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9)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56%
  • 리뷰 총점8 33%
  • 리뷰 총점6 11%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9.0
  • 50대 8.0

포토/동영상 (2)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2017 결산][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장석남 저.
"[2017 결산][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장석남 저." 내용보기
2018. 2. 5. 월. 장석남 시인은 1965년생으로 인천출생이며 1987년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여러 권의 시집과 산문집을 출간했으며 김수영 문학상, 현대 문학상, 미당 문학상, 김달진 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는 문창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라는 시집의 제목에서부터 시인의 여리고 고운 마음이 살포시 느껴진다. 우리가 일부러 꽃밭에 들어가서 꽃을 밟을
"[2017 결산][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장석남 저." 내용보기

2018. 2. 5. 월.

 

장석남 시인은 1965년생으로 인천출생이며 1987년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여러 권의 시집과 산문집을 출간했으며 김수영 문학상, 현대 문학상, 미당 문학상, 김달진 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는 문창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라는 시집의 제목에서부터 시인의 여리고 고운 마음이 살포시 느껴진다. 우리가 일부러 꽃밭에 들어가서 꽃을 밟을 일이야 없겠지만  봄에 여기저기 길가의 틈에 돋아나는 꽃과 풀을 자신도 모르게 밟을 수는 있다. 특히 보도블록 사이에서 뾰족하게 얼굴을 내미는 작은 풀은 의식하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밟고가는 일이 많다. 걔네들도 생명이니 얼마나 아플까라고 생각 하는 시인. 아주 작은 생명에게까지 미치는 시인의 마음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크기로 생명의 경중(輕重)을 따질 수 없다는 걸 우리모두는 알지만, 바쁘게 살면서 작은 것들은 알게 모르게 무시하거니 밟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중요한 것은 생명 그 자체이지 크기나 종(種)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며 반성하게 되는 대목이다.  

작은 꽃 때문에 발이 땅에 닿는 것을 근심하는 여린 심성의 시인이 펼치는 시의 향연으로 들어가보자.

 

 

 

소풍

 

소매 끝으로 나비를 날리며 걸어갔지

바위 살림에 귀화(歸化)를 청해보다 돌아왔지

답은 더디고

아래위 옷깃마다 묻은 초록은 무거워 쉬엄쉬엄 왔지

푸른 바위에 허기져 돌아왔지

답은 더디고                               --- 10p.

 

휘적휘적 "나비를 날리며" 소풍을 가던 시인이 "바위 살림에 귀화(歸化)를 청"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바위가 되고 싶다는 걸까. 아님 바위 곁에서 살고 싶다는 걸까. 바위가 대답이 없자 "옷깃마다 묻은 초록"이 "무거워 쉬엄쉬엄"오는 시인은 "허기"가 졌다. "답은 더디"기만 한 바위 때문에 "허기"가 졌던 소풍이지만, 이 소풍이 그렇게 안타깝다거나 슬퍼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자연과 어울리고 싶었던 시인이 바위의 답을 끝내 듣지 못하고 돌아온 것에 살짝 아쉬워하는 느낌만 들 뿐. 워낙에 시인은 돌을 좋아했다고 하던데, 아예 바위가 되고 싶은 시인, 그냥 자연 속으로 스미고 싶은 시인의 마음에 아직은 인간세상에 더 있어야 한다고 바위가 밀어낸 것은 아닐까. 세상에 좋은 시를 더 많이 남기고 오라고, 아직은 쓸 시가 더 남아 있다고, 그 시 다 쓰고 오면 귀화를 허락할 거라고, 바위는 무응답으로 답하며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불멸

 

나는 긴 비문(碑文)을 쓰려 해, 읽으면

갈잎 소리 나는 말로 쓰려해

사나운 눈보라가 읽느라 지쳐 비스듬하도록,

굶어 쓰러져 잠들도록,

긴 행장(行狀)을 남기려 해

사철 바람이 오가며 외울 거야

마침내는 전문을 모두 제 살에 옮겨 새기고 춤출 거야

 

꽃으로 낯을 씻고 나와 나는 매해 봄내 비문을 읽을 거야

미나리를 먹고 나와 읽을 거야

 

나는 가장 단단한 돌을 골라 나를 새기려 해

꽃 흔한 철을 골라 꽃을 문질러 새기려 해

이웃의 남는 웃음이나 빌려다가 펼쳐 새기려 해

나는 나를 그렇게 기릴 거야

그렇게라도 기릴 거야                           --- 11p.

 

제목에서 느껴지는 <불멸>이라는 것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겠다는 말로 보이는데, 내용에서는 자신의 "비문(碑文)"을 쓰겠다고 한다. 비문은 죽은 뒤에 무덤 앞에 세우는 비석에 새기는 문장이다. 그럼 시인은 영원히 살면서 자신의 비문을 매일 읽겠다는 뜻인가. "가장 단단한 돌을 골라 나를 새기려"는 시인은 비문을 "꽃 흔한 철을 골라 꽃을 문질러 새기려" 하고 있다. 또 그 새긴 비문을 "꽃으로 낯을 씻고 나"오거나 "미나리를 먹고 나와"서 읽겠다고 벼르고 있다. 비문과 꽃과 미나리는 전혀 상관이 없는 단어들이지만, 그들은 시 속에서 하나로 어우러져서 아름다운 시를 탄생시켰다. 스스로를 "그렇게 기"리고 싶은 시인의 마음 속에는 자연으로 동화되고 싶은 바람이 강하게 있는 것 같다. 앞 시에서는 바위에 귀화를 청하더니, 이제는 스스로 자연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하게 드러난다. 이 시인에게 전생이 있었다면 아마도 바위나 꽃이나 나무가 아니었을까. 이처럼 자연으로의 동화를 간절히 꿈꾸는 시인이라니. "꽃으로 낯을 씻고 나와"서 혹은 "미나리를 먹고 나와"서 나도 시인을 기리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시가 세상에 남는 한, 시인이 남긴 시를 읽어주는 독자가 있는 한, 시인이 꿈꾸는 불멸(不滅)은 터무니없는 꿈이 아니다. 그럼 시인이 새기는 비문은(碑文) 결국 시(詩)라는 결론으로 도달한다. 비문을 새기듯이 시를 쓰는 시인, 그 시인이 장석남이다. 

 

 

 

입춘 부근

 

끓인 밥을

창가 식탁에 퍼다놓고

커튼을 내리고

달그락거리니

침침해진 벽

문득 다가서며

밥 먹는가,

앉아쉬던 기러기들 쫓는다

 

오는 봄,

꽃 밟을 일을 근심한다

발이 땅에 닿아야만 하니까                 --- 12p.

 

어제가 입춘인데, 시 제목이 <입춘부근>이다. 딱 요즘에 맞는 시가 아닐까 한다. 아직 날씨가 춥기는 하지만, 날짜는 어김없이 가고 계절에 맞게 절기도 어김없이 찾아온다. 봄의 입구인 입춘(立春)에 시인은 창가에서 "끓인 밥"을 먹는다. 아마도 식은 밥이 있어서 그냥 먹긴 너무 차가우니까 끓여서 먹는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시인은 "앉아 쉬던 기러기를 쫓는다". 이제 곧 봄이 올텐데, 아직도 떠나지 않은 겨울철새인 기러기를 겨울나라로 보내기 위함이다. 더 함께 하면 기러기가 버틸 수 없을 것을 알기에 기러기를 위해 쫓는 시인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리고 시인은 "꽃 밟을 일을 근심한다". 어디서든 일부러 꽃을 밟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봄이면 여기저기 길의 틈바구니에서 피어나는 풀이나 꽃을 걱정하는 시인의 마음이 여리고 순하고 포근하게 다가온다. 걸어다니려면 "발이 땅에 닿아야만 하"는데, 발을 들고 다닐 수도 없고, 땅만 보면서 꽃을 피해 다닐 수도 없고, 참 봄마다 난감한 고민에 휩싸일 수 밖에 없는 시인의 마음이다. 이제 곧 굳었던 흙덩이를 힘겹게 밀어내고 새싹들이 얼굴을 내밀텐데, 그 새싹들을 밟지 않기 위한 시인의 걸음이 상상된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순 없다]의 주인공 잭 니콜슨 처럼 까치발을 하고 보도블록의 금을 피해서 춤추듯 다녀야하는 것은 아닐까.  

 

 

 

눈사람의 스러짐

 

나는 녹는다

먼 옛날의 말씀이 나를 녹인다

나는 소리친다 소리친다

누구도 듣지 않으므로

발밑에서 질척인다 나의 외침은

 

나의 스러짐

이것이 무엇입니까? 외침은

오래된 종소리와 같다

종소리의 멀어짐과 같고

종소리의 반복과 같다

소리가 되다 남은 종과 같이 침울하고 어두컴컴하다

 

나의 외침이 마저 사라지기 전

나는 이렇게 더 뇌어본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자유입니까?

보일러가 으르렁대는 밤

나는 낯선 수로를 걸어갔다                 --- 38p. 39p.

 

눈사람은 사람이 만든다. 그리고 사람이 부수기도 하지만, 그대로 둘 때 저절로 녹아서 사라진다. 눈사람으로 만들어져서 기온에 따라 얼기도 하겠지만, 결국엔 점점 녹아들면서 "누구도 듣지 않는 소리"를 외치다가, "오래된 종소리와 같"은 소리로 반복하다가, "소리가 되다 남은 종과 같이 침울하고 어두컴컴하"다가, "이것이 무엇입니까? / 자유입니까?"를 뇌어보다가 사라진다. 스르르 물이 되어 "낯선 수로를"따라 흘러가 버리는 눈사람은 눈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그냥 물로 되어 사라져 버린다. 사람을 닮은 눈사람의 짧은 생애는 우리 인생의 축소판 같다. 우리도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외치다가, 나는 무엇인가를 질문하다가, 이것이 자유인가, 진정한 자유는 무엇인가를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답을 찾지 못한 채 스러져버리지 않는가. 과연 삶은 외침의 끝에서 스러지는 것인가. 사람이 눈사람을 만들고 그 외침에 귀 기울이지 않고 그 스러짐을 그냥 두듯이, 신 또한 사람을 만들고 그 외침에 귀 기울이지 않고 그 스러짐을 그대로 두는 것은 아닐까. 신이 우리를 만들었듯이, 우리들 또한 신을 흉내내서 눈사람을 만들고 보는 것은 아닐까. <눈사람의 스러짐>을 읽으며 결코 그냥 넘길 수 없는 우리들의 삶을 사유해 보는 시간, 눈사람이 우리 같고, 우리가 눈사람 같은 마음에 괜히 울적해지는 시간이다.

 

 

 

녹슨 솥 곁에서

古代

 

부엌문이 열리고

솥을 여는 소리

 

누굴까?

 

이내 천천히

솥뚜껑을 밀어 닫는 소리

 

벽 안에서

가랑잎 숨을 쉬며 누워

누군가? 하고 부를 수 없는 어미는

 

솥뚜껑이

열리고

닫히는

사이에

크고도 깊은 쓸쓸한 나라를 세웠으니

 

국경처럼 섰는 소년이여

아직 솥을 닫고 그 자리에 섰는 소년이여

벽 안의 엄마를 공손히 바라보던 허기여

 

그립고 그렇지 않은 소년이여

팔을 들어 두 눈을 훔치라                  --- 50p.-  51p.

 

고대(古代)를 그리워하는 시인은 솥을 매개로 고대(古代)로 스민다. 그의 첫 시집의 제목이 [새 떼들에게로의 망명]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고대를 그리워하는 시인의 마음이 짐작된다. 새 떼들에게로 망명하고 싶어했고, 바위살림에 귀화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시인이기에 이제는 고대(古代)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흔히 "솥단지를 걸다"라는 표현은 그 터전을 잡는다는 의미도 있고, 살림을 차린다는 의미도 있다. 옛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할 때 꼭 솥을 가지고 다녔다. 밥을 해 먹어야 하고, 국을 끓여야하는 솥은 삶에 대한 의지,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소년이 솥을 열었다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다시 솥뚜껑을 밀어 닫는 행위에서 쓸쓸함이 느껴진다. 어미가 "가랑잎 숨을 쉬며 누워" 있으니 밥도 죽도 끓이지 못한 상황이다. 아픈 어미가 있기에 틀림없이 솥이 비어있을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솥뚜껑을 열어보는 아이의 기대감과 실망감이 안타깝기만 하다. 제목처럼 솥은 녹슬어 가고, "벽 안의 엄마를 공손히 바라보"며 허기를 달래는 소년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른다. "솥뚜껑이 / 열리고 / 닫히는 / 사이에" 세워진 쓸쓸한 나라가 어디 한 두 곳이었을까. 고대의 소년시절이 그립지만, 텅빈 솥은 그립지 않은 현재의 마음이 "그립고 그렇지 않은 소년이여"라는 문구로 표현되었다. 텅빈 솥과 가랑잎 숨을 쉬며 누워 계셨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얼마나 짠한지... 눈물은 이럴 때 흘리는 것, 이란 생각이 드는 시다. 

 

 

 

대장간을 지나며

古代

 

나에겐 쇠 뚜드리던 피가 있나보다

대장간 앞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한쪽에 풀무가 쉬고 있다

불이 어머니처럼 졸고 있다

--- 침침함은 미덕이니, 더 밝아지지 않기를

 

불을 모시던 풍습처럼

쓸모도 없는 호미를 하나 고르며

둘러보면

고대의 고적한 말들 더듬더듬 걸려 있다

 

주문을 받는다 하니 나는 배포 크게

나라를 하나 부탁해볼까?

사랑을 하나 부탁해볼까?

아직은 젊고 맑은 신(神)이 사는 듯한 풀무 앞에서

꽃 속의 꿀벌처럼 혼자 웅얼거린다                         --- 54p.  

 

역시 고대(古代)에 연관된 시다. 고대에 대장간은 나라의 근간을 좌우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거기서 무기도 나오고, 농기구도 나오고, 살림에 필요한 갖가지 도구들도 나왔으니 꼭 필요하면서도 매우 중요한 곳이 바로 대장간이다. 사람들에게 있어 땅과 물과 불, 그리고 대장간이 있으면 나라도 세울 수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시인은 대장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나에겐 쇠 뚜드리는 피가 있나보다"라고 하는 걸 보면 대장간의 풀무에 지펴진 불 속에서 시인은 고대(古代)를 발견하고 있다. "불을 모시던 풍습"이 있던 고대, 이제는 사라진 "고대의 고적한 말"이 "더듬더듬 걸려 있"는 대장간의 모습, 무엇이든 "주문을 받"아서 제작한다는 말에 시인은 의뭉스러우면서도 재미있는 고민을 한다. "나라를 하나 부탁해볼까? / 사랑을 하나 부탁해볼까?"라는 시인의 생각 속에서 대장간의 신(神)은 어떤 부탁을 들어줄 지 나조차 궁금하다. 대장간이 아직 고대(古代)에 머물러 있다면 그 곳의 풀무에 사는 신은 "아직은 젊고 맑"으리라는 생각에 능력도 출중할 거라고 믿는 시인이다. 감히 배포있게 소리내어 주문을 하지는 못하고 "꽃 속의 꿀벌처럼 혼자 웅얼거"리는 시인의 어눌하고 수줍은 듯한 모습에 웃음이 난다. "아직은 젊고 맑은 신(神)"도 빙그레 웃고 있을 것 같다.    

 

 

 

 

목소리가 작고 여린 시인을 만난 것 같다. 그 목소리 만큼이나 마음도 여리다.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꽃과 풀을 귀히 여기는 마음,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고대의 순수한 세계를 지향하는 마음에서 시인의 맑은 심성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불멸>을 꿈꾸지만, 그것은 오래살고 싶다는 게 아니라, 사라지지 않는 시를 남기고 싶은 시인다운 욕심임을 알았고, <눈사람의 스러짐>을 보며 인간의 스러짐을 생각하는 시인의 인간적 고뇌도 읽었다. 솥뚜껑을 열고 비어있음에 눈물짓던 소년이 이제는 성장해서 대장간을 지나며 나라와 사랑을 꿈꾸는 어른이 되었다. 아니 실제로는 한참 더 나이를 먹었음에도 나이 먹지 않은 아이처럼 말하고 있다. 가슴 속 소년을 잊지 않는 시인, 그 소년의 감성을 계속 지니고 사는 시인, 고대의 순수를 꿈꾸며 현재를 사는 시인이 "불멸"의 시를 계속 써 줄 것을 감히 부탁한다. 마지막으로 <시인의 말>을 적으며 리뷰를 마친다.

 

 

 

시인의 말

 

여기 문자들 아래의 숨죽임들을 들여다보낟.

미처 담지 못해 엎질러진 가엾은 것들.

 

모순,

수많은 모순 속을 왔다

사랑이 그렇고 사는 일이 그랬다.

눈보라 같았다.

 

말이 생기기 이전의 저 고대(古代)의 융융한 세계를 꿈꾸어본다.

삶이 덜 모순적이었으리라.

훨씬 넓었으리라.

 

다시 한살씩 어려지기로 하자.

말 배우지 않은 어린아이에게로 가자.

그저 울음으로만 말하는……

 

울음 공부 덜 된 이 말들을

또 내보내니

아직 멀었어라/

그 나라까지는……

 

2017년 11월

장석남

 

 

 

 

c*****p 2018.02.05. 신고 공감 8 댓글 1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2017 결산]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장석남
"[2017 결산]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장석남" 내용보기
고대(古代))에 가면-장석남말 타고 가다가순한 돌처럼 가라앉을래요사랑을 면제받는 기도를하늘빛 어느 소(沼)에 가서는 매일매일 씻기겠어요말 길러 말 타고 가다가열매를 면제받은 꽃으로 가벼이 떠내려갈래요말 타고 가다가물의 빛으로 갈아타겠어요  그 마을은 기차도 차도 다니지 않을 것이다. 길조차 제대로 나 있지 않아서 걸어가거나 말을 타고 가야 할 것이다. 먼지는 날리고 가
"[2017 결산]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장석남" 내용보기



고대(古代))에 가면

-장석남


말 타고 가다가

순한 돌처럼 가라앉을래요


사랑을 면제받는 기도를

하늘빛 어느 소(沼)에 가서는 매일매일 씻기겠어요


말 길러 말 타고 가다가

열매를 면제받은 꽃으로 가벼이 떠내려갈래요


말 타고 가다가

물의 빛으로 갈아타겠어요


  그 마을은 기차도 차도 다니지 않을 것이다. 길조차 제대로 나 있지 않아서 걸어가거나 말을 타고 가야 할 것이다. 먼지는 날리고 가도가도 길의 끝이 보이지 않는 곳. 문득 끝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했나 의심이 들 때 마을은 나타난다. 물을 얻어 마시고 연못에 들어가 발을 씻고 더러워진 나의 얼굴을 마주본다. 한없이 가라앉는 마음을 그곳에 버려두고 다시 길을 떠나온다. 순한 돌로 열매를 면제받은 꽃으로 물의 빛으로 나의 시간은 탈색된다. 


입춘 부근

-장석남


끓인 밥을 

창가 식탁에 퍼다놓고

커튼을 내리고

달그락거리니

침침해진 벽

문득 다가서며

밥 먹는가,

앉아 쉬던 기러기들 쫓는다


오는 봄

꽃 밟을 일을 근심한다

발이 땋에 닿아야만 하니까


  2월인데 아직도 왜 이렇게 추울까. 한 줌 볕이라도 더 들어오게 하려고 창문을 열어두었다. 내일이 입춘이라는데 기상 예보는 역대급 입춘 한파라고 알려온다. 오는 봄, 와야 할 봄. 그 봄에서 시인은 꽃 밟을 일을 근심한다. 나는 한낱 휴일과 휴일 사이의 일들을 가늠하느라 어지럽기만 한데. 발이 땋에 닿아야 살 수 있으니까. 그 길을 걷고 무심코 꽃이라도 밟는 날에는 마음이 내려앉을 일을 걱정하는 시인의 언어를 나는 조심히 옮겨 적는다. 



s*****m 2018.02.03.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장석남, 「우는 돌」
"장석남, 「우는 돌」" 내용보기
우는         바람을 데리고 개울가 돌밭을 걷다가 참한 돌멩이 하나를 주어다 머리맡에 맡겼더니 밤새 개울 소리를 내며 울더라고   늙은 색골(色骨)처럼 울더라고   주어 가슴에 올려놓으니   골골 잠이 든다   채식(菜食)처럼 동이 트고   밤이 나가고   나는 조그만 죄 하나를 녹인다   - 장석남, 「우는 돌」     돌은 어떻게 울까? 돌이 우는 소리를 어떻게 들을
"장석남, 「우는 돌」" 내용보기

우는

 

 

 

  바람을 데리고 개울가 돌밭을 걷다가 참한 돌멩이 하나를 주어다 머리맡에 맡겼더니 밤새 개울 소리를 내며 울더라고

  늙은 색골(色骨)처럼 울더라고

  주어 가슴에 올려놓으니

  골골 잠이 든다

  채식(菜食)처럼 동이 트고

  밤이 나가고

  나는 조그만 죄 하나를 녹인다

  - 장석남, 「우는 돌」

 

 

돌은 어떻게 울까? 돌이 우는 소리를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시인은 바람을 데리고 개울가 돌밭을 걷는다. “바람을 데리고라는 시구가 눈에 띈다. 시인은 일상에 젖은 사람들이 생각을 멈춘 곳에서 비로소 상상을 시작한다. 시인은 언제나 일상 너머를 상상한다. 상상이란 말에는 일상으로는 갈무리할 수 없는 잉여가 듬뿍 들어 있다. 일상이 언어를 자꾸만 현실에 가두려고 한다면, ()는 끊임없이 현실 너머로 나아가는 존재를 보여준다. 바람을 데리고 개울가 돌밭을 걷는 사람이 어떻게 일상에 매일 수 있을까? 시를 읽을 때는 그러므로 시인이 현실을 넘어서는 바로 그 지점에 주목해야 한다. 일상(현실이라고 해도 좋다)에 묶이면 시인이 들여다보는 새로운 세계가 보이지 않는다. 시를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시를 일상의 의미로 가두려는 경우가 많다. 일상 언어를 넘어서는 자리로 가야 돌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 어떻게 해야 일상 언어를 넘어설 수 있느냐고? 돌이 운다는 상상을 하면 된다.

 

시인이 우는 돌이라고 쓰면 독자는 돌이 우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무생물인 돌이 무슨 울음이야, 하고 생각하는 순간 시는 저 멀리로 도망쳐버린다. 시인이 바람을 데리고 개울가 돌밭을 걷는다고 하면, 그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리면 된다. ‘바람을 맞으며바람을 데리고는 상황은 같을지 몰라도 언어 이미지는 아주 다르다. 바람을 데리고 산책하는 시인이라야 참한 돌멩이 하나가 밤새 개울 소리를 내며 우는 까닭을 알 수 있다. 개울 소리를 내며 우는 돌은 개울이 한없이 그리운 것이다. 돌은 개울이 그리워서 한없이 운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엄마와 떨어져 우는 아이를 상상해 보라. 엄마 품을 떠난 아이는 우는 일밖에 달리 할 게 없다. 울음은 가장 근원적인 정서이다. 엄마 뱃속을 나온 아기는 가장 먼저 울음을 운다. 갓 태어난 아기가 울지 않으면 엉덩이를 때려서라도 울린다. 그래야 아기는 살아 있는 생명체로 인정받는다.

 

개울가 돌밭에서 주워온 돌을 시인은 머리맡에 놓는다. 머리맡에서 우는 돌을 시인은 늙은 색골色骨처럼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밤이 되면 어김없이 개울 소리와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었을 돌이 지금 누군가의 머리맡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개울가 돌밭에서는 개울물 소리가 들리고, 바람이 불고, 곁에 있는 돌들이 서걱대는 소리가 들렸다. 개울가 돌밭에서 돌은 그냥 돌이 아니다. 그곳에서 돌은 개울 소리를 들으면 개울 소리가 되었고, 바람이 불어오면 바람이 되었다. 돌이면서 개울 소리면서 바람이었던 돌이 지금은 다만 돌이라는 이름만으로 불린 채 방안 구석에 방치되어 있으니 어찌 울지 않을 수 있을까. 시인은 돌을 주워 가슴에 놓는다. 그제야 돌이 골골 잠이 든다”. 시인의 가슴 위에서 심장의 리듬이라도 느낀 것일까? 돌이 내보이는 고유 리듬을 시인은 가슴에서 일렁이는 리듬으로 감싸 안는다. 사물과 인간이 리듬으로 어울리는 이미지가 참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돌의 리듬은 시인의 몸속으로 파고든다. 시인의 몸에서 일렁이는 리듬이 돌의 리듬 속으로 파고든다고 말해도 상관없다. 시인은 왜 하필 개울가 돌밭에서 이 돌을 가져온 것일까? 사물과의 인연은 리듬을 타고 온다. 개울 소리를 내며 울던 돌은 시인의 가슴에서 일렁이는 리듬을 느끼자 울음을 그치고 잠에 빠져든다. 시인의 가슴에서 울리는 소리는 그러므로 개울 소리와 다르지 않다고 봐야 한다. 시인은 어떻게 가슴에 개울 소리를 품고 있는 것일까? 시인은 사물을 상상한다. 시인 앞에서 사물은 일상의 의미를 벗어던지고 제 모습을 드러내 보인다. 정확히 말하면 시인은 사물을 가슴으로 느낀다. 가슴으로 전해오는 사물의 리듬을 온전히 자기 몸에서 피어나는 리듬으로 받아낸다. 이러기 위해서는 시인의 몸(리듬)은 사물을 향해 완전히 열려 있어야 한다. 사물은 시인을 향해 몸을 열고, 시인은 사물을 향해 몸을 연다. 몸과 몸이 만나면 새로운 리듬이 나올 수밖에 없다. 둘이면서 동시에 하나가 되는 리듬이라고 표현하면 어떨까?

 

시인의 가슴에 우는 돌이 놓이는 순간 시인과 돌은 둘이면서 하나인 존재가 된다. 돌이 쉬이 잠에 빠져드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시인의 마음속에서 돌은 오랫동안 자기 마음을 흐르던 리듬을 느낀다. 동이 트면서 서서히 밤이 물러간다. 시인은 채식菜食처럼 동이 트고/ 밤이 나가고라는 시구로 어둠이 시나브로 물러가는 장면을 표현한다. 어둠은 새벽빛과 싸우지 않는다. 때가 되면 어둠은 새벽빛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시인은 나는 조그만 죄 하나를 녹인다라는 진술로 시를 맺는다. “죄 하나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참한 돌멩이 하나를 주워 온 욕심을 말하는 것일까? 시인은 우는 돌에서 함부로 다룰 수 없는 생명을 느낀다. 시인의 가슴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리듬을 느끼고서야 돌은 울음을 그친다. 돌이 느끼는 이 마음, 이 리듬이 시심(詩心)이 아니라면 무엇을 시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o*****s 2019.04.2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각자의 이야기
"각자의 이야기" 내용보기
한동안 시를 읽지 않다가 최근 다시 시를 읽기 시작하면서 예전 자주 읽던 시인들의 신간 시집이 뭐가 있나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장석남의 시들을 무척 좋아 했었는데 마침 신간이 나와 있어서 무척 기쁨 마음으로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를 읽었습니다.최근의 시들과는 결이 다르다는 느낌을 주는 장석남의 시인데 서정적이면서 그 속에 담겨 있는 촌철살인의 한마디가 깊이
"각자의 이야기" 내용보기

한동안 시를 읽지 않다가 최근 다시 시를 읽기 시작하면서 예전 자주 읽던 시인들의 신간 시집이 뭐가 있나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장석남의 시들을 무척 좋아 했었는데 마침 신간이 나와 있어서 무척 기쁨 마음으로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를 읽었습니다.

최근의 시들과는 결이 다르다는 느낌을 주는 장석남의 시인데 서정적이면서 그 속에 담겨 있는 촌철살인의 한마디가 깊이 가슴에 남기 때문입니다.

이번 시집을 읽으며 예전과는 시의 방향성이 좀 달라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는 중견시인이 된 시인이 좀 더 깊고 넓은 사유의 세계에서 이야기를 끌어내고 있다는 느낌이며 특히 고대와 지금의 연결점을 찾아 시를 쓰고 있는 점이 무척 놀라웠습니다.

또 이번 시집에서 눈에 띈 것이 각 장의 분류인데 철저하게 테마를 가지고 장을 분류해 두어서 각 장마다 마치 다른 시집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어서 무척 흥미로운 느낌으로 작품들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작가의 영원한 주제는 자연이고, 자연과 사물 속에 간직하고 있는 각자의 이야기들을 끄집어내어 조심스럽게 소통하고자 하는 모습들이 무척 인상적이었던 이번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시집이었습니다.

마음을 흔드는 시들이 많은 시집이라 몇 번이나 다시 읽고 떠올려 보게 되는, 무척 좋은 작품집이었습니다.

p*****9 2018.10.3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봄의 급소, 봄의 로비, 봄의 봉우리를 찾아서... 장석남,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봄의 급소, 봄의 로비, 봄의 봉우리를 찾아서... 장석남,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내용보기
소풍     소매 끝으로 나비를 날리며 걸어갔지  바위 살림에 귀화(歸化)를 청해보다 돌아왔지  답은 더디고  아래위 옷깃마다 묻은 초록은 무거워 쉬엄쉬엄 왔지  푸른 바위에 허기져 돌아왔지  답은 더디고   봄의 한 귀퉁이, 천둥이 치더니 손톱만한 우박이 쏟아졌고, 봄은 잠시 변복하였다. 봄은 밝았다 어두워졌다 어두워졌다 밝았다, 번복을 거듭하였고 우리는 아연실색
"봄의 급소, 봄의 로비, 봄의 봉우리를 찾아서... 장석남,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내용보기

   소풍

 
  소매 끝으로 나비를 날리며 걸어갔지
  바위 살림에 귀화(歸化)를 청해보다 돌아왔지
  답은 더디고
  아래위 옷깃마다 묻은 초록은 무거워 쉬엄쉬엄 왔지
  푸른 바위에 허기져 돌아왔지
  답은 더디고


  봄의 한 귀퉁이, 천둥이 치더니 손톱만한 우박이 쏟아졌고, 봄은 잠시 변복하였다. 봄은 밝았다 어두워졌다 어두워졌다 밝았다, 번복을 거듭하였고 우리는 아연실색 하였지만, 봄을 알아차리는 데 필요한 시선은 퇴색하지 않았다. 주차장 한 켠, 후진으로 들여다보는데 거기 노란 민들레 하나 낮게 웅크리고 있어, 예리하게 민들레의 몸을 피하면서 조심스럽게 움직였건만, 다음 날 덜렁 꽃대만 남아 있어 서럽다.


  “모든 꽃은 사막으로 가지만 / 쇠락하라 쇠락하라 가을볕 / 호흡마다 가쁜 색을 뱉지만 / 거기 보탤 내 하나의 죽음 아직 미숙하니” - <꽃이 꽃을 지나> 중


  도둑맞은 꽃을 배경으로 시도되는 나들이는 시작부터 울렁거린다. 지난 겨울 이후 자취를 감추었던 골목길 오누이는 한 뼘씩 커져서 돌아왔다. 파마 머리 동네 아줌마가 만들어놓은 아크릴판 고양이집이 놓인 잡초 가득한 빈터 가운데로 오누이 중 어린 남동생이 제 아빠를 끌고 간다. 빈 집에 놓인 투명 물그릇을 아빠와 아들이 번갈아 바라본다. 물그릇을 보고 아빠 보고 아들을 보고 물그릇을 본다. 


   질그릇이 놓인 오후


  가구들이
  비스듬했다 모두가
  조금씩 미끄러지다가 멈춘
  표정, 어쩌다가
  손에는 신발을 쥐고
  이마 그늘이 맨발등에 수북이 앉고
  질그릇이 하나 한켠에
  놓인 오후


  노랫소리 지나가듯
  창변(窓邊), 마르는 가을날의 꽃들 꽃이파리들
  헛기침 두엇 건네는 수밖에


  어둑함 속으로 질그릇 하나
  오래 스미고 있는
  눈이 매운 노릇이여


  볕이 건네는 한 마디 들으려고 멈춘다. 번개로 스러진 아까시 나무에 터널을 뚫고 미로를 만들고 그 끝에 비밀 기지를 만들었던 어느 오후에서 멈춘다. 벽돌담 부스러진 터럭에 발 끄트머리를 걸고 기어이 꼭대기로 오르던 여덟 살 무렵에서 멈춘다. 강아지 풀 도랑에 담그고 까딱까딱, 어린 수작에 펄떡거리던 개구리가 그대로 멈춘다. 조막만한 돌 하나 발로 차고 또 차며 건너던 기찻길, 내 코끝을 스치던 차단기 옆에서 멈춘다.


   우는 돌


  바람을 데리고 개울가 돌밭을 걷다가 참한 돌멩이 하나를 주워다 머리맡을 맡겼더니 밤새 개울 소리를 내며 울더라고
  늙은 색골(色骨)처럼 울더라고
  주워 가슴에 올려놓으니
  골골 잠이 든다
  채식(菜食)처럼 동이 트고
  밤이 나가고
  나는 조그만 죄 하나를 녹인다


  봄의 급소를 찾는 중이다. 배꼽보다 위 가슴보다 아래, 어쩌면 그 너머로 흘러들어가 사라지던 기억이 방금 뒤를 돌아 바라본 그곳, 어쩌면 돌가루가 흩어져 마지막에야 다다르게 될 그곳... 뿌연 낮을 지나 나약한 밤을 보내고 나면 물방울 튀기며 시작되는 새벽에야 발견되는 거기, 차곡차곡 쌓이는 햇볕을 따라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다가서는 사람들이 서로를 입모양으로 발견하는 여기...


  “늦여름은, 스무여해 만에 뵌 고모나 / 고모집 돌담에 기댄 무화과나무나 그런 / 이름으로 불러도 될 성싶다 / 빈 절 마당을 그렇게 불러도 되듯이” - <쑥대를 뽑고 나서> 중


  봄의 로비, 한없이 공공의 것인 장소를 떠올린다. 저기 또 다른 계절의 벽에 가로막혀 돌아서기 전까지는 이어질 왁자지껄의 장소, 여기 첨탑에서 저기 첨탑으로 휘청거리며 날아가며 날아가는 중에도 도움닫기를 하고야 마는 장소... 시름에 겨운 바람이 졸속으로 만든 찬 기운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더듬거리는 모양새로도 하염없이 하염없이 오르는 중인 봄의 봉우리...

 


장석남 /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 창비 / 115쪽 / 2017 (2017)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18.05.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