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16일이 다가온다. 벚꽃 흩날리는 이 계절이 품은 역사는 너무도 잔인하다. 생이 끝날 때까지 그리움에 사무쳐 살아야만 하는 인생, 나로서는 상상조차 버겁다. 당시에는 온갖 억측이 난무했다. 거대한 벽 같은 게 있어 진실에 다가서는 걸 가로 막는 듯도 했다. 시대가 바뀌었고 비로소 무슨 일이 실제 벌어졌는지 우리는 헤아리기 시작했다. 슬프게도 그날 일어난 일은 국가에 의한 살인이었다.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는 제 임무를 망각했을 뿐만 아니라 역으로 사람의 목숨을 갖고 놀았다. 역사는 반복된다. 삼엄함이 하늘을 찌르던 1980년대를 둘러싼 많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숱한 희생이 더해진 끝에 비로소 우리는 자유를 쟁취했다. 누군가는 살았지만 누군가는 그럴 수 없었다. 이한열이라는 이름의 청년은 쓰러져 끝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1987년을 기점으로 세상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변화가 다가왔는지 간략한 서술은 종종 접해왔다. 부끄럽게도 그의 일대기에 관심을 기울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1980년대 대학생활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고, 격렬한 투쟁을 연속 경험하던 이들은 생존을 위해 거칠어만 갔다. 이한열에 대한 증언은 한 가지 공통된 무언가를 품고 있었다. 그가 꽤나 세심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요령이라고는 피울 줄 모르는 성실한 인물이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 동아리는 시대 정신에 부합하는 곳이려 들었고, 그가 몸 담았던 ‘만화사랑’ 또한 그 점에 있어선 예외가 아니었다. 기름을 만난 물 마냥 어색해하며 동아리 문을 두드린 이들에게 그는 먼저 다가서 손 내밀었다. 혹 상대가 불편하진 않은지 연신 배려하는 그를 보며 많은 이들은 “진국”이라는 평을 했다. 1987년 6월 9일 그는 몸이 썩 좋지 않았다. 약 기운에 취해 잠을 청했더라면 죽음을 피할 수 있었을 텐데, 중요한 약속이 있다는 말과 함께 그는 밖으로 나갔다. 당일 그는 ‘소크(soc)’ 역할을 수행했다. 그 시대의 시위는 무어가 됐건 위험했지만 시위대와 전투경찰 사이에 서는 소크야말로 위험천만이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역할, 내면은 떨고 있었을지 몰라도 그는 굳건함을 유지했다. 그러면서 매 순간 자신을 단련시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날따라 경찰은 하늘 아닌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발포했고, 그 중 하나가 이한열을 머리를 강타했다. 너무나도 유명해진, 이종창이 피 흘리는 이한열을 부축하고 있는 사진 이후의 순간들에 대해 책은 세세하게 그려냈다. 학생 너댓 명이 달라붙어 몇십 미터를 옮기길 반복한 끝에 그는 세브란스 병원에 당도할 수 있었으나 이미 가망이 없었다고 했다. 의식 없는 이한열을 사수하길 자처한 학생들의 모습은 숭고했다. 어떠한 정치적 움직임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던 이들조차도 으레 그를 지키기 위한 움직임에 동참했고, 그 대열에는 학교 교직원들도 합세했다. 많은 투쟁에서 학생들과 반대편에 서는 것이 많은 학교 학생처의 모습이었던 걸 감안하면 연세대 학생처가 보인 모습은 의외였다. 아니, 그것이야말로 제 학교 학생을 위할 줄 아는 진정한 학교의 모습이었을 수도 있다. 27일간 의식 없던 이한열은 7월 5일 세상을 떠났다. 병원에서 숨죽여 대기하던 순간보다도 더욱 긴박한 시간이 전개됐다. 죽은 자의 몸이 말해주는 진실을 뒤엎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고, 다시 한 번 이를 막기 위해 애써야 했다. 죽어서도 평온히 잠들 수 없는 게 그 시대의 숙명이었던 모양이다. 광주로 향해서도 혼란은 지속됐다. 한 개인의 죽음으로 의미를 희석시키려는 사람들과 그래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팽팽히 맞섰다. 죽은 자에게는 어쩌면 의미 없는 행위일 수도 있겠지만 산 자로선 끝까지 지켜내야만 하는 게 있었다. 역사를 올곧게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이한열이 살지 못한 시대를 사는 이로서 기억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1987년 그날 이후 많은 이들이 삶이 달라졌다. 사회에 전혀 관심 없던 이들이 용기 내어 저항하는 법에 눈 떴는데, 이한열의 어머니도 그 중 한 분이셨다. 위험하니 시위를 하되 전면에는 나서지 말 것을 주문했던 어머니는 아들을 잃은 후로 투사로 거듭나셨다. 직접적으로 이한열과 관련된 일을 하며 그를 기리는 전면에 나선 이들도 제법 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옅어지는 이한열과 1987년에 대한 기억을 선명히 만드는 것을 그들은 제 삶의 사명으로 삼았다. 그리고 우린...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생각도 잠시, 1987년은 고작 30년 전이다. 나에게 1987년은 88 서울올림픽을 향한 기대감으로 불탔던 시기였고, 생애 첫 내집 마련에 성공한 부모의 환희에 함께 기뻐했던 시기였다. 더 나아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고조되던 그 시절에도 누군가는 다치고 죽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각기 다른 기억을 간직했지만 1987년은, 이한열이 쓰러짐으로써 새로운 흐름이 촉발됐다는 사실만은 진리이다. 거부해선 아니 되는 진리를 똑바로 응시할 수 있게 되기까지, 우린 너무도 먼 길을 돌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