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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이희재씨가 번역한
책으로는 대니얼 데닛의 『마음의 진화』와
에릭 홉스봄의 『미완의 시대』를 읽었었다. 그러나 정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번역서가 아니라 『번역의
탄생』이라는 번역에 관한 책이다. 그 책을 통해서 번역의 의미에 대해 조금 깊이 생각했었던 것 같다. 마침 어줍잖게 번역이란 걸 하던 때이기도 했다.
그의 『번역전쟁』을 집어 들면서 번역에 관한 책을 생각했었다. 타 언어를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른 사회적 인식과 당파성 같은 것들 말이다.
예를 들면, 저자가 서문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populism을
‘포퓰리즘’이나 ‘대중영합주의’로 번역할 때와 ‘서민주의’로
번역할 때의 느낌, 그런 말을 쓰는 데 따른 의도성, 계급성
같은 것 말이다. 물론 그런 것도 있지만, 책은 그런 언어의
번역을 넘어선다. 물론 번역에 관한 책이다. 세계에 대한
번역!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에 많이 벗어난다. 우리가 독재자라 부르고 타도해야 할 파렴치한 지도자라 부르던 인물들(이를테면, 카다피, 무가베, 푸틴
같은)이 실상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 아니 그렇지 않다고
한다. 우리가 부러워하고 닮아야 하는 국가들이 실상은 금벌(금권
세력)에 휘둘리며, 그들의 이익에 복무하며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전쟁을 일으킨다고 한다. 진보와 극우의 개념도 다시 해석한다. 민영화가
실은 사영화(私營化)라고 한다. 유럽연합의 실상을 다시 들여다보고, 콩고 내전과 미얀마의 로힝야족
학살도 다른 시각에서 보게 한다. 심지어 홀로코스트에 대해서도 수정주의적 시각에서 질문을 던지도록 한다. 일본에 대해서도, 러시아에 대해서도 그동안 우리가 알던 것과는 다르게
해석한다. 당연히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가차없는 비판을 한다.
조금은 당혹스럽다. 어쩌면
과거에 읽었다면 당혹스러움은 덜하거나 아예 없었을른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 당혹스러움은 그후 내가 살아온
세월만큼 주류적 시각이 내 의식에 덧대어져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희재의 시각이 편파적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당혹스러움에도 끝까지 정독할 수 밖에 없는 건,
그의 시각이 한번은 곱씹어볼 만하기 때문이다. 아니, 그의
시각이 세계를 보는 데 공정한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국제적, 계급적 연대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면에서 새겨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시각도 하나의 시각이다.
그의 시각이 모두 진실이라고 볼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다고 여기는 그것이
실은 진실이 아니라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시각으로 세계를 볼 수 없도록 만드는 세력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희재의 책은 그런 세력과 그 세력의 시각과 전쟁을 하고 있다. ‘세계를 번역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