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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오독과 탐독 사이 '낯선 길을 찾아가는 기쁨'
"오독과 탐독 사이 '낯선 길을 찾아가는 기쁨'" 내용보기
논리와 서사의 균형을 유지하며, 선지자적 예리함과 한 우물 파는 자의 우직함을 공존하기란 그리 쉽게 찾을 수 있는 작가의 자질은 아니다. 글을 쓴다고 다 작가가 아닌 것처럼, 작가라 해서 이런 자질을 다 겸비하진 않기 때문이다. 탄탄한 글, 몇 번을 되읽어도 헛점이 보이지 않는 글을 읽는 것은 독자인 내가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또한 공들인 흔적이 느껴지는 글은 탐독하는 자
"오독과 탐독 사이 '낯선 길을 찾아가는 기쁨'" 내용보기

논리와 서사의 균형을 유지하며, 선지자적 예리함과 한 우물 파는 자의 우직함을 공존하기란 그리 쉽게 찾을 수 있는 작가의 자질은 아니다. 글을 쓴다고 다 작가가 아닌 것처럼, 작가라 해서 이런 자질을 다 겸비하진 않기 때문이다. 탄탄한 글, 몇 번을 되읽어도 헛점이 보이지 않는 글을 읽는 것은 독자인 내가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또한 공들인 흔적이 느껴지는 글은 탐독하는 자의 시간을 빼앗지 않는다는 점에서 양심적이다. 그런 작가로 나는 김경욱을 꼽는다. 

 

김경욱은 논리적인 작가다. 그의 글은 질척대지 않으며 군더더기가 없다. 간결하고 정확한 글은 그의 의중을 명확히 전달한다. 하여 독자인 내가 모호함 때문에 고개를 갸우뚱거릴 일은 없다. 그렇게 똑부러질만큼 논리적이지만 건조하지 않은 글 또한 그의 글이 가진 특징이다. 그가 쓰는 문장은 오히려 시적이라 할만큼 은유적이며 때론 아름다움 마저 느끼게한다. 이렇게 논리가 서사를 뒷받침하고 서사가 논리에 힘입기 때문에 김경욱의 글은 견고하고 탄탄하다. 그래서 그의 글에 몰입할 수 있다.

 

이 책엔 표제작인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를 비롯해 총 9편의 글이 들어있다. 어느 하나 빠지지 않을 만큼 완성도가 높으며 진지하다. 등단 초기 문화적 징후에 민감한 글을 썼던 김경욱은 이제 자신의 관심사를 확장해 더 많은 삶을 껴앉고 있다. 그가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삶은 무겁고 우울하며, 비장하며 우스꽝스럽고, 다양하고 다단하며, 밀착하고 유리된다.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는 김경욱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단편이다. 촘밀한 짜임새와 각 상황의 유기적 연결고리는 마치 추리소설을 보는 듯하다. 사내는 아들과 손녀와 함께 살고 있는 노인이다. 며느리는 아이를 낳자마자 죽었고, 살림살이 할 여자가 없는 집은 그래서 더 신산하다. 손톱 밑 가시처럼아프고 불쌍한 손녀가 같은 반 남자아이 셋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일이 커지는 것이 골아픈 초등학교 교장은 신앙을 들먹이며 용서를 종용하고 위로금조의 보상금을 제시한다. 가해자는 만 열세 살이 안된 아이들이므로 형사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교장이 제시한 금액은 사내가 쉽게 물리칠 수 있는 돈이 아니며 조만간 가스도, 수도도, 전기도 끊기게 생겼다. 하지만 사내는 응징(잘못을 깨우쳐 뉘우치도록 징계함)이란 사랑을 선택하고 사내의 응징은 안타깝게도 변죽만 울리는 해프닝으로 끝나고 만다.

 

해프닝이란 결말은 김경욱이 사태를 얼마나 냉철하게 보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결말을 정의롭게 맺는 것은 동화속에서나 가능하지 우리네 삶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이 소설의 결말이 사내의 등에 업힌 손녀의 위로로 끝난 것은 다행스럽기만 하다. '수난이대'의 두 부자처럼 손녀가 들려준 노래는 사내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이며, 돈 앞에 굴복하지 않은 사내의 행동은 앞으로 험한 세상을 헤쳐나갈 손녀에게 소중한 유산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허리케인 조의 파란만장한 삶'은 대필작가인 내가 허리케인 조라는 노인의 자서전을 의뢰받으며 생기는 일을 그린다. 허리케인 조는 한때 승승장구하던 권투선수로, 라이벌인 무쇠주먹과의 시합 전날 계체량을 통과하지 못해 실격패를 당하는 비운을 맞는다. 운명의 그날 허리케인 조는 한계 체중에서 130그램이 더 나가게 되는데, 아무리 해도 130그램은 빠지지 않았다. 시합도 못해본 채 실격패를 당하고, 그의 권투인생은 내리막길을 걷는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에도 허리케인 조는 그일을 잊지 못하고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 어느날 대담 도중 허리케인 조가 한 통의 전화를 받더니 갑자기 나가 버리고 더이상 연락이 되지 않는다. 석 달쯤 뒤 나는 무쇠주먹의 유골함의 사라졌다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 듣는다. 계체때 허리케인 조의 사과를 뺏어 먹던 무쇠주먹과 아무리 해도 줄어들지 않던 130그램의 비밀이 여기서 풀리는 듯하다.

 

상대의 뼛가루를 먹더라도 자신의 염원을 풀려는 허리케인 조의 집념이 희극과 비극의 경계를 허문다. 한계 체중에 대한 허리케인 조의 집착은 때늦음 조차 망각했고, 자신의 인생을 담보물로 만들었다. 이미 끝나버린 게임을 수십년이나 가슴에 품은 후 마침내 뜻을 이룬 허리케인 조는 과연 행복했을까? 인생은 계속되는데 더이상 잡을 것이 없는 그는 앞으로 무엇을 잡고 살까? 희극적 비극을 보는 맛은 씁쓸했다.

 

김경욱의 재능은 어느 한 방면에만 치우치지 않았다. 그는 '러닝 맨'에서 열한번이나 최종 면접에 고배를 마신 주인공을 통해 강남족이 되고 싶은 도시인의 열망을 그려냈다. 그러나 그 꿈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강남에 사는 과외소녀와의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그들의 만남엔 음침하고 음산한 상징들이 계속 등장하고, 그 상징은 불길함을 내비친다. 갑자기 저버린 해와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은 그의 현실과 현재적 상황을 암시한다. 결국 소녀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고 자신을 쫓아오는 사람들을 피해 그는 장남감 같은 오리배의 페달을 밟는다. 그가 강을 건넜을까? 원하지만 가질 수 없기에 목마름은 더 간절하다. 그렇다면 갈증은 어떻게 해소해야 되나? 김경욱은 결말을 열어놓았다. 그러나 답은 비슷하게 내려질 것이다.

 

'99%'는 '러닝 맨'과 이란성 쌍둥이다. '러닝 맨'이 강남 추앙기라면 '99%'는 상위 1%를 꿈꾸는 현대인의 병리적 특성을 그리고 있는 관찰일지다. 광고회사에서 일 잘하는 직원이었던 나는 어느날 혜성처럼 나타난 스티브 김이라는 상사에게 적대감을 느낀다. 그가 아니었으면 일인자의 자리에서 밀려나지 않았을텐데 날이 갈수록 나의 고민은 심각해지고, 나는 그에게서 고등학교 동창인 김태만을 떠올린다. 나의 전학으로 만년 2위가 된 김태만은 나에게 적의를 품고 있었고, 나는 당시의 김태만처럼 스티브 김에게 적의를 품는다. 나는 스티브 김이 김태만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의 꼬투리라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스티브 김이 김태만이라는 확증은 그의 몸에 새겨진 문신만 확인하면 된다. 그러나 명민한 김경욱은 알려주지 않고 결말만 열어 놓는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질투가 결코 나의 힘이 되지 못함을 김경욱은 적시한다. 현실은 질투를 선의로 해석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1등만 인정하는 세상에서 2등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웃을 수 만은 없는 이야기다. 선망 또한 버리라고 쉽게 말할 수 없다. 이 소설은 밀려난 사람의 소외감과 처지를 단순한 질투라고 치부할 수 없는 현대조직사회의 또다른 면을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김경욱은 9편의 단편에서 다층적이고 다의적인 삶의 모습을 차근차근 복기해냈다. 소설 안에 담긴 모든 이야기는 결국 어리석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들의 삶은 조악했고 자신의 삶마저 방기하했으며 어리석고 나약했다. 시간으로 지어진 집은 초라하고 보잘 것 없었으며 어설펐다. 그러니 제발 제대로 된 삶을 찾으라고 말하는 듯하다 느꼈다면 나는 이 책을 오독한 것일까? 이 책 어디도 인생을 잘 살아낸 사람을 찾기는 힘들다. 굳이 찾자면 주도면밀하게 계획해 놓고 해프닝으로 응징을 마감한 사내랄까? 그외에는 찾을 길이 없다. 이 소설의 모든 이야기는 현재 실패자 이거나 결국 실패자가 될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병리적 세상에서 병리적인 인간들의 모습을 통해 나를 찬찬히 들여다 보는 연습을 할 계획이다. 호기롭게 탐독으로 시작해 오독으로 마치고 만 이번 여정은 꽤 힘들었으나 제법 즐거웠다. 따라서 나는 다음에도 한 번 더 시도해 볼 예정이다. 어쩌면 그때는 오독으로 시작해 탐독으로 마칠지도 모르겠다.

 

 

* '문학나눔' 제18회 우수문학도서 독서감상문대회 우수상

 

 

 

d*********2 2012.09.14. 신고 공감 10 댓글 14
리뷰 총점 종이책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참으로 씁쓸한 단편들.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참으로 씁쓸한 단편들." 내용보기
책을 읽다가 보면, 너무나도 평범한 독자인 나는 가끔 ‘나쁜 작가’ 라고 작가를 부르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이건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맘에 들지 않는다고’, ‘이건 아니라고’ 화도 좀 내보고 싶고,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이야기를 들려준다거나, 흔히 열린 결말이라고 하는 마무리를 선사하는 작가는 나쁜 작가라 부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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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보면, 너무나도 평범한 독자인 나는 가끔 ‘나쁜 작가’ 라고 작가를 부르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이건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맘에 들지 않는다고’, ‘이건 아니라고’ 화도 좀 내보고 싶고,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이야기를 들려준다거나, 흔히 열린 결말이라고 하는 마무리를 선사하는 작가는 나쁜 작가라 부르고 싶어진다. 단편집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로 만난 작가 김경욱 역시도 그런 의미로 보자면 나쁜 작가다. 도저히 ‘이건 사실이 아니야.’ 라고 따질 수도 없는 회색빛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뻔뻔하다. 읽고 난 후의 어떤 답답함에 대해서 명쾌한 답을 주지도 않는다. 그저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다. 세상의 속물적인 이야기(그건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 이야기를 읽고 있는 독자들의 표정을 어디선가 숨어서 살펴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하게 만든다. ‘네가 한번 그 답을 말해봐.’라고 묻기라도 하는 듯이.


이 책에 담긴 총 9편의 단편들 모두 우울하고 건조하다. 많이 씁쓸하고 아프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의 희망 같은 것은 없다. 미래도 없는 것 같고, 그저 오늘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내일은 내일이 와봐야 안다. 그리고 오늘을 살았던 것처럼 또 반복적으로 내일이 살아지겠지. 그래서 우울해진다. 기댈 것도 바랄 것도, 한줄기 희망도 보이지 않는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들이.

같은 반 남자아이들에게 성폭행 당한 손녀에 대한 응징을 하려는 할아버지(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강의 이쪽저쪽으로 나뉜 삶에서 아무리 노를 저어도 건널 수 없는 강의 한 가운데에 표류하는 듯한 취업 사수생(러닝 맨), 1%를 향해가는 삶을 살고자 발버둥 치면서도 정작 그 1%에 속한 이들에게 질투와 부러움을 느끼는 최대리(99%), 결국은 이기지 못한 이의 뼈를 갈아 마셔야만 했던 비운의 복서(허리케인 조의 파란만장한 삶), 아무 연관도 없는 이들 같지만 무의미한 삶을 사는 것 같은 것은 너무 닮은 이들을 건조하게 바라보는 형사의 시선(하인리히의 심장), 통속적인 연애소설이라고 비하하고 싶지만 인기 있고, 베일에 가려져 있기에 더 잘 팔리는 소설을 쓰는 작가를 취재하는 사진 기자(연애의 여왕), 아무리 구르고 굴러 뛰는 것보다 빨리 달리는 것 같지만 늘 제자리의 가난이 찌든 삶을 3대가 모여 사는 그 집의 청년(태양이 뜨지 않는 나라), 그날 그렇게 그 사건과 시간을 겪으면서야 드디어 마음의 고백을 할 수 밖에 없는 순간을 가져온 여자(혁명기념일), 어쩌면 우스운 이야기일지 모를 일로 어긋난 삶을 살아온 부자(父子)(아버지의 부엌).


이들 9편의 단편들이 가진 공통점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첫 번째로 수록된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의 노인이 보여준 것처럼 신이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신의 뜻대로 용서를 행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신이 보여주는 그 ‘착함’이 가진 진정성이 뭔지를 생각해 보게 만든다. 노인은 당장에 살아가기 위한 수단으로 손녀를 성폭행한 가해자들과 타협할 수도 있었다. 돈을 받고, 먹고 사는 일을 해결을 하고, 덧난 상처가 아물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하면서 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신이 말하는 용서를 선택하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에는 노인만의 방식의 용서를 선택한다. 신이 말하는 ‘착한’ 용서가 아니라 노인이 선택한 ‘진짜’의 방식으로 말이다.

실제 우리의 삶(마음) 속에서 신이 차지하는 비중은 높을지도 모른다. 정말 간절해지는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외치는 대상이 되기도 하니까. 요즘처럼 하루하루 먹고 살기 힘들다고 외쳐대는 세상에서는 더더욱. 하지만, 우리는 신의 그 모든 뜻대로 방식대로 살아갈 수가 없다. 우리는 신이 아니고, 그러니 신의 마음으로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도 없으며, 또한 절대적으로 착할 수만 있는 존재도 아니기 때문이다. 신을 믿는 척, 신이 바라는 대로 하는 척 하다가도 저절로 가슴에 묻을 이름 모를 그것에 대한 ‘용서’는 또 누가 해줄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필요하다.


벼랑 끝에 몰린 순간에 보여지는 모습들이 진짜 모습일 것이다. 신이 내린 용서가 아닌 자기가 만든 용서, 결국은 파헤쳐 끌어내리겠다는 욕심과 질투, 강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고자 하는 발버둥, 책임지고 싶지는 않지만 미련 역시도 끊어내지 못하는 감정들. 인간이 가진 모습들은 그런 것이다. 살아가는 모양이 그렇게 다양하고 어지럽다. 그런데 어떻게 신께서 그 모든 것을 총괄하여 같은 방식으로 보듬을 수가 있겠느냔 말이다.


이야기들이 들려주는 그대로였다. 그냥 나열이었다. 그 누구의 진심을 파헤쳐 드러내지도 않았다. 그리고 굳이 애써서 억지스럽게 그 속을 열어보이고자 하지도 않았다. 그저 들려주었을 뿐이다. 이런 삶 저런 삶, 자기 안의 소리들이 말하는 대로 행했던 이런 용서 저런 용서. 종교가 없는 내가 이 책의 등장인물들의 삶을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신이라는 존재는 어쩌면 내 안에서 내가 만든, 나의 생각에 따른 맞춤형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읽는 이로 하여금 교묘하게 그 안에 빠져들게 만들고, 또한 저절로 빠져나오게 만들고, 다시 읽게 만든다. 그게 작가가 가진 매력일 수도 있겠고, 그의 펜 끝에서 나오는 힘일지도 모르겠다. 들려주면서 동시에 함께 하게 만든다. 그 다음 이야기는 알아서 써보라는 듯이.



“나약한 소리 마시오. 한번 링에 오른 자는 영원히 내려올 수 없소. 발 딛고 선 곳이면 그곳이 어디든 링이기 때문이오. 흔히 말하지, 세상은 링과 같다고. 말은 언제나 쉽소. 세상이 링이라면 언제나 링에 오를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소? 세상이 일종의 링이라는 것은 비유가 아니라 진실이오. 링이 왜 사각형인지 아시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머무는 곳이 십중팔구 사각형이기 때문이오. 방, 교실, 사무실, 엘리베이터, 길, 버스 등등. 요람부터 관까지 모두 사각형이니 결코 사각형에서 벗어날 수 없소. 운명은 사각형이오. 작가 선생.” (114페이지)

n******i 2011.11.14. 신고 공감 6 댓글 7
리뷰 총점 종이책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이런 보석같은 소설들을 이제라도 읽었다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이런 보석같은 소설들을 이제라도 읽었다" 내용보기
"보다 치열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고 문장은 정직하다는 것이 새삼 두려웠다. 부끄러움과 두려움! 비로소 출발선에 선 느낌이다. 여전히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나는 못내 기쁘다." 여섯번째와 열한번째 '작가의 말'에 등장했던 말이다.   작가 김경욱에게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는 새로운 출발점이라 한다. 1993년 23살에 등단했으니 벌써 작가생활 18년의 중견이 된 그다.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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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치열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고 문장은 정직하다는 것이 새삼 두려웠다. 부끄러움과 두려움! 비로소 출발선에 선 느낌이다. 여전히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나는 못내 기쁘다." 여섯번째와 열한번째 '작가의 말'에 등장했던 말이다.

 

작가 김경욱에게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는 새로운 출발점이라 한다. 1993년 23살에 등단했으니 벌써 작가생활 18년의 중견이 된 그다. 작가들 사이에서도 '글 잘쓰는 작가'라 불리며 작품성이 뛰어나단 평가를 받고 있다. 헌데 그 명성에 비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잠깐 소개된 <동화처럼>을 김경욱 작가의 대표작이라 부르기엔 상당히 아쉽다.

 

9편의 소설이 실린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2011년 내가 읽은 소설(집) 중에 단연 돋보이는 작품집 중 하나라고 평하고 싶다. 독자에 따라서는 모든 소설들이 하나같이 '감질맛' 난다고 평할 수도 있겠다. 탄탄한 스토리텔링으로 무장한 이야기에 한껏 들떠 있다가, 결론에 이르러선 '이도 저도' 아니게 끝나버리니 말이다. 처음엔 작가의 주저함, 망설임이라 생각했다. 작품 전면에 '어둠', '침묵', '경계' 등이 다양한 오브제와 인물들의 행동으로 나타난다.

 

장편 <동화처럼>에서도 눈물공주와 개구리왕자의 밀당이 있지 않았던가. 내내 기다림과 엇갈림의 연속인 그들의 인연. 김경욱 작가의 글에는 오묘한 기다림의 마력이 도처에 널려 있다. 찬찬히 글을 따라 읽으면 맹숭맹숭 감질맛이 나지만, 책장을 넘기다보면 그 감질맛이 감칠맛으로 바뀌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기다림의 마력이란 오묘해서 그냥 기다리는 것과 간절히 기다리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뭔가를, 누군가를 기다리기 시작한 순간 세상의 모든 것이 작당이라도 한 듯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화처럼>, P97

 

그래서 김경욱 작가의 글을 읽다보면 유독 밑줄을 많이 긋게 된다. 문장 하나하나 허투루 쓰는 게 없으며 단어와 단어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를 마치 또각걸음으로 경쾌하게 걷는 기분이랄까? 한치의 흐트러짐 없는 단단함, 그 속에서 작가 본연의 에너지를 만나게 된다. 가령 '진실'과 '진부함'을 설명하는 한 대목을 살펴보자.

 

남편의 외도 때문에 이혼한 어떤 친구는 남편의 부정을 알게 된 순간 오히려 해방감을 느꼈다는 고백으로 영신을 놀라게 했다. 그것이 진실이었기에, 사랑하니까 결혼하고 사랑이 식어 이혼한다는 안전한 진부함의 목을 비트는 잔인한 진실이었기에 영신은 전율했다. 진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알기 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 진실로 인해 변한 것은 세상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니까. 진실이 불편하고 잔혹한 것은 온 세상은 내버려두고 우리 자신을 덜렁 바꿔놓기 때문이다. 진실을 알기 전에는 두려움에 떨고 진실을 알고 나서는 회한에 몸서리친다. 두려움과 회한을 피하기 위해 기꺼이 감수하는 거짓을 우리는 진부함이라 부른다. 영신은 남자친구의 프러포즈를 고대하면서도 두려워했다. -<혁명기념일>, P241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도처의 진실들은 대부분 안전한 진부함의 그것이다. 진실을 알기 전에는 두려움에 떨고 진실을 알고 나서는 회한에 몸서리친다. 이러한 두려움과 회한을 피하기 위해 기꺼이 감수하는 거짓을 진부함이라 부르는 작가 김경욱. 9편의 주인공들은 이러한 진부함에 사로잡힌, 진실을 좇기보다 그 진실을 회피하기 위해 거짓의 제스처를 내재화시킨 인물들이다.

 

초등학생인 손녀가 동급생 3명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주인공은 용서(신의 섭리)와 복수(자신의 의지) 사이에서 주저한다. 결국 그 세 명의 부모에게 소극적인 복수를 감행하는데, 그 역시도 불발에 그치고 만다.

한편 <허리케인 조의 파란만장한 삶>의 주인공은 대필 작가다.

 

역사는 승자가 쓰고 회고록은 패자가 쓴다면 자서전은 작가 지망생이 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작가 지망생이 대신 써준다. -<허리케인 조의 파란만장한 삶>, P103

 

그런 주인공은 선배가 취중에 한 '진짜 이야기'에 꽂힌다. 막상 뱉고 보니 오랫동안 가슴 깊이 답아둔 말 같은 '진짜 이야기'. 적어도 출세한 사람들의 과장된 성공담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그래서 보통 사람의 자서전을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물론 대필이긴 하지만, 나름 진정성을 담기 위한 자기 최면이었던 것.

<러닝맨>에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경계, 즉 '못 가진 자들은 죄다 악의 축'이라 덧씌운 가진 자들의 위선을 경계에 서있는 과외선생의 눈으로 그려낸다.

 

강 건너에는 찍어낸 듯 엇비슷한 아파트가 성벽처럼 죽 늘어서 있었다. 그것은 난공의 요새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강은 성벽으로의 접근을 차단하는 해자일 테지. 저 깊고 넓은 해자 건너, 저 단단하고 높은 성벽 너머에 은재의 집이 있다. 은재가 다니는 학교가 있고 은재가 순례하는 학원들이 있고 은재가 즐겨 찾는 백화점과 레스또랑이 있다. -<러닝맨>, P52

 

성폭행당한 손녀의 복수는 불발로 끝나고, 제자와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에 놀러온 과외선생은 뜻모를 공포에 줄행랑을 치며, 자서전을 의뢰했던 노인은 사라져버렸다. 결혼한 여자친구와의 관계 회복에 소극적인 사진작가는 망설이며 유명 작가에게 여자친구의 이름으로 사인을 받는다. 뭔가를 주저하고, 내내 침묵하는 사람들.

 

연애의 여왕의 지적에 검은 옷을 입은 여자는 농담이라며 배시시 웃었다. 나는 주마간산이라고, 검은 옷을 입은 여자는 유구무언이라고 했다. "사진사 양반은 두려운 게 많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두렵고 누군가 사랑해주는 것은 더 두렵지? 상처받는 것은 두렵고 상처주는 것은 더 두려우니 말에서 내릴 엄두가 안 나겠지." [카마수트라] 영역본이나 해부학책을 펼쳤을 때도 저런 표정이었을까. 연애의 여왕이 생소하 책을 읽어내듯 나를 유심히 뜯어보며 말했다. 돌아앉은 세상의 단단한 등짝이라도 꿰뚫을 듯한 눈빛이었다. 자비도 악의도 없이 오직 돌파의 집념으로 단단하게 빛어진 탄피 같은 눈빛. -<연애의 여왕>,P185~186

 

그냥 잘 읽히는 소설이 아니라, 몇 번이고 곱씹고 되짚어봐야 하는 소설. 작가 김경욱의 매력은 그런게 아닐까? 단정 짓지 않는 결말이 다소간 주저와 망설임의 흔적처럼 보이지만, 달리 보면 열린 결말을 통해 독자들을 기꺼이 초대하는 손짓이랄까?

 

2011년 12월에는 유독 좋은 작품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행운의 연속이다. 허나 이렇듯 좋은 작품(적어도 내겐)이 대중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했다는 점이 다소간 아쉬울 따름이다. 그럼에도 난 김경욱 작가가 언젠가는 김연수 작가 정도의 대중적 인기를 누리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신경숙이나 공지영 작가와는 다른 궤적으로 나아가는 그이기에... 예전 읽었던 <동화처럼>에 실린 다음의 문장이 작가 김경욱이 독자에게 보내는 바람이 아닐까 싶다.

 

영원한 추억은 없다. 시간은 힘이 세니까. 그러나 마지막 추억마저 어둠에 묻혀도 깨달음의 빛은 언젠가 찾아온다. 사랑도 힘이 세니까. -<동화처럼>, P214

 

사랑의 힘, 글쓰기의 힘을 믿는 김경욱 작가는 늘 새로운 출발점에 선다. 시간은 힘이 세니까. 그가 써내려간 12권의 자식들은 온전히 사랑의 힘으로, 부끄러움과 두려움 속에서 잉태된 것이다. 언젠가는 독자들이 김경욱이란 깨달음의 빛을 찾아내리라. 그의 사랑은 힘이 세니까.

 



t******2 2011.12.11. 신고 공감 4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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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은 불편치 아니한가!
"당신의 삶은 불편치 아니한가!" 내용보기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마치 동떨어진 것 마냥 너무도 어설프게 얽혀 있다.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아무런 유대감도 느낄 수가 없다. 그 분위기가 사뭇 기괴하다. 그렇지만 어디가 어떻게 이상하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구체적으로 답변을 하기 힘들 듯하다. 그 점을 깨닫는 순간부터 난 이런 형태의 삶이 이상하다기 보다는 우리 자신이 살고 있는 보편적인 삶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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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마치 동떨어진 것 마냥 너무도 어설프게 얽혀 있다.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아무런 유대감도 느낄 수가 없다. 그 분위기가 사뭇 기괴하다. 그렇지만 어디가 어떻게 이상하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구체적으로 답변을 하기 힘들 듯하다. 그 점을 깨닫는 순간부터 난 이런 형태의 삶이 이상하다기 보다는 우리 자신이 살고 있는 보편적인 삶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라는 제목의 이 책은 그랬다. 상당히 독특한 듯하면서도 보편적인 이야기를 닮고 있는, 그제서야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들었던 소설에 대한 정의가 떠오른다. 현실 사회에서 있을 법한 일을 담아낸 게 소설이라던.

일단 인물들은 중심에서 많이 밀려나 있다. 책의 제목과 같은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의 강지선은 출산휴가 떠난 담임의 자리를 대체하는 ‘땜빵’에 불과하다. 같은 작품의 사내와 그의 딸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내는 영원히 푹 쉬라는 통보를 받기 이전부터 제 삶을 스스로 영위해나갈 에너지를 잃은 듯 살아왔다. 전기와 수도가 끊긴 객관적인 상황은 사내가 짊어져야 하는 무기력한 삶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딸은 또 어떠한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기억하기도 힘든 이름을 가진 병에 시달리고 있지만 명백히 존재하는 가해자는 소설의 끝까지 처벌받지 않는다. 만 열세 살이 되지 아니한 아이는 벌을 받을 수 없다. 따라서 죄도 없다. 이상야릇한 논리를 잠재우는 것은 제 상처를 평생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아이의 노랫소리뿐이다.

99%에 등장하는 인물은 또 어떠한가? 한때 잘 나가는 아이디어맨으로 통했던 그는 스티브 킴이라는 인물이 나타나면서 무너지고야 만다. 뿌리를 알 수 없다는 이유로 그는 스티브 킴에게 과거 그보다 못난 위치를 고수했던 한 인물의 이미지를 투영하려 들지만 직장 동료들에게는 차마 털어놓지 못한다. 영원히 자신의 편일 것만 같았던 미선마저도 그런 자신의 모습을 ‘질투’로 해석하고야 말아버린다. 스티브 킴과 주인공은 공존하기 어렵다. 스티브 킴이 태만이 맞다는 증명을 해보임으로써 자신이 스티브 킴보다 우월함을 입증해보이거나 아니면 스티브 킴의 우위를 인정하고 제 존재감을 지워버리거나. 이것은 일종의 생존경쟁이다. 이어지는 이야기 <허리케인 조의 파란만장한 삶>에서도 유사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현역에서는 은퇴했지만 이겨보지 못한 무쇠주먹과의 결투는 끝나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묘한 말만을 반복하는 노인에게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일종의 강박관념. 하지만 소설의 결말은 이미 정해진 것과 다름없다. 현역시절 몸무게가 많이 나가 싸움에 임해보지도 못한 채 실격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노인의 자서전은 끝끝내 완성되지 못한다.

등장인물들은 여느 사람 못지않은 욕망도 가지고 있었다. <러닝 맨>의 사내는 은재 앞에서만큼은 떳떳해지고픈 마음이 가득하며 <하인리히의 심장>이 형사는 미궁에 빠진 사건을 어떻게 해서라도 해결하고픈 마음에 시달린다. 그리고 <아버지의 부엌>의 등장인물은 ‘미미의 방’이란 장난감을 탐한다. 그러나 잘남과 못남은 욕망의 성취 여부로 판가름이 난다. 아니 인물들이 원체 못나서인지 그들이 가진 욕망은 애당초 해결될 가능성이 없는 것이기도 했다. 페달을 제 아무리 힘차게 밟는다 하여도 호수를 빠져나갈 수 없는 것이 오리배의 운명이다. 치밀한 수사가 진실에 한 걸음 다가가는 데에 도움이 될 수야 있겠지만 검게 그을린 심장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드는 요인일 수는 있어도 특정인을 범인으로 지목할 만큼 명백한 무언가를 암시치는 못한다. 그리고 주인공이 꿈꾸는 ‘미미의 방’이란 장난감을 세상은 여자 아이들에게만 허락했다.

못난 사람들의 못난 이야기. 그렇지만 그들은 못난 제 삶의 주인 행세를 해야만 하는 운명에 놓여 있다. 기꺼이 그 운명을 짊어짐으로써 그들은 못난 제 삶을 풍성하게 일구어 나갈 수 있는 첫걸음을 디딘다. 아버지를 위해 차리는 첫 식사, 단 한 번도 들려준 적 없는 흔한 말을 남자친구에게 건네고자 마음먹은 영신, 침묵으로 일관했던 지난날을 청산하고자 떨리는 입술에 여자 친구의 이름을 담은 등장인물. 외면이 제 삶을 초라하게 만들었다면 적극성을 향한 첫 걸음은 초라한 그 삶을 변화시키는 열쇠와도 같다. 버려진 땅이 누군가의 책임하에 놓이면 풍성한 들판으로 변신할 수 있는 것처럼 저자는 등장인물들이 버려온 삶에 적극성이라는 변수를 부여함으로써 삶의 황폐함은 거부한다. 결국 제 삶을 일구는 것은 제 자신의 의지인 것이다.

내 삶은 편했던가. 당신의 삶엔 하등의 불편함도 없었던가. 삶은 살아지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우린 우리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주체여야만 한다. 명확한 메시지를 접하고 나니 책 속의 등장인물들이 남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이달의 사락 q*****2 2011.10.29.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비어있는 행간마저도 그에게는 무기가 된다. 김경욱 소설집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비어있는 행간마저도 그에게는 무기가 된다. 김경욱 소설집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내용보기
마음속 깊이 느끼어 탄복함 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 감탄. 책을 만나면서 이런 느낌을 갖는게 쉽지는 않은 일이다. 이야기꾼과는 조금 다른 의미의 매번 작품을 만날때마다 독자를 감탄하게 만드는 소설가가 있다. 바로 지난 2010년 9월 '동화처럼'이라는 장편소설로 처음 만났던 작가. 소설가 김경욱이다. 아직 그의 작품을 많이 만난 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의 책을 많
"비어있는 행간마저도 그에게는 무기가 된다. 김경욱 소설집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내용보기

 

마음속 깊이 느끼어 탄복함 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 감탄. 책을 만나면서 이런 느낌을 갖는게 쉽지는 않은 일이다. 이야기꾼과는 조금 다른 의미의 매번 작품을 만날때마다 독자를 감탄하게 만드는 소설가가 있다. 바로 지난 2010년 9월 '동화처럼'이라는 장편소설로 처음 만났던 작가. 소설가 김경욱이다.

아직 그의 작품을 많이 만난 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의 책을 많이 만난건 아니라는게 옳을지도 모른다. 여태까지 한 권의 장편소설과 한권이 소설집을 통해 총 아홉 편의 작품을 만났으니까. 하지만 그 작은 경험 만으로도 그의 다른 작품을 읽는데 주저함이 없어졌다.

 

전작들에 비해 건조하고 묵직한 분위기의 작품들이 눈에 띄며, 사회적 계층의 문제를 다룬 작품들도 수록되어 있다고 소개되는 김경욱 소설집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에는 2009년 봄에 발표한 표제작을 포함해 2007년 10월부터 2010년 봄까지 그가 써내려갔던 아홉 편의 단편 소설이 수록되어 있었다.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러닝 맨/ 99%/ 허리케인 조의 파란만장한 삶/

하인리히의 심장/ 연애의 여왕/ 태양이 뜨지 않는 나라/ 혁명기념일/ 아버지의 부엌

 

흥미로운 소재를 통해 인간과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를 파헤치는 소설을 선보이는 작가 김경욱. 그의 여섯번째 소설집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는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문예지 등에 게재한 9편의 단편을 모아놓고 있었다. 꾸준하게 문예지를 통해 선보였던 그의 단편 소설들 가운데 이 책에 수록된 아홉 편은 '진화하는 소설 기계'라는 평가를 받았던 자신의 다섯번째 소설집이 비현실적인 인물과 현실적인 인물의 공존이라는 공통적인 느낌을 전해줬던 것처럼, 각기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그 안에서 하나로 모아지는 이미지를 풍겨내고 있었다.

 

아홉 편의 소설을 읽고나서.. 이렇게 서평을 남기면서, 나름대로 느껴진 이미지에 따라 책 안에 담겨있는 작품들을 구분해봤다. 분노(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태양이 뜨지 않는 나라), 회피(런닝 맨, 하인리히의 심장, 연애의 여왕), 의심(99%, 허리케인 조의 파란만장한 삶), 주저(혁명기념일, 아버지의 부엌).

각기 다른 단어로 묶을 수 있었지만.. 이들에는 인간의 행동이나 감정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게다가 하나같이 차갑고 건조한 단어들이다.

 

 

작품의 소재들은 꽤나 무거운 편이다. 아홉 편의 단편 소설에서는 학교 성폭력, 재개발, 빈부격차, 죽음, 속물적 욕망,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타인을 믿지 못하는.. 정확히 말하면 믿을 수 없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소재로 삼고 있다. 그가 삼은 소재가 현실에서 존재하는 것인지 아닌지는 책읽기에 특별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건 이것들이 소설, 허구의 이야기라는 사실인데 작품이 독자의 눈앞에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묘한 두려움을 동반하고 있다.

 

인간과 사회에 관해 문제의식을 드러내왔던 소설가 김경욱의 날카로움은 이 소설집에 담긴 작품들에선 조금 무뎌진 느낌이 들기도 했다. 직접적으로 사회의 어두운 면면을 묘사하지 않는다. 그러나 주저하고 머뭇거리는 주인공들을 통해서 들리는 작가의 목소리는 이전의 그것들보다 더 진중하고 치밀하다.

구체적인 문제의식이 무뎌진만큼 살아가는 독자가 찔린 마음이 덜 아파야 하는데, 막연한 긴장감과 불안감은 이상하리만큼 배가 되어 있다.

 

 

왜 그런가 궁금하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생각한다고 답이 나올 문제는 아니었지만.. 아마도 단편 소설이 가진 비어있는 행간이 그의 작품 안에서는 독자들에게 다른 이미지를 전달하는 하나의 무기가 되어있는 게 아닌가.. 라는 정도의 답을 내렸다. 특히 군더더기 없는 짧은 문체를 통해 전달되는 기교없이 담담한 문장들은 머뭇거리고 주저하는 등장인물들에게 결단과 선택을 은근히 강요하는 듯한 느낌마저 전해진다. 불안감을 유발하는 기폭제는 그것일런지도 모른다.

 

보다 치열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고 문장은 정직하다는 것이 새삼 두려웠다. 부끄러움과 두려움! 비로소 출발선에 선 느낌이다. 여전히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나는 못내 기쁘다. 여섯번째 책에 썼던 작가의 말을 다시금 이 책에 담아둔 소설가 김경욱. 언제나 나를 감탄하게 만드는 작가. 리뷰를 다 적고나서 읽어본 출판사 서평에 적혀있는 이 짤막한 글이.. 그를 설명하는데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잘 쓰는' 소설가이다. 이십대 초반에 작품활동을 시작해 거의 스무 해 가까운 시간 동안 이번 소설집을 포함해 무려 열한 권의 책을 펴냈으며, 늘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구성으로 독자를 사로잡으며 흥미로운 소재를 통해 인간과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를 던지는 소설들을 선보여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작품활동 내내 흔들림 없이 매번 스스로를 넘어서는 발전된 면모를 보여왔다. 이번 소설집에서도 한눈에 드러나는바, 단정하고 유려하기로 정평이 높은 문장은 한층 더 정련되고 절제되었으며, 플롯과 디테일도 더 정교하고 생생하다. 그는 어쩌면 '소설을 잘 쓰는 법'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스스로 '업그레이드'하는 방법까지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의 새 소설을 읽을 때마다, 독자들은 김경욱에 대한 기대를 갱신하지 않을 수 없다.

 



l******i 2012.03.05. 신고 공감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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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不認)하고 싶지만, 결코 부인(不認)할 수 없는.
"부인(不認)하고 싶지만, 결코 부인(不認)할 수 없는." 내용보기
'김경욱'이라는 작가를 이 작품을 통해 처음 만났습니다. 이 작가님을 좋아하는 지인이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선뜻 다가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여자작가의 글이 좀 더 편하게 다가 옵니다. 부드럽고, 섬세하고, 무엇보다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의 크기가 큽니다. 같은 성별이기에 더욱 그럴테지요. 남자작가의 글은 무언가 딱딱하고 무뚝뚝한 기분이 많이 든달까요. 책임감,
"부인(不認)하고 싶지만, 결코 부인(不認)할 수 없는." 내용보기

'김경욱'이라는 작가를 이 작품을 통해 처음 만났습니다. 이 작가님을 좋아하는 지인이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선뜻 다가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여자작가의 글이 좀 더 편하게 다가 옵니다. 부드럽고, 섬세하고, 무엇보다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의 크기가 큽니다. 같은 성별이기에 더욱 그럴테지요. 남자작가의 글은 무언가 딱딱하고 무뚝뚝한 기분이 많이 든달까요. 책임감,이라는 무게가 글을 그렇게 느끼도록 만들어버리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여태껏 접해본 남자작가들의 글은 대부분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김경욱'이라는 작가, 뭔가 심상치 않습니다.  

단편이라 조금 더딘 부분도 있었습니다. 짧은 글 속에서 무언가를 끄집어 낸다는 것 참 쉽지 않습니다. 요근래 단편을 조금씩 접하게 되면서 오히려 장편보다 단편을 쓰는 것이 더 어렵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압축한다는 것, 이것 또한 굉장한 능력이 아닐까요. 짧은 글이었지만 툭- 하고 떨어지는 글들이 많았습니다. 단편자체로 끝나기도 하고, 그 단편들이 요리조리 모여 하나가 되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가벼이 쓰여진 글은 아님에 틀림없습니다. 

 

  단편들을 만나면서, 세상에는 참으로 불편한 진실이 많다는 것을 새삼스레 선명하고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흘러가는 그들의 대화 속에는 언제나 불편한 진실들이 콕콕 박혀 있습니다. 그것은 부인(否認)할 수 없는 명백한 현실인 거겠죠.  저는 언제나 이런 껄끄러움과 마주하게 되면 그저 피하고만 싶습니다. 빨리 잊어버리는 사람이 적응하기 훨씬 쉬운 법이잖아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피하고만 싶은 껄끄러움이 아니었습니다. 무언가 그의 인생철학이 박혀 있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철학적인 단편이라. 참 매력적이었습니다. 단편 하나가 끝나고 또 하나가 시작되고. 보통은 단편이 뇌리에 남은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김영하 작가님은 예외. 김영하 작가님의 글은 무서워요. 너무 지나칠 정도로 뇌리에 남아서..;) 김영하 작가님이 소름 돋는 단편이라면, 김경욱 작가님은 잔잔한 여운이 오래가는 단편이 아닐까요. 개인적으로는 김경욱 작가님의 단편에 손 들어주고 싶습니다. 어디까지나 간이 콩알만한 제 기준으로요. 이 책, 손에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드는 대화가 많아서 포스트잇이 꽤 많이 붙었습니다.   

  몇가지만 맛보기로 소개할께요! 

 

 

 나무는 다리가 하나라서 뿌리내릴 수 있어. 인간은 다리가 둘이라서 떠돌아야 하는 거야.죽음을 맞을 때까지 떠돌다 어느 나무 아래 묻히는 거지. 한줌 거름이 되기 위해.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17쪽 중에서

 

상처받은 진실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어. 상처받은 진실을 위로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진실뿐이야.

<99%> 77쪽 중에서

 

우리가 누군가와 약속하는 것은 상대의 신의에 대한 불안 때문이 아니라 제안의 두려움 때문이다.

  <99%> 96쪽 중에서

 

살이 찌는 건 죄악이 아니오. 살에 대한 책임을 게을리하는 게 죄악이지. 헤비급이라는 것은 무하마드 알리나 조지 포먼 같은 상대와 맞붙어야 한다는 뜻이오, 작가 선생.

<허리케인 조의 파란만장한 삶> 113쪽 중에서

 

 

한 번 링에 오른 자는 영원히 내려올 수 없소. 발 딛고 선 곳이면 그곳은 어디든 링이기 때문이오. (...) 링이 왜 사각형인지 아시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머무는 곳이 십중팔구 사각형이기 때문이오. (...) 요람부터 관까지 모두 사각형이니 결코 사각형에서 벗어날 수 없소. 운명은 사각형이오, 작가 선생

<허리케인 조의 파란만장한 삶> 115-116쪽 중에서

 

 

  개인적으로 <99%><허리케인 조의 파란만장한 삶>을 재미있게 읽었어요. 정말 딱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어요. 뭔가 철학적인, 명언 같은 말이랄까요? 두 편을 읽으면서 '단어'에 대해서 좀 더 묵직한 깨달음을 얻었어요. 두려움, 책임과 같은 단어들이 제가 가지고 있던 범주보다 훨씬 넓어졌죠. 그리고 늘 제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어요. 이 책을 통해서 시야가 넓어지고, 성숙해진 느낌이 듭니다. 오래 남는 단편이 될 것 같아요.  다른 작품들도 빨리 만나봐야겠어요!

 



y***********3 2011.11.28.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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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 하드보일드하고 건조한 문체를 통해 드러낸, 인간과 이야기의 심연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 하드보일드하고 건조한 문체를 통해 드러낸, 인간과 이야기의 심연" 내용보기
순문학과 장르문학을 불문하고, 장편보다는 단편을 선호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짧은 단편 안에 모든 것을 배열하고 끝맺는다는 것이 내게는 꽤나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물론 내가 끈기가 없는 편이라, 장편이나 몇 권으로 이루어진 긴 이야기(예를 들면 <태백산맥>이나 <토지>같은)는 중간에 어디론가 주의력이 흩어져 버린다는 이유도 단편 선호에 한 몫을 한다. 또한 정조(情調,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 하드보일드하고 건조한 문체를 통해 드러낸, 인간과 이야기의 심연" 내용보기

순문학과 장르문학을 불문하고, 장편보다는 단편을 선호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짧은 단편 안에 모든 것을 배열하고 끝맺는다는 것이 내게는 꽤나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물론 내가 끈기가 없는 편이라, 장편이나 몇 권으로 이루어진 긴 이야기(예를 들면 <태백산맥>이나 <토지>같은)는 중간에 어디론가 주의력이 흩어져 버린다는 이유도 단편 선호에 한 몫을 한다. 또한 정조(情調, mood)에 대해서는, 역시 밝은 쪽보다는 어두운 쪽을, 문체 면에서는 수식이 많은 만연체보다는 지극히 건조한 문체를 선호하는 편이다. 어두운 내용의 책만 자꾸 읽으면 울증이 심해진다는 의견도 있지만, 묘하게도 나는 반대로 밝은 분위기의 책을 읽으면 '그래, 나는 이렇게 당신들(등장 인물들)과 달리 한심하기 짝이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하는, 모종의 반발심이 들고 내 자신이 더욱 싫어지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암울하고 그로테스크한, 어두운 분위기의 책을 읽으면 '이것이 실제가 아니라 다행이다. 나의 실제 삶이 이렇게까지 지독하지는 않아서 다행이다.'하는, 일종의 안도의 느낌을 받는다. 얼마 전 출간된 김경욱의 단편집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도 그러한 어두운 정조를 드러내는, 하드보일드하고 건조한 문체가 특징인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문학을 전공했고 순문학을 꽤나 사랑하는 입장이지만, 사실 김경욱의 작품은 처음이다. 그를 특별히 싫어해서가 아니라, 좋아하는 몇몇 작가들의 책을 깊게 파는 스타일이라(순문학 작가들 중 배수아, 박민규, 천운영, 김숨, 김연수, 편혜영, 전경린, 김이설의 거의 모든 책들을 나는 갖고 있다) 그 테두리 안에서만 머물렀던 것이다. 수많은 우연과 필연을 거쳐서 김경욱의 단편집은 내게로 왔고, 처음에는 생경함과 정체 모를 약간의 불편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단편들을 하나씩 읽어 나가며 그의 스타일에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작품을 처음 접했기에 전작들과 비교해서 어떻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그의 등단작을 찾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소설집의 첫 작품이자 표제작인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는 하드보일드적 색채가 강렬한 작품이다. 같은 반 남학생들에게 집단성폭행을 당하고 그 후유증으로 말을 잃은 초등학생 손녀와 곧 헐릴 재개발 지역에서 단둘이 살아가는 주인공은, 이미 전기와 가스가 끊기고 지병으로 인해 직업까지 잃을 상황이지만 가해자 부모들이 제시하는 보상금을 거부하고 치밀한 복수를 준비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건 복수는 그를 둘러싼 철벽과도 같은 부조리 앞에서 어떤 의미있는 타격도 가하지 못한 채 실패하고 만다. '어둠은 늘 있었다. 찾아왔다 물러갔다 다시 찾아오는 것은 빛이었다. 사내는 이제 아주 오래 기다려야 하는지도 몰랐다. 나무처럼, 한그루 나무처럼. 말을 잃은 계집애를 등에 업은 채.(p.33 중 발췌)' 주인공 사내가 처한 상황의 암담함과 그에게서 발산되는 일종의 박력이 서로 맞부딪치는,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작품이었다.  

 

또한 취업 사수생이자 과외교사인 주인공과 유학에 실패하고 돌아온 압구정동 여고생이 등장하는 단편 <러닝 맨>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과 공포가 작품 전반에 걸쳐 흐르고 있다. 그들이 한강변으로 놀러 갔을 때, 수차례 마주치는 '뱀 문신을 한 사내'와 개를 쇠줄에 묶어 끌고 가는 오토바이 등이 강남 부녀자 납치강도사건 이야기와 교차되면서 긴장감은 고조된다. 하지만 정말로 무서운 것은 뱀 문신의 사내나 오토바이 남자, 강물 속 사내를 향해 돌을 던지는 조무래기 아이들이 아닐지도 모른다. '강 건너에는 찍어낸 듯 엇비슷한 아파트가 성벽처럼 죽 늘어서 있었다. 그것은 난공의 요새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강은 성벽으로의 접근을 차단하는 해자일 테지. 저 깊고 넓은 해자 건너, 저 단단하고 높은 성벽 너머에 은재의 집이 있다.(p.52 중 발췌)' 부유층의 거주지가 높디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난공의 요새'임이 강조되는 가운데 그 성벽 바깥에서 성벽 내부의 삶을 선망하는 주인공 역시 한편으로는 절대 성벽 안으로 진입할 수 없는, 외부인이자 잠재적 범죄자나 마찬가지임이 은연중에 드러나고 이는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주인공이 마지막 부분에서 뱀 문신 사내에게서 도망치려 오리배를 타고 강 건너 남쪽으로 향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결코 그것으로부터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  

 

<러닝 맨>의 연장선상에서, 1퍼센트를 향한 일종의 속물적 욕망에 대해 다루고 있는 <99%> 역시 꽤 의미심장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광고회사에 다니는 최대리는 어느날 갑자기 스카우트되어 회사에 나타난 해외파 '스티브 킴'에게 심한 열등감과 위기감을 느낀다. 그럴수록 그는 스티븐 킴이 사실은 고등학교 시절 자신이 전학간 학교에서 2등으로 끌어내렸던, 아버지도 누군지 모르고 어머니가 술 장사를 했던 김태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에 사로잡힌다. 마지막 부분에서, 과연 김태만에게 있었던 닻 모양의 문신이 스티븐 킴에게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이 소설 속에 언급되지 않는다. 일종의 열린 결말이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스티븐 킴과 김태만의 동일인물 여부보다도, 그에 대한 최대리의 의심이 어쩌면 그를 향한 질투와 선망이 낳은 일종의 허상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1퍼쎈트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면서 99퍼쎈트를 공략하는 거죠. 1퍼쎈트를 질시하면서도 거기 끼고 싶어 안달인 99퍼쎈트 말입니다. 우리는 그 이율배반적인 욕망의 뇌관을 건드려주는 겁니다.(p.95 중 발췌)' 일종의 미스테리적 장치들을 통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욕망을 되돌아보게 하는 수법이야말로 그의 소설에서 두드러지는 장기라 할 수 있다. 

 

그 외의 단편들 역시, 출구가 없는 빈곤한 삶에 짓눌린 삼대의 삶을 담담하게 묘사하거나(<태양이 뜨지 않는 나라>), 결코 생각처럼 낭만적이거나 멋지지 않은 유럽 투어 가이드의 길고 고단한, 그리고 초조하기까지 한 하루에 대한 이야기거나(<혁명기념일>), 어린 시절부터 제대로 된 소통이 부재했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아버지의 부엌>) 등, 이 책에는 잔혹하거나 혐오스러운 장면이라고는 결코 등장하지 않음에도 왠지 모르게 불편함이 느껴지는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처음 읽었을 때는 등장인물들이 정말 지독하게 암울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뿐이라는 생각을 했었고, 두 번째 읽으니 어느 정도 그 이면이 보이는 느낌이다. 어두운 분위기나 건조한 문체 등을 평소에 자주 접했거나 선호하는 편이라면 이 작품집에 높은 점수를 주겠고, 주로 밝은 분위기의 작품을 선호하는 편이라면 결코 높은 점수를 주지 않을 것 같다. 호불호가 심하게 갈릴듯한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많이는 아니고, 약간은 마음에 들었던 단편집이다. 여담이지만 책의 표지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작품들 전반에 흐르고 있는 음울함과 건조함을 아주 잘 드러내고 있다고 느껴진다. 그의 초기작은 어땠을지, 매우 궁금해진다. 

 

j******m 2011.11.22. 신고 공감 2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모호함과 짙은 회색빛 절망 외에는 이 책이 담고 있을 이야기와 결말을 올곧이 읽어내지 못하고 말았다
"모호함과 짙은 회색빛 절망 외에는 이 책이 담고 있을 이야기와 결말을 올곧이 읽어내지 못하고 말았다" 내용보기
인터넷에서 “단편 소설의 매력”을 검색해보니 “이야기의 빠른 전개와 장황하지 않은 압축미(네이버 지식iN ID destinyend님 답변 인용)"라고 한다. 단편소설은 이처럼 짧은 호흡 안에 이야기의 전개와 결말을 압축해서 모두 맛볼 수 있는 재미가 있지만, 이야기의 결말이 분명치 않고 지나치게 생략된 전개 때문에 쉽게 몰입이 되지 않아 읽고 나서도 금세 이해되지 않고 뒷맛이 개운
"모호함과 짙은 회색빛 절망 외에는 이 책이 담고 있을 이야기와 결말을 올곧이 읽어내지 못하고 말았다" 내용보기
인터넷에서 “단편 소설의 매력”을 검색해보니 “이야기의 빠른 전개와 장황하지 않은 압축미(네이버 지식iN ID destinyend님 답변 인용)"라고 한다. 단편소설은 이처럼 짧은 호흡 안에 이야기의 전개와 결말을 압축해서 모두 맛볼 수 있는 재미가 있지만, 이야기의 결말이 분명치 않고 지나치게 생략된 전개 때문에 쉽게 몰입이 되지 않아 읽고 나서도 금세 이해되지 않고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행간(行間)에서 생략된 전개와 해설을 유추해보는 여운을 길게 가지며 곱씹어 보는 경우도 있겠지만 한 편에 너무 머물다 보면 오히려 장편보다 읽는 속도가 더뎌지기도 하며, 단편 소설집인 경우 다음으로 이어지는 또 단편의 이미지 때문에 전 편의 여운은 금세 희미해지는 경우도 종종 있게 된다. ”김경욱“의 소설집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창비/2011년 9월)>이 나에게는 분명치 않은 결말에서의 모호함과 한 편 한 편 어둡기만 한 회색빛의 이미지로 느껴지는 그런 책이었다.

 

 책에는 표제작이자 첫 수록 작품인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를 비롯해서 총 9편이 실려 있다.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는 “이 도시에서만 수백 개의 수도 계량기가 동파된 월요일 아침”이란 문구로 부동산 중개소와 학교,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서 일어난 도난 사고로 시작된다. 잠금장치가 풀려나가고 자물쇠가 뜯겼으며 열쇠구멍이 횅한 도난 사건이 분명한데 없어진 물건은 전혀 돈이 될 것 같지 않은 “아파트 단지 상세도”와 “학생 신상카드”, “주차스티커 발급대장” 들이다. 이런 의문은 역시 같은 문구로 시작하는 퀵서비스 사내 이야기에서부터 서서히 풀려진다. 같은 반 아이들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아 시도 때도 없이 졸고 깨어 있을 때도 눈빛이 흐리멍덩해진 손녀가 안쓰러운 사내는 죄송하다고도 미안하다고 하지 않고 그저 돈으로 무마하려는 가해 아이들의 보호자들을 “심판”하기로 한다. 책 첫머리에서 없어진 물건들은 손녀를 그렇게 만든 아이들과 부모들을 확인하기 위한 일종의 단서들인 셈이다. 마침내 심판의 어둠이 밝아오고 사내는 그 아이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로 숨어 들어가 젊은 시절 열대의 정글을 누볐던 군인이었던 것처럼 작전을 수행한다. 다음날 아침 전기가 끊긴 통에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켰지만 아침 뉴스에는 어젯밤 자신이 벌인 작전의 결과가 등장하지 않았다. 결국 남은 건 불덩이처럼 열이 오른 손녀와 발이 붓고 눈이 더 침침해진 자신과 등유가 다 떨어져 불꽃이 시득시득해진 석유풍로뿐. 그런 그에게 손녀는 천진난만하게도 손녀가 울음을 터뜨릴 때마다 불러줬던 캐롤을 할아버지께 들려준다. 다 읽고 나서 일순 당황했다. 한편의 스릴러처럼 진행되던 이야기가 딱히 결말 없이 허무하게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제목처럼 신에게는 손자가 없기 때문에 이 가엾은 사내의 복수극을 용납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복수가 처참한 현실까지 극복해낼 수 는 없다는 일종의 허무함이었을까? 물론 현실에서의 그 어떤 복수도 통쾌함은 찰나일뿐 감당하기 어려운 법적 제재가 뒤따를 수 밖에 없고 그런 복수를 해냈다고 하더라도 현실은 전혀 바뀔 게 없는 그런 것이라고 결말을 나름 짐작해볼 수 도 있겠지만 몇 번을 다시 읽어봐도 쉽게 이해되지 않은 이야기와 결말이었다. 어쩌면 작가는 자신이 들려주고 싶은 결말이 아니라 독자들의 각자의 해석에 결말을 맡겨놓는, 일종의 "열린 결말"을 의도한 것은 아닐까? 여러 생각을 해보다가 다시 읽기 시작했지만 이어지는 단편들도 모두 이런 식이다. <러닝 맨>에서는 도로 중앙을 달리며 방해하는 뱀 문신을 한 남자와 오토바이에 자신의 학생이자 애인을 실고 달리는 가난한 과외교사와의 막연한 불안감과 긴장감을 그리고 있지만 역시나 뱀 문신 남자의 정체는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살인범으로 짐작될 뿐 주인공과의 “사건”은 채 일어나지 않고 마무리되고, <99%>에서도 주인공이 열등감을 느끼게 한 상사가 자신이 알던 동창생으로만 짐작될 뿐 그의 정체에 대해 분명한 결론을 들려주지 않으며, <허리케인 조의 파란만장한 삶>에서는 시합 직전 왜 체중이 갑자기 불어나 계체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이유는 들려주지 않는다. 그 외 나머지 작품들도 이처럼 분명한 결말을 맺진 않고 그저 사회 곳곳에서 저마다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군상들의 삶을 그저 담담하게 들려준다. 그렇다 보니 한 편 한 편 읽고 나도 쉽게 마무리가 되지 않고 여운이 길게 남아 꽤나 더디게 읽히고 만다.

 

출판사 소개글을 보니 이 작가의 경향이 “이야기의 핵심적인 지점마저 부러 절제하고 생략하고 비워놓음으로써 더 많은 의미로 스스로를 열어 놓아서 그것이 독자들로 하여금 더 큰 진실에 다가가게 만든다”고 해설하고 있는데, 어떤 독자들에게는 이런 “열린 결말”이 작가의 주입식 결말이 아니라 좀 더 다양한 면에서 사건(이야기)를 바라볼 수 있게 하고 각자의 상상대로 결말을 유추해 보는, 말 그대로 더 큰 진실에 다가서는 재미와 감동을 맛볼 수 있겠지만 나로서는 결말과 작가의 의도를 파악해내기 어려워 자꾸 곱씹게 되고, 그러다 보면 더 모호해지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다만 한 편 한 편 음울하기만 색감과 이미지만큼은 꽤나 강렬하게 느껴져 “모호함”과 함께 “음울한 회색빛” 때문에 여운이 더 짙고 더 길게 남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과문(寡聞)한 탓에 이 책 올곧이 읽어내지 못했지만 이 작가, 이 단편집 한 권 만 읽고 끝낼 그런 작가는 아닌 듯 하다. 다음 번에는 좀 더 호흡이 긴 장편으로 그를 만나봐야 할 것 같다. 그때도 소개글처럼 명료한 해답이 아닌 모호함이 주는 열린 결말이 과연 또다른 진실을 발견케 하는 재미와 감동을 주는 지 아니면 다시 한번 쉽지 않은 이해 탓에 절망케 할 런지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a*****7 2011.11.15.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졸고 있는 신 앞에서 심장이 타버리는 순간을 떠올리다...
"졸고 있는 신 앞에서 심장이 타버리는 순간을 떠올리다..." 내용보기
김경욱의 소설집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라는 먼 길을 걸어간다.    거기에는 총 9개의 정거장이 있는데 그 중 둘은 크고 나머지는 고만고만하다. 여정은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란 역에서 시작하여 '아버지의 부엌'이란 역에서 끝난다. 두 개의 커다란 역은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란 역과 '하인리히의 심장'이란 역이다. '하인리히의 심장' 역은 일종의 분기점으로 거기서 내가 탄 열
"졸고 있는 신 앞에서 심장이 타버리는 순간을 떠올리다..." 내용보기

  김경욱의 소설집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라는 먼 길을 걸어간다. 

   거기에는 총 9개의 정거장이 있는데 그 중 둘은 크고 나머지는 고만고만하다. 여정은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란 역에서 시작하여 '아버지의 부엌'이란 역에서 끝난다. 두 개의 커다란 역은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란 역과 '하인리히의 심장'이란 역이다. '하인리히의 심장' 역은 일종의 분기점으로 거기서 내가 탄 열차는 선로를 바꾸게 될 것이다. 거기서는 픙경마저 달라진다.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란 역에서 '허리케인 조의 파란만장한 삶' 역까지가  조밀조밀한 일상들을 영위하는 개인들로 가득한 거리의 풍경이라면 '하인리히의 심장'이란 역에서 마지막 '아버지의 부엌'이란 역까지는 신에게서 조차 버림받은 삭막하고 헐벗은 황무지이다. 거기 사람들은 그 어디에도 이어지지 못한 채 땡볕 아래 비루한 허수아비 처럼 스스로를 태워가고 있을 터였다. 너무도 판이하게 변해버린 풍경에 살짝 당황해버린 나는 이번 테마여행을 주관한 차장에게로 가서 어떻게 이런 경로를 선택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뜬금없이 내게 이런 질문을 해 왔다. 

   "하인리히 법칙을 아십니까?" 

   "네?" 

  "1920년대에 말이죠 미국의 한 보험회사에서 일하던 하인리히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각종 사고 재해를 통계내는 일을 맡았는데요. 거기서 그는 큰 재해와 중간 재해 그리고 사소한 재해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으며 아울러 그 수치까지도 밝혀내었죠. 그러니까 하나의 큰 재해가 일어나는 데에는 모두 29번의 중간 재해가 먼저 일어나고 그 중간 재해가 있기 위해서는 그 보다 먼저 총 300번의 사소한 재해가 일어난다고 말이죠.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총 300번에 걸쳐 사소한 재해가 반복된다면 그것은 곧 아주 커다란 재앙이 닥칠 전조라는 말이죠." 

   "그래서요?" 

   나는 솔직히 차장이 못 미더워지기 시작했고 도대체 내 질문과 이런 뜬금없는 대답이 무슨 상관인지 힐난하고 싶어져서 조금은 목소리를 돋우어 그렇게 말했다. 

   "이렇게 말했는데도 눈치채지 못했다면 당신도 어지간히 형광등이로군요.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거리를 거쳐 이 지옥과도 같은 황량한 벌판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그 거리에서 무엇을 보았습니까? 언제 어느 때 고통이 찾아올지 모르는 때로는 아예 죽음마저 닥쳐올지 모르는 일상 깊숙이 침윤된 위험, 희생자를 호시탐탐 노리는 늑대의 번뜩이는 눈과도 같은 악의 앞에 벌거벗은 채 노출된 사람들을 보지 못했습니까?('신에게는 손자가 없다'와 '러닝맨') 더러 용기있는 자들은 악의로 점철된 일상의 법칙으로 바꿔보고자 시도했지만 실로 굳건하디 굳건한 일상의 힘에 여지없이 무너질 수 밖에 없었음을 보지 못했습니까('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99%' 그리고 '허리케인 조의 파란만장한 삶') 그들은 능력이든 의지든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다하여 일상을 이겨보려 했지만 결국 패배하고 말지요. 그 패배가 바로 하인리히가 말하는 300번의 사소한 재해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이곳으로 올 수 밖에 없었는지 이제 이해하시겠지요. 그럼 저는 이만 표를 검표하러 가야 해서...." 

   차장은 '너처럼 멍청한 승객은 처음 본다'라는 표정을 보란듯이 지어보이고 나서는 냉혹하게 몸을 돌렸다. 물론 나는 이해했다. 좀 전에 '하인리히의 심장'이란 역에서 그와 유사한 광경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인리히의 심장'은 말하자면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라는 여정에 있어 이 여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핵심과도 같은 역이었다. 거기 불가사의하게 심장이 타버린 한쌍의 남녀가 발견되었고 형사는 그들과 관련되어 있는 사람들을 탐문하고 있었다. 차장은 늘 그렇듯이 출발을 서둘러 일의 전말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보여주지 않았지만 바로 그 의도된 공백들 때문에 오히려 잔상이 오래도록 남게 되었다. 여행에서 잔상은 늘 다음에 오는 풍경들과 겹쳐지게 마련이다. 그렇게 모든 풍경은 서로가 겹쳐지면서 연속되고 그것으로 우리는 각각 다른 공간을 스쳐가는 여정임에도 불구하고 문득 여행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정조를 새기게 된다. 

 

   아... 김경욱 차장의 이 난감하기 그지없는 이른 출발은 그것 때문이었던가? 

   나는 새삼 텅 비어있는 역사에서 꽁치 통조림 바닥을 긁고 있는 父子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모든게 하나의 일련이란 흐름이란 걸 보여주기 위해... 그렇다면 내가 차장에게 물었을 때 그가 '하인리히의 법칙'에 대해 설명해 주었던 것은 지극히 타당한 설명이었던거다. '하인리히의 법칙'의 핵심은 아무리 거대하고 아무리 사소하다고 해도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심장이 타버린 남녀가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보여주기 보다는 그들의 주변 인물들의 목소리로, 어쩌면 내용과 별 상관도 없어 보이는 듯도 한 그들 일상의 사소한 단면들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기로 차장이 선택했던 것도 바로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던 듯 하다. 아무리 별개의 것으로 보이는 사소한 일상의 조각들이라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이 거대한 인과의 흐름 속에 있다는 것을 일러주는... 

 

   그렇다면 이 여정이란 그 무엇을 확인하기 위함일까? 

 

   우리는 악의와 위험으로 점철된 일상을 보았고 그 앞에서 그지없이 무기력한 우리들의 모습을 보았다. 세상은 왜 이 따위로 되었나? 출발하기 전 차장은 큰 소리로 외쳤다.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라고... 그 이름을 가진 역은 그야말로 구원이 사라진 세상이었다. 우리에겐 예수라는 신의 아들이 있었다. 그리고 현대의 기독교는 그 예수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들로 이루어진 종교였다. 한데 구원이 사라진 세상의 이름은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였다. '신에게 손자가 없다'면 그 예수를 아버지라 부르는 지금의 현대인들은 신이 할아버지가 되기를 거부한, 그렇게 내버려진 손자들이 되는 것인가? 그렇게 이 세상 마저도 신에게 버림받은 곳이 되어버리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건 신이 부재한 결과로서의 현재다. 때문에 '99%'나 '허리케인 조의 파란만장한 삶' 처럼 과연 내가 알고 있는 것인지 진실인지 보증해 줄 수 있는 존재는 사라졌으며(왜냐하면 진실을 보증해 줄 수 있는 존재는 오로지 신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우리 일상은 '러닝맨'이나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처럼 언제 악의에 찬 이빨에 내 목을 물릴지 모르는 불안 속으로 빠져버린 것이었다. 

 

   늘 무기력하게 패배해야만 했던 우리들은 따라서 당연히 묻게 되지 않을 수 없다. 

   떠나버린 신은 어디있나고? 

   그래서 사실 이 여정은 역순인 것이다. 

   우리의 출발은 현재이지만 미래의 결과이며 종내에 도착할 종착역이야 말로 미래이지만 현재의 원인인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그 역에서 현재적 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인데 궁극적으로 그러한 신의 모습이 하인리히 법칙 말마따나 하나의 커다란 재앙인 것이며 그 이전 역에서 우리가 보게되는 29개의 중간 비극이나 300개의 사소한 비극은 모두 그로 인해 초래된 결과들인 것이다. 중간 비극은 신과 인간의 중간 다리에 놓인 자들(예수 처럼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인물들)이 보여주는 유폐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각각의 역에서 모두 진리 혹은 권위를 가지고 있는 신의 대리인들 하나씩을 보게 되지만 그들 모두는 현실에 아무런 영향력을 미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연애의 여왕이 주인공에게 줄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 여친에게 부탁받은 싸인 뿐이고('연애의 여왕) 막대한 재산을 날린 이유가 사실은 독립운동을 지원했음을 유일하게 알려줄 수 있는 진실을 간직한 할아버지는 진실을 확인할 수 있는 눈이 보이지 않는다. 그 신으로 부터 인간을 해방시켜 주었던 '프랑스 혁명'은 겉잡을 수 없는 신자유주의를 낳아  오히려 인간에게 더 한 혼란과 파국만 가져다 주었을 뿐이다.(혁명기념일) 신은 떠나버렸고 그 신의 대리인들 조차 고독한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은둔해 있거나 무기력할대로 무기력해져서 사람들에게 짐짝 취급을 받을 뿐이다. 우리는 정거장을 거듭 지나는 동안 확인하게 되는 것은 오로지 절망과 환멸 밖에는 없으며 이 모든 파국적 현재를 초래한 신을 진심으로 만나고 싶어하게 되는데 문득 차장이 기적을 울려 창밖을 바라보니 어느새 우리는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에덴 동산'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물론 그 에덴동산은 성경에 나온 그대로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부엌이었다. 

   모든 주방용품이 새것으로 꽉 차있는 TV 광고속에 흔히 나오곤 하는 '미미의 부엌'이었다. 그래서 역 이름도 '아버지의 부엌'이었나 보다 하는 순간 그 부엌 안에 놓인 의자 하나에 졸고 있는 누군가가 보였다. 한 사람이 그에게로 다가가 앞에 놓인 식탁 위에 계란과 생수를 내려 놓더니 '아버지'라 불렀다. 그랬다. 그 꾸벅꾸벅 졸고 있는 사람이 바로 '신'이었다. 우리가 마지막에 만나야 했던 그 존재였다. 신은 졸고 있다. 자신의 욕망에 따라 마음대로 인간을 조율해 왔던 그 신은 이제 장성해 버린 인간의 힘(바로 그 앞의 역이 '혁명기념일'인 것은 아마도 이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리라)에 압도 당하고 그렇게 반발해서 뛰쳐나간 인간이 결국 이루어 놓은 것이 또한 고작 지리멸렬함 뿐인지라 가득 환멸감을 느끼고는 '낡은 열차가 선로를 힘겹게 밀고 나가는 듯한' 소리로 코를 골며 그저 졸고 있을 뿐이었다. 잔뜩 원망과 구원을 위한 간원을 쏟아 놓고자 그 때까지 별려온 우리들은 이 난감하기 그지없고 황망하기 짝이 없는 조우에 그만 실소마저 나올 지경이다. 멍하니 그저 메두사의 머리를 보고 돌이라도 되어버린 듯 멍하니 서 있는 우리들 뒤로 어느샌가 차장이 다가와 어깨를 토닥이더니 이렇게 말한다. 

 

   "정말 뭐 별거라도 있을 줄 기대했던 거야?" 

  그는 '난 지금 농담을 하는거야'를 암시하듯 입꼬리를 살짝 올렸지만 눈가는 촉촉히 젖어있었다. 그것을 내가 유심히 바라보고 있음을 눈치채었는지 그는 흰 장갑을 낀 손으로 눈가를 재빨리 닦더니 "아, 모래 바람이 정말 심하네."  하고 말했다. 그리고는 졸고있는 신을 보았다. 그의 시선은 신의 옆에 서서 내려다보고 있는 아들의 시선을 닮았다. 어쩐지 신을 불쌍히 여기고도 있는 듯한 잔뜩 연민이 어린 그 시선을...

 

   세상은 망가졌고 그것을 바로잡아 줄 만한 신은 앞에서 졸고 있다. 

   정답도 없고 구원도 없다. 

   하인리히의 법칙을 알지만 그것을 막을 방법도 없다. 우리들은 그저 열차에 올라탄 승객들 처럼 오로지 그 확인만 반복할 뿐이다. 300번의 사소한 재해들... 고통들...  눈물이 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이 아프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 아픔을 기억하는 것이야 말로 중요하다고. 절망한다면 그 바닥까지 내려가야만 한다고. 그래야 다시 올라올 수 있다고. 이 여정은 그 바닥까지 내려가는 여정이라고... 난 모르겠다고 고개를 젓는다. 모든 건 유보다. 사실 이 거대한 형이상학적 주제를 짧은 여정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차장도 아니까 결국에는 저렇게 침묵하고 있는 거겠지. 그냥 지금 내 안에 깃든 이 감정이 중요한거야. 그것이 절망이든 연민이든... 기억으로 가는 통로이든 연대로 나아가는 손짓이든... 그 무엇이든... 그것이 다음에 오게 될 그 무엇의 앞에서 나아갈 방향을 정해주게 되겠지. 어차피 '나'란 실체는 환영에 불과하고 있는 것은 그저 무수한 욕망과 감정의 다발 뿐인 걸...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밤은 깊어지고 신은 여전히 졸고 있고 그를 둘러싼 우리 모두는 마치 시간 자체를 형벌로 받고 있는 듯 서 있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정지해 있었다. 열차는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고 차장 역시 돌아갈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세상은 절대적으로 비가역적이라 생각했고 태양이 꺼져버린 세상에서 시간을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 생각했다. 

   이런 세상에서 아마도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란 바로 심장이 타 버리는 그 순간이 아닐까?



l****1 2019.12.3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불편한 진실은 그저 불편할 뿐.
"불편한 진실은 그저 불편할 뿐." 내용보기
내가 한국 현대 단편 소설을 읽으며 아주 기쁘게 책을 내려놓았던 적이 있나 싶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마 없었을 것이다. 대신 내 기억 한편을 차지하는 건 하나같이 우울하고 이 현실을 바라보라고 자꾸만 압력을 주는 불편한 진실에 한숨만 내쉬었던 경험이다. 그러니 단편 소설만큼은 자꾸 피하게 된다.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또한 단편 소설이다. 아홉 편
"불편한 진실은 그저 불편할 뿐." 내용보기

내가 한국 현대 단편 소설을 읽으며 아주 기쁘게 책을 내려놓았던 적이 있나 싶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마 없었을 것이다. 대신 내 기억 한편을 차지하는 건 하나같이 우울하고 이 현실을 바라보라고 자꾸만 압력을 주는 불편한 진실에 한숨만 내쉬었던 경험이다. 그러니 단편 소설만큼은 자꾸 피하게 된다.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또한 단편 소설이다. 아홉 편의 이야기는 알 수 없는 미스테리적 구성을 띠기도 하고 무언가 엄청난 사건을 예고하면서도 때로는 우유부단하고 때로는 과감한 결정을 내리는가 하면 때로는 삶에 찌든 우리 사회의 한 단편들을 잘 묘사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한 사회가 과연 올까. '신은 공평하다'라는 말은 이미 진실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 지 오래인데 이 현실 속에서 신만 찾고 있을 수만은 없기에 우리는 무언가를 해보려고 자꾸만 아둥바둥 한다. 너무나 억울하다면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의 사내처럼 나름의 복수를 할 수도 있다. <러닝 맨>의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백수나 스스로의 나르시즘에 빠져 나보다 잘난 누군가를 계속해서 의심할 수밖에 없는 <99%>의 최대리보다 훨씬 낫다.

 

그렇다. 아마도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불편했던 이유는, 자꾸만 현실에 안주하고 게을러지려고 하는 나와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으면서 남 탓만 하는 주인공들과 닮아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설은 극단적이기에 어쩌면 나도 그들처럼 될까봐 두려운 건지도. 그렇게 되기는 싫은데, 그런 미래가 보이니 외면하고 싶은 건지도.

 

소설의 중반을 넘어서면서는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다. 그저 현실을 외면하고만 있던 주인공들이 무언가를 결정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대답"을 하기 위해 준비하는 <연애의 여왕>의 사진사나 긴 하루를 마치고 남자 친구에게 안착하려는 <혁명기념일>의 영신이나 비로소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되어 아버지를 바라볼 수 있게 된 <아버지의 부엌>의 '나'처럼.

 

그럼에도 역시나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다. 독서를 내 즐거움을 위해서만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다 읽고났을 때 뿌듯함은 느꼈으면 좋겠다. 강요는 싫다. 어쨌든 마지막 결정은 나의 몫이기에.

 

 




 



y****s 2011.11.15. 신고 공감 0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