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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속에서 진한 향기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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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의 시는 아름답다. 누가 뭐래도 그의 언어는 향기가 난다. 그것은 각 언어들이 서로의 마음으로 엮여진 뛰어난 결합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리라. 그의 언어는 조각조각이 조약돌과 같은 길을 걸은 듯하다. 물에 씻기면서 맑아지고 부서지면서 모래가 되며 시멘트와 결합하여 아름다운 건축물이 된 듯하다. 그 건축물이 그렇게 빛이 나는 것은 아마 미당이 언어를 그리 소중하게 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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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의 시는 아름답다. 누가 뭐래도 그의 언어는 향기가 난다. 그것은 각 언어들이 서로의 마음으로 엮여진 뛰어난 결합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리라. 그의 언어는 조각조각이 조약돌과 같은 길을 걸은 듯하다. 물에 씻기면서 맑아지고 부서지면서 모래가 되며 시멘트와 결합하여 아름다운 건축물이 된 듯하다. 그 건축물이 그렇게 빛이 나는 것은 아마 미당이 언어를 그리 소중하게 매만지며 산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국화가 국화로 존재해서는 별 의미가 없다. 가을에 찬 서리를 맞으며 널브러지는 꽃들의 형상은 세인들에겐 향기가 되지 못한다.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그것은 아름다운 노래가 되지 못한다. 그것을 천상의 노래로 건져 올린 것은 미당의 기술이다. 아니 그의 마음이 함께한 능력이리라.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 같은 존재’, 푸근함과 애틋함과 정갈함과 서늘함이 함께 어울린 절묘한 심상이 그 꽃에서 나왔다. 그 꽃은 우리들의 마음에 살아서 빛이 되고 소망이 된다.

 

흔히 미당이 시대의 아픔을 우리들에게 준 인물이라 하여 그의 작품까지 깎아내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가 일제 말기에 보여줬던 행위는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지식인으로 민족을 이끌어 나가야할 입장에 있었던, 글들로 인해 민족에게 영향력이 강했던 그가 쓴 전쟁을 미화한 글들은 숱한 사람들에게 아픔을 주었다. 하지만 그의 인물됨을 가지고 그의 작품을 무시하는 평가는 바람직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작품은 지어지면 작가의 품에서 떠나 독자적인 생명력을 가지고 독자들과 만난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에 새로운 느낌과 생각을 일으키며 살아간다. 미당의 국화 옆에서에 나오는 시편은 그렇게 많은 독자와 만났고, 진한 향기를 풍기며 거리를 누비지 않았다 생각된다.

 

나도 역시 미당의 시편들을 나의 각도에서 바라보면서 감사하게 음미한다. 편편이 보석 같은 멋이 있다. 그 멋에는 기지도 있고, 지혜도 있다. 아름다운 정서도 있고 매끄러운 가락도 있다. 우리가 아무 곳에서나 흥얼거리게 만들고 산뜻한 마음이 되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삶에 대해 성찰하게도 만든다. 그는 언어의 마술사다.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초록도 지치면 단풍이 되는 모양이다. 이처럼 잡다한 언어도 그의 손과 마음을 거치면 제련되어 구슬이 된다. 그 구슬은 영롱한 빛깔을 지닌다. 내가 그의 시를 읊조리고 좋아하는 이유다.

 

손에 들고 다니기에도 좋고, 소장하기도 좋은 책자다. 많은 시편들과 함께 시리즈로 나온 것이지만 단연 마음에 흡족하게 다가드는 책이다. 그 책에는 그 속에 든 글을 쓸 때의 그 미당만 있고 다른 사람은 만날 수가 없다. 내 가슴에 뜨겁게 만나지는 소중한 책이다. 교과서가 아니라도 우리는 작품을 작품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가져야 하리라. 시를 외워보는, 시집을 읽어보는 자리에 노란 국화송이가 담긴 화분 하나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늘 옆에 두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

j****3 2014.09.0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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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간의 미당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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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의 고향 고창군 질마재마을, 폐교가 된 선운초교에 들어선 미당 문학관 주위에선 매년 미당의 꽃인 국화가 만개할 무렵 문학제와 같은 모임을 하나보다. 그 행사를 알린 신문기사 아래 댓글에 이런 글을 보았다. 역사에 대한 반성도 없이 친일 앞잡이, 군부독재의 하수인을 찬양하러 모였다고...입안이 꺼끌거리고 쓸쓸함이 들었다.   인간이 자기 존재의 한계를 느끼는 것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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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의 고향 고창군 질마재마을, 폐교가 된 선운초교에 들어선 미당 문학관 주위에선 매년 미당의 꽃인 국화가 만개할 무렵 문학제와 같은 모임을 하나보다. 그 행사를 알린 신문기사 아래 댓글에 이런 글을 보았다. 역사에 대한 반성도 없이 친일 앞잡이, 군부독재의 하수인을 찬양하러 모였다고...입안이 꺼끌거리고 쓸쓸함이 들었다.

 

인간이 자기 존재의 한계를 느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지도 모른다. 다만 답을 모를 뿐. 미당은 그게 알고 싶었고 내뱉아서 다시 알아가보고 싶었던 사람이다. 그는 팬들이 많이 있는 사람이나 힘은 없었던 모양이다. 권력은 이런 사람을 이용하기 좋아하기 마련이다. 

 

누가 그를 욕하랴. 그는 인간의 존재의 의미들. 정겨움. 조선인으로 조선인다웁게 살기를 보이고 싶었는데...그는 자유롭게 억누르는 자 아래에서도 속마음안엔 너울대는 나래를 갖고 싶었는데... 나는 욕할 수 없다.

s***y 2009.04.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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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적 나를 직시하기 ㅡ '국화 옆에서'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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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이런저런 모색을 해보았다.결론적으로 사물이든 명제든 가치관이든 간에 모든 것은 이중적인 것같다. 결코 일면적으로 유일하게 딱 하나의 측면을 가진 것은 없다. '나'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나'라는 것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존재이자, 또다른 관계를 만드는 존재인 것이다. 이런 '나의 이중성'을 가장 원대하게 그린 사람이 바로 서정주라고 생각한다.(나만의 생각인지도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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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이런저런 모색을 해보았다.결론적으로 사물이든 명제든 가치관이든 간에 모든 것은 이중적인 것같다. 결코 일면적으로 유일하게 딱 하나의 측면을 가진 것은 없다. '나'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나'라는 것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존재이자, 또다른 관계를 만드는 존재인 것이다. 이런 '나의 이중성'을 가장 원대하게 그린 사람이 바로 서정주라고 생각한다.(나만의 생각인지도 모르겠지만) 특히 너무도 유명한 '국화 옆에서'는 감동적이었다. 우선, 소쩍새와 천둥, 그리고 무서리는 국화꽃과 아무런 연관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시인은 이 모든 것을 국화꽃 탄생의 원인으로 묘사하고 있다. 결국 그가 말하려는 것은 어떤 생명이든 우주 만물이 작동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역시 우주만물의 조화 속에서 태어난 위대한 우주적 존재가 된다.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란 말이다. 여기서 석가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석가의 탄생 신화를 보면, 석가는 마야 부인의 옆구리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 어린 것이 태어나면서 울기는커녕 동서남북을 7걸음씩 왔다갔다 하더니, 오른손은 하늘을 왼손은 땅을 가리키면서 말하길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나. 말인즉슨 '천지에서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다.시건방진 꼬맹이 같으니라고, 하고 내칠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유명한 명제를 이렇게 해석했다. 나는 우주만물의 조화 속에서 태어난 우주적 존재다. 그러니 나만큼 존귀한 것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럼 너만 존귀하느냐? 그렇다. 나의 존귀함부터 알자. 본래 나의 존귀함, 유일성, 완전성을 확신하는 자에게는 나아닌 다른 모든 생명체 역시 존귀한 법이다. 잠시 얘기가 딴 데로 샜지만, 미당이 주목한 것 역시 마찬가지로 우주적 생명 탄생이다. 여기서 단지 국화꽃의 탄생 정도만 볼일이 아니다. 모든 생명의 탄생에는 이처럼 우주적 작동이 원인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하물며 나임에랴! 이 시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마지막 대목,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다. 국화가 우주적 작동의 산물이라면, 나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에서 그칠 수는 없다. 일단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존재로서의 나이지만, 이제 나는 소쩍새, 천둥, 무서리와 함께 새로운 생명 탄생의 원인이 된다. 이 얼마나 웅대한 스케일인가! 나 또한 우주적 작용의 일부로서 위대한 창조에 동참한다. 이로써 나는 우주적 피조물이자, 우주적 창조자라는 위대한 발상이 성립된 것이다. 서정주의 발상을 받아들일 일이다. 이 발상을 나 자신에게 적용해본다. 나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존재이다. 그러므로 나는 사회적 존재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나는 이제 사회와 더불어 나 자신을 만들어 가는 존재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나란 '세계와 나로부터 비롯되는 자'다. 이 책을 보며 계속 생각했다. 나의 그동안의 고민에 서정주의 시들이 함께 해왔던 셈이다. 나는 나의 이중성을 다시 한번 '국화 옆에서'를 통해 감동적으로 확인했다. 비로소 내가 추구하고자 한 주체적 삶의 출발점을 확인했다고나 할까.

[인상깊은구절]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k****2 2002.01.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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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 모국어의 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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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스런 이름을 피해 독서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한편 혐오스런 이름을 직접 대면해보고자 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라고 변명하자. 그리고는, 서정주를 읽자. 『국화 옆에서』는 평론가 이남호가 서정주의 처녀시집인 에서부터 에 이르기까지 서정주의 시세계를 더듬어서 새로 엮은 ‘시선집’이다. 이미 교과서에 실릴 정도의 시인이라면, 우선은 시선을 통해서 시인의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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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스런 이름을 피해 독서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한편 혐오스런 이름을 직접 대면해보고자 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라고 변명하자. 그리고는, 서정주를 읽자. 『국화 옆에서』는 평론가 이남호가 서정주의 처녀시집인 <화사집(1941)>에서부터 <노래(1984)>에 이르기까지 서정주의 시세계를 더듬어서 새로 엮은 ‘시선집’이다. 이미 교과서에 실릴 정도의 시인이라면, 우선은 시선을 통해서 시인의 상상세계의 큰 줄기들을 훑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사실 예전의 나는, 이미 여러 평론가들이 달라붙어서 온갖 단물 쓴물을 다 빨아 마신, 그 정도의 가치 검증이 끝난 시인이라면, 전집으로 읽어주는 게 독자된 겸허한 도리가 아닌가, 라고 그렇게 황당하게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황당한 생각은 내 안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었는데, 한때 <한겨레>에 연재되었던 신경림의 문학칼럼을 읽고 가볍게 폐기해버렸다. 신경림의 말은, 오히려 좋은 시선이 없어서 탈이란 것. 어쨌든 그 이후론 정반대의 독서를 한껏 옹호하게 되었는데, 대가의 시들은 시선으로 먼저 읽는 게 좋겠다, 라는 생각. 전집을 읽자고 다짐할수록 그 ‘전집'이라는 특이한 권위와 신비 때문에 다가가기가 힘들어진다.(마치 ’고전‘이라는 이름처럼!) 그러나, 시선집은 독자를 한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이끈다. 유종호는 “아무 말이나 붙들고 놀리면 그대로 시가 되는 경지에 이른 미당은 정히 부족 방언의 요술사다”라고 미당을 평가한다. 시를 ‘언어미술’로 생각하고 토속어에 끌리는 유종호가 한 말임을 감안해보아도 그렇게 황당한 평가는 아닌 듯 하다. 과문한 탓에 나는 언어의 완성도면에서 서정주를 능가하는 시인을 읽어 본 일이 별로 없다. 그건 불행한 일이다. 정말이지 타락한 시인의 타락한 언어라고 내뱉을 수밖에 없다. 서정주가 구사하는 언어의 관능만큼은 다른 시인들에 비해서 저 멀리로 달아나고 있는 듯 하다.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으련다”(「자화상」)던 미당. 미당 시에 대한 내 독후감이 어리석었던 시절의 짧은 인상으로 전락해버리기를 바란다.
n****w 2004.02.1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