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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본어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번역으로만 이해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마루야마 겐지의 문체와 생각을 오롯이 전달받을 수는 없지만 강한 육체와 정신력으로 궁극의 글을 향해 정진한다는 점에서 연필로 강력하게 글을 '밀고 나가는' 우리나라의 김훈 작가님과 왠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이 책 <산 자에게>에는 그만의 글쓰기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들어있는데 예를 들면, "어머니와, 어머니처럼 대해주는 강한 처에게 찰싹 들러붙어 응석을 부리며, 언제까지나 어른 남자가 되려하지 않는 그들은 과연 산 자인 것일까. 그런 사람들에게 알랑거리고 듣기 좋은 소리를 너무 잘하는, 조금밖에 남지않은 생명력까지도 흡수해버릴 듯한 소설이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와 같은 대목을 읽노라면 그가 용감하게도 다자이 오사무, 미시마 유키오, 하루키를 거명하며 사변적이고 나르시즘이 강한 문학 풍조에 대해 일갈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그의 주장은 받아들이는 입장에 따라 호불호가 다소 갈리겠으나 어쨌든 자신만의 강인함과 스타일을 몇십 년 동안 변함없이 실천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적잖은 작가와 독자들로부터 존중을 받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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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적으로 사고하는 것도, 표현하는 것도 상당히 꺼려하는 탓에 마루야마 겐지 같이 주장하는 사람의 글을 보면 그 견해와 입장에 수긍하면서도 이렇게 써도 되는 것인가 한켠의 염려가 생기곤 한다.
나는 자주 자기 책임의 원칙을 이야기한다. 수업에서도, 일을 할 때에도, 사람과의 사이에서도.
우리의 삶은 수많은 선택의 경로 가운데 자리하고 있으며, 자신의 삶에 가장 적합한 선택을 하기 위해 고민한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진다.
이것이 근대 시민사회로의 이행 이후 가장 핵심적인 가치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삶의 결정에 있어 인간의 책임을 인정하고, 신으로부터 독립 그리고 주체로서 인간의 자율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작가도 그런 전제는 하고 얘기 하는 것이리라. 본인이 가정하는 살아있는 사람이 갖추어야할 세상에 대한 태도나 입장 같은 것에 대해서.
이 책은 마루야마 겐지의 유년 부터 56세가 되었을 때까지 본인의 삶의 궤적과 관심사, 자신의 삶을 어떻게 가져가고 싶어했는지, 자신이 바람직하다고 느끼는 문학의 역할과 소설가로서 본인이 지향하는 바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담고있다.
이 작가에게 놀라는 점은 자신의 세계관에 대한 확신성과 그 가치에 반하거나 작가가 생각하기에 무엇이든(사물, 관념, 인간, 직업 등) 그것이 갖추어야 하는 본질에 닿지 않는 것들에 대한 냉철한 비평에 있다.
그 확정적 사고는 그를 유일무이한 작가로 이끌었겠지만, 세상에는 완벽하게 다른 판단이나 비평이 허용될 수 없을 정도의 확정적인 것이 많지 않다.
미학 그리고 글을 통해 세상을 논하는 문학의 특성은 더욱이 다양한 비평의 허용이 이뤄지는 영역임에도 작가의 고집과 판단에는 주저함이 없다.
나는 그런 주저함 없는, 마루야마 겐지가 보이는 자신있는 신념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는가 되돌아 보게 된다. 마루야마 겐지의 과격함을 모두 수용하고 또 지지할 수는 없지만 나는 가능성이나 겸손의 뒤에 숨어 세상을 나 자신의 나름대로 규정하는 것에서 도망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살아있는한 그 고민이 계속될 테지만 확정적 전제를 위한 새상에 대한 관심과 내 삶의 확신성은 높여 가야지 싶다.
그리고 정말 살아 있고 싶은가? 주어진 생에 있어 우리는 존재의 본질을 회의하고 그 끝어 얻어진 본질을 위해 즉, 살아있음을 위해 노력해야하는가?에 대해서도 우선 설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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