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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대중운동이 있다. 이들 대중운동의 특징은 격동기때가 되면 조직에 속한 지지자들이 열정적이고 광기어린 맹신자들이 되어 조직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치는 자기희생적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는 것이다. 또 그들은 조직에 굳건히 단결되어 평소에는 상상할 수 없는 폭력적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민족주의운동이건 종교혁명운동이건 사회혁명운동이건, 어떤 형태의 대중운동도 상관 없이 나타나는 공통적 현상이다. 저자인 에릭 호퍼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를 `맹신자들` 이라는 지지자들의 내면을 키워드로 분석해 나간다.
총 125가지 단상이라는 형식으로 씌어진 이 책은 딱딱한 논문 형식도 아니고, 여러 자료들을 지지부진하게 사용하는 전문가적 입장으로도 쓰여진 책이 아니다. 아포리즘적 형식으로 쓰여졌는데 사용한 어휘와 문장은 간결하고 명료하여 누구나 어렵지 않게 소화할 수 있는 책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가볍다거나 질이 떨어지거나 낮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뛰어난 퉁찰력을 통해 상황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이해가 밑바탕이 되어 만들어진 확신에서 오는 명료함이다.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자들의 글이 지리멸렬하고 일부러 고급어휘들을 남발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걸 감추기 위한 심리의 발로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단순히 맹신자들의 내면의 진실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대중운동에는 당연히 그 집단을 지도하는 리더들이 있고, 운동이 일어나는 전형적 형식과 단계들이 있는데 이런 요소들도 함께 개괄해 설명한다. 하지만 중심 키워드는 역시 맹신자들이다. 저자는 왜 맹신자들을 핵심 요소로 봤을까? 흔히 생각하기를 대중운동은 순진무구한 대중들을 선동하는 지도자들에 의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히틀러나 무솔리니 같이 뛰어난 선동가들에 의해 순진한 대중들이 속아 넘어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맹신자들의 탄생은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맹신자들 스스로 자발적 행위에 의한 것이라고 단언한다.
어떤 형태의 대중운동이 되었건, 맹신자들의 공통적 분모는 좌절자의 심리라는 것이다. 현실이 너무 비참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판단 된 자들은 그런 현실과 자신을 잊기 위해 광적으로 몰두할 수 있는 행위를 찾는다. 대중운동은 그들에게 숭고한 대의라는 달콤한 목적의식을 심는다.
좌절자들은 어떤 이들인가? 2부 잠재적 전향자 파트에서 그들에 대한 여러유형과 발생환경에 대해 개괄한다. 가난은 현실을 잊고 싶어하는 심리를 만들어 내는 대표적 환경이다. 하지만 저자는 더 깊은 통찰을 통해 다시 세분화한다. 너무 극빈층인 자들은 오히려 변화를 두려워 하며 먹고 살기 위한 투쟁때문에 대중운동은 꿈도 못 꾸는 자들이다. 그들은 맹신자가 될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한다. 너무 극빈층인 사람과 부유한 층의 공통점은 현실의 변화를 두려워 한다는 것이다(부자와 가난한 자의 정치적 성형이 비슷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가난한 시기를 맞이한게 얼마 되지 않은 자들이 자신이 처한 현실이 비참해 현실을 잊고 싶어 한다. 또 자유를 얻게 된 빈민들도 마찬가지다. 노예제도가 있던 시절에는 현실이 초라한 자들이라도 결속력 높은 유대관계로 이루어진 집단내에 있어 평등과 우애를 느낄 수 있지만, 자유가 주어진 노예는 그렇지 않다. 무언가 할 수 없고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자에게 자유는 공포다. 이런 자들은 모든 책임과 의무에 대한 부담이 있다. 하지만 집단에 속하게 되면 책임감은 감쇄한다. 자유를 외치는 수많은 대중운동이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의 자유를 가장 멸시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자유는 현실과 개인에 바탕을 둔다. 지금 어떻게 하느냐에 따른 과와실을 모두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 집단적 운동은 현실을 잊게 하고 미래지향적인 성격을 띈다. 여기에 개인(현실)은 없으며 맹신자들도 미래를 위해 현실(개인)을 희생한다. 부적응자 또한 맹신자가 될 여지가 다분하다. 단, 임시적 부적응자들은 예외일 수 있다. 실직자, 가난한 대학생 등등. 이 임시적 부적응자들은 완전히 좌절하지는 않고 아직 미래에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너무 이기적인 사람들과 야심가도 좌절자의 심리를 갖게 된다. 그들의 욕망과 이상은 너무 높기 때문에 그에 맞지 않은 현실에 좌절을 맛본다. 소수자들도 마찬가지. 하지만 같은 소수자라고 해서 맹신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결집력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소수자들끼리의 커뮤에 이미 결속 된 자들은 맹신자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주류 사회에 진출하려 노력하는 소수자가 좌절자의 심리를 갖게 된다.(재밌는 건 주류 사회에서 실패하거나 성공한 소수자 모두에서 각자의 이유로 좌절자가 되는 것이다) 중요한 건 결속의 유무다. 좌절자가 될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자기가 유대감을 갖는 집단에 속해 있으면 대중운동의 광기에 동조하는 맹신자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예로 중국이 대중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로 가족의 깊은 유대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중요한건 이런 여러 유형의 공통분모는 현실을 잊고 싶어하는 자들의 심리다. 그들은 너무 비참한 상황에 놓여 있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다. 그들은 현실에서 스스로 감당해야 할 자유가 두렵다. 그런 개인의 현실을 잊고 자유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집단적 행위를 원하며 대중운동에 가담하는 열렬한 맹신자가 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진심을 가리기 위해 열광적으로 행위를 일삼는다. 대중운동이 그들에게 강압적으로 한다고 해도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강압적일수록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어 선호한다. 재밌게도 맹신자들이 구질서에 불만을 느끼는 경우는 구체제가 강압적이어서가 아니라 너무 유약하고 자유분방해서일 경우가 많다. 또 그들의 목적은 애초에 열광적 집단에 일원이 되는 것이기에 대중운동의 종류는 가리지 않는다. 민족주의에 가담한 자가 혁명운동에 가담하기도 하고, 서로 다른 상극의 대치되는 종류의 집단에도 헌신하는 경우가 있다.(기독교에서 이슬람으로 전향한 광신자들이 자신의 입장을 단단히 하기 위해 더욱 열렬하고 광적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맹신자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해서 모두가 대중운동의 격동기 단계에서 벌어지는 불경하고 불쾌한 행위를 하는 것은 아니다. 대중운동은 그들을 부추기는 전략이 있다. 3부에서는 자기희생을 촉진하는 요인과 단결의 동인들을 다룬다. 재밌는 건 4부 시작과 끝에서 다루는 내용이다. 여기서는 대중운동의 각 단계를 일으키는 유형의 사람들을 다룬다. 대중운동이 일어날 발판을 닦는 층은 지식인, 대중운동의 부흥은 광신자, 대중운동이 끝나고 체제 안정을 유지하는 현실적 행동가의 역할들과 특징들을 다룬다. 각 단계에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전부 명확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어쩔때는 한 유형이 대중운동의 각 단계를 이끌기도 하지만 끝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 아무리 현 체제에 불만이 있다 하더라도 일반 대중은 혁신을 꿈꾸지는 못한다. 현 체제에 불만과 문제를 명확하고 선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지식인층이 대중들의 구질서에 대한 충성심을 분쇄시킨다. 후에 새로운 신념과 강령을 고취시켜 대중운동이 격동기에 들어설 기반을 닦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지식인들은 기본적으로 개인주의자이다. 구질서가 무너진 무정부의 상황에서 벌어지는 혼란을 그들은 감당하지 못한다. 애초에 맹신자들은 새로운 신념과 자유, 정의가 목적인 집단이 아니다. 그저 현실을 잊고 자신을 버릴 수 있는 열광적 집단의 일원이 되는 것이 목적이다. 이 때 바통터치를 하는 것이 광신자이다. 광신자들은 맹신자들의 심리를 잘안다.(지식인은 그들을 이해 못한다.) 이유는 그들 또한 맹신자들의 좌절자 심리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기 때문인다. 후에 현실적 행동가는 대중운동 격동기에 사용한 여러 장치들을 연장하면서도 현실과의 투쟁이 아닌 화해의 방향으로 운동을 이끌고 종국에는 신체제를 구축하는데 이바지 한다.
여기서 주요점은 격동기의 시기가 짧을 수록 좋다는 것이다.( 이 시기를 결정하는 요소들도 책에서 나온다.) 격동기를 이끄는 광신자는 증오가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사람이다. 투쟁에 승리했다 하더라도 그 증오심은 또다른 대상을 찾아나선다. 그것이 집단 내부로 향하면 내부분열고 마감하고, 감당못할 이상은 대중운동 자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격동기의 과정이 짧으면 그 속에 내재되어 있던 창조력등이 폭발하여 더 나은 체제에 밑거름이 되어 성공한 대중운동의 예로 남을 수 있다.(대중운동과 창조력에 관한 관계도 책에서는 자세히 서술한다.)
저자는 대중운동의 격동기적 속성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다. 물론 부정적 뉘앙스로 얘기하는 면이 없지 않지만 격동기에서 벌어지는 여러 폭력적 상황과 불쾌한 일들을 분석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적당한 격동기의 시기는 오히려 더 나은 새체제의 밑바탕이 될 수 있다. 기존의 문제를 타파하고 혁신하기 위해서는 대중운동 만큼 효과적인 수단도 없다고 작가는 말한다. 책은 과거의 여러 대중운동들과 인물들을 예시로 들며 주장하는데 우리나라에 있었던 대중운동들을 대입해 봐도 이질감이 없었다. 어떤 파트에서는 오히려 우리나라의 예시가 더 맞는 다는 느낌도 받았다. 시대와 나라와 상황을 가리지 않고 공통되는 대중운동의 속성을 정확히 간파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나약한 심리가 빚어낸 이 현상은 인간의 근본 본성일지도 모른다. 오프라인에서 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종종 이런 광적인 맹신자들의 모습을 보기도 하는데,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반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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