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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세상을 향한 아름다운 꿈(2) - 송은일 대하소설, 『반야 2』
인연은 언제나 변하기 마련이다. ‘영원한 사랑’이라는 말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마음속에서 빚어낸 환상일 뿐이다. 사랑을 영원히 지키려는 마음을 다잡아도 자신도 모르게 다가오는 인연 줄을 막아내는 건 힘들다. 동마로와 박새임의 인연이 그렇다. 한순간의 연민이 동마로가 가야 할 길을 막는다. 그 길을 막음으로써 다가올 비극을 그는 인지하지 못한다. 박새임은 어떨까? 한 남자에 대한 지나친 열정이 그녀를 치열한 불길이 이는 지옥으로 몰아넣는다. 반야를 향한 색정(色情)에 휘둘려 공부를 작파한 김근휘나, 권력에 대한 지독한 욕망으로 반야를 비롯한 무녀들을 한낱 색(色)의 도구로 생각하는 김학주 또한 자기네 삶을 지옥으로 만드는 건 마찬가지다. 정확히 말하면 마음이 지옥을 만드는 것이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지옥 불 또한 활활 타오른다. 지옥 불에 온몸이, 온 마음이 타버릴 것을 알면서도 이들은 제 욕망을 절제하지 못한다. 김학주를 증오하다 못해 그를 가장 비참하게 죽이려는 반야 역시 욕망에서 비롯된 지옥 불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리고 그 지옥 불들이 모여 사람들의 인생을 바꾼다.
신기(神氣)로 한양에서도 이름을 날린 반야는 궁으로 들어가 곤전(중전)을 만난다. 영조 대왕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소설에서 반야는 소조(小朝, 사도세자)를 추앙하는 세력(소론)과 긴밀하게 이어져 있다. 뛰어난 능력을 타고났음에도 소조는 아버지 영조의 의심에 끊임없이 시달린다. 곤전과 만난 그날 반야는 소조 마음에 쌓인 불길(심화)을 제어하려다 그만 자기 몸까지 다친다. 어린아이라 생각한 소조의 기운이 의외로 강해 반야가 미처 그에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더불어 죽을 수도 있는 화마였는데, 아직 어린 몸이라고 가벼이 여겼다. 치명적인 실책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 물러설 수는 없는 일. 이 교만이 나를 죽이리라, 하면서 반야는 다라니 소리를 높이며 동궁의 상체를 일으켜 끓어 안는다.”(67쪽) 반야는 분명 교만을 말하고 있다. 자기 생각에 빠져 바깥 돌아가는 상황에 신경을 쓰지 않는 일에 그녀는 ‘교만’이라는 말을 붙인다. 세 차례 다라니를 외우자 동궁=소조의 기세는 비로소 잦아든다. 동궁은 편안해진 반면 반야는 제 몸속 기운을 거의 소진했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가
궁에 들어갔다 나온 반야는 사신계를 움직이는 오령 회합(五鈴會合)에서 부령들에게 사신계와 임금의 관계를 묻는다. 백호부령은 사신계 계원들은 임금의 신하가 아니라 우리로서 이 나라에 사는 거라고 대답한다. 임금의 세상과 반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일품부터 경까지 동등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사신계이다. 그러므로 사신계는 원칙적으로 임금 없는 세상을 지향한다. 사신계 직책 상 최고위에는 사신총이 있지만 그 자리는 사실 ‘없는 자리’이다. 이한신이 맡고 있는 사신경은 사신총이 아니다. 가장 윗자리를 비워둠으로써 사신계는 중심이 있되, 여러 개의 중심을 둔 조직으로 거듭난다. 반야는 이리 아름다운 이상을 왜 나라 전체 백성들에게 베풀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백호부령은 이상은 일상일 따름이라고 답변한다. 사신계 구성원으로 살아간다는 건 자기 마음을 절제하는 삶을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자기 마음을 절제하며 더불어 사는 삶이 과연 가능할까? 유토피아는 이 세상에 없는 나라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하던가? 이 세상에서는 불가능한 나라니 사람들 마음을 더욱 휘어잡는 그 유토피아라는 거대한 환상!
작가가 꿈꾸는 유토피아에는 웅녀(熊女)와 호녀(虎女)가 빚은 꿈이 깃들어 있다.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에는 곰과 호랑이가 환웅천왕에게 사람이 되길 비는 이야기가 나온다. 「단군신화」로 알려진 이 이야기에서 곰은 동굴에서 삼칠일을 견디고 여인이 되었지만 호랑이는 삼칠일을 견디지 못하고 동굴을 뛰쳐나간다. 곰이 단군의 어머니가 되어 한민족 역사에 길이 남는 순간이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살짝 비튼다. 웅녀는 백일을 견디고 호녀는 그 기간을 견디지 못하고 동굴 밖으로 뛰쳐나간 것까지는 같다. 한데, 백일을 견딘 후 임신한 웅녀가 동굴 밖으로 나오니 호녀 또한 임신하고 있는 게 아닌가? 둘 다 환웅제석의 자식이다. 웅녀는 아들을, 호녀는 딸을 임신했다. 내심 딸 낳기를 기원하던 웅녀는 어이가 없다. 이러면 동굴에서 시련을 이긴 보람이 없지 않은가?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은 웅녀는 호녀를 물어뜯으려고 한다. 그런 웅녀를 향해 호녀는 호호, 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린 사람이야. 사람의 맘은 한 가지일 수만은 없어. 인내할 수 없는 것을 인내할 수 있는 것과 인내할 수 없는 것을 인내하지 못하는 것. 그 두 가지는 사람 안에 똑같이 들어 있는, 사람의 성정이야. 선악, 음양, 명암, 완급, 흑백, 개폐, 선후 좌우 등등. 숱한 이면이 공존하는 거라고. 너의 아들과 내 딸도 그렇게 서로의 이면으로 어울려 자라나게 될 거야. 너와 내가 그러했듯이. 그러니 화내지 마. 우린 곧 아기를 낳아야 하잖아? 환웅제석의 말씀을 너도 들었지? 난 제석님으로부터 천부인을 물려받았어. 넌, 천부령을 갖게 됐잖아? 천부인과 천부령이 같이 있어야 하듯, 너와 내가 함께 있어야 하고, 우리 자식들도 더불어 자라야 해. 너희 곰 겨레와 우리 범 겨레가 어울려 살게 된 것처럼 말야.”(161쪽) 반야가 읽은 『자명령』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란다. 웅녀는 단군을 낳았고, 호녀는 군아를 낳았다. 자명령(自鳴鈴)은 곧 만파식령을 가리킨다. 만파식령은 칠요 자신이었다(1권에서 밝혀짐). 반야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예시한 셈이다. 인용문은 ‘인내’라는 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람에게는 두 마음이 있다. 인내할 수 없는 걸 인내하는 마음과 인내할 수 없는 걸 인내하지 못하는 마음이다. 우리는 전자를 좋고 후자는 나쁜 것으로 평가하지만 그 둘은 사실 좋고 나쁨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에 내재된 두 마음이면서 동시에 한마음일 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 마음들을 항상 나눈다.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다. 좋은 것에는 의미를 붙이고 나쁜 것에는 의미를 없앤다. 한쪽으로 치우친 사람의 마음은 그래서 항상 분란을 일으킨다. 김학주를 서서히 죽이려고 한 반야의 ‘교만’이나, 조직과 상관없이 관아로 들어가 김학주를 죽인 동마로의 ‘교만’은 이렇게 다르면서 같은 마음을 이룬다. 돌려 말하면 바로 이 사건으로 해서 반야는 자기 마음속 교만과 똑바로 마주하게 된다.
어미(유을해)가 죽고 유일한 연인(동마로)이 죽는 비극을 대가로 이 여인은 자기 마음이 보다 단단해지는 계기를 얻는다. 그러나 이미 그 교만이 몸과 마음을 친 이후다. 지극한 슬픔을 마음으로는 견뎌내지만(신령들이 반야를 보호한다), 몸은 미처 그 상황에 대처하지 못한다. 반야는 그렇게 눈 먼 여인이 된다. 서양의 고대비극인 『오이디푸스』가 생각나지 않는가? 제 아비를 죽이고 제 어미와 결혼한 오이디푸스는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제 눈을 찌른다. 눈으로 보이는 세상에 집착하면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어둠을 느낄 수 없다. 반야는 눈이 먼 여인이 되어 자기 마음속 어둠으로 스며든다.
이런 상태로 7년이란 시간이 흐른다. 어미와 연인을 보낸 후 처음 한두 해 동안 반야는 비리를 저지르는 모든 이를 죽이라는 명령을 칠성부 무진들에게 내렸다. 복수다. 자기에 대한 끔찍한 복수. 자기 목숨까지도 노릴 수 있는 이 마음 상태를 반야는 어떻게 극복했을까? 어느 날 그녀는 곁에서 장난감 칼을 갖고 노는 아이들을 본다. 이한신과 유을해 사이에서 태어난 심경과, 동마로와 박새임 사이에서 태어난 한본이다. 그네들을 보다가 반야는 복수가 낳을 끔찍한 결말을 상상한다. 살인귀다. 세상을 망치고 자기를 망치고 아이들까지 망치는 살인귀 놀이에 자기가 빠져든 걸 반야는 비로소 깨닫는다. 반야의 마음과 상관없이 세상은 어김없이 돌아간다. 영조는 여전히 동궁을 괴롭히고, 동궁은 그것을 이기지 못하고 미쳐간다. 사신계는 동궁을 통해 자기들의 세상을 펼치려는 꿈을 꾸고 있는데, 동궁은 자꾸만 샛길로 접어들고 있다. 반야는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게 될까? 자기 슬픔을 절제하고 세상과 맞서는 반야의 뒷이야기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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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신앙을 전수해 나가는 인물들이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신계와 연결되고 사신계의 칠요가 된 반야는 무속인만을 골라 자신의 육욕을 채우는 김학주의 신분이 조선의 국정을 혼란케 한 노론과 소론의 대립, 그에 관연된 연줄이 사신계와 이어져 일반인들의 시각에는 무속이든 아니든 신적 존재를 믿는 종교인이든 앞날과 사람의 불교와 무속에대한 배척이 심한 조선시대이지만 반야에 대한 대궐의 호기심도 그런 추가되는 3편 이후의 내용들이 더욱 기다려 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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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문제이겠지요. 가지 않아야 할 길을 가게 되고, 만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찾게 되는 데에 작용하는 건, 결국 욕망이며 의지 아니겠습니까? 사람살이는 그에 따른 결과의 연속이고요, 이미 만난 사람을 피하는 방법은 다시 그를 만나지 않게 상황을 만들고, 아예 그를 잊는 것이겠지요. 그로 하여 화가 나거나 그로 하여 마음이 아프거나, 여하간에, 그와 연결하여 어떤 일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불가근불가원할 일이 아니라 아예 싹을 자르십시오, 소인의 예시를 듣고자 오시었고 만만찮은 복채를 내시었으니 소인이 드린 말씀을 유념하시리라 믿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게 제가 손님들께 받는 닷 냥분의 이야기입니다. 나리께오서 닷 냥이나 더 내주신 그 마음을 감사히 받겠사옵고, 그 마음에 대한 보답으로 더 하문하실 사항이 있으시면 말씀드리겠나이다. "(p2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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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흡입력 때문인지 1권을 이틀만에 읽고 난 후 바로 반야 2권을 손에 들었다. 1권에서는 각 인물들의 관계 및 그들간의 얽히고 설키는 내용들이 있었고 반야가 칠요가 됨으로써 이야기를 마무리 했다. 2권에서는 어떤 내용이 있을 지 기대가 되었다. 2권의 전반적인 내용은 반야가 칠요가 된 후 그 주변 인물과의 이야기와 더불어 사신계와 다른 조직이였던 만단사와 얽히는 이야기가 시작된다. 만단사의 일원이였던 김학주가 1권에서는 유을해와 반야를 괴롭혔으며 그 이야기가 2권에서 이어지면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만단사와 사신계의 주요 차이점은 사신계의 강령과 만단사의 강령 차이에 있다.
1권, 2권의 책 뒤에 설명되어 있는 내용을 여기에 작성하자면 사신계의 강령은 "모든 인간은 동등하고 자유로우며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의 삶을 가꿀 권리가 있다."라는 강령을 가지는 반면 만단사의 강령은 "모은 인간은 스스로 간절히 원하는 바 그 모습으로 살아야 하며 그런 삶을 얻을 권리가 있다."이다. 사신계의 경우 모든 사람을 생각하고 서로 편안해야 한다는 강령인 반면 만단사의 경우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중요성이 더 부각되어 있는 듯 하다. 이 외에도 두 단체 간의 가장 큰 차이는 칠요의 유무이다. 사신계의 경우 해당 단체의 흥망성쇠, 앞으로의 일을 칠요를 통해서 결정하고 이끌어가는 반면, 만단사의 경우 그 존재가 없기 때문에 서로가 생각하는 앞으로의 일을 해결해나가야 한다. 이 두 단체는 그 시대 국정 운영에 중심이였던 노론과 소론의 단체에까지 그 영향력이 미쳐 있었다. 만단사의 중요 요직에 있던 김학주는 반요를 끌어들이기 위해 유을해를 인질로 삼고 그들이 살았던 집을 불지르고 거기에 살았던 아이들을 다치게 하고 죽이는 파렴치한 일을 하게 된다. 이를 감지한 반야는 동마로에게 먼저 가 상황을 파악하고 도와주라고 하면서 만약 그 일이 이미 일어났을 경우 가만히 있으라고 설명한다. 그에 동마로는 알겠다고 한 후 그들이 사는 지역으로 이동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으며 동마로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반야의 어린 시절(1권) 반야는 김학주, 김근휘등 주위 인물들에 대해 내가 이들을 휘여잡을 수 있을것이라는 생각이였다면 2권에서는 그들이 반야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고 발생하는 일들에 대해 반야의 죄책감과 반성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와 더불어 각 인물들의 정리를 통해 다음 세대로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중요 사건이 발생된 후 반야의 나이 스물 후반이 되면서 책의 이야기는 각 단체들의 이야기로 더 자세히 빠지게 된다. 각 단체가 추구하는 이상과 사신계로 점점 조여오는 만단사의 계략들, 이와 더불어 1권에서 아이들이였던 반야의 동생들이 성장하여 벌어지는 그들의 이야기등 많은 일들이 빠르게 진행되고 이에 대한 내용을 사실적으로 작가가 표현하면서 빠져들게 되는 2권이였다. 2권의 마지막은 궁으로 들어가 점사를 마치고 나온 반야와 사신계 일원들을 습격하는 장면에서 마무리 된다. 아마도 습격하는 다른 단체는 만단사이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을 남기고 2권의 책은 마무리된다. 1권 2권을 다 읽고 난 후 다음 권에서 어떻게 일이 진행 될지 궁금증이 커졌다. 이와 더불어 그 시대에 있었던 무녀, 여성으로써의 차별적 대우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설화, 신화적인 내용을 포함함으로써 어떻게 이러한 생각을 했을지 송은일 작가에 대한 대단함을 느꼈다. 전 10권으로 이루어져있는 이 책이 앞으로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될지 궁금함을 유발할 수 있게끔 제1부의 이야기가 잘 정리되어 있는 것 같다. 반야 1권의 서평에서 상상했었던 퇴마록과 뿌리깊은 나무를 기대했던 나로써는 이 책을 읽기에 잘 한 선택이였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 민족의 역사에 스며들게 이야기를 진행하며 많은 상상력을 할 수 있게 하며 그 사이 진짜로 이런 단체들이 있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을 할 수 있게 하는 재미있는 책이였다. 빠른 시일 내에 다음 권을 사러 서점에 방문해야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