 나이지만, 저 때만 해도 40세에 하직하는 목숨들이 부지기수이던 시절 아닌가.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을 능가할 만큼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노인의 흥겨운 언변에 푹 빠져들고 말았다.
이렇게 초반부터 너무도 다양하고 박복한 사연들을 찰지게 기술하여 독자를 쥐고 흔들어 혼을 쏙 빼놓는다. 매 문장들이 잔가시가 과히 깊숙이 박혀 고름이 차오른 손 끝처럼 모두 굳은 심지를 가지고 있는데 그 묘사에 있어 해학미가 넘실넘실 흘러 넘치다 보니 우울에 빠지지 않고 웃어가며 읽을 수 있다.
아무리 왕권정치 하에 있던 시절이라 할지라도 통치자의 한마디대로 흘러갈 수는 없는 게 세상이라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이다. 시대는 변했지만 인간사 새옹지마 아니겠는가.
윗사람들이 툭하면 바뀌는 동안 아랫것들이 처음 정해진 그대로라면 말이 안 퇼 테다. 셋은 휘하 지휘관으로 조엄의 엄격하고 까다로운 성정을 진절머리나게 겪었다.
우리의 행차는 명색이 가닥이 많도 지향하는 바가 일정하지 않소. 까마기 떼와 무엇이 다르겠소? 그 5백 인을 통솔하기는 실로 군사 5천 명을 거느리기보다도 벅찰 것이오. 여러 사람을 거느리는 도리는 실로 거느리는 사람의 능력 여하에 달렸소.
외교란 잔인한 것이다. 부모는 죽인 원수 적국이라도,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는 사귈 수밖에 없는 것이니라.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봉이 김선달> 같은 풍자가 넘실대지만 그 속에는 깊은 회한과 서글픔이 서려있다. 산다는 것은 18세기 후반 조선이나 2017년 12월을 살아내는 우리나 전혀 다를 바가 없어 보이고, 바로 이 부분이 독자의 마음을 툭, 건드린다. 비록 멈추어 있는 상태였지만 이미 부풀대로 부풀어 오른 추에 손 끝이 닿는 순간 이미 움직임은 시작된다. 책이 끝나는 순간까지 그 추는 좌 우를 성실히 오가며 롤러코스터를 태운다. 웃다 울며 다양한 감정의 파도 속을 빠져 나오고 나서도 추는 진동을 남긴다.
그들도 그랬듯이, 우리도 살자. 살아내면 그만이다.
p.s 고단어 들이 워낙 많이 등장하다 보니 사전을 옆에 두고 책을 읽었다. 마치 영자 신문으로 공부하던 학창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물론 굳이 뜻을 찾지 않더라도 문맥상 다 유추가 가능한 것들이다. (예 : 고구, 옴나위, 격군, 저어, 소동, 추상같이, 별리, 짯짯이, 떠꺼머리, 청맹과니, 되우하다, 터수, 생청붙이다, 무지렁이, 자당, 의지가지, 두억시니, 신칙, 속신, 똥기다, 오롯하다, 상사람...)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이 나이에도 십대들에 뒤지지 않을 만큼 왕성한 호기심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던가. 궁금증을 참을 수 없다면 뜻을 찾아가며 읽는 것도 추천해 본다. 생전 접하지 못한 다양한 단어들이 한자어, 순우리말 여부에 관계없이 도처에서 매력을 뿜어낼 것이다. 이 또한 이 책의 큰 매력 포인트 였기에 덧붙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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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역사는 그랬다. 왕과 관련한 역사이거나 외침과 관련한 역사가 상당히 많다. 이순신 장군이 연승을 거둔 이야기는 알고 있지만 김성일이 일본을 다녀온 기록은 제대로 언급조차 하지 않고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특히 우리의 역사 사료 중에서 조선의 역사가 가장 많이 현존하고 있지만,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듬성듬성 기억하고 있을 뿐 제대로 조선의 역사를 파악하고 있지 않았다. 기득권과 권력을 우선하고, 역사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으며, 조선통신사에 대해 전체적으로 알 수 있는 김종광씨가 쓴 역사 소설 <조선 통신사 1,2>와 마주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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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입담과 구현으로 이야기꾼이라는 평을 받는 김종광 작가가 신작을 들고 찾아왔다. 책을 보면 더 솔깃해진다. 놀랍긴 아직 이르다. 조선통신사에는 영웅화할 만한 인물이 없다. 여자가 없어 사랑타령이 어렵다. 당파싸움도 권모술수도 전쟁도 없다. 나는 바로 그 없음에 매료되어 조선통신사를 쓴 게 틀림없다. 어찌 보면 무모한 짓일 수도 있다. 작은 토막글로 이뤄진 이 소설은 조선통신사의 여정을 낱낱이 보여준다. 지금처럼 해외여행에 자유롭지 못할 시기에 비록 2권이라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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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7명의 남자들이 332일간의 여정을 함께하면서 온갖 고생을 다 하고 돌아온 이야기. 역사에 기록되는 것은 그들이 겪은 일들이 아니라 높으신 분의 공으로 남겨지는 것 일 뿐이었는데 이 소설을 통해서 우리가 아는 단 몇 줄의 결과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어떤 사람들을 통해 만들어 진 것인지를 생생하게 읽을 수 있어서 재미있었습니다. 조선통신사로 떠날 인원을 뽑는 이야기부터 500여명에 달하는 남자들이 영조의 금주령 덕분에 술도 하지 못하고 온갖 고생을 하면서 배를 타고 일본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긴 여정을 십 여명의 주인공을 통해 보여주는 이야기랍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야 ‘조선통신사 기록물’이 2017년 10월 31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으로 등재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어요. 그동안 역사에 너무도 무지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끄럽네요. 책 소개에 나온 이야기를 적어봅니다.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회에 걸쳐 조선에서 일본으로 파견되었던 외교사절단에 관한 자료가 (한국 63건 124점, 일본 48건 209점으로 총 111건 333점) ‘세계의 기억’으로 그 보존가치를 인정 받은 것이죠.
책의 표지에 나온 '왕후장상과 영웅호걸이 나오지 않는 역사 소설을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소설의 주인공은 477명의 보통사람들입니다.
일본을 '왜'라고 불렀던 그 시절, 오랑캐에게 얻을 것이 뭐가 있어서 이렇게 술도 못 마시고 여자도 없이 사내놈들만 이 먼길을 가야하는지 의문을 품었던 그들은 곧 일본에 도착해서 오랑캐라 여겼던 일본 사람들의 삶을 보며 놀라게 되죠. 신분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그들과는 다르게 자유로이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조선이라는 나라에 돌아가는 그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이 이야기가 지금의 시대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 슬프고 마음아파요. 그렇지만 사회의 모순에 대해 이야기하고, 바꾸고자 노력하며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구조가 되었다는 것이 그래도 다행이죠. 늘 역사를 돌아보며 드는 생각이지만 우리나라가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조금만 더 개방적이었다면, 우리나라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다른 나라의 손을 빌어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그때 그런 결정을 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하지만 그런 역사를 지나 우리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니 먼 미래에 또한 같은 아쉬움을 남기지 않도록 현재를 열심히 살아 역사를 제대로 남기는 것이 우리의 몫이겠죠.
이 말은 일본에 통신사를 보내는 왕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네요. 그리고 이런 마음이 지금 나라를 위해 일하는 분들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나와 내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외교를 펼쳐주면 좋겠습니다.
'역사를 잊은 미족에게 미래는 없다' 이 말을 잊지 말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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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없던 새로운 역사소설의 지평을 열다 11차 조선통신사의 행적을 정교하고도 유쾌하게 그려낸 역사소설!
몇 달 전에 읽은 대마도 여행가이드북에서 유독 눈에 띄는 단어가 있었다. 바로 '조선통신사'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임진왜란으로 대마도인들이 더는 조선과 무역을 할 수 없어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던 중에 일본 전국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조선과 다시 관계를 맺어 조선통신사를 초청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고, 그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그 집안의 위패를 모신 흔적을 모셔두었다는 만송원을 비롯하여 마지막 조선통신사가 머물렀던 객사 국분사, 쓰시마 역사민속자료관에 있는 조선통신사 비와 통신사행렬도 등 다수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는 까닭이다. 대마도가 지정학적으로 대한민국과 일본을 이어온 섬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처럼 국사책에서 단 몇 줄의 설명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조선통신사의 자취가 그곳에 오롯이 남겨져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고작 아는 것이라곤 '조선과 일본 양국의 문화적 교류의 상징' 정도뿐이라 역사 속 생생한 현장의 감동을 크게 느낄 수 없어 퍽 아쉬웠다. 그런데 때마침 <조선통신사>라는 이름의 역사소설이 출간되어 지난 독서에서 덮어두었던 아쉬움을 만회할 기회가 생겼다. 왕후장상이 나오는 것도 아니요, 영웅호걸이 나오는 것도 아니라지만 어쩐지 이 책은 한 번쯤 꼭 읽어두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까지 이어져오는 양국의 뿌리 깊은 역사를 좀 더 사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았고, 통신사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졌던 조선 오백 인의 '진짜' 이야기가 무엇일까 과연 궁금해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5백 사내, 3백 일, 1만 리의 일본견문록
<조선통신사>는 조일전쟁(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이후 1763년에서 1764년까지 일본으로 파견된 제11차 계미사행단의 이야기를 그린 역사소설이다. 강호까지 다녀온 마지막 사행단으로 500여 명에 이르는 조선의 사내들이 332일, 1만 리라는 긴 여정을 다녀온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저자가 무려 4년 만에 소설로 구현해낸 집념의 작품이다. 이 소설이 흥미로운 것은 무척 '사실적'이라는 느낌을 준다는 데 있는 듯하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주인공의 대활약상을 그린 것도 아니고, 조선통신사라는 비교적 상징적인 이미지와 그 의의를 과대포장하지도 않을 뿐더러 우리 역사의 자긍심을 드높이는 대서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0여 명에 이르는 조선 사내들과 이들을 강호로 안내하는 대마도인을 비롯한 여러 등장인물들을 마치 옆에서 면밀하게 관찰한 듯 생동감 있게 구현해냈음은 물론, 조선통신사의 여정을 사실적이고 정교하게 재현해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재능 있어 뵈는데 뭘, 꼭 써야 한다. 살해일왕 어쩌고 그건 접어두고 먼저 얘기한 거 말이다. 동고동락한 거. 네 진심이 절반만 발휘되어도 읽을 만하지 않겠느냐?……. 원래 좋은 이야기는 많은 이에게 읽히지 않는 법이란다. 나라와 주군께 충성하고 어버이께 효도하자, 삼강하고 오륜하자, 좋은 놈 잘되고 나쁜 놈 망한다, 사랑은 숭고하다, 이런 도덕 염불로 도배된 이야기나 팔리지. 진짜 이야기는 알아먹는 사람이나 알아먹는 것인지라 안 팔리는 게 당연하다. 자기계발, 처세술 책보다 안 팔리는 게 진짜 이야기야. 대중이 못 알아먹거든. 하지만 진짜 이야기도 필요한 법이란다. 너에게 희망을 건다." / <조선통신사> 1 중에서 60p
소설은 총 책임자인 조엄을 비롯하여 부사, 종사관, 제술관, 군관, 서기, 역관, 의원, 화원, 소동, 악공, 격군 등 이들이 통신사 일행으로 차출되는 과정에서부터 돌아와 가족을 만나기까지 그 여정의 흐름을 차곡차곡 밟아나간다. 굉장히 많은 인물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선이 분산되거나 흐름이 끊어지지 않고 간결하면서도 유려하게 흘러간다. 그 중 도입부에 통신사로 파견될 아랫사람 수백 인을 차출하는 과정이 자못 흥미롭다. 족히 만 명은 넘는 인파들이 모인 가운데 시험과제가 제시되는데 첫 번째가 부산진지성 남문까지 선착순으로 뛰어 삼백 등까지 통과하기, 벼 한 섬을 지고 오백 보 이상 떨어뜨리지 않고 걷기, 노질하기 등이었다. 통신사로 가는데 이런 시험이 왜 필요하냐며 구시렁거리는 소리도 들리고, 사행단에 참가하면 꽤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줄 알았던 이들에게 기대할 것 없을 거라며 면박을 주는 소리도 들리고, 더러는 40년 가까이 용상에 올라 물러날 줄 모르는 영조와 그가 내린 금주령에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는 이들까지, 온갖 기대와 한탄이 뒤섞여 들려온다.
조선의 강렬함을 주지시킬 것이며, 왜국의 사정을 속속들이 살펴봐야 할 이 중대한 사행단의 의미야 더 말해 무엇할까마는 대체 누구를 위한 행차라 할 것인지, 이 수백여 명이 먹고 잘 곳을 마련해야 하는 각 지역에서는 이들에게 지공할 것들을 마련하느라 하루에 백여 금의 비용이 들 지경이니 각종 폐단도 만만치 않다. 신분 차별로 인해 아랫사람들이 비루한 대접을 받는 경우도 허다하고, 모호한 신분 처지들 사이에서는 서로를 깔보기도 하며, 각 고을의 여기저기서 온 사내들이 무려 오백 여명이 있는 곳이다 보니 감정싸움이 왕왕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한 번씩 가무와 놀이판, 이야기판과 같은 흥겨운 광경이나 단합이 이뤄지기도 하니 조선의 풍속과 저마다의 목소리를 매우 사실감 있고 유쾌하게 담아내는 저자의 놀라운 입담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구경은 잘한다. 도대체 이름도 모르겠는 그 진귀한 것들을 얼마나 실컷 봤는지 지금 내 눈이 내 눈이 아니다. 그게 다 어디서 오는 거냐? 불쌍한 팔도 백성들한테 빼앗은 거 아니냐? 다 그만두고 호피, 호랑이 껍데기 말이다, 그것만 열 장은 봤다. 죽여주더라. 호랑이 한 마리 잡으려면 얼마나 많은 인민이 개고생을 해야 하냐? …… 나도 알아. 주는 것만큼 받아온다고. 지들 딴에는 교린을 빙자한 무역이라는 건데, 문제는 지들끼리 나눠 먹는 거잖아. 팔도 백성은 그만두고, 봉물 싸고 나르고 쌔 빠지게 고생한 우리 격군, 아니, 격군 생병신들한테 떨어지는 게 있느냐고? 뭐, 쪼금 주기는 준다던데 받기 전에는 받은 게 아니고. / <조선통신사> 1 중에서 65p
대마도를 거쳐 강호로 들어가기까지의 여정 또한 참 만만치 않았음을 실감할 수 있다. 통신사가 꾸려지면 배를 타고 왜국으로 가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 사정으로 인해 조선 사공과 왜 사공이 일치되어야 배를 띄울 수 있음은 물론 각종 관행과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한 고장에서 여러 며칠, 수십 일을 지체하는 일도 허다했던 것이다. 문득 박물관이나 국사책에서 본 조선통신사 행렬도가 낯설게 느껴진다. 조선통신사 하면 자칫 조선인들로만 이루어진 행렬인 줄 알기 쉽지만 이들을 인도하는 강호인 천여 명, 배행하는 대마인 2천여 명, 통신사 수천 명, 호행하는 고장인 2천여 명 등 무려 만 명에 달하는 장대한 행렬이고 보니 어찌 온갖 일들이 벌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장엄하고 엄숙한 풍경 뒤에 이토록 지난한 여정이 숨어 있었음이 놀라울 따름이다.
통신사의 표면 목적은, 임금의 국서-별 거 아니고, 관백 직위 이어받는 것을 축하한다는 몇 문장-를 새 관백에게 전하는 '전명'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외교사절이 오가는 것은 겉으로는 간단명료해 보여도, 속은 시시콜콜 복잡하다. 뭐, 저런 사소한 문제 가지고 저토록 사생결단 우기고 버티고 티격태격한단 말인가. 단순한 목적 안에 오사리잡놈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 <조선통신사> 2 중에서 108p
어쩌면 다른 까닭은 다 빚 좋은 개살구고, 조선과 일본은 오로지 '초량왜관'을 유지하기 위한 보증수표로 통신사를 보내고 받았는지도 모른다. 통신사가 오가던 시절에 일본은 막대한 은 생산국이었다. 일본의 은이 교토에 모인다. 교토에서 대마도를 거쳐 초량왜관으로 들어간다. 은은 조선 서울로 옮겨졌다가, 중국 가는 연행사 편에 베이징으로 이동한다. 중국 베이징은 비단의 집결지였다. 조선 사신은 비단을 매입하여 귀국한다. 이 비단이 한양을 거쳐 초량왜관으로 들어간다. 대마도를 거쳐 교토로 들어간다. 일본의 최대 산업이 비단 방직이었다. 초량왜관은 중국·조선·일본을 잇는 비단길의 거점이기도 했고, 일본·조선·중국을 잇는 은길의 거점이기도 했다. 조선·일본 간 인삼길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 300p
제11차 계미사행단의 면면을 살펴보면 사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물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간혹 총 책임자인 조엄이나 한학 암물통사 이언진, 부사 서기 원중거의 이름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하다. 이 소설에 있어 가장 흥미로운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토록 낯설고 한 번도 주목받지 못했던 역사 인물들을 매우 입체감 있게 재현하면서, 동시에 커다란 역사 뒤에 숨겨진 이면의 역사들을 끄집어내 역사란 결코 한 단면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왕후장상이 나오지 않아도, 영웅호걸이 나오지 않아도 이 소설이 재미있는 이유다.
후대인들은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잘 알고 우러러보지만, 원중거의 『승사록』과 『화국지』는 잘 모르고 알아도 폄훼하는 경향이 있다. 학자의 눈에는 분명 수준 차이라는 게 확연하겠지만, 박지원의 책은 조선보다 앞선다는 선입견이 강했던 중국에 대한 기록이고, 원중거의 책은 오랑캐 금수의 나라로 여겼던 일본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에 무시당한 바도 크지 않을까? 강호에 머무는 통신사는, 사사건건 무식하고 해괴한 오랑캐놈들이라 깔보려고 애썼다. 한데 어떤지 오랑캐놈들의 격물과 문화가 더 발전되고 볼 만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느낌을 주체할 수 없었다. / 138p
책의 말미에 '조선통신사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는 소식이 적혀 있어 무척 반갑다. 덕분에 <조선통신사>역시 역사소설이라는 장르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의미와 가치가 있는 또 다른 기록물처럼 여겨진다. 부산에 가면 '조선통신사역사관'도 있다고 하니 언젠가 아이와 손잡고 가봐야겠다. 오랜만에 읽는 역사소설인데 정말 흠뻑 빠져서 읽었다. 세대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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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좋은 환경에서 평생을 근무하고 정년퇴직을 하신 분을 알고 있다. 그분이 직장을 퇴직하고 용돈벌이라도 할 겸 건물 청소 일을 하게 되었다.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일을 하러 갔는데, 막상 그곳에 가니 자신이 알지 못하던 세계가 있더라는 것이다. 건물 관리인이 있고, 그 관리인 밑으로 라인들이 있고, 이런 라인들을 잘 타고, 관리인에게 잘 보인 사람은 편안하고 좋은 곳을 청소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험하고 힘든 곳을 청소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나마 일이 힘든 것은 참을 수 있는데, 사소하게 부딪히는 시비와 갈등들을 견디지 못해 얼마 일하지 못하고 관두게 되었다고 말을 하셨다. 그러면서 결국 인간이 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다고 씁쓸하게 말을 하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