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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세상을 향한 아름다운 꿈(4) - 송은일 대하소설, 『반야 4』
태어나야 할 자는 어김없이 태어나고, 죽어야 할 자는 어김없이 죽는다. 사람살이를 포함한 생명살이가 그렇다. 태어남 속에 이미 죽음이 동반되어 있지 않은가? 태어남과 죽음이 이러하니 인연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아주 먼 곳에 있는 인연이 어느 날 갑작스레 바로 곁으로 다가와 사람을 혼란에 빠뜨린다. 이온을 호위하는 무사인 윤선일이 그렇다. 비휴 출신으로 호위무사가 된 윤선일이 이록의 고명딸인 이온과 엮이다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거기다가 이온은 윤선일의 아이까지 잉태했다. 두 사람 다 원치 않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운명은 이렇게 갑작스레 사람들을 덮친다. 철저한 준비를 한다고 이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다. 신기(神氣)가 뛰어난 반야조차도 자기 운명은 엿보기 힘들지 않은가? 그렇다고 우리가 운명에 완벽히 얽매이는 건 아니다. 운명은 언제나 사람들로 하여금 선택의 여지를 남긴다. 우리가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일에는 우리네 의지가 이래저래 개입하고 있는 셈이다.
이온과 윤선일 사이에 태어날 아기는 억울하게 죽은 조이현의 영혼과 이어져 있다. 이현이 이온의 몸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이다. 반가의 딸인 유을해(채정)가 반정에 가담한 남자의 씨를 받아 반야를 낳은 일과 비슷하다. 반야는 이 아기를 차기 칠요로 생각하는 것일까? 3권 마지막 부분에서 이현은 다시 태어나 무녀의 길을 걷고 싶다고 반야에게 말한다. 무당 기운을 받아 두 번이나 끔찍하게 죽은 전생을 기억하고도 그녀는 무녀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다. 만단사 사령의 딸인 이온과 호위무사 윤선일 사이에서 태어났으니 이 아이(‘미연제’가 이름이다)는 세상에 제 얼굴을 내놓기도 어렵다. 유모 손에 비밀스레 길러질 운명이다. 아기를 낳기 위해 이온과 윤선일은 청나라 사신사를 따르는 척 대열에서 빠져나와 몸을 숨긴다. 온양댁(동마로의 아내이자 김근휘의 첩)의 도움으로 무사히 아기를 낳은 두 사람은 청나라 사신사가 돌아오는 시점에 다시 만단사로 복귀한다.
반야는 본격적으로 만단사를 이끄는 이록과 맞서 싸우는 길에 나선다. 이록과 각을 세우고 있는 거북부령 황환의 정실이 되어 만단사 내부로 침투하는 길을 연 것이다. 그 이전 이록은 반야를 아내로 맞으려는 욕망을 공공연히 드러낸다. 화씨가 이록의 마음을 알고 반야를 죽이려 하지만 도리어 제가 죽음을 맞는다. 대궐 곤전이 승하자자 이록은 한양으로 올라가고, 그 길에 화개에 들러 반야에게 자기 집에 들어올 것을 명령한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반야는 미인계를 써 황환과 인연을 맺는다. 만단사 부령의 아내가 되어 이록과 싸울 거점을 마련한 것이다. 반야가 황환을 자기편으로 이끄는 과정이 재미있다. 미인계는 여자가 아름다운 용모로 권력이 있는 남자에게 다가서는 계략이다. 황환은 반야에게 한눈에 반한다. 거기다 반야는 거상(巨商)인 황환의 재산에 욕심을 내보이지 않는다. 이록이 황환을 찾아와 중석(반야)을 사신계의 핵심 인물로 지목하지만 황환은 이록의 말을 믿지 않는다. 만단사 내부에 있던 틈이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록은 딸이자 칠성부령인 이온에게 양평 흔훤사를 관장하는 향업 무녀를 제거하라는 밀명을 내린다. 향업 무녀를 사신계 칠성부를 이끄는 칠요로 판단한 것이다. 향업이 칠요가 아니라고 해도 그녀를 죽이면 반드시 사신계가 움직일 거라고 그는 생각한다. 고심하던 이온은 명령을 따르기로 한다. 호위무사 선일이 만류하지만 이온의 결심은 확고하다. 향업을 비롯한 세 명의 무녀를 죽인 이온은 죄 없는 사람들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떨고 그 와중에 선일과 관계를 맺는다. 그들 사이에서 조이현이 다시 환생을 하는 것이 참 묘하다면 묘한 인연이다.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미연제가 반야를 잇는 칠요가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죽은 자리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자연 이치만은 어김없이 여기서도 실현된다. 딸을 낳았다고 해서 이온과 선일이 혼인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엄격한 신분 차이는 여전히 남아 있지 않은가
윤선일은 그림자 도둑으로 알려진 이가 스승 정회맹이라는 것을 우연히 알아낸다. 그는 효맹이 이온을 매개로 하여 사령 자리를 노리고 있는 걸 알고 있다. 하여 선일은 이온을 보호하기 위해 김강하에게 효맹이 그림자 도둑이라는 정보를 넌지시 흘린다. 그림자 도둑을 잡으라는 소조의 명령을 받은 강하는 화반(華伴, 소조를 모시를 사람들)들과 연합하여 결국 효맹을 잡는다. 호위대장이 잡혔지만 이록은 여전히 무사하다. 그와 연결되는 끈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효맹은 황환과 중석(반야)이 혼인한 사실을 이록에게 알리지 않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죽은 자의 자리를 선일이 대신한다. 그는 역병이 돌 때 죽은 윤씨 집안의 자손이 되어 반가의 자식으로 변신한다. 윤홍집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인생을 얻었지만, 그가 살아갈 삶이 별다르게 바뀐 건 없다. 다만 이온을 호위하는 무사에서 이록을 호위하는 무사로 직책이 바뀌었다. 아기를 낳고 칠성부령 자리로 돌아간 이온은 선일을 아는 체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 속에서 선일은 정체를 모를 허탈감을 느낀다. 이래도 저래도 참 힘들기만 한 인생이다.
반야는 연화당이라는 이름으로 황환의 아내가 되었지만, 이무영과는 여전히 연인 관계를 유지한다. 반야에게는 이무영만이 유일한 연인이다. 무녀로서, 칠요로서 살아야 하는 삶이 버거울수록 그는 무영의 얼굴을 마음속으로 그린다. 이 소설을 지은 송은일은 여성작가답게 연인을 대하는 반야의 마음을 세심하게 그린다. 김강하와 윤선일(홍집)을 오가며 갈등하는 이온의 마음을 표현할 때도 그렇지만, 사랑하는 이를 대하는 반야의 마음을 표현할 때마다 작가는 스스로 사랑하는 여인이 된다. 자기 마음으로 인물을 그려내고 있다는 말이다. 현실 속에서 상상을 이끌어내는 형국이라고 할까?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보이는 마음을 읽다 보면 그래서 애가 탄다. 이루어질 듯 이루어지지 않는 연인들의 사랑에 직면할 때마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새겨진 황홀함에 자꾸만 빠져들기도 한다. 사랑은 이래서 좋은 것일까? 사랑이 사랑으로 남을 때와 집착으로 변했을 때를 생각한다. 사랑이 집착으로 변하면 세상은 이내 지옥으로 변한다. 반야는 그것을 안다. 그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사랑에는 절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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