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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 30. 화.
모악시인선의 아홉번째 시집은 그 동안 읽어본 모악시인선하고는 특별히 구분된다. 저자인 강남옥 시인이 한국인임에는 틀림없지만 현재 한국에 살지 않는 재미교포 시인이기 때문이다. 1959년생으로 고향은 경북 청도이며 불문학도였고 1988년에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으며, 박기영, 안도현, 장정일 등의 시인들과 '국시' 동인으로도 활동을 했단다. 1990년 미국 필라델피아로 이주해서 지금까지 살고 있으며 미주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서 지금은 주말 한국학교에서 한국인 2,3세들과 현지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본인 인생의 절반을 한국에서 살고, 나머지 절반은 미국에서 살았는데, 시마다 한국인의 긍지가 있고, 시마다 한국인의 유머가 있으며, 시마다 한국인의 아픔도 서려있다. 어쩌면 그렇게 글맛을 잃지 않고 쓸 수 있었는지... 아마도 꾸준하게 글쓰는 일을 놓지 않았기 때문일 거라고 짐작된다. 타국에서 살면서 느낄수 있는 이방인의 설움도 있고, 이방인만이 느낄 수 있는 예리한 감각도 시에서 고스란히 살아나기에 그 독특한 시의 맛에 읽다보면 푸욱 빠지게 된다. 박성우 시인은 "필라델피아에 사는 누이가 보내온 손편지 같은 시편 들이다. 삶이 바닥에 닿은 게 아니라 너와 내가 이만큼 깊어진 거라고, 푸른 밤의 잉크를 찍어 쓴 지극한 편지."라고 표현했다. 미국에서 살면서 느낄 수 있는 낯선 서정과 그 속에서 살아온 한국인만의 꿋꿋한 감성이 시 속에서 펄펄 날고 있다. 읽는 내내 킥킥 웃다가, 울컥 목이 메다가, 무릎을 치며 감탄을 하게 되는 시집, [토요일 한국학교] 속으로 들어가 보자.
승부
엘리베이터 앞집에는 인도사람이 산다 끼니 때 풍기는 카레냄새 복도에 고여 있다 가면 같이 한결같은 표정, 속을 알 수 없는 백인 어깨 들썩이며 냄새 좋다, 인사하더니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는다 감정 표현 풍부한 한국인 나는 코를 벌름대며 찡그리고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 딸아이는 고개 숙인 채 날 흘려 본다 향기로운 식탁이 어떤 겐지 내 한 수 가르쳐주마 사도의 긍지 각오 결연해지며 지그시 물린 어금니 사이 침 고인다 비닐에 싸인 청국장 만지작거리다가 돼지목살 먹기 좋게 썰어 참기름에 따글따글 묵은지 넣고 푸지게 한 냄비 끓일 동안 딸아이가 엄동에 문이란 문 활짝 다 연다 조만간 누군가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이다 --- 13p.
미국 사람들은 냄새에 많이 약한가보다. 우리 남편이 냄새에 약해서 한겨울에도 수시로 창문과 대문을 열어놓는데, 여기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옆집 사는 인도사람이 풍기는 카레냄새가 싫지만 좋다고 말하던 미국인이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는 것은 이사를 간 것이 틀림없다. 상대방을 생각해서 싫다는 말은 못하고 그냥 훌쩍 이사를 가버리는 미국인. 그런데 시인은 이사를 간 미국인이나 냄새를 피운 인도인에게 불만이 있는 게 아니다. 카레 냄새에 이사를 갔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향기로운 식탁이 어떤 겐지 내 한 수 가르쳐주마"라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며 하는 행동이 청국장, 돼지 목살, 묵은지를 넣고 한 냄비를 끓이는 것이다. 한국인인 "딸아이가 엄동에 문이란 문 활짝 다"열기 까지 하니 온 동네에 청국장 냄새가 퍼지는 건 시간문제다. 그리고 마지막 연에서 빵 터졌다. "조만간 누군가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이"란 시인의 말 속에 서늘한 승부욕이 느껴지며 웃음이 난다. 카레 냄새 아무리 강해도 우리의 청국장을 당할쏘냐 하고 푸하하 웃음을 터뜨리는 시인의 얼굴이 보일 듯한 시다. 정말 그 이후 누군가 이사를 갔을까. 어쩌면 인도사람이 코를 쥐고 옆동네로 이사가지는 않았을까 나름 추측해 본다.
귀가
뉴욕 출장 중인 동생 주말에 만난다, 맨해튼 타임 스퀘어 네온 불빛 아래 우리 남매는 단 둘이다, 로 정리하고 밑줄 친다
누나 집 내려와 집 밥 한 끼 먹고 시차 웅덩이 깊은 도시로 돌아가는 동생을 프린스턴이나 해밀턴 같은 외국 이름의 기차역에서 배웅하노라면 ㄷ.ㅣ.ㅇ.ㅏ.ㅅ.ㅡ.ㅍ.ㅗ.ㄹ.ㅏ. 자모음 한 획 한 획 맨 목덜미에 따갑게 문신된다
디아스포라, 를 나는 아슴포레 사라지는 것들 붙들 수 없어, 그저 아! 슬포라! 한숨짓는 탄식으로 독해한다
기차 떠나고 목덜미 붉어진 나는 플랫폼 난간 안전선 밖으로 위리안치(圍籬安置)된다 바빌론 강물이 범람하도록 울어도 물 밀어오지 않는 사라진 날들의 잔해처럼 아무리 좋은 세상도 달래지 못하는 것은 넘친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들으며 적소(適所)에 타는 일몰 속 나와 동생은 각자 귀가 중이다 돌아가야 하는 곳이 다른 닮은 것들 사이의 거리를 밀어내며 저녁이 닮은 것들의 윤곽을 지우며 어둠이 오고 있다
더듬어 만져볼 수 없는 비애 때문에 달이 뜬다 --- 14p. - 15p.
낯선 땅에 살면서 만나는 남매는 얼마나 반가울까. 같은 미국에 살아도 서로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 거리를 "시차 웅덩이 깊은 도시"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집밥 한끼 먹으러 누이를 찾아온 동생을 "프린스턴이나 해밀턴 같은 / 외국 이름의 기차역에서 배웅하"면서 느끼는 디아스포라. "아! 슬포라"라고 한숨짓는 시인의 마음이 애처럽다. 바빌론에 잡혀가서 바빌론 강가에서 서럽고 울던 히브리 노예들의 삶과 비교하며 비록 스스로 택한 이민생활이지만, 디아스포라를 말하며 이방인의 설움을 얘기하고 있다. 설령 경제적 어려움이 없을지라도 마음의 허함을 채워줄 수는 없는 이민자의 삶, 그 삶의 비애가 느껴지는 시다.
필라델피아
이곳을 우리는 우정과 사랑, 자유와 정의의 도시라고 프렌들리하게 소개하는 나이스한 버릇이 있다 이 좋은 곳을
떠날 날만 꼽고 있는 이 들어올 날만 꼽고 있는 이 꿈에 볼까 두렵다는 이 자유의 종을, 시청 꼭대기 윌리엄 펜 동상을, 톰 행크스의 '필라델피아'를, 게이 바를 서재필과 20세기 초 그가 문방구를 했다는 골목과 삼일천하와 피 튀는 갑신년의 얼어붙은 밤까지 기억하는 오지랖이 대서양 같은 이도 있다
다 떨어진 군화 신은 조지 워싱턴 졸개들 개선행진 하던 마켓 거리 빌딩들 타고 내려온 날바람 고스란히 맞으며 좌판에 가발과 가방 얹어 놓고 호객하는 한국 남자도 보이고 번화가 뒤안길 들앉은 골목 세탁소 치맛단 꿰매는 한국 여자도 보이고 이민 생활 십 년 만에 나갔던 한국, 이장하고 들어온 아버지 납골당을 추억하는 그들의 심사도 보이고 이 동네 번화가 빌딩 안 어디쯤 만들어지는 맥주가게 단속법 입법 저지를 위해 흑인 밀집 가(街) 어귀 맥주 파는 한국 사람들 서명 받으러 다니는 것도 보인다
그래, 사는 일 맨얼굴에 살바람 맞는 일이라면 시 쓰는 일 코트 깃으로 얼굴 가리고 살바람 헤쳐 걷는 일은 적어도 되어야지 분위기 사뭇 불편하던 와중 음무하하핫! 이 도시 몇 안 되는 스님 한 분 농 중에 이 도시를 명쾌하게 정의했다
'필라다 덜 핀 아그' 랑께~
봉오리 채 시드는 꽃 어디 필라델피아에만 있겠는가만 --- 22p. - 23p.
어디라도 마찬가지겠지만, "떠날 날만 꼽고 있는 이 / 들어올 날만 꼽고 있는 이 / 꿈에 볼까 두렵다는 이" 등등 다양한 군상들이 함께 모여 살고 있는 곳, 필라델피아다. 자신의 근원을 잊지 않기 위함인지 아직도 서재필과 삼일천하와 갑신정변을 기억하는 "오지랖이 대서양 같은"이도 있다. 그런 가운데 좌판에서 장사하는 이, 세탁소에서 바느질을 하는 이, "맥주가게 단속법 입법 저지를 위해" 서명을 받으러 다니는 이 등은 모두 필라델피아에 사는 미국인이며 이방인들이다. "사는 일 맨얼굴에 살바람 맞는 일이라면 / 시 쓰는 일 코트 깃으로 얼굴 가리고 살바람 헤쳐 걷는 일은 적어도 되어야"한다고 스스로를 달래는 시인. 시인에게 있어서 사는 일은 곧 시 쓰는 일과 떼어서는 말할 수 없는 일이기에 힘겹진 매한가지라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코트 깃으로 얼굴"은 가렸으니 조금은 살만하다는 얘기로 들린다. 마지막에 스님께서 하신 말씀에 역시 빵 터졌다. "필라다 덜 핀 아그"라니... "봉오리 채 시드는 꽃"이 안타까워서 스님이 하신 말씀일텐데, 거기서 필라델피아라는 지명과 겹쳐지며 즐거운 언어유희를 보여준다. "봉오리 채 시드는 꽃"에서 그 의미를 생각하면 안타까움이 흐르지만, 거기서도 삶을 달관한 웃음이 있기에 시인의 여유가 느껴진다.
토요일 한국학교
일주일에 고작 세 시간 하는 우리, 토요일 한국학교 빠진 이처럼 몇은 결석 띄어쓰기 다 틀린 작문같이 몇은 지각 "썽생님, 소쩍새가 모하는 거야?" 고급반 한국어 시간 미당의 시 한 수 도전하다 접는다
왼손으로 한국어를 쓰는 아이들 책을 말아 어리통 쥐어막으면 "It's illegal 썽생님" 농담까지 한다
진달래꽃 번역 숙제 검사하다 웃다 웃다 눈물 철철 흘린다
'너가 나 다 쓰고 피곤해서 버리면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나가 너가 가는 길에 꼬츨 깔을 거야 (진달래꽃 가시는 걸음걸음 뿌리오리다) 고걸 살살 발고 가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소월도 이 번역 읽어본다면 나처럼 웃다 웃다 눈물 철철 흘리며 이 녀석들 품에 안을 것이라 믿는다
어쩌다 한국 나가 한 달만 있다 와도 종달새 노래 배우듯 한국말이 느는데 축구도 수영도 파티도 하고 싶은 금쪽같은 토요일 아침은 굶어도 숙제는 챙겨 실려 오는 아이들
네 뿌리를 알아라! 상투적인 철판 탕탕 치는 대신 그냥 안아준다
화분에 물 주듯 몇 년 같이 뒹굴었더니 철자법 다짜고짜 다 틀린 카드도 건네주고 "썽생님, 나 누구게?" 일찌감치 방귀 트듯 선생한테 말 트며 뒤에서 슬쩍 가린 눈 풀고 지긋이 날 안아주기도 한다 --- 52p. - 53p.
일주일에 고작 세 시간을 공부하는 <토요일 한국학교>에는 한국말을 배우기 위한 한국 어린이들의 천진한 질문이 흐르고, 그 아이들을 향한 따뜻한 시인의 사랑이 흐른다. "미당의 시 한 수 도전하다 접" 기도 하고, "진달래꽃 번역 숙제 검사하다"가 웃다웃다 눈물 철철 흘리기도 한다. 진달래 꽃의 번역을 읽다가 나 또한 킥킥대며 웃음이 났다. "고걸 살살 발고 가"는 완전 웃음의 절정이다. "소월도 이 번역 읽어본다면 / 중략 / 이 녀석들 / 품에 안을 것이라 믿는다"는 시인의 말에 저절로 수긍하게 되는 대목이다. 이런 저런 하고 싶은 게 많을 "금쪽같은 토요일"에 모국어를 배우겠다고 오는 학생들의 모습이 기특하고, "네 뿌리를 알아라! 상투적인 철판 탕탕 치는 대신 / 그냥 안아"주는 시인 선생님의 사랑이 참 따뜻하다. 존댓말이 없는 영어에 익숙한 아이들이기에 "일치감치 방귀 트듯 선생한테 말 트며" 반말로 질문하고 장난거는 모습과 서로 안아주는 걸로 대답을 대신하는 모습에서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춰주는 넉넉한 선생님의 품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시인 선생님에게 배우는 아이들은 틀림없이 마음이 건강한 아이들로 자랄 것이다. 맞춤법은 조금 틀릴지라도 반듯하고 심성 고운 아이들로 자랄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에 고운 모국어에 대한 사랑도 저절로 뿌리내릴 것이라 믿는다.
꿈은 유쾌해
주말 한국학교 학예발표회 꿈꾸는 사람 분장하고 왜 그 사람 되고픈가 한국어로 말하기
과학자 되고 싶단, 외교관 되고 싶단 아이 과학자란, 외교관이란, 그 어려운 한국어를 다 알다니 기특! 미국 국방장관 되어 한국 돕고 싶단 아이 분위기 좀 민망 주한미군이니 국제정세를 모를 나인데 어쨌거나! 2044년에 선거에 나가 미국 대통령 되고 싶다는 아이 많이 듣던 소리지만 연도까지 밝히는 성실한 구체성에 진부함 절반 묻히고 그럭저럭! 사라 장 같은 바이올리니스트 되기 위해 몬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수석 바이올리니스트 되고 싶단 아이 엄마 옆구리 열심히 외웠네 …… 욕봤다 …… 옆자리 엄마 쿡쿡 찌른다 얼룩무늬 군복에 베레모, 검은 선글라스에 군화까지 그럴싸한 장난감 총으로 엄마들 겨누며 입으로 두두두두 소리치며 뛰어나와 무대 한 바퀴 돌기부터 하는 아이 엄마들 서로 때리고 쥐어박고 대박난다 충성! 줘는요! 어 …… 조롭하고 나면! 군인 되고씹찌마립니다! because, 왜냐면요 ……
아이, 선생 멀뚱멀뚱 쳐다볼 때 한 번 더 대박! 무대 옆 손나팔 벌린 여선생 목에 핏대 환히 다 보인다 아이 다리 척! 갖다 붙이고 거수경례 싸우고 싶어서요! 박수소리 웃음소리 폭죽처럼 터진다 아니, 나쁜 놈들과 싸우고 싶단 말이야. '나쁜 놈들과!'를 빼먹었어. 젤 중요한 걸 …… 군인 엄마 해몽에 진땀 흘리고
우리 모두 더 유쾌해진다 --- 54p. - 55p.
"주말 한국학교 학예발표회"는 유쾌함의 절정이다. 자신들이 되고 싶은 "꿈꾸는 사람 분장하고 왜 그 사람 되고픈가 한국어로 말하"는 발표회 시간에 아이들의 꿈은 정말 다양하다. 그리고 이유는 더 다양하고 찬란하다. 하지만 어딘가 상투적일 수 밖에 없는 장래희망 얘기들 속에 꼭 빵 터뜨리는 아이들이 있어서 재미있다. "줘는요! 어…… 조롭하고 나면! 군인 되고 씹찌마립니다!"라고 씩씩하게 말하는 아이, 그리고 그 이유를 "싸우고 싶어서요!"라고 해서 "박수소리 웃음소리 폭죽처럼 터"지게 만들어 놓고는, 빠뜨린 말을 엄마가 함으로써 유쾌한 반전을 만든다. "나쁜 놈들과 싸우고 싶단 말이야! '나쁜 놈들과!'를 빼먹었어. 젤 중요한 걸……"이란 말에서 모두모두 웃음보를 터뜨릴 수 밖에 없는 상황. 아이들의 꿈은 진부할지라도 다양해서 좋고, 화려해서 좋고, 대책 없어서 더 좋다. 그리고 거기에 욕심보다는 순수함이 느껴져서 듣는 이들이 유쾌해지지 않을 수 없나보다.
콘돔
콘도미니엄, 가짜 젖꼭지, 황홀한 슛을 잡아내는 골키퍼를 연상한 적이 몰랐던 적이, 알고도 모른 척 하던 위선의 때가 성경책 위에 다소곳이 얹힌 조화로운 경악이 연 소비량 감소폭 너무 커 어지럽다고 불평하는 동창 남편이 편의점 카운터에 주렁주렁 매달린 봉지 껌인가 무심타 얼굴 붉힌 쇼핑이 때문에 인간문화재감이라 추켜세워진 망중한이
있었다
불량 라텍스 살인적 섹스토피아 예방 피임 그런 인문학적 윤리적 법률적 종교적인 진부한 '어떤' 풍진 세상 '적' 이야기다
자연적 분출을 막아내야 하는 범시민적 의무와 책임은 얼마나 크며 합법적 요구를 내리 눌러야 하는 양심의 가책은 얼마나 두꺼우며 도매금으로 싸잡히는 비합리적, 연좌적 억울함은 얼마나 무거우며
자연적 분출과 인위적 폐기 간의 논쟁이 도출해낸 변증법적 결론은 얼마나 정합적이거나 반합적이며 비윤리적임을 인정하되 민주적 사고 체계를 따르지 않을 수 없는 현실적 한계가 이 시대의 비극적 선택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설득력을 가지는 논리적 자중이 윤리적, 도덕적 , 종교적 사유의 편향적 의견을 압도함으로 촉구되는 소수 당과의 투쟁적 진실과 희생적 노력은 누구의 몫인가를 생각한다
가랑이 벌린 거대한 땅 거대한 욕망의 뿌리 같은 빌딩들 내리 꽂히고 찍소리 한 번 못내고 폐기처분 될 정자들 땀 흘리며 일하고 있다 그 중에 나도 당신도 사랑도 쓰라림도 있다고 생각하며 퇴근길 편의점에 들러 콘돔을 사거나 인터넷으로 대량 주문하는 정자들 콘돔이 없으면 헐떡이는 욕망의 분수 속에서도 분출되지 않는 꽤 편리한 신종 정자군이 형성되고 있다는 진화론적 보도도 불원간 있으리라 전망된다 --- 82p. - 84p.
<콘돔>에 대해서 이렇게 직설적이면서 은유적으로 표현한 시가 있었던가. 많이 보편화 되었기는 하지만 지금도 입에 담기는 살짝 민망함이 앞서는 단어인 콘돔에 대해 시를 쓰며 정자(精子)의 미래까지 전망하고 있다. 시인은 그럴싸한 고급진 언어들을 동원해서 콘돔사용에 관한 논쟁을 "자연적 분출과 인위적 폐기"라는 기막힌 말로 시작해서 "이 시대의 비극적 선택일 수밖에 없다는 설득력"을 보여주고, "투쟁적 진실과 희생적 노력은 누구의 몫인가를 생각"하고 있다. "거대한 땅"에 "거대한 욕망의 뿌리 같은 빌딩들 내리 꽂히"는 가운데 "폐기처분 될 정자들 땀 흘"려 일하고 있는 모습은 안쓰럽기만 하다. "살인적 섹스토피아 예방 피임"이라는 명목하에 콘돔이 없으면 섹스도 없다는 주의가 결국에는 "콘돔이 없으면 헐떡이는 욕망의 분수 속에서도 분출되지 않는 / 꽤 편리한 신종 정자군이 형성"될지도 모른다는 "진화론적 보도"에 대한 시인의 전망은 왠지 예언처럼 느껴진다. 피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콘돔이지만, "신종 정자군"과 "진화론적 보도"라는 말에서 오히려 콘돔을 희화화(戱畵化)하는 느낌이 든다. 더불어 "진화론적 보도" 라는 전망을 하는 모습에서 진지한 결연함이 슬쩍 보이기까지 한다. "꽤 편리한 신종 정자군"이라는 말 속에서 시인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세상의 필요에 따라서 더 편리하게 진화되고 있는 인간의 적응력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일까. 아니면 편리함으로 포장되어 가식적이고 인위적으로 진화가 될 것을 경계하기 위한 작가적 방식의 일침(一針)일까.
깊고 넉넉한
진국, 이라는 한국말은 단 두 자 오랫동안 푹 고아 걸쭉하게 된 국물 진(津)국이 있고 참되어 거짓이 없는 사람 진(眞)국이 있다
이 두 진, 자를 같은 발음의 주물 틀 안에 집어넣어 한 가닥 곧고 매끈한 떡가래 뽑듯 뽑아내면 진이 다 빠지도록 치열하게 자신을 끓여내지 않고서는 감히 진실에 다가설 수 없다, 는 자막 정도 띄워줘도 무리 없으리라
얼얼한 숙취에 불어 넣는 뜨거운 콩나물국 시원하다거나 왕소금에 절인 못난이 메주의 피눈물 달다고 하기까지 아프지만 감미로운 이별, 고통스럽지만 감사하다는 고백이 건너온 저 긴 길과 깊은 강과 높은 산자락의 끝은 열반 후 남겨진 사리 같은 상흔일까
진국, 이라는 한국말 단 두 자 영어로 의역하면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자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 쯤 띄어 쓴 행간까지 합해 서른 자 정도, 된다 해도 무리 없으리라 단 두 자로 된 한국말이 서른 자로 몸 푼 육중한 서양 금언을 다 품자면 그 품은 얼마나 깊고 넉넉해야 하는 것일까
내 모국어의 속 깊은 품은 언제나 삶 앞에 진술 긴 나를 부끄럽게 하는 언어의 진국이다 --- 92p. - 93p.
국물 진(津)국과 사람 진(眞)국을 풀어 쓴 시 <깊고 넉넉한>은 고국의 모국어를 그리워하는 저자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있다. 두 진 자를 섞으면 "진이 다 빠지도록 치열하게 자신을 끓여내지 않고서는 감히 진실에 다가설 수 없다" 라고 띄워줘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시인. "뜨거운 콩나물국, 왕소금, 못난이 메주, 긴 길, 깊은 강, 높은 산자락"등의 표현들은 우리 말을 향한 시인의 그리움이 느껴진다. 또, 단 두 자의 한국말 "진국"을 "영어로 의역하면 /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자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 쫌"으로 쓰고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한다. 단 두 자로 서른자의 서양 금언을 품는 모국어의 깊고 넉넉한 품을 예찬하는 시인의 말에는 정말 무리가 없다. 특히 마지막 연의 "내 모국어의 속 깊은 품은 언제나 / 삶 앞에 진술 긴 나를 부끄럽게 하는 언어의 진국"이라는 표현은 시인의 모국어에 대한 깊은 통찰과 애정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오랜 기간 미국에 살면서도 모국어를 잊지 않음은 물론, 모국어로 꾸준하게 시(詩)를 써 왔다는 것만으로도 시인의 대한 깊은 믿음이 간다.
폭설
눈이 내렸다 오래도록 내렸다 빌딩들이 머리를 흰 붕대 친친 감고 나무들이 사지에 깁스를 대는 동안 겨울을 떠내려다 허리를 다친 삽자루들이 말 못하는 가축들처럼 엎드린 자동차 옆구리에 기댄 체 끙끙 앓다 행불 처리되고 담요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이따금 베란다에 나타났다 사라지곤 할 동안 길이 지워지고 계단이 사라졌다
눈은 공평하게 내렸으므로 멀리서 보면 도시의 정직한 윤곽은 성탄 카드처럼 평화로운 설경이었지만 시 정부는 세수(稅收)에 준해 겨울을 밀어냈으므로 제설차는 눈이 쌓이면서 권력이 되었다
가을부터 시 정부에 염화나트륨을 무상 기증해 온 폭설을 겨냥한 자동차회사의 판촉 전략으로 추위에 지친 차들의 아킬레스건은 파열되고 무고한 도로의 복무 이곳저곳이 괴저로 함몰되었지만 얼어붙기 전에 눈이 걷혀야했으므로 아무도 이의제기하지 않는 정적 속 정전의 밤은 치석처럼 굳어갔다
멀거나 낮은 곳은 빠르게 고립되어 갔다 제설차에 밀려난 눈더미들이 이룬 빙벽 바깥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는 것들은 어깨에 쌓인 겨울을 털어내며 사위를 살폈고 흔들림 없는 꼿꼿한 신념들은 제게 깃든 희망을 짊어진 채 부러졌다 살아남은 것은 흔들리는 것들이라고 폭설을 맞는 자세에 대한 논란이 잠시 바람의 모서리에서 일었다 잠잠해졌다
높은 곳에서부터 녹기 시작한 적설은 얼어붙은 도시의 낮은 곳으로 몰려들었으나 하수구를 빠져나가지 못한 물들이 꿀럭꿀럭 살얼음을 게워낸다 저녁이면 다시 얼어붙었다 문이 열리지 않아 늦게 나온 사람들은 자신의 자동차가 이지메를 당하듯 이웃들이 밀어낸 겨울 아래 아득히 묻힌 것을 보았지만 누군가의 희망을 도굴해 자신의 길을 내거나 내릴 때의 눈처럼 공평한 햇빛의 자선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살아남은 다람쥐들이 흰 씨앗을 찾아 나무 밑으로 돌아오고 꽁지 짧은 비정규직 새떼들이 물고 오는 봄소식이 당도할 때쯤엔 햇빛은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녹여버렸으므로 봄의 첫 떡잎에 작성될 소장에는 폭설의 도발을 입증할 어떤 것도 없었다 --- 103p. - 105p.
앞서 읽었던 시집들에서도 "폭설"에 관한 시가 몇 편 있었는데, 여기서도 폭설이다. 앞선 시집에 나온 폭설에 대한 시들은 한국적 옛스런 낭만과 함께 달력에 나올 법한 겨울 풍경화 같은 느낌이 있었다면, 이 시는 폭설의 풍경과 폭설로 인해 벌어지는 현상들이 100% 미국적이며 이국적으로 보여지고 있다. "시 정부는 세수(稅收)에 준해 겨울을 밀어냈으므로 / 제설차는 눈이 쌓이면서 권력이 되"는 현실. 집 앞에 쌓인 눈이 너무 많아서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되기에 제설차가 와서 밀어내야 하는데, 그것마저 세금을 많이 내는 곳부터 찾아가니 제설차까지도 권력이 되는 처절한 현실이다. 자동차회사의 판촉전략으로 시 정부에 무상 기증된 염화나트륨은 오히려 자동차 타이어를 상하게 만들고, "멀거나 낮은 곳은 빠르게 고립 되어"가는 슬픈 현실에, 모두들 "내릴 때의 눈처럼 공평한 / 햇빛의 자선을 기다릴 수 밖에 없"다. 폭설로 인한 피해가 아무리 컸어도, "봄소식이 당도할 때쯤엔 / 햇빛은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녹여버렸으므로 / 봄의 첫 떡잎에 작성될 소장에는 / 폭설의 도발을 입증할 어떤 것도 없"는 상황이 된다. 공평하게 눈이 온 세상의 모든 것을 덮어 버렸듯이, 공평하게 햇빛도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녹여버리는 현실은 폭설로 인한 그 어떤 피해도 보상 받을 길이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폭설의 도발"이라니... 가히 상황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역작의 시다.
슬픈 사태
도가니와 우족 함께 끓인다 이 토막 난 날 것들 입 속에 고여 엉긴 피 빼주려 찬 물에 담가 두니 찰과상 타박상 골절상 자상에 언제 생겼는지 모를 멍까지 골병들어 응어리진 핏물
쏟고, 사태 및 뭉치 넣는다 보기엔 그 살이나 그 살이나 잘 저민 붉은 살코기 아롱사태 익어 건져내는데 눈 더워온다 저리 질기게 한몸 안에서도 생긴 결대로 함께 누워 껴안은 저희끼리 깍지 끼고 오그라든 심줄들 벼린 칼 들어가도 떨어지지 않으려 용쓴다만 모든 것 와해되고 뭉그러지는 날엔 결대로 숨 쉬고 펄떡일 수 없는 것이 살아 있던 것들의 비애다 곧 온다 그날 떨어내지 못해 애면글면하던 한 점의 상처조차 껴안을 수 없는 날 --- 122p. - 123p
미국에 사는 시인인데, 30년 째 살고 있는 시인인데, "도가니와 우족"을 끓인다는 것은 대단히 한국적이다. 거기다가 핏물을 빼고 사태 등을 함께 넣어서 또 끓인다. 중의적으로 표현한 사태라는 말이 참 절묘하다. 먹는 살코기 사태, 그 사태를 끓이고 있는 상황을 나타내는 "슬픈 사태". "질기게 한몸 안에서도 / 생긴 결대로 함께 누워 껴안은 / 저희끼리 깍지 끼고 오그라든 심줄들"이 "벼린 칼 들어가도 떨어지지 않으려 용"을 쓴다는 표현은 우리들의 삶 또한 그렇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하다. 도가니, 우족, 사태를 끓이면서도 그 안에서 "살아 있던 것들의 비애"를 보는 것은 역시 시인이기에 가능하다. "모든 것이 와해되고 뭉그러지는 날엔 / 결대로 숨 쉬고 펄떡일 수 없는 것이 / 살아 있던 것들의 비애다 / 곧 온다 그날"이라는 표현에서 삶의 유한함에 대한 비애가 느껴진다. "한 점의 상처조차 껴안을 수 없는 날"이 곧 온다는 말에서 "애면글면하"며 살지 말고, 살아있을 때 안아주고 서로 상처는 보듬어주며 살아가자는 시인의 선하고 순한 의도가 읽히는 부분이다. 언젠가 우리에게도 "슬픈 사태"는 분명히 도래하고 말테니...
언어로 가득찬 방
문을 열고 기포 같은 침묵들 사이 몇 발자국 들어가면 단단한 책상과 의자, 그 위에 단정한 백지와 섬세한 연필
슬픈 날은 눈 붉어진 자음과 모음들 조용히 백지의 모서리로 가 앉곤 한다
아직 말이 되지 못한 너
침묵하는 네 입에 노래를, 비명을 때로 소리 없는 울음을 넣어주기 위해 네 이름 부르면
너는 터지면서 비로소 더러워지면서 가만히 내게 온다
꽃이 되고 향기가 되고 상처가 되는 더러운 너
문밖으로 밀어내거나 창을 열고 떨어뜨리면 고요히 주저앉고 부서지고 울면서 떠난다
잘 가거라
내가 짝 지워준 언어들이여 너의 터짐, 너의 주저앉음, 너의 부서짐, 너의 울음이
이 조용한 방 잊을 때까지 다 잊고 나면 다시 너덜너덜해진 침묵으로 돌아와 눈 감을 때까지
부디 세상 떠돌거라 --- 136p. - 137p.
이 시는 무수한 시인의 언어들이 가득 차 있는 방에서 "말이 되지 못한" 언어들을 시인의 감각으로 발화(發話)함으로써 "문밖으로 밀어내"는 과정을 쓰고 있다. 시인만의 언어가 시(詩)로 승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시(詩)라고 해야할까. 시인의 언어들은 "고요히 주저앉고 부서지고 울면서 떠나"서 이별할 때 비로서 세상과 맞서게 되고, 세상을 떠돌게 된다. 시인이 언어들에게 "노래, 비명, 소리없는 울음"을 넣어주었을 때, "꽃이 되고 향기가 되고 상처가 되"어서 비로소 "울면서 떠"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의미없는 언어들이 시인에 의해서 의미를 부여받고 시가 되어 세상을 떠돌게 되는 것, 모든 시인들의 꿈이면서 모든 언어들의 이상(理想)이 아닐까. 시를 읽는 동안 시인의 방 앞에서 살며시 문틈으로 가득찬 언어들을 엿보고 싶은 욕망이 꿈틀댔다. 내 방에 떠다니는 나의 언어들도 시로 발화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잠시나마 상상해 보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김경미 시인은 발문에서 "생각해보면 시인은 누구나 다 디아스포라고 보헤미안이다. 시는 근본적으로 언제고 일상 언어와 비일상 언어의 간극을 표류하기 마련이니까. 표류하다가 가끔은 한겨울 바닷물에 발이 빠지기도 하고 봄날의 바닷가를 유유히 걷기도 할 뿐인 거니까." 라고 했다. 시에 보면 위리안치(圍籬安置)라는 표현도 나오듯이, 시인은 김경미 시인의 말처럼 본래의 자신의 땅에서 한걸음 나와서 그 곳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맞는 것 같다. 마치 유배 당하듯이, 스스로를 유배하는 사람들, 그들이 곧 시인이다. 강남옥 시인은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이미 30년이 되었으니 미국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뼛속까지 한국인인 그의 정서까지 미국적으로 바꿀 수는 없었을 것이다. 미국인이라고는 하지만, 그녀를 이방인으로 보는 현지 미국인들의 시선에서는 디아스포라, 이방인의 설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녀의 시에서 삶의 신산함도 느껴지지만, 또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서인지 <토요일 한국학교>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웃음짓고 안아주며 사랑을 느끼는 모습에서 따뜻함이 묻어난다. 어제는 20년 만에 침묵을 깬 시인의 시집을 읽었는데, 오늘은 30년 만에 고국으로 보내온 시인의 시집을 읽는다. 내공이 만만치 않은 시집들에서 묵직한 감동이 피어난다. 자신을 "호모 코메리카니쿠스"라고 명명하는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시집을 낸 이유를 담담하게 밝힌다. "태 묻었던 곳에서 살라주려는 내 시인 된 도리로서의 긍휼"이라는 표현에서 가슴이 뭉클해진다. 시인의 깊은 그리움과 애정이 느껴지는 대목이라고 해야할까. 시인의 말 전문을 적으며 리뷰를 마칠까 한다.
시인의 말
남들 전(廛) 걷는 노을 파장에 어리숙한 전 펴는 까닭은 버려질 뻔 했던 이 가엾은 시편들을 태 묻었던 곳에서 살라주려는 내 시인 된 도리로서의 긍휼 때문이다. 2017년 11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킹 오브 프러시아에서 강남옥
* 이 리뷰는 블로그 이웃인 아자아자님의 히트 이벤트에 당첨되어 선물로 받아서 읽고 쓴 것입니다. 이처럼 좋은 시집을 선물해 주셔서 읽게 해 주신 아자아자님께 다시 한 번 거듭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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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2022.1.1. 노래책시렁 210
《토요일 한국학교》 강남옥 모악 2017.12.11.
제가 태어나서 살아가는 곳은 ‘남한·한국·대한민국’이라고 합니다. 때로는 영어로 ‘코리아’라고 합니다. 어릴 적부터 이런 이름이 다 내키지 않습니다. 뭔가 뒤집어씌운 이름이라고 느꼈습니다. 나라(정부)에서는 늘 나라사랑(애국·충성)을 하라고 다그쳤고, 배움터도 나라사랑·겨레사랑을 닦달했습니다. 고작 여덟 살 어린이는 아침마다 배움터 우두머리(교장)한테 오른손을 눈썹 밑에 척 붙이면서 “충성!” 하고 외쳐야 했습니다. 1980년대가 저물고 1990년대로 접어들어도 이런 겉치레는 안 사라졌고, 2000년대로 넘어와서 위아래로 가르는 틀은 고스란합니다. 《토요일 한국학교》를 읽으면 이 나라로 건너와서 돈을 버는 이웃일꾼 이야기가 차곡차곡 흐릅니다. 이웃일꾼입니다. ‘외국인노동자·이주노동자’란 이름 모두 달갑지 않습니다. 그저 이웃인걸요. 일하러 온 이웃이에요. 거품으로 가득하여 일할 줄 모르는 이 나라에서 일자리를 씩씩하게 맡는 이웃은 너나없이 똑같은 사람이며 숨결이며 집안이고 마을이자 눈빛입니다. 제가 태어나서 사는 나라는 워낙 ‘한나라(하늘나라)’란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참말로 ‘하늘겨레’ 같은 몸짓이자 말빛인지 영 모르겠어요. ‘한(하늘)’은 이름일까요, 허울일까요?
ㅅㄴㄹ
엘리베이터 앞집에는 인도사람이 산다 / 끼니 때 풍기는 카레냄새 복도에 고여 있다 / 가면 같이 한결같은 표정, 속을 알 수 없는 백인 / 어깨 들썩이며 냄새 좋다, 인사하더니 /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는다 (승부/13쪽)
주말 한국학교 학예발표회 / 꿈꾸는 사람 분장하고 왜 그 사람 되고픈가 한국어로 말하기 (꿈은 유쾌해/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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