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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의 사제, 혹은 순수한 시인이여
"포도주의 사제, 혹은 순수한 시인이여" 내용보기
슬프도다, 겨울이면, 나는/어디서 꽃을 얻게 될까? 또한/어디서 햇빛과/지상의 그림자를?/장벽은 말없이 냉혹하게/그냥 서 있고, 바람결에 풍향기 소리만 찢긴다. [삶의 절반] 中 K형! 내가 좋아하는 횔덜린의 [삶의 절반]중 2연입니다. 내가 이 시를 좋아하는 건 작품 속에 진실한 가치를 추구하려는 시인의 절절한 모습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아다시피 프랑스 혁명은 횔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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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도다, 겨울이면, 나는/어디서 꽃을 얻게 될까? 또한/어디서 햇빛과/지상의 그림자를?/장벽은 말없이 냉혹하게/그냥 서 있고, 바람결에 풍향기 소리만 찢긴다. [삶의 절반] 中 K형! 내가 좋아하는 횔덜린의 [삶의 절반]중 2연입니다. 내가 이 시를 좋아하는 건 작품 속에 진실한 가치를 추구하려는 시인의 절절한 모습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아다시피 프랑스 혁명은 횔덜린의 조국인 독일을 포함해서 유럽 전역에 정치적인 혼란과 정신적인 충격을 가져다 주었지요. 무엇이 참다운 가치인지 판단할 수 없어 아마 당대 지식인들은 숱한 방황을 겪었을 겁니다. 횔덜린은 형도 잘 알다시피 헤겔의 청년 좌파로서 정치적인 입장을 견지했던 만큼 당시 상황과 무관하지 않았을 겁니다. 요즈음 같은 세상에 겨울에 꽃을 구할 수 있는 일이란 참 쉬운 일일테지만 200여년 전에 횔덜린이 그 추운 성곽에서 꽃을 구할 수 있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거예요. 사람을 사귀는 것처럼 시를 이해할 때에도 읽는 이의 능동적인 의지와 상상력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상대방을 이해할 수가 있으며 더군다나 그 사람이 쓴 시를 이해할 수가 있겠습니까. 물론 경험이 비슷하고 사유가 비슷한 사람이야 약간의 상상력만으로도 상대를 이해할 수가 있겠지만 그건 매우 다행스런 경우고, 대개 우리는 서로에 대해 끈질긴 인내를 가지고 그 사람을 향한 의지와 상상력을 잃어버려서는 안될 겁니다. 처음 횔덜린을 읽었을 때 느꼈던 막막함은 K형이나 저나 별반 차이가 없을 겁니다. 제 생각으로는 [삶의 절반]에서 '겨울'은 질서가 파괴되고 가치가 땅에 떨어진 사회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말일지 모르겠습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유럽사회가 극도로 혼란한 상황이었던 점을 미루어볼 때, 겨울은 시인의 자율적 의지가 발현되지 못하는 황폐한 주위 여건과 시인의 심정을 표현하고 있는 말일 거구요. 물론 '겨울'은 횔덜린의 개인적인 이력과도 관계가 있겠지요. 이 시는 1803년에 쓰여졌는데 실은 1802년부터 횔덜린은 정신착란의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거든요. 시인의 연표를 보면 알겠지만 이후에는 정신병이 악화돼서 아우텐리트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기도 했었지요. 횔덜린이 절망 속에서 그리워했던 것은 한 떨기 꽃이었습니다.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따뜻한 봄의 훈풍인데 꽃은 그 훈풍을 실어 나르는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는 거지요. 하지만 꽃이 피기 위해서는 따뜻한 햇빛이 필요하잖아요. 다음 행에서 꽃에서 햇빛으로 이미지가 연결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그리고 햇빛이 있다면 지상의 그림자가 드리워질테고요. 그림자는 추운 이미지가 아니라 따뜻한 이미지로 읽혀져야 할 거에요. 도식적일 수 있지만 꽃은 가치를 상징하고 있지요. 바슐라르의 말을 조금 빌리자면 꽃은 공중을 향해 상승하는 지상의 새와 같은 거죠. 식물 부위에서 가장 마지막에 매달려 하늘을 향해 '피어오르는' 꽃. '피어내리는'이란 말은 없잖아요. 그래서 꽃은 우리가 지향하는 상승하는 가치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지요. 횔덜린은 이 시 속에서 절망스럽게 부르짖는 겁니다. 정말 이 시대에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가라고. 또 내가 진정으로 추구해야할 것은 어디에 있느냐고. 그것이 정녕 존재하는 것이냐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죠. 횔덜린이 살았던 시대는 암울했고 전망이 보이지 않았고 예측이 불가능했었으니까. 바람결에 풍향기 소리만이 찢기는 것은 그 시대 정신과 영혼의 황량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표현이겠죠. 200여년 전 횔덜린의 외침이 내게는 왜 자꾸 현재적으로만 들릴까요. 앞이 보이지 않고 암담하고 무엇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것. 그것은 아마도 인류가 직면한 본질적인 질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서에서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야한다는 말. 절망 속에서 부르짖는 것. 자유를, 희망을, 순수를, 그리고 따뜻한 사랑을, 횔덜린의 말대로 빵과 포도주를. 궁핍한 시대에 시인들은 왜 존재하는가를 나는 모른다. /허나 그대는 말한다. 시인은 마치 성스러운 밤에 여러나라를/배회하는, 포도주 신의 성스러운 사제 같다고( [빵과 포도주]에서) 위 시에서 '궁핍한 시대'는 삶의 절반에서 나왔던 '겨울'과 같은 이미지가 됩니다. 이 시에서 횔덜린은 삶의 절반처럼 절망적인 몸짓을 보여주는 대신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을 다시 말해주지요. 그것은 뭘까요. 그것은 '시인'입니다. 시인은 그렇다면 뭔가요. 시인은 포도주의 신의 성스러운 사제이죠. 그렇다면 시인은 왜 포도주 신, 바커스를 성스럽다고 표현했을까요. 왜 이 시대에 포도주가 필요하다고 말했을까요. K형도 잘 알테지만 포도주는 따뜻한 기운을 불어 넣어줍니다. 추운 겨울에 토방 마루에 화톳불을 끼고 앉아서 따뜻한 국물에 소주 한 잔 끼얹는 것과 똑 같은 거지요. 얼어붙은 몸이 녹고 우리의 입술은 열리게 되고 서로의 온정이 담긴 말을 건네게 하는 것. 그것이 곧 추위 속에 꽁꽁 얼어붙은 우리의 정신 속에 드높은 생각을 갖도록 하게 해 주는 것이겠지요. 내 바라건대, 만일 우리가 침묵으로 굳었던 / 혀를 녹여, 마음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서서히 / 언어로 표현하게 되면, 분명히 심장이 활짝 열리고, / 몽롱하게 취한 이마에서 떠오르게 될 드높은 생각, / 우리 마음에서 그리고 하늘에서 꽃이 피기 시작할 것이며 / 또한 별을 밝혀주는 것은 맑은 눈빛일 것이다. (- 횔덜린, [시골길 산책]) 삶의 절반에서 '꽃', '햇빛'과 '지상의 그림자'나 빵과 포도주의 '포도주 신의 사제'는 황폐한 정신과 영혼을 구원해줄 수 있는 이 시대의 진정한 가치를 표상하고 있는 셈이지요. 우리가 침묵으로 얼어붙었던 혀를 녹여 마음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서서히 표현할 수 있게 하는 것. 우리의 진심을 활짝 열고 드높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 그래서 우리 마음과 하늘에 꽃이 피게 하는 것. 그것이 횔덜린이 그토록 절망스럽게 부르짖었던 가치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비록 횔덜린은 그가 살던 시대에 광인으로서 알려지고 쓸쓸하게 죽어갔지만 그 정신만큼은 누구못지 않게 순수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의 시 속에 담겨져 있는 이러한 순수에의 지향은 시대가 변하면 변할수록 더욱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는 듯합니다. 200년 전이건 우리가 현재 디디고 서있는 지금의 현실이건 정신의 방황이라는 점에서는 별반 다른 점이 없으니까요. K형, 그럼 잘 있으세요. 문학과 예술을 아끼는 형의 마음을 곁에서 지켜 볼 때면 절로 고개가 수그려지

[인상깊은구절]
궁핍한 시대에 시인들은 왜 존재하는가를 나는 모른다. /허나 그대는 말한다. 시인은 마치 성스러운 밤에 여러나라를/배회하는, 포도주 신의 성스러운 사제 같다고
e***a 2000.07.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